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비선 실세’ 부인한 그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나?

등록 : 2014.11.29 11:36수정 : 2014.11.30 10:13

작년 7월 ‘한겨레’와 만나 “아무 것도 안 하고 논다”
박 대통령 측근 ‘3인방’과도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비선 실세’ 부인한 그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나?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지난해 7월 이틀에 걸쳐 정씨를 서울 근교의 한 공원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4년 정치판을 떠난 뒤 종적을 감췄던 정씨가 언론과 만나 인터뷰한 유일무이한 사례입니다. 당시 정윤회씨와 나눈 일문일답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 관련 기사 : ‘숨은 실세’ 정윤회씨…“박 대통령 당선에 역할했다는 말은…”
▶ 관련 기사 : “대선 때 독일 체류…요샌 면벽하고 산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의심받아온 정윤회씨가 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왜 그동안 기자들을 안 만났나?
(대선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한다는 등) 워낙에 말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누가 되니까. 아무리 내가 ‘아니다’고 말해도 얘기는 나오게 마련이니까.
요즘은 박 대통령 쪽과 연락하지 않나?
전혀 안 한다.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 내가 섭섭할 정도로 측근들로부터 연락 같은 건 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정치 쪽으로 갈 일은 없나?
걱정하지 말아라. 앞으로, 5년이 됐든, 그 이후가 됐든, (대통령에게) 누가 안되게 할 것이다.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연락 안 하고 있나?
그 분들도 연락하지 않는다. 그 분들 역시 나와 연락한다고 하면 얘기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서로가 조심해야 한다. 연락조차도 안하고 만나지도 않는다.
그럼 지금 무슨 일을 하시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논다.
그로부터 1년 4개월 뒤 ‘실세’(로 의심받는) 정윤회씨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드러났습니다. 정씨는 박근혜 정부의 탄생 전부터 줄곧 숨은 실세로 의심받았습니다. 그런 정씨가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청와대 동향을 파악하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을 퍼뜨리는 등 국정에 개입한 정황이 28일 <세계일보>의 보도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 세계일보 기사 바로가기 :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정씨의 실체는 충격적입니다.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자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과 정기적으로 만나 동향을 보고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기춘 비서 실장의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언급하면서 사설 정보지(찌라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퍼뜨리라고 지시합니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씨는 민간인 신분으로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지시를 내려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게 됩니다. 권력 실세의 국정 개입이 되는 겁니다. 그에 앞서 “청와대 쪽 사람들과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던 <한겨레>와의 인터뷰 속 정씨의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
당시 정씨가 <한겨레>와 나눈 대화를 좀더 소개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연락하진 않나?
연락 올 일이 없다. 얼마나 바쁘시겠나? 지금은 더 그렇고. 참외밭에서 신발 끝 고쳐매지 말라는 옛말이 맞다. 한번 당해 보면 안다. 거듭 말하지만 아예 사람을 안 만난다. 혼자 있거나 아이와 있을 뿐.
2004년 정치를 떠난 이후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나?
전혀 안 했다. 그만 하자. 내가 중죄인도 아니고. 만약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다면, 또는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무슨 역할을 했다면, 그래서 그런 내용들이 확인되면 내가 거짓말 한 게 되니까 정식으로 인터뷰하겠다. 난 죽은듯이 살고 있다.
28일 보도가 나간 뒤 청와대는 “감찰보고서는 청와대에 파견된 경찰 출신 행정관이 사설 정보지(찌라시) 내용들을 짜깁기 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습니다. “찌라시 수준의 터무니 없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청와대의 해명을 순순히 믿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해명이 사실이라도 어처구니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청와대의 해명대로라면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는 행정관이 증권가 찌라시 내용을 확인 과정도 없이 짜깁기해 보고서를 만들었고 그 내용이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됐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당장 야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진상조사단’을 꾸렸습니다. 정윤회씨는 물론이고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십상시’로 의심받는 인사들과 보고서 작성자 모두를 국회에 불러세우겠다는 각오입니다. 
1년 4개월 전 정씨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내가 중죄인도 아니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나쁜 사람이 돼 있다. 나도 피해자”라며 정식 인터뷰를 고사했습니다. 사진 촬영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곧 환갑인데 편하게 살고 싶다. 내가 오늘 한 얘기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되면 그때 정식 인터뷰를 하겠다.”
머지않아 정씨와 ‘정식 인터뷰’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박현철 김외현 기자 fkcool@hani.co.k

“국민 감시 없다면 세월호 진실 또 다시 침몰”

꺼지지 않는 세월호 촛불.. “진상규명 국민의 손으로”광화문 촛불 문화제.. “국민 감시 없다면 세월호 진실 또 다시 침몰”
강주희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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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29  23:53:06
수정 2014.11.30  0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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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29일 오후, 세월호 침몰 사고의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 문화제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기온이 뚝 떨어진 영하의 날씨에도 이날 광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 200여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날 문화제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위한 묵념을 시작으로 ‘세월호 특별법 특강’과 노래 공연, 마술쇼, 시민 발언 등이 이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세월호 특별법의 한계와 이후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박 변호사는 “‘더 이상 규명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청와대의 속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며 “세월호 참사는 반드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진상규명 해야한다”고 말했다.
  
▲ ©강주희
이어 “가까스로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에 의해 내년부터 진상조사가 당장 시작되지만 사실 매우 부족하고 미흡한 법이다. 국민이 감시하고 뒷받침하지 않으면 저들은 또 다시 진실을 묻으려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강연 말미에 국민의 손으로 ‘안전 사회’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는 “희생당한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 그들의 억울한 죽음에 가슴 아파서 여기 모였지만 우리가 숭고하게 꿈꾸는 꿈인 ‘보다 안전한 사회’, ‘이 나라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그 꿈을 위해 국민들이 두 눈 똑똑히 뜨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강연에 이어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가 발언대에 올랐다. 김씨는 “어제 단원고 엄마들의 카카오톡방에 ‘힘들다’, ‘못 일어나겠다’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국민들을 생각해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광화문에 나왔다”고 전했다. 김씨의 말에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 ©강주희
그는 “유가족 간담회를 통해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며 “간담회에 개인적인 목적이 있다면 바로 ‘희망’이다. 그 희망이 올 거라고 믿고, 유가족이 한 걸음 나가면 국민들도 함께 나아가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문화제가 중반에 접어들자 노래 공연과 마술쇼가 이어졌다. 대학생 최믿음씨는 기타와 함께 자신의 자작곡을 선보였다. 최씨는 “세월호 투쟁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든다”며 “박근혜 정부의 탄압이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 그럼에도 유가족과 국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 너무 감격스럽고 대단하다”며 나름의 소감을 밝혔다.
  
▲ ©강주희
이날 문화제에는 세월호 사고 생존자 김동수씨가 찾아왔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려는 정부와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김씨는 세월호 사고 당시 정부의 허술한 구조작전을 비난했다. “정부가 세월호 탑승객들을 빨리 구조했더라면, 무전 한번이라도 더 쳤더라면 그 많은 학생들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광경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 울먹였다.
특히 함께 탑승했던 단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낼 때는 눈물 때문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창문에 매달려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홀로 구조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 광경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에 몇 번이고 되새기고 있다. 유족들 앞에 머리 숙여 죄인으로 밖에 살 수 없는 마음을 정부가 어찌 이해하겠냐”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한편,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다음달 6일 진도 팽목항에서 ‘범국민대회’를 열고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팽목항에 모여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실종자들을 기다릴 예정이다.

말레이메일, 한국 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화 움직임 보도



말레이메일, 한국 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화 움직임 보도
-유관순을 이용 국정교과서로의 회기를 획책하는 교육부
-역사는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선전의 도구는 될 수 없다.

말레이메일이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역사의 장에 출몰하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부의 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회기하려는 움직임을 상세히 보도하며 그런 시도를 하려는 교육부가 내세우는 이유들을 심층 있게 분석했다.
기사는 애국지사 유관순까지 들먹이며 억지 이유를 만들어내며 정부가 역사교과서 집필에 직접 관여할 것을 주장하는 교육부 장관과 실무자들의 발언을 소개하며, 동아시아 3국의 국수주의적 경향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사실을 부산대학교 국제관계학 분야 로버트 켈리 교수와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교수인 라나 미터 씨의 언급을 인용하며 역사를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정부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말레이메일은 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를 역사적으로 복원시키려고 유관순을 이용하려 한다는 연세대 이준석 교수의 염려 섞인 언급을 인용하고 이 주장에 대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복잡한 절차와 개방된 과정에서 그러한 염려들이 사실로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만 교육의 일관성을 모색하려는 것이라는 교육부의 반박도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역사교과서의 사실적 오류를 눈감고 그 출간을 교육부에서 승인한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사례를 언급하며 1,747개 학교 중 오직 한 개의 학교만 이를 사용하게 된 경위를 마지막으로 역사교과서를 이용한 새로운 세대를 형성하려는 현 정부의 시도가 쉽게 성공하지 못했음을 언급했다.
우리는 지난 대선과 2년 반여의 박근혜 정권의 치세 하에 선거유세 시 내세우고 홍보했던 선거공약과 광고선전이 대부분 과장이고 거짓이었음을 보아왔다. 이제 자라는 우리 후세들의 사고와 태도를 형성시켜줄 역사교과서에까지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거짓과 왜곡을 담으려는 노력마저 정부는 서슴치 않는다. 역사교과서는 권력을 쥔 권력자들의 기호에 맞는, 그들의 권력을 보강하기 위한 선전물이어서는 안된다. 역사교과서는 진실에 입각한 객관성을 그 생명으로 해야만 한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말레이메일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FGkhfT

Yu Gwansun, Korea’s Joan of Arc, haunts pages of history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역사의 장에 출몰하다
November 24, 2014
Capture Malaymailonline 유관순Capture Reuters 유관순
SEOUL, Nov 24 — A 17-year-old Korean girl tortured to death for opposing Japanese colonial rulers nearly a century ago has become the latest touchstone of the nationalism that is shadowing Asia’s economic rise.
서울 11월 24일 – 거의 100년 전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항하다 고문 받아 사망한 17세 한국 소녀가 아시아의 경제 성장을 위협하는 국수주의에 대한 가장 최근의 시금석이 되었다.
Yu Gwansun became known as Korea’s Joan of Arc after she lost her parents and was imprisoned during a 1919 uprising against Japan’s 1910-1945 colonisation.
유관순은 1910년-1945년의 일본 식민지배에 저항해 일어난 1919년 봉기 중에 부모를 잃고 투옥되며 한국의 잔다르크로 알려지게 되었다.
South Korean Education Minister Hwang Woo Yea wants to know why she doesn’t appear in half of the nation’s newly approved high-school history textbooks. He’s considering putting the government in charge of writing history.
한국 교육부의 황우여 장관은 왜 한국에서 새롭게 승인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들 절반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지를 알고자 한다. 그는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집필을 직접 맡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Textbooks have become part of the front line in East Asia’s propaganda war as recent administration changes in China, Japan and Korea see leaders fomenting nationalism to bolster their hold on power. In South Korea’s schools, history books shape the attitude of the next generation not only toward neighboring countries but also of the legacy of former dictator Park Chung Hee, the current president’s father.
교과서는 최근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행정부의 변화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 위해 국수주의를 보강하는 지도자들을 배출함에 따라 동아시아에서의 홍보전에 최전선의 일부가 되어왔다. 한국 학교들에서 역사교과서는 이웃 나라들에 대해서뿐 아니라 현 대통령의 부친인 전 독재자 박정희의 유산에 대한 다음 세대들의 태도를 형성해준다.
“In Asia, textbooks are already nationalistic enough,” Robert Kelly, a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in South Korea, said by e-mail. “The last thing the region needs is officially sanctioned government histories that neighbors will inevitably call propaganda.”
“아시아에서 교과서는 이미 충분히 국수주의적이다”라고 한국의 부산대학교 정치 국제관계 교수인 로버트 켈리씨는 이메일에서 말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정부의 역사라는 것으로 이웃나라들의 눈에 홍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지역에 전혀 필요치 않다.”
Yu Gwansun became known as Korea’s Joan of Arc after she lost her parents and was imprisoned during a 1919 uprising against Japan’s 1910-1945 colonisation. — AFP pic
유관순은 1910년 – 1945년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항한 1919 봉기 중에 자신의 부모를 잃고 투옥된 후 한국의 잔다르크로 알려지게 되었다 – AFP 사진
Economic growth has been the catalyst for the increasing war of words in a region where U.S. military dominance is being challenged, said Rana Mitter, a professor of modern Chinese history at Oxford University in England.
경제 성장은 미국 군사력 패권(覇權)이 도전받고 있는 지역에서 점점 증가하는 설전(舌戰)의 촉매제가 되어왔다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 중국사 교수인 라나 미터가 말했다.
“You have the three biggest economic powers in the world all trying to carve out their own position,” Mitter said by phone. “The economic power of today is merely exacerbating and exaggerating frames which were formed more like 70 years ago.”“3개의 가장 큰 경제 세력이 자기들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미터 교수는 전화로 말했다.
“오늘날의 경제 세력은 70년 전에 형성됐던 체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과장하고 있을 뿐이다.”
Military Expansion
군사력 팽창
Much of the discord stems from Japan’s military expansion in the region in the 1930s and ’40s and accusations of human rights abuses, alongside territorial disputes that arose after its defeat in World War II.
불화의 많은 부분은 1930년대와 40년대 이 지역에서의 일본의 군사력 팽창과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패배 후 불거진 영토분쟁과 더불어 일본이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에서 발생한다.
In 2001 then-Prime Minister Junichiro Koizumi angered Japan’s neighbors when his government approved a textbook that omitted references to sex slaves from Korea and other Asian countries who were exploited by Japanese soldiers during and before the war.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는 전쟁발생 전과 전시 동안 일본병사들에게 착취를 당한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의 성 노예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교과서를 그의 정부가 승인하게 하므로 이웃 국가들의 분노를 샀다.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 Hye, who took power in February last year, says the issue of “comfort women” prevents a full two-way summit with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Park says Abe should do more to address the grief of victims. Japan says it already apologised in 1993.
지난해 2월에 권력을 잡은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문제가 일본 총리 아베 신조와의 온전한 쌍방 정상회담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박근혜는 희생자들의 비통함을 풀어주기 위해 아베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은 1993년에 이미 사과를 했다고 말한다.
‘Doesn’t Matter’
‘중요하지 않다’
“Japan is moving to have more of the government perspective in textbooks even as it allows private companies to publish them,” Kwon Sung Youn, a South Korean education ministry official handling textbooks, said by phone.
“일본은 사설출판사가 교과서를 출판하도록 허락하긴 해도 최대한 교과서에 더 많은 정부의 시각을 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교과서를 담당하는 교육부 관계자 권성윤 씨가 전화로 말했다.
“Whether it’s the government or private publishers that make textbooks doesn’t matter as much as what goes in the book.”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정부냐 사설출판사이냐는 교과서 속에 무엇이 들어가느냐하는 것 만큼 중요하지 않다.”
The two countries still have territorial tensions. South Korea’s military carried out a drill today around a chain of islands, known as Dokdo in Korean, the country’s defense ministry said. The islands are also claimed by Japan, which calls them Takeshima.
두 나라는 아직까지 영토분쟁으로 인한 긴장 상태에 있다. 한국의 군대가 한국어로 독도라 알려진 열도 주위에서 오늘 훈련을 실시했다고 국방부는 말했다. 그 섬들을 일본 역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며 일본은 이들을 다케시마라고 부른다.
In South Korea, the rewriting of history has been influenced by factions in the tumultuous domestic politics of the past century, including 35 years of rule by Japan, the three-year Korean War that cemented the division of the peninsula and a series of dictators in the South who oversaw rapid economic growth and fierce anti-communist campaigns.
한국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은 35년의 일본지배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킨 3년간의 한국동란 그리고 급격한 경제성장과 극심한 반공 켐페인을 지휘한 일련의 독재를 포함한 지난 세기의 떠들썩한 국내 정치 속에서 여러 파벌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Modern history is extremely contentious in South Korea and almost anything since 1910 is controversial,” Charles K. Armstrong, a professor of history at Columbia University, said by e-mail. Some South Korean conservatives think the left-of-center governments of Kim Dae Jung and Roh Moo Hyun from 1998 to 2008 tilted history textbooks to their side, he said.
“한국에서의 현대 역사는 극단적인 논의 대상이 되고 있고 1910년 이후의 그 어떤 것에도 거의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컬럼비아 대학의 챨스 케이 암스트롱 교수가 이 메일을 통해 언급했다. 일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의 김대중과 노무현의 좌파정부가 역사교과서들을 자가들의 편으로 편량되게 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Sowing Seeds’
‘씨 뿌리기’
Education Minister Hwang said after taking office in August it is “problematic” that Yu is missing in half of eight history textbooks adopted by high schools this year. He said having a single textbook would avert “sowing seeds of division in public opinion.”
황 교육부 장관은 8월에 집무를 시작한 후에 올해 고등학교에 의해 채택된 8개의 역사교과서의 절반에서 유관순이 사라진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단 하나의 교과서를 갖는 것은 “여론 분열의 씨를 뿌리는 것을 막을 것이다”고 말했다.
Some teachers and historians said Park’s government is using Yu as an excuse to run a textbook that glosses over a 1961 army coup by her father Park Chung Hee and his 18 years of dictatorship. Park Chung Hee banned private companies from publishing history textbooks and ran ones that portrayed his coup as a revolution rather than a mutiny. Publication rights were partly restored to private companies in 1982 under his successor with the government still giving guidelines.
일부 교사들과 사학자들은 박근혜 정권이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와 18년 간의 독재를 미화시키는 단 하나의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빌미로 유관순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사기업들이 역사교과서를 출판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자신의 쿠데타를 반란이라기보다는 혁명으로 묘사한 교과서들만을 사용하게했다. 1982년 그 차기 대통령 하에서 정부가 아직도 지침을 제시하는 가운데 출판권은 사기업들에게 부분적으로 되돌려졌다.
‘Open Process’
‘개방된 과정’
“President Park is trying to reinstate her father historically,” Lee Jun Sik, a professor at the Yonsei University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in Seoul, said by phone. “A government textbook would tout the achievements of conservative governments and boost views that conservatives need to extend their power as long as possible.”
“박 대통령은 그녀의 아버지를 역사적으로 복권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서울 연세대 한국학 연구소의 이준석 교수가 전화로 말했다. “국정교과서는 보수정부의 위업들을 과대 선전할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가능한 길게 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지원할 것이다.”
Kwon at the education ministry dismissed allegations that a government-led textbook would gloss over the dictatorship era. “Making a history textbook in the modern world is an open process that involves many historians in many phases. It’s impossible that those concerns will actually turn into a reality,” she said, adding her government seeks “consistency” in teaching history.
교육부의 권 씨는 정부가 교과서가 독재시대를 미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현대 세상에서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많은 단계에서 많은 사학자들이 참여하는 개방된 과정이다. 그러한 염려들이 정말로 사실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고 그녀는 말하며 정부는 역사 교육에 있어 “일관성”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Fundamental Policies
기본 정책
Finding a consistent history that is acceptable to all nations has never been easy. A European Union attempt to compile The History of Europe in 1992, written by historians from 12 nations, was abandoned after disagreements including a British- Spanish spat over whether Sir Francis Drake was a national hero or a pirate.
모든 국가가 수긍할 수 있는 일관된 역사를 찾는 것은 쉬웠던 적이 결코 없다. 1992년 12개 나라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유럽역사(The History of Europe)를 편찬하려던 유럽연합의 시도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국가적 영웅인가 아니면 해적인가를 둘러싼 영국과 스페인 간의 논쟁을 포함한 의견 차이들로 인해 철회됐다.
China requires all history textbooks “accord with fundamental policies of the government” while Japan and South Korea conduct a strict screening process, Gi-Wook Shin, director of the Shorenstein Asia-Pacific Research Center at Stanford University in California, wrote in a 2011 book.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신기욱 소장은 2011년 저서에서, 중국은 모든 역사 교과서가 “정부의 기본 정책과 일치”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과 한국은 엄중한 검열 과정을 거친다고 저술했다.
“It is no coincidence that textbooks have become a nexus for significant international tension in Northeast Asia.”
“동북아시아에서 교과서가 중대한 국가간 긴장관계의 연유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For Park’s administration, reverting to a government- sanctioned text would remove schools’ ability to choose which version of history they teach.
박근혜 정부에게 있어서 국정교과서로의 회귀는 어떤 버전의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학교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Factual Errors
사실적 오류
Park’s government last year approved a book by Kyohak Publishing that contained factual errors, including that South Korea’s per-capita income reached US$10,000 (RM33,445) in 1977 under her father, when it was actually US$1,000.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박 대통령의 아버지 치하였던 1977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사실상 1000달러였음에도 이를 만 달러로 표기한 것을 포함한 사실적 오류들이 포함된 교학사 교과서를 승인했다.
The book was also accused of implying that comfort women were prostitutes because they “followed” troops.
이 교과서는 위안부 여성들이 군대를 “따라다닌” 것으로 보아 그들이 매춘부였음을 암시한 데 대해서도 비난을 받았다.
Lee Myung Hee, a professor of history education at Kongju National University, said by phone that he and his co-authors did not intend that impression.
이명희 국립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와 다른 공동 저자들은 그러한 생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After Kyohak revised the book, 20 of 1,747 high schools adopted it and 19 of those reversed the decision following local protests.
교학사가 교과서를 개정한 후 1,747개 고등학교 중 20개 학교가 그것을 채택했고 그 중 19개 학교가 지역 주민들의 항의에 따라 결정을 번복했다.
“Textbook controversies have been going on since the democratization of the late 1980s, with the battle lines generally between the progressives and the conservatives,” Armstrong said. “It is partly a generational struggle and an attempt to shape the next generation of Koreans in their views.” — Bloomberg
암스트롱은 “교과서 논쟁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주로 진보와 보수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면서 지속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세대간 갈등이며 자신들의 관점으로 한국의 새로운 세대를 형성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 블룸버그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KAL858 사건, 전두환과 안기부에 의해 조작돼”

“KAL858 사건, 전두환과 안기부에 의해 조작돼”가족회.대책위, KAL858 27주기 추모제 거행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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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29  15: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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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L858기 사건 27주기 추모제가 29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렸다. 희생자들의 명단 앞에 헌화하고 있는 가족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KAL858기 가족회는 사고 발생 27주기를 맞이하여 이 사건의 전두환과 안기부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국민들에게 밝히면서 진상이 밝혀지도록 정부와 민간인이 참여하는 재조사 실시를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1987년 11월 29일, 중동 근로자와 승무원 등 115명의 승객을 태운 채 아부다비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858기가 사라진 지 27년째 되는 날,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여전히 진상규명 요구의 목소리를 높였다.
‘KAL85기 가족회’(이하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는 2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7층 체칠리아실에서 ‘KAL858기 사건 27주기 추모제’를 가졌다.
시민대책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대 신부는 인사말에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된 것 같다”며 “진상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노력, 그 고통을 그냥 사적인 부분으로 치부하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피해자 가족들을 빨갱이니 이런 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최근 세월호 사건의 추이에 우려를 표했다.
김정대 신부는 “KAL858기 사건도 역시 마찬가지”라며 “27년 동안의 큰 고통을 우리사회는 여전히 사적 영역으로 본다. 거기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라고 하면 역시 사상적으로 이상한 사람들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일하는 것이니까 힘들더라도 같이 당장의 어려움들 인내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 김호순 가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김호순 가족회 회장은 “저희들을 위해 일부러 추운 날씨에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27년이라는 세월을 저희 가족들은 잊지 않고 오직 진상규명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며 “저희들이 죽을 때까지 할 거다. 여러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신성국 신부는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압력으로 해외로 발령나 6년 반을 해외에서 “전전긍긍”했다면서도 “12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신성국 신부는 “2005년 경주시청 기자회견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KAL858기 사건은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이다’라고 했다. 전두환이는 아직도 10년이 지났지만 나를 명예훼손으로 걸지 않았다. 김현희에게도 ‘너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고 안기부가 만든 공작원이고 안기부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김현희도 저를 아직도 고소하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조작사건임을 다 인정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신성국 신부가 활동 경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신 신부는 “제가 12년동안 끊임없이 거짓말을 파헤쳐오다 보니까 이 사건이 100% 조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비록 지금 우리가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못하지만 가족분들이 불씨를 마음에 품고 계속 산다면 이 불씨가 진상규명을 위한 큰 불로 타오를 것”이라고 격려했다.
나아가 “오늘 27주년 동안 여러분들이 인내롭게 기다리면서 살아오신 것이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30주년 이년에 반드시 진상규명되기를 모두가 함께 마음으로 기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오광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는 성명서 낭독을 통해 “전두환 정권 말기에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사건 역시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개입 사실은 명약관화하다”며 “안기부에 의한 조작 사건임을 드러내는 명백한 근거는 무지개 공작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이라는 제목의 이른바 ‘무지개 공작’은 2006년 8월 1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발전위)가 ‘KAL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 중간 보고서’에서 존재 사실을 공개하고 <통일뉴스>가 행정정보 공개를 받아내 보도한 바 있는 KAL858기 사건을 87년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작 계획서다.
  
▲ ‘안중근 의사 청년합창단’이 추모가를 공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성명은 “무지개 공작 실행일은 사고 발생 3일후로서 실종기의 사고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시점”이라며 “전두환 안기부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KAL858기 사건을 조작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안기부와 사법부가 밝힌 김현희의 신원은 모두 거짓”이라며 “김현희는 자신의 북한 사람임을 간단히 입증할 수 있는 공민증 번호도 모르고, 노동당원의 신분이라고 하면서도 노동당원번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성명은 “김현희는 왜 가족회의 공개 면담과 토론회를 거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정부와 민간인이 참여하는 재조사 실시”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심재환 변호사가 ‘KAL858기 사건의 법률적 검토’를 주제로 발언했으며, 이 사건 초기부터 사건의 의혹을 파헤쳐온 『파괴공작』의 저자 노다 미네오 일본 저널리스트의 <통일뉴스>와의 서면인터뷰가 소개되기도 했다. 노다 미네오 씨는 2004년 6월부터 한국입국이 거부된 상태다.
  
▲ 가족들은 '마르지 않는 눈물'과 '지치지 않는 진상규명 노력'으로 27주기를 맞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윤원일 안중근 평화신학연구원 부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제에는 피해자 가족들을 비롯해 평화연대 윤영전 공동대표, 추모연대 김명운 의장 등이 참석했으며, ‘안중근 의사 청년합창단’이 <아베 마리아>와 <철망 앞에서>를 합창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딛고 이 자리에 왔다”는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해학살자전국유족회 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무려 130만 인명이 학살됐지만 지금도 진실규명은 턱 없이 부족하다”며 “유족님들 용기 잃지 마시고 진실의 길을 가달라. 더디고 험할 지라도 반드시 그 길은 열리게 돼 있다”고 연대의 인사를 전했다.
 

"세상 주변에 머문 진보... 세속화가 필요하다"


14.11.29 17:52l최종 업데이트 14.11.29 19: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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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 권우성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지 어느덧 14년이 지났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0석을 차지해 원내 진출 꿈을 이뤘다. 하지만 현재, 진보정당은 4개(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녹색당)로 분열되었다. 존재감도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가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란 책을 출간했다.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가 1년 반 동안 노 전 대표를 만나 인터뷰한 대담집이다. 부제는 '노회찬, 작심하고 말하다'이다. 노 전 대표의 노동운동 이야기를 비롯해 진보정치 위기 진단과 대안 등이 담겼다.

책 출간 뒷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4일, 서울도서관에서 노 전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노 전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진보정당 예상보다 빨리 원내 진출했지만..."

- 7월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선거 끝나고 동작구 주민에게 인사를 다녔어요. 석 달 동안 강연을 많이 했어요. 주제는 초청한 쪽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영국과 일본도 다녀왔어요. 영국에서는 교민들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옥스퍼드, 캠브리지, 런던대학교에서 강연했고, 일본에서도 대학 초청으로 홋카이도 대학에서 일본 시민 200명을 대상으로 강연했어요. 강연하고 글 쓰고, 방송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바쁘게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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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책 표지
ⓒ 비아북
- 최근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란 책을 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현안을 담고 있어서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 직접 집필할 수 있는데, 인터뷰로 엮었더군요.  
"작년 3월부터 책 출간을 논의했어요. 제가 삼성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직후였죠. 진보가 나아갈 길과 역할에 대해서 책을 내자고 출판사에서 제안했어요. 대화를 통한 역동적인 구어체를 사용하면 전달력이 좋을 것 같아 인터뷰 형식을 선택한 거죠."

- 인터뷰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년 반 동안 10차례 정도 인터뷰했어요. 한 번 하면 5~6시간씩 길게 이야기를 했어요. 인터뷰 할 당시엔 상당한 현안을 이야기했는데, 현 시점에선 다소 과도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현안 발생 당시의 정서나 감성이 (책에) 많이 남아 있어서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어요."

- 민주노동당은 2004년에 원내에 진출했잖아요. '예상보다 빠른 결과였다'고 책에서 회고했더군요.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어요. 10년 이상 걸렸고,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지 문제제기도 많았죠. 민주세력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노동운동이 아직 진보정당을 하기에는 성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았어요. 저는 진보정당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어요. 특히, 의회 진출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 봤어요. 하지만 창당되고 4년 만에 의석 10개를 얻어 원내에 진출했어요. 제가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진출한 셈이죠. 

어떤 분들은 진보정당이 만들어진 지 19년이 넘었는데, 의석수 5~10개에 머무르고 있으니 성장이 더딘 것 아니냐고 지적해요. 하지만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결코 더딘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너무 빨리 원내에 진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미숙하거나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역사적으로도 준비가 부족한 건 아니었어요. 역량에 비해 빨리 (원내에) 들어간 것도 아니죠."

- 지금 진보정당은 4개지만, 지리멸렬해 보입니다. 
"미미한 세력인데도 4개로 나눠져 있어 걱정이라는 의견이 많아요. 충분히 공감하고 이 상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4개로 갈라진 이유가 있거든요. 인위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기보다는, 왜 4개가 되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어요. 형식적으로 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가는 방향이 같다면, 서로 경쟁하고 다투면서 현실적인 차이를 좁힐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가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생각이 99% 같아도 1% 다르면 원수"로 지낸다고 진보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요. 
"진보는 이해관계로 뭉치는 집단이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지 따지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진보의 건강성을 위해 필요한 대목이죠. 다툼이 조직의 분열로 이어지는 게 문젭니다. 리더십의 문제이고,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장치와 훈련이 부족한 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보의 숙명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진보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강 교수의 표현은 조금 과장되고 극단적이죠. 원수란 표현은 동의 못 해요.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는데, 진보세력은 대개 노선을 많이 따져요. 노선과 가치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은 필요하지만, 진보는 소외된 세력을 대변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세속화 주장, 부정적 의미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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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
ⓒ 이영광


- 오늘날 진보정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종속변수가 된 것 같은데요. 
"한국의 선거제도에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정당 투표(비례대표)로 당선하는데, 유권자들은 집권 경험이 없는 진보정당을 우선으로 지지하지 않는 듯해요. 야권지지 전반에 (진보정당 지지가)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야권 지지가 높을 때에는 진보정당에 오는 표도 많죠. 하지만 야권 지지가 적을 때 진보정당에 오는 표도 적은 게 문제라고 봐요."

- 대안 중 하나로 '진보의 세속화'를 주장했는데요.  
"세속화는 대개 부정적으로 쓰이는데요. 제가 말하는 세속화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라는 뜻입니다. 진보가 세상 속이 아닌 주변에 있지 않았느냐는 성찰 속에서 '민생의 한복판에 뛰어들자' '국민의 상식 수준으로 달려가자'는 겁니다. '타락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진보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요. 노동자, 서민에게 지지를 못 받아요. 더 노동자, 서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고, 잘 대변하도록 노력해야죠."

- 강준만 교수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가 화제입니다. 물론 거기서 말하는 진보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지만 진보정당도 일부 포함될 텐데요. 
"맞아요. 진보정당에도 똑같은 지적을 할 수 있죠. 그 지적에 공감하고 개선도 필요해요. 필요하고 타당한 지적이지만, 그것만 고치면 될까라는 점에서 의문이 생겨요. 그 책의 부제가 '진보세력 최후의 집권전략'이라고 했는데 '싸가지'만 있다면 집권이 가능할까요? 그건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기들만 선이고, 나머지는 악인가.' 많은 국민은 진보정당을 이런 식으로 바라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진보정당은 기성체제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걸 기본 임무로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에만 머물면 안 되죠. 문제를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 어려운 사람 편에 서는 따뜻한 정당 이미지를 가져야 합니다."

"재원 마련해 무상보육 공약 지켜야"

- 무상급식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무상급식은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부터 주장했잖아요. 
"굉장히 잘못된 논쟁이에요. 무상급식은 많은 선거를 통해 국민 합의에 의해 추진된 겁니다.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2013년부터 전면 실시가 됐잖아요. 처음부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 약속한 겁니다. 지금에 와서 돈이 많이 든다고 논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계획을 새롭게 세워야죠. 그렇게 하려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하기 싫으니 잘 되는 무상급식 예산을 당겨 쓰려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무상보육 버스'로 잘 가고 있는 '무상급식 버스'에 고의 충돌시킨 겁니다. 과거 정권이 한 공약은 안 되고, 자기들 한 공약만 실현하겠다는 식으로 충돌시키는 건 대단히 잘못된 정치예요. 무상보육은 별도의 자원을 마련해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10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먼데, 매우 실망스러워요. 대통령이 한 일이 뭔지 기억이 안 나요. 박 대통령이 남은 기간 동안 제대로 일하길 바랍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으니,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 공약을 지키는 데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