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3일 수요일

내란방조 의혹 추경호, 질문하자 보좌진 사이에 두고 '노룩 퇴장'

 [특검 '키맨' 앰부시③] 계엄 당일 윤석열과 통화한 당시 원내대표... 특검, 공수처 사건 이첩받아 수사 중




    [현장] 기습질문에 당한 추경호, 잠시후 보좌진과 같이 등장하더니... 전선정

    -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씨와 통화하셨는데 어떤 이야기 나누셨어요? 계엄 해제 표결에 참석하지 말라는 이야기 있었나요?
    "…"

    - 비상계엄 직후 의원총회 장소는 왜 여러 번 변경하셨어요? 윤석열씨 통화에 따른 지시였나요?
    "…"

    - 당시 원내대표로서 표결 불참 정당의 원내 수장으로 기록에 남을 텐데요. 국민들께 하실 말씀 없으세요?
    "…"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과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통화하고,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바꿨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당시 원내대표)이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검) 수사가 한창인 시점에 던진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입을 완전히 닫았다. "비상계엄을 미리 인지한 적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나"라는 물음에도, 그는 시선을 피한 채 걸음을 옮겼다.

    추 의원은 23일 오전 10시 30분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 본청에 입장했다. 회의장을 향하며 <오마이뉴스>와 마주친 추 의원은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과 어떤 내용으로 통화를 했는지" 묻자 반대 방향을 응시하며 걸음을 이어갔다. "당시 통화 때 계엄 해제 표결에 참석하지 말라는 이야기 있었나", "의총 장소를 여러 번 바꾼 것에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나" 등 이어진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 직후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좌진이 추 의원과 기자 사이를 막으며 질문을 제지하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 직후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좌진이 추 의원과 기자 사이를 막으며 질문을 제지하기도 했다. ⓒ 전선정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오마이뉴스>의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을 피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오마이뉴스>의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을 피하고 있다. ⓒ 전선정

    질문에 답하지 않던 추 의원은 회의장 인근에서 만난 이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목례로 인사했다. "당시 원내대표로서 표결 불참 정당의 원내 수장으로 기록될 텐데 국민들께 하실 말이 없나"라는 질문이 이어질 때였다. 이어 "특검에서 (소환) 조사 연락이 오면 응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지만, 추 의원은 어느 질문에도 답하지 않은 채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의원총회 후 다시 만난 추 의원은 입장 때와 달리 보좌진으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현장을 빠져 나갔다. 해당 인물은 추 의원과 기자 사이에 서서 그가 국회 본청을 떠날 때까지 질문을 제지하기도 했다.

    추 의원에게 다시 "비상계엄 사전에 인지한 바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냐", "내란 방조 의혹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그간 탄핵 반대 시위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퇴장길에도 추 의원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주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현장을 떠났다.

    앞서 해명 "윤석열과 통화, 계엄 해제와 무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추 의원은 '계엄의 밤' 때 국회 본청 안에 머물면서도 계엄 해제요구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번 변경하며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당시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잇단 의원총회 장소 변경을 문제삼기도 했다.

    추 의원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그리고 직후 주말에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윤석열과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추 의원은 지난 5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발표 내용을 간단히 전하며 '미리 얘기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짧게 통화가 끝났고, 계엄 해제안 표결과 관련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각의 의혹 제기처럼 대통령이 계엄해제 결의안 표결 방해를 지시했고 이를 실행하려고 했다면 통화 직후 국회로 의원총회 장소를 변경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하지만 통화 직후 '의원총회 장소를 당사에서 국회 예결위회의장으로 변경'하고 당시 당사에 있었던 동료의원들과 함께 국회로 직접 이동했다"고 전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주진우 의원.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주진우 의원. ⓒ 남소연

    하지만 그가 의원총회 장소로 최종 공지한 곳은 당사였다. 추 의원이 윤석열과의 통화 직후 국회로 장소를 변경한 건 사실이지만, 그는 30분 후 다시 당사로 장소를 공지했다.

    특검팀은 앞서 여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내란 방조 등 혐의로 고발당한 추 의원 사건을 이첩 받아 수사 중이다.

    [특검 '키맨' 앰부시]
    ① '김건희' 묻자 기자 밀친 양평군수 https://omn.kr/2ekq3
    ② 삼부가 여전히 '골프 3부'라는 유상범 https://omn.kr/2elra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의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의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 전선정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의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의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 전선정

    #추경호#윤석열#비상계엄#내란특검#조은석
  • 글: 이진민(real2) 
  • 사진·영상: 전선정(sljeon) 
  • 영상: 권우성(kws21) 

대통령실, 비서관 인선 미공개 논란…대변인 “조직 정비 완료되면 공개할 것”

 신형철기자

수정 2025-07-23 16:27등록 2025-07-23 16:27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욱 국민통합비서관의 사태로 대통령실의 비서관급 공직자의 인선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아직 조직이 정비되지 않아 비공개 방침을 유지하면서 향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3일 브리핑 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문재인·윤석열 정부 등에서는 1급 비서관 인선도 공개했다. 특별히 인선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라는 물음에 “인수위 없이 시작한 정부가 두 달이 채 안 되고 있는데 비서관 채용 또한 마련이 다 되지 않은 상태고 진용도 다 갖춰지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강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시절 초기 언론 담당을 맡았던 담당자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정부 초기에는 비서관 및 행정관의 개인 연락처나 신상에 관한 공개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론계 보수 인사의 추천으로 발탁된 강준욱 국민통합비서관이 지난 3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계엄을 옹호하는 주장을 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고, 결국 자진사퇴했다. 이에 대통령실의 비서관급 인선 또한 공개해 외부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지난 정부까지도 비서관급 인선은 대부분 공개됐다. 이재명 정부와 마찬가지로 인수위 없이 정권을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결과적으로는 모든 비서관급 인사를 공식 브리핑 또는 보도자료 형태로 공개했다. 다만 그 시점이 분산되었는데, 출범 초기에 임명한 비서관들의 경우 며칠 또는 몇 주 지연되어 발표된 경우가 있었다. 2017년 6월 초까지 일부 비서관들이 사실상 업무를 시작한 뒤에야 인사 발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청와대는 인선이 완료된 비서관들에 대해 수시로 서면브리핑이나 대변인 발표를 통해 공개했다.

한편, 강 대변인은 여당 내에서 대통령실 인사 검증 시스템이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에 대해선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의 자진사퇴 과정은 한편으로는 국민의 기대감을 잘 충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송구스러운 마음도 포함되지 않았나 싶다”며 “국민주권정부로서 국민의 높은 기대감을 만족시켜 드렸어야 했는데, 그런 아쉬움을 같이 표현한 것이라고 봐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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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 고통 언제까지…'박원순 다큐' 제작진, 상영금지·배상 판결에 항소

 김대현 감독, 항소 후 "北 김정은 문제 용납 않듯 피해자 의심 못하게 해" 주장 공유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첫 변론> 제작진이 법원의 상영금지 및 배상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제작진 측은 "마치 북에서 김정은의 통치력을 문제 삼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피해자임을 털끝만큼도 의심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는 게시물을 공유하는 등 피해자 A 씨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22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다큐멘터리 <첫 변론>을 제작한 단체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과 연출자 김대현 감독은 A 씨에 대한 1000만 원 배상과 다큐멘터리 광고·제작·판매·배포 금지 및 위반 시 1회당 2000만 원 지급을 선고하라는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이유서는 22일 기준 아직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대현 감독은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뒤인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재판은 항소심으로 올라가야 맞을 것 같다"며 재판부의 판결에 항의하는 글을 공유했다. 해당 게시물 작성자는 "그녀(A 씨)에 대해 말 한마디 잘못하면 중죄인이 되고, 과연 그녀가 성추행을 당한 게 맞는 것인지 묻고 그 증거나 증인 등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문제 삼는다면 성추행범을 옹호하는 파렴치한이 된다"며 "마치 북에서 김정은의 통치력을 문제 삼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A 씨가 피해자임을 털끝만큼도 의심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 그게 우리의 웃기지도 않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때까지 가장 성공한 여성운동 사례는 A 씨를 증거도 없이 피해자로서 미리 확정시킨 사건" "직권조사로 성추행을 인정한 인권위원장 역시 최영애라는 여성계 인사" "좌파 정치를 공격하면 파워가 생기는 게 한국의 여성계라면, 차라리 우익 정치 운동이라고 스스로 밝힐 것이지 그런 간판은 왜 달고 있는지 모르겠다" 등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해 여성계에 대한 비난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영화의 원작은 아무 문제없이 판매되고 있는데 영화는 망하게 만들겠다며 A 씨에게 조그만 흠집조차 용납 않겠다는 판결에는 이의가 있다"며 1심 판결에 불복한다는 뜻을 밝혔다.

▲ '첫 변론' 포스터.ⓒ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첫 변론> 제작진은 박 전 시장 성폭력 사실을 부정하며 지난 2023년 7월부터 8월까지 전국 16개 지역에서 1400여 명(제작진 추산)이 참석한 시사회를 열었다. 피해자 측은 같은 해 8월 1일 영화상영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서울남부지법이 9월 20일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에 제작진이 제소명령을 신청했으며 법원이 이를 인용하자 A 씨 측은 민사배상명령 소장을 접수했다.

이후 지난 3일 1심 재판부는 <첫 변론>이 상영될 경우 A 씨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며 다큐멘터리 상영 금지와 광고·제작·판매·배포 금지 및 위반 시 1회당 2000만 원 지급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의 A 씨에 대한 성희롱 행위의 존재는 인권위 조사절차 및 관련 행정소송 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쳐 여러 차례 인정됐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영화는 그 가해행위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함에서 더 나아가 A 씨가 박 전 시장과 관련이 없는 준강간 사건의 책임을 고인에게 씌우기 위해 허위 또는 왜곡된 기억을 바탕으로 박 전 시장을 고소했고 이로 인해 공적으로 존경받고 A 씨와도 친밀한 관계였던 박 전 시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희롱 사건에 대한 A 씨와 박 전 시장의 입장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박 전 시장에게 우호적인 자들의 진술, A 씨의 박 전 시장에 대한 친밀한 언행 등을 통해 A 씨의 피해사실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들로만 구성돼 있다"며 "영화의 구성방식, 전체적인 흐름 등을 볼 때 피고들은 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 박 전 시장의 가해행위 사실을 축소하거나 부정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박 전 시장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의 직접적인 진술과 여러 자료, 증언에 기반한 사실"이라며 "이 사건은 '가짜 미투'가 아니며, 다른 사적인 이유나 앙심에서 비롯된 일도 여성단체와 변호사의 사주로 이루어진 일도 아니"라고 했다.

또 이들은 "A 씨를 지원해 온 단체는 고 장제원 전 의원 사건을 비롯한 다른 위력 성폭력 사건도 일관되게 대응하고 있다"며 여성단체를 향한 정치적 편향 의혹을 부정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끝내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망해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국민들의 마지막 경고장 받은 일본...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몰락한 자민당

25.07.23 11:53최종 업데이트 25.07.23 11:53

"보수주의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는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대로 두면 변화에 휩쓸린다. 하얀 울타리를 지키고 싶다면 계속 덧칠해야 한다. 옛것을 지키려면 언제나 새롭게 다시 그려야 한다."

영국의 작가 G.K. 체스터턴이 남긴 말이다. 변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조율하며 본래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보수는 과거로 도망치는 회귀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할 질서를 유지하려는 적극적인 기술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이 기술이 무너지고 있다. 프랑스의 드골주의 공화당, 이탈리아의 기독교민주당, 독일의 기독교민주당, 미국의 공화당. 20세기를 이끈 주요 민주주의 국가의 보수 정당들이 오늘날 하나같이 위기를 맞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보수의 본령을 잃었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서 책임 있는 조율자가 되기보다 권력 유지에 급급했고, 질서를 가꾸기보다 기득권을 관리했다. 불안한 공동체를 어루만지기는커녕 익숙한 관행 안에 숨었다. 변화 앞에서 원칙은 흐려졌고, 그 자리에 타성이 남았다.

그렇게 책임을 방기한 자리에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는 감정의 정치가 들어섰다. 새롭게 떠오른 세력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증폭시켜 정서적 결속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모은다. 분열의 언어가 힘을 얻고, 미래에 대한 계획은 과거에 대한 향수로 대체된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극우다. 이제 극우는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지 않는다. 주류의 실패를 자양분 삼아 주류의 언어를 흉내 내고 때로는 그 자리를 넘본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 이미 확인된 현상이다. 그리고 이제 일본도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일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는 유권자들이 자민당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처럼 보였다. 자민당은 단독 과반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서도 전체 의석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2012년 이후 10년 넘게 이어온 안정 다수의 구조가 무너졌고 '참의원 선거만큼은 이변이 없다'는 공식도 깨졌다. 자민당이 상대적 다수는 유지했지만, 일본 보수 정치가 구조적 쇠퇴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더는 감출 수 없게 됐다.

일본 정치의 새로운 질서 구축한 자민당

21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패배 직후 도쿄의 자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합당하며 자민당이 탄생했다. 그것은 단순한 정당 재편이 아니라 일본 정치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 분기점이었다. 전후 분열된 일본 사회에서 자민당은 안정과 통합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일본 정치 중심에 군림했다.

자민당이 선택한 방식은 명확했다. 이념 대립 대신 관료제의 행정을 중시했고, 대립적 정치보다는 이익의 분배를 통해 불만을 흡수했다. 정치는 논쟁의 장이 아니라 문제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수단이었다. 갈등은 드러나기보다 봉합되었고, 변화는 체제 안에서 조율되었다.

무엇보다 자민당은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보다 엘리트끼리 조율하는 정치를 택했다. 정책은 관료와 당내 파벌 간의 비공식 경로를 통해 결정됐고, 권력은 눈에 띄지 않게 분산되고 배분되었다. 이처럼 자민당은 '이념보다 행정', '대립보다 분배', '대중 동원보다 엘리트 조정'이라는 운영 논리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갈등과 불안을 흡수해 냈다.

이러한 운영 논리는 세 가지 구조적 기반 위에서 작동했다. 첫째, 당내 파벌 구조는 권력을 수직화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배분하는 장치였다. 둘째, 지역 기반은 지역 개발과 자치 조직을 통해 전국 곳곳에 영향력을 뿌리내리게 했다. 셋째, 분배 구조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특정 계층에 쏠리지 않도록 조정해 정치적 불만을 잠재웠다. 이 세 요소는 55년 체제를 지탱한 실질적 기둥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정치 체제도 유지만을 목적으로 존속할 수는 없다. 갈등을 봉합하고 권력을 분산하는 기술이 정치를 무풍지대처럼 만들었지만, 그 안에는 유권자의 참여와 선택, 책임의 순환이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변화하는 사회에 조응하지 못한 그 구조는 점차 생기를 잃었고 정교하게 짜인 기둥들은 안에서부터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본 보수 정치의 내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파벌은 더 이상 권력을 수평적으로 나누는 완충장치가 되지 못했다. 세대교체 속도는 느렸고 당내 권력은 일부 인물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경쟁보다는 승계, 견제보다는 줄서기가 이어졌고, 조율의 정치에서 긴장의 정치는 사라졌다.

지역 기반 역시 급속히 침식되었다. 지방 인구는 줄고 젊은 층은 자민당의 정당성과 무관한 세대로 성장했다. 조직은 남아 있으나 동원은 약화되었고, 지역의 목소리는 중심 권력과의 연결을 상실해 갔다.

분배 체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도성장기의 자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재정 부담과 이해 충돌뿐이었다. 이전에는 불만을 잠재우던 예산이 이제는 갈등을 유발하는 불씨가 되었다.

일본 정치의 본질적 위기 보여주는 징후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한 참정당의 가미야 소헤이 대표가 도쿄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수십 년간 일본 정치를 옥죄어온 무기력은 바로 이 오래된 구조의 파열에서 비롯되었다. 문제는 이 무기력이 자각되지 않은 채 일상화되었다는 점이다. 불신도, 분노도 없이, 그저 관성처럼 반복되는 정치의 풍경 속에서 유권자의 기대는 서서히 식어갔다.

이제 정치적 위기는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관계의 단절로 나타나고 있다. 정당과 유권자 사이, 권력과 국민 사이에 놓인 신뢰의 끈은 점차 느슨해졌고, 일부는 이미 끊겨버렸다. 자민당이 단순히 의석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당으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신뢰의 단절과 감정의 동요가 겹치는 틈을 비집고 새로운 세력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산세이토(참정당)의 악진은 그 대표적 사례다. 균열된 자민당 체제를 흔들고자 하는 비주류 정치의 상징적 징후이며 기존 정당 정치가 놓친 정서의 틈새를 채운 결과다.

산세이토는 구체적 정책보다 정서적 메시지를 앞세운다. "자유로운 일본", "진실한 교육", "백신 반대", "글로벌리즘 반대" 같은 구호는 논리보다는 감각에 호소하며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배신이라는 이중 서사를 만든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정당 정치에 대한 냉소와 회의 대신 '직접 말 걸어주는 정치'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전통적 이미지보다 비주류적 서사에 끌리고, 구조적 해결책보다 정체성의 확신에 기대는 흐름이다.

산세이토의 등장은 아직 서구의 극우 정당들처럼 완결된 정치 기획이라 보긴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출현한 공간 자체가, 극우 정치가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을 일정 부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감정의 공백과 신뢰의 진공 속에서 정치를 조롱하거나 외면하던 이들이 이제는 분노와 상처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결속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일본 정치의 본질적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다. 그것은 단순한 정당 지형의 재편이 아니라 정치가 감당해야 할 정서적 책임과 공동체적 의미가 붕괴되고 있다는 구조적 경고이기도 하다.

보수는 원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가치가 갱신되지 않으면, 그 기술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채 과거의 관성에 갇힌다. 일본 자민당의 쇠퇴는 하나의 정당이 무너진 사건이 아니라 보수 정치가 본래의 책임을 상실한 결과이며, 변화에 대한 조율 능력을 잃고 제도의 틀 안에 정체된 체제의 붕괴다.

변화 앞에서 다시 울타리를 덧칠할 수 있을까. 질서를 지키고자 했던 기술이 새로운 시대의 불안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일본은 결국 보수의 몰락과 극우의 부상이 교차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다음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 #자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