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일 월요일

"'내 몸이 증거'라는 피해자들, 이들 인생이 지옥이면 되겠나"

 [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다큐멘터리 영화 만드는 류이 감독

.허환주 기자  |  기사입력 2024.01.02. 05:01:47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유공이 출시한 '가습기메이트'가 시초였다. 가습기 내부 세균을 없애고 세균번식을 억제해 물때를 방지하는 제품이었다. 인체에 무해한 것은 물론이었다.

출시 첫해 10만개가 팔리면서 다른 회사들도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후 1996년부터는 옥시, 애경, LG생활건강 등이 잇달아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문제는 2011년에 발생했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폐렴 증상을 보이는 산모들이 줄지어 입원했다. 환자에게는 폐가 딱딱해지는 섬유화 현상과 폐가 터지는 증상 등이 나타났다.

바이러스를 의심한 의료진은 여러 검사를 진행했으나 아무런 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나섰다. 역학조사, 세포독성시험, 동물 독성 실험 등 여러 조사를 7개월 동안 진행했다. 

그러한 실험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쥐에서 피해자와 비슷한 폐손상이 발견됐다. 정부는 곧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그리고 피해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접수가 시작된 이래 현재(23년 12월)까지 총 7890명이 피해를 호소했고 이중 5667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됐다. 

반면 가해자, 즉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기업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면죄부를 부여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대표, 애경산업 대표 등 기업인 13명도 마찬가지다. 오는 1월 11일 2심 선고가 나온다. 3년 전 1심에서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재판 결과는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피해를 인정한 것과도 상반된다.

지난 12월 28일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진행한 류이 예술감독은 이번 2심 재판부가 4가지를 유념해줄 것을 당부했다.

2021년부터 전국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전문가 등 100여 명을 만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류 감독은 2023년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환경시민상을 받았다. 지난 2년 가까이 진행된 2심 재판을 모두 참관하기도 했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류이 예술감독. ⓒ프레시안

"1심 재판, 형사법 원칙을 들이밀어서 과학적 논리를 배격" 

프레시안 : 지난 21일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경제정의실천시연합 등 전국의 71개 환경단체가 주는 환경시민상을 받았다. 이 상을 받은 배경이 궁금하다. 

류이 : 2021년 가습기 살균제 재판에서 무죄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놀랐다. 당시 뭐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서 피해자들이 진행하는 시위를 찾아갔다. 거기서 피해자 김태종 씨를 만났다. 그때 들은 말이 '나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였다.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인 기업들이나 정부가 자기들 책임은 없다고 다 오리발을 내미니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식이었다. 아내에게 살균제를 사다 준 사람이 자신이었다. 자기는 살고 아내는 죽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그때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3년째 50가족(100여명)을 인터뷰하고 있다.

프레시안 : 상을 받은 배경이 그런 활동을 해서인가. 

류이 : 뭐든 기록이 중요한데,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제대로 기록하는 분이 없었다. 그리고 관련해서 두 편의 단편영화가 나왔고 상영회도 진행했다. 그것을 보고 상을 주신 듯하다. 장편영화도 준비 중에 있다. 

프레시안 : 3년 동안 유가족을 만나왔기에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는 11일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SK케미칼의 홍지호 전 대표, 애경산업의 안용찬 전 대표 등에 대한 2심 선고가 나온다. 2021년 1월 12일 무죄 판결을 받은 지 3년 만이다. 1심에서는 모두 무죄 판정을 받았다. 질환과 살균제 간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류이 : 1심 재판부는 쥐 실험 결과를 근거로 살균제가 폐에 도달했다는 증거가 없고, 도달해서도 염증을 일으켰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것은 과학자들의 증언과 배치된 판결이었다. 역학조사에서도 연관이 있다고 했는데, 형사법 원칙을 들이밀어서 과학적 논리를 배격했다. 

옥시싹싹의 경우,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 폐손상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의 교차비가 47.3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폐손상 발생 위험이 47.3배 높다는 의미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병에 걸린 이들은 거의 100%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의미다. 

SK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도 전 국민 의료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 천식 발생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명났다. 중증도(3)를 기준으로 볼 때, 가습기 살균제 노출자는 비노출자에 비해 어린이에서 최고 30배, 성인여성에서 최고 15배로 위험도가 높게 나왔다. 살균제가 어떻게 폐에 도달했는지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 등은 밝혀야 하지만, 이는 그 다음 문제다. 역학조사로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이를 부정한 것이다. 

프레시안 : 2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나. 

류이 : 2심에서도 기업 측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의 폐질환을 '특이성' 질환의 일환으로 삼아 논박했다. 물론 재판에 출석한 전문가는 특이성 질환은 근거가 없다고 했지만 변호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렇게 논쟁되는 것을 두고 보는 식이었다. 

"불특정 다수가 건드리는 피해자의 죄책감" 

프레시안 : 2심 판결이 1월 11일에 나온다. 결과가 어떻게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류이 : 2심 재판부가 도중에 바뀌었는데, 이전 재판부와는 다르게 서승렬 재판부는 공정하게 진행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항소심이지만 빠짐없이 기록을 다 보려 했다. 새로 나온 증거나 빅데이터 연구결과, 추가 채택 증인 등을 최대한 많이 검토하고 살펴봤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항소심을 다 지켜봤다고 들었다. 항소심에 피해자 당사자나 가족들은 참관을 했는가.

류이 : 다들 환자 분들이라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변호사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근본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습기 참사 피해자들이 다른 참사 피해자와 유독 다른 성향을 보이는 게 첫째로 스스로가 환자이다 보니 몸이 아파서 어디 참여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렵다.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피해자 김선미 씨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두 번이나 구토 증상을 겪었다. 천식 환자여서 숨을 못 쉬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살균제를 스스로 사다 쓰지 않았나. 이것을 가지고 2차 가해가 심각하다. '니가 사다 써놓고서 왜 기업을 욕하느냐'는 선 넘은 비난이 상당하다. 이것을 겪어본 피해자들은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상당수가 자괴감에 빠져 있거나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다. 다들 자폐 증상이 있어서 집밖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생각해봐라. 자기가 산 살균제로 아이가 서서히 죽었다는 죄책감을 어떻게 씻어낼 수 있겠나. 게다가 불특정 다수가 그러한 죄책감을 자꾸 건드린다.

마지막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한날한시에 참사를 당한 게 아니다.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병원이나 군대 등에서 조용히 당했다. 한날한시도 아닌 장시간에 걸쳐서 말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파편화돼 있고 고립돼 있다. 그래서 피해자들 중에는 '인생은 지옥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많다. 

프레시안 : 그런 피해자들의 상황을 변화하기 위해서라도 항소심 결과가 매우 중요한 듯하다.

류이 : 유죄가 나오면, 희망이 생긴다. 그것을 시작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분들이 세상에 나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는 따로 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이번 항소심 결과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하지만 항소심이 뒤집힌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류이 : 내가 지난 2년 가까이 진행된 항소심을 모두 지켜보지 않았나. 재판부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판단을 했음 한다.

프레시안 :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2021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류이 : 첫 번째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아픈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 예컨대, 대표적인 피해자가 두 분이 있다. 이장수 씨 딸은 1995년에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했다. 태어나서 50일 정도 밖에 살지 못했다. 최초의 영아 사망자였다. 그런 사실을 판사는 알아야 했다. 그분을 불러서 당시 상황을 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김태종 씨 부인 박영숙 씨의 경우 13년간 투병을 하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그 투병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병원에 23번 실려 가고, 그중 16번을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 확신이 생긴다. 재판부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으면 배척하는 것도 문제일 듯싶다. 

류이 : 항소심 초반에 증인으로 피해자 두 분이 나오셨다. 80에 가까운 노인 분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 측 변호사가 살균제를 언제 어떻게 썼느냐며 집요하게 과거의 기억을 캐물었다. 그러니 이 노인분이 당황해서 연도를 헷갈려서 진술이 왔다갔다 했다. 변호사는 그것을 물고 늘어져서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공격했다. 32년 동안 진행되어 온 참사이기에 기억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재판은 그것을 용인해주지 않는다.

이 과정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지난 12년 동안 반복돼 왔다. 가해기업과 정부는 진짜 피해자, 가짜 피해자를 나눠서 '넌 피해자가 맞느냐'고 묻고, 피해자는 이에 증거를 수집해서 '나는 피해자가 맞다'고 답해야 하는 식이다. 증거가 헷갈리거나 불분명하면 '가짜 피해자'가 된다. 

프레시안 : 이것은 다른 참사에서도 늘 반복되는 문제인 듯하다. 

류이 : 두 번째는 재판부가 피해자들이 '내 몸이 증거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학적인 진술이라는 점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집단적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그것으로 피해자의 '내 몸이 증거다'라는 진술은 입증이 끝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893만여 명이 노출 피해를 봤고, 95만여 명이 상해 피해를 봤다. 2만여 명이 죽었다. 이 2만여 명은 기업들이 죽인 셈이다. 집단살인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에 독성학이나 임상 사례 등을 헤집어서 논박을 진행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재판이 그랬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서 쥐로 실험해보니 이상이 없었다면서 인과관계가 없다고 기업 측 변호사들은 주장한다. 역학조사라는 게 과학임에도 왜 변호사나 판사는 자기가 잘 모르는 그런 과학 분야에서의 과학자 의견을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과학적 입증이 된 사안을 다시 재판에서 논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들에게 조그마한 빛 밝혀주는 판결되길" 

류이 : 세 번째로 가습기 살균제는 독가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균제는 물 분자와 함께 나노 입자로 바뀌어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간 뒤, 염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피를 통해 여기저기로 들어가 전신질환을 일으킨다. 이런 과정은 이미 입증됐다. 그런데 쥐를 통해 독성 실험을 하니,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위해성이 없다고 기업들은 주장한다. 그렇게 겉으로는 위해성이 없어서 우리 제품으로는 환자가 생길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1심 재판 말미에 중증피해자 11명에게 보상을 했다. 

프레시안 : 왜 그런 것인가. 

류이 : 그분들이 재판에 계속 참관하면서 탄원서를 내고 추가 고소를 하니, 이렇게 가면 재판에 불리하겠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한 듯싶다. 그렇게 해서 이분들을 재판정에 못 나오게 했다. 재판부에서 이를 인지하고 철퇴를 내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형량 문제다.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는 98명의 피해자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런데 검찰은 기업 대표들에게 5년을 구형했다. 현재 신청 피해자는 7883명으로 확인된다. 이중에서 환경기술원이 피해자로 인정한 사람이 5417명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단독으로 쓴 피해자는 308명이고, 다른 제품과 함께 쓴 복합사용 피해자는 2181명이다. 이 중에 98명분의 형량만이 재판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죗값은 어디에서 받아야 하나. 

현 재판부는 이런 지점을 감안해서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조그마한 빛이라도 밝혀주는 판결을 해주길 바란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김건희 특검 거부권 반대 여론에도 조선일보 “尹, 일단 거부권 행사할 수밖에”

 

  •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4.01.02 07:43
  •  

  •  수정 2024.01.02 08:51
  •  

  •  댓글 1
  • [아침신문 솎아보기] 지난 1일 1면 삼성 광고, 2일 1면 광고는 SK그룹

    동아일보 “尹 카르텔 같은 문제의 색출 못지 않게 구체적 개혁 실행해야”

    현직 검사들 총선 출마에 한겨레·경향 “위험수위 이른 검찰 정치화”

    4·10 총선을 100일가량 앞두고 많은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그중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30일~31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63%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유튜브 영상 갈무리.

    ▲2일 아침신문들.

    조선일보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여론몰이용 특검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면도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높은 건 “그만큼 김 여사를 믿지 못하는 국민이 많은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총선 여론몰이 특검법은 대통령이 일단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일자 아침신문들의 1면 하단 광고는 SK그룹이 차지했다. SK그룹은 “갑진행복. 생각이 달라도 서로 이해할 때, 거기 행복이 있습니다. 당신이 잘되라고 먼저 응원할 때, 거기 행복이 있습니다. 갑진년 새해, 그 값진 행복이 용솟음치기를 SK가 응원합니다. SK가 함께합니다”라는 문구의 광고를 냈다. 지난 1일 신문을 발행하지 않은 세계일보만 1면에 삼성 광고를 실었다. 지난 1일 자 아침신문들은 1면 하단에 <함께라서 용기 나는 2024년> 제목의 삼성 광고를 냈다.

    ▲2일 경향신문 1면 하단 광고.

    김건희 특검 거부권 반대 63%에도 조선일보 “尹, 일단 거부권 행사할 수밖에”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여론은 7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과반이 넘었다. 또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도 거부권 반대 여론이 과반을 넘겼다.

    조선일보는 4면 <“김건희 특검 거부권 반대” 63%… “총선 이후 특검” 55%> 기사에서 “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20대 66%, 30대 80%, 40대 78%, 50대 63%, 60대 51%로, 70세 이상(34%)을 제외한 전 연령에서 과반이었다”며 “지역별로는 서울 63%, 인천·경기 65%, 대전·충청 61%, 부산·울산·경남 54% 등 대구·경북(46%)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었다”고 보도했다.

    ▲2일 조선일보 4면.

    다른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중앙일보가 지난달 28~29일 한국갤럽에 의뢰한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65%, 행사해야 한다는 응답이 25%로 조사됐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29~30일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조사에선 거부권이 적절하다가 23%, 부적절하다가 62%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30일~31일까지 이틀간 성인 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가상 번호를 활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조사했다. 표본오차는 95%이며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응답률은 13.9%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선일보는 <김건희 특검 총선 이후 실시가 국민 과반 여론> 사설에서 “특검 대상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 대통령이 김 여사와 결혼하기 전인 10여 년 전 일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이 1년 반 넘게 강도 높게 수사했지만 김 여사 관련 혐의를 찾지 못했다. 이런 사안을 더 수사해야 한다며 야당이 특검을 임명하는 법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김 여사 관련이면 뭐든 수사할 수 있도록 수사 대상을 광범위하게 규정했고 수사 기간도 총선을 치르는 4월 10일까지 이어지도록 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무리하게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2일 조선일보 사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이렇게 무리한 특검이지만 거부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높은 것은 그만큼 김 여사를 믿지 못하는 국민이 많은 탓”이라며 “대통령 선거 때는 ‘내조만 하겠다’고 했는데 선거 후 김 여사의 처신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최근 불거진 명품 가방 문제가 특검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형성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총선 여론 몰이에 초점을 맞춰 국회에서 통과시킨 특검법은 대통령이 일단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며 “다만 윤 대통령이 나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국민이 충분히 납득하도록 설명해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김 여사 관련 사안에는 대체로 함구해 왔다. 최근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도 ‘따로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일이 쌓여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키워온 측면도 작지 않다. 윤 대통령이 진솔하게 이해를 구하고 총선 이후 특검 실시를 약속한다면 민주당의 특검이 선거 정략임을 짐작하고 있는 국민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尹 카르텔 같은 문제의 색출 못지 않게 구체적 개혁 실행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자기들만의 이권·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진정한 국민을 위한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일 동아일보 1면.

    ▲2일 동아일보 5면.

    동아일보는 1면 <尹, 총선 100일앞 “이권-이념 패거리 카르텔 반드시 타파”>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이권 카르텔’이 아니라 “이념 카르텔”을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 이후 ‘이념’ 언급을 자제해 온 윤 대통령이 집권 3년 첫날에 ‘이념 카르텔’을 화두로 올린 것은 4월 총선을 100일 앞두고 야당을 겨냥한 ‘86(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운동권 심판론’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어지는 3면 기사에서 “1일 발표된 대통령 신년사 중 ‘이권·이념 카르텔’ 혁파 대목은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과 가진 7차례 이상의 독회 끝에 직접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점이나 기업 연합을 뜻하는 표현인 ‘카르텔’의 어감이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을 수 있는 만큼 ‘패거리’라는 표현으로 부정적 어감을 더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집권 3년 차임에도 구체적 개혁의 실행에 진력하지 않고 카르텔 타파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동아일보는 <尹 3년차도 “카르텔 타파”… 이젠 개혁과제 실행에 더 진력해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이제 집권 3년 차로 임기 중반에 접어들었다. 카르텔 같은 문제의 색출 못지않게 구체적인 개혁의 실행에 진력해야 할 때다. 그런데도 정작 3대 개혁과 저출산 해결에 대해선 공허한 당위론에 그치고 있다. 개혁을 위한 야당과의 협치나 국민과의 소통에도 별말이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다짐이 말뿐이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2일 동아일보 사설.

    ▲2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도 <‘이념 패거리 카르텔 타파’가 대통령 신년사에 담길 말인가>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그간 ‘카르텔 척결’을 내세워 일부 노조와 시민단체를 공격해왔다. 카르텔은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는 명분으로도 사용됐으니 전가의 보도인 셈”이라고 운을 뗐다.

    경향신문은 “그 카르텔의 범위를 ‘이념’으로 확장하고, ‘패거리’란 표현도 동원한 것을 보니 선거를 앞두고 야당과 비판세력을 상대로 검찰식 통치를 하려는 기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야당과 전 정부를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로 몰며 이념전쟁을 촉발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을 ‘운동권 특권정치’로 비판한 데 이어 대통령이 총선을 100일 앞두고 ‘이념 패거리 카르텔’을 꺼내들고 있으니 ‘정치복원’의 기대는 접어야 할 판”이라고 비판했다.

    현직 검사들 총선 출마에 한겨레·경향 “위험수위 이른 검찰 정치화”

    지난해 29일 대검찰청이 김상민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과 박대범 마산지청장을 각각 대전고검과 광주고검으로 인사 조처하고 감찰과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상민 전 부장은 지난해 추석 때 지인들에게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 내용의 문자를 보냈고, 박 전 지청장은 총선과 관련해 외부 인사와 부적절한 접촉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현직 검사들의 총선 출마, ‘검찰공화국’이 자초한 기강 해이> 사설에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배출 후 첫 총선을 앞두고 현직 검찰 간부들이 출마 의사를 밝히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검사가 사표 수리 전부터 정치 행보를 보이는 것은 검찰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일탈 행위다. 검찰 출신이 정부기관 요직에 이어 여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차지하며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으로 만든 현 집권세력이 자초한 일탈 아닌가”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현직 출마를 버젓이 밝히고 있는 것은 개인의 돌출행동이라기보다 검찰 조직 전체의 건강성이 나빠지고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현직에 있을 때부터 상당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검사의 총선 직행은 어려울 것이다. 권력을 좇아 정치에 줄을 대는 이런 ‘정치 검찰’에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고 공정한 수사를 맡길 수 있겠나. 국민 불신만 키울 뿐이다. 검찰은 이 참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도 <현직 검사들 잇따른 출마, 위험수위 이른 ‘검찰 정치화’> 사설에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보위하려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마구잡이로 수사한다. 급기야 이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은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행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가 현직 검찰 간부들이 총선 출마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로 조직의 건강성을 해친 건 아닌가. 총선에 출마하려는 현직 검사를 징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원석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서연 기자psynism@mediatoday.co.kr

    #한동훈#검찰공화국#이원석#운동권#카르텔#대검찰청#총선#조선일보#동아일보#윤석열#김건희 특검법#저출산#명품 가방#거부권#SK#삼성#갑진년

    세계에서 가장 물가 비싼 나라라는데... 한국보다 더 쌉니다

     [2024 신년 글로벌리포트 : 세계 장바구니 물가①] 고물가 시대, 이 나라가 국민을 대하는 방법

    24.01.02 07:05l최종 업데이트 24.01.02 07:05l

    이봉렬(solneum)

    '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편집자말]

    2023년 6월, 아랍 매체 <알자지라>는 "바이 싱가포르, 헬로 말레이시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다국적 기업의 직원들이 치솟는 물가를 피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말레이시아나 베트남 등으로 옮겨 간다는 내용입니다. 지난 한 해만 집값이 26%, 월세는 30%나 오르는 등 주거 비용이 많이 오른 게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이 떠나는 큰 이유가 됐습니다.

    싱가포르 물가가 비싸서 체류 외국인들이 싱가포르를 떠나 말레이시아나 베트남으로 옮겨 간다는 알자지라의 보도

    ⓒ AL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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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이후 크게 오른 집값이 아니더라도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로 꼽혀 왔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계열 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2022년 '전 세계 생활비지수'를 발표했을 때 싱가포르가 뉴욕과 함께 세계에서 제일 비싼 나라로 꼽혔습니다. 싱가포르는 같은 조사에서 지난 10년 동안 여덟 번이나 1위를 차지할 정도도 고물가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도대체 어떤 게 얼마나 비싸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라고 하는 걸까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가 맞긴 맞는 걸까요? 싱가포르에서 사는 입장에서 답을 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어떤 부분이 맞고 또 어떤 부분은 사실과 다른지 하나씩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싱가포르가 물가 비싼 나라인 이유... 집, 차, 술, 담배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가장 비싸다고 느끼는 건 집값입니다. 전자 회사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싱가포르에서 한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구입했는데 그 가격이 약 640억 원 정도였습니다. 싱가포르 부자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나오는 그런 저택들이 실제로 많이 존재하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쌉니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중산층이 사는 민간 아파트는 20억에서 50억 원 수준으로 이웃 말레이시아에 비하면 3배에서 5배 정도 더 비쌉니다.

    싱가포르 집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이지만, HDB라 부르는 공공임대아파트가 있어서 서민들은 부담없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국민 80%가 이런 HDB에 삽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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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임대료는 방이 세 개인 보통 아파트의 경우 500만 원에서 700만 원 정도입니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가 엄격한 기준으로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영 아파트(HDB)의 경우에도 임대료가 월 300만 원이 넘으니, 외국인들은 말레이시아로 이주하든, 집 한 채 임대 대신 방 하나 임대로 전환하는 겁니다.

    집값이 비싸긴 하지만 싱가포르 국민이 느끼는 건 좀 다릅니다. 정부가 토지를 소유하고 집만 공급하는 HDB가 있어서 모든 국민들이 평생 한 채는 시세의 절반 수준으로 분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국민의 80%가 이런 아파트에 삽니다. 비싼 임대료는 싱가포르에 와서 일하려는 외국인에게는 큰 부담이지만 싱가포르 국민에겐 재산 증식의 수단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 다음은 자동차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싱가포르에 자동차 생산공장을 짓고 거기서 아이오닉5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5천만 원 정도 하는 그 차를 싱가포르에서 사려면 2억 5천만원 정도를 줘야 합니다. 차에 붙는 세금 자체가 비싸기도 하지만 차를 사기 위해서는 차량취득권리증(COE)을 별도로 사야 하는데, 이 가격이 1억이 넘기 때문입니다. 땅이 좁은 도시국가라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10년 동안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COE 제도를 도입했는데, 10년이 지나서 차를 계속 타려면 COE를 다시 사야 합니다. 현재 COE 최저 가격이 1억이 넘고, 차종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COE 가격은 1억 5천만 원 정도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조립 생산하는 아이오닉 5. 이 차를 사려면 세금과 COE를 더해서 2억 5천만원은 있어야 합니다.

    ⓒ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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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차값이 비싸긴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가 워낙 촘촘하게 잘 되어 있어서 차가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 사용을 줄이자는 "카 라이트(Car-lite) 정책의 일환으로 자전거 도로 확장과 공유 자전거 보급에 투자가 많이 이뤄져서 자전거가 또 하나의 교통수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영 주차장에 배치해 놓은 전기자동차를 앱을 이용해 필요할 때만 빌려 타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7년을 싱가포르에서 차 없이 살았지만 불편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이처럼 비싼 집값과 차값이 물가 지수를 왜곡한다고 해서 이 두 항목을 제외하고 가계물가를 더 잘 반영하기 위한 '근원물가지수'를 정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도 비싼 걸로는 뒤처지지 않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생산하는 500mm 캔 맥주 하나 가격이 일반 마트에서 대략 5천 원 정도 하고, 수입 맥주는 그보다 더 비쌉니다. 싱가포르는 개방된 무역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품목을 무관세로 수입합니다. 하지만 담배, 주류, 자동차, 유류 등 4개 카테고리의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를 무겁게 매깁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수입에 의지하는 와인이나 위스키는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비쌉니다.

    시내 유흥가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맥주 한 잔에 1만 5천원 이상이라 자주 가지는 못합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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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는 한 갑 가격이 대략 1만 2천 원 정도입니다. 담배를 판매하는 곳이 정해져 있고 그나마도 바깥에 담배가 보이도록 진열하는 건 불법이라 숨겨 놓고 팝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담배를 면세점에서 많이 사지만 싱가포르는 담배 반입 자체가 안 됩니다. 한 갑도 반입이 안 되고 적발 시 세금을 물립니다. 싱가포르에서 판매하는 담배에는 필터 부분에 세금을 냈다는 표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산 담배를 몰래 들여왔다고 하더라도 시내에서 피우는 중에 쉽게 구분이 가능하고 적발이 되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이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주류통제법에 의하면 저녁 10시 30분부터 아침 7시까지 공원, 도로, 주민공동공간 등 모든 공공 장소에서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마트나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도 같은 시간에 술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담배 역시 정해진 장소에서만 피울 수 있을뿐더러 시내 일부에서는 도로 전체를 담배금지구역(No Smocking Zone)으로 설정해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규제 때문인지 2020년 싱가포르의 흡연율은 10.1%, 같은 시기 한국의 20.6%에 비해 절반 수준입니다.

    싱가포르 공립중학교의 학비 비교. 싱가포르 국민은 25달러, 외국인은 1931달러로 77배 차이가 납니다.

    ⓒ 싱가포르 교육부 (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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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국민들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싱가포르에 사는 외국인들에겐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학비입니다. 공립중학교 학비는 월 5천 원 정도에 기타 잡비를 포함해서 2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이 학비가 월 190만 원이나 됩니다. 공립중학교가 이 정도 수준이고, 사립이나 국제학교로 가면 이보다 더 받습니다. 외국인에게만 특별히 비싼 학비가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물가 비싼 나라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장바구니 물가와 외식 물가를 비교해 보면

    그럼 이처럼 싱가포르만의 특성으로 인해 가격이 턱없이 비싼 것들 외에 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어떨까요?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마트에 가서 주말에 집에서 해 먹을 식료품 위주로 산 후 한국과 가격을 비교해 봤습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마트인 '페어프라이스'에서 물건을 산 후 한국 '홈플러스'에서 같은 종류의 물건값을 확인해서 비교표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물건도 제조사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어서 최대한 비슷한 수준의 물건을 골랐습니다.

    싱가포르 마트에서 산 물건을 한국의 홈플러스와 가격 비교를 해봤습니다. 종류별로 다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싱가포르 장바구니 물가가 더 저렴했습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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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감자, 사과, 파인애플 등 특별히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은 싱가포르가 한국에 비해 저렴했습니다. 중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농산물 수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그렇습니다. 축산물을 보면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한국이 싼데, 미국이나 호주에서 수입하는 소고기는 싱가포르가 더 쌌습니다. 계란, 두부, 식용유는 싱가포르가 더 싸고, 우유하고 과자류는 한국이 더 쌉니다. 한국 제품인 신라면과 빼빼로도 샀는데 한국이 조금 싸지만 가격 차이가 크진 않습니다. 관세 없이 운송비만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장바구니에 담은 걸 모두 사는데 싱가포르에선 6만 7천 원 정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이걸 다 사려면 10만 원 정도 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같은 상품이라도 만든 회사나 수입하는 곳에 따라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몇 퍼센트 차이가 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싱가포르 장바구니 물가가 한국보다는 저렴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싱가포르는 집, 차, 술, 담배로 인해 부풀려진 통계 안에만 있는 나라입니다.

    외식 물가는 어떨까요? 금융산업이 발달하고 관광객이 많은 싱가포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 많습니다. 유명한 요리사의 이름을 내건 식당이나, 미쉐린 별을 받은 식당들이 흔합니다. 그런 곳은 가격 또한 극단을 치닫습니다. 미쉐린 별 3개를 받은 한 식당은 단품 음식 하나가 최소 50만 원인 곳도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 인당 GDP가 가장 높은 싱가포르라서 그런지 그런 곳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싱가포르의 호커센터 모습. 날씨가 더워서 집에서 조리하기 보단 밖에서 세 끼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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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편에는 싱가포르 서민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호커센터가 있습니다. 호커는 음식 노점상을 뜻하는데 여러 노점상이 모여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합니다. 일 년 내내 더운 날씨의 싱가포르에선 집에서 밥을 해 먹기보단 호커센터의 값싸고 다양한 음식으로 하루 세 끼를 모두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은 한 끼에 4천 원에서 8천 원 사이로 크게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호커센터는 저렴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음식 문화의 전승과 생계 수단이 되는 곳으로,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효용을 인정받아 202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싱가포르 문화유산으로는 최초로 등재됐습니다. 2016년에는 싱가포르의 호커센터 식당 두 곳이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가 노점 식당에 별을 부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식당의 주메뉴인 치킨라이스 한 그릇의 가격은 3천 원이었습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서민 지원 대책

    장바구니 물가가 한국보다 낮고, 호커센터에서 저렴하게 식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2021년 이후 벌어지고 있는 물가 상승이 싱가포르 서민들의 삶에 영향이 없을 수 없습니다. 2022년 싱가포르의 물가상승률은 6.1%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23년 9월 말, 싱가포르 정부는 물가 상승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약 1조 원 규모의 생활비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9월 말, 싱가포르 정부가 물가 상승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약 1조 원 규모의 서민 생활비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는 로이터 통신의 보도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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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성인 250만 명을 대상으로 소득에 따라 최소 약 20만 원에서 최대 80만 원까지 현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집이 두 채 이상 있거나 연소득이 1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최소 금액만 받고, 연소득 34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80만 원을 받게 되는 겁니다. 모두에게 주지만 형편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현금 지급 외에도 가구당 30만 원의 지역상품권(CDC바우처)이 제공됩니다. 디지털 형식으로 발급되는 이 상품권은 지역의 소매점이나 마트, 식당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 가능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도 가능합니다. HDB 거주민만을 위한 공공요금 지원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싱가포르 국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말고도 대중교통 요금 인상 억제를 위해 3천억 원 규모의 보조금이 지급됩니다. 에너지 가격의 인상 및 임금 인상으로 인해 교통비를 인상해야 하지만 보조금을 통해 그 인상폭을 최소화하여 실질적으로 서민의 교통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저소득층에게는 연 5만 원 상당의 교통비 지원도 함께 이뤄집니다.

    물가 상승을 이유로 편성한 모든 현금성 지원의 대상은 오직 싱가포르 국민뿐입니다. 싱가포르 인구는 약 590만 명으로 그 중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싱가포르 국민은 60%인 약 360만 명 정도이고 나머지 40%를 차지하는 영주권자나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들은 싱가포르 인구로 잡히기는 하지만 현금성 지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싱가포르 국민들이 물가 상승의 충격을 정부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상쇄하는 동안 체류 외국인은 싱가포르가 비싸기만 하고 지원은 없다고 느껴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통계만 보면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이긴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보다도 낮은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2022년 기준 싱가포르의 일 인당 GDP가 8만2000달러로 한국의 3만2000달러에 비해 두 배가 넘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의 물가 상승이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된다고 판단해서 조 단위의 추가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지난 23년간 한국과 싱가포르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 대체적으로 한국이 높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세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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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5.1%로 싱가포르와 1%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한국의 상승률이 더 높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한국의 물가는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오르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서민 지원 대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부의 압박에 상품값을 올리려던 기업들이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양을 줄였다는 뉴스만 가끔 눈에 띌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는 싱가포르가 아니라 한국이 아닐까요? 계속되는 물가 상승 속에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이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분명 그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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