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과학은 아직도 정치·경제의 도구인가?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2017년 한국의 과학기술계
2017.11.27 10:24:10
넓은 의미에서 정치는 여러 사람들이 관계된 일을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치적이지 않은 일은 없겠지만 2017년 과학기술계에는 다른 해에 비해 정치와 연관된 일들이 많았다는 느낌이다. 금년에 일어난 '사건'과 인물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계를 돌아보고자 한다. (필자)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론화 위원회

과학기술과 관련되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위원회이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 공론화 위원회의 활동에 관하여 상세히 소개하였고, 이에 대한 평가와 개선 방향은 3주 전 본 이슈페이퍼에서 다루었지만 그 중요성에 비추어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의 건설 재개는 지지하지만 향후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시민참여단의 결정은 과학기술계의 문제를 공론화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하였다는 점에서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 결정의 주요 요인에는 전력 공급의 경제성, 지역 및 국가산업, 전기요금, 환경성 등이 있어 과학기술에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원전의 안전성과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꼽혔다는 점에서 과학기술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를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 결정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견제의 대표적 사례로, 앞으로 과학기술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의 해결책을 결정하는 데 시민의 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안전성 때문에 원전 축소에 찬성하는 측과 원전은 위험하지만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고 실보다 득이 많기 때문에 원전 확대에 찬성하는 측으로 나뉜다. 원전 확대에 긍정적인 배경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원전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충분히 안전하다는 의견이고, 다른 하나는 팽창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원전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의견이다. 필자의 입장은 원전 축소에 찬성하는 것임을 밝히면서 원전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금년에 일어난 사고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8월에 일어난 아직도 그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평택 국제대교 붕괴사고이다. 1994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사고치고는 아주 조용히 넘어가는 느낌인데, 다행히도 사상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대교 붕괴는 사고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준다.

한빛 4호기(원전)의 증기발생기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11cm 길이의 망치 형태 금속 이물질은 환자의 신체 내부에 남겨두고 봉합해버린 수술기구와도 같다. 문제는 이런 의료 사고는 재수술로 수습할 수 있지만 이 망치 형태 물질은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기발생기에는 외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증기발생기를 개봉하여 금속 이물질을 제거할 수 없다. 만일 이 망치 형태 물체가 증기발생기에 구멍이 내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가장 이목이 쏠리는 국가적인 교육 '행사'인 수능까지 연기시킨 포항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원전의 부실공사가 안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경험한 사실이다. 평택 국제대교나 한빛 4호기는 현대 기술이 거대하고 복잡하여 그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인 규모의 안전 문제를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반복적으로 이야기되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이번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은 지역 및 국가산업이라고 한다. 이는 원전 축소 결정이 국가 경제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 대만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탈원전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이며, 원전의 안전한 폐쇄 기술은 앞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중요한 기술이 될 전망이다. 원전은 건설 못지않게 폐쇄에도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거대과학기술인 원전 폐쇄에 소요될 엄청난 비용을 사전에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이어질 폐로 작업에 필요한 기술 확보는 원자력공학자들이 집중해야 할 당면 과제라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인간 세상을 아주 길게 또 긍정적으로 본다면 현재 전세계 핵탄두들에 탑재되어 있는 상상을 넘어서는 양의 방사능 물질을 안전한 폐기하는 기술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 방사능 물질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기술보다 안전하게 폐기하는 기술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원전을 대신할 에너지원에 대한 시각은 <그림 1>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재생가능(renewable) 에너지의 총량은 원자력 에너지보다 많지만 그 중 가장 큰 부분은 수력(Hydro)이다. (수력은 재생가능 에너지로 분류된다.) 수력의 성장이 에너지 수요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며 다른 재생가능 에너지의 성장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설이 쉬운 원자력 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림 2에 나와 있는 풍력과 태양 에너지로부터 얻는 전력의 성장 곡선은 그런 전망이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재생가능 에너지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성장 속도는 장기적으로 원전을 폐쇄하더라도 재생가능 에너지가 에너지 수요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에너지원에 대한 기술력을 독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관련 장비를 모두 수입하고 거기에 기술료까지 지불해야 한다면 경제성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또한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화석 연료, 즉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비중은 절대적인데, 이를 이용하는 화력발전보다 원전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탈원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유명 과학자의 지적도 있다. 이는 재생가능 에너지가 가진 잠재력을 원자력보다 낮게 보기 때문인데, 유명 과학자의 중요한 예견은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두자.   

▲ <그림 1> 세계 에너지 소비 추세.
                                   
▲ <그림 2> 풍력과 태양 에너지에서 얻는 전력 비율 추세.

시민참여를 통한 원전의 미래에 대한 결정은 전문가주의에 대한 타격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많은 현대 과학기술 활동이 국가적 지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당연하지만 전문가 영역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일반 시민들에 의한 통제는 쉽지 않다. 중이온가속기와 같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거대과학기술 시설 건설에 대해서는 과학기술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과학기술계 내부에 존재하는 세부 분야들을 나누는 칸막이로 인한 또 다른 전문가주의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밀실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JSA 귀순병사 사건과 관련되어 언급된 외상센터 문제는 국민 의료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와 관련된 전공의(專攻醫) 쏠림 현상 방지 정책 역시 의료계라는 매우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전문가 집단이 주도적으로 결장하며, 여기서도 여러 세부 전공의 칸막이에 따른 분야 이기주의가 개입된다. 이런 문제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시민참여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에게 모두 맡기기보다 전문가는 상황 판단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최종 결정은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들은 꽤나 많다.  

창조과학  

지난 8월 24일 정부는 포항공대 박성진 교수를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후보자로 지명하였는데, 박성진 교수는 인사청문회 사흘 후인 9월 15일 사퇴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는 크게 다른 역사관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사퇴에 작용하였겠지만 과학자들의 커다란 반발을 부른 요인은 창조과학이라는 후보자의 과학관이다. 창조과학은 근본주의 신앙에 기초하여 과학을 받아들이는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과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고 있는 사이비 과학이다.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에서는 창조과학과 관련된 유명한 법정 다툼들이 있었고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인들이 이를 옹호하는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 지경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공계 현직교수가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삼 심각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과학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답을 찾는' 학문이 아니라 '답을 만들고' 그 답에 대해 과학자 사회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과학이 만든 답에는 항상 오류가 있어왔으며 어느 과학자도 현재의 과학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사, 문학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분야에서나 자기 분야의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 과정에도 포함시킨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과학사에 도입된 이래 과학사는 과학의 범주를 넘어 여러 학문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과학사를 예비과학자인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하는지는 논쟁거리였다. 과학사에서 다루는 고대 그리스, 중세, 근대 과학은 현대 과학에 비추어보면 오류로 보이기 때문에 과학사가 예비과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신하지 못하였다. 

과학사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그 내용으로부터 잘못된 개념을 습득할 수도 있고, 선배 과학자들을 멍청한 사람들로 오해할 수도 있다. 과학은 주어진 증거들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만드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그 답은 항상 불완전했으며 계속 불완전할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과학이 만든 답에 대한 끊임없는 크고 작은 수정 과정들로 이루어진다. 창조과학은 이런 과학의 본질을 망각하고 실재를 왜곡하는 데 과학의 이름을 사용한다. 박성진 교수 '사건'은 이런 왜곡 현상이 사회적으로 그 세를 불려 과학에,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해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지진이 정부 탓이라는 생각은 창조과학과 맥을 같이 하며, 일식(日蝕)이 임금의 실정 때문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세태를 일과성이라고 넘겨왔기 때문에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과 증거를 통해 성경 내용을 정당화하려는 창조과학은 과학을 도구로 보는 시각의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을 도구로 보는 시각은 19세기 말 서양의 과학기술에 압도된 동양에서 내세운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역사가 깊으며,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학을 일종의 물리적 도구로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만든 설명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지식체계로, 유력한 사고방식이다. 이런 면에서 과학은 기(器)라기보다 도(道)이다. 현대 과학이 높은 수준의 기술에 힘입어 발전하고 있고, 과학 지식이 기술로 매우 빠르게 응용되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을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과학 활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받기 위해 과학의 경제적 가치를 과장하고 강요받은 역사적 배경도 과학과 기술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동일시하는 분위기에 일조하였다. 

과학을 경제적 도구를 넘어 정치적 도구로 생각한 결과가 과학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친 예는 쉽게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을 홀대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홀대한다는 표현은 과학을 정치적 도구로 생각하여 지원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노벨상과 같은 대중적 선전 효과에 중점을 두고 과학에 투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예는 황우석 사건인데, 이 사건에서 황우석 개인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를 이용하려는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8월 7일 과학기술 혁신본부장에 선임되었다가 서울대 교수들의 퇴진 서명 운동이 있었던 8월 11일 사퇴한 박기영 교수의 재등장 시도는 문재인 정부가 가진 과학기술에 대한 시각을 드러낸 사건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황우석 사건에 깊이 연루된 박기영 교수를 재기용하려 한 것은 황우석 사건에서와 같이 과학을 정치적 도구로 생각하여, 선전 효과가 큰 신화를 재현하고 싶은 욕구를 과학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든다.  

두 박교수 '사건'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준다. 박성진 교수와 관련하여 등장한 '생활보수'라는 표현은 과학기술자를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으며, 박기영교수의 재등장 시도는 정치적 도구화에 부응할 수 있는 경우에만 과학기술자가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이는 한국의 과학기술계가 제대로 된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자들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지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과학이 그 활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가치 창출의 도구인 하드웨어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합리적 사고방식의 틀을 제공하는, 백과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지혜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로서의 역할 역시 수행하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사회적 유용성을 확산시키기 위한 시스템이 미흡해 보인다. 

다른 교육과 다르지 않은 과학교육  

과학기술이 인문 사회과학의 대상과 동떨어진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이들 학문 분야들과 크게 다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론적인 면에서 다른 학문 분야와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을 추동하는 메커니즘 역시 교육과 연구인데, 둘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며, 교육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17년 대통령 선거 과정 중에 한국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안철수 후보의 연설 목소리였다. 그의 연설 목소리는 웅변 전문가에게도 새로운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것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연구하여 만들어낸 것이라도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여 성공한 기업가가 되었으며, 의학박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공계 교육을 성공적으로 받은 사람인데, 그가 겪어온 모든 교육 과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독학'이며, 이는 한국 교육의 중요한 특성이다.  

40여 년 전 이루어진 고교 평준화 이후 중·고등학교 수업은 대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우수한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서 새로운 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배울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평준화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 평준화 이후 그 정도가 심해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고교 평준화의 공과를 논할 의도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 강의 중 질문하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간혹 새로운 교수법을 시도하는 교수들이 있긴 하지만 학생이나 교수에게나 모두 낯설다. 많은 대학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배움의 방식에 기초하여 강의를 진행한다. 이 결과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 교육의 대부분은 흔히 가장 중요한 공부 방법이라고들 말하는 '독학'으로 채워진다.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50과목 이상의 강의를 수강하였겠지만 기억에 남는 강의를 꼽는 일은 교수들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석·박사 과정에서의 주된 배움의 방식은 여전히 '독학'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사교육을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근래의 풍경은 공교육의 기능이 학생을 평가하는 것뿐이라는 느낌을 준다. 선행 학습 과목은 주로 수학과 과학인데,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선행 학습은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파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런 교육 환경은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교사의 역할은 배움의 범위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며, 교사로부터 모르던 것을 배웠다는 경험을 할 수 없다는 면에서 학생들은 '독학'을 하고 있다. 궁금한 것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 깨닫는 가장 편리한 배움의 방식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 것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교육이 이루어지던 식민지 시대의 교육 분위기가 쇄신되지 못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학'으로 경험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과 배려이다. 소통과 배려를 경험해보지 않고도 별 어려움이 없었던 – 사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 사람들은 이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기 어려우며, 따라서 이를 실천하기도 힘들다. '배려 없음'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교육 환경도 분명히 일조하고 있다.  

현역 시절 '독학'으로 뛰어난 선수였던 감독이 부진한 선수들을 배려하여 지도하기보다 선수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질책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도 아니다. 특정할 필요도 없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전공의들에 대한 의대 교수들의 '갑질'은 그들이 배려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면 당연한, 자신이 경험하였던 학창시절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는 배려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학창시절과 비교하며 퇴행적 '갑질'을 하기 쉽다. 지난 6월 일어난 모 대학교수에게 일어난 폭발물 배달 사건의 원인이 오롯이 폭발물을 만든 학생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갑질', 성범죄 등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위협 받는 직업 중 하나로 교사가 꼽힌다. (어떤 사람은 교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망 직종이라고 한다.) 훌륭한 '독학'의 방편으로 인터넷 강의와 인공지능을 통한 교육이 보편화되겠지만 이를 통해 교육받은 학생들을 다른 이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쌍방향 대화를 잘 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에서 소통과 배려에 능한 '좋은' 교육용 인공지능이 만들어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새로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엄청나지만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소통과 배려의 경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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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핵질서의 구조적 불평등성 및 핵무기보유국들의 이중성

<칼럼>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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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7  05: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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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국제 핵규범 질서의 가장 중대한 위반자로 북한을 꼽는다. 그래서 북한만 유독 핵규범 질서를 가장 많이 위반하는 나라로 국제적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그 선봉에 서서 공식 핵무기보유국 5개국과 함께 북한의 핵무기 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UN 안보리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을 결코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행 국제 핵규범 질서의 본질적 불평등성과 핵무기보유국들의 도덕적 이중성을 국제사회는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지속가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국제 핵규범 질서의 기초인 1968년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잠깐 살펴보자. 1945년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 핵무기는 인류공멸의 무기로서 더 이상 핵무기 위협 및 사용은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절대적인 공감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앞 다투어 핵무기 개발을 위한 첫 관문인 핵실험 경쟁을 1950,60년대에 치열하게 벌였다. 이에 기존 핵기득권을 가진 미국이 심각한 위협을 느낀 나머지 1960년 중반, 이미 핵실험을 통해 핵을 보유한 5개국의 핵기득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여타 국가에로의 핵보유 확산은 근원적으로 봉쇄하자는 의도하에 NPT체제를 만들었다.
그래서 NPT체제는 핵무기보유국은 제조 및 이전을 포함하는 핵에 대한 수평적 확산 자유를 인정해주고, 비핵무기보유국에게 핵무기 제조 및 이전을 전혀 못하게 금지하였다. 이것의 관철을 위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을 통해서 매순간 보고요구와 감시를 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5개 핵무기보유국은 현행 핵무기를 심층 개발하는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에 대해서는 도덕적 준수의무를 강조하고, 비핵무기보유국에게는 핵의 수직적 확산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봉쇄하였다. 이처럼 NPT체제는 근본적으로 핵무기보유국과 비핵무기보유국을 차별하는 근본적 불평등성을 지니고 있다.
또 하나 5개 핵무기보유국의 도덕적 이중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1996년 9월 10일 UN 총회에서 채택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대한 소극성이다. 2017년 11월 현재 CTBT 183개 회원국 중에 서명국은 166개국이고, 비준국은 36개국이다.
그 발효조건인 핵관련 주요 국가 44개국의 비준이 필요한데, 핵무기보유국 8개국이 비준하지 않아 미 발효상태에 있다. 이들 국가들은 외양적으로 핵없는 세상을 외치면서 CTBT에 서명 비준을 전혀 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UN 헌장 제2조 4항에 명시된 개별국가는 자위권을 제외하고는 국제분쟁 해결을 위해서 개별적 무력사용의 금지 및 위협 금지라는 국제법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을 포함하는 5개 공식 핵무기보유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포함한 3개 비공식 핵무기보유국은 이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평화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다만 핵무기라는 특정무기 보유를 금지하는 국제조약이 부재한 약점을 수십년 동안 5개 공식, 3개 비공식 핵무기보유국들은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체 비판이나 UN제재조치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는 권고적 의견을 통해서 UN총회의 핵무기 사용 및 위협의 불법성 질문에 대해서 매우 애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적대관계 종식 및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에 대한 협상의지를 보여준다면, 북한은 대화 테이블에 나와서 북한 핵에 대한 최소한 동결문제라도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전혀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하지 않고, UN 안보리 제재 결의 준수와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만 강요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2017년 노벨위원회 평화상 수여는 핵무기에 대한 5개 핵무기보유국의 부도덕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핵무기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노벨위원회가 미국, 프랑스 등 핵무기보유국의 강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10월 6일 국제 NGO 단체인 ICAN(핵무기폐기국제운동)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것이다.
노벨위원회가 선정한 노벨 평화상 기준은 분명했다. “핵무기 사용으로 인한 인류의 재앙적 인도주의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약에 기반한 핵무기 금지를 막으려는 획기적인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ICAN은 핵무기보유국의 강한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UN 총회에서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채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고, 이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98년 국제대인지뢰캠페인(ICBL)이 대인지뢰금지조약 UN 채택을 유도한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국가주의가 해내지 못한 핵무기금지조약(TPNW)이라는 군축조약의 UN 채택을 NGO의 힘으로 해 낸 것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300여 개인을 포함한 단체를 추천받아 엄선된 ICAN 수상자를 발표한 것이었다, 이어 ICAN의 베아트리스 핀 사무총장은 “핵무기금지조약을 위한 모두의 노력의 결과이고 모두가 기뻐해야 할 영광스런 상"이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2017년 노벨 평화상 수여는 핵무기의 사용 및 위협은 오로지 북한만 위반한다는 일방적 국제사회의 왜곡된 시각에 균형적 그리고 성찰적 시각을 제공해 준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2017년 7월 7일 핵무기금지조약 UN총회 채택에도 미국을 비롯한 5개 공식 핵무기보유국과 4개 비공식 핵무기보유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일방적으로 무장해제를 약속한 1992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만을 남북한에 강요할 수 있겠는가? 꼭 필요하다면 남북한은 ‘동북아비핵지대화’(Nuclear Weapons Free Zone in Northeast Asia)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도 북한 핵무기에 대해 현상만 무비판적으로 보지 말고, 왜 북한이 핵무기 실험과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가라는 국제핵질서의 구조적 불평등성과 핵무기보유국들의 도덕적 이중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공론화가 필요한 때이다.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검찰 적폐청산 수사 제동]거침없던 6개월…고민 깊어진 ‘윤석열호’

입력 : 2017.11.26 22:49:02 수정 : 2017.11.26 22:54:46

ㆍ‘비리·적폐’ 피의자 석방·영장 기각에 잇단 소환 거부
ㆍMB·박근혜 정부 ‘국정원 수사’ 연내 종결 계획 차질
ㆍ정치권 공수처 신설·수사권 조정 논의 본격화도 부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지난 6개월간 전·현 권력을 조준하며 거침없이 진행돼온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비리 의혹을 받는 여권 핵심 인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이미 구속된 전 정부 인사들은 법원의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잇따라 석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사들 모두 문재인 정부 들어 파격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윤석열 지검장(57)이 주도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정치권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적폐청산 수사가 위기로 몰리고 있다.
대기업을 상대로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뇌물수수 등)를 받고 있는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59)의 구속영장이 지난 25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이 현 청와대 고위 인사를 대상으로 한 첫번째 수사를 시작하며 결과가 주목됐던 사건이다. 검찰은 전 전 수석이 정무수석직을 내놓고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향후 수사에 타격을 받게 됐다. 검찰은 “기각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보강 수사 후 영장 재청구 방침을 공표했지만 전 전 수석은 “결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여권에서는 전 전 수석 수사를 계기로 검찰을 향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수사가 한창일 때 ‘여야 균형 맞추기’ 차원에서 전 전 수석 비리를 수사선상에 올렸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반인 2003년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때처럼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휘둘리며 검찰개혁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연내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국군 사이버사령부 적폐수사를 종결짓겠다는 검찰 수뇌부의 계획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사이버사 댓글 공작을 지휘·감독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68)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64)이 지난 22일과 24일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차례로 석방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김 전 장관 등을 풀어주면서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못박았다. 이 수사의 최종 목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인데, 이들에 대한 범죄 혐의가 제대로 소명되지 않는다면 이 전 대통령 수사도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은 “공범에 대한 추가 수사가 예정돼 있음에도 ‘혐의에 대해 다툼이 있다’는 취지로 석방한 법원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67)에 이어 김 전 장관까지 구속될 때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의 2012년 총·대선 개입 혐의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원 전 원장 역시 이 전 대통령을 향해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보다 앞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재판 방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변창훈 검사(당시 국정원 파견)와 국정원 소속 정치호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적폐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이 잇따라 검찰 소환을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국정원에서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입건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62)은 28일 예정된 검찰 조사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공정하지 못한 수사에는 협조하기 어렵다”며 공개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불체포특권이 인정돼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이 나와야만 체포가 가능하다. 
야권에서는 이우현·원유철 한국당 의원 등 다른 동료들을 향해서도 검찰 수사가 가시화한 상황에서 현역 의원 체포 선례를 만들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2012년 12월 경찰의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과 수시로 통화하면서 수사정보를 누설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를 받고 있는 김병찬 서울 용산경찰서장도 지난 25일 출석해달라는 검찰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김 서장의 소환 거부는 경찰 수뇌부의 재가 없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검경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0일 정부·여당은 당·정·청회의를 소집해 공수처 법안의 국회 통과 전략을 논의했다. 

야당에서는 경찰에 힘을 실어주는 형태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여야는 각론에서 차이가 있을 뿐 큰 틀에서 검찰개혁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관련 입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기사

김구가 죽자 미국대사는 이 비밀문서를 만들었다

17.11.27 08:29l최종 업데이트 17.11.27 09:40l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정문 표지판과 표지석.(2017. 10. 27. 촬영). 이곳 NARA는 한국 현대사 및 세계 현대사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정문 표지판과 표지석.(2017. 10. 27. 촬영). 이곳 NARA는 한국 현대사 및 세계 현대사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 박도

 NARA 서고의 문서 상자들로 전세계정보의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  NARA 서고의 문서 상자들로 전세계정보의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 박도

'김구팀' 팀장으로부터의 초대

제4차 방미 이튿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로 출근해 노트북을 켜는데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보낸 이는 이선옥씨로 지난날 김구팀(Kim Koo Team, 백범김구 암살배후 조사팀) 팀장이었다.

"박도 선생님…. 목요일 저희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미 박유종 선생님과도 이야기했고요. 그날 NARA에서 일을 마치시고, 곧장 오세요. 간소하지만 선생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고 싶어요. 주태상(남편)씨도 선생님 뵙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선옥 드림"

나는 그 메일을 읽자 만감이 교차했다. 그들 부부와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2004년 2월 2일 아침, 메릴랜드 한 숙소로 재미동포 주태상씨가 찾아왔다. 그는 <한겨레신문>에서 권중희 선생과 나의 방미 기사를 보고 자원봉사를 자청한 재미동포였다. 

그는 나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무슨 일이든 돕겠다고 숙소의 문을 두드린 열혈 청년이었다. 마치 지난날 상하이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윤봉길 의사와 같은….

마침 그는 컴퓨터에 대해 조금 안다고 하기에 나는 연결이 안 된 노트북을 그에게 맡겼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컴맹이어서 노트북조차 없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의 노트북을 빌려온 처지였다. 그는 숙소에서 1시간여 땀을 흘리면서 연결을 시도했으나 끝내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숙소에 인터넷선이 깔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지금보다 값싼 숙소로, 인터넷이 깔린 곳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나와 권중희 선생은 NARA에서 가까운 곳에 방 두 개인 숙소에 묵고 있었는데 하루 숙박비가 100달러로 부담이 컸다. 이는 그때 자원봉사 유학생 김만식씨가 장기간 두 사람이 한 방에서 기거하면 불편하다고 방 두 개(투 룸)짜리 숙소를 구해준 것이었다. 일리 있는 배려였지만 겨레의 성금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 알아보겠다고 대답하고는 그날 우리 두 사람을 곧장 NARA로 안내했다. NARA에 이르자 고 권중희 선생은 당신 평생 소원이 이뤄지는 것처럼 매우 감격했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NARA 2층 자료실에 마련된 KIM KOO TEAM 리서처(조사자) 좌석.
▲  NARA 2층 자료실에 마련된 KIM KOO TEAM 리서처(조사자) 좌석.
ⓒ 박도

'Kim Koo Team'

그날 오후에는 유학생 이선옥씨가 우리 숙소로 찾아왔다. 그는 바쁜 유학생활이지만 백범 선생 암살배후 진상을 규명 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자원봉사 의사를 밝혔다. 나는 그 열정과 진지한 자세에 감동을 받아 우리와 함께 일하는 걸 승낙했다.  

그때 김구팀(Kim Koo Team)은 모두 여덟 분의 재미동포와 유학생들로 구성됐는데, 이들 외에도 이도영, 박유종, 이재수, 김만식, 정희수, 권헌열씨 등이 우리 일을 도와줬다. 그분들 가운데 주태상씨는 NARA에서 리서치(Research, 검색)뿐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을 자기 승용차로 출퇴근시켜 주는 일, 값싼 숙소를 구해주고 이삿짐 나르는 일, 컴퓨터 설치 및 스캐너 빌려주는 일 등 한국의 두 노인의 손발 역할을 도맡았다.
 권중희 선생과 필자의 귀국에 배웅 나온 김구 팀 자원봉사 조사자들(왼쪽부터 정희수, 권헌열, 권헌열 아드님, 주태상, 권중희, 이선옥, 박유종, 이재수, 팀원 중 이도영, 김만식 등은 빠졌음.)
▲  권중희 선생과 필자의 귀국에 배웅 나온 김구 팀 자원봉사 조사자들(왼쪽부터 정희수, 권헌열, 권헌열 아드님, 주태상, 권중희, 이선옥, 박유종, 이재수, 팀원 중 이도영, 김만식 등은 빠졌음.)
ⓒ 박도

이선옥씨는 자원봉사 중 유일한 여성으로, 대단히 열정적이고 학구적이며, 아주 야무지게 일을 잘했다. 내가 그를 팀장으로 정하자 모두들 동의해줬다. 그러자 그는 문서 찾는 일들을 조직적으로, 한 치 차질 없게 추진했다. 그때 우리 김구팀은 40여 일 눈에 핏발을 세우고 암살 배후가 될 만한 문서를 찾았다. 

특히 NARA의 문서 자료에서 김구, 이승만, 안두희 등의 이름만 나오면 무조건 복사했다. 그런 다음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읽은 뒤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하지만 그 문서들은 백범 암살 언저리만 맴돌았을 뿐이었다. 정곡을 꼭 찌르는 결정적인 문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당시 김구팀이 찾았던 문서 몇 장을 소개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 불리한 문서는 대부분 파기했다"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1
▲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1
ⓒ NARA

위 문서는 주한 무초(John. J. Muccio) 미국대사와 김규식 박사 간의 대화(1949년 6월 28일)로, 김구 선생의 죽음에 관련한 루머(rumor, 뜬소문), 김구 선생 장례 절차에 대한 논란(국장, 국민장으로 할 것인가 등), 한독당의 미래, 한독당 내에서 김규식 박사의 지도력(Leadership)과 함께, 김규식 박사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문서를 요약하면, 김규식 박사는 김구 선생과는 달리 지방의 조직도 갖지 않았고, 정치적인 야망도 크게 없었고, 정치적인 캠페인(Campain, 운동)도 이전에 해보지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독당 내에서 소임을 다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이야기다. 

그밖에도 김규식 박사와 김구 선생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 간의 협력 시도, 한국 내에서 정당간, 국민간의 화합과 연대의 문제점, 공산주의와 한국인들, 중국인들 이야기, 공산주의자로 분류되는 국회의원들의 체포에 대한 김규식 박사의 우려 등도 기록돼 있다.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2
▲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2
ⓒ NARA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3
▲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3
ⓒ NARA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4
▲  NARA에서 발굴한 김구 관련 문서4
ⓒ NARA

위의 세 문서에는 김구의 출생부터 활동 및 업적에 대해 열거 그리고 1949년 6월 26일 12시 20분께 한국 군인의 미제 소총 4발로 사망했다는 소식, 김구 선생의 죽음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충격, 이승만 정부의 성공적 야당 지도자이자 유일한 비공산주의자였던 김구 선생에 대한 애도, 김구 선생의 암살자로 서울 경찰의 안두희 지목 관련 내용, 정부 관료들의 공식적 입장 등이 실려 있다. 

하지만 아무리 NARA 서고의 문서를 뒤져봐도 김구 선생 암살 배후에 관해 정곡을 찌르는, 딱 부러지는 문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어느 암살 지령자가 멍청하게 딱 부러지는 말이나 문서를 남기겠는가? 그 지령 단계는 대체로 점조직이기 마련이고, 그 지령은 이심전심의 비법을 쓰기 마련이다. 암살 지령자는 그것마저도 믿을 수 없어 암살 하수인을 다른 하수인을 시켜 죽여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비정한 암살 세계 아니겠나(관련 기사 : 백범 암살범 안두희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했을까?).

게다가 NARA의 한 아키비스트(Achivist, 문서관리자)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무성이나 CIA에서 미국에 불리한 문서 97~98%를 파기(Destroyed)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런 점을 몰랐던 우리 아마추어 김구팀은 핵심 문서를 찾지 못하고 그 언저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백범 암살 배후를 밝힐 '알맹이'는 없었다
 NARA의 한 아키비스트가 조사자들에게 중요문서 97~98%는 파기(DESTROYED)됐다고 전하는 메모지로 NARA 검열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다.
▲  NARA의 한 아키비스트가 조사자들에게 중요문서 97~98%는 파기(DESTROYED)됐다고 전하는 메모지로 NARA 검열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다.
ⓒ 박도

 NARA에서 발국한 문서5
▲  NARA에서 발국한 문서5
ⓒ NARA

 NARA에서 발굴한 문서6
▲  NARA에서 발굴한 문서6
ⓒ NARA

 NARA에서 발굴한 문서7
▲  NARA에서 발굴한 문서7
ⓒ NARA

위의 문서5는 CIA 이전 CIC, OSS 측 도서관에서 만든 1948년~1950년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인덱스(Index, 색인)카드다. 이 인덱스카드를 보고 다시 그 문서를 찾아가 보니 해당 문건 (#432089)의 실제문서 대신 문서6와 문서7이 존재했다.

이 노란색 종이(문서7)가 바로 문서 수거에 대한 정보다. 즉, 미 CIA에서 이 문서를 일단 비밀해제 했지만, 다시 이 문서를 스크린(screen, 정밀조사)한 뒤, 한국과 미국간 혹은 김구 관련 민감한 내용이 있어 CIA가 1978년 10월 16일 이 문서를 수거한 것(문서6)을 1979년 2월 22일에 이를 확인한 것(문서7)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CIA의 한국 정치인 이름 인덱스카드 상에서 관심 있는 문서 #432089를 찾아봤더니 이 문서 대신 CIA측에서 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아직도 이를 가지고 있다는, 이 문서에 대한 '접근 제한' 노티스(Notice, 주의사항, 또는 알림)로 1979년 2월 22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미국의 국익에 위배되는 문서나, 반미(反美) 감정을 유발하거나, 한국현대사에 아주 예민한 정보가 담긴 문서는 아직도 NARA 비밀서고에 잠자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사자가 이를 미국의 정보공개요구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요구를 해도 미국 측에서 응하지 않을 뿐더러, 마지 못해 응한다 해도 해당부분은 새카만 색깔로 덧칠해 나오기 때문에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미국의 명분은 국가 안보와 사생활 보호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No' 하면 뾰족한 대처 방법이 없다고 한다. 더 이상의 요구는 미국 국법에 위배되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미국 내정을 간섭하는 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중요 기밀문서의 공개는 미국의 국익과 사생활 보호를 빌미로 '엿장사 마음대로'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아마추어 조사자들이 해결하는 데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한계점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우리 김구팀은 분루(憤淚, 분하여 흘리는 눈물)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NARA에서 발굴한 서류철. 이 서류철은 고 권중희 선생이 보관했다. 얼마 전에 사모님을 만나 이 서류철의 행방을 문의하자 권 선생 사후 이삿짐 센터에 보관했는데 아마도 폐기처분했을 거라는 답을 듣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것이 아마도 백범 진상 규명의 현주소가 아닐까? 이 서류철은 팀장 이선옥 씨 작품이었다.
▲  NARA에서 발굴한 서류철. 이 서류철은 고 권중희 선생이 보관했다. 얼마 전에 사모님을 만나 이 서류철의 행방을 문의하자 권 선생 사후 이삿짐 센터에 보관했는데 아마도 폐기처분했을 거라는 답을 듣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것이 아마도 백범 진상 규명의 현주소가 아닐까? 이 서류철은 팀장 이선옥 씨 작품이었다.
ⓒ 박도

 조사자들의 점심시간으로 토의장이기도 했다(장소는 NARA 1층 구내식당으로 오른쪽부터 권중희, 이도영, 박유종, 정희수, 이선옥, 주태상, 그리고 취재 중인 EBS 김봉렬 PD.)
▲  조사자들의 점심시간으로 토의장이기도 했다(장소는 NARA 1층 구내식당으로 오른쪽부터 권중희, 이도영, 박유종, 정희수, 이선옥, 주태상, 그리고 취재 중인 EBS 김봉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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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사진을 보다

이런 사실을 미국 NARA 현지에서 뒤늦게 알게 된 우리 김구팀은 계속 리서치 작업을 하느냐 마느냐 문제로 한동안 갑론을박했다. 이곳을 오랫동안 드나들며 자료를 수집했던 고 이도영 박사는 "핵심 문서는 비공개됐지만, 유탄의 파편은 그래도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조사자들은 그것을 찾아 퍼즐게임처럼 윤곽을 맞춰 가면 실체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말씀을 했다. 

그때 우리의 결론은 다수결로, 기왕 여기까지 누리꾼들의 성금으로 왔으니까 북데기 속에서 알곡을 찾는, 농사꾼의 심정으로 애초 계획한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로 했다. 

"우리가 이 무모해 보이는 이 일을 시작하면 후세에 누군가 사명감을 가지고 백범 암살 배후의 실체를 밝힐 것이다. 우리는 그 씨앗을 뿌리는 농사꾼 심정으로 이 일을 계속하자."

나의 말에 재미 자원봉사자들은 화답했다. 

"설령, 두 분 선생님은 빈손으로 귀국하시더라도 남아있는 저희들이 계속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일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때 영어에 매우 어두운 나는 마침 NARA 5층 자료실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발견하고 밥값을 할 수 있다고 무릎을 쳤다. 그 사진들은 이전에 내가 보지 못한 것들로 거기에는 한국전쟁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길 들길 아무데나 지천으로 흩어져 있던 시체더미들, 쌕쌕이(전투기)들이 염소똥처럼 마구 쏟아붓는 포탄, 포화에 쫓겨 가재도구를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허겁지겁 뛰어가는 피란민 행렬, 배만 불룩한 아이가 길바닥에 버려진 채 울고 있는 장면….

흥남부두에서 후퇴 수송선에 오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 유엔군들이 군복을 입은 채 그대로 바다로 뛰어 들어가서 수송선에 오르는 모습, 끊어진 평양 대동강 철교 위로 꾸역꾸역 곡예 하듯 남하하는 피란민들, 꽁꽁 언 한강을 괴나리봇짐을 이고 진 피란민들이 어린아이를 앞세우고 건너는 모습, 부산 영주동 일대의 판자촌, 수원 역에서 남행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피란민들….

순간 나는 이 사진들을 가져다가 우리나라 사람, 특히 한국전쟁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자료실에서 스캔은 허용된다고 해, 주태상씨의 스캐너를 빌려 박유종 선생의 도움으로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40여 일간 수만 매의 사진자료를 들춰 그 가운데 480여 매를 엄선했다. 이는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의 연재로 알려졌다. 

귀국 후 연재가 끝난 즉시 사진전문 눈빛출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사진집을 펴냈다. 이 사진집이 나오자 여러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고, 독자들의 성원도 컸다. 나는 분외의 성원에 NARA에서 미처 들춰보지 못한 사진들이 눈에 아른거려, 다시 지난 2005년 11월에 2차로, 이어 2007년 2월에 제3차로 워싱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하여 NARA뿐 아니라 버지니아 남단 노퍽의 맥아더기념관까지 두 차례 방문해 한국전쟁 관련 기록물 1800여 점을 입수해 왔다.  

마치 고려시대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왔던 고사처럼 한국전쟁 자료를 복사해왔는데, 자원봉사자 박유종, 주태상씨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자료를 스캔하는 필자. 스캐너는 주태상 씨, 노트북은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의 것이었다.
▲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자료를 스캔하는 필자. 스캐너는 주태상 씨, 노트북은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의 것이었다.
ⓒ 박도

안두희는 과연 단독범이었을까

안두희의 주장대로 그는 단독범일까. 아니면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에 거대한 조직과 막강한 권력이 숨어있는 걸까. 

암살범 안두희를 10여 년간 추적한 권중희 선생과 수개월 동안 침식을 함께하고, 안두희 저승사자였던 박기서 의사와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필자는 아직도 백범 암살범 배후는 오리무중이다. 

그 진상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 개인으로서, 더욱이 영어가 먹통인 필자와 같은 아마추어 조사자에게는 거대한 벽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은 정부가 혹은 정부기관의 수사 전문가가 나서서 찾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 평생 조국 독립에 몸 바치신 백범 선생에 대한 후손들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그때 김구 팀이 NARA에서 발굴한 백범장례 행렬 사진을 모두 싣는다.
 1949년 7월 5일 고 백범김구 선생 영결식이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치른 뒤 효창동으로 운구하고자 상여가 서울운동장을 떠날 차비를 차리고 있다. 여기 사진들은 모두 '김구 팀'에서 발굴했다. 여기 사진들은 미 육군정보팀에서 촬영하여 본국에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  1949년 7월 5일 고 백범김구 선생 영결식이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치른 뒤 효창동으로 운구하고자 상여가 서울운동장을 떠날 차비를 차리고 있다. 여기 사진들은 모두 '김구 팀'에서 발굴했다. 여기 사진들은 미 육군정보팀에서 촬영하여 본국에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 NARA

 "친애하는 자매 형제여, 우리의 살길은 자주 독립의 한 길 뿐이다. 이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여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가지는 못하는 길이다. 주저하지도 말고 유혹 받지도 말고 앞만 향하여 매진하자. 내가 비록 불초할지라도 이 길을 개척하고 나가는 데는 앞에서 나갈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부월(斧鉞, 형구로 쓰는 도끼))이 당전(當前, 바로 눈 앞에))할지라도(곧, 중형을 받고 죽게 될지라도) 도피하지는 아니하겠다." - 부월이 당전해도 단정 반대. 1948년 3·1절 기념사 -
▲  "친애하는 자매 형제여, 우리의 살길은 자주 독립의 한 길 뿐이다. 이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여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가지는 못하는 길이다. 주저하지도 말고 유혹 받지도 말고 앞만 향하여 매진하자. 내가 비록 불초할지라도 이 길을 개척하고 나가는 데는 앞에서 나갈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부월(斧鉞, 형구로 쓰는 도끼))이 당전(當前, 바로 눈 앞에))할지라도(곧, 중형을 받고 죽게 될지라도) 도피하지는 아니하겠다." - 부월이 당전해도 단정 반대. 1948년 3·1절 기념사 -
ⓒ NARA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 뿐이랴. 대중의 기아(飢餓)가 있고, 가정의 이산(離散)이 있고, 동족의 상잔(相殘)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백범 어록
▲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 뿐이랴. 대중의 기아(飢餓)가 있고, 가정의 이산(離散)이 있고, 동족의 상잔(相殘)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백범 어록
ⓒ NARA

 "반쪽이나마 먼저 독립하고 그 다음에 반쪽마저 통일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듯하되, 실상은 반쪽 독립과 나머지 반쪽 통일이 다 가능성이 없고, 오직 동족상잔의 참화를 격성(激成)할 뿐일 것이다." - '통일 독립 달성을 위한 7거두 성명' 중에서
▲  "반쪽이나마 먼저 독립하고 그 다음에 반쪽마저 통일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듯하되, 실상은 반쪽 독립과 나머지 반쪽 통일이 다 가능성이 없고, 오직 동족상잔의 참화를 격성(激成)할 뿐일 것이다." - '통일 독립 달성을 위한 7거두 성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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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이 없이는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 뿐이다. 그러나 현시에 우리 조국이 미·소 양국의 분단점령을 당하고 있는 이상 국제협조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제협조에 노력하였고, 앞으로 이 노력을 계속할 결심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에 의하여 국제협조의 노력도 공고한 민족단결이 있은 뒤에야 주효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였다." - 통일 독립기구 강화. 1948. 6. 7 -
▲  "통일이 없이는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 뿐이다. 그러나 현시에 우리 조국이 미·소 양국의 분단점령을 당하고 있는 이상 국제협조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제협조에 노력하였고, 앞으로 이 노력을 계속할 결심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에 의하여 국제협조의 노력도 공고한 민족단결이 있은 뒤에야 주효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였다." - 통일 독립기구 강화. 1948. 6. 7 -
ⓒ NARA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 <나의 소원>중에서 -
▲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 <나의 소원>중에서 -
ⓒ NARA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 <나의 소원> 중에서 -
▲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 <나의 소원> 중에서 -
ⓒ NARA

덧붙이는 글 | 이 기사 작성에 김구 팀장 이선옥씨의 자료 해설과 자료 이미지 변환에 눈빛출판사 편집부 성윤미씨의 도움이 컸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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