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5일 금요일

대통령님, 황상무 씨의 '칼틀막 충성'에 지금 흡족하신지요?


[박세열 칼럼] 청산해야 할 검사 문화, 당장 황상무 씨 해임해야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3.16. 05:05:45


"오홍근을 끝내라"

결재 서류에 동그라미가 쳐 졌다. 서류에는 3가지 안이 있었다.

1안 "오홍근 일가를 몰살해라", 2안 "얘가 기잔데 저녁에 반드시 소주 한잔씩 하고 들어가더라. 술집에 가서 시비 걸어서 얘만 죽여라", 3안 "이놈 혼자만 가서 호되게 혼을 내라." 동그라미는 3안이었다.

곧바로 실행에 돌입했다. 1988년 8월 6일이다. 민주화의 공기를 마시면서 군인 출신 대통령이 들어섰다. 숱한 익명들의 묘한 죄책감이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다. 정보사 소속 군인 두 명은 '츄리닝'을 입고 민간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서울 청담동 삼익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타겟이 보이자 그들은 다가갔다. 

"당신이 오홍근이요?" 

군인은 다짜고짜 열굴에 주먹을 날렸다. 미리 준비한 칼로"호되게 혼을 내라"는 명령을 실행한 후 대기하고 있던 현대 포니투 승용차 등 차량 두 대를 나눠 타고 도주했다. 그리고 차량 일지를 조작했다. 정보사 군인들은 인체공학에 해박했다. 허벅지 바깥쪽에 칼을 쑤셔 박았다. 34센티미터를 찢었다. 깊이는 3~4센티미터. 허벅지 안쪽으로 칼날이 조금만 더 들어갔다면 동맥을 건드려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중앙일보 기자였던 오홍근은 당시 자매지 중앙경제신문 창간을 이틀 앞두고 창간준비를 위해 파견돼 있었다. 중앙일보 사회부 성회용 기자(후에 SBS 보도국장)가 경찰서에서 날밤을 새며 취재해 특종을 터트렸다. 이 사건은 이규홍 준장이 자신의 부하인 박철수 소령에게 지시했고, 박 소령은 네 명의 요원에게 '작전'을 맡겼으며, 정보사령관 이진백이 사건을 보고받고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테러의 원인이 된것은 월간중앙 8월호 '오홍근이 본 세상'이라는 꼭지에 게재된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그러나 범행을 저지른 군인들은 줄줄이 집행유예,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군판사 김광석은 "(범행) 동기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군을 아끼고자 한 충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폭행당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다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참으로 무도한 세상이었다. 

오홍근은 생전에 이런 증언을 남겼다. 

▲ 1988년 8월6일 출근길에 정보사 군인들에게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오홍근 당시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MBC와 인터뷰하는 오홍근 ⓒMBC 보도 화면 갈무리

세월이 흘렀다. 노인이 된 오홍근에게 한 남성이 불쑥 찾아왔다. 그는 과거 정보사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말했다. '회칼 테러'를 자행한 바로 그 부대가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라고 고백했다. 운전병이었던 그는 하필 비번이었을 때 일이 벌어졌다고 했고, 하마터면 그 테러에, 배차받은 포니차 운전수로 가담자가 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평생 그 사건이 자신을 짓눌러왔다고 말했다. 그 남성은 영화 <도가니> 등을 제작한 삼거리픽처스의 엄용훈 대표다. 엄 대표는 현재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취재와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제작 과정에서 투자 문제로 애로를 겪고 있지만, 조만간 오홍근 회칼 테러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 

여기에 또다른 정보사 출신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있다. 황상무라는 사람이다. 14일 MBC 보도를 보면 황상무 씨는 기자들과 점심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며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KBS 기자 출신이라는데 기본 팩트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아니라 청담동 삼익아파트다. 그리고 경제신문 기자가 아니라 중앙일보에서 중앙경제신문 창간을 위해 파견된 상태였다. 발령을 받긴 했으나 중앙경제신문은 회칼 테러(1988년 8월 6일) 전엔 창간도 되지 않았다.(중앙경제신문은 1988년 8월 8일 창간된다. 1994년에 중앙일보에 흡수 통합된다.) 

그 시절 군 정보사 출신 이력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모르겠지만, 황상무 씨는 자신이 한때 군복무로 몸담았던 정보사가 자행한 끔찍한 언론인 테러를 무슨 무용담 늘어놓듯 다른 기자들 앞에서 떠벌렸다. 그래도 기자들은 이런 자를 데리고 정치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잘 들어. 1979년 현직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따위의 농담을 던지진 않는다. 그래도 기자들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고, 사리분별은 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군 정보사 출신의 엄용훈 대표는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을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자신이 저지른 일도 아니면서 오홍근을 직접 찾아와 사죄를 했다. 군 정보사 출신의 황상무는 나랏일 하는 자리로 '출세'해 기자들을 앞에두고 헌법 정신을 유린한 끔찍한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밥자리 농담거리로 내뱉으며 협박했다. 오홍근은 병상에 누워 "언론인에 가해지는 마지막 테러이길 바란다"고 했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실 핵심 참모가 '칼 두 방'을 운운하며 오홍근을 다시 테러하고 있다. 

언론인 오홍근은 작고하기 전 <펜의 자리, 칼의 자리>라는 책을 썼다. 탁월한 제목이다. 칼은 군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검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칼은 칼집에 꽃혀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허벅지에 꽃혀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펜도 마찬가지다. 기자 출신 정치인이 기자들 앞에서 칼을 운운하고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검사의 자리, 언론인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참모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이탈하면 그건 더 이상 펜도, 칼도 아니다.

군부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군사 문화'를 비판하고 있던 언론인을 칼로 찌른 비극적 테러 사건을 시시껄렁한 농담거리로 소모하는 자들이 '운동권 청산론'을 운운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오홍근 회칼 테러가 있은 후, 당시 민정당 중진들이 노태우 대통령과 다른 일로 만난 자리에서 '오 아무개 테러사건은 안 일어났어야 우리에게 좋은 사건이었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 노태우는 "제가 대통령으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참으로 뻔뻔하고 무책임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래도 '미운 언론'에 '칼 두 방'을 운운한 황상무의 '대통령을 아끼고자 한 충성'을 보면서 즐기고 있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군인 대통령과 검사 대통령이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겠나. 조폭식 '의리'가 '검사 문화'는 아닐 것이다. 

언론 자유를 위협한 망언을 내뱉은 황상무 씨를 경질하는 것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산해야 할 검사 문화'를 유권자들이 청산해 줄 것이다. 

▲1988년 9월 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4가 종로성당에서 열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장 문익환 목사) 주최 '군사문화 종식과 백색테러 추방을 위한 시민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은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군사문화종식과 백색테러 추방을 위한 시민토론회를 갖고 오홍근 씨의 테러와 우리마당 피습사건의 진상규명, 군사문화 청산, 양심수의 전원석방 등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고 기록했다. ⓒ노무현사료관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기고] 3.15 마산항쟁과 윤석열의 민생토론회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4/03/15 [23:14]

오늘은 3.15 마산항쟁 64주년이다.

 

60여 년 전 선거는 오늘날과 달랐다. 

 

농촌은 라디오는커녕 신문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집들이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두 세 집 건너 이야기하면, 후보가 일제 강점하에서, 해방공간에서, 6.25전쟁 시기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후보의 가문과 조부 이력, 특히 친일 반민족 전력이나 부정·비리 등 후보의 면면을 파악하기 쉬웠다.

 

자유당은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제5대 부통령 선거에 무조건 이기기 위해 온갖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대통령이, 장관이, 공무원이 직접 선거에 나서서 관권 불법 부정선거 그리고 공갈 협박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 

 

물론 관권 불법 부정선거의 원흉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의 탐욕(貪慾)과 여촌야도(與村野都)의 수수께끼

 

1960년, 이승만은 85세의 고령이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출마하는 바이든의 나이가 81세이다. ‘너무 늙었다’라고 미 대선의 최대 리스크로 부각 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의료 위생 환경 상태가 아닌 64년 전 당시로 생각하면, 85세인 이승만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은 노인의 권력 탐욕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황당무계(荒唐無稽)했다. 조선 이씨 왕조의 부활이자 이승만 자신을 우상화(偶像化)하려는 행위로 민중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과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을 겪은 민중은 숨을 죽였다. 너무나 큰 홍역을 앓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민들이 미군정으로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분단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격렬한 정치투쟁을 겪으며 가지게 된 정치적 패배의 상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래서 한국의 농민들은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되는 일이 있나’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효능(efficacy)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김태일, 「농촌사회의 구조변화와 농민정치」, 『한국현대정치론 1』, 한배호 편, 오름, 2000.) 

 

농민은 그동안 치른 홍역 속에서,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차단당하고, 조직화는 아예 엄두를 못 냈다. 농민은 정치에서 아예 배제당했다.

 

농민 자신이 피해 대중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당한 처절한 탄압과 희생으로 인해 ‘더 이상의 피해나 당하지 말자’는, 정치 불신과 무관심이 농촌을 지배했다. 

 

이것이 당시 선거에서 나타난 농촌 여당 승리, 도시 야당 승리라는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의 수수께끼였다.

 

함석헌은 『사상계』 58년 4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본에서는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 셋이다. 남한은 북한을 쏘련 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는 백성이다. (중략)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중략) 선거를 한다면 노골적으로 내놓고 사고팔고 억지로 하고 내세우는 것은 북진통일의 구호뿐이요. 내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니, 통일하는 것은 칼밖에 모르냐?”

 

기상천외한 3.15 부정선거 

 

이승만은 직접 1959년 3월 ‘최후에 써먹을 총알’이라는 43세의 최인규를, 선거 진두지휘하는 내무부장관에 지명한다. 

 

이미 윤석열과 한동훈 조합의 원조로, 64년 전에 등장한다.

 

최인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불러 놓고 “어떠한 비합법적인 비상수단을 사용하여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꼭 당선되도록 하라. 세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 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라고 공무원 부정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했다. 

 

이것이 바로 1960년 3월 15일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대하는 자유당의 선거운동이었다.

 

선거운동으로 4할 사전 투표, 3인조·5인조 공개 투표, 유권자 명부 조작, 완장 부대를 동원한 위협,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수 조작 등 온갖 기상천외한 선거 불법 부정 방법이 동원되었다. 또한 농촌에서는 막걸리 고무신 선심 선거가 판을 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당 선거 판세는 너무도 암울했다. 조봉암은 사형을 당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도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운명했다.(1960년 2월 15일)

 

이런 호조건(?)에서 당선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불법 부정선거로 몰락의 길을 간 것은, 이승만의 고집과 추종자들의 권력욕 때문이었다. 

 

물론 뒤에는 세계의 냉전 반공 교두보로 이승만을 이용하려는 미국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참담한 불의를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마침내 끓어오르는 분노가 대구에서 폭발했다.

 

독재 권력은 야당인 민주당의 강연회가 있을 예정인 대구에서 시내 고등학생들을 일요일에도 불구하고 강제 등교시켰다. 학생들의 강연회 참여를 원천 봉쇄하고자 한 야비한 술책에 학생들은 격분했다.

 

3.15 마산항쟁의 방아쇠, 2.28 대구 학생의거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인 28일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북고 학생들이 먼저 시위에 나섰다. 불어난 시위대는 민주당의 강연회장에 가지 않고 시내 중심가로 진출했다. 학생들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보다 이승만 독재 권력에 저항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2.28 대구 학생의거이다.

 

그들은 일제 지배하에 신음하던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났다. 

 

1945년 일제 패망 후의 해방공간에서는,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사람만 바뀐 미 제국주의에 의한 제2의 신식민지임을 알았다. 

 

1948년 이승만과 반민족 세력에 의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고, 남쪽만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백만 민간인 학살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를 느끼며, 우리 앞 세대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죽어 가는가를 보며 소년·소녀시기를 보낸 학생들이었다.

 

사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반정부 데모였다. 

 

1990년대까지 이어진 학생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최초의 유혈 사태는 3월 15일 마산에서 발생했다. 선거 무효와 부정선거를 폭로하며 시위를 벌이던 민중에게 경찰이 발포했다. 이날 8명이 희생됐고, 80여 명이 다쳤으며, 200여 명이 연행되었다.

 

그런데 4월 11일 아침, 3월 15일 시위 때 눈에 최루탄을 맞고 죽은, 김주열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떠올라 2차 “마산항쟁”이 시작된다. 마산 민중 2만여 명은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마산 경찰서와 시청에 난입하고 파출소를 습격했다. 이날 밤 경찰 발포로 2명이 또 희생된다.

 

다급해진 이승만은 “이 난동에는 뒤에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도 있어서 지금 조사 중”이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15일에도 공산당 선전에 속아서 “마산 폭동”이 일어났다는 특별 담화를 또 낸다.

 

민중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승만이 직접 나서, “마산항쟁”을 빨갱이가 조정한 것으로 몰고 간다. 한술 더 떠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은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3.15 마산항쟁으로 곪을 대로 곪은 자유당 정권의 환부가 드디어 폭발하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단독 정부 수립으로 조국을 분단시킨 원흉인 이승만은, 마침내 1960년 4.19혁명으로 민중으로부터 단죄받아 쫓겨난다.

 

이승만의 죄과(罪過)

 

이승만이 일제 강점하에서 하였다는 독립운동은 독단적 행동으로 항일운동 세력의 분열만 일으켰다. 그는 분열주의자였다. 

 

또한 해방공간에서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한 친일파의 아버지이었다. 

 

특히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충성심은 1948년 9월 1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착취를 제도화해 주는 ‘한미 재정 및 재산 이양에 관한 협정’ 체결을 위한 발언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이승만은 사대 숭미(崇米)주의자였다. 

 

“미국 측 제안대로 전부 동의하라. 미국의 힘으로 정부가 세워졌고 앞으로도 미국의 힘에 의하여 유지될 우리 정부가 미국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러 가면서 그들의 그만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한동혁 엮음, 「안재홍 유고집」, 『지배와 항거』, 힘, 1988.) 

 

그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 이후 서북청년회 등 정치 깡패를 이용한 정적 탄압, 제주 4.3사건,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 사건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중을 죽인 학살 책임자였다. 

 

이승만은 1949년 제헌국회 내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외국군 철수와 평화통일을 주장한다고 남조선노동당의 국회 내 프락치로 몰아 대거 구속하고, 무엇보다 민족통일 세력에 대한 영원한 전쟁을 선포한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반인권·반민주 범죄자였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주장하여 6.25전쟁을 유발하게 하였으며, 전쟁 전후 군경을 동원해 민간인 백만여 명을 학살한 범죄 집단 우두머리였다. 특히 한강 인도교 폭파,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부산정치파동 등 전쟁 중에도 책임회피만 한 보신주의자였다.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이승만의 독재 범죄 행위는 사사오입 개헌, 진보당 사건과 당수 조봉암 사법 살인, 3.15부정선거, 4.19혁명 당시 115명의 사망과 수천 명의 부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윤석열의 기괴한 민생토론회를 빙자한 선거운동(?)

 

어제 14일, 4.10총선 25일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전라남도를 방문해 “영암에서 광주까지 47㎞ 구간에 약 2조 6천억 원을 투입해 독일의 아우토반과 같은 초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지금까지 스무 번째 ‘민생토론회’를 1월부터 평균 ‘주 2회’ 꼴로 계속하고 있다. 실제 토론회는 이루어지지 않고, 대통령 혼자 발언하는 기괴한 토론회(?)이다. 

 

그간 민생토론회란 구실로 윤석열은 경기도 8회, 영남 4회, 서울 3회, 충청 2회, 인천 1회, 강원도 1회, 전라도 1회를 열었다. 하나같이 4월 총선의 전략 지역으로, 실질적 선대 위원장(?) 노릇을 하며 정책 공약도 남발하고 있다. 

 

주요 정책 공약에는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2월 26일, 충남), ‘신공항 광역급행철도 건설’(3월 4일, 대구),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비(B) 노선 착공 기념식, 경인고속도로·경인철도 지하화’(3월 7일, 인천), ‘강원도 산악관광 활성화 계획’(3월 11일, 강원) 등이 있다. 

 

한겨레 15일자 사설의 일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고 있는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총사업비가 약 900조 원에 이르는 개발 공약을 쏟아내면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이미 착수한 사업을 포장만 달리해 우려먹는 등 총선용 공수표를 무책임하게 남발하고 있다.”

 

현재 세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민생토론회라고 하면서,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진짜 민생 문제인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달걀만한 귤 하나가 1,000원이고 사과 하나가 5,000원이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1% 올랐지만, 신선 과일은 무려 41.2%, 신선 채소는 12.3% 치솟았다. 

 

민주당은 윤석열의 민생토론회에 대해서 “불법 관권 선거”라며 공무원이 직무 또는 직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을 위반한 혐의로 윤석열을 지난 7일 경찰에 고발했다. 사실상 ‘선거 개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민심의 총선 전망은 밝다

 

전망이 어두우면 현재 유리하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전망이 밝으면 지금 어렵더라도 싸우라 하였다.

 

이번 4.10 22대 총선은 대통령과 언론 그리고 공안 세력들이 총력으로 덤벼들고 있지만, 민심의 총선 전망은 밝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가 치닫고 있지만 이제 끝이 보인다.

 

현재 윤석열의 선거 패악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당사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도피극, 비판 언론에 ‘회칼 테러’ 언급하는 대통령실, 제재 남발하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언론 ‘입틀막’ 등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악행을 숨 쉬듯 하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윤석열과 졸개들이다.

 

총선 패배는 곧 식물 대통령이라는 것을 윤석열도 잘 알고 있다. 

 

윤석열은 민생토론회를 구실로 총선 전략 지역을 돌면서, 포퓰리즘 정책 남발 등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검찰·경찰 등 휘하 공안 기관들을 총동원하고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윤석열 집권 2년의 저성장, 소득과 부의 양극화, 물가·금융 불안정 등 기존 ‘삼중고’에 더해 고금리, 전쟁 위기로 점철된 절망의 시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민중은 단 하루도 윤석열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민중은 나라가 망하고 있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역주행 반역의 시대, 분열 공작과 탄압을 반드시 민중의 힘으로 뚫어야 한다.

 

일제 말의 엄혹한 상황에서 해방을 내다보고 민족의 단결을 강조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친필 신년 휘호이다.

 

分卽倒合必立(분즉도합필립)

분열하면 곧 쓰러지고 단결하면 반드시 일어난다.

 

역사는 저절로 전진하지 않는다! 

 

민중의 힘을 믿고, 4.10 22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반제·자주·민주·평화애호 세력은 총단결하라!

한동훈,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회칼 발언’에 “부적절”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 내는 한동훈, 이종섭 전 장관 출국 논란 “들어와서 절차에 응해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후 광주시 남구 광주실감콘텐츠큐브에서 입주업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03.15.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협박 발언 논란’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 같다”면서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한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광주 남구 광주실감콘텐츠큐브(GCC)에서 이루어진 입주업체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현안에 대해 답했다. 그는 ‘황 수석의 회칼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앞서 황 수석은 지난 14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MBC를 겨냥해 1988년 언론인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 황 수석은 이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고 먼저 MBC를 언급한 후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아파트 앞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라고 말했다. 황 수석이 언급한 회칼 사건은 1988년 8월 6일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오홍근 기자가 정보사령부 소속 요원 3명으로부터 당한 회칼 테러를 가리킨다.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들 요원은 “죽이지는 말고 혼만 내주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 이 같은 테러를 일으켰다.

한 위원장은 “제가 발언 맥락이나 경위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라면서도 해당 발언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데도 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관련해 “언제라도 공수처가 수사가 필요해서 출국금지를 한다면, 공수처가 신속하게 (이 전 장관을) 소환하고, (이 전 장관) 본인도 당연히 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본인이 책임감 있게 들어와서 절차에 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의 도태우 변호사 공천 취소에 대해서는 “도 후보가 5.18에 관한 과거 입장에 대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헌법전문 수록과 5.18 정신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그런 정도 반성이면 과거 특정한 시기에 잘못된 생각 갖고 있었더라도 우리 당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공천관리위원회는 그 이후에 다른 사안에 대한 언급들이 나오게 되면 우리 당 입장에서는 공천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새로 한 것 같다. 거기에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후 광주시 동구 충장로를 찾아 광주 동남을 박은식 후보와 함께 거리인사를 하고 있다. 2024.03.15. ⓒ뉴시스

다만, 장예찬 후보의 각종 망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못 봤다”면서 “살펴보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그간 언론에 보도된 과거 장 후보의 막말이 국민 눈높이에 맞다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발언이 나온 경위라던가 (발언 당시) 공직에 있었는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봐야할 것 같다. 지금 거기에 대해서 판단하지는 않겠다”라고 답했다.

‘공천이 취소된 도태우 변호사의 과거 5.18 폄훼 발언과 장예찬 후보의 각종 망언 등은 공개돼 있던 것들인데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라는 취지의 CBS 기자 질문에는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그는 “그 평가를 민주당에 대해서도 해주지 그러냐”라며 “그런 문제제기, (민주당에 대해서는) CBS 안 하지 않냐”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희가 문제없다는 게 아니라, 공천 관리를 하다 보면 그런 문제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같은 기준을 민주당에 적용하라”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한 위원장은 GCC 입주업체들과의 간담회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일정 이후 광주 충장로를 찾았다. 이곳에서 그는 광주에 출마하는 후보들과 함께 “이재명, 조국, 통진당 잔당 같은 세력들이 대한민국을 후진시키는 것을 반드시 막겠다”라며 “우리를 응원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여러분의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원한다. 그렇기에 정말 잘하겠다. 우리가 광주시민과 호남시민에게 잘하겠다”라고 외쳤다.

한 위원장의 거리유세에서는 일부 지지자들이 “한동훈” 이름을 연호했지만, “한동훈 물러가라”라는 구호도 계속해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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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냥이 정치와 대한민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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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살의 청년 정치인 전지혜 씨가 승냥이들에게 갈기갈기 물어뜯겼다. 그는 결국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 정치인의 꿈 앗아간 승냥이 정치

전지예 씨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금융 정의를 실현하는데 오롯이 바쳐졌다.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이었던 그는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3 차세대리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 권력을 감시하는 MZ 활동가라고 시사저널은 그를 소개했다.

그러나 승냥이들에겐 전지예 씨의 금융정의연대 활동 이력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는 오직 한미 군사훈련을 반대한 ‘반미활동가’였을 뿐이다. 한미 훈련 반대가 곧 반미인가, 한미 훈련을 반대하면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는가 하는 초보적이고 상식적인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이 물어뜯기 시작했고, 한동훈과 국민의힘이 가세했다.

맘에 들지 않은 한 인물을 먹잇감 삼아 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그래서 정치판에서 배제하려는, 이른바 승냥이 정치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 왔다. 멀리 갈 것없이 21대 국회의 윤미향 의원은 승냥이 정치의 대표적 희생양이다.

승냥이 정치는 오늘도 계속되고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먹잇감이 발견되면 어떤 식으로든 ‘종북’, ‘반미’, ‘국가보안법’, ‘회계 부정’ 등의 시빗거리를 만들고,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평화와 통일을 외친 전지예 씨는 그렇게 승냥이의 먹잇감이 되었다.

승냥이에게 먹잇감 던져준 민주당

일부 승냥이들이 전지예 씨를 물어뜯으려 할 때, 민주당은 후보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상황실장 김민석 의원은 “비례후보가 국민 눈높이에 맞게 검증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운운했고, 비례연합정당 협의를 이끌었던 박홍근 의원은 “다른 분으로 추천을 요청”했다. 이재명 당대표 역시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합리적 의사 결정, 합리적 인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민주당에서 후보 교체 메시지가 나오자, 승냥이들의 공격은 본격화되었다. 민주당의 후보 교체 요구는 승냥이들에게 공격 신호를 내린 결과가 되었다. 민주당의 이런 행위는 결코 ‘선거 전략’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당의 행위는 승냥이 정치에 투항한 것이며, 민주주의를 배신한 것이었다.

민주당의 배신으로 승냥이 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승냥이들은 전지예 씨만이 아닌 정영이 씨와 임태훈 씨에게도 달려들었다. 그렇게 전지예 씨와 정영이 씨는 사퇴를 했고, 임태훈 씨 역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임태훈 씨마저 사퇴하면? 승냥이는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돌진할 것이다.

1/300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정치할 자격을 갖는다는 신념에 기초한다. 한미 군사훈련이나 사드 배치를 찬성해도, 혹은 그것들을 반대해도 정치할 자격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군복무를 마친 사람에게도, 양심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게도 정치할 자격을 동등하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300명 중 금융 정의를 주장하고 한미 훈련을 반대하는 청년 정치인 한 명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300명 중에 한반도 평화와 주권을 위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여성 농민 정치인 한 명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300명 중에 종교, 윤리, 도덕, 철학 등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남성 국회의원 한 명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달려들어 물어뜯는 ‘승냥이정치’에 의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있을 것 같으면 승냥이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민주당 류의 정치에 의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빠져 있다.

승냥이 정치를 청산해야 민주주의 가능

승냥이 정치가 기승을 부리면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그런 점에서 전지예 씨 사례는 민주주의 파괴의 전조이다. 우리 정치사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어김없이 독재 체제가 등장한다. 승냥이 정치는 친미 독재 체제를 지향한다.

해방 이후 자주독립국가 건설이 좌절된 후 이승만 친미 독재가 찾아왔다. 4.19 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실패하자 5.16 친미 반공 쿠데타가 시작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실패한 후 전두환 신군부 독재 체제가 등장했다. 촛불혁명의 실패 이후 또다시 윤석열 검찰 독재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승냥이 정치를 청산해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승냥이 정치는 민주주의 적일 뿐이다.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 힘을 심판하는 것은 승냥이 정치 청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승냥이들에게 먹잇감을 내주는 비겁하고 나약한 정치 역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필요 없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단결하고 연대해서 승냥이에 맞서 싸우는 정치가 필요할 뿐이다. 기존의 정치가 아닌 새로운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정치는 바로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승냥이들은 바로 지금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