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안철수가 옳고 문재인과 주류가 틀렸다


야당은 진검승부로 살았음을 역사는 말한다

임두만 | 2015-12-01 08:52:5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 공동지도부 구성’ 제안을 ‘문안박’ 중 1인인 안철수 전 대표가 거부했다. 거부의 명분은 간결하다. 그렇게 해서는 떠난 지지층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스스로 야권의 한 축이라고 생각하는 모두가 야권 수뇌부 자리 하나를 두고 겨뤄 이기는 자에게 죽이되든 밥이되든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혁신전대니 통합전대니 명칭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그렇다.
▲문재인-안철수의 협력과 경쟁…
그런데 이에 대한 문재인 대표 측의 반응은 영 떨떠름하다. 이 제안을 받은 다음 날인 30일 오전 최고위원 회의에서 문 대표는 “당 혁신의 출발은 혁신위의 혁신안을 실천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혁신해 인적 쇄신까지 가야 한다. 혁신위의 혁신안조차 거부하면서 혁신을 말하는 것은 혁신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란 말로 전당대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문 대표의 완곡한 표현보다 측근들의 격앙된 반응이 진짜 문 대표 측 기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안 전 대표의 제안이 나온 뒤 연합뉴스와 통화한 전해철 의원은“전대를 하면 줄서기가 불가피한 데 혁신 전대가 아닌 분열의 전대가 된다”고 비판했다.
연합은 또 김기식 의원은 “공천보장을 조건으로 뒷거래가 난무하는 구태 공천 전당대회가 되지 않겠냐”고 반문했으며, 한 3선 의원은 “2·8 전대와 문 대표의 재신임에 불복하는 것이자 당내 권력투쟁을 하자는 것”이라며 “전대에는 최소 한 달 반의 시간이 필요한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분열을 자초해 총선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성토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친노친문 핵심들만이 아니라 범주류로 분류되는 당 지도부급 중진들도 안 전 대표의 제안을 비판했다. 전당대회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전병헌 “당이 통합된다면 전대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지만 당이 처한 현실적인 조건을 보면 사생결단식 분열전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여 걱정스러운 일이 많다” 추미애 “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피 흘리는 정치는 관둬야 한다. 전대, 다 좋다. 그러나 전대는 지지 세력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통합방식이어야지 전대에서 내가 이기지 못하면 분열의 명분이 될 수밖에 없는 전대라면 마지막 남은 민주세력을 뿔뿔이 흩어지게 할 것이다”
이처럼 범주류라는 최고위원들의 반응도 마뜩찮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은 실상 현재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놓기 싫다는 말 외에 다른 뜻은 없다. 역사는 야당 내 극한 전쟁이 야당도 살리고 정치도 살렸다는 기록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근대정치 70년사에서 야당은 극한 당내 쟁투를 통해 존재가치도 부각시키고 여당과 전쟁할 수 있는 힘도 길렀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1. 40대 기수론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을 단행했다. 당시 야당을 이끌던 당수는 유진오 박사, 그러나 유 총재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와병상태가 되었다. 유진오 외에 대안은 유진산 정도… 하지만, 유진산으로는 박정희의 대항마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여야 모두 공히 인정했다.
이때 당 원내총무인 김영삼 의원이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곧이어 김대중 대변인과 이철승 의원 등의 출마선언이 뒤따랐다. 이에 당시 실질적 당권파인 유진산 부총재는 40대 기수론에 대해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아직 어리다)”라며 이들 3인을 “정치적 미성년자”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40대 대선후보 출마자들은 ‘만년 들러리 야당을 추구할 수는 없다’고 주장, 밀고 나갔다.
60년대 중후반 야당은 그야말로 힘든 상황이었다. 윤보선의 연이은 대선패배에 따른 분열, 민주당 구파는 윤보선파, 유진산파로 갈라져 있었고, 신파에 뿌리를 둔 박순천파 등은 김대중과 이철승을 핵으로 갈려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민중당 신한당 등으로 갈려 이전투구를 했다. 이때 이들 정당을 하나로 합한 당이 신민당이며 당 대표는 유진오 민주당 대선후보가 맡았다.
1967년 대선을 앞두고 1966년 민중당 대선후보로 영입된 유진오 전 고려대 총장은 야권후보 단일화에 따라 윤보선에게 후보를 양보했다. 그러나 윤보선은 패했다. 이제 야권에 대선후보감으로 유진오만한 사람이 없었다. 민중당과 신한당은 합당하면서 당명을 신민당으로 하고 자연스럽게 유진오 민중당 대표를 당수로 세웠다. 그리고 1969년 전당대회에서 유진오는 다시 총재가 되었으며 민주당 구파의 실세인 유진산이 총재보다 더 힘이 센 부총재가 되었다.
더구나 이 와중에 유진오 총재가 뇌졸증이란 와병 상태에 들어간다. 야당은 계속 혼미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더군다나 실권을 쥐고 있던 건 수석 부총재인 유진산이었다. 유진산 체제의 야당, 지금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더한 지리렬렬이었다.
40대 기수론은 이때 나왔다. 1969년 11월 8일, 42세이던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여기에 곧바로 김대중 이철승이 가세했다. 그래서 당시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는 말 그대로 ‘죽자사자’ 쟁투였다. 오랜 반목 상태이던 민주당 구파와 신파의 대리전에 청년보수 아이콘인 이철승이 가세, 좌우논쟁까지 가히 혈투였다. 구파의 유진산은 노골적으로 김영삼을 밀었고, 신파는 김대중-이철승으로 갈려 밀었다. 이 첨예한 대립은 1956년 창당 후 수차례 분열과 통합을 거듭, 신민당으로 하나 되었던 당을 또 쪼갤 것 같은 쟁투로 번졌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쟁투는 당을 살렸다. 무기력했던 신민당은 일약 인기정당이 되었다. 후보지명전은 김대중의 승리, 김영삼은 패배의 쓰라림에도 흔쾌히 승복,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지원유세를 위해 전국을 순회했다. 피나는 혈투의 당내경선과 아름다운 승복의 역사, 이 역사는 신민당 계열 정당의 좋은 승복사례가 되었다.
2. 김영삼-이철승의 대결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김대중의 도쿄납치 후 동교동 연금, 유진산 총재의 사망 등으로 야권의 지도부는 사실상 김영삼 1인체제가 되었으며 1974년 김영삼은 신민당 총재가 되어 박정희 유신정권과 대립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1975년 5월 박정희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이후 선명 노선이 약화되면서 당 내부에서 그에 대한 반대가 커졌다.
이철승은 이런 김영삼을 총재직에서 밀어내고 당권을 잡겠다면서 ‘중도통합론’을 내세웠다. 유신을 인정하고 극한투쟁보다 야당도 국익을 위해 정부에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는 기조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철승의 이런 방향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러나 이철승은 비록 김영삼이 박정희와 밀약 의혹으로 인기가 떨어졌다 해도 전당대회에서 이기기는 힘들었다. 이때 이철승의 도우미로 박정희의 지령을 받은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이 나섰다.
역사는 이 전당대회를 각목대회라고 한다. 차지철의 신호와 이후락의 조종을 받은 조직폭력배 김태촌은 휘하 조직들을 이끌고 관훈동 신민당 당사를 공격했다. 폭력배들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창문으로 뛰어내린 김영삼 총재는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다. 이후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들은 전당대회장에 난입, 각목을 휘둘러 김영삼 측 대의원을 전당대회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은 다음 이철승 의원을 대표로 선출했다.
이후 이철승이 이끈 신민당을 우리 역사는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란 별칭을 붙였다. 있으나마나한 야당… 이철승이 이끈 유신시대 야당 신민당은 유신헌법이 1구2인제 선거법으로 지역구 당선보장이란 당근을 줬으므로 무늬만 야당의 역사를 썼다.
이에 재야는 들끓었고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 문익환 등 재야 지도자들이 명동성당의 결혼식을 빙자, 전격적 시국선언을 하면서 저항하는 ‘명동성당 사태’까지 일어났던 시기다.
이 당권을 다시 김영삼이 탈환한 전당대회가 1979년 5월 30일 치러진 5.30 전당대회다. 이른 바 ‘아서원 전당대회’라고 불리기도 한 전당대회 역사다. 이철승의 임기 만료로 열린 5.30 전당대회… 분열이 아니라 분당 지경에 이를 정도로 극한 전쟁을 치렀다.
당시 총재 후보로 이철승 김영삼 외에 신도환 김재광 박영록 이기택 조윤형 등 모두 7명이 출마했다. 당권 탈환에 나선 김영삼씨는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29일 전격적으로 김재광 박영록 조윤형 등 세 후보의 지지선언을 끌어냈다. 이들은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고 전격사퇴한다. 동교동 자택에 연금 중이던 김대중씨가 이들에게 후보사퇴와 김영삼 지지를 호소한 결과였다.
이뿐 아니다. 이들에게 사자를 보내 사퇴를 끌어 낸 김대중은 그날 밤 감시 중이던 중정 요원과 마포서 형사들의 눈을 피해 대의원들의 숙소인 중국음식점 아서원을 전격방문 김영삼 지지를 호소하여 지지를 끌어내 김영삼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이 죽기 살기의 전당대회 역사는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무늬만 야당을 퇴치한 전당대회… 이후로도 우리 역사는 늘 패권적 권력에 기생하려는 야당이 있었으며 이 야당을 분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죽기살기식’ 전당대회를 통해 살려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으면 분당을 감행했다. 이때의 분당은 역사의 순기능으로 작용했지 역기능으로 작용한 적은 없다.
3. 80년대 이후
1985년 신한민주당 창당을 두고 당시 제1야당이던 민한당 당권파들은 야당분열이라고 비판했으며 통합을 말했다. 하지만 신민당은 돌풍을 일으켰고 민한당은 죽었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당시 신한민주당 당권파들은 분당을 분열이라고 공격하며 창당을 방해하려고 깡패들을 동원했다. 통일민주당은 6.29를 끌어냈으나 신한민주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전멸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당시 통합민주당 당권파들은 분당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통합 노래를 부르면서 김대중을 분열주의자로 몰았다. 야당 분열은 민자당 정권의 영속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단일야당으로 통합만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새정치국민회의는 역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으며 민주당은 신한국당과 합당 한나라당이 되었다.
이 모든 역사는 진검승부다. 이 승부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당을 살리기도 했고, 그게 되지 않아서 분당이 되었을 때라도 그 분열과 분당은 역사의 순기능으로 작용했지 역기능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이로 보건대 지금 새정치연합의 당권파들이 하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유신시대 1구 2인제 선거법 하에서 당 공천만 받으면 지역구 당선은 거의 보장받던 시기 국민과 역사는 안중에도 없고 국회의원 배지만 욕심내던 것과 지금 전혀 다르지 않다. 야권연대를 통한 1:1 대결이면 최소한 호남유권자가 많은 지역구에서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니 그저 야당이 하나여야 한다는 자기이익을 위한 정치공학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 이대로 야당을 두자는 말은 역사에 죄를 지어도 좋으니까 그냥 국회의원 당선만 시켜주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다. 분열은 죄가 아니며 죽기 살기의 당권투쟁은 야당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전당대회 흥행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언론의 조명이 쏟아지면 야당은 올라가고 잠재적 후보들은 대권 후보가 된다. 노무현이 대권을 잡은 역사도 그 페이지 속에 있다.
그래서다. 죽기 살기 전쟁을 하라. 그게 야당이 사는 길이다. 그래도 안 되면 깨는 것이 정답이다. 다시 말하지만 장인(匠人)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라도 명작이 될 것 같지 않으면 깨거나 찢고 다시 그리거나 만든다. 지금 야당은 그 외에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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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한상균 신변보호 거듭 요청 “2천만 노동자 운명 보호해달라”

민주노총, 한상균 신변보호 거듭 요청 “2천만 노동자 운명 보호해달라”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한상균 위원장 퇴거 요구하며 강제로 내보려다 옷이 찢겨지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후 민주노총 간부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날 신변 위협을 느낀 데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신변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한상균 위원장 퇴거 요구하며 강제로 내보려다 옷이 찢겨지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후 민주노총 간부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날 신변 위협을 느낀 데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신변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30일 대한불교조계종과 조계사에 한상균 위원장의 신변 보호를 거듭 요청했다.
앞서, 조계사 신도회 일부 회원들이 이날 오후 한 위원장에게 30일 자정까지 조계사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요구에 따라 한 위원장을 제외한 다른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조계사 경내에서 퇴거한 상태다. 이에 민주노총 관계자는 “일부 신도들의 퇴거 요구가 조계종의 공식 입장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한상균 위원장 퇴거 요구하며 강제로 내보려다 옷이 찢겨지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입구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신변확도를 위해 배치된 경찰 인력을 늘려 배치하고 있다.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한상균 위원장 퇴거 요구하며 강제로 내보려다 옷이 찢겨지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입구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신변확도를 위해 배치된 경찰 인력을 늘려 배치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김경자·이상진·김종인 부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날 오후 5시 40분께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조계사에서 벌어진 한 위원장에 대한 신변위협은 박근혜 정권이 조계사를 압박해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부처님의 뜻을 펴야 할 도량에서마저 정권의 탄압과 편견 등 인권을 무시한 일이 벌어진 것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금 조계사에는 개인 한상균이 아니라 ‘노동개악’ 위기에 처한 2천만 노동자의 운명이 피신해 있다”면서 조계사 등에 한 위원장의 신변보호를 거듭 요청했다.
이들은 또 경찰에 “부처님의 법당에 권력이 난입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며 “조계사 침탈을 강행한다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총파업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다음달 5일로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를 불허한 데 대해서는 “헌법을 부정하는 집회 원천금지 조치를 거두고 조계사의 중재 조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한상균 위원장 퇴거 요구하며 강제로 내보려다 옷이 찢겨지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후 민주노총 간부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날 신변 위협을 느낀 데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신변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한상균 위원장 퇴거 요구하며 강제로 내보려다 옷이 찢겨지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후 민주노총 간부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날 신변 위협을 느낀 데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신변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警, 집회 불허에 ‘백골단’까지…“1970년대 두 번 사나”


한상희 교수 “공안정국으로 내년 총선서 유리한 국면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경 찰이 오는 5일로 예정된 ‘2차 총궐기’ 집회를 불허, 집회 자체를 원천봉쇄하는가하면 주최 측의 강행 입장에 경찰관 기동대로 이뤄진 ‘검거전담부대’까지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혀 독재시대의 상징 ‘백골단’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거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폭력시위 대응방침’을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전담부대’는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 주변 인도에 대기하다 시위가 과격 양상을 띠면 격렬 시위대와 일반 시위대를 분리하고 복면 착용자를 우선 검거한다.
특히 복면착용․폭력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기 위해 차벽과 물대포는 물론 차벽 좌우에 무장 경관들을 ‘양날개 대형’으로 투입해 ‘토끼몰이식’ 체포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복면을 쓴 시위자나 경찰관 폭행 등의 행동을 할 경우 유색 물감을 뿌린 뒤 체포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주최측의 ‘평화 집회 원칙’에도 불구하고 강경 대응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공권력의 우위를 보여주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광화문 대규모 집회 당시 경찰의 폭력․ 과잉진압에 반발, 경찰인권위원 직을 사퇴한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노컷뉴스>에 “평화적인 집회 노력에도 경찰은 대화를 모두 단절하고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이는 공안정국을 만들어내 내년 총선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의 ‘백골단’ 카드에 온라인상에서는 1970년대 유신시대로 회귀했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정중규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은 트위터를 통해 “백골단이면 부마항쟁 때 생각이.. 결국 시대가 1979년으로 되돌아가는가”라고 개탄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페이스북에 “집회는 모조리 금지. 백골단은 부활... 요즘 헌법을 검색해 보는 일이 잦아졌다”면서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를 두 번 살고 있다”고 통탄했다.
   
 
백골단(사복경찰 체포조 최근 경찰관기동대)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독재시대의 상징으로 시위대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집단이었다. 당시 사복체포조가 시위진압에 투입되면서 학생들의 시위도 더욱 과격화 되었다는 견해도 많다.
1991년 명지대 재학생 강경대 군이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백골단 해체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졌고,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해체됐다.
당시 연세대에 머물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검거를 위해 ‘백골단’ 3개 부대가 투입, 양측간 격한 물리적 충돌 끝에 1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했다.
그런가하면 촛불인권연대 한웅 변호사는 “집권자 말 한마디에 반민주적이고 위헌․ 위법인 행태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타도되고 척결되어야 할 것은 독재권력과 ‘종독(독재추종)’ 세력이다”고 일갈했다.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도 “유신독재시대로 완벽하게 회귀하려는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헌법적 권리, 집회의 자유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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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반도 재침략, 빈말이 아니다


<칼럼>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유영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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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30  08: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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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정권이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다.
작년 7월 위헌적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 선언에 이어, 올해 4월에는 자위대가 미군과 사실상 연합사령부를 구성하여 지리적,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공동작전을 수행하는 내용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재개정했다. 급기야 올해 9월에는 의회 안팎의 강력한 반대여론을 짓밟고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실행하기 위한 법적 장치인 11개의 안보법제 제․개정을 강행했다. 이에 따라 일본 자위대는 평시에서 전시에 이르는 모든 경우에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군사적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대국화를 위한 각종 조치들도 이어지고 있다. 방위성설치법을 개정하여 방위상이 통합막료장(합참의장격), 육해공 막료장(참모총장)에게 지시 등을 할 때 방위성 관방장·국장(문관)들이 방위상을 보좌토록 한 ‘문관우위 규정’을 없앴고, 방위성 운용기획국(양복조)을 폐지하여 간부 자위관(제복조)으로 이루어진 통합막료감부(합참 해당)로 일원화함으로써 문민통제를 크게 후퇴시켰으며, 방위장비청을 신설하여 본격적인 무기도입과 수출의 길을 열었다.
2012년 3조1천억 엔이던 국방예산의 2016년 요구액은 4조8천억 엔에 이른다. 2017년까지 경항모 1기를 추가 도입하고, 2018년까지 대표적 공격전력인 해병대 창설과 상륙무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고, 미국, 호주 등과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일 ‘동맹조정 매커니즘’을 상설화하여 사실상 연합사령부를 꾸리고, 미일 ‘공동계획 책정 매커니즘’을 발족하여 공동작전계획을 수립한다.
이 같은 일본의 움직임은 우리의 이웃나라가 힘을 키워 전 세계에 군사력을 투사하려고 한다는 일반적인 우려를 넘어서는 문제다. 지속적으로 우리나라를 침탈한 역사적 경험이 있고 식민지배를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의 군국주의화의 방향이 주로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엄중함이 있는 것이다.
일본 군사대국화의 표적은 바로 한반도
이번에 제․개정된 일본의 안보법제를 보면 그 위험성이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자위대는 평시에도 해외 일본인 구출을 명분으로 한국에 진입할 수 있다. 청일전쟁 때 일본이 조선에 들어온 명분이 일본 공관과 거류민 보호였던 사실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북한 등이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의 경계 감시 등에 나서는 미군과 한국군의 ‘평시 무기방어’를 위해서도 한반도 영역에 들어올 수 있고, 타국군 무기방어를 위해 미사일 요격과 대함 미사일 발사 등의 교전을 벌일 수 있다. 이는 국회 승인이 불필요하고 현장 자위관이 무기 사용 여부를 판단하게 되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더욱 위험하다.
“그대로 방치하면 일본에 대한 직접 무력공격에 이를 우려가 있는 사태 등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인 중요영향사태 시에는 미군뿐만 아니라 타국군에 대해서도, 상대국의 동의가 있으면 타국 영역에서도 후방지원이 가능하다. 이 사태가 주로 한반도 유사시를 겨냥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영향사태법은 ‘비전투지역’이라는 제약을 없애버려 전투지역이라도 전투가 잠시 멈추면 타국군을 지원할 수 있다. 자위대는 미군에 대한 탄약 제공이나 발진 준비 중인 항공기에 대한 급유도 가능하다. 여기서 ‘탄약’은 ‘화약류를 사용한 소모품’으로 설명되고 있어 미사일, 핵무기, 열화우라늄탄, 클러스터 폭탄도 포함될 수 있다. 공격과 병참은 하나로 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자위대는 적국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 공해상에서 후방지원을 하고 있는 자위대 함선이 미사일 등으로 공격당하게 되면 이는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사태로 되어 일본은 전쟁에 말려들게 된다.
존립위기사태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하고, 이것에 의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을 받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전복되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로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대상이다. 그러나 집단자위권은 타국에 가해진 무력공격을 저지하는 무력행사로, 평화헌법이 허용하는 자위조치를 넘어서기 때문에 역대 일본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 어디인가에 대해 기시다 일본 외상은 북한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힘으로써,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의 거의 유일한 대상이 북한임을 드러냈다. 안보법 통과로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무력행사의 신 3요건’(△밀접국에 무력공격이 발생하여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 등에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필요 최소한의 실력행사)을 충족한다고 정부가 판단하면 해외에서 자위대의 무력행사가 가능하다.
집단자위권 행사는 국회 승인이 필요하나 사전 국회 승인을 얻을 겨를이 없는 긴급 시에는 사후승인이 가능하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반도 유사시 방호 대상을 미국 군함과 전투기로까지 확대하겠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위대가 남북한 영해, 영공의 모든 지역에 들어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집단자위권은 주로 북한과 미국이 충돌하는 한반도 유사를 상정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대규모 해외 파병을 부정하던 이전의 입장을 바꿔 ‘무력행사 신 3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집단자위권 발동 전이라도 ‘집단안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집단안보’란 유엔 등이 주도해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치는 특정 국가를 여러 나라가 공격하는 무력행사를 말한다. 자위대가 집단안보에 참여해 대규모 해외파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결성된 유엔 다국적군이나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일원이 되어 남, 북한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베 정권
더욱이 아베 정권은 안보법제에 대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대북 선제공격 의도를 드러냈다.
<중의원 회의록(2015. 5. 28)>
시이 의원 : “미국이 국제법상 위법적인 선제공격을 하는 경우에도 ‘무력행사 신 3요건’만 충족시킨다면 집단자위권을 발동하는가?”
나카타니 방위상 : “‘신 3요건’을 충족시킨다고 한다면 그렇다.”

<참의원 회의록(2015. 7. 28)>
오쓰카 민주당 의원 : “밀접한 관련국이 선제공격을 해 보복으로 무력공격을 받은 경우에도 일본이 밀접한 관련국을 (후방)지원하는 무력행사를 할 것인가?”
나카타니 방위상 : “‘신 3요건’을 충족시키면 그렇다.”
오쓰카 의원 : “일본에 대한 공격 의지가 없는 국가에 대해서 ‘신 3요건’이 충족되면 일본이 공격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가?”
아베 총리 : “배제할 수 없다.”
오쓰카 의원 : “일본에 대해 직접 무력공격을 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 방위 출동, 무력행사를 하는 것이 법리상 가능한가?”
나카타니 방위상 : “가능하다.”

이에 앞서 나카타니 방위상은 일정한 조건에서 집단자위권으로 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후지TV, 2015. 5. 17)고 언급한 데 이어,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 다른 나라 영토 안에서 (적) 기지도 공격할 수 있다”(NHK, 2015. 5. 24)고 주장했다.
이처럼 안보법제는 평시, 중요영향사태시, 존립위기사태시, 집단안보 참여시 등 모든 경우에 일본 자위대의 남한 영역 진입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길을 활짝 열고 있다. 일본 안보법제는 핵심적으로 한반도 재침략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해 “집단자위권은 유엔헌장에 나와 있는 보통국가의 권리”(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2013. 10. 26)라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더니, 급기야 황교안 총리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부득이한 경우 우리나라가 동의한다면 입국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자위대의 한반도 재침략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동의하면 괜찮다고?
한일 강제병탄 때도 양국 간 합의의 외양을 취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본의 역대 어느 정부도 강제병탄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일 강제병탄조약 전문에는 “양국 간에 특수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고려, 상호의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제국을 일본국에 병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지배집단의 이해관계, 또는 강압에 따른 일방적인 조치로 우리 선조들이 비참하게 도륙과 수탈을 당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는데 야당이나 지식인, 언론은 물론이고 진보진영에서도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정작 현재와 미래의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에 대해서는 큰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한다. 자위대가 남한을 공격할 때에만 재침략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는 말일까.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동의가 없으면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되뇌인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동의하면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황교안 총리가 바로 이 말을 한 것이다. 정호섭 해군 참모총장은 “키리졸브 훈련에 일본도 참여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군을 격멸하고 북한 정권을 제거하는 연습에 일본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재침략이 아니고 무엇인가.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안이한 인식은 필연적으로 안이한 대응을 부른다. "못난 조상이 또 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장준하 선생의 경구가 새삼스런 오늘이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쟁점과 전략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쟁점과 전략

201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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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5일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은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하는 데 마침내 성공하였다. 2008년 1월 오바마 정부가 협상에 참여한 지 7년, 2013년 5월 일본 아베 정부가 협상의 공식 참여를 선언한 지 2년여 만의 성과이다. TPP는 과연 무엇이고, 특히 한국에게 어떤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가? TPP는 무역 자유화를 넘어선 새로운 무역 규칙과 세계경제질서의 수립을 위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 동시에, 경제 영역과 안보 영역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아시아 지역아키텍처를 설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동시에 TPP는 대외정책과 국내정책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몸통을 이루고 있는 쟁점이다. TPP는 이처럼 다차원적이고 다면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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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무역 규칙의 수립을 둘러싼 경쟁과 협력, 그 효과

  TPP는 30개의 챕터로 구성될 만큼 광범위하고 수준 높은 21세기 무역협정(21st century high quality FTA)이다. 상품분야, 원산지규정, 의약품 특허 보호, 무역구제조치, 위생검역(SPS), 기술장벽(TBT), 서비스,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등 자유무역협정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 분야가 WTO 규범과 규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협상 참여국들이 공언한 대로 21세기형 FTA라고 할 만하다.
  TPP의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협상 타결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협상의 핵심은 역시 예상대로 미국이었다. 정부 조달, 바이오 신약의 지적재산권, 유제품의 관세와 쿼터, 원산지규정 등 협상 최종 단계에서 문제가 되었던 핵심 쟁점에서 미국은 유일하게 직접적 당사자였다. 바이오 신약에 대한 지적재산권 협상도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려 막바지까지 합의를 어렵게 했던 쟁점이었다. 당초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보고 바이오 신약에 대해 12년의 배타적 보호를 주장한 미국과 의료보험 재정의 부담과 환자의 권리를 이유로 보호 기간을 5년으로 한정할 것을 고수한 호주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정부조달의 경우,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참여국 가운데 8개국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정부조달절차를 보장하는 ‘WTO 정부조달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되었다. 특히 TPP의 양대 축인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 의약품 특허 보호, 지적재산권, 농업분야에서는 유제품 시장개방 정도, 일본의 5대 농산물 시장개방(쌀, 밀/보리, 축산물, 낙농품, 설탕)등 장애가 산적했다. ‘성역’으로 간주되어 이전의 FTA 협상에서 자유화의 예외가 되었던 일본의 농산물 개방 폭은 특히 어려운 쟁점이었다.
  협상 당사국들은 이러한 난제들이 극복되었다는 점에서 TPP가 21세기 FTA의 기준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들이 협상 당사국들 사이에서 적정 수준으로 타협되었다는 점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지적재산권의 경우, 미국과 호주 양국은 결국 입장을 절충하여 최소 5년의 보호 기간을 설정하고 이후 경쟁 제품이 심사를 받는 기간 중 추가 수년 동안 보호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TPP가 기존 양자 FTA를 다자화하는 거대 FTA인 만큼 역내 무역을 원활히 하는 원산지규정의 도입이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최종적으로 부품의 55% 이상이 역내에서 조달될 경우 관세철폐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누적 원산지규정이 도입되었다. 누적 원산규정의 도입은 누들볼 효과를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동남아시아와 멕시코에 생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데 이 규정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5%라는 수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62.5%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픽업 트럭에 대한 보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부수적 성과도 거두었다.
  협상의 절충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이루어졌다.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던 미일 간 협상에 2015년부터 협상 타결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2015년 4월 도쿄에서 개최된 미・일 각료회의에서 쌀과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 양국의 견해 차이가 좁혀졌다. 일본 측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현행 38.5%의 관세를 향후 10년 간 10% 전후로 인하하기로 결정하면서 협상 타결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후 애틀랜타에서 최종 타결된 협상에서 일본은 소고기의 현행 38.5%의 관세를 TPP 발효 즉시 27.5%로 감축하고 이후 1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9%까지 감축하기로 하였다. 가장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쌀의 경우 일본이 미국산 쌀에 대한 무관세 수입량을 13년 동안 현재 5만 톤에서 7만 톤으로 증량하여 쌀에 대한 관세감축 대신 저율할당관세를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미국은 일본의 승용차와 트럭에 부과되는 관세 현행 관세 2.5%, 25%를 향후 30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하고, 일본산 소고기에 대한 저율할당관세(Tariff Rate Quotas: TRQ)를 기존 3천 톤에서 6천 톤으로 15년에 걸쳐 증량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협상 참여국들은 광범위하고 높은 수준의 21세기 FTA라는 본래의 취지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연성을 발휘하여 협상을 타결하였다. 12개국 통상장관들이 각료회의 마감 시한을 거듭 연장하며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 자체가 협상 타결에 대한 의지가 지대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TPP에 내포된 전략적 요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TPP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미국의 판단은 담당 부처인 통상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의 평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USTR은 TPP에 다섯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첫째, 포괄적 시장접근(comprehensive market access)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둘째, 생산과 공급 체인의 발전을 촉진하는 지역적 접근(regional approach to commitments)을 통해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셋째, 디지털경제의 발전과 세계화 된 경제에서 국영기업의 역할 등 새로운 쟁점들을 다수 포함 (addressing new trade challenges)시킴으로써 혁신을 촉진하고,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다. 넷째, 다양한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국가들과 모든 규모의 기업들이 무역으로부터 혜택(inclusive trade)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역내 무역의 플랫폼(platform for regional trade)이자 향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다른 국가들도 포함하도록 설계되었다.
  TPP는 관세 자유화를 주목적으로 했던 과거의 FTA와 달리, 새로운 무역 규칙을 수립하고 회원국 간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한편, 새로운 지역 및 세계무역질서를 새롭게 형성하는 게임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으로 첫째, TPP는 새로운 무역 표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TPP에는 아직 WTO에서 확립되어 있지 않은 규칙과 규범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규정들은 환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른 거대 FTA는 물론 향후 전개될 WTO의 다자 무역자유화협상에서도 새로운 표준 또는 중요한 준거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 일본이 공개적으로 중국 배제를 공식적으로 언명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국영기업, 환경 및 노동 기준, 지적재산권 등 TPP의 높은 기준을 중국이 현 시점에서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과 일본 양국은 중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새로운 무역 규칙을 제정함으로써 21세기 무역질서, 더 나아가 세계경제질서의 틀을 자국에 유리하게 짜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베 총리가 중국의 TPP 참가가 상당한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단기적으로 RCEP의 협상 속도를 높임으로써 TPP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은 타결될 경우 TPP보다 큰 자유무역지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주요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둘째, TPP가 동아시아 주요국의 FTA 경쟁의 성격을 바꾸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TPP 협상 타결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FTA 게임을 양자 FTA 중심에서 거대 FTA로 바꿔놓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공산이 크다. TPP는 국제통상환경에서 거대 FTA의 흐름을 본격화함으로써 게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본의 시각에서 볼 때, TPP는 그동안 한국 등 주요 경쟁국에 뒤처졌던 FTA 경쟁 구도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다목적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FTA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협상 타결 직후 발표한 국내 보도에서 TPP가 한미 FTA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명시해서 밝힌 점이 이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TPP의 즉시 관세 철폐율이 품목수 기준 87.4%, 수출액 기준 81.3%로, 한미 FTA의 83.0%, 77.5%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TPP 타결 직후 한국 정부가 한미 FTA가 대미 수출 자동차 부품 관세가 즉시 철폐된 데 비해, TPP에서는 25년에 걸쳐 철폐될 것임을 강조한 것도 한일 양국의 경쟁적 측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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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등 12개국 대표단이 10월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TPP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TPP 다시 보기- 경제·안보 연계의 관점

  TPP는 미국이 협상에 참여한 이후 그 성격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논쟁의 핵심은 TPP를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의 차원과 외교안보적 관점 가운데 어떤 입장에서 TPP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차원과 외교안보적 차원을 분리하여 접근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어 TPP에 접근하는 것은 현실 인식을 오도하고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TPP의 경제적 효과에만 주목하고 그에 내포되어 있는 외교안보적 의미를 간과하는 것은 향후 지역 및 세계 질서 변화의 성격과 방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된다. TPP에 외교안보적 고려를 과도하게 투사하는 것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중국 포위의 수단으로 TPP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일면의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과도한 해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지 여부보다는 양자가 연계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TPP가 경제와 안보를 한데 아우르는 세계 및 지역아키텍처의 재설계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TPP로부터 촉발된 지역아키텍처의 재설계 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완전히 열린 과정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국 포위론 같은 전적으로 폐쇄적인 과정도 아니다. 동아시아 주요국들은 지역 아키텍처를 형성하되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보다 효과적인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게임에 돌입한 것이다. TPP를 적극 주도했던 미국이나 RCEP에 적극적인 중국이 상대를 배제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적이 없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TPP를 고리로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TPP는 원래 2005년 P4로 불리는 소규모 국가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 사이에 체결된 환태평양전략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and Economic Partnership)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2008년 이후 호주, 캐나다, 일본, 멕시코, 페루, 미국, 베트남이 협상에 참여하면서 지금과 같은 12개국 간 협상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TPP 협상의 주요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P4에서 제시한 어젠다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TPP가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기획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TPP의 기원과 성격을 미국이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소규모 4개국이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다.
  그렇다면 협상 당사국들이 TPP에 뛰어든 경제적 동기는 무엇인가? 첫째, 미국과 일본 양국 정부 모두 경제적 활력이 가장 큰 아시아태평양지역과 자국 경제를 연계해야 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증하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 등이 필요하며 TPP는 이를 촉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 침체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경제 체질을 개선할 세 번째 화살 가운데 하나로 TPP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TPP로 인해 일본 정부가 실행해야 할 자유화 및 탈규제 조치가 동맥경화상태에 놓인 일본 경제를 구조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10년 10월 TPP 협상 참여 관심을 처음 드러냈던 민주당의 칸 나오토 정부가 TPP를 ‘제3의 개방’으로 일컬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둘째, TPP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경제적 동인은 ‘21세기형 생산과 무역과 20세기형 무역규칙’의 괴리를 메우는 시도와 관련이 있다. 일본이 협상 참여를 공식화한 무렵인 2013년 4월을 기준으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FTA의 숫자는 76개에 달하였다. 그럼에도  FTA에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여 다수의 FTA를 체결하였음에도, 정작 수혜자인 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기존 양자 FTA들이 낮은 수준의 FTA인 경우가 많고, 원산지규정 등에서 FTA 간 정합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누들볼’(noodle bowl) 효과를 개선함으로써 실질적인 경제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TPP는 이 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한편, 미국 등 주요국들이 TPP를 추진하는 데는 경제적 동기가 강력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략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무역 자유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인 P4가 주도하는 무역 협상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비록 P4가 시작하였지만, 21세기 세계무역질서와 동아시아 지역아키텍처에 미칠 잠재력을 충분히 인식하고 TPP 협상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일본의 참여를 독려했던 것은 TPP의 경제적 효과를 증대하려는 것뿐 아니라, TPP에 담긴 전략적 성격을 가시화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TPP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으로 대외정책의 중심을 이동하려는 재균형정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정책은 단순히 중국을 봉쇄하는 문제이거나 이를 위해 군사적 주둔을 강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미국 국력의 모든 요소를 강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재균형정책을 통해 오바마 정부는 과거 역외 이해관계자(offshore stakeholder)에 머물렀던 자국의 전략적 지위를 역외 리더(offshore leader)로 전환시킴으로써 아태 지역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전략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일본, 호주 등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EAS 등 역내 다자제도에 참여하는 한편, TPP 등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 아키텍처를 주도적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면에서 TPP가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연계되는 통로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 역시 TPP를 통해 경제적 이익과 전략적 목표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싱가포르와 동아시아 국가 간 최초의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하였음에도, 농업 등 정치적으로 강력한 산업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양자 FTA를 적극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FTA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거대 FTA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TPP뿐 아니라, RCEP과 일-EU FTA를 병행 추진하는 등 거대 FTA를 통해 경쟁국에 뒤떨어진 FTA 추격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TPP는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이 EU 및 중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가운데 TPP 교섭마저 불참할 경우, 향후 세계경제질서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베 정부는 또한 미국의 정책 변화에 보조를 같이 하는 차원에서 TPP를 추진하였다. TPP 참가를 통해 TPP의 경제적 효과를 가시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구상에 협조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편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이중 효과를 노린 것이다. TPP가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의 TPP 협상 참여는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외교안보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일본 민주당 정부 당시 긴장되었던 미일 관계의 복원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략적 강화의 주요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베 정부 역시 TPP를 통해 경제-안보 연계를 적극 추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TPP- 이제 국내정치의 영역으로

  TPP의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PP 타결 직후 발표된 백악관 성명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세계 경제의 규칙을 중국과 같은 국가가 쓰게 할 수 없으며, 미국이 써야 한다”고 갈파한 것이 TPP에 담긴 경제적, 전략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또한 10월 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TPP 타결에 대해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드디어 개막했다”라고 평가하며 “일본과 미국의 주도 하에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질서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함께 아시아・태평양에 자유와 번영의 바다를 만들 것”이라고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너무도 직설적인 반 중국적 발언은 TPP가 타결된 순간부터 국내정치의 영역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TPP 협상 타결 이후 오바마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의회 비준 통과라는 국내정치적 과제를 앞두고 있다. 우선, 오바마 정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할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등 민주당의 주요 후보들이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조에 대한 우려 때문에 TPP의 의회 통과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도 제약업계의 반대를 우려하여 비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중국 카드를 사용한 것은 TPP의 전략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의회 비준 과정에서 예상되는 반대를 완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선택은?
  
  TPP는 이제 한국에게도 미래가 아닌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한국은 TPP뿐 아니라, 이후 세계무역질서와 지역아키텍처의 변화 방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는 TPP 참여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참여 여부 자체보다는 참여의 시기와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TPP 참여와 비참여의 경제적 득실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TPP 참여의 경제적 득실은 관세 철폐 등 가시적인 것과 새로운 규칙의 수립 과정에 한국의 입장을 투영하는 것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관세 자유화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TPP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둘째, 한국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13번째 참여국이 되기 위해 단독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참여 의향을 밝힌 국가들과 하나의 그룹으로 참여 협상을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향후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전개될 거대 FTA 협상의 추이에 대한 체계적 전망과 그에 따른 전략적 접근이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TPP 타결 이후 관심이 자연스럽게 RCEP으로 모아지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TPP와 RCEP이 상충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양자의 상충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양자를 조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TPP와 RCEP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이 7개국에 달하기 때문에 양자가 반드시 상충될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이 국가들과 협력하여 양자를 서로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TPP의 타결이 미중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일각에서는 TPP가 중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대응 전략과 간접적으로 연계되어 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미국과 중국이 TPP 와 RCEP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지역아키텍처를 설계하려는 노력을 배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기는 어려우나, 2014년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rea Trade Area of the Asia-Pacific: FTAAP)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지역아키텍처의 다양한 경로가 제시되고 있다. 한국은 이 가운데 TPP와 RCEP가 조화될 수 있는 경로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외교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국내정치 차원에서 체계적인 과정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 대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발효에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으로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확보했다는 의미이다. 한국 정부가 TPP 협상 참여를 적극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TPP의 피해 분야에 대한 국내정치적 부담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TPP가 발효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어쩌면 한국 정부가 대외전략의 차원뿐 아니라 국내 보완대책의 차원에서도 보다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정책적 공간을 확보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대내외 전략의 수립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글은 동아시아재단이 한국의 대내외적인 정책현안을 장기적 시각에서 분석하기 위해 운영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에 실린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http://www.keaf.org/book/EAF_Policy_Debate_The_TPP_and_South_Korea:_Issues_and_Strategies_kr

이승주 중앙대 교수(정치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