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8일 화요일

시한 임박한 진보진영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 이룰까

 최지현 기자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5개 정당 대표들이 국회에서 민주노총 총파업 지지 선언을 하는 모습. 자료사진ⓒ뉴시스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에서 거대 양당 후보에 맞설 진보진영의 단일후보가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노총과 정의당·진보당·녹색당·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 등 5개 진보정당, 민중경선 운동본부는 오는 29일 '불평등체제 타파를 위한 대선 공동대응기구' 실무회의를 이어간다.

이들은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는데 합의하고, 그에 관한 제반사항은 추가 논의를 거쳐 이달 말까지 확정하기로 한 바 있다. 정책 노선의 차이는 거의 없으나, 후보단일화 방식을 두고는 견해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6개 참가 단위는 지난 24일 실무회의에서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은 대국민 여론조사만으로 단일후보를 결정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2월 중순에 대선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만큼, 선거인단을 구성해 직접투표로 단일후보를 선정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진보당을 비롯한 다른 참가 단위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노동자 민중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의 선거인단을 구성해 직접투표로 단일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자 민중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의 연대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울산과 창원 등에서 진보 단일후보를 이러한 경선 방식인 '민중경선'으로 선출한 바 있다.

다만 이들 중 다수는 선거인단 직접투표를 기본으로 하되, 여론조사를 포함하는 등 구체적인 방식은 열어두고 논의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여론조사냐, 선거인단 직접투표냐는 이견을 좁히는 것이 진보진영 대선 후보단일화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과 6개 참가 단위는 오는 29일 오전 10시에 다시 모여 후보단일화 방식에 관한 최종 입장을 두고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 회의에 앞서 내부적으로 '중재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을 했는데, 참가 단위 사이에서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직접 조율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출입기자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정치적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각 정당의 의견을 조율하는 걸 기본으로 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작은 차이를 좁혀야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면 그런 역할은 상황에 맞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민주노총이 마련하고 있는 중재안의 큰 틀은 여론조사와 선거인단 직접투표를 모두 반영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반영 비율은 아직 확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은 중재안이 확정되면 후보단일화 실무회의 때 이를 제시하고, 현재 상황에 대한 민주노총 차원의 입장도 직접 밝힐 계획이다.

다만 정의당은 '여론조사 100% 반영'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변함이 없는 것으로 전해져 중재안이 마련되더라도 당장 합의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정의당 관계자는 "지난 실무회의에서 밝힌 입장에서 추가로 변경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합의 시한이 '12월 말'로 정해진 만큼, 29일 회의 때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31일까지 계속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 참가 단위 모두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와 총선까지도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단일후보가 선출될 경우 '배타적 지지 후보'로 선정하고 전폭적인 선거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진보진영 후보단일화에 힘을 싣는 여론 역시 커지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김형균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전선 대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제안해 노동계와 시민사회 원로들이 합류한 '원탁회의'도 구성된 상태다.

이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며 후보단일화를 이뤄내기를 바란다"며 "이것이 노동자, 농민, 빈민, 민중들의 간절한 바람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 임원과 산별노조 위원장들, 지역본부장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는 "진보진영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할 것이며, 단일후보 선출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110만 조합원과 노동자 민중의 함께할 수 있도록 모든 조직적 역량을 모아 지원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대만 침공? "시진핑이 연임 성공한 뒤에는…"

 美 달러 패권의 미래, 중국은 암약자냐 지원자냐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의 국내 정치 일정이 당분간 대만 침공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8일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가 주최한 '2021 중국사회연구포럼'에서 '미중 전략경쟁기 대만해협의 안보 위기 : 분석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가진 장영희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은 "중국 공산당의 국내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2022년 가을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 등의 안정적 개최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영희 연구실장은 "중국은 이 행사들의 성공적 개최에 국내 역량을 모으게 될 것"이라며 "대만에 대해 무모한 공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 대결로 이어진다는 점 △중국 경제에 적잖은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 △국제사회의 중국 비난 및 봉쇄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중국이 이러한 상황을 뛰어 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장 연구실장은 "2024년 초에 대만에서 총통 선거가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이 시기까지 대만을 심리적으로 위협하기 위해 지속적인 회색지대 전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20차 당 대회 이후 시진핑이 연임에 성공하고 나서 국내적으로 경제사회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대만 침공으로 반전시키려 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장 연구실장은 "시진핑의 높은 위험 감수 성향과 역사적 유산을 남기려는 열망이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침공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이 미국의 능력과 의도를 오인하는 것에서부터 대만 침공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장 연구실장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만해협의 유사사태에 개입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정치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여겨질 때 전쟁 억지에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지난 11월 16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상 정상회담을 가졌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이와 함께 향후 달러 패권에 따라 미중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날 포럼에서 '미중패권경쟁과 달러패권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를 가진 정재환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는 "달러가 계속 유지되는 한 미국 패권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인데, 이 때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현재 달러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역할을 담당하는 지원자 역할, 새로운 국제 통화 시스템을 만드는 창조자 역할, 달러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암약자 역할 등 세 가지의 역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중국 체제 특성 상 금융 시장 개방화나 탈규제화를 추진하기 힘들고 국제 협약에 의한 국제 통화 체제를 만드는 것은 성공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렇다면 지원자 아니면 암약자인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중국은 미국의 달러 시스템을 지지하는 역할을 했다"며 "중국이 당시 미국에 대한 채권을 던지지 않고 유지하면서 달러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중국도 당시 경제적 안정성을 고려해보면 선택지는 달러밖에 없었고 그 중에 미 채권밖에 없었다는 것이 중국의 판단이었다"며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중국도 큰 혼란이 오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책임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21년 현재, 중국이 여전히 미국의 달러 패권의 지원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하나는 달러 패권 문제가 미중 양국의 전략적 경쟁 영역으로 넘어섰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달러 패권이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면서 이득은 미국이 취하고 부담은 다른 국가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됐다는 것"이라며 "중국 입장에서 미국과 전략적 경쟁 때문에 시스템의 암약자로 위치를 바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지원자 역할을 할 것인지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태다. 이걸 중국이 어떻게 흡수할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전망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2281744320079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서울신문이 변하고 있다

 

  • 기자명 김예리 기자
  •  입력 2021.12.29 04:05
  •  댓글 0
    

호반 대주주 이후 2달, 미담·동정 보도 0건에서 14건
보도 안팎 영향력 확대…서울신문 활용 전방위 사업도


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지면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호반그룹이나 창업주인 김상열 회장 관련 미담을 전하는 서울신문 기사가 인수 이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서울신문 광고면에도 호반건설이 꾸준히 등장한다. 서울신문 사옥을 활용한 사업에도 전방위로 손을 뻗치고 있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그룹과 지분매매 본계약을 맺은 지난 10월8일부터 12월28일 현재까지 서울신문이 지면과 온라인에 보도한 호반그룹 관련 동정 또는 홍보성 기사는 총 14건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지난해부터 지난 10월8일까지 지면에 호반건설 관련 동정 기사를 1건도 내지 않았던 신문이었다.

관련 기사내용은 호반건설이 내놓은 주택 청약 소식부터 창업주와 그룹의 수상 소식까지 다양하다. 지난달 25일엔 호반그룹이 ESG 확산과 창업활성화를 지원하는 ‘자상한 기업’에 뽑혔다는 소식을 지면에 실었는데 이는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유일했다. 호반건설이 스타트업의 고민을 해결하는 ESG 사업수행자로 선정됐다고 밝힌 보도(11월11일 21면)나 호반장학재단이 2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는 보도(11월15일)도 마찬가지다. 이들 보도는 경제나 인물 면에 배치됐다.

▲지난 11월25일 서울신문 21면
▲지난 11월25일 서울신문 21면
▲지난 11월11일 서울신문 21면
▲지난 11월11일 서울신문 21면

다른 언론사들이 보도한 이슈에는 더 큰 지면과 분량을 할애했다.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당시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이 베트남 우호훈장을 받은 사실을 1~2문장의 동정 기사로 전한 데 비해 서울신문은 세 문단에 걸쳐 기사화하는 식이다.

▲지난 11월19일 김상열 현 서울신문 회장의 베트남 우호훈장 수여 소식을 별도 기사로 전한 언론사 보도 갈무리. 서울신문이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지난 11월19일 김상열 현 서울신문 회장의 베트남 우호훈장 수여 소식을 별도 기사로 전한 언론사 보도 갈무리. 서울신문이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호반건설이 참여한다는 부동산 첫 사전청약 관련 기사도 서울신문만 두 차례 지면에 보도했다. “민간 아파트 첫 사전청약…오산세교·평택고덕 등 2528가구”(11월30일)와 “1인 가구·아이 없는 신혼부부도 기회! 4억원대 수도권 아파트 청약해 볼까”(12월6일)다. 호반건설은 이번 민간주택 첫 사전청약에서 평택고덕에 633가구를 공급했다.

▲호반건설이 참여한다는 부동산 관련 기사도 서울신문만 두 차례 지면에 보도했다. 호반건설은 이번 민간주택 첫 사전청약에서 평택고덕에 633가구를 공급했다.
▲호반건설이 참여한다는 부동산 관련 기사도 서울신문만 두 차례 지면에 보도했다. 호반건설은 이번 민간주택 첫 사전청약에서 평택고덕에 633가구를 공급했다.

이 같은 지면 변화는 서울신문 구성원들에게도 낯설다. 서울신문 구성원 A씨는 “서울신문은 100년 이상 개인 사주 없이 이어져 온 조직이다. 대주주 동정을 전하는 기사를 내기 시작한 지면을 보게 됐다”며 “(대주주 관련 보도를) 꼭 써야 하는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인상이 찌푸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는 호반건설과 대주주 협상 당시 서울신문 구성원(우리사주조합)에 편집권 독립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A씨는 “언론사의 편집권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 호반건설의 약속이었다”며 “기업이 언론사의 권력을 잡게 됐을 때 언론을 사유화할 것인가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기업으로선 굉장한 유혹일 것이고, 호반은 처음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구성원들은 대주주 관련 보도가 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는 분위기다. 언론사 내에 ‘체념’의 분위기가 더 크다는 것이다. 구성원 B씨는 “서울신문이 호반에 넘어갈 때 다 예상했던 그림”이라며 “서울신문 매각에 맞서다 결국 이 같은 결과가 나오다 보니 문제 제기할 동력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구성원 C씨는 “아직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나오진 않았지만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보도 수위가 더 심각해지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란에도 호반이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 서울신문 1면 오른쪽상단 배너광고에는 지난 1일부터 호반그룹과 계열사 광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게재되고 있다. 호반건설은 지난 3일부터 화성동탄의 호반써밋 입주자 모집을 공고하는 전면 광고를 서울신문에만 배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울신문 사측 관계자는 “광고를 통한 정식 지원이다. 호반이 서울신문에 투자를 약속했는데 법적으로 가능한 지원 방법이 광고와 사업 지원 정도”라고 전했다.

▲지난 1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신문 1면 오른쪽 상단 배너광고 갈무리. 삼성금거래소와 대아청과는 호반그룹의 계열사다.
▲지난 1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신문 1면 오른쪽 상단에 게재된 호반 관련 배너광고 일부. 삼성금거래소와 대아청과주식회사는 호반그룹의 계열사다.

호반, 프레스센터 사옥 활용한 사업 확대도


김상열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신문 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이로써 서울신문과 EBN, 전자신문이 속한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이자 서울신문 등기이사인 회장을 겸직하게 됐다. 서울신문은 이달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의 기존 서울신문 사장실을 회장실로 바꿔 김 회장이 매주 목요일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은 과거 부사장실을 사장실로 쓰고 있다.

서울신문 관계자는 “회장 직책엔 실제 권한보다는 책임에 무게를 뒀다”며 “정말 중요한 사안만 회장이 들여다보고 책임 경영에 방점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장이 업무를 95% 이상 보고 투자 여부 등 큰 결정만 회장이 할 것”이라며 ‘출근하는 대주주의 입김’에 대한 우려에 해명했다.

서울신문은 호반그룹 법인과 전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신문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신문은 프레스센터 1층을 리모델링 해 ‘서울갤러리’를 운영할 예정이다. 태성문화재단으로부터 전시용 그림을 공급받기로 했다. 태성문화재단은 호반건설의 주요 주주로, 이사장인 우현희씨는 김상열 회장의 배우자이면서 그 역시 호반건설 주요 주주다. 앞서 서울신문은 2019년 7월 특별취재팀 바이라인으로 ‘태성문화재단, 미술사업엔 인색…그룹 사옥 막대한 임대수익 챙겨’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지난 2019년 7월17일 서울신문의 호반그룹 검증 기획보도 일부
▲지난 2019년 7월17일 서울신문의 호반그룹 검증 기획보도 일부

서울신문은 이달 중순 프레스센터 1층에 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와 독자서비스국 사무실을 비웠다. 리모델링을 거쳐 3월께부터 전시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노조 사무실은 8층으로 옮겼다. 온라인 갤러리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상열 회장은 프레스센터 근처 호텔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복수의 서울신문 구성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10월 서울신문 편집국에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프레스센터 곁에 위치한 뉴국제호텔이 매물로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뒤 매입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관계자는 “매물로 올라오면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미정이다”라고 했다.

한편 서울신문 관계자는 “성과 상여금을 올해 말일 기본급의 200% 지급하는 내용의 올해 임금 협상안을 노조와 협의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 “호반이 서울신문에 공약한 바에 따라 내년 임금을 10%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올해엔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나가라! 한미동맹 해체하라!”

 

‘미국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 작은문화제 진행

  • 기자명 이기영 통신원 
  •  
  •  입력 2021.12.28 13:15
  •  
  •  댓글 0
 

영하 13°c 최강 한파에도 ‘미국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 진행

 

25일 오후, 용산 전쟁기념관앞에서 ‘미국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이 열렸다. 영하 13°c가 넘는 최강 한파에도 불구하고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박희성 고문, 노수희 부의장을 비롯한 통일원로들과 30여명이 참가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25일 오후, 용산 전쟁기념관앞에서 ‘미국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이 열렸다. 영하 13°c가 넘는 최강 한파에도 불구하고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박희성 고문, 노수희 부의장을 비롯한 통일원로들과 30여명이 참가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한 지난 주말 25일 오후, 용산 전쟁기념관앞에서 ‘미국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이 열렸다.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서울행동은 기온이 -13°c가 넘는 최강 한파에도 불구하고 고령의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박희성 고문, 노수희 부의장을 비롯한 통일원로들과 3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대북적대정책으로 정세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을 반대하고, 한미동맹에 얽매어 사대굴종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출정식 발언에서 김동순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면서 “2022년 새해에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미국반대, 미군철수 투쟁을 더 힘차게 벌여나가자”고 호소했다.

출정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온 몸을 파고드는 칼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군은 나가라!’, ‘한미동맹 해체하라!’, ‘사드기지 철거하라!’, ‘대북적대정책 철회하라!’, ‘통일방해 내정간섭 중단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미군기지를 따라 녹사평역 공원까지 행진했다.

“2022년 새해, 불평등 해소 민족자주 실현 위해 더욱 힘차게 싸워나가자”

이태원 입구, 녹사평 공원에서 열린 ‘작은문화제’에는 대진연 율동패, 통일춤패, 권말선 시인, 박일규 민중가수, 노래극단 희망새 동지들이 함께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이태원 입구, 녹사평 공원에서 열린 ‘작은문화제’에는 대진연 율동패, 통일춤패, 권말선 시인, 박일규 민중가수, 노래극단 희망새 동지들이 함께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녹사평 공원에서 진행된 ‘작은문화제’에는 대진연 율동패, 통일춤패, 권말선 시인, 박일규 민중가수, 노래극단 희망새 동지들이 함께했다.

통일인력거 김명희 대표는 결의발언에서 “지난 4월 26일 통일인력거를 끌고 제주를 출발해서 어제 임진각에 도착했다. 하지만 결국 군인들에 막혀 통일대교를 건너지 못하고 임진각 한쪽에 통일인력거를 세워놓고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가짜 유엔사를 해체하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이루기 위해 내년에도 더 열심히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진과 작은문화제는 평화통일시민행동 이진호 대표 사회로 진행됐으며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 소속 단체 회원 30여명이 참가했다.

현재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은 6.15서울본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평화통일시민행동, 미국은들어라시민행동, 한민족공동행동(준), 평화연방시민회의, (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 여러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내년에도 서울지역에서 한미동행 해체, 미군철수 투쟁을 계속 이어갈 것을 결의하며 올해 마지막 반미월례행동을 마무리했다. 한편, ‘미국은 손떼라 서울행동’은 내년 1월 22일 ‘8차 서울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박희성 고문, 노수희 부의장. [사진-양심수 후원회]
왼쪽부터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박희성 고문, 노수희 부의장. [사진-양심수 후원회]
참가자들이 용산 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녹사평역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맨 선두에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이 섰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참가자들이 용산 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녹사평역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맨 선두에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이 섰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용산 미군기지 3번게이트 앞에서 멈춰선 참가자들. 미군을 향해 “미군은 나가라! 한미동맹 해체!” 등 구호와 함성을 외치고 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용산 미군기지 3번게이트 앞에서 멈춰선 참가자들. 미군을 향해 “미군은 나가라! 한미동맹 해체!” 등 구호와 함성을 외치고 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미군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 참가자들이 이태원으로 가는 육교에서 “불평등한 한미동맹 해체” 피켓을 들고 서울 시민들을 향해 선전전을 진행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반포대교를 넘어 도심으로 들어가는 많은 차량들이 육교 위 피켓을 보며 지나갔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미군은 손떼라 7차 서울행동’ 참가자들이 이태원으로 가는 육교에서 “불평등한 한미동맹 해체” 피켓을 들고 서울 시민들을 향해 선전전을 진행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반포대교를 넘어 도심으로 들어가는 많은 차량들이 육교 위 피켓을 보며 지나갔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전쟁기념관 앞에서 출발한 행진은 녹사평역 공원까지 약 40분 진행됐다. 맨 선두에 선 이규재 명예의장은 영하의 강추위와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행진 끝까지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전쟁기념관 앞에서 출발한 행진은 녹사평역 공원까지 약 40분 진행됐다. 맨 선두에 선 이규재 명예의장은 영하의 강추위와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행진 끝까지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이 [파도앞에서] 곡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이 [파도앞에서] 곡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박일규 민중가수는 남북관계에 간섭하고 방해하는 미국을 규탄하면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길에 노래로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박일규 민중가수는 남북관계에 간섭하고 방해하는 미국을 규탄하면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길에 노래로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통일인력거 김명희 공동대표. [사진-양심수 후원회]
통일인력거 김명희 공동대표. [사진-양심수 후원회]
통일춤패 회원들. [남누리북누리], [주한미군철거가] 2곡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통일춤패 회원들. [남누리북누리], [주한미군철거가] 2곡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사진-양심수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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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꿈치가 부서져"... 김근태 고문사실은 어떻게 미국에 알려졌나

 

[김근태 10주기] 전두환 정권 인권유린을 미국에 알린 인재근의 영문성명서 전문공개

21.12.29 06:02l최종 업데이트 21.12.29 06:02l
2011년 12월 30일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  2011년 12월 30일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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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은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아래 호칭 생략)이 서거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1947년에 태어난 김근태는 1985년 9월 전두환 정권 시절 자행된 야만적인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2011년 12월 30일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치지도자로서 한창 활동할 수 있는 시기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그는 한국 정계에서 도덕성과 품격 그리고 실력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정치지도자였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한국 정치에 있어서도 큰 손실이었다.

김근태는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된 국가테러, 국가폭력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고난과 억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인사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거 10주기가 되는 올해 그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 보는 것은 필요하다. 특히 김근태에 대한 국가폭력이 이뤄지던 시기에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지난 11월에 90세 일기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김근태 별세 10주기를 맞이해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아래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자료는 의미가 있다. 김대중도서관은 김근태의 고문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김근태의 배우자 인재근(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영문 성명서를 공개했다. 1985년 9월 26일 김근태로부터 고문 사실을 전해들은 인재근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다. 이 자료에는 인재근이 김근태로부터 직접 들은 참혹하고 충격적인 고문 사실이 그대로 나와 있다.


이 자료는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영문으로 작성돼 있으며 미국에서 활동하던 한국인권문제연구소(김대중이 1983년 2차 미국 망명 기간 중에서 설립한 단체)는 이를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렸다. 그래서 미국에서 김근태 고문 사실이 공론화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이 자료는 김근태의 고난과 투쟁이 한국 민주화와 한미관계에 준 영향 등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인재근이 김근태의 고문 사실을 폭로하게 된 과정
 
1987년 미국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는 김근태와 인재근을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지만, 한국 정부가 인재근의 출국을 거부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는 다음 해인 5월 직접 한국을 방문해 명동성당에서 상을 수여했다. 당시 축사를 하는 김수환 추기경 모습.
▲  1987년 미국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는 김근태와 인재근을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지만, 한국 정부가 인재근의 출국을 거부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는 다음 해인 5월 직접 한국을 방문해 명동성당에서 상을 수여했다. 당시 축사를 하는 김수환 추기경 모습.
ⓒ 민청련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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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성명서는 어떻게 작성된 것일까? 이를 위해서 먼저 김근태 고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과정부터 살펴봐야 한다. 김근태는 1985년 8월 24일 체포돼 민청련 제5차 총회 결의문과 관련한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구류 10일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구류 기간 동안 일반적으로 허용되던 가족 면회가 이뤄지지 않는 등 이상조짐이 있었다. 결국 구류 마지막 날인 9월 4일 새벽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9월 20일까지 17일 동안 폭행,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가혹행위를 당했다.

김근태에 대한 고문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필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 기사 작성을 위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는데,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김근태는 마음 속으로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버텼다고 한다. 그리고 버티는만큼 고문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김근태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고문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무참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야만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폭력이다. 만약 피해자가 고문에 굴복하면 신체에 대한 파괴는 줄일 수 있지만 정신은 파괴되고, 고문에 굴복하지 않으면 정신은 지킬 수 있으나 신체는 파괴되고 만다. 결국 고문피해자는 어떤 경우든 가혹한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근태가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동안 외부에 있는 가족과 동지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근태의 행방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이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수감된 사람은 언젠가는 조사받는 곳에서 검찰로 이관될 것이라는 한 법조인의 조언에 따라서 김근태의 배우자 인재근은 검찰청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이 적중해 9월 26일 검찰청 5층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인재근은 극적으로 김근태와 마주치게 됐다. 그리고 5층에서 4층으로 내려가는 1분여 동안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이때 김근태는 고문 사실을 인재근에게 알렸다. 김근태는 훗날 '이 만남은 정말로 기적같은 것이었다'고 회고했었다.

김근태로부터 끔찍한 사실을 전해들은 인재근은 기독교회관으로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린다. 그래서 김근태에 대한 야만적인 고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당시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던 사람은 주변 동지들을 포함한 소수였다. 왜냐하면 군사독재 정권 시절 이와 같은 사실은 국내 언론에 제대로 보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근태 고문 사실은 국내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빨리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인재근의 폭로 내용은 바로 미국에 있는 한국인권문제연구소에 전해져서 미국 사회에 알려지게 됐다. 김대중도서관이 이번에 공개한 자료가 당시 미국 사회에서 유포된 것이다.

이 영문 자료의 생산 과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국제전화로 내용을 파악한 미국의 한국인권문제연구소에서 직접 영문으로 작성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작성된 문서가 인편이나 우편을 통해서 미국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할 때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인재근이 밝힌 김근태 고문 사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영문으로 작성된 이 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인재근(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우자 김근태의 고문 사실을 알린 영문 성명서.
▲  인재근(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우자 김근태의 고문 사실을 알린 영문 성명서.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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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문서

1985년 9월 27일.
김근태의 아내 인재근 

제 남편이 경찰의 고문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의장을 지냈고 현재 이 단체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김근태의 부인입니다.

남편은 9월 4일 오전 5시 30분, 경찰의 대공수사국 요원들에게 끌려가서 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되었습니다. 20여 일 동안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조급해진 저는 검찰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가 9월 26일, 오후 2시 30분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교도관들의 도움을 받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는 걷기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많이 다쳤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심합니다, 너무 심하게 맞았어요." 그는 계속해서 9월 4일부터 20일까지 약 10번의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단단히 묶인 그의 몸을 향한 전기 충격, 고추와 소금 등을 넣은 물을 삼키도록 강요당하는 등의 물고문은 한 번에 5시간에서 7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이 기간 동안 전혀 잠을 잘 수 없었고, 고문을 당한 날에는 음식 또한 얻지 못했습니다. 계속되는 고문에 그의 건강이 악화된 관계로 고문 시간은 3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검찰청사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남편으로부터 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기실에서 나는 남편의 발뒤꿈치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낯익은 발뒤꿈치가 너무 심하게 부서져서 내 가슴을 울렸습니다.

비록 저는 제 눈으로 남편의 몸을 볼 수는 없었지만(남편이 옷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의 팔꿈치 주변에는 상처가 가득하다고 들었습니다. 남편은 9월 20일에서 26일 사이에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아마 제가 남편을 만났을 때 전보다 상태가 훨씬 더 나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피투성이인 고문실에서 어떤 일을 겪어야 했는지 신은 알고 계시겠죠!

저를 두려움과 분노에 떨게 만든 것은 남편에게 간신히 전달한 옷들 중에서 속옷이 한 벌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남편의 속옷이 피로 얼룩진 것이 확실합니다. 이제 저는 왜 제 남편이 검찰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는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왜 그것들을 감옥으로 데려가야 했는지요.

공식적으로 등록된 이 잔인한 폭력배 집단이 어떻게 우리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이 끔찍한 고문을 실행하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누가 "대한민국"을 법아래 있는 국가로 지칭할 수 있을까요?

무고한 사람들을 조종하고 고문을 통해 범죄를 만들어 내는 수사기관들이야말로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남편이 겪는 고통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한국 국민들에게 심각한 위협이자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이 폭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7살짜리 아들에게 이 무서운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미국에 알려진 김근태 고문 사실

당시 미국에서 이 자료를 널리 알린 곳은 김대중이 2차 미국 망명 기간 중에 설립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다. 전두환 정권 시절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김대중의 대미창구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한국 민주화와 관련된 주요 내용을 미국의 정치인과 지식인 등에게 알리면서 한국 민주화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미국 사회 내에서 형성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중에서 후자와 관련된 대표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미국 사회에 김근태 고문 사실을 알린 것이다.

당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김근태 고문 사실을 미국의 정계, 학계, 종교계 그리고 언론과 시민사회 단체 등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군사독재 정권이 자행하는 학살과 고문은 끔찍한 반인권적인 행위로서 미국 국민들에게 큰 거부감을 준다.

그래서 반공을 이유로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미국 정부도 이와 같은 문제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큰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이 점을 노려서 미국 사회 내에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조성되도록 했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의 활동은 성과를 거뒀다. 미국 하원 의원들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서 김근태 고문과 관련해서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김근태의 인권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김근태는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김근태 고문 사건은 한국 국내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어 한국 민주화, 한미관계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김근태 선생 서거 10주기를 맞이해서 공개된 이 자료는 미국 사회에서 김근태 고문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미국 사회 내에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조성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 높여준다. 이처럼 김근태 고문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 한미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