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1일 수요일

[단박 인터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나쁜 여인' 박근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단박 인터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를 찾았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집회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함 신부는 '정의'에 대해 물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다"는 것. 2012년 대선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된 일이 벌어진 가운데, 전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함 신부는 강조했다.  

함 신부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을 되찾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대한 비판이 곧 박 대통령에겐 '폭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함 신부는 이어 더 긴 안목을 주문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도 지금 '100년 전쟁' 중에 있다"며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연대의 틀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6일 있었던 5번째 '단박인터뷰' 주인공 함 신부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함세웅 신부. ⓒ프레시안(최형락)
▲ 함세웅 신부. ⓒ프레시안(최형락)  
 
 
"현 정권, 기초가 부실하다" 

프레시안 : 지난달 28일 주말 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함세웅 : 어른들이 흔히 '좋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던가, '큰 집을 지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 전체를 말하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현 정권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기초가 제대로 된 정권이 아닙니다. 국가나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은 것인데,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심과 집단적 탐욕이 우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종교인으로서 '사건을 근원적으로 접근하자'고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됐습니다. 지난 대선이 불법·관권 선거라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큰 책임이 있고, 이에 덕을 본 현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법원은 판결한 것입니다. 2012년 12월 대선후보 TV 토론회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자신과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으로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이 분명히 입증됐습니다.  

선거를 통해 구성한 정부가 정당성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동선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선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정치민주연합(구(舊) 민주당)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으며, 동시대를 살며 침묵하고 있는 우리 모두도 책임져야 할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국민과 정치인들, 특히 법조인들이 깊이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고위공직자 후보자 인사 검증 때 수구·부패 언론은 '도덕적 잣대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도덕이 기초가 안 되는 정치·사회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습니까? 부패하고 불의한 자를 최고 공직자로 선출하는 것을 정상적인 국정수행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양심·도덕·정의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초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건물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프레시안 : 1987년 민주화 운동 이전에는 관건 선거가 노골적으로 있었지만, 법원의 판결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 드러난 것은 처음입니다. 도덕과 정의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함세웅 : 참 부끄럽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가장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도둑들이 하는 것'이라는 혐오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것을 창작할 때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합니다. 정치도 예술이니까 잘못된 것을 찢고 과감하게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회개'와 '정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로 인한 염증과 고름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프레시안 :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지금도 30%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세웅 : 지지율의 허구성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부정·관권 선거였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대선 당시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 원론적인 것을 얘기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이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朴 대통령, 폭압에서 해방시켜야…"  

프레시안 : 박근혜 정권의 인사 문제 등을 볼 때 우리 사회가 87년 체제 이후 합의한 여러 기준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함세웅 :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합니다. 인사권자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통령 후보자 시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공약을 100% 실천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약을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권력자의 오만한 자세는 수덕(修德)이 부족한 자격지심인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연민의 정도 느낍니다. 인격이 부족하고 정직하지 못한, 그리고 그가 스스로 설정한 올가미(함정)에서 해방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설정한 올가미'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함세웅 : 가톨릭도 1960년대 이전에는 아주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역사와 시대 앞에서 '교회가 하느님 앞에 정직한가'라며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역사적으로도 부족하고 죄인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그 교회 공동체가 정화되고 위대해집니다. 이때 비로소 하느님의 백성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에 교회 공동체는 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 복판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아름다운 교회관을 확인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또는 인간 공동체 안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 중 악한 사람, 특히 '폭압자를 배척해야 하느냐, 껴안아야 하느냐'를 고민하게 되는데 껴안아야 합니다. 그러나 껴안을 때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바로 자신의 인간성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뉘우치고 속죄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박근혜'라는 실체는 폭압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5000만 남한 국민의 폭압자입니다. 40년 전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시대의 폭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아버지와 싸웠는데, 또 그의 딸과 싸워야 한다니…. 참,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니,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그 여인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입니다.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의 의미를 되찾게 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되찾을 때 제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타락한 모습입니다.  

프레시안 :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가 '선거의 여왕'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대선 공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타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세웅 : 정치적으로 능한 게 아니라, 일종의 '언어유희'이자 '언어의 오염'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지만, 사실 단어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으로 자연 그대로 있어야 할 강만 오염된 게 아닙니다. 정치인이 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좋은 언어가 오염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이 나치 강제수용소 체험 수기를 쓴 책 <죽음의 수용소>(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와 <의미요법>(이봉우 번역, 분도출판사 펴냄)을 생각합니다. '의미요법'(로고테라피, Logotherapy)은 '말씀의 치유'라고 하는데, '난 살아야 한다.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살아야겠다'라고 의지와 희망을 갖고 끝까지 버틴 사람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현 정권 5년을 '역사'라는 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는 50년, 100년, 또는 1000년 단위로 기록하지 않습니까? "희망이 없다"는 이 시대와 집권자에 대해 역사학자나 문학자가 기록할 때에는 '그때 그 사람 참 나쁜 여인이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가 지난해 8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불러 국장과 과장 이름을 거론하며 "참 나쁜 사람이더라"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에 비춰보건대) 그런 사람입니다. 

거시적 안목으로 100년 이후를 생각하면서 현 정권을 평가하며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종북 몰이,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  

프레시안 : 지난 5일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정치적 의사 표출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돌발적으로 터져 나온 경우입니다.   

함세웅 : AP통신과 <뉴욕타임스>가 지적하듯 한미연합훈련이 남북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거나, 미국 보수 성향 매체 <워싱턴프리비컨>과 일본 <아사히>신문 말대로 미국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의 발언(2월 말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한중일 3국의 과거사를 덮고 가자'는 취지의 말을 함)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됐습니다. 

김기종 씨를 여러 회합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살아온 과정에서 상처가 많이 쌓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균형 감각을 상실한 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치료와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객관적으로, 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피습 사건을 김 씨 개인의 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시대적 책임이라는 연대 의식 속에서 성찰해야 합니다. 본인도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이를 새누리당과 집권세력, 수구집단이 말하듯 '종북 몰이'로 가서는 더욱 안 됩니다. 특히 무슨 일만 생기면, 만능 통치 약인 양 '종북이다'라며 손가락질하는데, 객관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제적으로 시선이 집중된 사건인데, 세계인들에게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종북 몰이'는 비인간적·야만적 왕따 놀이, 정신병자와 같은 비정상적 행업입니다. 성숙한 문화인의 기본과 양식을 갖춘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가 공동체 구성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어떤 사안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 즉 종북으로 몰아가는 폭언은 오히려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무리 건강한 주장이라고 해도 폭언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공동체 전체가 대처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6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 앞에 김기종 씨와 리퍼트 대사 두 분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일간베스트(일베)에서 활동하는 고등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린 사건, 또 일베 게시판에 여성과 호남 출신을 비하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에 빗댄 일 등 '종북'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혐오가 늘고 있습니다.   

함세웅 : 경찰이 '사제 폭탄 사건' 같은 경우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만 보면, 참 못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언론 또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의 <크리스턴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라는 언론은 '이 뉴스가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보도한다고 합니다. 언론인 스스로가 비도덕적 뉴스를 필요 이상으로 경쟁하듯 보도하는 태도를 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부 구성원의 일탈과 언론의 과열 경쟁은 사회 전반의 문화나 국민 수준이 올라가면 조절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 자체가 그렇게 폭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 세력과 박정희-전두환 시절 군부독재 세력 등에서 우리 사회의 폭력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근원을 따져야 하는데, 일련의 사건을 너무 현상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평화와 정의가 그만큼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세월호 참사, 분노를 넘어 연대로…" 

프레시안 : 세월호 참사,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또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함세웅 : 법과 상식에 기초해 정직하게 접근하면 됩니다. 한 번 거짓말하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4월 16일, 곧 1주년이 다가옵니다. 우리 학생과 시민들이 바다에 가라앉는 것을 전 국민이 몇 시간 동안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7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가 되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가 일제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쪽으로 쏠렸습니다. 고도의 언론 공작, 정치 공작입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공안 통치와 비슷합니다. 그렇다 보니, 세월호 유가족 입장에서는 정권의 진상규명 의지를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 활동이 오늘(6일)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조사 시작도 하기 전에,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세월호 인양 문제와 관련해 "세금 도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집권여당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규명을 위해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여야 간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억울함을 밝히고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하면서 "분노만 가지고는 안 된다. 분노를 삭이면서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종교인이라고 해도 자식을 잃은 엄마의 아픔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종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과 이를 지켜봤던 성모 마리아의 아픔을 되새겨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 가를 생각하며, 자식을 잃은 아픔을 연대적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에서 역사적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모든 사건은 결국 이웃과 연계된 민족사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내 아들딸이 나에게 역사적 교훈을 일깨워줬다. 그 의식으로 정부를 늘 감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문제가 정치적(이념적) 이해관계로 흐르는 데는 친일·독재의 잔재, 분단 세력과 신자유주의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4개의 가치를 중심으로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를 중심으로 한 근원적인 종합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 숨 한 번 쉬면…"  

프레시안 : 우리 사회가 친일·독재·분단·신자유주의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요?.   

함세웅 :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조금 더 민주주의에 가까운 시절이었지만,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이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에서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본의 노예가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선한 사회적 가치를 지녔지만, FTA와 해군 기지 건설 등 미국에 더욱 예속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거치면서 '이 정권도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게 됐지만, 박근혜 정권 또한 불법 선거로 얼룩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을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3년은 더욱 단련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벨기에에서 망명 생활 중 쓴 글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지만, 자유는 100년 뒤에 실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 역시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시민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게 <레 미제라블>입니다. 프랑스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 미래 시대의 좌표였습니다.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린 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만들었는데, 1905년 을사늑약을 기준으로 100년이 지났고, 1945년 일제 식민지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이제 70년 지났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 벗어난 지는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지금 '100년 전쟁' 중에 있습니다.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연대의 틀을 키워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 역사적으로 숨 한 번 크게 쉬면 지나갑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세월호 유가족이나 국민 모두에게 큰 치유가 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종교, 특히 천주교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함세웅 :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화활동가 등 현장에 투신해 있는 종교인도 많습니다. 교황 개인도 훌륭하지만, 국제적 지위와 사목적 신분 때문에 추앙받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교황보다 더 크게 헌신한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길잡이입니다. 그런 분들의 헌신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청춘=힘, 개성 있는 인간이 되라"  

프레시안 : 5년이란 시간이 금방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젊은이들에게는 힘겨운 일입니다. 2030대 젊은 층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함세웅 : 청년들의 현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로마에서 유학하던 20대 시절 인류복음화성 차관 피녜돌리(Pignedolli) 대주교가 훈화 시간에 나폴레옹 얘기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로마 교황을 억압한 인물입니다. 그런 폭압자를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성 있는 인간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나의 가치와 신념, 인격을 하늘같이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폴레옹이 천하를 호령하다 유배되면서 이탈리아 엘바 섬에 잠시 머물게 됐는데, 감시인들에게 자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항구에 가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고 합니다. '어디서 오는 건가, 어디를 가나, 무슨 목적으로 왔나. 당신 인생관은, 신관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길로 가면서도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나타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우주에 대해, 역사에 대해 관심을 드러낸 것. 그것이 '나폴레옹의 개성'이었습니다.  

당시 주교가 한 훈화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교훈이 다 우리 성서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최근 대학가의 '안녕들하십니까'와 '최경환 F학점' 대자보 등이 어른들에게도 교훈이 됐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자 모순적인 사회 현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가져야 할 꿈을 늘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이룩하는 젊은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춘' 자체가 바로 힘입니다. 선배 세대, 스승 세대를 넘어서고 거짓 무리들을 넘어서는 신선한 싹이기를 바라면서 늘 개성을 간직하길 바랍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집권 3년 동안 어쨌든 깨달음을 얻어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큰 꾸짖음을 한다면? 

함세웅 : (한참 있다가) 하긴 해야 하는데, 생물학자 등에 의하면 DNA는 안 바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사제니까, 나라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 정권이 잘 마무리되게 기도할 것입니다. 

* '단박 인터뷰'는 2015년 <프레시안>이 새롭게 연재하는 조합원과 독자 참여형 인터뷰입니다. 함세웅 신부님이 추천한 다음 주인공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입니다. 연구소 측에 인터뷰 요청을 한 상태입니다. 편집자. 

변혁 이끄는 북한 여성들

변혁 이끄는 북한 여성들

2015.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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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1.jpg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평양 여성들이 중국에서 유입된 패션을 따라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평양 거리에서는 단조로운 색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옷차림 이외에도, 여성들은 정부의 감시가 느슨한 지하시장을 활성화하며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봄, 지도자 김정은 곁에 우아한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이는 북한체제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 후 사람들은 이 여성이 김정은의 처, 이설주란 사실을 알았다. 이 여성의 등장은 배우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어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었던 그의 아버지 김정일(2011년 12월 사망)의 사생활과는 뚜렷이 대조된다. 평양의 신흥특권층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장소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차림새가 그렇듯이, 절제된 이설주의 세련미는 특별한 게 전혀 없다.
젊은 여성들의 거리 옷차림은 다양해지고 보다 화려해졌다. 하이힐과 통굽이 흔하고, 심지어 휴가 나온 젊은 장병들도 구두를 신었다. 중국 패션의 영향은 국영상점의 진열장에서도 엿보인다. 북한의 최대 신발업체인 보통강은 현재 까다로운 고객을 겨냥해 새로운 신발 모델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군복, 거꾸로 쓴 야구모자, 몸에 꽉 끼는 짧은 스커트 복장을 한 인기 팝그룹 모란봉 가수들의 머리모양을 흉내 낸 단발머리나 살짝 염색한 머리도 무척 유행하고 있다. 보다 온화한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RPDC)은 마치 스포츠 행사장에 치어리더들을 파견하듯, 중국, 캄보디아 등 해외에 운영 중인 북한식당에 젊고 예쁜 여성들을 파견한다. TV들이 여성 팝그룹의 공연 모습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국영항공사인 고려항공도 기내에서 같은 공연을 방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사람들이 가난의 경계선에서 허덕이고 있는 터에 평양의 모습은 환상이 아닐까? 과연 평양 여성의 외모는 변한 걸까? 국경의 폐쇄로 정보도 거의 없고, 방문객과 북한주민 간 접촉이 부재하기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파악하려면 퍼즐을 맞춰야 한다. 북한 주민들과 일일이 접촉하고 방문하다보면, 덮개로 덮여 있는 채 변한 게 없을 것 같은 사회가 변화되고 있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평양 여성들의 옷차림과 액세서리 그리고 거동에서 어떤 변화가 읽힌다.

혁명적인 동시에 여성적인’ 여성들
 북한3.jpg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1989년 김일성 국가주석이 잡지 <조선여성>에서 천명했던 것처럼, 1945년 해방 이후 등장한 북한의 ‘신여성’은 혁명적인 동시에 ‘여성적’이어야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분석가로 근무한 헬렌 루이즈 헌터는 “북한 여성들이 중국이나 소련 여성들보다 더 매력적인 여성미를 갖추고 있다”(1)고 했다. 북한 여성들의 옷차림은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여성들, 즉 단발머리에 무스를 발라 머리를 고정시켜 ‘슈퍼맨’의 모습을 한 포스터 속 중국 여성들의 모습보다는 훨씬 다양했다. 북한 여성들은 이따금 활동에 편리한 발목을 드러내는 전통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1960년대 말부터, 북한 정부는 전통의상이 과거와 현재 간 연속성을 상징한다며 주요 행사에 여성들이 전통의상을 입도록 장려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 농부, 가정주부 등은 서양식으로 옷을 입고, 정갈하게 빗거나 파마머리 또는 스카프를 두르고 다닌다.(2)
  1980년대 평양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 서울 소재 국민대학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북한은 옷차림에 있어 단 한번도 ‘은둔의 왕국’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한은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은 나라다. 20세기 전환기에 중국의 현대 패션이 조금씩 유입되자, 강경대응에 나섰던 북한은 최근 몇 년 사이 유연해졌다. 2002년 이후, 매년 봄마다 평양에서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 2014년 9월 패션쇼 때는 단색 전통의상에서부터 컬러풀한 전통의상까지, 그리고 1960년대의 고전적인 ‘샤넬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양장 등을 선보였다.
  옷차림 이외에도, 북한 여성들은 기근기(1995∼1998년)를 거치면서 생존활동의 산물인 시장경제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사회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여성들은 정권의 핵심에 거의 진출하지 못했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2013년 12월, 남편 장성택이 숙청된 이후 정치무대에서 모습을 감춤)와 지난 11월 27세의 나이로 북한 노동당 부부장으로 승진한 김정은의 여동생만이 정권의 핵심에 있다. 최신 자료로 알려진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들은 최고인민회의에서 4분의 1도 안 되는 의석과 노동당 중앙위원회 의석의 4.5%밖에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란코프는 2004년에 이미 “북한의 신자본주의는 확실히 여성의 얼굴을 지녔다”고 말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여성들은 기근의 주요 희생자였다. 이들은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며 성폭력과 강제 낙태 그리고 그밖의 학대까지 받았다.(3) 북한 전문가 박경애(4)는 이러한 시련 때문에, 여성들은 가정에서 보다 많은 독립성과 영향력을 확보했고,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진보적인 의식을 지니게 됐다고 평가한다.
빈사상태에 빠진 북한경제 속에서 종양처럼 번지는 다양한 형태의 지하경제활동은 이러한 압박(여권신장에 따른 압박)의 산물이다. 북한정부는 이같은 돈벌이(지하경제활동) 열풍을 잠재우긴 했지만,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강경정책과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적절히 혼합하며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5) 그러나 자율경제 활동 부문(상업, 서비스, 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것을 국민총생산(GNP)으로 정량화하기는 어렵다.(6)
  이같은 지하경제가 등장시킨 ‘신흥특권층’(기업인, 중개인, 상인, 소매상)은 전통적인 엘리트(대부분이 노동당 간부들이며,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같이한 세력의 후손들이다)의 폭을 확장시키며, 예전에 상대적으로 평등하던 사회의 이해관계를 세분화시켰다. 지하경제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자료의 부재로 인해 휴대전화 보급 대수 같은 단편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2014년 250만 명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었고, 주민 10명당 1명은 휴대전화를 구입하기 위해 대략 200~300 달러를 썼다. 이러한 신(新)사회계층의 등장을 증명하는 건 평양의 상점들이다. 국영상점은 예전보다 물건들을 잘 갖춰 놓았는데, 중국,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 건너온 식료품과 상품을 진열장에 내놓고 있다. 상점들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려는 구매자들(능력이 되는 사람들)과 구경꾼들로 붐빈다. 명품매장에 진열된 술, 화장품, 해외브랜드 옷들을 보노라면 국제사회가 북한을 상대로 취한 이른바 ‘명품’ 수출 제제조치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든다. 상품가격은 일반 대중에겐 천문학적이지만, 곧잘 팔려나간다. 이 모든 지하경제 부문에 여성들이 관여하고 있다.
  만약 법적 조항만 고려한다면, 북한은 아시아에서 선구적인 국가이다. 시민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 측면에서 보면, 북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무상교육, 배우자의 선택권, 이혼과 상속권 등)를 지녔다. 1946년 3월 토지개혁의 결과로, 가장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모든 농민 가정에 토지가 재분배됨으로써 가부장제의 물질적인 토대가 무너졌다. 당의 이익을 위해, 유교성향이 강한 사회의 전통적인 의무로부터 여성들이 해방된 셈이다. 당이 ‘당원들 간에’ 중매쟁이 역할을 하고 있어, 결혼은 이제 더 이상 가족 간의 대사가 아니다.
북한정부는 원칙적인 측면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남녀의 역할에 대한 개념에선 보수적이다. 성해방은 사회주의 구축에 일조한다. 또한 혁명적인 성향을 보이는 ‘신여성’은 ‘현모양처’여야 한다. 이러한 여성의 모습이 “혁명적인 시민의 모델”이다.(7)
한국전쟁(1950∼1953년) 이후, 북한 여성들도 국가를 재건하는 일에 나서야 했다. 상당수의 남성들이 전쟁 중에 전사해 이들의 일손부족을 여성들이 메꿔야 했다. 1950∼1960년대에 여성들은 생산에 기여하고, 주체사상을 교육 받고, 5호담당제를 책임지고, 가정도 건사하고, 자녀도 낳아야 했다. 이어서 중공업이 중시되고 여성들의 일자리가 희박해지면서, 여성들은 대수롭지 않은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1980년 중반의 경기 침체로,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자녀 교육과 가사에 전념한다. 정부 또한 보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열성적으로 선전하고, 출산을 장려하기 시작한다. 선량함과 단순함과 애정을 구현하는 미덕, 즉 어머니상이 노동당의 이미지와 결부되며, 가족은 국가의 은유가 됐다. 어머니들이 북한체제의 주요 영웅들이 된 셈이다. 예를 들면, 김정일의 어머니, 이른바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과,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을 비롯해 익명의 여성 노동자들과 공을 세운 어머니들이 영웅대접을 받았다. 기근이 오면서, 여성들은 북한의 생산활동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다. 기근의 혼란 속에서 여성들은 국가 생존의 톱니바퀴가 됐다. 반면에 남성들은 식량부족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한 탈북여성은 “북한 남성들이 헛짚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으며, 힘없는 일부 가장들은 체면을 구겼다. 가정주부들은 소매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직장여성들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2000년대 상반기 10년 동안에 출간된 소설들은 어머니의 책임감과 직장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을 잘 묘사했다.(8)

기근의 혼란에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
    
북한2.jpg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거대 암시장으로 전락한 농민시장은 여성 활동의 주 무대가 됐다. 여성들은 가족이 보유한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시장으로 갖고 나와 팔거나 장비, 그릇, 가구, 옷 등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또,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 즉 주택가 사이나 도로가 바닥에 좌판을 펼쳐 놓고 장작, 약초, 텃밭을 일궈 얻은 야채, 직접 집에서 만든 작은 과자 등을 판매했다. 또 일부는 이발, 구두수선, 삯바느질 등과 같은 서비스업에 뛰어들었다. 새벽부터 여성농부들의 기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들은 등이 휠 정도로 많은 짐을 지고 도시로 향한다. 일부 여성들은 먼 길을 걸어 다니거나 트럭 짐칸에 끼어 탄 채 돌아다닌다. 요즘도 여전히 여성들은 행상을 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도시인 신의주 역 플랫폼에 들어서자, 커다란 봇짐을 진 여성들이 눈에 띈다. 신의주는 양국 간 합법이건 불법이건 간에 대부분의 무역거래가 이루어지는 ‘관문’이다. 여성들이 소매업(노점상)과 식당업과 서비스업을 관장한다.(9)
  유교적 유산도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2011년 서울로 탈북한 40대의 한 여성은 “북한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남아있다”고 말하며, “남한에서조차도 탈북여성들은 그런 관습에 익숙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북한 여성과 남한 남성을 짝 지워주는 결혼 전문업체가 돈을 벌고 있다. 오래된 속담처럼, 완벽한 조합은 “남남북녀” 커플이다. 간혹 일부 남한 남성들은 “남한 여성이 대가 세다”고 생각한 나머지, 탈북여성들과의 결혼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이 이같은 자신들의 위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그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주로 가계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어 그 영향력도 커졌다.(10) 탈북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더 이상 의무로 여기지 않고, 되도록이면 이를 뒤로 미루고 있다고 전한다.
  더군다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혼란은 남녀 간 관계의 상대적인 자유화를 낳게 된다. 이는 소설들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과거에, 작가들은 커플 간 이데올로기적 교감을 강조했다. 이후, 이들은 로맨스와 감정을 거론하더니 한발 더 나아가 암암리에 욕망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이 반한 남자와 결혼하는 열정적이고 과단성 있는 여성들이 등장했다.(11)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존재하지 않던 이혼이 등장하고,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합의 이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흔하게 내세우는 이혼사유는 배우자의 “반동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혼 여성은 여전히 잠재적인 비난에 노출되어 있다. 파트릭 모뤼스는 자신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한 백남영의 소설 <친구들(Des amis)> (Actes Sud, 2011) 서문에서 “이혼은 사적인 행동이 아닌 사회적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탈북 여성들 또한 가정 폭력의 증가로 인해 이혼이 생기고 있다고 증언한다.
  또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경찰이나 군인들을 상대해야 한다. 남한으로 탈출한 한 여성의 증언에 따르면, 공장이나 군대 내의 성폭행과 성희롱이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기근으로 인한 인명 손실 이후, 북한정부는 출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홍보를 시작했다. 이 여파로 피임약을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병원들이 (공식적으로 법이 허가한) 낙태를 꺼리며 불법 낙태시술이 증가했고, 덩달아 그에 대한 위험부담도 생겼다. 성병 또한 우연한 기회에 갖는 매춘 행위로 말미암아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여성들은 1990년대의 후반부와 그 이후의 혼란을 틈타 자신들만의 자율공간을 관리하는 데 신경을 썼다.(12) 여성들은 북한정부가 시장상인의 연령 제한을 50세 이상으로 못 박자 저항했다. 2007년 10월과 2008년 3월, 여성들은 회령과 청진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제한적이긴 했지만, 적어도 집단행동에 주저 없이 참여한 여성들 간 연대를 보여줬다. 전통과 혁명에 사로잡혀 굴종하던 여성들이 해방되고 가족의 수호신으로 거듭나며, 자신들의 멍에(전통과 혁명)를 서서히 벗어 던지고 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호에 게재된 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6 )

글·필립 퐁스 Philippe Pons/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박사,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해 강의

1) Helen-Louise Hunter, ‘Kim Il-sung’s North Korea,’ Praeger Publisher, Santa Barbara (Canada), 1998년.
(2) Cf. Koen De Ceuster, ‘On representation of women in North Korean propaganda posters’, International Convention of Asia Scholars, Adélaïde(Australie), 2009년.
(3) Lucia Jang et Suzan McClelland, ‘Stars between the sun and moon. One woman’s life in North Korea and escape to freedom’, Douglas &McIntyre, Madeira Park (Canada), 2014년.
(4) ‘Economic crisis, Women’s changing economic roles, and their implications for women’s status in North Korea‘ Pacific Review, San Diego (Canada), 2011년 5월.
(5) Patrick Maurus, ‘미래의 용을 꿈꾸는 북한(La Corée du Nord se rêve en futur drag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2월.
(6) 2013년, 기업은행경제연구소(IBK Economic Research Institute)는 북한의 지하경제 규모를 10억에서 30억 달러로 추정했다.
(7) Suzi Kim, ‘Everyday Life in the North Korean Revolution, 1945∼1950’, Cornell University Press, New York, 2013년.
(8) Cf. Patrick Maurus, ‘북한의 여성 영웅들(Héroïnes de Corée du nord)’, dans Béatrice Didier, Antoinette Fouque et Mireille Calle-Gruber, ‘창의적인 여성들의 사전(Le Dictionnaires des femmes créatrices)’, éd. Des Femmes, vol. 3, 파리, 2013년.
(9) Cf. Stephan Haggard et Marcus Noland, ‘Gender in transition, The case of North Korea’,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2012년 6월.
(10) Jin Woong Kang, ‘The patriarchal state and women’s status in socialist North Korea’, Graduate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vol. VI, n° 2, 2008년.
(11) Lim Soon-hee, ‘Value changes of the North Korean New generation and prospects’,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2007년.
(12) Lee Mikyong et Ku Su-mi, ‘The life and consciousness of North Korean urban women after the economic crisis’, North Korean Studies Review, vol. VIII, n° 2, Detroit (Etats-Unis), 2005년.

6.15공동행사, 북 대표단 초청 서울서 개최 추진


<광복 70주년 릴레이 인터뷰 ⑦> 이승환 6.15남측위 공동대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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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1  17: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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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와 10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 이하 6.15남측위원회)는 6.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를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 가운데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는 10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통일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 6.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일에 남북 간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가가 올해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6.15공동선언 15주년 남북 공동행사를 가능하면 남쪽 서울에서 진행하는 것이 이 행사의 성사 가능성과, 남북관계 발전에 실제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런 방향에서 여러 검토와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한미합동 군사연습이 끝나는 시점에 곧바로 6.15남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 간의 접촉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거기서 올해 6.15공동행사와 광복 70주년 공동행사와 관련된 전반 개요를 확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남북 간 공동기구 구성 문제도 협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2008년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행사.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6.15공동행사가 열리지 못한 채 15주년을 맞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남측위원회는 이를 위해 먼저 오는 4월 1일 6.15남측위원회를 포함해 보다 폭넓은 ‘광복 70주년 및 6.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필요하다면 현재 6.15남측위원회로 틀을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보수나 진보, 여야, 민관 등 다양하게 함께 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도록 검토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6.15남측위원회는 무엇보다도 올해 6.15공동선언 5주년에 남북 공동행사를 성사시키는 것이 지금까지 중단된 교류와 협력사업의 물꼬를 트는 것은 물론 남북 당국관계의 변화를 촉발해내는 데서도 결정적인 의미와 전기가 될 거라 본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따라서 “이 행사 속에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북측 대표단에 이산가족과 문화.예술.체육인 등이 포함되도록 북측에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각 분야의 다양한 교류를 구상한다며 “광릉수목원에 크낙새가 사실상 멸종됐는데, 북측 운율지역에 크낙새가 자생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북의 크낙새를 기증받아서 다시 광릉수목원에 크낙새 소리가 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남북 간의 식생교류와 관련해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시했다.
그는 “5월 1일 노동절에 양대 노총이 준비하고 있는 노동자 통일축구대회가 예정돼 있다”며 “6.15~8.15주간에 다양한 민간교류, 협력사업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7월 4일부터 전남광주에서 진행되는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는 청년들의 축전이고 북측이 참가할 걸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남북 청년들의 교류와 공동응원이 성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2013년 7월 베이징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 회의가 열렸다. 남측 대표단은 북한주민접촉 신청이 수리되지 않아 귀국후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 70주년 공동행사에 대해서는 사견임을 전제로 “남에서도 북으로 대표단이 가고 북에서도 숫자에 상관없이 일정한 대표단이 남쪽에 와서 서울과 평양에서 광복 70주년 행사가 입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6.15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되게 된다면 광복 70주년 행사는 북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한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를 국민들에게 실감있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평화열차를 운영할 계획이고, 정부도 비슷한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경-평양-개성-서울 혹은 서울-개성-평양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열차’ 혹은 ‘동아시아 평화열차’를 운영해 열차 안에서 다양한 학술토론회와 적절한 문화행사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인터넷 온라인 상으로 ‘평화통일 모자이크’를 완성해 나가는 이벤트 등을 추진하고, 특히 “8월 15일에는 일본 아베 내각이 이른바 일본 전쟁국가화와 관련된 중요한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돼 일본과 한국의 정당과 시민사회들, 그리고 여러 나라들의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 모여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선언을 조직하는 국제대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남북 공동행사에 대한 남북 당국의 승인 여부다. 그는 “어쨌든 6.15공동행사를 성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도 가능하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민간 공동행사를 승인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 4일 정부가 국무총리 소속으로 민관합동위원회인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데 대해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잘 행사를 진행하면 된다”며 “중복이나 충돌의 문제가 아니라 민과 관이 서로 필요한 만큼 충분히 협의하고 논의를 진행하면서 따로 하든, 함께 하든, 쌍방이 서로 참여하든, 여러 방안을 찾아가면 되는 문제”라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북의 입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가 쇼케이스처럼 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올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나 이런 점들 때문에 가능하면 논란을 최소화하고 민과 정부 사이에 쓸데없는 갈등들이 크게 불거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 민화협 공동의장을 겸하고 있는 이승환 공동대표는 최근 리퍼트 미국대사 테러사건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을 겸하고 있는 이승환 공동대표는 최근 민화협 주최 토론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한데 대해 “폭력행위에 의존해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고 범죄라고 하는 점에서는 더 이상 변호하기 어렵다”면서도 “이 사건을 ‘종북 숙주’ 운운하는 정치공세 호기로만 생각하고 이 불행한 사건을 산생시킨 배경에 대해 아무 성찰도 없는 것은,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래 상자기사 참조)
이승환 공동대표는 “광복 70년, 6.15 15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올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구조화 되고 있어서 남북이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기로에 있기 때문에 올해가 중요하다”며 “6.15남측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남.북.해외 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남북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선도해나가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접촉을 진행하고 실제로 변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들을 전개해 왔다”고 이해를 구했다.
 
“범죄적 행위.. 정부, 실질적 배경에 관심 가져야”
이승환 민화협 공동의장, 리퍼트 미대사 테러사건 입장
김기종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김기종씨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벌였다 하더라도 절대로 용서되기 어려운, 폭력행위에 의존해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고 범죄라고 하는 점에서는 더 이상 변호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우리 정부나 여당에서는 이 사건을 종북분자에 의한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배후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방면에 걸쳐서 김기종씨와 조금만 연관이 있으면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식의 정치공세용으로 이 사건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 점은 적절한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정부는 사건의 배후를 캐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 불행한 사건이 산생(産生)된 실질적 배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데서 이 국가가, 정부가 무엇을 성찰해야하는지를 깨닫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불행한 사건에는 명백하게 몇 가지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남북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점점 구조화되어, 북의 핵과 미사일, 남쪽의 국제법상 공격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킬체인(Kill Chain) 등을 포함하는 확장억지와 포괄적 미사일방어전략 등이 서로 충돌하면서 점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확대되어온 상황이 김기종씨의 이런 불행한 사건이 산생된 배경의 하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의 한.미.일 동맹이 진전이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초조감과 그로 인해 동북아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면서 사실상 박근혜 정부를 비난한 것도 한국민의 정서를 크게 자극했고, 이것도 아마 김기종씨의 불행한 사건이 있게 한 배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또 개인적으로는 김기종씨가 28살 젊은 나이에 겪었던, 특수기관으로 의심되는 괴한들에 의해서 여자 후배가 성폭행 당하고 후배들이 집단구타 당한 사건의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린 결과, 본인 멘탈리티의 많은 부분이 파괴된 상황도 이번 행위에 작용하고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국가폭력일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 한 인간에 대해 그가 저지른 범죄적 행위에 대한 단죄와는 별개로 과거 국가에 의한 폭력, 군사주의의 폐해에 대한 성찰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 응당한 민주국가의 권력이 지녀야 할 태도다.
그런데 이 사건을 ‘종북 숙주’ 운운하는 정치공세 호기로만 생각하고 이 불행한 사건을 산생시킨 배경에 대해 아무 성찰도 없는 것은,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한 평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국가적 성찰이 축적되어야 한다.

김기종씨의 이번 행위는 아마도 개인적 돌출행동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행위로 인해 사람들은 전쟁반대와 평화수호의 주장을 더 하기 어렵게 되었고,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기회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공론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어리석은 행위가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과 정반대의 결과만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서 북한이 보이는 태도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 불행한 사건에 대해서 북한은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 사건에 대해 즉각 반응했고, 그 반응도 불행한 폭력사태를 ‘응당한 징벌’이라면서 심지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이는 남쪽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정치에 대해 여전히 무지하고 일방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북한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했던 ‘상호체제 인정의 1차 징표로 모든 비방중상을 중단하자’는 주장의 진정성조차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북측 공식 문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북한 반응은 상호 비방중상을 중지하자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북한도 이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정치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민화협 역시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기종씨가 과거에 어쨌든 주일대사를 향해서 돌을 던지거나 했던 전례를 볼 때, 미 대사 경호와 관련해서 좀더 세심하고 더 사려깊은 여러 조처를 취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못한 것은 민화협의 잘못이다.
다만 개인의 돌출행동인 이 사건을 가지고, 이른바 ‘보수-진보’ 이렇게 편갈라서 ‘민화협에 있는 진보들이 이 사건을 키웠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일부 종편이나 언론의 태도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민화협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가 사라지게 된다면 민화협의 존립가치 역시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것이다. 민화협 운동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서 한반도문제, 민족문제와 관련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지혜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 점에서 민화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설사 진보든 보수든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져서 여러 대립상태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민화협이 추구하고 있는 ‘화쟁과 관용’ 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정파적인 공격을 앞세우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태도다. 물론 민화협은 외부의 이러저러한 편견을 넘어서서 더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민화협 운동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더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 더욱 성찰하고 교훈을 얻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은 지금까지 민화협을 잘 이끌어왔고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민화협 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일세력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전개해왔다. 사의를 표명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적어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들이 무산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