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이명박·박근혜의 ‘롤 모델’은 나치 괴벨스였다


[비평] 나치 언론통제 방식 답습하며 블랙리스트 퇴출·라디오연설·영화계 장악 시도 판박이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7년 09월 17일 일요일

나치 선전 장관이자 독일 제국문화원 원장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건전한 민족의 감성”에 의해 위대한 독일이 깨어날 수 있다며 유대인 예술가들을 쫓아냈다. 괴벨스는 “오직 독일예술과 문화의 좋은 후원자이고자 할 뿐”이라며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려 했지만, 제국문화원 입회는 곧 ‘화이트리스트’를 의미했고 퇴출은 ‘블랙리스트’를 의미했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가 인종적 이유로 해고됐고, 쫓겨나지 않은 사람은 제국문화원에 강제 입회해야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제어하면서부터 독일이 번영하고 있다고 확신했던 괴벨스는 제국문화원에 그 어떤 유대인 회원도 소속될 수 없게끔 조치했다. 유대인의 피가 25%만 섞여있어도 제명이었다. 훗날 ‘유대인’은 대한민국에서 ‘친노’·‘종북’으로 그 명칭이 바뀐다.  
괴벨스는 1935년 10월부터 영화의 상영금지조치 권한을 갖게 됐다. 그의 손을 통과한 뒤에야 영화신용은행이 지원금을 결정할 수 있었다. 괴벨스는 촬영현장을 방문해 검열하고 평점도 내렸다. 평점이 좋을수록 세금 감면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면세 대상 특별 상여금을 영화 예술가들에게 지급하고, 국가배우와 같은 칭호를 부여해 유명 연예인들이 나치에 순종하고 부역하게끔 했다.  
나치는 1937년 독일 전역에 12만개 좌석을 갖추고 120개 이상의 영화관을 소유하고 있던 우니베르줌 필름 주식회사를 구입했다. 괴벨스는 재무장관으로부터 재원을 확보해 영화산업을 사실상 국유화한 뒤 조직적으로 유대인 배우의 출연을 금지시켰다. 영화 <변호인>의 주연을 맡은 뒤 한 때 섭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배우 송강호씨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
▲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

괴벨스와 나치 선전부는 영화배우들을 관리했다. 괴벨스는 특히 높게 평가하는 배우들의 명단을 작성했는데, 일종의 ‘화이트리스트’였다. 대부분 히틀러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었다. 괴벨스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자신이 직접 배역과 기획을 결정했다. 괴벨스는 영화 <애국자들> 제작을 감독했고 시나리오도 개작했는데,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여자와 독일 병사가 애정과 애국적 의무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다 결국 독일 병사가 후자를 택한다는 내용이었다.
괴벨스는 라디오를 ‘본질상 권위주의적’이라 보았고, 대중 선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로 간주했다. 라디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선전도구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총력전’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데 유용했다. 70년이 흘러 이명박정부는 2008년 공영방송 라디오 주례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를 방송사 PD들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했다. 야당의 반론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라디오와 제국방송에선 나치 간부들의 연설이 최우선으로 방송됐다. 선전용 뉴스영화 ‘주간뉴스’도 등장했다. 괴벨스는 오직 “수용소로 가는 것을 겁내지 않는” 자들에게만 비판이 허용된다고 협박했다. 말을 듣지 않던 다수의 라디오 방송국 관계자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KBS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을 비판하던 PD들을 지역으로 강제 발령 낸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괴벨스는 방송국 내부에 “최후의 마르크스주의 잔당”을 제거하는 정화작전을 지시했다. 1933년, 괴벨스의 지시 이후 방송사 고위간부 98명과 중간 간부 38명이 실직했다. 간부들이 떠난 빈자리는 괴벨스 입맛에 맞는 나치 부역자들의 몫이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해고되고 보복발령을 받으며 모멸적 인사관리를 당했던 MBC 구성원들은 지난 9년을 ‘아우슈비츠 수용생활’로 표현하고 있다.
▲ 라디오 주례 연설 중인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 라디오 주례 연설 중인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이명박·박근혜 여론 통제는 괴벨스의 나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이명박·박근혜정부가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영화와 방송을 통제했던 과정은 나치 괴벨스의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박근혜정부 국가정보원 정보보안국 ‘엔터테인먼트’ 파트에선 진보성향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을 사찰하고 소위 ‘국뽕 영화’ 제작을 기획했다. 국정원은 영화감독들을 만나며 ‘애국영화를 만들면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 국정원 직원은 영화 <에어포스 원>을 언급하며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 30억 정도 대줄 수 있다”는 제안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영화 제작자는 2009년 정보기관 요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명령조로 연평해전에 대한 영화를 국가에서 만드니 함께 일하고 있는 영화감독을 조건 없이 내놓으라고 압박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영화 <연평해전>은 2015년 실제로 등장했는데, 당시 CJ는 비정상적으로 상영관을 많이 잡았고, 조선일보는 대다수 문화부 기자들이 “이상하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 2014년 12월28일자를 보면 “<국제시장> 제작 과정 투자자 구득난, 문제 있어, 장악, 관장 기관이 있어야”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2015년 1월2일자 업무수첩에는 “영화계 좌파 성향 인물 네트워크 파악 필요”라는 대목이 있다. 청와대-국정원의 영화계 장악 및 관리는 비단 80년 전 나치와 괴벨스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 한겨레 9월12일자 기사.
▲ 한겨레 9월12일자 기사.

지난 11일 공개된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적폐청산TF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국정원장 취임 이후 △문화계(6명) △배우(8명) △영화감독(52명) △방송인(8명) △가수(8명) 등 5개 분야에 걸쳐 82명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린 뒤 ‘맞춤형’으로 압박하며 스크린에서 퇴출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의 ‘업데이트’ 버전이었던 셈이다.
2010년 10월 작성된 ‘문화 예술 단체 내 좌파 인사 현황, 제어관리방안 보고’에는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여한 연예인을 A급(15명)으로 분류하고 단순 동조자는 B급(18명)으로 나눠 A급은 실질적 제재 조치, B급은 계도조치라는 대목이 등장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 퇴출을 위한 국정원 공작은 대통령 일일보고 형태로 청와대에 올라갔다.
이명박 정부 참모들은 국정원을 상대로 구체적으로 언론 통제를 위한 불법적인 지시를 내렸다. 2009년 9월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은 ‘좌파성향 감독들의 이념 편향적 영화제작 실태 종합 및 좌편향 방송 PD 주요 제작활동 실태 파악’ 지시를 내렸고, 2010년 5월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KBS 조직개편 관련 좌편향 인사여부 조사’ 지시를 내렸다.  
2010년 8월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은 ‘좌파 성향 연예인의 활동 실태 및 고려사항’ 파악을 지시했다. 2011년 6월에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좌편향 성향 언론인·학자·연예인이 진행하는 TV 및 라디오 고정 프로그램 실태 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달 뒤인 7월 MBC에선 일명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법’이 생겨났다. (관련기사=MBC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법은 국정원 작품?)  
국정원 개혁위원회 적폐청산TF의 ‘MB정부 시기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선 좌파연예인 대응TF도 존재했다. 2009년 10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활동 보고 자료에는 퇴출활동 20여건이 등장했다. ‘2011년 4월:특정 프로그램 진행자 퇴출 유도’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김미화씨로 추정된다. 그는 같은 달 하차했다.  
2010년에는 김재철 사장 취임 시기 국정원이 ‘MBC 정상화 방안’을 만들었다. 연합뉴스는 17일 “국정원이 문화예술인 외에 방송사 주요 간부와 PD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도 만들어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MBC <PD수첩> 팀장 출신의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수년 간의 MBC 탄압이 국정원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JTBC는 지난 12일 리포트에서 “청와대가 국정원에 지시를 내리면 국정원은 전략을 짜고, 이에 맞춰 국세청과 같은 유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동원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잇는 국정원의 언론장악 계획은 대부분 실제로 이뤄졌다.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이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헌법에 대한 유린이다. 관련자들은 구속 수사를 비롯해 비참한 최후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괴벨스의 최후도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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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세대, 통일국가 새날 위해 봉사자 역할해야”

김준배 열사 20주기 추도식..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진행
광주=장소영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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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6  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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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김준배 열사 20주기 추도식이 진행되었다. 이날 추도식에 200여명의 가족과 동지들이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16일 오전 11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는 ‘별처럼 빛나던 청춘 그대와 나의 20년’이라는 이름으로 김준배 열사 20주기 추도식이 진행되었다.
김준배 열사의 부모님을 비롯한 열사의 가족과 각 단체 대표들, 그리고 김준배 열사와 함께 활동하였던 한총련 세대 동지들 200여명이 추도식에 참석하였다.
  
▲ “한 번 살기 위해 타협과 우회의 길을 가기보단, 영원히 살기 위해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가겠다”고 했던 김준배 열사는 신념의 강자라 불린다.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김준배 열사는 1993년 광주대학교 학생시절부터 학생회 간부로서 수배를 받아오다가 1997년 한총련의 투쟁국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1997년 추석 전날 경찰의 무리한 검거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고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하였다.
검찰의 조기종결 방침에 부검을 실시하고 단순 추락사고로 결론지었으나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사용에 의한 사망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 추도사를 하고 있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 의장.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 추도사를 하고 있는 이윤정 '김준배 열사 정신계승사업회' 초대회장.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  추도사를 하고 있는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이날 행사에서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 의장, 이윤정 ‘김준배 열사 정신계승사업회’ 초대회장, 이규재 ‘조국통일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의 추도사가 진행되었다.
오종렬 의장은 김준배 열사처럼 의젓하고 장한 모습의 청년들을 언제까지 잃어야 하는가, 통탄스러웠다는 발언과 함께 남아있는 한총련 세대가 각자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되 각계각층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족자주와 통일국가의 새날을 위해 지휘자의 자세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이윤정 초대회장은 “우리는 지나온 20년의 사업과 활동을 성찰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한총련의 투쟁과 역사 그 과정에서 산화한 열사들을 돌아보며 그대가 사랑했던 한총련에게 들씌어진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리면서 “역사의 발전은 과거를 기억하고 잊지 않고 실천할 때만이 발현되는 진리를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규재 의장은 범민련과 범민족대회를 지켜낸 것은 수천수만의 한총련 전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치하하며 범민련 남측본부 전체 성원을 대신해 열사 영정 앞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 김준배 열사 어머니(좌)와 동생(우)이 추도식을 찾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이어, 김준배 열사의 후배인 가수 강효원 씨의 추모공연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김준배 열사의 어머니와 동생이 각각 발언하였다.
김준배 열사 어머니는 추도식 참석자들의 건강을 당부하며 김준배 열사와 김준배 열사 아버님이 좋아진 세상을 못보고 떠난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 추도식 참석자들이 김준배 열사 묘에 분향하고 헌화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장소영 통신원]
이날 추도식은 오후3시 광산구청에서 한총련세대의 집담회와 오후 6시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추모문화제로 이어졌다.

과거사 잘못 직접 바로잡겠다는 검찰, 사상 최초로 직권 재심 청구







문무일 검찰총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준비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준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 6건에 대해 직권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수사 주체였던 검찰이 직접 재심을 청구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수사 착수부터 기소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과오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이를 직접 바로잡아보겠다는 조처다.
대검찰청 공안부(권익환 검사장)는 17일 “태영호 납북사건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은 박모씨 등 6개 사건 18명에 대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 청구 대상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한 사건 73건 중 현재까지 당사자 일부가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사건들이다. 1968년 태영호 납북사건과 1961년 한국교원노조 총연합회 사건, 1963년 납북 귀환 어부 사건,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1980년 조총련 연계 간첩 사건, 1981년 아람회 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여러 피고인 중 재심을 청구한 이들에게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형사소송법은 유죄가 확정된 형사사건에 재심 사유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나 법정대리인, 유족 뿐 아니라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해놨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스스로 재심 사유를 인정해 재심을 청구한 일은 없었다.
검찰은 이번 재심 청구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지난 8월 8일 검찰총장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이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그 후속 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달 대검 공안부에 ‘직권재심 청구 TF(팀장 공안기획관)’를 구성해 사건기록 및 판결문,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공동피고인 재심사건 판결문 등을 토대로 재심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들을 추렸다.
검찰은 이번에 재심을 청구하는 사건 외에도 진실화해위가 재심 청구를 권고한 ‘문인 간첩단 사건’ 등 과거사 사건 6건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심 과정에서는 가혹행위나 불법구금에 대한 진술을 고려해 엄격하게 증거를 판단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한 증거도 엄격하게 수집해 ‘실질적인’ 유무죄 구형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직접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구형하는 이색적인 상황이 속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또 과거사 사건과 관련한 ‘재심 대응 매뉴얼’을 개정해 국가배상 소송에서도 상소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무분별한 상소를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국가배상 판결에 대해 상소할 경우 외부인사가 참여한 상소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 엄격한 심사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진보연대 10주년… “자주의 시대 안아오자!”

‘10년 평가와 전망’ 토론회선 ‘5년의 전망과 3년의 계획’ 제안
한국진보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은 16일 “모두가 민족의 발파공이 되어, 민중의 선봉대가 되어, 반세기 넘게 꿈꿔왔던 자주의 시대, 민주의 시대,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기어이 안아오자”고 다짐했다.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각 지역과 부문단체 간부 1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0주년 기념대회를 갖고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끝장내기 위한 전민족적 노력과, ‘나라다운 나라’를 지향하는 촛불 민의의 힘으로, 이 땅의 자주와 민주, 민생과 평화통일을 ‘바람’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며 이같은 결의를 밝혔다. 진보연대는 또 결의문에서 “투쟁은 더욱 간고할 것이나 민중과 함께. 우리는 기어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앞서 문경식, 박석운, 한충목 상임공동대표는 대회사에서 “진보연대 10년은 하루도 쉬지 않고 정세와 조직의 요구에 가장 먼저 달려가 투쟁을 조직했던 나날이었다. 2008년 광우병 투쟁이, 2011년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투쟁이,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부정선거 진상규명 투쟁이, 바로 이러한 결과였다”면서 “시련과 난관을 넘어 한국진보연대는 투쟁을 조직했고 민중 승리를 준비했다”고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봤다.
그리곤 “정세는 대격변기 최종국면에 다다르고 있다. 한반도를 규정하는 역관계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평화와 통일, 자주의 새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면서 “2017년 오늘날 시대정신은 촛불항쟁을 혁명으로 완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촛불을 넘어 민생, 자주평화로 나아가며, 분단적폐 청산과 반전평화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조만간 다가올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를 주도할 힘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힘은 우리가 해왔던 민중 속에 있다. 더 깊이 민중 속으로 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이어 상임공동대표단은 “진보연대를 비약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진보운동진영의 총단결과 굳건한 연대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민중 승리의 대장정을 시작하자. 진보집권 시대를 열어내기 위해 대중적 진보정당과 손 굳건히 맞잡고 힘을 모아나가자”면서 “호시탐탐 반동의 기회를 노리는 지배세력들, 촛불의 성과를 왜곡해 제 잇속을 차리려는 기회주의자들에 맞서, 촛불 혁명의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사활을 걸자”고 강조했다.
기념대회에 앞서 진행된 확대간부 수련회 ‘10년 평가와 전망’ 토론회에선 ‘5년의 전망과 3년의 계획’ 등을 주제로 제안과 토론이 진행됐다. 특히 진보연대 지도부는 토론회에 ▲명실상부한 전선체 건설을 위한 토대 구축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 수권정당의 토대 구축 ▲자주 투쟁을 전면화하고 반전평화운동과 자주통일운동을 강화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 5대 목표와 이의 실현을 위한 10대 과제를 제출해 관심을 모았다. 10대 과제는 ▲상설공투체 강화 ▲명실상부한 반미자주통일 민중총궐기 실현 ▲전민족대회 등 전민족적 통일대회합 성사 ▲폭넓은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운동과 연대기구 구축 ▲정책교육원 구성 등이다.
진보연대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들을 반영해 내년 1월 총회에서 ‘10년 평가와 전망’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한국진보연대는 지난 2007년 민주노동당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37개 정당과 부문, 지역 단체들이 가입한 가운데 9월16일 여의도공원에서 출범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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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약 좀 주세요" 노숙인 텐트촌에서 목이 멨다


17.09.16 16:01l최종 업데이트 17.09.16 16:01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페이스북에서 '거지 같은'이라고 표현한 서울역  그 화려한 불빛 아래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있다.
▲ 페이스북에서 '거지 같은'이라고 표현한 서울역 그 화려한 불빛 아래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있다.
ⓒ 문세경

"당신은 지금 거지 같은 서울역에 계신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말이었다. 버릇처럼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위와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페이스북, 이거 귀신이네. 내가 서울역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거기다 '거지 같은'이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지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마치 지금 내가 노숙인을 만나고 온 것을 아는 것처럼, 노숙인을 비하하는 투로 '거지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쓴 것 같아서다. 당장 페이스북에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나중에 알아 보니 누군가 위치 연동으로 서울역에 관한 설명을 그렇게 넣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난 6월 초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만나는 '아웃리치'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일은 오후 7시 반부터 오후 11까지 진행된다. 오후 10시 반부터 11시까지는 당일 노숙인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기록하고 집으로 간다. 집에 오면 거의 오전 0시(자정)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쉬 잠이 오지 않는다. 무엇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을까?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해 봤다. 내 눈에는 하늘이 아니라 천장이 보인다. 갑자기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 만난 노숙인들은 천장이 없는 곳에서 잔다. 그것도 매일매일.

안도감은 곧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아침이 되면 씻고, 밥 먹고,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어딘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이 모든 일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인가.

한편으로 나도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아직도 사각지대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각장애를 가진, 나이가 많은 여성이다. 이 세 가지 조건만 가지고 있어도 취업은 쉽게 되지 않는다. 취업이 되지 않으니 생계가 힘들다. 통장에 있던 잔고가 바닥난다. 제1금융권에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쉽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제2, 혹은 제3의 금융권에게 빚을 진다.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닌다. 매월 내야 하는 임대료를 내지 못한다. 결국 집에서 쫓겨난다. 이렇게 되면 노숙인의 삶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주거는 기본권인데... "임시 주거? 절차 까다로워서 안 해"

 거리에 계신 분을 만나 상담하는 아웃리치 활동가
▲  거리에 계신 분을 만나 상담하는 아웃리치 활동가
ⓒ 문세경

일주일에 세 번, 밤에 서울역 광장과 지하도를 돌아다니며 그분들을 만나서 묻는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날씨가 더운데 여기서 주무시지 말고, 응급대피소에서 주무세요." 
"대피소보다 여기가 편해. 대피소에 가면 사람들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 에어컨을 틀어주는 건 좋은데 이불도 안 줘. 차라리 밖에서 자는 게 세상 편해." 
"그러면 임시주거를 제공해 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상담 한번 받아 보시는 건 어때요?"
"임시 주거, 그거는 절차가 까다로워서 안 해."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가 주거권이다.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어떤 의지가 생기고 어떻게 탈 노숙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임시주거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 번째는 임시주거 서비스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을 우선순위로 한다. 두 번째는 임시주거 서비스를 받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임시주거를 왜 받으려고 하는지, 받아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계획해야 한다(집이 필요한데 무슨 이유와 방향성이 필요한가. 인간에게 의식주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조건인데).

하지만 스스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때는 실무자가 도와주기도 한다. 이 서비스의 문턱이 그리 높지는 않은데 의외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다. 어쩌면 의지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노숙을 하다 보니 생활의 리듬을 바꾸는 것이 두렵기도 할 테고.

노숙인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서울시의 목표는 무엇일까? 현행 노숙인정책은 '응급구호방⋅일시보호시설→자활시설→탈노숙' 또는 '응급구호방⋅일시보호시설 → 재활시설 → 자활시설 → 탈노숙'의 과정을 통해 노숙인을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 목표가 있다(박은철, 노숙 진입서 탈출까지 경로 분석과 정책 과제, 요약 1쪽, 서울 연구원, 2015.). 종국에는 노숙인을 지역사회에 복귀시켜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이 지역사회에 복귀하여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웃리치 활동을 3년 정도 해오신 선생님에게 물었다.

"꽤 오래 아웃리치 활동을 해 오신 것 같은데, 활동하시면서 가장 속상하고 안타까울 때는 언제예요?"

"우선, 노인이거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이 부양의무자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을 때 마땅히 도움을 드릴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그다음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노숙 문제예요. 그분들은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워 임시대피소를 이용할 수도 없고, 임시주거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대부분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언덕에 있어서 쉽지 않죠. 

만약에 운 좋게 임시주거 서비스를 받을 집이 생겨도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상황이 안되죠. 그래서 다시 거리로 나오고 거리에서 생활하다가 아프면 다시 요양원에 가고, 이 경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아는 분이 결국 그러다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럴 때 참 안타깝죠."

나는 아직 초짜 아웃리치 활동가라서 위에서 말한 분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을수록 문제가 심각해 보여서 계속 물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부양의무자 문제와 장애인 노숙문제, 시급히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아직은 갈 길이 멀죠. 거기다 대부분은 알코올중독인 분들인데 그분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한계가 있죠.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네, 알코올중독인 분들은 술을 못 끊어서 노숙인 지원 체계 안에서 보호를 못 받아요. 거의 술에 취해 있어서 상담이 불가능하죠. 거기다 시설, 병원치료도 본인이 거부하면 강제 입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니까요. 복수가 차고 치매가 오고 위중해졌을 때 겨우 병원에 입원해 응급치료를 받죠. 그러다 결국 돌아가시고요. 제 생각엔 앞에서 말한 부양의무자 문제는 부양의무제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하고, 장애 노숙인의 문제는 장애인 지원주택이 도입되어야 하며, 알코올중독 노숙인의 경우에는 조절 음주를 허용하는 지원주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얘기를 듣고 잠시, 침묵에 빠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이 일을 왜 하는 걸까? 스무 명이 넘는 아웃리치 활동가들은 말한다.

"가족도 없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노숙인에게 굳이 왜 노숙을 벗어나게 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하기가 제일 어렵다."

용산역 '텐트촌' 보고 충격... '일단 살리고 보자'로 끝날 문제 아니다

노숙생활을 탈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으로는 중독⋅질환의 치료, 자활 의지·욕구, 가족·친지관계의 회복, 생활기술의 획득, 사회생활의 적응, 부채문제의 해결 등이 있고 사회적으로는 공공부조 및 지원에 관한 정보의 획득, 안정적인 일자리 지원, 주거지원 및 유지, 지역사회에 재진입, 취업⋅경제활동 등이 그것이다(박은철, 같은책, 요약 3쪽.).

노숙인을 심층 면접조사한 결과에서는 저렴한 '주택확보'가 가장 큰 욕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공임대주택, 민간임대주택, 임시주거비 등의 주거지원 조건을 좀 더 완화해서 제공하는 것도 탈노숙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약 두 시간가량 서울역을 돌며 한분 한분을 만나, 건강은 어떠신지를 묻고 적절한 서비스가 있음을 알려드린다.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분들에게는 말벗을 해드린다. 절박한 사정을 듣고도 바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내용을 인트라넷에 적는다. 그런데 주간에 활동하는 실무자들과 연계가 잘되지 않을 때는 속이 상한다. 절박한 저분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 같아서.

탈노숙으로 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지속적인 상담과 관심이 필요하다. 실무자와 아웃리치 활동가가 긴밀하게 연결되면 좋은데 그러기에는 복잡한 과정이 있다. 활동가는 한시적으로 활동하고 실무자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외에도 많은 일을 한다. 목표는 탈노숙인데 탈노숙으로 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은 쉽지 않다. 탈노숙보다 "일단 살리고 보자"는 위기대응이 목표가 될까 봐 살짝 걱정된다.

잠시, 딜레마에 빠졌다. 살리는 게 중요한가, '어떻게' 살게 하는가가 중요한가. 굶기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게 하고 응급치료를 해 주는 것으로 그친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얼마 전, 한 언론에서 "노숙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추세", "도서관 시민청 등 공공시설 곳곳에서 출몰"을 헤드라인으로 뽑은 기사를 보았다. 노숙인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국민이고 엄연한 시민이인데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마치 도심 한가운데 멧돼지가 출몰해서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봤다는 맥락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노숙을 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노숙생활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말 못 할 사연이 있고 뭔가 꼬인 게 풀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 생활로 접어든 것이다. 그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와 다르게 산다고 배척하고 혐오감을 조성하는 요인으로 낙인 찍는 사회를 보며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장에서 외친 민주주의가 공허해지는 순간이었다.

용산역 텐트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 용산역 텐트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 문세경

서울역에 계신 분들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노숙을 한다. 나는 주로 서울역 광장과 지하도를 돈다. 얼마 전에는 용산역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도 서울역처럼 광장을 중심으로 노숙인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용산역 옆에는 구름다리가 있고 그 밑에 나무가 우거진 인적이 드문 곳이 있다. 그곳에 텐트를 치고 무허가촌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할 정도로 믿고 싶지 않은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때는 한여름, 나무덩굴이 우거지고 재활용 쓰레기더미가 쌓인 곳이다. 물은 나오지 않고, (무허가촌이라) 밤이 되어도 전기를 쓸 수 없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 그곳에서 모기와 씨름하며 살아가는 그들, 그들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라는 사실에 목이 멘다. 텐트촌 입구에는 주민들이 '건의(요구)사항'을 적는 화이트 보드가 있다. 어느날, 그 보드에 적힌 글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발 모기약 좀 주세요." 
"니들은 모기약 집에서 안 쓰냐?"

오늘도 '거지 같은 서울역'을 서성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 절망을 안고 집으로 간다. 집이 없는 그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간다는 게 미안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이율배반일까. 

용산역 텐트촌 입구에 있는 게시판 주민들은 저기에 필요한 것을 적는다. 건의 사항을 확인한 활동가는 다음날 물건을 전달한다.
▲ 용산역 텐트촌 입구에 있는 게시판 주민들은 저기에 필요한 것을 적는다. 건의 사항을 확인한 활동가는 다음날 물건을 전달한다.
ⓒ 문세경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웹진 <글로컬 포인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