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6일 월요일

'반기문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반기문, '대통령 노무현' 인정하지 않았다
2016.06.07 01:21:50
美 국무장관 대화 '보고 누락'…盧 "왜 혼자만 알고 있었나?"

방미 중인 이해찬 의원(전 국무총리)이 오는 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회동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다시 반 총장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 총장을 만날 예정인 이 의원이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의원은 지난 5일(미국 현지 시각) 동포 간담회에서 "외교관은 국내 정치와 캐릭터가 안 맞는다"며 "그 동안 외교관을 많이 봤지만, 정치적으로 대선 후보까지 간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이해찬, 반기문 겨냥 "외교관은 정치와 안 맞아")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인 이 이사장이 반 총장에 대해 이렇게까지 딱 잘라 말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친노 대선후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존재, 최근 반 총장이 박근혜 대통령 등 여권 핵심부와 소통이 잦은 상황 등이 이유로 꼽힐 수 있겠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부터 엘리트 외교 관료인 반 총장과 이른바 '친노' 그룹은 지향하는 가치 등의 면에서 대척점에 서 왔던 것 역시 이유의 하나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친미 장관 반기문'과 '자주 대통령 노무현' 대립?

반 총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외교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렸다. '친미적'이라는 말도 그래서 늘 그를 따라다녔다. 주요 경력도 주미 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미주국장(현재의 북미국장) 등이었다. (이 대목은 이어지는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미 국무부 외교 전문(電文)에 언급된 '반기문의 친미 성향'(☞관련 기사 : 美 "반기문, 천성적 미국 동조자")은 미국 외교관의 과장된 보고라고 치부하더라도, 대통령이 "미국에 사진이나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만큼 대미 외교에서의 '자주성'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반 총장이 실제로 마찰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2005년 봄의 '대통령 보고 누락' 사건이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 국무장관과 주고받은 중요한 얘기를 한국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이 일화는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 정의당 김종대 의원(노무현 정부 NSC 행정관) 등의 회고록에 공통으로 나온다. 

2005년 3월, 청와대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이전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도 말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있다"며 "향후 한반도에서 평화 체제가 구축되는 데 한국 정부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당황스러웠다. 6자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타결하는 게 우선이고, 평화 체제 문제는 핵 문제 해결의 경과를 보아 가면서 6자회담의 틀을 통해 풀어 간다는 것이 당시까지 알려진 미국의 기존 입장이었기 때문.

이에 노 대통령은 반기문 장관에게 "라이스가 말한 평화 체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반 장관은 "사실은 얼마 전에 미국에서 라이스를 만났는데 그때 한 말"이라고 털어놓았다. 황당해진 노 대통령은 "왜 지금까지 그것을 당신 혼자만 알고 있었느냐"고 반 장관을 질책했다는 이야기다. 반 총장이 당시 장관으로서 보인 이같은 행동은 마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기에 논란이 됐다. 

이 사건 한 번이 아니었다. 북한·한반도 문제에 대해 반 장관과 외교통상부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NSC(국가안전보장회의)·통일부와 지속적 갈등 양상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안의 야당'이었던 셈이다. 2005년 2월 라이스 국무장관의 말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 역시 평화 체제 수립은 북핵 문제 해결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반 총장의 정치적 소견, 또는 외교부 내 미국 전문가 집단의 '집단 사고(Group Thinking)'가 작용했을 여지가 크다. 

실제로 반 총장은 계속해서 북미 평화 협정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보이다가, 노무현 정부 당시 '황태자'로 불리는 등 대선 주자급 실세였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런 냉전적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있느냐"는 호통을 듣는 수모까지 겪었다. 

靑·NSC에 보고 않고 美와 각서 교환한 위성락을 주미공사 영전시킨 반기문


노무현 정부 말기 외교 안보 이슈였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외교부가 청와대와 NSC를 따돌리고 미국과 합을 맞춘 사례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때 6자 회담 수석대표와 주러시아 대사를 지내게 되는 위성락 당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외교 각서 초안을 미국 측에 보낸다.

하지만 외교통상부가 이런 각서를 미국에 보낸 사실은 외교 안보 '컨트롤 타워'였던 NSC도 몰랐고, 청와대도 몰랐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 이종석 NSC 사무차장 등은 모두 바보가 됐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가서 "최근 일부에서 주한 미군의 역할 확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문제"라며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할 당시까지도 외교부가 미국과 각서를 교환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사실은 2006년 2월 2일,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NSC가 작성한 비공개 문서를 입수해 공개하면서 최초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2월 3일에는 <프레시안>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작성한 다른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관련 기사 : '전략적 유연성' 외교 각서…대통령은 몰랐다) 'NSC 문건'과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은 작성자는 달랐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은 2005년 4월 8일 작성된 이 문건에서 "양국 간 외교 각서 문안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환"되었다고 지적하며 "(NSC의) 문안 교환 사실 인지 시점이 2004년 3월이라 하더라도 이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사후 보고되지 않았다"고 외교부를 넘어 NSC까지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과 각서를 교환한 당사자인 위성락 국장은 오히려 이듬해에 주미 대사관 정무 담당 공사로 영전했다. 상부 보고 없이 각서를 교환했을 당시(2003년 10월)의 외교장관은 윤영관 장관이었으나, 2004년 8월 위성락 국장에게 주미 공사 발령을 낸 사람은 그해 1월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맡은 반기문 장관이었다. 

문재인의 靑 민정수석실 "외교부,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라며 '개입 최소화' 전제"


반 장관을 위시한 외교통상부 내 주류, 이른바 '워싱턴 스쿨'이라고도 불리는 미국 전문가 관료 그룹이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와 어떤 관계였는지는 2003년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보고서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외교-국방 "盧와 NSC는 '반미'…협상서 배제해야")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이석태 현 세월호 특조위 위원장(전 민변 회장)이었고, 민정수석은 바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였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용산 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 보고' 제하 보고서를 보면, 청와대는 "외교부 북미국(북미3과)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맹종적 자세와 현상 유지적 속성으로 당당하고 합리적인 협상 외교를 전개하지 못했다"며 "외교부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이 문제의 개입은 최소화시킨다'는 전제를 기초로 협상을 진행했다"고 적고 있다. 이 보고서는 작성 이듬해인 2004년 9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현 정의당 원내대표)이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반기문 총장은 문재인 수석이 '외교부가 대통령을 무시한다'는 내용의 이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의 외교장관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에는 문 수석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에 몸담고 있었다. 그러나 반 총장이 외교부 내 주류 그룹의 일원이었고, 지금도 그 일원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 총장 본인이 미주국장 출신이고, 특히 미주국장일 당시 용산 기지 이전 협정에 서명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현재 반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김숙 전 유엔 대사도 북미국장 출신이다. 

이런 과거사를 보면, 재야 민주화 운동가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해찬 이사장이 반 총장을 믿음직하다고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 등이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한 것 역시, 반 총장에 대한 인간적 신임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무현 정부와 반 총장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노무현 외교의 '마지막 구원투수') 이 이사장이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외교 이외의 영역에서는 인식이 그렇게 깊지 않다", "반 총장을 야권 후보로 생각하는 야당은 없다"는 등의 말을 한 것도 이와 겹쳐 들린다. 

귀제비 80여쌍 모여사는 `호리병 아파트'

귀제비 80여쌍 모여사는 `호리병 아파트'

윤순영 2016. 06. 05
조회수 14494 추천수 0

귀제비 집단 둥지 국내에서 보기 힘들어 최대 집단번식지일 수도
충주 동량초등학교에 '귀제비 아파트', 학교가 철거 포기해 늘어나 

크기변환_1.jpg» 귀제비. 가슴과 배의 줄무늬가 제비와 다르다.


1931년에 개교하여 85년의 역사를 지닌 충주시 동량 초등학교에는 '귀제비 아파트'가 있다

동량초등학교 이층 건물은 1980년대에 개축했다그 이후 귀제비가 한두 마리씩 날아들어 번식하더니2000년 대 초반에는 번식 개체가 너무 많아 애물단지로 여겨질 정도였다.

귀제비의 둥지를 철거했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귀제비는 찾아왔다. 귀제비가 그렇게 미웠을까. 3년 전 다시 귀제비 둥지를 헐어버렸지만 현재 80여개가 넘는 귀제비가 1층과 2층 슬라브 처마밑을 돌아가면서 앞뒤로 둥지를 틀어 귀제비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크기변환_DSC_6009.jpg» 충주시 동량초등학교 전경.

일반적으로 콘그리트 고층 건물엔 층 사이에 처마를 만들지 않지만 이곳 동량초등학교 건물엔 층간에 처마가 있어 귀제비가 둥지를 만드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유리창틀은 귀제비의 횃대로 사용된다

결국 이 학교는 귀제비의 둥지 철거를 포기하고 학생들과 동거하는 길을 택했다앞으로도 귀제비의 둥지를 철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동량초등학교 교사는 말했다.

크기변환_DSC_6030.jpg» 동량초등학교 건물을 사방으로 돌아가며 귀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크기변환_DSC_6032.jpg» 다양한 형태의 귀제비 둥지.

크기변환_DSC_3918.jpg» 창틀을 횃대로 이용하는 귀제비.
  
일반적으로 지방에서는 앵매기 혹은 맥매기로 불리는 귀제비는 제비처럼 대접을 받지 못한다. 둥지를 만들 틈도 없이 철거 신세를 면치 못한다어떤 이유에서인지 재수 없는 새로 여겨졌던 것이다

귀제비는 제비와 달리 사교성이 있어 집단 번식을 한다긴 꼬리와 날개깃이 제비보다 더 길어 세련된 모습이다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귀제비는 서해안 바닷가 어촌에서 특히 흔히 볼 수 있었다.

크기변환_DSC_3219~1.jpg» 제비는 사람들과 친숙하게 살아가는 동물로 사랑 받고 있다.

크기변환_DSC_4027.jpg» 귀제비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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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제비는 제비와 함께 1970~80년대 농약 남용과 새마을운동으로 개량된 가옥의 변화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근래 들어 제비와 귀제비의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논농사에서 농약 살포를 자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크기변환_DSC_6003.jpg» 귀제비를 촬영하는 동안 이곳 동량초등학생들이 카메라에 대해 큰 관심 보여주었다.

귀제비는 이동할 때나 번식 초기에는 암수 함께 또는 혼자서 생활하고번식 후에는 가족 군을 형성하게 된다둥지 재료인 흙을 얻을 때 말고는 땅 위에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다.

크기변환_DSC_3998.jpg» 둥지를 짓는 귀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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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DSC_4036.jpg» 귀제비 부부가 합동으로 둥지를 만들고 있다.

둥지는 건물의 지붕 밑에 진흙과 짚을 이용해서 목이 긴 호리병을 옆으로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만든다.이곳 동양초등학교엔 목이 긴 호리병을 닮은 여러 가지의 모양의 둥지가 있다

귀제비가 이리 저리 날아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5월초엔 둥지 짓기와 둥지 수리가 한창이다귀제비가 사용했던 둥지는 이미 텃새인 참새가 차지해 번식 둥지로 사용하고 있다.

크기변환_DSC_3939.jpg» 귀제비 둥지를 빌려 새끼를 부화한 참새가 먹이를 물어 오고 있다.

크기변환_DSC_6033.jpg» 호리병 모양의 귀제비 둥지.

5월 중순과 7월 사이 흰색 알 4~5개를 낳아 19~20일 동안 품는다. 깨어난 개끼에게 주로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 먹인다몸길이 약 19㎝이다머리꼭대기뒷목과 윗면은 광택이 있는 자색을 띤 검은 푸른색이다.

크기변환_DSC_3899.jpg» 쌍으로 만든 귀제비 둥지.

허리는 적갈색으로 각 깃에는 가는 검은색의 얼룩무늬가 있다눈썹 선에서 목옆까지는 적갈색이다뺨과 귀깃은 갈색을 띤 황갈색으로 어두운 갈색의 세로무늬가 있다아랫면은 엷은 적갈색 바탕에 어두운 갈색 세로무늬가 있다.

크기변환_DSC_3936.jpg» 귀제비 둥지 들머리도 다양한 형태다.

아래꼬리덮깃은 푸른색 광택 있는 갈색을 띤 검은색이다날개깃과 날개덮깃은 조금 푸른색 광택이 나는 검은 갈색이다부리는 뿔빛 검은색이고홍채와 다리는 어두운 갈색이다.

한국·일본·중국·우수리 등지에서 번식하고 중국(남부인도차이나반도·인도 호주 북부까지 가 겨을 난다.

·사진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물바람숲필자

북, 남측에서 또 서해도발 주장, 강력 경고

북, 남측에서 또 서해도발 주장, 강력 경고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6/07 [05: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올해 우리 서해북방한계선 인근 한 해군 병사가 스치듯 지나가는 북 경비정을 우리 함정에서 찍은 사진, 서해분계선 인근은 원래 이렇게 남북 해군이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만큼 충돌 위험도 높은 곳이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해상분계선도 완전히 획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란의 해상으로 남아 있다.

북은 우리 군이 5일 새벽 자신들의 해상분계선을 침범했다고 6일 주장했다.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일제히 "5일 새벽 4시 30분경 남조선 괴뢰군부 호전광들이 조선 서해 우리측 영해에 대한 침범행위를 또다시 감행했다"며 "괴뢰들은 연평도에 있던 어선 19척을 우리측 해상분계선을 넘어 깊숙이 들이밀었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27일 아군 연락선에 대한 무지막지한 포사격 도발의 연장으로서 이 수역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켜 아군의 정의로운 대응을 유발시키고 그것을 위협과 도발로 매도해보려는 괴뢰들의 흉악한 기도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연합뉴스는 북 매체들이 언급한 사건은 우리 연평도 어민들이 5일 새벽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방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 2척을 직접 나포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당시 우리 해군은 연평도 고속함 4척과 고속단정 3척을 NLL 인근으로 기동해 북한의 도발에 대비했다.

만약 중국 어선을 나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북에서도 이를 모를 리가 없는데 북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발하는 점이 좀 의아하다. 아마 새벽 시간이어서 레이더 상에 나온 배가 중국 어선인진 한국 어선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중국 어선 단속과 같은 사소한 일로 남과 북의 심각한 무력충돌이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남과 북이 소통체널이라도 가동하고 있어야 오해에 의한 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 여겨져 시급히 남북당국자 사이의 회담이 진행되고 다시 남과 북의 우발사태 방지를 위한 통신체계도 회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엔 10.4합의를 통해 이런 남북 소통체계를 마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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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영기자
    2016.06.06 17:02:52

현충일, 국립묘지 안 떠나는 친일파들


16.06.06 10:32l최종 업데이트 16.06.06 17:32l






기사 관련 사진
▲  서훈을 박탈당한 박성행의 묘. 지난 해 11월 이장했다.
ⓒ 홍경표

[기사수정: 6일 오후 4시 46분]

6일은 현충일이다. 이때가 되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일이 하나 있다. 대전국립현충원에는 친일·반민족 행위가 드러나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사라졌는데도 국립묘지를 떠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많이 있다. 정부가 애초 국립묘지 안장을 허투로 결정해, 정작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는 인물들도 있다.

그동안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가 친일·반민족 행위가 드러나면서 뒤늦게 서훈이 취소돼 이장된 사람은 여럿이다. 그런데 이장을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004년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던 서춘(1894∼1944)의 묘비가 이장됐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친일행위로 서춘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박탈한 지 8년만의 일이었다. 이장을 요구했지만 유족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장을 거부한 때문이다. 

'서훈 박탈'에서 '묘지 이장' 까지 최소 수 년
바로 잡습니다
앞서 본 기사에서는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도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서술과 함께 '<동아> 설립자 김성수의 묘'라고 설명한 사진을 내보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에서 소개한 묘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3.1 운동을 주도하고, 의열단 활동 등 독립운동을 전개한 애국지사 김성수의 묘였습니다. 대전현충원에 인촌 김성수의 묘는 없습니다. 이에 해당 서술과 사진을 삭제했음을 밝힙니다.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대전현충원 안장자 중 박성행(1892∼1950), 김응순(1891~ 1958), 박영회, 유재기(1995∼ 1949), 이동락(1890∼1969) , 강영석(1906~1991)은 친일행위가 드러나 2010년 또는 2011년 서훈이 박탈됐지만 묘 이장까지는 수 년이 걸렸다.

이중 강영석은 묘지는 그대로 남겨두고 묘비만 그의 부인인 신경애 명의로 바뀌었다. 그의 부인인 신경애(1907~1964)는 강영석의 부인으로 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활동 등으로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친일행위가 드러나 서훈이 취소되자 부인의 안장 자격을 빌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이다.

대전국립현충원 관계자는 "부인인 신경애 여사와 함께 합장돼 있다"며 "관련법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의 배우자는 예우 차원에서 유족의 희망에 따라 합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구 선생 살해 혐의 김창룡, '국가에 공 많은 사람'

대전민족문제연구소 등 대전지역시민사회단체가 매년 현충일 때마다 파묘시위를 벌이는 대상이 있다. 그는 대전국립현충원 장군묘역 제2열 69호에 안장된 김창룡 전 특무부대장이다. 그는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대표적 반민족행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관동군 헌병대 정보원으로 일하며 항일조직을 무너뜨리고 독립군을 체포하고 고문했다. 이 일로 해방 후 친일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오히려 육사 3기생으로 입교했다. 이후 육군특무대를 만들어 사건 조작을 통해 이승만 정적을 제거했다. 한국전쟁 때는 대전 산내골령골 민간인 학살 등 전국의 민간인 학살을 지시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지난 1992년에는 안두희가 김구 선생 암살 당시 '실질적 지령'을 내린 인물로 '김창룡'을 지목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방첩분야에서의 혁혁한 공로 세우고 △순직했다는 이유로 국립묘지를 차지하고 있다. 국립묘지 안장자격 중 하나인 '순직·전사자', '기타 국가에 공이 현저한 사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묘역에 있는 오제도 검사(1917-2001)도 △국가에 공이 현저한 사람'에 해당돼 안장됐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 직전 전향 좌익인사들을 한데 묶어 집단학살의 빌미를 줬던 '보도연맹'을 주도해 만들었고, 한국전쟁 때는 부역자를 가리는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총지휘관'을 맡았다. 

특히 그는 '진보당사건'과 관련 당시 조봉암 진보당 당수의 사형선고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이승만 정권 때의 대표적 '정치재판'이자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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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현충일인 6일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국립대전현충 입구에 서 김창룡 파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단체는 매년 현충일마다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심규상


12.12 핵심인물 유학성 '복역 중 사망..형 확정전 무죄 추정'
   

김창룡이 있는 인근에는 유학성 전 의원(1927-1997, 육군대장)이 안장돼 있다. 유 전 의원은 12.12 당시 수경사 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12.12 핵심인물로 이 사건과 관련, 군 형법상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병세가 악화돼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돼 있던 상태에서 숨졌다. 

그는 '형 확정전 무죄추정'과 '피고인 사망 시 공소기각'이라는 법리를 내세워 국립묘지 안장이 허용됐다.

뇌물수수 안현태 대통령 경호실장 '뇌물 5000만원은 떡값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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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지역 시민단체가 대전 현충원에 인장된 김창룡의 행적을 제시한 후 파묘를 요구하고 있다.
ⓒ 심규상

지난 1997년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안현태 전두환 전 대통령 당시 경호실장의 묘지도 대전현충원에 있다. 당시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는 그가 받은 뇌물 5000만 원은 떡값 수준이고, 군인으로 복무했던 공적, 사면복권 된 점 등을 이유로 안장을 허용했다.    

시민단체에서는 내란·외환죄를 범하거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고 이미 안장된 경우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립묘지법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의원들은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대전지역 시민단체는 오는 6일 제61회 현충일에도 대전현충원에서 김창룡 파묘 및 국립묘지법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