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꽃이 되고 힘이 되는 세상으로
- 조광일 수필가·전 마산합포구청장 (webmaster@idomin.com)
- 2022년 01월 1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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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한 중학교 앞 정류장에 멈췄다. 한 무리 학생들이 우르르 버스에 오른다. 이내 차 안은 학생들의 거친 입담으로 왁자하다. '담탱이' '존나' '뽀린다' ' 빡돈다' '씨×' '쪽팔린다' '미친××' '좀생이' …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얼핏 듣기에도 상스럽고 불손하기 그지없는 비속어가 경쟁하듯 쏟아진다. 어른들이 옆에 있어도 거리낌이 없다.
꽃내음을 풀풀 풍겨야 할 아이들 입에서 이런 어원조차 불분명한 구리고 저속한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다니. 욕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그만큼 넓고도 깊게 파고들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었다. 말이 무력한 사회 현상이 만들어낸 굳은살 같다고나 할까. 학생들은 거센소리나 은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친구들 사이에서 은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으면 따돌려요' '재미있잖아요' '그냥 친근감이 느껴져서'라고 했다. 스스로 욕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 10명 중 9명이 일상적으로 욕설이나 비속어를 쓴다고 한다. 욕을 입에 달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으로 가면 그 양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은 섬뜩하기 이를 데 없다. 인터넷 팟캐스트 진행자, 익명의 네티즌에 이르기까지 포악한 언사로 상대의 영혼을 후벼 파는 사특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급기야 증오와 적대로 무장한 언어들이 버젓이 언론 지상에 등장했고, 해악만 가득한 언어 공해로 미디어가 얼룩지고 있다. 국민의 대표 기구라는 민의의 전당에서조차 시퍼렇게 날 선 말과 육두문자가 오가고 저잣거리에서나 들릴 법한 성적 비하 발언마저 난무하는데 일러 무엇하랴.
아이와의 관계는 아빠의 말투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의 뇌에는 모방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신경세포(거울 뉴런·Mirror neurons)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몸짓과 말투는 물론이고, 사고와 감정까지 닮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청소년들의 그릇된 언어습관은 어쩌면 뒤틀리고 삐걱거리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와 풍토에서 비롯된 조건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의 도를 넘는 막말과 사언(詐言) 행위, 그로 인해 세상에 대한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시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진대 청소년에게만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라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존재 방식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선현들이 치아위화(齒牙爲禍)를 경계했던 까닭이다. 습관처럼 욕을 쓰다 보면 충동성과 공격성이 높아지고, 저능한 소통과 저급한 말은 대인관계를 황폐화한다는 연구도 있다.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지 못하여 자제력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말이 승하는 사회로의 전락을 막기 위해선 정제되고 절제된 표현, 올바른 언어 사용에 어른들이 수범을 보여줘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는 물론, 정치에서의 막말 폭언 근절은 말할 나위 없다.
바야흐로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시즌이 돌아왔다. 자기표현 능력을 키우는 과학적인 대안과 올바른 언어문화 조성,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장 절실한 정책이 아닐까? '말이 정겹고 따뜻하고 힘이 되는 세상'을 누가 더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