2014년 12월 1일 월요일

동학과 안중근의 화해



조현 2014. 12. 01
조회수 548 추천수 0

이토를 쏜 붉은 심장 앞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네
동학의 후예들 중국 항일 유적지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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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에 올해 초 들어선 안중근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임형진 교수 등 답사단

천도교(동학)인들이 동학혁명 120돌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역사현장을 찾았다. 해방 70돌을 앞두고서다. 지난 20~24일 4박5일간 중국 헤이룽장(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지린(길림)성 지린시까지다. 천도교는 동학혁명을 거쳐 3·1운동을 주도해 우리나라 근대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긴 종교다. 근대 우리나라에서 나온 최초의 민족종교로서 민족정신이 남달랐던 천도교인 중에도 일제가 강점한 한반도를 벗어나 압록강을 건너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적지 않다. 4박5일 항일유적지 답사. 동학 진압군과 피해자 후손도, 남과 북도, 좌와 우도 하나되었던 항일 투사들의 마음으로 화해의 마음을 모았다.

이번 답사엔 천도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격인 연원회 한광도 의장(전교령)과 강훈 부의장, 김인환 종무원장, 이순종 여성회장, 고윤지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등 주요 간부 14명이 함께했다. 이번 답사는 10년째 청년들을 데려와 항일유적지를 돌며 역사의식을 일깨웠던 ‘120주년동학혁명기념사업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인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시종일관 열변을 토하며 이끌었다. 임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매년 대학생과 천도교 청년들, 김을동·송일국 모자가 이끄는 청산리역사대장정과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팀 단장 등으로 항일유적지 답사를 이끌어왔다. 항일 당시의 고난을 되새기며 아파하는 탄식과 희망이 함께하는 전 답사과정을 동행했다.

화해1: 동학의 후예들, 동학도에게 총을 겨눈 안중근과 만남
동학의 후예들이 하얼빈국제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하얼빈역이었다. 그곳은 안중근이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 일제 동아시아 침략의 기획자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 군 참모장의 이름으로 처단한 곳이다.
하얼빈역은 1천만 인구로, 중국 동북지역 최대도시의 관문이다. 웅비하는 중국을 말해주듯 현대식 고층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다. 역 광장 한가운데 안중근기념관이 보인다. 안중근이 순국한 지 100년이 넘은 지난 1월에야 문을 열었다. 일본 아베 정권의 반성 없는 역사왜곡에 한·중이 ‘안중근’으로 하나가 되어 내놓은 것이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이 일본인 교도관들에게 써준 한자 글씨들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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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 큰 사진)안중근이 이토를 처단한 하얼빈역. (사진 속 작은 사진 위) 안중근이 저격한 장소, (아래)안중근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한 답사단.


외세와 봉건에 항거한 조선 근대의 첫새벽인 동학도들과 안중근은 애초 동지가 아니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안중근의 부친 안태훈은 군대를 조직해 동학군 진압에 나선다. 개화파와 연계를 맺고 있던 안태훈이 개화정책을 펴던 갑오내각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당시 16살이던 안중근도 진압군의 선봉에 섰다. 안중근 부자는 진압군이었고, 30여만명의 동학도들은 온 강토에 피를 뿌리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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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글씨 '국가안위노심초사'

‘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 글씨다. 하나 같이 민족애와 결의를 담은 안중근의 글씨 숲을 지나면서 동학의 후예들도 한마음으로 안중근을 기린다. 민족 동포를 생각하는 마음이야 다름이 있으랴. ‘안중근이 일신을 버리면서 이토를 처단한 순간, 이미 진압군도 동학도도 하나가 된 것 아니냐’는 듯 애틋한 눈길로 안중근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임 교수는 “안태훈은 동학농민전쟁 뒤엔 동학 접주로 싸우다 쫓기던 청년 김구를 숨겨주기도 했다”며 “그 뒤 안태훈·중근 부자는 천주교에 입교했고, 안중근은 연해주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총까지 주어 살려보낼 만큼 신앙적 박애주의를 보였으나 이 일로 인해 노출된 은거지에 들이닥친 일본군에 패하고, 동지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아 독립운동을 포기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굴하지 않고 다시 이토 처단이란 거사에 나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답사단은 기념관 창문 너머 역구내에, 안중근이 이토의 가슴을 명중시킨 자리에 표시된 표지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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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안중근과 그 아비가 동학토벌대였지만
하얼빈 역두에서 권총을 비우는 순간
진압군과 피해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731부대 기념관
3천여 마루타가 잔인하게 살해된 현장
중국 한국 몽골인은 같은 피해자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깃발도 나란히

화성의숙
독립전사를 길러낸 2년제 군사학교
15살 김일성이 6개월간 교육받은 곳
좌우를 넘어 우리는 한몸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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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은 적은 위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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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시에 있는 일제 관동군의 731부대기념관 전시물. 관동군들이 야외에서 동사 인체실험 중인 장면.
 

화해2: 731부대 기념관에 전시된 국민당기와 독립지도자 장제스 사진 
21일 아침에 찾은 곳은 하얼빈 외곽 주거지 안에 있는 옛 731부대다. 만주지역을 장악한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다.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 중장이 1936년 만든 이 부대에선 1만여명을 대상으로 각종 인체시험을 한 곳이다. 알려진 사망자만 3천여명에 이른다. 일본은 1945년 2차대전에 패배하자 잔혹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건물을 폭파했다. 그러나 당시 폭파되지 않은 건물들이 상당수 남아 역사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정문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 터널 같은 복도 양편에 희생자 이름을 적은 위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심득룡·김성서 등 한글로 적힌 위패도 적지 않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강추위 속의 야외에서 팔을 얼리는 실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에 전율이 느껴진다. 일본군부대들은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산 채로 장기를 제거하는 등 일체의 마취 없이 모든 인체실험을 했다고 한다. 
피실험자는 중국인, 한국인, 몽골인 등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인 중엔 국민당군도 공산당도 있었다. 한국인 중에도 민족주의자·사회주의자가 망라됐다. 일제 아래 그들은 모두 함께 고난을 겪던 피해자들이었다.

중앙전시장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다. 국민당기와 장제스(장개석)의 사진이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사진들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기념관에 공산당과 중국의 패권을 두고 싸웠던 국민당기와 장제스가 등장한 것이다.
반면 다음날 방문한 하이린시의 한중우의공원 내 한국독립운동가 전시실엔 좌익독립운동가들이 배제돼 있다. 한중우의공원은 김을동 한나라당 의원이 주도하는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가 김좌진의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하이린시로부터 땅을 기증받아 건립한 김좌진장군기념관 성격의 장소다. 임형진 교수는 “남한에선 여전히 보천보전투를 이끈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김원봉 등 좌쪽의 독립운동가들을 여전히 배제한 데 반해 중국은 최근 독립운동사를 통해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어 “1930년 김좌진이 산시의 정미소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공산계열의 박상실에게 암살되자 ‘공산주의자가 항일 영웅을 죽였다’며 좌우의 극한 갈등 유발 요인이 됐는데, 실제 박상실 뒤엔 일제의 끄나풀 김봉환이 있었기에, 일제에 의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내분을 조장하기 위한 술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훗날 김좌진 장군을 측근에서 보좌한 이강훈, 정환일, 임기송씨 등의 인터뷰집인 <일제하 36년-독립운동실록>엔 김봉환이 하얼빈영사관 경찰부 소속 마쓰시마 형사의 회유로 변절, 공산계 급진주의자인 박상실을 사주해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것으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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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화성의숙이 있는 화뎬시의 휘발하강, (사진 아래)화성의숙 터에서 천도교 의식인 시일식을 거행하고 있는 답사단.


화해3: 김일성의 스승 천도교인 최동오가 이끈 화성의숙
화성의숙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지린성 둔화시에서 출발한 버스는 비포장 산길을 달린 지 5시간 만에 화뎬시 휘발하강에 도착했다.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이 당나라 군사를 대파한 곳이다. 지금은 화뎬시 시민공원이 된 이곳엔 독립운동가들이 1924년 세운 화성의숙이 있던 곳이다. 화성의숙은 독립을 위해 싸울 전사를 길러내는 2년제 군사학교였다. 이 터는 3년 전 임 교수와 정정숙 교화관장 등이 주소만 들고, 노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찾아냈다.

화성의숙 숙장(교장)이 3·1운동후 천도교 대표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해 임정 법무부장(장관)을 지낸 의산 최동오(1889~1963)다. 1926년 15살의 김일성이 이 학교에 왔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형직이 죽자 장례에 모인 친구들에 의해 부친과 친분이 있는 최동오가 이끄는 이 학교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최동오는 숙장으로 있으면서도 생계가 어려워 아들 최덕신조차 베이징의 고아원에 맡기고 와 부인의 삯바느질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일성은 그 집에서 먹은 조밥과 시래깃국을 훗날에도 잊지 못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6개월 만에 이 학교를 중퇴하고 지린시 육문중학교로 전학을 갈 때,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머리와 어깨에 눈이 하얗게 쌓이도록 서서 손을 흔들던 스승을 회고하곤 했다고 전한다. 최동오가 1948년 김구와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평양에 남북협상 대표단으로 갔을 때 김일성은 스승에게 북에 남아줄 것을 부탁했으나 최동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김일성의 ‘모시기 작전’에 의해 납북됐다. 그의 아들 최덕신(1914~1989)은 남한에서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고, 5·16 후 외무부 장관과 제7대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과의 불화로 76년 도미한 데 이어 86년 월북해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 위원장과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 겸 천도교청우당지도위원회 위원장인 류미영씨가 그의 부인이다.

임형진 교수는 “김일성이 사회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띤 것은 스승 최동오의 민족주의 교육의 영향이 적지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광도 연원회 의장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표지석이라도 세워, 좌우를 넘어선 민족정신을 찾는 장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곳을 찾은 23일은 때마침 일요일이었다. 강추위에 야외에서 천도교 시일식이 거행됐다. 천도교 주선원 감사원장은 설교에서 “현재 우리 민족은 몸통은 잃어버린 채 좌우 날개만 있는 듯하다”며 “함께 참회하고 중도를 잡아 화해해 몸통을 되찾기 위해 마음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하얼빈·하이린·지린(중국)/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일 격전지 동북3성은 지금…

1990년대 조선족학교 1500개
연변자치주 위주 250여개만 남아
조선족 교감은 우리말을 모르고
학생들은 중국어로 말했다 

압록강 너머 간도는 옛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고대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백두산 일대에서 탄생한 청나라의 주축인 만주족이 다수인 한족을 지배하기 위해 대거 베이징으로 이주하면서 만주 일대는 텅 비었다. 청나라는 왕조의 탄생지를 신성시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봉금지역으로 설정했다. 구한말 조선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서, 그리고 일제하에선 독립운동을 위해서 이곳에 대거 옮겨갔다.

독립운동가들을 음지에서 말없이 도왔던 이들이 바로 간도의 한인들이었다. 그들은 돈을 모아 수많은 민족학교를 후원했고,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고 돌보았다. 청산리대첩 때는 이틀째 잠도 못 자며 싸우느라 끼니를 때울 수 없던 독립군들에게 주먹밥과 감자를 삶아 가서 직접 먹여주던 이들도 간도의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에 대패한 일제는 한인들에 대한 대보복을 감행한다. 그것이 간도 참변이다. 당시 일본군은 한인촌을 전소시켰다. 그때 일본군이 보이는 대로 죽인 한인이 37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답사단은 그 후손들을 찾아 헤이룽장성 오상(우창)시 조선족실험소학교를 방문했다.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23개 학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학교다. 조선족학교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북3성에 1500여개나 됐지만 지금은 250여개로 줄었다. 그나마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집중돼 있다. 인구 400만이 사는 길림성에도 조선인학교가 단 한개만 남아있다. 216만명의 중국내 한인동포 가운데 50여만명이 한국 등으로 돈벌이를 떠나 중국내 한인공동체가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독립운동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했지만, 멸문의 화를 당하고, 현대엔 경제적으로 나은 남한에서 멸시까지 감내해야 하면서 자존감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이 학교에서조차 조선족인 교감은 우리말을 할 줄 몰랐고, 운동장에서 노는 학생들도 중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천도교는 이 학교 학생들이 한글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짓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조현 기자  




신은미. 황선씨 통일이야기 공연 생중계 제안


황선"국지기구에 서한"-신은미"박근혜 대통령과 통일정책 논의 제안"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12/02 [10: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통일콘서트에 참석했다가 종북 몰이를 당하고 있는 황선. 신은미씨, 그리고 법률 대변인인 김종귀 변호사가 프레스센터에 자리하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실제 방북을 통해 얻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통일이야기 공연에 참여했다가 '종북' 몰이를 당하고 있는 재미동포 신은미교수와 황선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허위왜곡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재미교포 신은미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신은미교수와 황선대표는 2일 10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19층에서 '통일토크콘서트 종북몰이' 신은미 황선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히고 신은미씨는 통일정책을 위한 논의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 발언하는 황선 대표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황선씨는 유엔인권위원회와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기구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 사태를 서면을 통해 알릴 것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


시자회견 문 전문


[기자회견문] 통일토크콘서트 종북몰이에 대한 신은미·황선 입장 발표

“북녘에 흐르는 물줄기가 깨끗하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새 지도자가 나타났으니 변화가 있을 거라고 북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라는 말이 어떻게 북한을 고무, 찬양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세쌍둥이를 출산할 때 헬리콥터로 후송한다”고 탈북자들조차 하는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한 북한 동포들의 다양한 생활과 생각을 알리는 것이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도움이 되리라는 취지에서 이번 토크콘서트를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TV조선을 비롯한 종편, 언론들은 우리가 진행한 토크문화콘서트를 <종북토크쇼>라고 허위․왜곡 보도하였습니다.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느니, “삼대세습을 찬양” 했다느니, 심지어는 “북한 통전부의 지령을 받았다”는 등, 하지도 않은 말들을 조작하며 우리를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런 허위 보도는 우리 뿐 아니라 콘서트 출연진과 주최 측, 그리고 관객들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남북화해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종편․언론들의 허위․왜곡보도 행태를 바로 잡고, 건전한 통일문화행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초 허위, 왜곡보도를 한 TV조선 방송사와 뉴스7 출연진과 제작진 전원, 그리고 조선일보 기자와 발행인을 이미 어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허위 왜곡 언론보도도 계속 취합하고 있으며 해당 언론사 및 관계자 모두 고소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적 대응을 넘어 통일 토크 콘서트의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첫째, 종편을 포함한 방송사, 언론사, 그리고 공안기관, 대북정책 관련 정부 당국자를 우리 통일 토크 콘서트에 정중히 초청합니다. 더불어 방송사 생중계를 제안합니다.

둘째, 우리는 유엔인권위, 앰네스티 등 국제기구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 사태를 서한을 통해 알릴 것입니다. 얼마 전 정부는 대북전단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허용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 자유는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까? 통일 토크 콘서트에도 표현의 자유는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통일 토크 콘서트가 북한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 동포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2014년 12월 2일
신은미, 황선

정중히 제안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리틀 엔젤스’라는 공연단에 들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을 위해 힘썼고, 그 공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찬에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현실을 보고 느낀 대로 전하는 것이 남북통일에 도움이 되며 최고의 국위선양이라 생각하기에 통일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2002년 방북 당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박 대통령의 그 마음과 저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해드림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향후 통일정책에 도움이 되고자 면담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2014년 12월 2일
신은미

[첨부2]
고  소  장
고 소 인 1. 신은미
  2. 황선
  고소인둘의 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정평(正平)
        담당변호사 심재환, 권정호, 하주희, 김유정, 남성욱, 김종귀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114, 일광빌딩 6층(서초동)
        전화 : 582-0606, 팩스 : 596-8004
피고소인 1. 김찬(조선일보, 조선닷컴 발행인/편집인)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52
  2. 이상목(TV조선 기자, ‘뉴스7’ 앵커)
  3. 성명불상자(TV조선 ‘뉴스7’ 제작PD)
  4. 최희준(TV조선 '뉴스쇼 판' 앵커)
  5. 이유경(TV조선 기자)
  6. 성명불상자(TV조선 '뉴스쇼 판' 제작PD)
        피고소인2~6 서울 중구 세종대로 21길 조선일보씨스퀘어빌딩
  7. 김성민(조선일보 기자)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52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등

*조선일와 티비 조선 사장도 고소 대상이라는 것을 김종귀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밝힘

[첨부3]
이후 토크문화콘서트 전국순회일정 공지 (지역 일시, 장소)

: 대구 - 12월 9일 저녁 7시반, 대구 YMCA 3층 대강당
: 전북 - 12월 10일 저녁 7시,  원광대학교 학생회관 소극장
: 부산 - 12월 11일 저녁 7시반, 장소 미정

국보법 제정 66년 회견..온라인 게시물 삭제만 20만건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국가보안법 체제”인권단체들, 국보법 제정 66년 회견..온라인 게시물 삭제만 20만건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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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1  16: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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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제정 66년 오늘,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국가보안법 체제임을 선언한다.”
1948년 12월 1일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의해 “오로지 북한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권의 침해가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제기됐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관련 단체들은 1일 오후 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층에서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 사건’ 그리고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이버 상의 불법정보 삭제사건’ 사례를 발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북한’이라면, ‘종북’이라면 기본권 침해가 당연시 되는 현실에 주목한다”며 “국가의 안보를 위해 인권이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란음모 정치공작 1년 만에 실패.. 내란선동 판결 우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사례 발표를 통해 “2심에서 내란음모 사건이 무죄가 난 것에서 보여주듯이 없는 사건을 조작해서 종북몰이로 쓰였다”며 “결론적으로 내란음모 사건은 없었다. 내란음모 정치공작은 1년 만에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또한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이라 부르면 안 된다”며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2심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데 대해 “사문화됐던 내란선동죄가 이번 판결로 주목받게 됐다”며 “내란선동이 처음으로 적용돼 이것이 (대법에서) 유죄로 확정됐을 때 공안탄압의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찰이 시위자들에게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대신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처럼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 위반 사건에 대해 내란선동 혐의를 들씌울 수 있다는 것.
박 소장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 주목해야 한다”면서 “다시 우리는 표현의 자유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첩조작, 이렇게까지 밝혀졌으면 국정원 해체돼야”

이광철 민변 소속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 사건’ 전말을 소개하면서 “국정원이 만들어낸 간첩”이라며 △유 모씨 여동생을 6개월 동안 독방에 가둬놓고 허위진술을 조작했고, △중국 국가가 정식으로 발급한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두 가지 사실을 적시했다.
이 변호사는 유 씨 여동생을 극적으로 만나러 가게 된 과정, 오빠와 만나게 한 일, 인신구제절차를 거쳐 민변 주선으로 기자회견을 열게 돤 경위 등을 설명하고 이같은 노력에 의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고 정리했다.
나아가 “이렇게까지 밝혀졌으면 사실 국정원이 해체돼야 되는 것 아니냐”며 “이렇게까지 낱낱이 밝혀졌는데도 국정원 조직이 지금도 어디선가 또 새로운 조작간첩을 만들어 낼 꿍꿍이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참담하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이 변호사는 “국정원을 제자리를 찾아서 수사권을 폐지시키고 국내문제에 개입시키지 않게 하는 제도개혁이 시급하다”면서 “결국 2017년에 제대로 된 정권교체를 통해 국정원을 개혁해 낼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게시물 삭제만 20만 건 넘어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이버 상의 불법정보 삭제사건’을 사례로 들며, “국가보안법 7조를 근거로 공안당국은 사이버 상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주장들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한다”며 구체적 수치들을 제시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국회를 통해 입수한 경찰측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 8월까지 게시물 작성자와 관리자에게 요청해 삭제된 게시물 수는 206,404 건에 이르고, ‘업무협조요청’에 불응해 경찰청장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삭제를 요청한 게시물 수도 2007년부터 2014년 8월까지 6,015건이나 된다. 이 중 끝까지 삭제를 거부해 고발조치된 게시물 수는 865건, 실제 구속까지 이른 인원은 37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이 ‘친북’, ‘종북’ 표현물로 적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한 웹사이트 게시물 수>

구분연
소계
일반 단체
홈페이지
인터넷신문
포털
(카페, 블로그)
기타
’07년
  311
   306
  5


’08년
1,061
1,061



’09년
  177
  177



’10년
1,067
1,067



’11년
1,738
1,420
  1
317

’12년
  380
  298
44
  13
25
’13년
1,172
1,122

  42
  8
’14년 8월
    109
     74
  5
  30


<국보법위반 사이버 단속 현황>
연도
계 (구속)
’07년
5 (3)
’08년
5 (0)
’09년
32 (4)
’10년
82 (11)
’11년
62 (10)
’12년
44 (5)
’13년
31 (3)
’14년 8월
21 (1)
(2014년 경찰청 자료 - 인권운동사랑방 제공)

또한 사이버 상의 불법 게시물 단속은 경찰서 별로 영역이 나눠지지 않아 전국 어느 경찰서에서나 어떤 사이트에 대해서도 단속이 가능한 상황이며, 서울 혜화(2,423건), 경북 경산(1,851), 서울 금천(1,213), 서울 관악(924), 대전 대덕(773), 경기 양주(700), 부산 연제(690) 경찰서 순으로 단속실적이 나타났다.

정 활동가는 “단지 북한과 관련된 정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주 당당히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며 인권운동사랑방과 노동전선이 방송통신위원회 삭제 요청을 거부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하고 올해 10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방송통신위의 삭제 행정명령에 대한 헌법소원 역시 합헌으로 결정났다.
이외에도 노동해방실천연대는 자유게시판 게시물 3개에 대한 삭제요청에 불응해 불과 한달 만에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 기소돼, 1심재판에서 300만원을 선고받고 항고 중이며, 심지어 경기 안산단원결창서는 <서울신문>에 ‘업무협조 의뢰’ 공문을 통해 서울신문 사이트에 6건의 글 삭제를 요청했다가 꼬리를 내린 바도 있다.
정 활동가는 “실제로 북한과 관련됐는지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모든 기본권 침해의 근거가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북한이라는 악마를 가지고 국가보안법을 무소불위로 휘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경찰에 의한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은 다양한 경험담을 제시하며 공동대응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사무처장의 사회로,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가보안법 체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
2013년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심각한 정치공작을 해온 국정원 등 공안기관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자기사면을 해버렸다. 그리고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정권안보를 위한 ‘종북몰이’를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 취임과 동시에 시작된 내란음모조작사건,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 등 굵직하고 끔찍한 공안 정치사건은 2014년 여전히 민주주의를 옭죄고 있다.
2013년-2014년 사이 내란음모사건은 내란음모가 무죄가 된 채 내란선동이라는 해괴한 혐의가 살아남은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변해 버렸다. 세상을 뒤흔든 RO라는 조직의 실체는 없었다. 유일한 내란음모의 증거인 녹취록 파일도 훼손되었고, 국정원이 작성한 녹취록도 검찰이 272곳을 수정하는 등 걸레가 되어 버렸다. 어찌 보면 이 사건 기획자(?)의 승리는 절반으로 그친 셈이지만 정치재판의 타협점에서 내란선동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실체도 없는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한 박근혜 정권과 국정원은 이 사건으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탈출했다.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 사건. 이 사건은 여동생을 합동신문센터에 6개월간 감금하여 허위진술을 통한 증거조작으로 간첩 만든 사건이었고 1심에서 무죄가 되자 국정원이 중국정부의 공문서를 조작했다. 그것마저 재판과정에서 변호사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꼬리가 잡혀 조작의 실체가 드러났다.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은 완전히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짜로 증거를 날조해서 간첩사건을 조작한 국정원과 이를 방조한 검찰이 몇몇 관련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소식만 접했다. 사건을 조작한 범죄가 겨우 솜방망이 처벌이라니! 왜! 국가안보를 빙자한 공안기관의 범죄는 용인되는가. 왜! 오히려 국가보안법 체제는 더욱 강화되는가!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보안법 사건은 양적으로 매우 증가해왔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80% 이상이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한 의견 개진을 한 사건들이다. 이들 사건에 적용된 혐의는 국가보안법 7조 위반이었다. 2008년 40건의 사건 수는 2010년 151건으로 증가했고 2013년 121건 등 국가보안법 사건의 양적확대가 이뤄졌다. 2014년 국정원과 검찰의 서울시공무원 조작간첩의 여파 등으로 사건 수는 줄었지만 공작의 정도와 정치 개입력으로 보았을 때 박근혜 정부 하 국가보안법체제는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내란선동’이라는 괴물이 국가보안법을 타고 또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처벌을 통한 표현의 자유의 위축은 성공했고 ‘종북’ 이라는 카드는 강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이버 상의 불법정보 삭제사건’에 주목한다. 게시물 삭제명령은 한국 사회 전반을 규율해야 하는 국가보안법이 사이버 상에서 작동하는 검열-처벌 체계이다. 정통망법을 통해 국가보안법 7조를 걸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의 제공자,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정보를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사이버 상에서 일상적인 사찰을 진행하면서 ‘업무협조요청’이라는 형식으로 정보작성자,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한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한 강제집행 이전에 대부분의 표현물들이 이렇게 경찰의 요청에 의해 자체 삭제되고 있다. 우리가 8월 <서울신문> 기사 삭제요청 사건을 해프닝이라고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북한’이라면, ‘종북’이라면 기본권 침해가 당연시 되는 현실에 주목한다. 우리는 스스로 검열하여 ‘종북’ 이 아니었으므로 무관심했고, 이 무관심은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과 오남용을 용인하게 되었다. 그러자 국정원은 탈북자를 상대로 간첩을 조작하고,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을 짓밟는 공안기관의 정치공작을 용인하게 되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동성애자도.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시민에게도 ‘종북몰이’의 대상은 확대되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는 어김없이 ‘종북’이 되는 불편한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말로만 떠들어도, 비슷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한 것도, 인터넷에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공유만 해도 처벌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우리는 다시금 직시한다. 국가의 존립과 안전,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과 고민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오로지 ‘북한’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권의 침해가 이루어지는 이 현실을 그대로 둘 것인가.
국가의 안보를 위해 인권이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이분법적인 구분에 빠져 가상의 적과 아군이 난투극을 벌이는 사이 표현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점점 질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제정 66년 오늘,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국가보안법 체제임을 선언한다.
2014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66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노년층 종편 선호 vs. 젊은층 "분노게이지↑" 상반된 시선

"진행자들이 연극배우 같아" TV조선 앵커의 꼼수

14.12.01 17:04l최종 업데이트 14.12.01 20: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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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편 4사 로고
ⓒ 종편4사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는 방송 사업을 하기엔 역량이 많이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신문 기업이 방송사를 동시에 운영하면 우리 사회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여론 독과점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신문사가 방송사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황당하게도 채널을 4개나 승인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방송이 태어난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4곳(TV조선, JTBC, 채널A, MBN)은 개국 초기, 소수점 이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놀림의 대상이 됐다.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 시민단체들은 모두 종편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그런 종편이 12월 1일로 개국 3년이 되었다. 과연 지금 종편의 상황은 어떨까. 일단 월간 평균 시청률은 1%대를 넘어섰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 병원, 공공기관, 터미널, 기차역, 미용실, 이발관 등에 걸려 있는 벽걸이 TV에선 종편 화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구내식당에서는 MBN을 고정채널로 설정한 듯하다. 개국 초기의 비관적인 시청률에 비해 지금은 방송계에서 나름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종편의 합계 시청률은 지난해 3월 이미 4%를 넘었고 같은 해 7월부터는 4개 채널 모두 평균 1%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타나났다. 종편 시청률은 특히 노년층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1일 <한겨레>가 1월부터 10월까지 TNmS의 '성별·연령대별 종편 4사 평균 시청률(유료매체 가입 가구 기준)'을 분석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20대는 0.1%(남)·0.15(여), 30대는 0.1%(남)·0.275%(여)에 머문 반면, 60대 이상은 0.95%(남)·0.875%(여)로 1%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편 애청자가 돼버린 노년층,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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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편채널인 '채널A'는 지난 3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 채널A

나는 50대 이상 노년층이 종편을 많이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뉴스채널인 줄 알고 보는 것인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알바로 일하는 곳에 자주 드나드는 5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종편을 봤는지, 본다면 왜 보는지, 어떤 점이 좋고 아쉬운지 등을 물었다. 

어르신들에게 물은 결과 가장 많이 나온 공통적인 답은 '<조선일보>가 만든 방송이니 믿고 본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말했다. 

"<조선일보>는 발행부수 1위 대한민국의 대표 언론이다." 
"<조선일보>는 집권여당 아침회의의 안건보고서나 다름없는 신문이다." 

한 마디로 어르신들 사이에선 <조선일보>의 권위가 <TV조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안보를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종편을 시청해야 한다는 강한 의견을 피력한 분도 있었다. 

"아직도 남한에 간첩들이 많이 있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위험을 잊고 안보불감증에 빠져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신문을 보지 않아서 이런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러니 종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요즘 KBS도 이런 걸 제대로 방송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편 뉴스만 본다." 

할아버지는 종편이 지속적으로 안보 위협을 이야기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해야만, 북한군이 남한을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행자들이 연극배우처럼 열심히 한다."

어떤 어르신은 "종편 아나운서나 진행자들은 아주 알기 쉽게 이야기 해주더라"라고 말했다. 종편 진행자는 사회문제나 이슈를 소개하며 분노, 비아냥거림, 격한 공감 등의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TV조선> '뉴스쇼판' 앵커 김윤덕과 엄성섭의 쇼맨십은 압권이다. 시청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진행자들은 감정적인 진행을 통해 시청자들이 이슈에 대해 판단해야할 수고를 덜어준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진행이 어르신들에겐 그 사안을 쉽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종편 뉴스를 보는 이유가 <TV조선>이나 <채널A>의 뉴스 진행자들이 속 시원하게 크게 말하고 비판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인층은 시사토크 프로그램 출연자에 대해서도 강한 신뢰를 보였다. 변호사, 전직 국회의원, 경찰 등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특정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덕분에 사람들이 시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건강과 생활 정보가 많아서 좋아"

더불어 어르신들은 종편의 인포테인먼트(정보전달과 오락의 결합)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포테인먼트란 MBN <황금알>, MBN <천기누설>, JTBC <닥터의 승부>, TV조선 <속사정> 등 건강, 생활 지식을 소재로 전문가들을 그러모아 만든 프로그램을 뜻한다. 

한 할머니는 매일 밤마다 이런 토크프로그램을 본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주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치 있는 전문가 패널들의 입담과 더불어 각종 건강상식과 생활지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였다. 이들 프로그램이 말하는 속설과 출연진들의 사견을 왜 신뢰하시는지 물었더니 "믿을 만하니까 TV에 나왔겠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답변들이 의외라고 여겨진 이유는 이날 만난 어르신들 중엔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을 지니지 않은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할아버지는 JTBC <썰전>을 즐겨보신다면서, "<썰전> 같은 프로그램은 종편에서만 하잖아"라며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야 사람들이 시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한 어르신은 종편의 프로그램들이 "뭐든지 쉽게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다"며 "자막도 크고 소리도 큰 것 같다, 뭔가 우리를 위한 방송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어머니랑 며느리들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들 사는 것과 똑같아서 재미있다"는 시청평을 말한 분도 있었다. 

의외인 것은 종편을 즐겨보신다는 모든 어르신들이 정작 특정 프로그램을 찾아서 시청하는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채널을 종편으로 맞춰서 수시로 보시는 것이지, 특정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찾아보지는 않는 듯했다. 종편에 너무 광고가 많고, 특히 "보험광고와 대출 광고로 도배를 해서 짜증스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종편이 '종합방송채널'이라서 지상파 방송국처럼 드라마와 좋은 다큐멘터리, 쇼 프로그램 등등을 모두 골고루 틀어줘야 하는 방송사임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또한 종편이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들은 제작하지 않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건강생활정보 토크 프로그램 등을 주로 만들어 전체 방영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그런 뒤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떼토크'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훨씬 싸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그런 건 모른다", "상관없다", "유익한 프로그램을 싸게 만드니까 좋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젊은층이 본 종편... "종편 보다 분노 게이지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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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편채널 TV조선의 시사프로그램들
ⓒ TV조선

그렇다면 젊은층들은 종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비교적 젊은층에 속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원들은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출연진과 방송 내용에 대해 매우 큰 불신을 갖고 있었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종편을 모니터할 일이 잦은데, 지나치게 공격적인 시사토크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자의 발언 때문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모니터가 끝나고 나면 한숨을 쉬거나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사 떼토크'는 TV조선과 채널A에서 많이 방영하고 있는데, 해당 프로그램 출연진들은 두 방송사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본 '짜증스러운 사람'을 저기에서 또 보게 되는 불상사도 생긴다. '시사 토크프로그램' 출연진들은 친정부ㆍ여당 성향의 '평론가' 혹은 변호사 등 소위 '사'자가 들어간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해당분야 '전문가'로 칭하기엔 애매모호한 지점이 너무 많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주장하는 내용은 그동안 <조선> <동아>가 생산·확장시키던 '종북 프레임'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어서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분과원은 이렇게 말했다. 

"종편 '시사 토크프로그램' 에서 누군가가 대통령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할 경우, 출연진은 이 사람을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종북 인사·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이어 해당 인사·세력 뒤에는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 등 '거대 악'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논리를 반복한다." 

분과원들은 "해당 프로그램 출연진의 논리에선 대통령의 행보나 특정 정책에 대한 분석적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왜 대통령과 정부정책을 비판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근거도 불분명했다"고 평했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편은 정부·여당 옹호 등 지배논리 확대·재생산을 위해 태어난 채널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수많은 특혜를 누려왔다. 방통위는 '행정지도'라는 형태로 종편에게 지상파 방송사들과 인접한 황금채널을 연번으로 배정해줬고, 의무전송 채널로 지정해줬다. 또한 중간광고를 허용해줬으며, 미디어랩을 거치지 않고 광고를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종편은 이처럼 수많은 경제·시스템적 특혜를 받아왔음에도 '드라마'와 '예능'을 배제한 채 '시사·인포 떼토크' 프로그램만을 방송하고 있다. 

종편에 대한 노년층과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의 상반된 평가를 들으며 나는 새삼 '조중동 방송국' 종편에 대한 어르신들의 '무한신뢰 및 사랑'을 유지·이용하기 위한 종편의 행태가 영악스럽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 위원장입니다.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추진위' 남북 동시 결성


'광복 70년, 분단 70년, 민족 화해와 평화를 위한 2015남북노동자축구대회'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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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1  14: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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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남측 추진위원회' 결성을 위한 기자회견을 갖고 북측 조선직업총동맹과 함께 마련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한용문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최두환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내년 5.1절(노동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남.북 3자 연대 추진위원회 결성식이 1일 남과 북에서 공동으로 진행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남측 추진위원회' 결성을 위한 기자회견을 갖고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직총)과 함께 마련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북측 직총에서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북측 추진위원회' 결성과 공동선언문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양대노총은 밝혔다.
공동선언문에서 양측은 "남북의 만남은 분단 이후 7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온 겨레의 희망이요,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경험적으로 검증된 통일의 초보적 단계"라며, "2015년 5.1절을 기해 성사되는 우리의 만남은 6.15공동선언 15돌과 광복 70년, 분단 70년인 8.15대회가 전민족적인 통일대축전장이 되게 하는 출발점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1999년과 2007년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저변을 확대해 왔던 만큼 이번에도 남·북 노동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연대와 실천활동의 모범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대회를 통해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물론 각계층의 폭넓은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중대계기로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각계각층이 대회의 성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란히 발언했다. 사진은 김동만 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양대노총이 이견없이 통일됐다"며, "'민족의 맏아들'인 남북 노동자들의 만남을 통해 통일을 앞당기는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소수의 엘리트 스포츠를 내세워 몇몇이 교류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다수 땀흘려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적 교류운동으로 대회를 준비해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직선제를 통해 민주노총 위원장이 누가 되더라도 대회는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대회가 성사되기까지는 어려움과 반대도 있겠지만 꼭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며, "이번 대회가 새로운 통일운동의 지평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격려사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민중의 힘에 의해 정부정책이 바뀌고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굉장이 중요하고 역사적으로 뜻깊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 의장은 특히 이번 축구대회를 "남에서 제안하고 북에서 수용한 것도 굉장히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꼭 성사되어야 한다. 만나서 꼭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3년6개월의 형을 꼬박 채우고 이틀전에 만기출소한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규재 의장은 출소 후 첫 번째 대외활동이 자신이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으로서 처음 진행했던 지난 1999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같은 통일축구대회 추진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이라는 것도 뜻깊은데, 이날 아침 첫눈까지 내리니 감격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의장은 1999년 당시 대회 성사에 대한 확신보다는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가 통일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으나, 이 축구대회가 그 이듬해 6.15 남북정상회담에 이르는 남북간 결정적인 신뢰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나중에 들었다고 회고했다. 또 당시 축구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자신이 각오하고 있던 사법조치를 피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배려가 있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 의장은 노동자들이 남북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시의적절하고도 노동자의 역사적 사명에도 걸맞는, 환영받을만한 일이라며, 정부는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혜를 발휘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축구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에서 열까지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이 대회가 겨레에게 희망을 주는 행사가 되도록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 한용문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왼쪽)과 최두환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대회 추진위원회 결성을 기념하는 남북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용문 민주노총 통일위원장과 최두환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대회 추진위원회 결성을 기념하는 남북 공동선언문을 낭독했으며,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부터 전국적 규모로 대회 추진기구를 확대해 내년부터는 각 지역과 계층을 망라해 대회 성사와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는 이승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연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등이 참가했다.
양대노총에 따르면, 2015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지난 10월 7일 양대노총이 주최한 '남북관계의 회고적 성찰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토론회에서 처음 제안됐으며, 그달 말 북측 직총에 개최의사를 타진한 결과 동의 의사를 확인했다.
지난달 10일 직총으로부터 축구대회 개최에 대한 양대노총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요지의 회신이 있었으며, 이어서 추진위원회 결성식을 공동으로 개최하고 공동문건 발표에도 일사천리로 합의가 이루어져 이날 추진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에 이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