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농인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고유의 언어가 있고 우리와 말이 다른 것 뿐이죠. 농인 입장에서는 우리가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요. 이렇듯 장애라는 것은 늘 상대적인 것입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에서 수어를 통역하고 있는 신문철(사진) 수어통역사의 말이다.
신 통역사는 35년 동안 수어통역사로 활동해왔다. 전국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수어를 통역한 지는 13년째다.
그는 어린 시절 한동네 살던 농인과 친해지면서 수어를 접하게 됐다. 우정으로 시작한 수어가 평생의 직업이 된 것이다.
"당시는 수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따로 없었습니다. 동네 농인분과 오다가다 마주치게 되고 인사를 나누다가 수어를 배우게 됐어요. 그러다가 농인의 친구로서 또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양측의 가교가 역할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농인 돕는 전문직업
국가적 배려·관심 필요
공정한 재판 받을 수 있도록
‘친구’ 돕는 사명감
그가 특히 법률수어통역을 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이분들도 '농사회(聾社會)'라는 사회가 있고 문화가 있습니다. 일반 사회처럼 사건이 터지고 죄를 짓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어장벽에 막혀 이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것과 어찌보면 비슷합니다. 이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 것, 자신의 행위만큼만 책임을 질 수 있게 조력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법원의 수어통역으로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친구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안 도울 수 있겠습니까?"
신 통역사는 "수어 통역은 농인들을 돕는 전문직종"이라며 "통역에 대한 국가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통념상 수어통역은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저희들도 농인들의 친구이다보니 안타까운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맨먼저 나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편 수어는 하나의 언어이고 이를 통역하는 것은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역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언론이 법원에 비해 검찰의 수어통역비가 적게 책정돼 문제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만, 법원도 사실 충분히 현실화된 것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작년에 담당한 통역비 일부를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재판은 나라의 일이고 저희 일은 전문직종이기 때문에 국가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법원 수어통역사로서, 또 수어교육 강사로서 더욱 매진할 생각"이라고 했다.
"2016년 비로소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우리나라 농인들의 공용어로 법정됐지만, 사법기관을 비롯해 사회 여러 부분에서 농인·농사회에 대한 인식은 미흡한 형편입니다. 우리가 TV를 보지만 수어를 접하는 게 사실 뉴스말고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농인들도 나랏일에 관심을 갖고 싶지만 통역이 없습니다. 농인들에 대한 사회적 의무감과 소통 의지가 필요합니다. 저는 한국수어통역사협회의 의뢰로 법률수어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장애인권 활동을 하는 여러 변호사님들이 강의를 하시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법률수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농인들이 법 앞에 평등한 재판을 받고, 또 많은 사람들이 수어를 접해 일반사회와 농사회가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