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일요일

우리말 산책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당나귀 귀’

 우리말 산책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당나귀 귀’

엄민용 기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널리 알려진 설화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이 당나귀 귀로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문왕이 당나귀 귀를 가졌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설화는 절대권력자라도 남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허물이 있기 마련이고, 그 허물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는 동화책에도 나오는 이야기로, 코흘리개 아이들도 그 교훈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어른 중에도 자신의 당나귀 귀를 알지 못하거나 이를 감추려 끙끙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요즘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 특히 많다.

삼국유사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한 당나귀는 ‘나귀’의 별칭이다. 나귀 중에서도 중국 당나라에서 건너온 나귀가 한반도 재래종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까닭에 ‘당나라에서 들여온 나귀’를 따로 부르게 된 말이 당나귀(唐+나귀)다. 그러기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귀와 당나귀의 뜻풀이가 똑같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주인공은 말을 타고, 그의 부하인 산초는 나귀를 탄다. 말과 나귀 사이에 ‘신분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말과 나귀는 그 벽을 허물고 후세를 낳기도 한다.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노새’이고, 수말과 암나귀 또는 수말과 암노새 사이에서 나온 것은 ‘버새’다.

당나귀와 관련해 흔히 틀리는 말에는 암수를 구분하면서 쓰는 ‘암당나귀’와 ‘수당나귀’가 있다. 동물 중에서 개와 강아지, 닭과 병아리, 돼지, 당나귀 등은 앞에 ‘암’ 또는 ‘수’가 붙으면 예사소리인 ㄱ·ㄷ·ㅂ이 거센소리 ㅋ·ㅌ·ㅍ으로 바뀐다. 암캐, 수평아리, 암퇘지 등처럼 말이다. 당나귀도 암탕나귀와 수탕나귀가 바른 표기다. 이들 외에 다른 동물에서는 암과 수가 붙어도 암코양이나 수커미 따위로 쓰지 않는다. 동물 외에는 것·기와·돌쩌귀만 예사소리가 거센소리로 바뀌어 암컷, 수키와, 암톨쩌귀로 쓴다. 돌쩌귀는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 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