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침몰하는 박근혜 정권’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부를 비판




Foreign Policy, ‘침몰하는 박근혜 정권’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부를 비판
-한국인들이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신뢰의 침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세월호 침몰에 대해선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으면서도 이 정권에 대한 책임의 화살을 피해가는 데에는 민첩했다. 처음엔 유병언을, 그리고 세월호에서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희생양 삼았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선 경찰병력을 동원해 감시를 집중시켰다.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는 박근혜 정권이 보여주는 난맥상을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포린 폴리시의 비판 논조는 무척 예리하다. “이 비극 이후 대중과 정부의 행동들은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 기관들의 실패를 무마하려는 시도들”이라거나 “정부의 행동들은 세월호 사건이 불러운 근본적 불안감을 강화시켰다”고 꼬집은 대목이 특히 그렇다.
“비극 이후 반년이 지났음에도 한국 국민들은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포린 폴리시의 지적, 이 정권과 정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언론들이 한사코 듣기 싫어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Foreign Policy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atfp.co/1vSDwmw

A Government, Sinking
Why South Koreans can’t get over the Sewol ferry disaster.
침몰하는 정부
왜 한국인들은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지 못하는가
• BY S. NATHAN PARK
• NOVEMBER 19, 2014
Capture FP 가라앉고 있는 정부
On April 16, the Sewol ferry sank off the southern coast of South Korea, killing more than 300 people, most of them teenagers. Nearly seven months later, the court convicted the ship’s captain, Lee Joon-seok, of gross negligence, and sentenced him 36 years in prison. Prosecutors initially charged Lee with homicide and demanded the death penalty for the man they said was responsible for one of the worst maritime catastrophes in South Korean history. Yet the lesser charge was itself harsh: The 69-year-old Lee will almost certainly spend the rest of his life behind bars. As the ferry began taking on water, Lee fled the ship while many passengers and junior crew members remained inside to perish.
4월 16일, 한국 서해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며 대부분이 10대인 300여 명이 사망했다. 거의 7개월이 지난 후, 법원은 이 배의 선장인 이준석씨를 유기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애초 검찰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 참사 중 하나에 책임이 있다며 이 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사형을 구형한 바 있다. 하지만 적어진 형량 자체도 가혹하다: 69세의 이 씨는 여생을 감옥 안에서 보낼 것이 거의 확실하다.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을 때, 많은 승객들과 후배 승무원들이 안에서 죽어가는 동안 이씨는 배에서 탈출했다.
As horrific as the disaster was, the judgment seems severe for a man whose crime was negligence, not murderous intent. But the severity of the punishment echoes a national trend: South Koreans are still desperately searching for ways to ameliorate the trauma of Sewol. To Koreans, the disaster represented a breach of trust; authorities at all levels, from the ferry operators to the central government, failed in their duties to safeguard citizens. For a country that is now comfortably ensconced in the developed world — its GDP per capita is nearly $26,000, considerably higher than that of Portugal — the sinking called into question the very building blocks of Korea’s progress. And in the wake of the tragedy, the actions of both the public and the government — the late-April resignation of Prime Minister Chung Hong-won, ongoing demonstrations in the capital of Seoul, the shuttering and reorganization of the country’s Coast Guard, and, finally, the severe punishment of the perpetrators — are attempts to reconcile the failures of the country’s most basic institutions.
참사 만큼이나 끔찍하게도, 고의적 살인이 아닌 유기치사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내려진 판결은 가혹해 보인다. 하지만 이 형벌의 가혹성은 국가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회복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이 참사는 신뢰의 파기를 상징했다; 여객선 운영자들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당국자들은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 일인당 국민소득(국내총생산)이 포르투갈보다 훨씬 높은 2만6000달러로, 이제 선진국에 여유 있게 진입해 있는 나라에게, 이번 침몰은 한국발전을 쌓아 올린 요소야말로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비극 이후에, 대중과 정부의 행동들–4월말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임, 수도 서울에서 계속되는 시위, 해경의 해체와 재조직,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 기관들의 실패를 무마하려는 시도들이다.
These failures began almost immediately. Approximately 30 minutes after the ferry began to sink, a Vessel Traffic Service (VTS) center, which provides monitoring and advice to vessels, ordered the captain to put life vests on the passengers, deploy all emergency floats, and evacuate the ship. The crew, however, did none of this. The captain told the VTS that the ship’s public address (PA) system did not work, which was not true. All the while, the PA system was functional, and it was being used to convey the worst possible message to passengers: stay put. When rescue boats arrived, Lee, wearing only his underwear, and the senior crew escaped first, leaving behind the junior crew and hundreds of passengers.
이러한 실패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시작됐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 약 30분 후에, 선박을 감시하고 조언해주는 해상교통관제(VTS) 센터는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모든 비상용 부낭을 배치하고, 여객선에서 탈출시키라고 선장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이 중 하나도 행하지 않았다. 선장은 선내 방송설비가 고장이라고 VTS에 말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항해하는 동안 내내, 방송설비는 정상작동 중이었으며, 가만히 있으라는 승객들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방송설비는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구조정이 도착하자, 하급직 승무원들과 수백 명의 승객들을 뒤에 남긴 채, 속옷만 입고 있던 이 선장과 상급 승무원들이 먼저 탈출했다.
The rescue effort itself was perilously disorganized. The VTS had done little to inform South Korea’s Coast Guard about the scene — as a result, the first responders only included two helicopters and two boats, with no rescue divers. In an interview following the disaster, the first responders said they were confused about why there were no people in the water — because they had assumed that the ship was already evacuated. Unaware that nearly all the passengers were still inside the ship, the rescue team never attempted to enter to save those who were trapped inside.
구조작업 자체도 위험할 정도로 체계가 없었다. VTS는 한국 해경에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최초로 도착한 것은 구조 다이버들도 없이 두 대의 헬기와 두 대의 보트가 전부였다. 참사 이후 인터뷰에서 최초 출동한 대원들은 물 위에 왜 사람이 하나도 없는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들은 승객들이 배에서 이미 탈출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아직도 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조대원들은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 진입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Following the accident, the media was equally inept. The Internet age came to South Korea earlier than almost any other country, and domestic outlets there have mastered the art of click-bait sensationalism. Newsis, an online newspaper, infiltrated Danwon, a high school in the outskirts of Seoul where the teenage victims had attended school, and took a staged photo of a dead student just hours after the ship sank. Respected TV stations like SBS and JTBC harassed the just-rescued survivors for interviews. (A reporter from SBS attempted to interview a 5-year-old girl whose family perished in the ship.) On a live television broadcast from the port where the surviving passengers gathered immediately after the rescue, a reporter from JTBC asked a surviving student, “Are you aware that your friends died?” The teenager started crying.
사고 이후 언론 역시 부적절했다. 한국에서 인터넷 시대는 거의 모든 다른 나라보다도 일찍 시작되었고, 국내 언론들은 인터넷상에서 낚시성 기사로 클릭을 유도하는 선정주의 기술에 능통해있다. 온라인 신문인 뉴시스는, 희생된 10대 청소년들이 다녔던 서울 외곽에 있는 단원고등학교에 잠입해 선박이 침몰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한 희생자 학생의 연출사진을 찍었다. 막 구출된 생존자들이 SBS와 JTBC같은 공신력 있는 TV방송국의 인터뷰 시도에 시달렸다. (SBS 의 한 리포터는 가족이 배 안에서 사망한 5살 여자아이를 인터뷰하려 시도했다.) 생존자들이 구조 직후 모여있던 항구에서 진행된 TV생방송에서, JTBC의 한 리포터는 생존학생에게 “친구들이 죽었다는 걸 아느냐?”고 물었고 그 학생은 울기 시작했다.
In the months following the disaster, the administration of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attempted to allay the public indignation. Park made a public apology, accepted the resignation of the prime minister, and vowed to reform the Coast Guard. Yet the administration also tried to deflect blame away from the government. After the sinking, Park placed responsibility for the casualty numbers squarely at the feet of the ferry operators, saying the actions of the captain and crew were “akin to murder.” (Government prosecutors also charged the chief executive officer of the company, Kim Han-sik, with manslaughter; they are seeking 15 years in prison.)
참사 이후 수개월에 걸쳐, 한국 박근혜정부는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시도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무총리의 사임을 받아들였으며 해경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또한 정부가 받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 시도했다. 침몰사고 이후, 박근혜는, 선장과 선원들의 행위를 “살인과 다름없는” 것이라 말하며, 참사의 책임을 단호하게 선박운영자들에게 돌렸다. (검찰 또한 회사 최고 경영자인 김한식을 살인혐의로 기소했고;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More troublingly, the government responded defensively to public frustration, planting plainclothes police around the victims’ families to monitor any signs of agitation. It ordered the state-owned network television station KBS to avoid criticizing the Coast Guard and the rescue effort. The administration also announced that it would actively monitor the Internet and mobile chat apps to apprehend those spreading “false rumors”: So far, the administration has indicted 174 people for spreading erroneous rumors online. School boards instructed teachers and students to stay mum on the tragedy — even though the loss of hundreds of high school students resonated with many Korean teenagers. A public school teacher in the large city of Daegu was censured when he disobeyed the directive and criticized the president on his Facebook page.
더욱더 지독하게도 정부는 동요의 징후를 감시하기 위해 희생자 가족들 주변에 사복경찰을 배치함으로써 대중의 불만에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국영TV방송 KBS 에 해양경찰과 구조노력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고 지시했다. 또한 정부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과 모바일 채팅 앱들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허위사실을 온라인상에 퍼트린 혐의로 174명을 기소하였다. 비록 수백 명의 고등학생의 죽음이 많은 십대 청소년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이 비극에 대하여 침묵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구 광역시 내의 한 공립교사는 그 지시에 불복종하고 페이스북에 대통령을 비판하자 조사를 받았다.
In the Park administration’s response, the public sensed echoes of the same message that the Sewol crew imparted to its passengers: stay put. Don’t cause trouble, the administration seemed to be saying, so that we may be the first to escape from this mess.
박근혜정부의 대응에 대해, 대중은 세월호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전했던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와 같은 뜻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라고 말하면서, 이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이 제일 먼저 탈출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To be sure, South Korean democracy is not about to slip into the
dark days of authoritarian rule — when dictators like Park’s father, Park
Chung-hee, who ruled from 1961 to 1979, arrested, tortured, and murdered those perceived to oppose the government. Korean democracy remains vibrant –elections are free and fair and the right to free speech remains a hallmark of the country’s political culture. But the government’s actions reinforced the fundamental anxiety that the ferry accident engendered: Having enjoyed decades of vibrant democracy, the Korean public thought the country was beyond this.
확실히 한국의 민주주의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통치하며 정부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살해한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같은 독재자가 다스리는 독재통치의 암흑시대로 당장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그 국가의 정치적 문화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부의 행동들은 세월호 사건이 불러온 근본적인 불안감을 강화시켰다: 수십년간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향유해온 한국 대중들은 한국이 이정도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Three months after the sinking, families of the Sewol victims set up a protest
site in Gwanghwamun Square in central Seoul, and began demanding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numerous governmental failures that led to the disaster. By the end of the summer, thousands had joined demonstrations in Seoul, with some two dozen other protest sites set up across the rest of South Korea.
침몰 3개월 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서울의 중심에 있는 광화문광장에 시위 장소를 설치했고 참사를 유발한 정부의 수많은 실패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수천 명이 서울에서 시위에 합세했고 약20여 개의 다른 시위장소들이 한국의 전역에 설치되었다.
More than half a year after the tragedy, Korean citizens remain aggrieved. Support for the Park administration, which stood at over 60 percent shortly before the accident, dipped to 45 percent, where it remains. In mid-November, lawmakers finally passed legislation appointing a special prosecutor to investigate the tragedy, yet public discontent is still strong, and protests in Gwanghwamun Square continue. In many of the demonstrations, the protesters marched silently, holding up signs with a simple message: stay put.
비극 이후 반 년 이상이 지났는데, 한국 국민들은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다.
사고 직전에 60%를 넘었던 박근혜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45%로 떨어져 그대로 남아있다. 11월 중순 국회의원들은 드디어 참사를 조사할 특별검사를 지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대중의 불만은 아직도 강하고,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시위들에서, 시위자들은 ‘가만이 있으라’는 간단한 메시지의 사인을 들고 침묵행진을 했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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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정윤회 '국정 개입' 사실로 드러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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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이라고 불리는 정윤회 씨가 지난 2013년 7월 19일 경기 과천 경마공원에서 포착된 모습 ⓒ한겨레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속칭 ‘증권가 찌라시’에 떠돌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은 정윤회(59)씨가 자신의 비선라인을 활용해 퍼트린 루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불리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포함된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세계일보가 단독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올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동향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떠돌던 ‘김 실장 중병설’ ‘김 실장 교체설’과 같은 루머의 진앙이 어디인지를 감찰한 결과를 담고 있다.
세계일보는 “감찰 조사에서 정씨는 이들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임에는 소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이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하고 실명으로 언급했다.
세계일보는 “현재 공식 직함이 없는 정씨가 자신과 가까운 청와대·정치권 내부 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세간의 ‘그림자 실세’ ‘숨은 실세’ 의혹이 사실임을 드러낸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며 “특히 청와대 비서관들이 내부 동향을 외부 인사에 전달하는 행위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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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지만-정윤회 권력암투'가 보도된 1275호
그동안 정윤회씨의 청와대 개입설은 꾸준히 제기돼 온 바있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은 정 씨가 사람을 시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미행하다 붙잡힌 사람의 자술서를 박 회장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등 파장이 커지자, 시사저널 기자들을 고소한 바 있다.
또한 정씨의 딸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지난 6월 시사저널을 통해 보도되는 등 정씨가 박근혜 정권의 '실세'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정씨는 청와대와 어떠한 관계도 없음을 강조해왔다. 정씨는 지난 7월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재산, 이권 개입, 박지만 미행 의혹, 비선 활동, 모든 걸 조사하라”며 자신은 관계가 없음을 거듭 부인해 왔다.
청와대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오늘 세계일보에 나온 청와대 관련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뉴스1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 24일 '올해 민정수석실에서 정씨에 대한 감찰을 벌였다'는 세계일보의 최초 보도가 나왔을 때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공직자 감찰이 그 임무"라며 "정씨에 대해 감찰을 실시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세계일보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경찰 출신 A경정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로 작성했고, 김 실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감찰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A경정은 원대복귀했고, 조 비서관은 그로부터 두달 뒤 사표를 제출했다. 감찰 후 청와대 비서관 등에 대해 청와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세계일보는 보도했다.

평양10만군민시위와 행진의 의미

평양10만군민시위와 행진의 의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11/28 [09:2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유엔인권결의안 전면배격 평양 10만 군민대회     © 자주민보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10만명이 참석한 군민대회와 시위행진 등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이번달 18일 조선인권결의안을 통과한 데 항의 시위를 열었다고 26일 신화넷이 보도하였다.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 비서는 이 시위 연설에서 '미국과 그의 추종 세력이 발기한 반조선 인권책동에 엄중하게 경고하고 만일 그들이 계속 한패로 결성되어 조선을 비방하고 조선 사회주의제도를 뒤엎으려고 시도하면 무자비한 징벌과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화넷 보도 사진을 보니 행진까지 결합된 매우 격렬한 시위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유엔인권결의안을 북은 그저 외교적 차원의 대응으로만 끝내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북의 뉴스에서도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이제는 힘으로 결판을 내야한다"는 북 주민들의 대담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아직은 제3위원회에서만 결의된 것인데 이 결의안은 다음달 중·후반 유엔 총회에서 최종 채택될 게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결의안 권고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김정은 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를 논의할 것이다.
북 수뇌부에 대한 인신공격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발했던 북이기에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시도는 아마도 그저 시위나 성명으로만 끝낼 것 같지 않다.

물론 이 안보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통과되기는 어렵겠지만 미국과 인권문제에는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유럽연합(EU)가 앞으로도 계속 북에 대한 인권문제의 강도를 높여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이 대북 인권 압박은 한반도 전쟁, 나아가 세계 대전의 위기까지 가중시킬 우려가 높다.

벌써 북은 유럽연합과 일본 등 미국의 추종국도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북은 이미 핵시험 등 물리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스캐퍼로티 주한미사령관이 최근 연설에서 밝혔듯이 그럴 경우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뒤따를 것이고 북은 더 강력한 물리적 반격을 가하는 등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아 갈 것으로 보인다.

경제도 어려운데 올 연말 유난히 을씨년스러울 것 같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한반도의 운명이란 말인가.

▲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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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만들면 교육이 살아날까?


김용택 | 2014-11-28 09:46:4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혁신학교가 화두다. 진보교육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혁신학교! 학부모들의 열망이 뜨겁다. 혁신학교 주변에 집값까지 뛴다는 얘기도 들릴 정도다. 전국 13개 지역의 진보교육감들이 너도 나도 앞장서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혁신학교. 혁신학교를 하면 교육이 살아날까? 전국의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면 무너진 우리교육이 모두 정상화 될까?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답은 ‘아니오’다. 왜 그럴까? 이번 학교급식 예산이나 누리과정 예산파동만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어렵게 싸움싸움 해가면서 만든 무상급식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정부가 학교급식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급식뿐만 아니다.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교육감 임명제니 러닝메이트제로 가자며 뜸을 들이고 있다. 교육자치제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국사교육을 강화하다면 국사를 필수교과로 만들어놓고 한다는게 교학사 교과서다, 이제 곧 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어 정부의 시각을 담은 내용의 국사교과서가 나오게 될 것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정부가 하면 하면 로맨스다. 교육을 살린다고 별별 쇼를 다했다. 해방 후 16번, 평균 4년에 한번 꼴로 바뀌는 대입전형… 수능제도만 무려 3,289가지다. 답은 대학서열화를 척결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주장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학교를 살겠다고 벌였던 고교 입시제도 변천사를 보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학교별 시험→국가 시험→학교별 시험→병행 시행→국가 시험→병행 시행→국가 시험→병행 시행’으로 명멸을 거듭한 고교 입시제… 해방 후 10번이나 바뀐 고교 입시제도로 학교교육이 정상 화됐는가? 정상화는커녕 갈수록 학교는 무너지고 학교교육은 입시준비 학원으로 바뀌고 학원에서 인성교육까지 하고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진보교육감이 전국 17개 지역 중 13개 지역에서 당선되자 학부모들의 기대가 만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서울시 자사고 문제로… 경기도의 9시 등교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진보교육감이 추진하고 있는 혁신학교를 보면 학교에서 해마다 벌이고 있는 자료전시회나 연구발표대회를 연상케 한다.
‘우수한 교육자료를 교육현장에 소개하고, 교육자료 제작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을 유발하며, 교육방법 개선과 교육자료개발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교총이 ‘칠판 교육의 장벽을 뚫자’며 1970년부터 시작한 자료전… 아이들 교육보다 승진 점수를 받아 출세를 하겠다는 야망에 찬 교사들이 해마다 참여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그게 교육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혁신학교를 신청하겠다는 학교들이 줄을 서고 있다. 혁신학교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학교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 교육철학, 추진 계획 수립 타당성, 설정한 과제의 추진 가능성, 혁신학교 추진을 위한 준비, 예산 계획의 적정성…’ 등을 심사해 지정된 학교에는 4년간 학교별로 1억3000만~1억5000만 원을 지원받게 된다.(지역별 예산은 조금씩 다르다)
이런 이야길 하면 모처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진보교육감의 역점 사업인 혁신학교를 흠집내려는 게 아닌가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혁신학교란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교육과정 정상화’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혁신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입시학원이 된 학교며 교원들의 헌신성, 승진제도, 학부모들의 이기주의, 등등 주변 여건부터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지정부터 받아 예산을 확보하고 보자는 혁신학교로는 ‘공공성, 창의성, 민주성, 역동성, 국제성…’과 같은 혁신학교 철학을 실현하기 어렵다.

이름만 혁신학교라고 붙인다고 학교가 혁신 되는 게 아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지만 혁신학교에 매달려 아까운 4년을 허송세월한다면 임기가 끝난 후 남는 게 무엇일까? 지난 서울시의 자사고 문제며 9시 등교문제에서 보았듯이 교육이 상품이라는 정부의 교육철학이 교육은 공공재라는 진보교육감들의 철학과 충돌하는 한 진보교육감들의 정책은 하나같이 발목 잡힐 게 뻔하다. 제대로 수확하기 위해서는 길가도 자갈밭도 아닌 옥토에 뿌려야 한다. 사람가치를 서열 매기는 입시제도와 대학서열을 두고 어떻게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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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복직 못해 죄송" 끝내 눈물보인 YTN기자


14.11.28 08:17l최종 업데이트 14.11.28 08:1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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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YTN 노조 조합원 9명이 낸 징계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기각 결정이 나자,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과 조승호, 우장균, 정유신, 현덕수 기자가 허탈해 하고 있다. 이날 노 전 위원장은 "이 사건은 단 한 명의 부당 징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며 "이명박 정부와 배석규 사장, YTN 경영진, 대통합을 운운하면서 기만했던 박근혜 정부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난 판결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원고 노종면 외 8인, 피고 주식회사 YTN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6년을 기다려온 판결은 1분도 안 돼 끝이 났다. YTN 해직기자로 지난 6년을 지낸 우장균 전 청와대 출입기자는 "(판결문) 두 문장으로 끝났다"라면서 "읽는 데 20초도 안 걸렸다, 다들 허무함 이상의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27일 오전, 대법원은 YTN 노조 조합원들이 낸 징계무효확인소송에서 권석재·정유신·우장균 기자 등 3명 기자의 해고는 무효, 나머지 3명(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우 기자는 인터뷰 내내 담담했다. 그런 그가 무너진 것은 "그간 응원하며 함께한 시민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마지막 질문에서였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우 기자는 급기야 눈물을 보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6년 간 싸워온 6명 해직기자가 모두 함께 복직해 인사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우 기자는 '해고 무효'를 선고한 이번 판결로 복직을 앞두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대법원이 박근혜 정권 눈치를 보다 내린 '코드 맞추기'형 판결이다, 전 세계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인이 언론자유투쟁을 하다가 해고되는 사례가 전 세계 어디 있겠나"라며 "언론 탄압에 나선 이명박 정권과 이를 방관한 박근혜 정권이 YTN 해직 사태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해직 사태의 제1책임은 배석규 사장 등 물욕을 위해 후배 기자들을 옥죈 YTN 경영진에, 제2책임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 있습니다. 가령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도 수많은 언론인들이 민주화 운동 중 해직됐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다 복직을 시켰어요. 이번 사태도 정권이 의지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정부도 미필적 고의를 통해 해직자들을 '해고 살인'하는 데 깊숙이 개입했다"라며 "외국 언론마저 무리하게 수사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당연히 모든 언론을 위축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들을 해고하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폐지하는 것이, 마치 정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생매장했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떠올리게 한다"라고 덧붙였다. 

우 기자는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다"라며 "지금의 이 권위적 체재에서 3명이 복직 판결을 받은 것은 언론 자유의 승리"라고 평했다. 그는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죄라면 저희는 확신범"이라며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과 함께, 저희 6명 YTN 기자들과 조합원들의 투쟁도 계속될 것이다, 저 또한 다시 해고될 각오를 하고서 출근하겠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해직사태 주범... 대법원, 정권눈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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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은 27일 낙하산 사장 임명 반대 출근저지 등으로 해고된 YTN의 해직기자 6명 가운데 3명(노종면·조승호·현덕수)은 해고가 정당하고 3명(권석재·우장균·정유신)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날 판결로 복직이 확정된 우장균 기자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노조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3명의 해직과 3명의 복직 판결에 대해 "오늘 판결은 우리 투쟁의 종착역이 아니다"며 "YTN이라는 간이역에 잠깐 내렸을 뿐, 공정방송과 언론자유를 향한 투쟁열차는 무한궤도를 달릴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 6년을 기다려온 판결이 굉장히 짧게 끝났다. 
"오전 10시 20분쯤 시작했는데 20초도 안 걸리고 두 문장으로 끝났다. 다들 마음 졸이면서 들었는데, 허무 그 이상의 상태더라. 물론 이 판결이, 노사 간 조정을 하다가 국가의 법처럼 따라야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러나 민주주의 시민이자 언론인으로서의 해직기자들 투쟁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아예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아쉽다."

- '3명 해고 무효, 3명 해고 정당'이라는 2심 그대로 확정됐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대한민국이 성립된 이후로, 과연 언론인이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다가 해고 확정 판결을 받은 적이 있었는가. 이건 전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든 판결로, 해직이든 복직이든 판결을 받은 6명 모두에게 너무나 가혹한 판결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2심 판결 후 3년 7개월 만에 나온 건데 그동안 대법원이 뭘 했는지 의문이다. 

결국 정치적인 계산을 하다가, 정권의 성향도 바뀌지 않고 하니 그걸 헤아려 이런 판결을 내놓은 것 아닌가. 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언론 탄압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이명박 정권과 이를 방관한 박근혜 정권 모두가 주범이라고 본다. 물론 제1책임은 배석규 사장 등 물욕을 위해서 후배 기자들을 옥죈 YTN 경영진에 있다."

- YTN 기자들이 해고 등 대량 징계를 받은 것은 이명박 정권 때인데. 
"기본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이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지만, 박근혜 정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가령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도, 수많은 언론인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해직됐지만 1987년 민주화가 된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다 복직시켰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도 정권이 의지만 가졌으면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검찰이 외국 언론마저도 수사하는 마당에 이번 판결 결과로 인해 모든 언론들이 위축되지 않겠나."  

일부 언론은 이번에 '3-3 판결(3명 해직, 3명 복직)'이라고 보도하는데 이건 사실 무승부가 아니다. 한 명만 이겨도 YTN 노조가 함께 이긴 것이고, 작지만 언론 자유의 승리라고 본다. 이 권위적 체재에서 3명이 복직 판결을 받은 것이 큰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죄라면 저희는 아마 확신범일 거다."

"복직은 또 다른 투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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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의 판결로 6년 만에 복직이 확정된 우장균 기자가 동료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우장균 기자는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시민들께서 저희 해직기자들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많은 용기와 격려를 주셔서 그 덕분에 6년 동안 씩씩하고 외롭지 않게 견뎌온 것 같다"며 "앞으로도 연대의 힘으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가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 해고를 당한 뒤 2244일, 6년이 지나 복직 판결을 받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동료 해직기자 5명과 함께 해 온 조합원들, 이제껏 함께 해주신 시민분들에게 늘 고마웠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지난 6년 동안 YTN 사측 등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 분노를 마음에 새기고, 향후 1~2년 간은 다시 해고될 각오를 하고 출근을 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제가 45세 때 해고돼서 지금 51세인데, 동료들과 함께 한 지난 6년의 언론 자유 투쟁이 제게는 큰 영광이었다.   

오늘 회사에 오자마자 한 간부급 친구가 제게 그랬다. '확실하진 않지만, 곧 인사위원회를 열어서 (복직자들을) 6개월 정직을 시킨다는 말이 있다'고 말이다. 굉장히 지탄받을 일이고 야비한 행동이지만 권력을 뜻을 따른다면 그래도 하지 않겠나. 지방 출장이나 전보 등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로서는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 복직을 앞둔 시점에서 최근 YTN 보도 행태는 어떻다고 보나.  
"해직 사태의 시발점이 된 것이 '돌발영상'이다. 시청자,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청와대가 직접 내리려고 시도하기도 했던 방송이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언감생심 꿈꾸기도 힘든 게 YTN 현실이다. 대통령 칭송 방송이나 하는, 옛날 5공 때 '땡전뉴스'를 하고 있다. 21세기인 지금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부끄러운 짓 아닌가. 

MBC와 YTN에 대한 청와대 측의 언론탄압도가 가장 심한 것 같다. 자꾸만 기자들을 해고하고 좋은 프로그램과 방송들을 폐지시키는 것을 보면, 마치 책을 불태우고 비판적 유생들을 생매장했던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생각나기도 한다.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게 있으면 덮어버리는 게 독재의 전형적 수법 아닌가. 더구나 언론사 경영진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부역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을 만큼 참담한 상황이다." 

-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언론 탄압이 현재까지도 지속된다는 지적이 많다. 
"YTN은 이명박 정권 당시 매(해고)를 제일 먼저 맞았다. 당시 정권의 목적은 보수 정권의 영구화였고, 그걸 위해 방송 장악을 시작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 정권보다 낫다면 해외 언론감시단체가 내놓는 '언론자유지수'가 왜 계속 떨어지나. 해외에서 볼 땐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다."

- 해직 판결을 받은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약간 울먹이며) 판결 전에도 동료들과 수차례 얘기했지만, 법원 판결이 우리 투쟁의 정당성 여부를 판결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판결은 우리 투쟁의 종착역이 아니라, YTN이라는 간이역에 잠깐 내렸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방송과 언론자유를 향한 '투쟁열차'는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고, 저도 다시금 같이 올라탈 것이다. 지금까지 기다리는 마음이었다면 앞으로는 더욱 각자의 역할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해서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6년간 인생을 돌이켜보게 됐고, 시민들과 여러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선물도 많이 받았다. 이는 YTN의 투쟁이기도 하지만 언론노동자의 투쟁이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시민들로부터 받은 보살핌과 복직을 염원하며 1000마리 학을 접어주셨던 마음을 기억한다. 저를 버티게 했던 그 마음들을 잊지 않겠다." 

-이제껏 함께 해준 언론단체 등 시민들에게도 한 마디 해달라.
"(잠시 회상에 잠기더니 끝내 눈물) 어…, 음…, 갑자기 또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하하. 글쎄 뭐, 같이 싸워온 6명 해직기자가 모두 함께 복직해 인사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고 마음 아프고 그렇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공정방송을 향한 투쟁이 복직과 해직 판결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과 함께 저희의 투쟁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시민들께서, 저희 해직기자들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많은 용기와 격려를 주셨다. 그 분들 덕분에 6년 동안 씩씩하고 외롭지 않게 견뎌온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간 주신 마음은 앞으로도 연대의 힘으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지켜내자는 뜻으로 이해하고, 저도 다시 YTN이라는 언론사 내에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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