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반기문이 낸 ‘기후 숙제’ 박근혜는 했을까

반기문이 낸 ‘기후 숙제’ 박근혜는 했을까

조홍섭 2014. 11. 11
조회수 2557 추천수 0
IPCC 5차 기후변화 종합보고서 발간, 강한 표현과 과감한 대책 요구 눈길
내년 새 기후체제 협상 때 한국 강한 감축압력 불보듯, 정부 대책은 뒷걸음

cl0-1.jpg»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9월23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하는 연설을 박근혜 대통령이 뒤에서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엔 기후변화 보고서는 내용이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 과학자 수백명이 수만건의 출판된 연구결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고르고 마지막에는 100여개 나라 정부 대표가 보고서를 한줄 한줄 검토해 이견이 있는 부분을 뺀다. 그렇게 나온 두루뭉술한 내용이 무얼 가리키는지 보도하기 위해 언론은 ‘번역’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5차 기후변화 평가 종합보고서는 달랐다. 전에 없던 강한 표현이 눈에 띄었다. “기후변화는 심각하고 광범하며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칠 것”이란 표현도 그랬다. 2007년 보고서에 4번 나왔던 ‘돌이킬 수 없는’이란 단어가 무려 31번이나 사용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자들 앞에서 “과학이 말해줍니다.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지도자들은 행동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단문을 이어가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25년 동안 나온 기후변화 보고서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앞으로 기후협상에서 이정표가 될 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다.
 
cl0.jpg» 기후변화의 양상. (a) 지구표면 온도(1850~2012) (b) 얼믐 면적 (c) 지구표면 온도 변화(1901~2012) (d) 연간 강수량 변화(1951~2010) 그림=IPCC 5차 평가종합보고서

첫째, 기후체계에 대한 인류의 영향은 명백하고 점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기온과 해수면 상승, 온난화 에너지의 90%를 흡수한 바다의 산성화가 전례 없고 폭염, 집중호우 등 극한 기후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식량, 수자원, 생태계 등에 끼치는 악영향이 모든 대륙과 해양에서 관측되고 있다.
 
둘째, 재앙을 피하려면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국을 막기 위해 온도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하려면 산업화 이후 인류가 배출해온 누적 배출량이 이산화탄소로 환산해 2900기가톤(1기가톤은 10억톤) 안쪽이어야 한다. 2011년까지 인류는 그 3분의 2인 1900억기가톤을 배출했다.
 
이대로라면 2100년 지구온도는 최고 4도 상승해 대규모 생물멸종사태, 기상이변, 식량위기, 폭동 등 자연과 인간사회 모두에 재앙이 불가피하다. 지구의 많은 지역에서 경작과 인간 거주가 불가능한 곳이 나타나고 그런 상태가 수백년 지속된다.
 
이를 막기 위해 앞으로 몇십년 안에 대대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해 2100년에는 순 배출량이 0이 되어야 한다. 땅속에 묻혀있는 대부분의 화석연료는 땅속에 그대로 보관해야 한다는 얘기다.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장치가 달리지 않은 모든 화력발전은 퇴출되고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세계 전력의 80%를 생산해야 한다.
 
cl2.jpg» 배출 시나리오별 (a)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b) 지구표면 온도 (c) 해수면 상승폭. 가장 위 시나리오는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RCP 8.5), 맨 아래는 즉각 강력한 감축 대책을 세우는 시나리오(RCP 2.6)이다. 그림=IPCC 제5차 평가 종합보고서.

셋째, 현재의 기술과 경제력으로 이런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세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에서 0.06% 포인트가 빠지는 비용이 들 뿐이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면 그 비용은 급증한다.
 
이 보고서가 해수면 상승과 경제적 부담을 과소평가했다는 등 비판도 나온다. 영국의 세계적인 기후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 경은 “기후대응 과정에서 고용창출 등 경제성장이 일어나고 대기개선으로 인한 보건향상 등 부수효과 등을 고려할 때 이 보고서는 경제적 부담을 과장했다”라고 지적했다.

 cl1.jpg» 최선(왼쪽)과 최악(오른쪽)의 대책을 세웠을 2100년까지 온도, 강수량, 해수면 상승 변화 추정. 그림=IPCC 제5차 평가 종합보고서.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내년 말로 예정된 새로운 기후체계를 위한 국제협상에서 각국 정부가 승인한 이 보고서는 핵심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이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누적 배출량 세계 19위, 화석연료 기준 2013년 배출량 세계 7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배출량 증가율이 가장 높고, 올해 말이면 개인 국민소득도 2만 9000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어느 수치로 보나 뒤로 빠질 처지가 아니다.

cl4.jpg» 1990년 ~ 2012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 자료=환경부
cl3.jpg»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GDP 관련 주요 순위. 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 2014.
 
석유왕 록펠러 가문의 록펠러 형제 재단은 지난 9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에서 손을 빼겠다고 밝혔다. 덴마크 정부는 지난 1일 2025년까지 석탄화력을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여름 독일에선 전력의 75%를 풍력과 태양광으로 충당한 날이 여럿 나타났다. 현재 24%인 재생에너지 비중은 2050년까지 80%로 높일 계획이다.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사실상 무산, 탄소배출권 제도 완화 등 뒷걸음질만 하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기후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창조경제의 핵심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반 총장은 보고서 발표 때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이 보고서를 읽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책결정자를 위한 40쪽짜리 요약 보고서도 발간돼 있다. 박 대통령은 과연 이 보고서를 읽었을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북한이 곧 남침"…일본이 거짓 정보를 거듭 흘린 이유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4> 한일협정, 열두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 서어리 기자 2014.11.12 06:10:05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여덟 번째 이야기 주제는 한일협정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이야기 마당 42∼53] 5.16쿠데타 [이야기 마당 54∼62] 제3공화국 [한일협정,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아니었으면 일본 자금도 못 들여왔다? [한일협정, 두 번째 마당] 아베 외조부 "돈으로 박정희를 만족시키면 된다" [한일협정, 세 번째 마당] "일본을 형님으로 모시겠소", 고개 숙인 박정희 [한일협정, 네 번째 마당] 짓밟힌 한국, 일본·미국 짬짜미에 또 당했다 [한일협정, 다섯 번째 마당] 이대생들은 왜 '미장원·화장 자제'를 결의했나 [한일협정, 여섯 번째 마당] 조선·동아는 어쩌다 괘씸죄로 청와대에 찍혔나 [한일협정, 일곱 번째 마당] 또 망언한 일본…한국 정부는 왜 덮는 데 급급했나 [한일협정, 여덟 번째 마당] 반공 목사들이 박정희에게 정면으로 반기 든 사연 [한일협정, 아홉 번째 마당] 일본에 그렇게 당하고도 동남아에 밀린 한국, 왜? [한일협정, 열 번째 마당] 예비역 '별'들, 청와대 겨냥 "집권자가 이적 행위자" [한일협정, 열한 번째 마당] 전설의 주먹 분노케 한 대통령과 회장님의 은밀한 거래 프레시안 : 뒤틀린 한일 관계는 박정희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지속된다. 서중석 : 1963년 민정 이양을 할 때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3.16 군정 연장 성명을 일본 측에서 지지하고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일본 측의 이 사람들은 전두환 신군부 집권에도, 광주항쟁 진압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한일 관계에서 잘못된 유착은 1979년으로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놀랍게도 10.26이 난 직후인 1979년 10월 28일, 나중에 전두환 정권의 핵심 인물이 되는 '3허'(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중 한 명인 허문도 당시 주일 한국 대사관 수석 공보관이 주한 일본 대사 스노베 료조를 만났는데, 여기서 허문도는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새로운 체제가 열린다"고 이야기했다. 12.12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이걸 모른 걸로 돼 있는데, 신군부는 스노베 료조에게 쿠데타에 대해 사전 통보하고 일본의 협력을 구했다. 그러니까 전두환 신군부가 정말 믿었던 것도 일본이었던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건 일본 극우 세력만이라고 보고 이렇게 협력을 구한 것이다. 또 일본 측에서 1979년 12월부터 1980년 5월 10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신군부에 정보를 준 걸로 돼 있다. 대부분은 '북한이 소련의 사주를 받아 남침하려 한다'고 하면서 정보 출처로 주일 중국 대사관 같은 걸 대고, 그러면서 '일본의 정보 기관인 내각조사실 같은 권위 있는 쪽으로 전달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치 사실처럼 꾸몄다. 전부 허위 조작한 것인데도 그랬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는 데 이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했다. 제일 중요한 정보는 1980년 5월 10일 일본 내각조사실 한반도 담당 반장 에비스 겐이치의 정보였다. 여기서 정보를 줬다는 것이다. 한국 상황에 대해 결정적 시기라고 판단한 북한이 5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남침하기로 결정했고, 당시 유고슬라비아를 방문 중이던 김일성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남침 계획을 의논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전두환은 5월 12일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해 정국 안정을 위한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존 위컴 주한 미군 사령관한테 특수 부대 이동의 정당성과 계엄 확대, 철저한 통제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내가 알기로는 5월 14일을 전후해 학생들이 대거 나온 것도 이 남침설과 관련 있다. 이 무렵 학생 운동 지도자들이 있는 곳에 남침설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거 큰일 났다'고 다 피신했는데, 그다음 날 봤더니 그게 거짓말인 걸 알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하나 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요인도 있었는데, 하여튼 그런저런 이유로 문제가 발생하면서 학생들이 대거 교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데 이건 신군부가 기다렸던 것이다. 이 무렵 군이 이동하지 않나. 이것(군대의 사전 이동)은 또 미국이 양해해준 것이다. 미국이 (일본 측이 신군부에 건넨) 이런 정보를 믿고 양보해줬겠나? 그건 말도 안 된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서로 속자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 아니겠나. 어쨌건 5.17쿠데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게 됐다. 5.17쿠데타 계획은 이미 다 세워놓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신군부가 실권을 다 장악하는 5.17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에비스 겐이치 정보에 대해, 일본 첩보 당국이 중국에 흘린 정보가 중국으로부터 역정보로 일본에 되돌아와 신빙성 있는 중국 정보로 포장돼 한국 측에 전달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본에서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일본은 광주항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5월 20일 마에다 도시카즈를 특명 전권 대사로 한국에 파견했다. 마에다 도시카즈는 최규하 대통령은 만나지도 않고 광주 무력 진압 다음 날인 5월 28일 전두환과 회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일본 측의 신군부 지원 문제는 2000년 박선원 연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제기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당시 박 연구교수는 스노베 료조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의 증언과 녹취록을 함께 공개했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스노베 료조는 10.26 직후 허문도를 여러 차례 만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로 일관했다. '편집자')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거짓 정보를 거듭 전한 일본, 5.17쿠데타에 이를 활용한 신군부 프레시안 : 전두환 신군부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도 일본 측은 힘을 실어준다. 서중석 : 1980년 5월 이후에도 세지마 류조를 비롯한 일본의 막후 실력자들이 비공식 특사로 방문해 전두환 신군부와 모종의 관계를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지마 류조와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게 되는 고토 노보루, 이 두 사람이 1980년 6월과 8월에 방한했다. 두 번째 방한했을 때 고토 노보루가 전두환한테 올림픽이나 박람회를 개최할 것을 조언했다. 이건 세지마 류조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서울올림픽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올림픽을 열려고 나고야 시에서 이미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 일본의 배후의 강자들이 올림픽 개최를 추진하라고 전두환 정권에 이야기한 것이다. 또 고토 노보루가 나고야 쪽한테 '한국의 올림픽 개최 입후보에 반대하면 안 된다'고 상당히 권고한 것으로 나와 있다. (고토 노보루는 이때 나고야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나고야가 아닌 서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편집자')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일본 극우들이 자기 나라 올림픽을 사실상 포기하라고까지 한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납득이 안 가는데, 그만큼 일본 극우들이 무서운 존재 아닌가. 만주 인맥을 중심으로 한 이런 사람들이 참 무서운 사람들 아닌가. 이 사람들이 구상한 것이 궁극에 가서는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통합이고, 그것에 한국의 군부 정권처럼 유용한 정권은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올림픽까지 포기하도록 그렇게 자기 나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겠는가. 참 무서운 일이다. 전두환 정권이 초기에, 박정희 정권 말기의 경제난에다가 농업 문제도 겹치고 해서 아주 심한 고통을 받지 않나. 물가도 한없이 올라간다. (1980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5.2퍼센트였다. 마이너스 성장은 195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편집자') 이때 구세주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전두환 정권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이 40억 달러를 융자해준 것이었다. 그 이전에 일본에서 받아온 돈을 생각하면 40억 달러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한 것 아니겠나. 전두환 신군부만이 일본의 이익을 잘 보호해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유명한 막후 실력자인 세지마 류조다. 세지마 류조는 일제 군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장기간 소련에 억류당한 사람이다. 이 사람의 회고록이 1995년에 발간되면서 여러 가지가 밝혀졌다. 그중 하나는 40억 달러를 제공할 때도 세지마 류조가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로부터 경제 협력에 관한 양국 협상 내용을 들은 세지마 류조는 한국에 와서 권익현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엔 차관 18억5000만 달러, 수출입은행 융자 21억 5000만 달러, 합치면 40억 달러인데 이것을 7년 기간에 금리 6퍼센트로 해서 한국에 제공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이것이 전두환 정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세지마 류조는 일본군 대본영과 관동군에서 참모로 활동했다. 1945년 패전 후 소련군의 포로가 돼 11년간 시베리아에 억류됐다가 1956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일본 정계의 흑막으로서 한일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2년에 이뤄진 40억 달러 융자 협상과 관련, 세지마 류조는 협상 후 자국 총리의 서한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했고 그것이 이듬해인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전격 방한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편집자') ▲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집권하자마자 전두환 정권에 40억 달러를 융자해주는 등 한국의 신군부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사진은 1988년 2월 10일, 총리에서 물러난 후 청와대를 찾은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반갑게 맞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 ⓒ연합뉴스 ▲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집권하자마자 전두환 정권에 40억 달러를 융자해주는 등 한국의 신군부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사진은 1988년 2월 10일, 총리에서 물러난 후 청와대를 찾은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반갑게 맞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 ⓒ연합뉴스 전두환 정권의 올림픽 유치에 힘을 실어준 일본 극우 프레시안 :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1985년 8월 15일, 패전 후 처음으로 현직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한 인물이다. 서중석 :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어떤 사람이냐. 방위청 장관도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총리에서 물러난 후 도쿄 재판에 대해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단적으로 이야기했다. "A급 전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범죄인이라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고다마 요시오나 기시 노부스케만 포함하는 게 아니라 도조 히데키(1941년 미국을 공격할 당시 일본 총리)도 포함하는 것이다. 우린 일본 전범을 제대로 처단하지 않는 걸 문제 삼는데, 이 사람은 이런 발언을 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이 문제 발언을 한 때는 2005년 6월 26일이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도쿄 재판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고 자국 전범들을 비호하는 발언이 거듭 나왔다.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은 일본 국내에서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발언 전날에는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도쿄 재판 당시 A급 전범을 비롯한 피고 전원이 무죄라고 주장한 인도인 판사의 비석 제막식이 열렸다. 비석 건립을 지원한 측은 "역사에 대한 자학적 풍조 등의 근원은 도쿄 재판에 있으므로 그 문제성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발언 이틀 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자민당 국회의원 모임이 발족했다. '편집자') 이 사람은 1982년에 총리가 되는데,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교과서의 외국 관련 서술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게 바로 그해다. 일본 문부성이 3.1운동을 폭동 같은 것으로 기술하라고 검정 지시를 내리고, 중국 침략에 대해서도 침략이 아니라 진출로 표시하라고 했다. 그런 표현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싶은데,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교과서 파동이 일어나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강력히 항의하게 된다. 항의가 거세니까 문부성은 유명한 근린 조항(역사 서술에서 주변 아시아 국가를 배려한다는 내용)을 검정 기준에 추가했다. 그렇지만 이게 최근에 와서는 완전히 폐기됐다고 보고 있다. 아베 신조 정권 들어서는 한국이나 중국을 고려해가면서 교과서를 기술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1987년 독립기념관이 개관한다. 그런데 독립기념관 건립은 교과서 파동으로 강렬한 반일 운동이 일어나니까 전두환 신군부가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조치와 관련이 있었다. 사실 독립기념관은 진작 만들어졌어야 하는 건데, 이때 공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준공을 앞두고 1986년에 큰불이 났다. 그래서 개관이 늦어졌다. 독립기념관은 지금 대단히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한일협정과 뒤틀린 한일 관계의 교훈 되새길 때 프레시안 : 일본의 막후 실력자들과 연관된 문제는 노태우 정권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서중석 : 노태우 정권이 출범할 때도 일본 측과 긴밀한 관련을 맺었다. 세지마 류조 회고록을 보면 노 대통령 당선 후 단독으로 만나, 대통령 선거는 문제가 많으니 헌법을 개정해 내각 책임제를 추진할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이 사람 회고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노 대통령이 일본의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노 대통령도 친일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우선 노 대통령이 1990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천황이 "통석(痛惜)의 염"이라는 말로 한일 간의 어려운 문제에 대답했는데, 이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통석의 염"이라는 게 대등한 국가끼리 쓸 수 있는 말이냐, 그게 무슨 과거사 반성이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한자에서 통석의 어원을 볼 때 그렇다는 지적을 당시 많이 받았다. 논쟁이 많이 됐다. (통석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말로, 당시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낯선 단어였다. 그 의미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사죄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이 발언을 의미 깊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편집자') 노 대통령이 재임 당시 일본 연극인과 한 인터뷰 내용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한 마찰, 한국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잡지 <문예춘추>(1993년 3월호)에 게재됐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두 나라가 대립할 때에는 더 큰 나라가 여유를 보임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 약한 사람일수록 큰소리를 치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비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립이 생겨 커질 때는 더 큰 나라, 더 여유가 있는 나라가 양보하는 것이 서로 요령 있게 문제를 푸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그런 여유를 보인다면 한국민은 감격을 잘하는 만큼 대단히 감사하며 진정한 우정으로 응할 것이다. (…) 일본과의 사이에는 과거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으나, 동시에 나는 일본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특히 일본인이 갖고 있는 미덕인 '의리와 인정'은 나에게 큰 좌우명이 돼왔다." 이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것이 한국인들을 분노케 했다. 어떻게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일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에 들어서는 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서부터라고 지적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에 취임하는데, 1961년부터 1993년까지 얼마나 긴 세월인가. 그 긴 세월 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정말 불행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그 불행은 계속되고 있다. 아베 신조 정권이 저런 극단적인 짓을 함으로써 그 불행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들은 한일 회담, 한일협정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잘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오늘날 어떻게 귀담아들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당히 등한시하는 점이 많이 있다. 김덕련 기자, 서어리 기자 메일

조선일보 사주 소유 코리아나호텔, 시의회 청사부지 무단점유


[단독] 서울특별시의회 주차장 부지 24년간 무단사용…코리아나호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땅, 의회에 파가라고 했다" 입력 : 2014-11-11 13:21:55 노출 : 2014.11.12 09:08:53 옥외주차장 진입로의 시유지 공짜 사용 특혜 논란을 받고 있는 코리아나호텔이 서울시의회 부지의 일부를 무단 점유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사주 일가가 소유한 코리아나호텔은 서울시의회 소재의 시유지 서울 태평로1가 60-1번지의 일부를 호텔측 옥외주차장으로 무단 사용하고 있다. 코리아나호텔은 지난 92년 11월 시의회 청사 부지인 60-1번지 옆인 60-18번지에 67대 규모의 철골주차장을 설치했다. 옥외주차장의 최초 설치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코리아나호텔측은 2014년 현재까지 22년간 서울시의회 부지를 무단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주차장 쪽에서 서울시 의회 청사 주차장쪽으로 본 장면, 반달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코리아나호텔이 무단점유한 부분. 사진=윤성한 논설위원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코리아나호텔의 옥외주차장 진입도로 특혜사용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코리아나호텔측이 시의회에 해당 점유지의 사용을 유지하는 대신 차량3대 분의 주차장 사용권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알려졌다. 서울시의회 사무처는 “코리아나호텔측의 시유지 점유사실을 옥외주차장 출입구 부지논란이 불거진 최근에야 인지하게 됐다”면서 “문제가 제기된 만큼 해당부지를 측량하고, 법률검토를 거쳐 처리방안을 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코리아나호텔 총무과 관계자는 “주차장 신축 이전 시절부터 축대가 있었으며, 주차장으로 이용해 왔지만 사용이 많은 공간이 아니었다”며 “최근 방음벽 공사를 진행하면서 더 이상 필요성이 없어져 의회 측에 파가고 싶으면 파가라고 했다”고 밝혔다. ▲ 서울시 의회 청사 부지에서 코리아나 호텔의 무단 점유 바라본 장면. 툭 튀어나와 차량을 막아 서고 있는 행태다. 사진=윤성한 논설위원 서울시 재산관리과 관계자는 “처리방향은 재산관리를 위임받은 서울시 의회가 결정해야하고, 현장상황을 확인해봐야한다”면서 “공유재산 관리법상 무단 사용이라면 변상금 부과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호 서울시의회 의원(도시안전건설위원회)은 “코리아나호텔의 서울시의회 부지 무단점용문제 등을 서울시의회 행정감사에서도 제기할 계획”이라며 “코리아나호텔은 사회적 공기인 언론사의 특수관계사인 만큼 그 누구보다 엄정한 법집행의 대상이 돼야한다”고 밝혔다. 코리아나호텔 옥외주차장 진입로 특혜사용에 대한 비판성명을 발표했던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김언경 사무처장은 “세월호 관련 농성자들의 광화문광장 사용을 불법이라고 비판을 가했던 조선일보와 TV조선 기자들은 사주일가 사업체의 공공부지 무단사용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로 비판해야한다”고 말했다. ㈜코리아나 호텔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40%,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30%,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20% 주식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 서울시의회가 자리한 서울시 태평로 1가 60-1번지 붉은선으로 표시, 자세히 보면, 작은 파란 지붕이 한쪽 있는 6각형의 구조물인 코리아나호텔 옥외주차장에서 서울시의회 청사 부지쪽으로 튀어나온 반달형 구조물이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위성 지도 관련기사 ① 특혜 논란, 조선일보 사주 호텔의 시유지 ‘공짜’ 사용 관련기사 ② 코리아나호텔 시유지 공짜 이용 논란 또 있다 관련기사 ③ 코리아나호텔 시유지 특혜 논란…중구청 “현장 실측했다” 관련기사 ④ “조선일보 기자들, 코리아나호텔부터 취재하라” 윤성한 논설위원 | gayajun@mediatoday.co.kr

미 정부가 발휘한 전격성의 실체


<분석과전망>북한의 미국인 석방을 놓고 확인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상한 조짐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1/11 [21:4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미국인 석방과정에서 자신이 지불한 댓가는 없으며 핵문제 또한 거론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석해 볼 만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석방해놓고 나서 밝힌 것은 딱 한 가지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억류 미국인들의 행동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직접 밝힌 것은 아니다. 9일 CNN 방송이 보도한 내용이다. 북한 정부가 그러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 것이다. 그것이 다이다. 그런데 미국 행정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 석방과 관련하여 수많은 얘기들이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이상함은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미국인 2명을 보내놓고 나서 정작 아무 말도 않고 있는 것과 비교되면서 더욱 더 또렷하게 부각된다.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두루두루 빠지는 것 없이 다 나온다. 1.석방과정에 미국은 북한에 댓가를 지불하지도 북핵문제를 거론하지도 않았다? 석방과정에서 북한에 지불한 대가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오바마 행정부가 강조하는 것을 우선 들 수 있다. CNN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무부 관계자들이 그 앞장에 선다. 고위관계자, 익명의 관계자 등으로 표현된다.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냈던 조엘 위트도 언론에 “미국인 2명의 석방은 북한이 핵 협상에서 간절히 요구했던 연료와 식량 지원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찌보면 사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방 댓가가 없었다는 것을 오바행정부는 한사코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핵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도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부부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온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클래퍼 국장의 방북과정을 설명하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는 말을 꺼낸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의 10일 정례브리핑에서도 확인된다. 특별한 것일 수가 없다. 국무부가 억류자 석방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은 한 두번이 아니다. 백악관 역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행동이 없는 한 별도의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었다. 그런데도 사키 대변인을 뛰어넘어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문제를 강조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10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문 중인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특사로 방북한 클래퍼 국장이 "북한의 핵 능력 개발 등 미국의 보다 광범위한 우려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언급을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뉴욕타임즈’는 큰 오보 하나를 내게 된 셈이다. 11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클래퍼 국장이 북한 측에, 미-북 관계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핵 계획을 포기하기로 한 과거의 합의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보도를 한 것이다. 이번 미국인 석방사건과 관련하여 오바마 행정부가 지불한 댓가는 전혀 없었으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핵문제 거론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하는 것일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의 고위 당국자는 "북한 측과 외교적 대화를 위한 게 아니었다"며 "억류 미국인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클래퍼 국장의 방북을 설명한다. 클래퍼 국장의 방북이 인도주의 차원의 논의에 한정되었다는 것이다. 2.오바마 행정부가 발휘한 전례 없는 전격성 이번 미국인 석방은 면밀히 지켜보지 않아도 미국의 전격성이 최대의 높이에서 발휘된 사건이다. 언론들은 북한의 전격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의 실체는 그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인 석방과 관련하여 오바마 행정부가 발휘한 전격성은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도 금방 이해하기도 어려운 충격을 동반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교전상대이다. 매 사안마다 치열하게 전선을 치는 그야말로 이 세계 최고 최대 가는 적대국들이다. 그런데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적진의 수도를 방문한다. 자국민 두 사람을 석방시키고자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밀사로 파견된다고 하는 것은 전쟁사에서도 평상시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외교사에서도 그 전례는 쉽게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설명을 내놓기는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클래퍼 국장이 외교적 영역에 있지 않고 안보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어서 적절했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앞 뒤가 안 맞는 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클래퍼 국장은 설명대로 외교적 영역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안보 그리고 국가정보에 핵심인 것이다. 이를 오바마 행정부는 클래퍼의 방북이 북한과의 핵문제 등 외교문제에 있지 않고 단순히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방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모순된다. 인도주의 사안으로 접근한다면 인도주의와 관련 없는 인물이라도 누구든지 고위급에서 보내면 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말하는 “트랙 2(민간) 또는 외부 인사”를 선임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인 것이다. 돌아보면 북한 억류 미국인을 석방시키기 위해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나 전직 고위관리들이 평양을 방문했던 기존의 방식은 극히 자연스럽다. ‘미국인 석방건’은 정치일선에서 벗어나 소일하고 있는 이른바 ‘퇴물정치인’들에게 자신의 명성관리에 더 없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미 정부 차원에서는 미국이 국민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책임질 줄 아는 국가인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정치이벤트가 되어주었다. 미국인 석방문제를 인도주의 차원으로 접근했을 때 미국이 취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그러했던 것이다. 미 정부가 설명하고 있는 인도주의 차원의 논리를 가지고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클래퍼 국장은 방북에 앞서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 그리고 심지어는 국가명을 거명 않은 다른 우방국들에게 사전 브리핑을 통해 방북 목적에 대한 설명을 했다. 언론에서 확인되는 내용이다. 이것을 인도주의 차원의 논리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인도주의 차원의 해결의 정형이었던, 이전 미국의 전직대통령이나 전직고위인사들이 미국인 석방문제로 방북을 할 때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미 정부가 다른 나라에 사전 브피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이 미국인 석방교섭문제를 단순히 인도주의적 사안으로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보적 정책적 사안으로 접근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 정보기관의 최고 수장으로서 북한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한 정보는 물론 북한 정세 전반에 관한 최종 판단을 하는 클래퍼 국장을 방북시키는 것도 충격이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으로 충격적인 것은 다른 데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사과친서’를 보냈다는 것이 그것이다. 제아무리 반복적으로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전격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간첩행위’를 대통령이 나서서 인정하는 것으로 비추어져서였던 것일까? 미 국무부에서 대변인을 출두시켜 ‘사과친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11일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였다.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어떤 것이 되었든 미 대통령이 친서를 보냈다고 하는 것이다. 자국의 국민 두 사람을 석방시키기 위해서 일국의 대통령이 친서를 보냈다는 것을 두고 미국이 국민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단순히 볼 사람은 없다. 정치가 그렇고 외교 또한 그렇다. 3.석방 대가 그리고 핵문제 거론은 없었다는 것은 전격성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조처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 문제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직접적으로 대표하는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을 방북시키며 더 나아가 그 손에 친서까지 들려보내야했던 것일까?” 미국이 이번 미국인 석방과정에서 발휘한 전격성과 관련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 서술이 바로 이것이다. 이번 북한의 미국인 석방에서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북한의 의도가 어떤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은 이 중요한 문제를 호도하는 것으로 기능할 뿐이다. 결국 이번 미국인 석방과정에서 발휘된 미국의 전격성은 미국이 말로 했던 것과는 달리 석방문제를 정책적으로 정보적으로 접근했을 때 동반시킬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특징으로 되는 것이다. 북한 억류미국인을 석방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이러한 전격성은, 석방과정에서 미국이 지불한 댓가는 없으며 핵문제 또한 거론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미 정부가 왜 애써 강조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결정적 이유들로 된다. 미국의 전격성이 불러올 수 밖에 없는 문제나 파장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일련의 정치적 조처들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대결정책을 폐기하고 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미국 내 보수파의 반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조처인 것이다. 물론 수세적인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참패를 당해 정치적으로 위기에 내몰려 이를 극복할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는 데로부터 나오는 태세인 것이다. 이로부터 극히 중요한 것이 하나 도출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할 준비를 완료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이에 걸 맞는 현실적인 결단을 준비해야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미국인 석방 과정은 오바마의 결단만이 북미 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거점 광화문광장 농성장


농성장 철거? "새끼 잃은 부모는 두려울 게 없다" [현장]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지막 거점 광화문광장 농성장 14.11.11 20:45l최종 업데이트 14.11.11 20:46l권우성(kws21)강민수(cominsoo) 기사 관련 사진 ▲ 보수단체, 광화문 세월호농성장 습격 어버이연합, 한겨레청년단, '일베'(일간베스트) 카페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광화문 농성장이 불법시설물이라며 농성장에 난입해 강제철거를 시도했다. 경찰 제지선을 뚫은 몇명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서명대까지 들이닥쳐 스피커를 넘어뜨리는 등 기물을 훼손하기도 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농성장 습격, 경찰 제압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서명대에 접근한 보수단체 회원들 경찰이 제압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1일 오후,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 명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고성을 지르며 소동을 일으켰다. 국회가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켰기에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이 미흡하기 때문에 진상조사가 이뤄지는 끝까지 농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잊히지 않기 위해 대국민 운동을 펼치기 위한 거점으로 농성장을 지키려 하고 있다. 서울시는 농성을 유지하겠다는 유가족의 입장을 존중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지막 거점, 광화문광장 농성장 기사 관련 사진 ▲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세월호농성장 습격' 세월호 진상규명 농성장에 난입했던 한 보수단체 회원이 항의하는 시민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날 오전 10시, 광화문광장 농성장은 분주했다. 광장 청소부가 바닥을 쓸었고,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아래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라는 노래가 흘렀다. 그룹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다. 농성장은 평일에는 시민 30~40여 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100여 명이 지키고 있다. 농성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최후의 보루다. 안산에는 희생자 유가족들이, 진도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있지만 서울에는 광화문광장 농성장만 남았다. 지난 7월 1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내걸고 단식농성 천막을 친 이후로 121일 흘렀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아래 가족대책위)는 지난 5일에는 청와대 앞 농성장을 철수했다. 그리고 지난 8일 국회 사무처는 세월호 국회 농성장을 일방적으로 철거했다. 농성장은 끝이 뾰족한 몽골 텐트 14동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순신 동상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상황실과 구급대원 대기실, 시민 천막, '4·16약속지킴이 사랑방'이, 오른편에는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종교인 천막 세 동과 시민 천막 등이 세워져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다. 잔디 좌우로 세월호 희생자 사진과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쓴 시민들의 편지가 철제 전시판에 붙어 있다. 농성장 입구에는 홍보용 배너 거치대에는 다음 내용이 적혀 있다. "세월호에서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들 중 가장 어린 7살 권혁규 어린이. 이 어린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기사 관련 사진 ▲ 11일 오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울 광화문광장 농성장에 9명 실종자들 중 가장 어린 권혁규군을 기억하자는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권혁규군의 아버지 권재근씨도 현재 실종된 상태이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11일 오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울 광화문광장 농성장에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참변을 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 이날 정부는 9명 남은 세월호참사 실종자 수색 중단을 선언했고,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에게는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또한 어버이연합, 한겨레청년단, 일베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광화문농성장을 철거하겠다며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특별법 통과로 명분 잃어? "끝까지 지켜보겠다" 정중앙에 위치한 두 동의 천막은 세월호 유가족인 '민우 아빠' 이종철(47)씨와 '영석 아빠' 오병환(42)씨의 거처다. 천막 외부에는 검은 글씨로 쓴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문장과 함께 실종자 9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또 단원고 희생자와 실종자 250명의 사진을 새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두 사람은 100일 넘게 이곳에 머물며 농성장 주인 역할을 해왔다. 두 사람은 농성장 유지의 명분을 한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7일 국회가 통과시킨 세월호 특별법이 미흡하기에,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는지, 광화문에서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또 시민들이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게 끊임없이 알리겠다고 밝혔다. 보수단체들은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농성을 할 이유가 없다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4·16약속지킴이와 국민간담회, <광화문TV> 등이다. 약속지킴이는 일상 속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활동을 해나가겠다는 캠페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세월호 참사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또 시험방송 중인 <광화문TV>를 통해 농성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이종철씨는 농성은 세월호 유가족들만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이 매일 얘기하잖아요. 저희만의 일이 아니라고요. 또 누군가의 일이 될 수 있잖아요. 진상조사가 제대로 될 때까지 지키고 있어야죠." 이씨는 "국민들이 잊으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농성장에서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이같은 방침에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유가족들이 농성장 유지를 원하고 있다"며 "서울시는 유가족들의 입장을 존중해 최소한의 편의를 위한 의료, 소방 등의 지원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보수단체 소란으로 농성장에 긴장감 흐르지만 기사 관련 사진 ▲ 11일 오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침몰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200여일간 지속되었던 세월호 실종자 수중 수색작업 중단을 발표한 가운데, 광화문광장 농성장 천막에 실종자 9명(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권재근, 권혁규, 박영인, 양승진, 이영숙, 고창석)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며 이름이 적혀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오후가 되자 한겨레청년단,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탈북난민인권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 명 소란으로 농성장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회원들은 먼저 서울시청 앞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농성장 철거를 요구했다. 경찰에게 막히자 일부 회원들은 서울광장 세월호 합동분향소 내 책상을 치고 의자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빨갱이들 당장 나가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후 농성장 길 건너편인 일민미술관 앞으로 이동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경찰들은 박원순 편이냐", "나라 망치는 농성장 철거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회원들이 농성장 입구까지 들어와 "너희들 당장 나가",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라며 고성을 지르며 몸싸움했다. 보수단체들의 철거 요구에도 유가족들은 기한없는 농성을 계획하고 있다. 한겨울에도 변함없이 농성장을 지킬 예정이다. 오병환씨는 "여당이나 정부가 무슨 꼼수를 부를지 모른다"며 "유가족이나 시민들이 광화문을 거점으로 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집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씨는 '추운 겨울, 지내기 불편할 것 같다'는 질문에 "얼어죽어도 농성 해야 한다"며 "겨울이든 뭐든 진상조사 제대로 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을 지켜보던 이종철씨는 "이렇게 시끄럽게라도 해야 국민들이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겠죠"라며 웃었다.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이씨는 대답했다.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 내 새끼 잃은 부모들은 두려울 게 없어요." 농성장 천막은 누구 것? 서울시는 유가족들의 농성 유지 입장을 존중하고 있다. 시는 지난 7월 14일에 유가족들의 천막 1동 외에 13동의 천막을 지원하고 있다. 시는 천막 1동에 대해서는 허가 받지 않은 불법 설치물로 변상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박원순 시장의 배려로 가능한 일이었다. 박 시장은 농성 4일차에 농성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 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시는 유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의료진과 구급대원을 24시간 대기시키고 시청 직원과 유가족의 핫라인(긴급전화) 개설했다. 또 필요한 천막 설치를 도왔다. 서울시 역사도심관리과 관계자는 "무단 점유에 따른 변상금이 하루에 5960원씩 부과되고 있다"며 "11일 현재까지 약 72만 원이 책정돼 있으며 농성 상황이 종료되는 시점에 유가족들에게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