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9일 토요일

전두환, 23년 만에 다시 피고인석 선다

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11일 재판
2019.03.10 13:55:28




전두환 전 대통령(88)이 11일 다시 법정에 선다. 1996년 내란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지 23년 만에 다시 피고인석에 서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광주지방법원은 오는 11일 오후 2시 30분 법정동 201호 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연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4월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며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시민단체와 사망자 유가족들은 회고록 발간 즉시 전 전 대통령을 고소했고 광주지검은 수사 끝에 전 씨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그동안 전 전 대통령은 수차례 재판 연기 요청을 하며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반드시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공판준비기일은 지난해 7월 정상적으로 진행됐지만 이후 두 차례 공판기일은 전 전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재판이 공전됐다.

지난해 8월 27일 첫 공판기일을 앞두고 부인인 이순자 여사가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고, 지난 1월 7일 재판에서도 독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자 담당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에게 구인장을 발부했고, 결국 전 전 대통령은 11일 법정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최근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이 이번에 법정에 서는 것은 23년 만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반란, 5·18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1996년 재판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부인인 이순자 씨의 법정 동석도 신청했다. 재판부는 전 씨의 연령 등을 고려해 신청을 받아들였다. 또, 자진 출석과 고령을 이유로 수갑은 채우지 않기로 했다.

전 전 대통령은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광주로 향할 예정이다. 검찰과 경찰은 재판 당일 오전 서울 자택에서 구인장을 집행하려 했으나 전 전 대통령이 자진 출석 의사를 밝힘에 따라 광주지법에 도착하면 구인장을 집행하기로 했다.

11일 전 전 대통령의 자택 앞과 광주지법 앞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력이 투입된다. 당일 오전 7시 30분쯤 보수 성향 단체인 '자유연대' 등은 연희동 자택 앞에서 '전두환 대통령 광주재판 결사반대' 집회를 연다. 200~300명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평소 자택 경비 인원 외 별도의 경비 인력을 투입할 방침이다. 평소 전 전 대통령 자택 경비에는 의경 1개 중대(60명)가 배치됐다. 경찰은 당일 상황에 따라 경비 인력을 늘릴 수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은 '공개 재판'으로 진행된다. 다만 법정 내 질서 유지를 위해 참관 인원은 총 103석으로 제한됐다. 이번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방청권은 모두 동이 났다. 경찰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청사 주변도 경호할 예정이다.  

'헬기 사격' 알고도 회고록에 '거짓'이라고 썼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의 핵심 쟁점은 '고의성'으로 압축된다. 재판부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와 이후 시점 광주에서 헬기사격의 실체를 알고서도 자신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에 조 신부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는지를 살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와 검찰 조사 등을 통해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실제 있었던 것으로 입증됐다.

광주 전일빌딩 리모델링을 앞두고 건물 10층 외벽 등에서 외부에서 날아든 탄흔이 다수 발견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호버링(hovering·항공기 등이 일정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상태)하던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감정했다.

국방부 5.18 특조위는 5개월간 진상 조사를 통해 육군이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들에게 헬기 사격을 했고, 공군이 무장 전투기를 대기시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전투 상보 등 일부 군 기록이 왜곡돼 있고 당시 조종사들이 무장 상태로 비행했을 뿐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조사에 불응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군의 다수 지시문서와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출동 헬기 40여 대 중 일부 500MD 공격헬기와 UH-1H 기동헬기에서 광주시민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도 미국대사관 비밀전문에 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고 실제로 헬기에서 총격이 이뤄졌다고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이에 당시 광주 진압 상황을 보고받은 전 전 대통령이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판단, 기소에 이르렀다. 

전 씨 측은 그러나 '5.18은 자신과 무관하게 벌어졌으며, 알고 있는 내용도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망한 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자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서어리 기자 naeor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북간도의 십자가 문동환 가다

북간도의 십자가 문동환 가다

조현 2019. 03. 10
조회수 220 추천수 0

문1.jpg» 9일밤 9시께 별세한 문동환 목사

살아있는 근현대 박물관으로 불렸던 문동환 목사가 9일 오후 550분께 별세했다향년 98.
고인은 해사스런 귀공자형의 외모처럼 편하게 한평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한맺힌 민중들을 놓을 수 없어그 자신의 표현대로 떠돌이를 자청한 삶을 살았다또한 그는 일제시대 북간도 한인사와 독립운동사교육사민중사민주화운동사기독교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었다그러면서도 그는 100살이 다 되도록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혁명하면서 거짓들과 싸운 종교개혁가이자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려는 공동체운동가였다.

고인은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기자이자 목사였던 부친 문재린과 여성운동가였던 모친 김신묵의 3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고인은 그곳에서 형 문익환윤동주 시인 등과 어린시절을 보냈다명동촌은 한국적 개신교의 맹아였을 뿐 아니라 민족교육의 산실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던 곳이다명동촌은 문동환의 고조부인 문병규와 김약연 등 네가족 142명이 함경도에서 두만강을 넘어 옛 고구려땅에 정착해 개간했던 한인집단공동체였다그곳에 세운 명동학교에서 문익환윤동주나운규 등이 공부했고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된 뒤 용정에 연 은진중학교에서 문동환과 안병무강원용 등이 수학했다은진중 교목이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 설립자인 김재준이었다.

고인은 어린시절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김약연 같은 이가 되고싶어 목사가 될 꿈을 꿨다고 한다평생의 사표였던 김약연은 간도의 대통령으로 불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자 목사였고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기 전에 명동촌 뒷산에 권총 연습을 할 은거지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인은 1938년 은진중학교를 마치고 은사인 김재준의 안내로 일본에 유학해 도쿄신학교와 일본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고향 용정 만보산초등학교와 명신여중고에서 3년간 교사로 재직했다해방 후 1946년엔 김재준이 설립한 조선신학교를 1년간 다닌뒤 경기도 장단중학교와 서울 대광중고에서 교편을 잡았다그는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에 회의가 생겨 7년간 씨름했다고 한다그러다 형 문익환과 여행 중 경상도 금오산을 지나면서 너무도 함들게 살아가는 민초들을 보고서 고난받은 민초들의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는 게 구원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훗날 회고한바 있다그는 그 이후 거제도 아양리라는 농촌으로 내려가 1년간 목회했다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1년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1961년 모교인 한신대 교수로 초빙받아 귀국길에 올랐다유학중 만난 평생의 반려자인 미국인 부인 페이문(문혜림)과 함께였다.

부패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박정희 독재가 시작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고인은 남다른 교육관으로 학교 현장과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켰다특히 번지르르한 말만을 배우지않고제대로된 가치관을 심어서 신앙인이기에 앞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었다.
아무리 교실에서 그럴 듯한 소리를 하고강단에서 감명 깊은 설교를 한다 해도 그의 생이 사람답지 못하면 자신과 남을 위해서 비참한 일이다한국에 있어서 비극 중의 비극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큰소리를 하는 사람일수록 흔히 그 생이 더 냄새가 난다는 것대중 앞에 나설 때앞에 마이크가 많은 사람일수록 뒤에서는 연막을 더 쳐야 하다는 사실이다.’

문2.jpg» 문동환(뒷줄 왼쪽 넷째)·문혜림(왼쪽 다섯째)씨 부부가 형수 박용길(왼쪽 여섯째)씨 등 가족들과 2002년 2월 중국 룡정시 동커우의 생가터를 둘러보고 있다.

그가 1972년 낸 <자아확립>이란 책의 서문에 쓴 글이다그는 토론하고 발표해 자기 생각을 가지고 이를 실천케하는 새로운 수업방식을 도입했다그의 제자였던 정호진 목사는 고인의 <세계와 나>라는 수업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학습자가 중심이 되는 혁명적 전환으로 스스로 세계와 역사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이를 실천케 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특별한 점은 관념에 머무르지않고 늘 실천이 뒤따랐다는 것이다그는 학생들이 삶을 배우기 원했고캠퍼스 자체가 민주적 삶의 체현장이 되도록 했다이를 위해 그가 학생과장으로 재직 때 학생교수직원교수부인들까지 동원해 만든게 캠퍼스생활위원회였다이 생활공동체를 통해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평등의식과 참여의식을 배우고 실천케 한 것이다.

그가 주도적으로 만든게 선교신학학대학원이었다이곳에서 그는 세가지를 통해 배우도록 했다첫째 선각자의 글과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둘째 그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배우고세째 현장에서 일하면서 사회현실과 부딪친 것을 다시 대화하면서 배우라는 것이었다그가 교수로 있으면서 1972년 만든 새벽의집’ 공동체도 실천의 장이었다새벽의집에서는 6가정 50여명이 개인 집들을 처분하고 가족연합체를 만들어 살았다.

그러나 전태일의 분신과 박정희 정권의 삼선개헌 파동유신헌법 공포는 그를 더욱 세상으로 이끌어냈다삭발을 하며 투쟁을 하다 1975년 해직됐던 그는 동료 해직교수인 서남동안병무이문영 등과 갈릴리교회를 설립해 민중교회의 모태가 되게 했다. 1976년 31일엔 함석헌윤보선김대중이문영서남동문익환이우정 등과 함께 ‘3·1민주구국선언에 서명해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22개월간 옥고를 치뤘다와이에이치(YH)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었다가 유신정권의 몰락 시점에 출옥해 복직했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폭압이 시작되자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그는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풀려나 미국에 온 김대중을 만나 도움을 준 인연으로, 1988년 평화민주당에 수석부총재로 참여하고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3당합당에 반대해 정계에 은퇴한 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2013년 귀국했다.

그는 90대 중반까지도 집필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예수정신을 드러내려 애썼다그 대표적인 것이 4년전 출간한 <예수냐 바울이냐>그는 책에서 바울이 예수의 본정신을 망친 인물로 질타했다예수를 메시아로 만든 바울의 영향을 받은 콘스탄티누스의 황제신학에 의해 기독교인들이 권력과 야해 식민지 쟁탈과 이방인 살육에 앞장서면서 메시아와 왕조절대권력권위주의선민의식을 거부한 예수의 정신과는 다른 종교제국주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 개신교계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그는 “80살이 지나면서 민중신학에도 회의가 생겼다면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민중을 민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기도 했다그러면서도 그는 영화 <변호인>을 본 뒤 우리가 있는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우리 주변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노무현이 거기에 응한 것처럼 우리도 응해야 이 험악한 세상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았다그는 공동체를 이루려 했던 자신의 꿈을 실현해 가는 서울 수유동 밝은누리를 방문해 최철호 목사 등을 만난 자리에서 자기들끼리만 멋있게 사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기존의 잘못된 삶을 단호히 끊은 젊은이들이 집단적 예수집단적 모세가 되어 새로운 문화권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의 한신대 제자였던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안으로는 동병상련의 따뜻한 심성을 지닌 분이었다며 밖으로는 대형교회의 성장 축복 신앙을 맘몬 숭배로 규정하고 현대사회 악의 본질을 분명히 깨닫고 이를 끊어내기 위해 개인과 집단의 단호한 회개를 주창하며 새벽을 열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혜림씨와 아들 창근·태근딸 영혜·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사위 정의길(<한겨레선임기자)씨 등이 있다문성근(영화배우)씨가 조카이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발인은 12일 오전 8장례예배 오전 9시 서울 수유동 한신대학원 채플실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02)2227-7500.

 

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하지만 GDP는 틀렸다!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9-03-09 10:40:50
수정 2019-03-09 10: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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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의 주도로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라는 것이 출범했다. 정식 명칭은 ‘경제실적과 사회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 위원회를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라고 불렀다.
이유는 이 별칭이 진보를 꿈꾸는 경제학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를 뜻하고, 센은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을 지칭한다. 피투시는 프랑스 진보 경제학의 거장인 장-폴 피투시(Jean-Paul Fitoussi)다.
진보 경제학계에서 이 세 사람을 한 데 묶은 건, 축구로 치면 펠레-마라도나-메시를 한 팀에 넣은 격이고,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매직 존슨-코비 브라이언트가 한 팀인 셈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진보 경제학계에 매우 인색한 상이다. 이 상이 만들어진 이후 명백히 진보경제학자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스티글리츠와 센, 그리고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 등 단 세 명 뿐이었다.
이 중 뮈르달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현존하는 진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두 명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 두 명이 한 팀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투시가 포함됐으니 이 위원회는 말 그대로 진보 경제학계의 드림팀이었다.  
위원회는 18개월 동안 회의를 연 끝에 2009년 결과물을 내놓았다. 보고서의 제목은 『우리 삶을 잘못 측정하고 있는 것:왜 GDP는 앞뒤가 맞지 않는가?(Mismeasuring Our Lives:Why GDP Doesn't Add Up)』였고, 이 보고서의 국내 번역본 제목은 『GDP는 틀렸다』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잘 모르겠는데!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마침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1349달러, 우리 돈으로 약 3500만 원 정도로 집계됐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 3만 달러를 넘어선 일곱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한국 외에 ‘인구 5000만 명 이상 +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달성한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뿐이다. 얼핏 봐도 한국이 마침내 쟁쟁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가 실감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500만 원이면 4인 가구 기준으로 연평균 소득이 1억 4000만 원이다. 이 수치부터 현실성이 없다. 국민소득 중 기업과 정부 몫을 뗀 가계소득만 집계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 수준이다. 70%를 넘기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가계의 몫이 매우 작다.
게다가 가계의 몫만 계산해도 4인 가구 기준 연평균 소득은 8400만 원이나 된다. 이게 평균이라고? 대기업 현장 노동자들이 1년에 8000만 원 받으면 보수 언론은 귀족이라고 난장을 부리는데! 뭔 놈의 귀족이 평균소득에도 못 미치느냔 말이다. 그러니 “연소득 8400만 원이 평균”이라는 말도 당최 실감이 나지 않는다. 
GDP의 결정적 오류는 그것이 민중들의 삶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평균값을 적어놓았다는 데 있다. 통계학에서는 이것을 ‘평균의 오류’라고 부른다. 반 평균이 70점이라고 그 반 학생들이 대충 70점 언저리를 맞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소득불균등 정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칠레, 멕시코 다음으로 나쁘다. 이러니 평균값이 의미를 지닐 수가 없다. 부자들은 저 위에 있고, 민중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실감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삶의 지표를 전혀 측정하지 못하는 GDP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가 지적하는 GDP의 두 번째 문제점은 측정 방법이 엉망진창이라는 점에 있다. GDP는 나라에서 새로 생긴 소득을 모조리 포함한다. 그렇다면 4대강을 파헤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여기에 든 돈 대부분이 GDP로 잡힌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이 4대강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으로 당선된 이명박은 어떻게 해서든 GDP 수치를 마사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멀쩡히 잘 흐르는 강을 파헤쳐 녹조라떼로 만든 것이다.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에 따른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사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에 따른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사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더 웃긴 문제가 남아있다. 망가진 4대강을 복구해야 하는데, 복구할 때 드는 공사비용도 대부분 GDP로 잡힌다는 점이다. 망치는 것도 GDP, 복구하는 것도 GDP다. 그래서 우스갯소리고 “GDP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멀쩡한 건물 때려 부쉈다가 다시 짓고, 다시 때려 부쉈다가 다시 짓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플라스틱 사용은 어떤가? 많은 뜻있는 시민들이 1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는 중이다. 지구 환경을 위해 매우 옳은 일이다. 하지만 GDP의 시각으로 이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많이 써야 GDP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쓰레기더미를 처리하는 데 또 산업이 가동돼 GDP가 높아진다. 환경을 오염했다가 정화하고, 또 오염했다가 정화하면 GDP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다.  
사실 GDP는 민중들의 삶이 불편해질수록 높아지는 경향마저 있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질수록 교통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건강이 악화돼도 병원과 제약회사 매출이 늘어 GDP가 좋아진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 매출이 GDP를 높이고,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 우울증 치료제 매출이 GDP를 높인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계부채도 GDP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지난해 은행권이 거둔 사상 최대의 이자수익은 모두 GDP에 잡힌다. 이 따위로 측정되는 GDP 지표가 실제 국민들의 삶을 평가하는 데 전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의 결론이다.
그래서 민중들에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돌파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명박은 GDP 7% 성장을, 박근혜는 4%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그거 달성하겠다며 한국 경제에 오만 패악질을 다 하고 떠났다. 하지만 다행해도 현 정부는 GDP 성장률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이다.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가 내린 담대한 결론처럼 결국 GDP는 틀렸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국병(大國病)도 버려야 한다. 국민이 가난한 대국(大國)은 아무 짝에도 쓸 모가 없다. 경제의 목표가 이런 허황된 숫자가 아니라, 민중들의 삶 그 자체에 모아져야 한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 #미투가 세상을 바꾼다"

3.8 한국여성대회 개최...김복동 할머니·서지현 검사에 여성운동상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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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8  22: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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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35회 한국여성대회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됐다. 대회는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를 주제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35회 한국여성대회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난장, 기념식과 문화제, 거리행진, 온라인 캠페인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올해 제35회 한국여성대회는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를 주제로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경험 '말하기' '미투' 운동 이후 어떤 변화가 필요하지 돌아보고 앞으로 연대와 행동을 도모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대회 참가자들은 이날 발표한 '2019년 3.8여성선언'을 통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국의 미투운동은 용감한 여성들이 만들어 낸 거센 변화의 물결이자 빛나는 성과"라며 "미투운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문화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여성들의 강력한 선언"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성들은 가해자 편에 서서 가해자에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에게만 질문하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문화를 바꾸어 낼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가 가해자를 엄정 처벌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막는 2차 피해를 멈춰야 하며 미투 관련 법제도의 개선과 성평등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요구에 조속히 응답할 것을 촉구했다.
  
▲ 이날 성평등 디딤돌-미투 특별상 수상자들이 '2019 3.8여성선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또 미투운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근절되고, 성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낙태죄 폐지 △여성정치 대표성 확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차별금지법 제정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성평등한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 △#미투_가해자 엄정 처벌 △#미투_피해자 일상 회복 △#미투_법제도 개선 △#미투_예산 확보 등을 요구했다.
이날 대회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적인 인권 이슈로 이끌어 온 평화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에게 여성운동상을, 지난해 한국사회 폭발적인 미투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에서 제31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시상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김복동 님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운동에서 시작된 평화여성인권운동은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여성인권운동을 초국적으로 결속시켜 평화와 인권을 향한 국제적 대응을 견인해 낸 역사적 큰 걸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김복동 할머니의 공적에 대해 밝혔다.
또 "서지현 검사의 용기는 성평등 세상을 향한 미투운동의 첫 걸음이자 2018년의 가장 뜨거운 여성운동의 한 걸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고 김복동 할머니에게 여성운동상이 수여됐고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가 대신 수상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 김복동 할머니를 대신해 수상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1926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태어나 15살이 되던 해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서 7년 동안이나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22살부터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편견도 강하고 차별과 탄압도 강했던 이 땅에서 한 여성으로 살아왔다. 다른 사람같으면 은퇴해 쉬고 있을 67살의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걸 신고하고는 그때부터 27년간 정말 치열하게 살아오셨다"고 '평화의 나비'로 살아온 할머니의 삶을 회고했다.
이어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통해서 한국의 여성운동이 세계 여성운동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유엔 인권기준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도 인도주의적 지원이 아니라 당당하게 법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 유엔 여성인권 특별법안 보고서에도 그렇게 기록되도록 만들었다"고 하면서 "만일 김복동 할머니께서 살아 계신다면 오늘 이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병상에서 하셨던 말씀과 같이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라고 말하셨을 것이다. 거친 길일 지언정 할머니가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자"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서지현 검사는 "111년전 여성들은 생존권과 존엄권을 주장하며 거리에 나섰다. 100년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법에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여성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안전하게 살아가야할 권리, 차별받지 말아야 할 권리를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성 평등과 정의에 대한 갈망을 밝혔다.
또 "나의 꿈은 미투가 번져나가는 세상이 아니라 미투가 필요없어진 세상에서 사는 것. 지금의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지 않고 맞지 않고 성폭력을 겪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나의 꿈은 우리 자녀들이 그들의 성별이 아닌 그들의 재능과 노력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밖에도 이날 대회에서는 △대학 내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 반동)에 맞서 총여학생회 폐지 반대와 재건을 위해 싸우는 단체들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의 실질적 조력자이자 법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고 있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성평등 디딤돌 상이, △5.18 민중항쟁 당시 가해진 고문과 성폭력 피해를 드러낸 여성 생존자들 △연극계 미투로 변화의 디딤돌이 된 김수희 연출가 외 이윤택 사건 공동고소인단 등 11개 팀에 성평등 디딤돌-미투 특별상이 수여됐다.
불명예스러운 성평등 걸림돌로는 △성폭력 사건 해결과 피해자 보호가 아니라 가해자 비호에 급급한 경북대학교 △여성과 성소수자 혐오를 자행하고 교육기관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한동대학교 △금융권 채용 성차별 기업-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카드,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온라인에서 성매매를 알선하고 후기를 공유하는 등 버젓이 성매매를 확산한 포털사이트들 △해군 상관에 의한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에서 시대를 역행한 무죄판결을 내린 고등군사법원 특별재판부 △위력 성폭력의 본질을 무시하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재판부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혐오범죄를 저지른 혐오세력과 이를 방조한 인천 동구청와 인천경찰청 △외유성 해외 연수에서 가이드를 폭행한 박종철 예천군의회 부의장과 성매매 업소 안내를 요구한 권도식 의원이 선정됐다.
한편, 한국여성대회는 1985년 여성평우회 등 14개 풀뿌리 여성단체가 공동으로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설립 이후부터는 이 단체 주관으로 회원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실행하고 있다.
1920년대부터 열리던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해방 후 잠시 부활하기도 했으나 1948년  이후 맥이 끊겼었다.
(추가-9일 06:31)
  
▲ 한국여성단체연합 백미순, 김영순, 최영순 공동대표(왼쪽부터)가 제35회 한국여성대회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성평등 디딤돌-미투 특별상 수상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성평등 디딤돌 상을 받은 대학내 총여학생회 폐지 반대와 재건을 위해 싸우는 단체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성평등 디딤돌상을 받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여성노동자대회를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제가 간첩으로 보입니까!" 5.18 가두방송 여성의 힘겨운 외침

19.03.09 20:09l최종 업데이트 19.03.09 20:45l






 '5.18 역사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3차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렸다. 문화제에 참석한 전옥주씨는 5.18 당시 가두방송을 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  "5.18 역사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3차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렸다. 문화제에 참석한 전옥주씨는 5.18 당시 가두방송을 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 소중한

"여러분, 제가 간첩으로 보입니까!"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라고 가두방송을 했던 전옥주씨가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곧장 "아니요!"라고 화답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이따금 손을 떨면서도 전씨는 힘주어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민주화가 뭔지도 몰랐었습니다. (5.18에 참여)해놓고 보니 그게 민주화랍니다. 역 앞에 가니까 시신 2구가 있었습니다. 얼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리어카에 싣고 도청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부터 가두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라도 모두 저처럼 가만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게 죄입니까."
 
  '5.18 역사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3차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렸다.
▲   "5.18 역사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3차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렸다.
ⓒ 소중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5.18 역사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3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전씨는, 5.18 직후 북한에서 2년간 간첩교육을 받고 내려온 '모란꽃'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바 있다. 북한군 개입설 등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지만원씨는 지금도 전씨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씨는 "김진태·이종명·김순례, 그리고 이름만 이야기해도 손이 떨리는 그 지만원이란 사람은 무슨 원수인지 저를 간첩으로 몰아간다, 여러분이 지만원을 처단해달라"라며 "아직도 간첩소리만 나오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 손이 떨린다, 여기 모인 분들 5월 정신을 잊지 말아달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떡 한 조각, 딸기 한 조각 자기 입에 넣지 않고 서로 나눠먹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광주 동지들은 모두 훌륭했다"라며 "그런 틈바구니에 무슨 북한군이 내려오나, 부끄러운 국회가 되지 말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틀 후 전두환 재판도 관심, "40주기 전에 꼭 처벌"
 
 5.18 역사 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  5.18 역사 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 강연주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 5.18 망언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제명 ▲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 망언 국회의원 비호하는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요구했다. 시민들이 든 손팻말에는 "김진태·이종명·김순례 국회 제명!",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상습범 지만원 즉각 구속!"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박석운 5.18시국회의 공동대표는 "북한군 600명이 계엄 하에서 내려왔다면 그때 계엄사령관과 계엄군들은 뭘 하고 있었나"라며 "그런 주장을 내뱉는 지만원은 구속돼야 하는데 뭘 하고 있나 모르겠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대표들이 일하는 국회가 그를 버젓이 끌어들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18을 모독하는 망동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라며 "그러나 한 달이 다 되도록 국회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촛불의 힘으로 황교안 등 일당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과연 한국에 필요한가" 
 
 5.18 역사 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  5.18 역사 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 강연주
현재 5.18 망언 3인 국회의원(김진태·이종명·김순례)의 징계안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한국당은 전당대회 전 윤리위 결정을 통해 이종명 의원 제명을 결정했지만, 당 내에서 제명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황교한 신임 대표는 확실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 '5.18 망언' 징계 미적대는 황교안의 녹음기 답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러한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강하게 질타했다. 고등학생 이아란(19, 여)씨는 "자유한국당은 5.18 망언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다"라며 "이런 정당이 한국에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희진(45, 여)씨도 "전 국민이 자유한국당의 망언에 분노하고 있다"라며 "역사의 발목을 잡는 정당은 사라져야 한다"라고 분노를 표시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도 참석해 "저는 아픔을 나누는 법을 광주분들에게 배웠다, 긴 세월 참아낸 그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라며 "지금이라도 빨리 5.18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가동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이 "지금 들고 계신 피켓에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이름이 있는데 이 사람이 국회의원으로서 필요합니까"라고 외치자,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아니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틀 후 열릴 예정인 전두환씨의 광주 재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놨다. 김효주(52, 남)씨는 "전씨 재판이 계속 미뤄지는 건 이 사회의 기득권과 제도가 그를 너무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더 미루지 말고 제대로 벌을 내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인선(21, 남)씨도 "내년이 5.18 40주기"라며 "제발 그 전에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이라고 비난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씨는 그동안 광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참석하지 않다가 오는 11일 열릴 재판에는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독감 진단서' 제출한 전두환 측 "다음엔 꼭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