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교목도 바꾸고, 친일 시인 동판도 치우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일... 모든 것이 처음이었죠"
독립운동가의 흉상 건립 모금 운동을 마무리한 이후 마지막 행사를 준비 중인 부산 북구의 다행복학교(혁신학교)인 구포초등학교 김민선 학부모회 회장이 25일 활짝 웃었다. 1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구포초는 최근 2년 사이 학교 구성원 모두가 어느 때 보다 바쁘고, 보람된 날을 보냈다.
"구포초가 가장 먼저 시작했어요. 그런데 가장 늦었어요"지난 2019년 구포초는 외래종이자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기존 교목인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를 소나무로 교체한 데 이어 친일 행적을 보인 시인의 시구가 적힌 동판도 없앴다. 일본에 붙어 '부왜' 활동을 한 시조 시인의 작사 교가 또한 변경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개교가 1907년이니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피탈 이전, 민족학교(당시 구포 사립 구명학교)가 세워졌어요. 저도 이사를 왔는데 오랜 학교의 역사를 보고 놀랐어요. 바로 옆 구포장터도 일제에 항거한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곳입니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한 학교에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이라니."
구포장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구포의 장날 자주독립을 외친 만세 시위를 말한다. 일제의 엄혹한 탄압에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역사적 증거였다. 당시 구포지역의 상인·농민·노동자, 지역유지까지 등 천여 명 이상이 시위에 나섰고, 일제 경찰은 무차별 발포와 강제해산으로 맞섰다.
이러한 항일의 역사를 아는 구포초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은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에 주목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먼저 팀을 꾸려 그동안 몰랐던 일제의 흔적을 찾아내고 청산 의견을 모아갔다. 비슷한 시기 친일 교가와 교목, 교표 등을 바꾸기 시작한 다른 학교보다 빨랐지만, 결정은 가장 느렸다.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책읽는 동상 아래 기단부에 있던 친일 논란의 시인 이은상의 시가 보이지 않는다.
"학교 안의 일제 잔재 청산은 부산에선 사실 구포초가 가장 먼저 시작했어요. 대신 교목은 가장 늦게 바뀌었죠. 계속 조사해보니 일본의 흔적이 너무 많은 거예요. 집집마다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투표하고 그렇게 모두가 민주적으로 결정했어요. 선생님, 학부모, 아이들과 함께한 생생한 역사 교육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교목, 친일시 등은 물론 '차렷'과 '경례', '훈화', '파이팅' 등 학교생활 속 일제 문화의 흔적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없애는 것이 있다면 되살리는 것도 있었다. 구포초는 올해부터 '잊힌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1892~1921)을 기리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구포초 1회 졸업생인 윤현진 선생은 독립에 모든 것을 바친 애국지사다. 집안의 모든 재산과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에 쏟아부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이후 대동청년단, 백산상회 등을 거치며 비밀결사, 경제적 자립, 교육운동에 앞장섰고, 재무차장 등 상해임시정부 활동에 깊숙이 관여했다. 김구 선생과도 의용단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과로와 중병에 1921년 9월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한 채 타국에서 숨졌다. 그때 나이가 만 29세, 일본의 한 신문이 "그의 죽음은 곧 임정의 패망"이라고 논평할 정도였다.
김민선 회장은 "구포지역의 파평 윤씨 집안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독립에 바쳤다"며 "윤현진 선생님은 임시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30만 원을 헌납했다(현재 가치로 보면 수백억 원)"고 설명했다.
구포초는 윤현진 선생의 집안에서 설립한 학교이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지원한 민족 자본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도 한때 교장이었다. 윤현진 선생은 이제 없지만, 그가 배우며 독립의 의지를 다졌던 학교는 지금도 남았다.
"반일 인사의 가족은 일제의 온갖 박해를 받았고, 독립운동에 모든 자금을 사용한 터라 후손 분들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지냈어요. 현재에도 후손 한 분이 거창에서 홀로 어렵게 살고 계십니다. 우리가 흉상을 세워야겠다 결심한 이유도 여기서 출발했어요.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윤현진 선생님을 반드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현재의 우린 그분에게 많은 빚을 진 것과 마찬가지예요."
구포초 구성원들은 학교가 배출한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예우하지 못했다는 점을 미안해하며 흉상 건립운동에 들어갔다. 부산 평화의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작가도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운송·설치, 재료비만 받기로 하면서 모금이 시작됐으나, 바로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김민선 회장은 "바자회도 열고, 마을잔치도 하고, 기부도 받고 계획이 정말 많았다. 결국 다 취소됐다"며 당시 난감한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독립운동가 굿즈와 펀딩이었다. '독립운동가 윤현진'을 알리는 우산과 물통을 만들고, 배지·스티커 등을 제작하자는 제안에 의견이 모였다. 아이들은 그림으로 힘을 보탰고, 학부모들은 윤현진선생흉상건립추진위원회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활동에 나섰다. 학교 구성원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호응에 다른 학교에서도 관심이 이어졌다.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더 강화되자 다음카카오 '같이가치' 기부펀딩의 도움도 받았다. 독립운동가를 위한 노력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800여 명이 넘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소액 기부에 참여했다.
시안을 만들고 흉상을 제작하는 과정도 학생들에겐 보람이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다 모아서 흉상 시안에 반영했어요. 작가님도 의도를 알고 흔쾌히 응하셨죠. 윤현진 선생님 캐리커쳐 그리기에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나섰어요. 그걸 스티커로도 만들었고, 흉상 기단부에도 새겼어요. 윤현진 선생님의 흉상은 되게 낮아요. 아이들이 마주 볼 수 있죠. 키 높이를 맞췄습니다. 비문도 아이들과 함께 적었고요."
그러면서 김민선 회장은 거듭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2의 윤서인, 마크 램지어 교수 같은 사람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역사왜곡이 판을 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하지 않으면 잊힙니다. 우리도 윤현진 선생님을 잊을 뻔했어요. 더욱더 찾아내고 기억해야 해요."
102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스팟인터뷰에 응한 김민선 회장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아이들이 독립운동가 후손보다 친일파 후손이 더 잘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 지역에 몰랐던 애국지사가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역사를 기억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해요. 2021년은 윤현진 선생님 순국 100주기인데 오는 3월 27일 구포장터 만세운동 소리가 울려 퍼질 때 후손 분을 모시고 제막식을 엽니다. 혹시 윤서인 씨도 오셔서 느껴보시겠어요?"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윤현진선생흉상건립위원회가 제작한 굿즈를 들고 있는 김민선(가운데) 부산 구포초 학부모회 회장.
요즘처럼 우리 것이 각광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 국악을 거쳐 이제는 'K-방역'까지 뜬단다. 서구의 것은 세련되고 우리 것은 촌스럽다고, 최근까지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이 세계인들이 즐기는 우리 것을 새삼 발견하고 우리 것이 가장 '힙'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쯤에서 예언 한 마디. 곧 '우리술'이 뜬다. '막걸리 Makgeolli'가 세계인들이 즐기는 술이 되고, '주막 Jumak'이라는 단어를 '펍'이나 '이자카야' 같은 일반 명사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저절로 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대중의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 '별주막'의 막걸리들. 우리나라에는 약 900개의 양조장과 2000여 개의 막걸리 상표가 있다. ⓒ서형원
부활하는 막걸리
내가 속해 있는 친목모임인 '전통주전문점협의회'에는 날로 회원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전통주전문점이란 진흙 벽에 기와 얹고 양은 주전자에 값싼 막걸리를 내는 민속주점이 아니다. 압구정, 홍대, 강남 등에 가장 깔끔하고 편안하지만 세련된 전문점들이다. 보통의 술집들에 비해 가격도 제법 있고, 음식의 수준도 높다. 그런 전문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별주막'은 경기도 과천의 동네 주점이라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지만, 종종 손님들이 묻는다.
"막걸리 집인데 젊은이들과 여성이 참 많네요."
처음 주막을 열 때는 이런 고객층을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의 막걸리전문점은 대체로 여성 고객이 4분의 3 이상이고 대부분 30대, 40대 고객들이다. 미래의 소비 경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막걸리와 우리술을 먼저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와 우리술의 다양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재료와 알코올 도수를 정해주고 공장에서 값싸게 대량생산하게 했다면, 이제는 가장 전통적인 술부터, 상상하기 어렵던 모양과 재료와 이름의 술까지 다양한 우리술이 쏟아지고 있다. 1천 원짜리 대량생산 인공감미료 막걸리부터, 한 병에 11만 원 하는 막걸리, 소주보다 높은 19도 막걸리, 샴페인처럼 산뜻한 탄산이 가득한 스파클링 막걸리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체 막걸리란 무엇인가?
막걸리, 넌 누구냐?
막걸리는 주로 쌀로 만드는 우리술의 일종이다. 쌀로 밥이나 죽, 백설기를 빚어 누룩과 물과 섞으면 술이 되기 시작하는데, 위에 뜬 맑은 술을 숙성해서 청주, 남은 탁한 부분에 물을 타 걸러서 탁주, 혹은 막걸리라고 부른다. 청주나 탁주를 가열해서 높은 알코올 도수의 술을 만드는 걸 '증류'라고 하는데 이렇게 얻어진 술이 조선 양반가의 사치품이었던 '소주'다. 조선시대 왕들은 "백성들 먹을 쌀이 부족한데 권세 있는 집안들은 귀한 쌀로 소주를 만들어 먹는다"고 자주 한탄했다니, 소주는 마구 마시고 취하는 '쐬주'와는 달리 최고의 사치품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해 얻어지는 청주, 막걸리, 포도주, 맥주 따위의 술을 발효주, 또는 양조주라고 하고 도수는 20도 이내이며, 소주, 위스키, 중국 백주 등은 증류주로 분류되고 대게 20도 이상이다.
우리 술 중에는 '과하주'라는 맛있는 술도 있는데,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이다. 귀한 청주를 4개절 내내 즐기고 싶은데 여름에는 변질되어 버리게 되기 쉽다. 그래서 발효 중에 소주를 섞어 도수를 높이고 여름에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에 차게 마시는 과하주보다 맛있는 술이 또 있을까? 지금 시중에는 18도에서 20도 정도의 과하주들이 판매되고 있다.
쌀농사에 기초를 둔 우리 술은 이렇게 청주, 막걸리(탁주), 소주, 과하주로 분류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막걸리의 '막'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막 걸렀다는 말은 곱고 섬세하게 거른 술이 아니라, 마구 거칠게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기도 하다. 곡기를 다 걸러내지 않아 양식이 되고 기운이 나는 술이기도 하다. 배고픈 사람들, 병든 이들에게 도수가 낮고 영양이 많은 막걸리를 먹였다는 기록이 많다. 약간의 알코올은 약해진 몸을 순환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둘째, 막 걸렀다는 말의 더 큰 의미는 지금 막 거른 신선한 술, 살아 있는 술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살균하지 않은 생주 문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와인, 맥주, 사케 등은 모두 살균주 들이다. 주문 즉시 따라주는 신선해 보이는 생맥주도 탄산을 주입한 살균 맥주일 뿐이다. 이에 반해 막걸리의 탄산(거품)은 발효 중 발생된 자연 탄산이다.
우리 막걸리와 청주는 근대화되기 전에 일제에 의해 억압되고 군사정권에 의해 통제된 탓에 도리어 효모가 살아 있는 생주로 남았다. 재밌는 것은 영국의 경우 '리얼 에일' 운동을 통해 다시 생주 문화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생막걸리는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미래이며, 근대의 공산품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막걸리의 지역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낯선 지역에 놀러 가면 그 동네의 막걸리를 찾는다. 우리나라에는 약 900개의 양조장과 2000여 개의 막걸리 상표가 있다. 막걸리는 지역 농업에 기초한 지역 문화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 막걸리들 대부분이 지역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값싼 수입쌀로 만들어진다. 낡은 양조장에 값싼 수입쌀과 인공감미료를 넣어 만든 1000원짜리 술이 사실은 막걸리의 실장이었던 것이고 그 동네의 역사, 문화와는 연관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리 쌀을 품종별로 맛보고 홍보하는 행사를 어느 지역 농협이 후원하면서, 그 지역의 쌀도 가져와 함께 시식했다. 그 농협은 식사하면서 함께 맛보라고 자랑스럽게 그 동네 막걸리를 들고 오셨는데, 그 막걸리도 수입 쌀 막걸리였던 것이다. 농민들이 '우리 동네 막걸리가 최고여!'라고 말할 때 그 막걸리가 본인들이 그렇게 데모하면서 반대하던 수입 쌀로 만든 막걸리라는 건 도무지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막걸리병에 붙은 라벨에 분명히 원산지가 적혀있는데도 말이다.
한해 농사를 마치고 가장 좋은 쌀로 술을 빚어 조상과 어르신을 모시고, 식구들, 농부들, 이웃들과 나눈다. 술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수입 쌀 막걸리는 값싸게 취하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술의 문화적 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한 예로 서울시가 서울장수막걸리에 '서울미래유산'이라는 명예를 수여했는데, 이것은 마치 파리 시당국이 칠레산 포도로 만든 와인을 파리미래유산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파리 시가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 서울에는 서울 강서구의 맛있는 추청 품종 쌀로 만드는 진짜 서울막걸리가 있다. 엄연히 서울의 지역특산주로 등록된 서울의 진짜 미래 유산이다. 제품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그 술도가가 성수동에 있다는 건 밝혀둔다.
▲ 수백 년을 이어온 부산 금정산성막걸리의 누룩을 딛는 할머니. 10대부터 70세가 넘은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자부심이 크다. ⓒ서형원
▲ 금정산정막걸리의 누룩방. 우리 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아 덩어리지게 딛는다. 두께와 모양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서형원
막걸리 마실 때 필요한 몇 가지 지식들
이쯤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따져볼 점들을 생각해 보자. 어떤 것이 꼭 좋다고 말하기 이전에 막걸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이다.
첫째, 주원료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막걸리 생산 상위 10개 기업의 수입쌀 사용 비율은 80%가 넘는다. 반면 최근 계속 늘어나는 작은 술도가들은 우리 쌀을 쓰는 것은 물론 어느 지역 어느 품종의 쌀을 쓸 것인지 고민한다. 충북 옥천에는 100% 우리밀로 아주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곳도 있다.
둘째, 발효제로 우리 누룩을 쓰는가 입국을 쓰는가? 우리 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아서 만드는 병국, 떡누룩이다. 맛과 향이 풍부하고 복잡하나 같은 맛과 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일제강점기 이후 입국이라 부르는 발효제가 들어와 널리 쓰이고 있는데, 쌀알에 특정 곰팡이를 배양하여 효율적으로 술을 빚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맛과 향이 깔끔하고 안정적이지만 단순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일본 사케의 깔끔하고 단순한 맛은 산업화된 누룩인 입국이 빚어낸 것이다.
셋째, 무감미료 막걸리인가 인공감미료 막걸리인가? 공업화된 대부분의 막걸리는 좋지 않은 쌀을 쓰고 아스파탐이나 아세설팜칼륨 같은 인공감미료로 단맛을 낸다. 최근의 막걸리들은 감미료 없이 쌀만으로 단맛, 신맛, 과실향 등을 풍부하게 이끌어낸다. 담백한 막걸리에 유자, 오미자, 곤드레, 울금 등 지역 특산물을 넣어 개성을 뽐내기도 한다.
넷째, 그 지역과의 문화적 유대를 담고 있는가? 그 지역 농민들의 쌀과 지역특산물을 담고, 주민 삶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는 술일까 하는 점이다. 막걸리 한 잔에서 그 지역의 정서를 느끼고 싶다면 이것도 따져볼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막걸리는 좀 별나다. 제주에는 쌀 농사의 전통이 없어 좁쌀로 발효주인 오메기술, 증류주인 고소리술을 빚는다. 제주에서 제주막걸리를 맛있게 마셨다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땅콩 막걸리, 감귤막걸리가 육지에서 생산되어 제주에서 팔리고 있다. 제주에서 만든 쌀막걸리도 제주의 농산물로 만든 술은 아니다. 제주의 곡물로 만든 진짜 제주 막걸리를 맛볼 날이 곧 올까 궁금하다.
▲ 전남 해남의 해창주조장. 일제 강점기에 쌀을 수탈하기 위해 해남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만든 주조장이 현재는 최고가의 우리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되었다. ⓒ서형원
전직 환경운동가가 막걸리에 미래를 거는 이유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생업으로 막걸리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늘 환경현장에 다니면서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맛보게 해준 지역의 산물들을 즐겼고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 역사, 그 다양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생업에 뛰어들어 전국의 막걸리를 살펴보니 막걸리는 수입쌀과 인공감미료로 만들어 값싸게 취하는 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걸리는 값싼 술'이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뜻있는 술도가들이 점점 늘어났고, 젊고 미래적인 소비자들이 막걸리와 우리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의 매력이 커질수록 문화 상품으로서 막걸리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문화 상품으로서 막걸리의 매력은 매우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살아남은 생막걸리라는 전통은, 최근 내추럴 와인이나 리얼 에일처럼 작은 양조장의 살아 있는 수제품들이 새롭게 각광받는 흐름을 앞서서 체현하고 있다.
지역의 자연, 농업, 문화, 역사, 주민의 삶과 함께 하는 지역 문화의 상품으로서도 막걸리가 딱이다. 동네 이름만 단 가짜가 아니라 진짜 지역 막걸리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건강을 중시하고 저도수의 술이 선호되는 추세 때문에도 막걸리가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의하면 부드럽고 순한 저도수의 술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특히 막걸리는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아서'가 선호 이유로 나타나고 있다.
막걸리 문화, 막걸리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막걸리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가 막걸리 시장에도 대기업이 뛰어들게 될 것이며, 좋은 술을 빚는 작은 양조장들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제품에 비해 특정 지역의 문화를 담거나 장인의 솜씨는 담는 작은 술도가들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지역 특산주 등의 전통주는 다른 술들과 달리 온라인 통신판매가 허용되어 있다. 작지만 좋은 술을 빚는 술도가들이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촘촘히 연결되고 협력한다면, 대기업들 못지않게 살아남고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우리 술 우리 문화가 살아나다
우리 문화의 매력이 세계를 홀리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는 우리 문화의 힘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던 서구 전통과 문화의 지배력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고상하고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것처럼 보였던 서구의 문명이 사실이 매우 취약했고,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 와인은 5만 원도 비싸지 않고 우리 막걸리는 5000원도 너무 비싸다고 여기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 쌀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듬뿍 넣어 만든, 더구나 살아 있는 생주가 값싼 술일 이유가 없다. 좋은 쌀, 좋은 누룩으로 풍부한 맛을 낸 다양한 우리술이 이제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술 문화의 가장 큰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주점마다 음식은 다양해도 술은 '쏘주' 아니면 맥주였던 시절이 과거가 되고 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는 20만 개가 넘는 주막이 술을 빚고 있었고, 집집마다 고유의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살아 있었다.
입안에 푸른 파도가 치는 듯하여 '녹파주', 차마 삼키기 아까워서 '석탄주', 돼지날 돼지시간에 빚는다는 '삼해주', 봄이면 진달래, 솔잎, 송홧가루, 여름에는 연잎과 연꽃, 가을에는 국화를 넣어 빚었다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우리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제 강점에서 분단, 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진 지난 100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이 땅의 자연과 우리 먹을거리, 우리 술에게도 파괴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통을 참고 이기고 빚어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 문화는 더 큰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다.
이현배 상임대표가 이끄는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오는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제2의 독립선언인 ‘한반도 영세중립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 - 조천현]
“우리는 자주적인 한겨레로서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선포한다.”
3.1운동 102주년을 기해 ‘제 2의 독립선언’인 ‘한반도 영세중립 선언’이 천 명의 연서명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주관단체는 지난해 6월 창립한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약칭 중추사)이고, 1일 정오 3.1운동 발상지인 옛 태화관 터, 3.1독립선언광장에서 진행된다.
지난 22일 중추사를 이끌고 있는 이현배(77) 상임대표를 종로3가에 자리잡은 중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60년대 한일굴욕외교 반대 시위부터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래 사회운동을 멈추지 않은 그가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선두에 선 것.
“우리 민족이 13세기 초 몽고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한 번도 완전한 자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진단한 그는 “우리는 선조들이 이뤄놓은 독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위해 3.1절을 기해서 제 2 독립인 한반도 중립화를 선언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중립화 통일에 관한 논의의 역사는 길고 그 논의의 폭도 넓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추사는 지난해 6월에 새로이 창립했다. 김영임 전 튀니지 대사와 김병길 6.3동지회 부회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장영달 전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강종일, 이만열, 임재경, 도재영, 이창복 등 쟁쟁한 원로들이 고문이다. 임상우 서강대 전 부총장이 사무총장으로 업무 중심에 있다.
이현배 상임대표는 “‘분단과 외세간섭을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제에 나한테 제일 쇼킹한 것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였다”며 “분단과 외세개입을 배제시키기 위해서는 실현이 어려운 직접적인 통일 보다는 우회적이지만 중립화를 통한 외세 배제와 통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화조약 체결과 남북의 중립화 선언’, ‘1민족 2국가와 남북협의체’, ‘코리아 국가연합’ 등 중립화 통일을 위한 개념과 경로에 대한 내부 논의들을 축적하고 있고, 청년, 지역, 부문 등은 물론 해외로까지 조직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 정치적 역관계의 ‘호각상태’가 도래하고 있다”는 진단과 “남이나 북이나 국력이나 국민들의 의식은 이제는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국가를 세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는 진단에 근거해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화 통일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나아가 “만약 종전이 된다 하더라도 미군이 그대로 여기에 주둔하고 있고, 또 북은 북대로 자기 유지를 위해서 핵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며 “우리는 평화조약과 함께 중립화를 선언하고 이것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평생 사회운동의 길을 걸어온 그는 “6.3운동에서부터 쭉 해봤는데, 명분이 분명하고 진정성이 있을 때는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다”며 “우리 명분과 우리 열의가 조만간에 백만, 또 그 이상의 회원 내지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낙관적 전망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전무하다”며 “우리 의사가 북한에 전달되고 진지하게 그들이 검토하기를 바랄 뿐이지만 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정부를 통해서,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 접촉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이현배 상임대표와의 22일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에는 임상우 중추사 사무총장이 배석했다.
“몽고 지배 이후, 한 번도 완전한 자주국가 이루지 못했다”
이현배 중추사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는 22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소재 중추사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서강대 부총장을 역임한 임상우 중추사 사무총장이 거들었다. [사진 - 조천현]
□ 통일뉴스 :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약칭 ‘중추사’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 이현배 상임대표 : 중추사는 2019년 9월 26일에 이현배, 이종수, 이윤배, 임진택, 박종렬, 유영표, 안양노 등이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창립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3개월 후에 임상우 교수, 강종일 선생, 노태구 교수,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 등이 합류했다. 그 다음에 박석무, 강철규, 장영달, 윤경로, 고상만, 조성우, 이종구, 김종철 한겨레 기자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 운동의 필요성과 가능성 등을 검토하는 확대회의를 했다.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2020년 6월 25일 발기인 200명이 창립총회를 했다.
그 당시에 임원들을 선출했는데, 고문이나 공동대표나 운영위원을 합쳐서 지금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20명쯤 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분들이 꽤 있다. 그리고 이번 3.1절 행사에 서명해준 분들이 있다. 한반도 중립화 선언식인데 천 명 가까이 서명했다.
□ 중추사가 오는 3월 1일, 3.1절을 맞아 ‘한반도 영세 중립화 선언’을 발표할 예정인데, 취지나 배경을 설명해 달라.
■ 우리 민족이 13세기 초 몽고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한 번도 완전한 자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비극적 역사를 단절시키고 자주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중추사의 목적이다.
현실적으로는 첫째, 미·중 간의 갈등을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중립화 밖에 없다.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관계 뿐 아니라 역사, 문화 등 여러 가지로 제일 밀접한 나라다. 또 앞으로 어쨌든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과 우리가 같이 협력을 해 나가야 하는 입장인데, 미국의 경우는 자기들 국익에 의해서 소위 ‘쿼드(QUAD, 4개국 안보협의체)’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유무언으로 상당히 강요 중이고, 이것은 역으로 중국 쪽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이 문제를 벗어나는, 그리고 우리의 자주성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길은 중립화이다.
또 하나는 북한의 핵문제가 있다. 사실 북한의 경우 핵무기는 최종적인 생존수단인데 이것을 쉽게 버리겠나.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이야기한 대로 체제를 보장하고 그 다음에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하지만 ‘국제적 경제시장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해 달라. 이것이 되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그리고 불가역적인 완전한 핵 폐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볼튼 전 안보보좌관의 경우 ‘리비아 모델’을 얘기했는데, 리비아 모델 같은 경우 카다피를 달래 가지고 핵프로그램까지 전부 미국 정부로 넘기게 하고 그 다음에는 죽였지 않나. 그런 모델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북한에게 핵 폐기하라고 하면 하겠나.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는 것은 중립화 뿐이다.
“3.1절 기해 제 2 독립인 한반도 중립화 선언하겠다는 것”
지난해 6월 25일 천도교 수운회관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중추사 창립총회 기념사진. [사진출처 - 중추사 카페]
□ ‘한반도 영세 중립화 선언’을 3월 1일로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특별한 건 없다. 3월 1일이 우리 독립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독립운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조들이 이뤄놓은 독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위해 3.1절을 기해서 제 2 독립인 한반도 중립화를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 3월 1일 행사 준비는 잘 되고 있나?
■ 방역 때문에 사람들이 못 모이지, 또 장기 일기예보를 보니까 3월 1일 비온다. 여러 가지가 참 어려운데, 탑골공원 북문 앞에서(추후 옛 태화관 터, 3.1독립선언광장으로 변경-편집자 주) 선언식 행사를 할 생각이다. 정문은 지금 집회를 못하게 돼 있다. 우천에도 불구하고 진행할 예정이고 모든 준비는 거의 다 완료됐다.
□ 선언 참여 인원은 얼마 정도로 예상하나?
■ 서명은 천 명 정도 된다. 지금 850명이 넘었고 25일이 마감일인데 천 명 될 거로 본다. 그런데 참석 인원 예측은 다르더라. 5,60명 오지 않겠나 보기도 하고 나는 100명 이상 온다고 보고 있다.
“남북 대표들과 민간 대표들로 구성된 남북협의체, 또는 민간협의체”
□ 중추사는 ‘코리아 국가연합’과 ‘중립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방법론으로 ‘선중립 후통일’을 제창하고 있다. 내용적으로 들어가 보면 국가연합 단계에서의 중립화를 당장의 목표로 내건 건가?
■ 서로 해석하고 비중두기에 달렸는데 우리 중추사가 이야기하는 중립화는 남북한 동시 중립이고, 동시에 또 두 개의 중립국가가 완전 독립국가다. 그래서 뒤집어 이야기하면 1민족 2개 국가다.
1민족 2국가지만 동질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든지 그 구체적인 표현인 통일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북 간 대표들과 민간 대표들로 구성된 남북협의체, 또는 민간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그 협의체에서 중립화의 유지라든지 이런 것을 강제력은 없지만 최대한 권고하도록 하고, ‘선중립 후통일’을 이야기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통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이질적 요소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 이질적 요소들이 시간과 노력에 의해서 해소하고, 따라서 동질성을 회복하는 작업을 남북협의체, 민간협의체에서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협의체가 상당한 정도의 강제력도 행사할 수 있는 준정부 형태로 가면 참으로 바람직한데 이것은 결국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되고 운영돼야 한다.
그래서 현재 국가연합에 의한 중립국이라든지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의한 중립화 통일이 아니다. 중립화를 먼저하고 그것의 효과적인 진행과 앞으로의 통일을 하기 위해서 국가연합 또는 국가연합 협의체를 두어서 하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다.
□ 남북협의체 내지 민간협의체에서 이질화를 최소화하고 동질화를 추진해서 그 다음에 남북연합이나 연방제 단계로 들어가나?
■ 그렇다. 통일 단계로 간다. 연방제 통일이냐 중앙집권적 통일이냐, 이거는 남북과 우리 남북연합협의체에서 결정할 내용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남북 간에 결정될 문제다.
□ ‘코리아 국가연합’을 제안했는데, 국가연합이라면 일반적으로 연합제를 생각하는데 ‘낮은 단계의 연방국가’라고 표현했더라.
■ 남북이 통일문제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가 된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소위 북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이야기하고 남은 국가연합을 이야기했다.
북은 낮은 단계 연방제를 이야기할 때 ‘1민족 1국가 2체제’, 그래서 분단된 국가가 아니라 한 개의 국가이면서 체제만 다르게 한다. 마치 중국과 같이 2체제, 두 개의 자치체제를 주장했다. 그리고 남쪽에서의 국가연합은 1민족 2개 국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서로 두 분이 이야기를 해 가면서 상당한 정도로 모든 면에서 의견이 접근됐다. 그런데 북이 이야기한 연방국가와 자치체와의 관계에서 국방권과 외교권의 문제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했고, 남의 국가연합론에 대해서 북에서 제기한 ‘1민족 2국가가 될 땐 분단 영구화 아니냐’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못한 것으로 안다. 솔직히 김대중 대통령 쪽에서 이야기를 더 전진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국가연합제나 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1민족 2국가 단계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거다.
□ 1민족 2국가론은 연합정부까지 포함해 3개의 정부를 상정하고 있지 않나?
■ ‘1민족 2개 국가 3개 정부’는 협의체를 준정부 형태로 상정한 것이고, 내 개인적으로는 그것은 좀더 진전돼 가면서 이야기해야지 좀 어렵지 않나 본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준정부 형태라고 해도 큰 권한을 달라고 해서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해야 되는데 줄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는 협의체로 해놓고 다음에 우리가 민간이 발언권이 강하면 ‘이만큼 이만큼 더 강화시켜주라’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다.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동시에 남북한은 중립을 선언해야 된다”
□ 창립선언문이나 주요 발제문을 보면 ‘한반도 평화조약’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 한반도 평화조약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것이 ‘한반도 영세중립화 보장’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
■ 한반도 평화조약이라는 것도 전후의 강화조약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중에서도 미국과 북한 간의 전쟁행위 종식, 종전에 초점을 많이 두는데 그것 자체도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데서 한 두 걸음 더 진전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종전이 된다 하더라도 미군이 그대로 여기에 주둔하고 있고, 또 북은 북대로 자기 유지를 위해서 핵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교전 주요 당사국이었던 남·북·미·중이 모여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그 평화조약은 상호 주권존중과 불가침, 전쟁의 종식이다.
그런데 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동시에 남북한은 중립을 선언해야 된다. 그리고 미·중을 비롯한 각국은, 특히 미·중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조약 및 중립화 선언이다.
단순한 평화조약 만으로는 지금 현재의 국제적인 역관계나 우리 지정학적 관계가 보장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조약과 함께 중립화를 선언하고 이것을 보장받아야 한다.
강대국 해법, 동북아 ‘호각 상태’와 남북의 역량에 달려
민청학련 사형수 이현배 상임대표는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진 - 조천현]
□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평화조약 과정이든 중립화 선언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호락호락 넘어가겠나?
■ 그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방면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지금 현재 동북아의 정치적 역관계가 지난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의 미국 일방적인 것에서 미국의 세력이 후퇴되고 쇠락되는, 소위 동북아 정치적 역관계의 ‘호각상태’가 도래하고 있다고 본다. 호각상태에서는 상호이익을 수호하면서 남한테 더 달려들지를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위 균형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잘 되고 안 되고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우리 국민들의 적극적 행동에 달렸다고 본다. 그래서 쉽게 얘기해서 남이나 북이나 국력이나 국민들의 의식은 이제는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국가를 세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고 본다.
그럼 이걸 누가 더 각성시키고 누가 더 운동화시키느냐 하는 거다. 그래서 한 마디로 국제 역관계가 호각세로 가고 있고, 그 다음에 남북한을 합쳐서 국민적 역량이 최대로 고양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하고, 그러면서 거기에 따라서 미국도 중국도 다소의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본다.
■ 남상우 사무총장 : 미중 입장에서 지금 한반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우느니 차라리 중립화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인식시켜야겠다는 것이다.
■ 1945년 당시에도 미국 국무성에서는 한반도의 중립화 문제가 이야기됐다가 그냥 틀어지고, 1957년부터는 전쟁 후의 뒤처리에서 미국이 굉장히 오랫동안 열심히 중립화를 이야기했다. 미국은 통일시켜 놓고 통일될 가능성에 대비한 중립화를 쭉 이야기한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를 중심으로 한 군부 쪽에서는 강하게 반대한다. ‘통일도 불가능하고, 중립화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또 주저앉고. 카터 대통령 경우는 취임부터 퇴임할 때까지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그 대안으로 중립국을 검토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랬었다.
쭉 반대해온 것이 군부 측이었고 지금도 미국은 소위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최대로 반영되고 있다. 하여튼 미국 국무성도 한국의 중립화에 대해서 상당히 연조도 있고 이해도 깊다고 본다.
“우리 명분과 우리 열의가 백만 모을 수 있다”
지난해 중추사 창립총회에 앞서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가 5월 28일 향린교회에서 개최한 중립화 통일 관련 토론회 기념사진.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시민주도운동을 제창하면서 ‘범세계적 대중운동’에 돌입해서 100만 회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실제 기반이 있나? 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
■ 그건(실제 기반은) 없다. 200명이 발기를 했고 지금 현재는 천 명을 모으고 있다. 1단계 조직확대는 2배가, 3배가 운동이다. 천 명한테 세 명씩 더 소개를 받아 3천 명을 만들고, 3천명이 만 명이 되는 한편, 두 번째는 각 분야별로 청년 계통이라든지 지역 계통이라든지, 부문 계통이라든지, 해외라든지 각 지부를 설치하면서 확보해 나갈 생각이다.
그런데 언제든지 운동의 이슈가 분명하고 그 이슈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열의가, 진정성이 느껴지면 모인다. 촛불집회도 그렇고, 내가 6.3운동에서부터 쭉 해봤는데, 명분이 분명하고 진정성이 있을 때는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명분과 우리 열의가 조만간에 백만, 또 그 이상의 회원 내지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해외지부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 남상우 : KAPAC(KOREAN AMERICAN PUBLIC ACTION COMMITTEE, 미주민주참여포럼)이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미국 국회의원 끈을 댈 때, 이 사람들 통해서 댄다. 거기에는 물론 미국인이지만 미국 하원에 진출한 사람도 있고, 정치적인 한인단체다.
KAPAC가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명도 들어오고 수평적 연대를 하기로 했다. 워싱턴에 본부가 있는데 워싱턴이 중요하다.
■ KAPAC 외에도 이번 행사를 지나면서 곧 지부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중국 베이징과 미국 LA, 뉴욕, 그리고 베를린이 있다.
□ 예를 들어 중국이라면,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 중국은 중심이 되는 단체가 평화통일자문위원회 베이징 간사들 모임이 중심이 될 것이다. 같이 토론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 북측과 교류가 있나? 핵보유국 북한에게 어떻게 중립화를 설득할 수 있나?
■ 북한과의 관계는 전무하다. 우리는 우리 의사가 북한에 전달되고 진지하게 그들이 검토하기를 바랄 뿐이지만 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정부를 통해서,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 접촉하기를 바란다.
나는 북한이 연합제나 연방제에 관해서는 상당히 융통성이 있다고 보고 있고, ‘1민족 2개 국가’도 준비기간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본다.
□ 동북아자유경제지역을 북측지역에 설치하는 안을 제시했다. 왜 북쪽에만 설치하는지, 설치되면 어떻게 운영되는지?
■ 솔직히 중추사가 그것을 원한다. 구체적으로 수용하고 안 하고는 북의 문제다. 우리 중추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북이나 또 다른 데서 받아들여야 한다.
동북아자유경제지역은 1단계로는 중립화된 북조선의 경제가 원활하게 국제무대에 진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협조하자는 것이다. 기왕에 준비되었던 라진-선봉, 신의주, 남포 등의 특구를 활성화하고, 국제자본의 투자와 운영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돼서 북 경제에 도움이 됐다든지 하면, 2단계로는 동북아의 동북3성, 시베리아, 몽고, 남한, 일본 등으로 동북아자유경제지역을 확대하고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동북아 경제발전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1단계로 북을 우선 중심으로 하고 북이 소위 국제 경제시장에 안착하도록 최대로 노력하자는 거다.
“남은 인생 전부를 이 운동에 바쳐야 한다”
이현배 중추사 상임대표는 남은 생을 한반도 중립화 운동에 바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진 - 조천현]
□ 3.1절 선언 외에 중추사의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해 달라.
■ 3.1선언 후에는 해외, 청년, 지역, 부문으로 활발하게 조직강화를 할 것이다. 특히 해외지역으로 활발하게 조직확대를 할 것이다.
조직확대와 함께 콘텐츠를 강화하려 한다. 강연, 학술대회, 행사, 어떤 때는 시위가 될 수도 있다.
그 다음에 젊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카페를 이용하는데 별로 시원치 못해 홈페이지를 만들어보려 한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전달하고 우리 주장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토론도 할 생각이다.
우리 계획은 6개월에 한 번씩은 해외와 국내에 있는 우리 회원과 지지자들과 함께 전체적인 행사를 할 생각이다. 대개 시위일 것이다. 물론, 북에 있는 사람들도 협조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단, 3월 지나고 6개월이면 9월인데 올해는 제외다. 내년 가야 된다.
□ 44년생이면, 만 77세인데, 걸어온 길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 전부 우리 운동하고 관계된 데서 일했다. 민청학련 배후 사주로 몰려서 고생하고 사형 언도까지 받았다. 당시 두꺼운 얼음판 정국이라서 유신반대운동은 학생 뿐이 할 수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나 대학원 때인데, “너네들이 해야 된다”고 이야기 해줘서 사주자가 됐다.
대학 들어간 게 63년인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신문인 <새세대 신문> 기자로 있었다. 거기서 원고청탁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 사회문제에 대해서 안목을 갖게 됐다. 64년에 한일굴욕외교 반대 데모가 있었다.
그 뒤로 대학원 때까지도 오로지 박정희 군사독재를 퇴진시키는 것이 우리 국가의 최대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정권이 퇴진되고 또 전두환 정권도 퇴진되고 난 뒤에도 형식적 민주주의가 조금 열매를 맺었지만 사회적인 정의 문제나 경제적인 정의 문제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
특히 도덕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는 더 후퇴되고, 근본적으로 우리한테 모든 것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단과 외세간섭이다. ‘분단과 외세간섭을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제에 나한테 제일 쇼킹한 것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였다.
사드를 들여오고 중국에서 전면적은 아니지만 제한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했을 때 ‘야 이거 우리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나더라.
이 모든 문제, 북의 핵문제, 미군의 철수 문제는 분단의 해소와 우회적이지만 가장 바른 길이 중립화다. 분단과 외세개입을 배제시키기 위해서는 실현이 어려운 직접적인 통일 보다는 우회적이지만 중립화를 통한 외세 배제와 통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은 인생 전부를 이 운동에 바쳐야 한다. 지금 이것을 중심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한두 사람을 빼고는 전부 나이가 많다. 대개 70대 중반 대학교수 출신들이다. 나보다 한 10년 정도 아래 60대 쪽에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한다. <끝>
우리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8000만 겨레의 염원과 의지를 담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세계 만방에 엄숙히 선언한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중립화’만이 70년 세월 이 땅에 지속된 한민족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청산하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전쟁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이자, 동북아시아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의 초석을 놓는 길임을 확신한다.
우리 민족은 수천년 동안 이 땅에서 독자적인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어 자주적인 생활공동체로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 세기 강탈적 제국주의와 억압적 패권주의 아래서 처절한 핍박과 고난을 겪어 왔고, 1945년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났으나, 이내 승전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과 전쟁을 겪었고 그 상처와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겨레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가 인정하며 주목하고 있듯, 이제 우리 민족은 지난 세기의 부끄럽고 허약했던 약소민족이 더 이상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자립과 자강의 길을 힘 있게 내딛고 있다. 특히 문화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며 세계 앞에 선도적인 문화역량을 증명하고 있는 창의적 민족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국제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당당히 나서고 있는 자주적인 민족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민족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 한다’는 신념을 세계 시민 앞에 선포하는 이유다.
우리 민족은 남북간의 국가연합을 이루어 통일의 길로 나아간다.
한반도의 중립을 항구화하기 위해서, 우선 남·북은 상호체제의 완전한 인정을 전제로 ‘코리아 국가연합’ (Confederation of Korean States)을 이루어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고,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이어 민족의 숙원인 통일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남북은 이구동성으로 통일을 외쳐오면서 첨예한 남북 대치상황만 되풀이해 왔다. 이제 오롯이 한반도의 중립화만이 통일을 가로막는 상호불신과 군사적 대치라는 장애를 해소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억압의 고삐를 끊는 유일한 길이다. 통일을 이루려는 궁극적 이유가 한민족의 공존과 번영을 이루기 위한 것일진대, 통일로 가는 길에 공존과 번영을 현실적으로 먼저 확보하는 방안이 바로 중립화인 것이다.
이 중립화의 길은 비단 우리 민족의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포함한 인접 국가들의 공동 이익에도 부합한다. 중립화된 ‘코리아 국가연합’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에서 비롯한 극한 대치 상황을 해결하고 국제 전략적 이익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 길로 나아가는 통로로서 ‘동북아 자유경제지역’을 운용하여, 여기에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상호 호혜적인 국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우리는 공유하고자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코리아 국가연합’으로 상호대결이 지양된 한반도에서, 최근 그들 간의 분쟁과 갈등이 패권적, 이념적 경쟁을 넘나드는 치열한 전쟁 직전의 대결구도를 평화적으로 화쟁(和諍)해가는 데 하나의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군사비용을 들여가며 상대국을 압박하여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인도적이지도 평화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통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관련국들과 전 세계 국가들에게 다음 사항을 엄숙히 요구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촉구한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는 민족문제의 자주적인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장에 허심탄회하게 임해야 한다. 자주성은 모든 생명의 지고지선의 가치다. 민족의 자주를 위해 양국의 정상은 즉각적으로 회동하여, 양국의 동시적 중립화의 의지를 선포하고 자주적인 중립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 아울러 2000년 남북의 정상이 ‘6.15 남북공동성명’에서 공표한 ‘낮은 단계의 연방국가’, 즉 ‘코리아 국가연합’ 구성에 착수해야 한다. 이어서 남북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을 초치하여 70년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동북아 평화 체제를 포괄적으로 구축하는 ‘한반도 평화조약’을 일괄 체결할 것을 촉구한다. 동시에 그들이 이러한 평화체제를 항구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한반도 영세중립화’를 보장함으로써 세계사에 이정표가 될 역사적 과업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미합중국의 시민들과 정부에 촉구한다.
미국이 그동안 군사적 동맹과 경제적 동반자로서 한국과 이해를 같이해온 것은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1945년 다른 강대국과 함께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한반도를 분단시켜 그 이후 우리 민족이 입은 처참한 전쟁과 예속의 피해를 기억해야만 한다. 더욱이 앞으로 한반도에서 대치적 긴장을 한층 더 고조시키려 한다면 그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통렬히 지적한다. 혹여 기존의 호혜적이었던 ‘한미동맹체제’를 새로운 세계 전략의 교두보로 이용하려 한다면 평화를 희구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한반도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영토를 활용하여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교란하는 전략을 도모한다거나 특히 전쟁을 불사하는 공세적 전략을 취한다면, 이는 지난 세기의 패권주의 관행을 답습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신에,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이 지역에서 적대적 관계를 지양함으로써 미국은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들과 정부에 촉구한다.
한국과 중국은 고래로 지정학적 위치와 인연으로 단절할 수 없는 외교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분쟁을 미봉시킨 일말의 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불안정한 전략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고 여기에 중국이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불안정한 군사적, 경제적 패권충돌을 해소할 수 있다면 동북아에서 중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매우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가장 가까운 문화적 이해와 새 세기의 경제적 공생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대등하고 상호이익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중립화로써 동북아지역의 완충지대화를 통해 중국의 외교적, 군사적 세력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대안적 정책을 모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시민들과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이루어질 ‘코리아 국가연합’은 우선 동북아지역의 불안정한 세력 균형을 바로 잡고, 동시에 국제 평화를 교란하는 전쟁의 위험을 일소하는 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시대는 인류의 삶의 양식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군사적 힘으로만 유지되던 국제질서도 선린과 평화의 질서를 지향하는 역사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중립화가 추구하는 화해와 공존의 모델은 세계 평화체제 구축의 선도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은, 비동맹 원칙, 외국군 진입금지 및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한반도 평화조약’의 일괄적 체결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지지하여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초석을 놓는 기념비적 역사에 적극 동참할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이에 우리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이 평화와 번영, 통일을 희구하는 한겨레의 통절한 염원을 담아 다음과 같은 한반도 중립화 결의를 전 세계시민 앞에 천명한다.
한반도 중립화를 향한 우리의 결의
하나, 우리는 자주적인 한겨레로서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선포한다.
하나. 우리는 한국전쟁의 종전과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주 참전국(한국, 조선, 미국, 중국) 간에 ‘한반도 평화조약’의 일괄적 체결을 촉구한다.
하나. 우리는 한반도의 중립화와 동시에 남북간의 ‘코리아 국가연합’을 출범시키고, ‘동북아 자유경제지역’을 건설하여,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를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