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뉴스 브리핑 (2025.11.11.) -송미령 장관 증언 "윤석열과 한덕수는 그날‥" 재판정 술렁 -채해병 특검, 임성근 전 사단장 구속기소···2년여 만에 재판으로 -진보당 울산, ‘감사 쪽지’로 드러난 당권 조작 의혹 “김기현, 철저히 수사하라” -일본 총리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중국 총영사 “그 더러운 목 베어버릴 수밖에” -미국의 대중국 병참 기지, “한국 활용해야” -조선중앙통신 “황해남도 배천군 새집들이 모임 진행”
"평양·핵시설 타깃" 여인형 메모 속 전쟁도발 계획... 특검, 윤석열 일반이적 기소
내란·외환 특검팀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과 관련해 윤석열과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전 국군방첩사령관)을 일반이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은 근거로 여 전 사령관이 지난해 10~11월 작성한 휴대폰 메모 일부를 공개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찾아 공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타깃은 평양, 핵시설 2개소. (10월 18일)
▲풍선, 드론, 사이버, 테러, 국지포격, 격침 등 적의 전략적 무력시위 시 이를 군사적 명분화할 수 있을까. (10월 23일)
▲포고령 위반 최우선 검거 및 압수수색. (10월 27일)
▲비상계엄 당시 체포 명단에 오른 "이재명, 조국, 한동훈, 정청래, 김민석" 언급. (11월 9일)
특검은 메모를 근거로 비상계엄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전쟁 도발을 시도했다는 결론이다.
송미령 장관 증언 "윤석열과 한덕수는 그날‥" 재판정 술렁
내란수괴 윤석열이 12·3 계엄 선포 당일 “(계엄을)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송미령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증언이 나왔다. 윤석열은 또 ‘마실 걸 갖고 와라’고 했고, 한덕수 총리에게 “당분간 대통령이 가야 할 일정이나 행사를 대신 가달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당분간’이 문제가 된다. ‘당분간’ 이라면 ‘일회성 경고 계엄’이라는 윤석열의 주장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송 장관은 한 전 총리가 ‘좀 더 빨리 오시면 안 되냐’고 서너차례 이야기했다고 증언했다. 한 총리가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를 채워 불법 계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채해병 특검, 임성근 전 사단장 구속기소···2년여 만에 재판으로
채해병 특검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속 기소했다. 정민영 특검보는 “임 전 사단장은 (당시 수중) 수색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묵인 방치했다”며 “임 전 사단장의 작전 지휘가 업무상과실에 해당되고 (채 해병의) 사망 원인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임 전 사단장은 채 해병 순직 2년만에 순직사건에 대한 책임을 법정에서 판단받게 됐다. 채 해병 순직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을 경북경찰청에 송치했는데, 윤석열의 격노 소식이 전해지자 군검찰은 이날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회수한 사건을 이첩받아 재조사한 뒤, 임 전 사단장을 명단에서 뺐다.
진보당 울산, ‘감사 쪽지’로 드러난 당권 조작 의혹 “김기현, 철저히 수사하라”
진보당 울산시당 김진석 부위원장은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지난 주말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아크로비스타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김기현 의원의 당대표 당선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쪽지와 고가의 명품 가방이 발견됐다. 이에 김진석 부위원장은 “이것이 단순한 선물 전달로 보이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이는 집권 권력이 여당 당대표 선거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매우 중대한 정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기현 의원의 해명은 국민 기만에 불과하다”며 “대통령 배우자와 여당 대표 배우자가 ‘사적 관계일 뿐’이라는 주장에 국민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일본 총리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중국 총영사 “그 더러운 목 베어버릴 수밖에”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7일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의 비상사태가 '존립위기상태'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10일 또다시 “만약 군함이 사용되고 무력 행사가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보더라도 실존론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존립위기상태'는 지난 2015년 아베 총리 당시 제정한 안보 관련법에 명시된 개념으로,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본과 밀접한 다른 국가가 공격을 받아 일본의 영토가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 이를 '존립위기상태'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8일 쉐젠 중국 총영사는 다키이치 총리를 향해 "멋대로 들어오는 그 더러운 목은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라며 “각오가 되어 있나"라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대중국 병참 기지, “한국 활용해야”
미 군사 전문 매체를 통해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억지 전략에 있어 최대 약점은 병참이 될 수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한국 등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의 에이크 프레이먼 연구원)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병참은 평화 시기 비용 절감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광활한 태평양에서 치러질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해상 병참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6천 척 이상이었던 미국 상선은 현재 200척 미만이고 미군 해상수송 사령부는 승선원 부족으로 인해 선박을 퇴역시키고 있다.
연구진은 미군이 병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등의 동맹과 서둘러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와 탄탄한 상선을 갖추고 있어 병참망 구축을 위한 주요 동맹국이란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한편 지난 5월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는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fixed aircraft carrier floating in the water)이다.”라고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 “황해남도 배천군 새집들이 모임 진행”
“서해곡창 연백벌에 위치한 황해남도 배천군 역구도농장이 새시대 농촌혁명의 자랑찬 실체로 전변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통신은 “조형 예술성과 편리성 보장의 원칙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 역구도농장에는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의 문명과 발전상이 비껴있다.”고 밝혔다.
검찰의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논란이 계속 커지는 가운데, 10일 검찰 내부에서는 검사들의 집단반발이 나왔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항소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지난 9일 “법무부 의견 참고 후 항소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밝힌 것이 납득이 안 간다는 입장이다. 이에 박재억 수원지검장이 18개 지검장과 공동명의로 작성한 입장문에서 “검찰총장 권한대행께서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대검에서 근무하는 평검사들인 검찰연구관들은 노만석 대행을 향해 “거취 표명을 포함한 합당한 책임을 다하시기를 요구한다”라며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11일 자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1면에 보도했다. 검찰의 이례적인 항소포기를 두고 신문들은 “납득이 안 된다”라고 대체로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두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정반대의 사설을 썼다. 한겨레는 “검찰의 반성 없는 집단 행동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겠냐”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검찰을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檢亂)은 국민적 반발로 확산할 수 있다”라고 했다.
▲11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 “李대통령이 항소 포기 지시하지 않았다면 국민 앞에 해명해야”
조선일보는 검찰의 이번 항소 포기에 대통령실이 어느 정도 관여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입장을 주요하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도 법무부가 민정수석실에 사전에 관련 내용을 공유했지만 어떤 지침도 내린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권은 이재명 대통령 변호인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실 민정 라인과 법무부 등에 포진해 있으면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일선 검찰청은 주요 사건의 수사·재판 경과를 수시로 대검에 보고하고, 대검은 법무부에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에 보고하는 게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11일 조선일보 2면.
국민의힘은 “법무부와 대검, 민정수석실까지 대통령 관련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법무부·검찰청·민정수석실이 다 관여됐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실제 봉욱 대통령실 민정수석 밑에 있는 비서관 4명 중 3명이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다. 이태형 민정비서관은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쌍방울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부장검사 출신인 그는 검찰 내 인맥도 여럿 있다. 이 비서관은 2018년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으로도 일했다. 이 사건에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파생되기도 했다. 이장형 법무비서관은 쌍방울 사건의 변호인 출신이다.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은 대법원이 지난 5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법무부에도 대장동 변호인이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조상호 장관 정책 보좌관이 대장동·쌍방울·위증교사 사건의 변호인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검사들로부터 사퇴를 요구받고 있는 노만석 직무대행과 직접 통화했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에서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10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사의 표명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라며 “노 대행이 사퇴할 경우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촉발된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 이후 13년 만에 검찰 내부의 요구에 의해 검찰 수장이 물러나게 된다”라고 보도했다.
▲11일 중앙일보 1면.
노만석 직무대행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몸이 좋지 않아 하루(11일) 쉬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할 것이다. 홀가분한 심정이다. 검사 노만석이 아닌 인간 노만석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검찰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리(항소 포기를 지휘) 했는데 후배들은 동의를 안 하는 것 같다. (용산 언급은) 검찰총장으로서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일 처리에서 용산과 법무부는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항소 포기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국민 앞에 나와 해명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검찰 ‘대장동’ 항소 포기, 이 대통령 뜻인가> 사설에서 “정 장관은 공식적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에게 항소 포기를 지휘하는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사실상 뒤에서 수사 지휘를 했다. 그 자체로 검찰청법 위반이자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한 뒤 “가장 큰 의문은 이 충격적인 지시를 정 장관 단독으로 했겠느냐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신문은 “대장동 항소 포기를 하면 대장동 일당이 검사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재판을 할 수 있다. 재판이 일방적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대장동 일당에게 수천억 원의 돈이 그대로 흘러들어 가게 된다. 이런 결과를 낳을 항소 포기가 국민적 반발을 살 것이란 사실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이런 큰 일을 정 장관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일 조선일보 사설.
이어 “현재 이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라면서도 “하지만 정황상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장동 항소 포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대장동 일당과 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이 대통령 최측근 인사이고, 현재 검찰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이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다. 이 대통령이 항소 포기 문제를 몰랐다고 한다면 상식 밖이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현황 보고는 받았지만 지침을 대통령실이 내린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았다면 의혹이 더 커지기 전에 국민 앞에 나와 해명해야 한다”라고 했다.
한겨레 “반성 없는 선택적 집단행동” 조선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 국민적 확산”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검사들의 집단반발에 정반대 사설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 당시 검찰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검찰의 선택적 반발, 부끄럽진 않은가> 사설에서 “국민들은 이보다 더한 사건에서도 지금 이 검사들이 침묵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이 없는 선택적 집단 행동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11일 한겨레 사설.
이어 “검찰 수뇌부가 담당 검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 결정을 내렸다면, 검사들이 합당한 설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검찰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부지기수였던 윤석열 정권에서는 왜 이런 요구가 없었나. 지금 기준이라면 범죄 혐의가 명백한 김건희씨를 무혐의 처분했을 때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를 포기했을 때도 들고일어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검사들 반발, 힘으로 누르면 국민 반발로 확대될 것> 사설에서 “(노만석 직무대행을 향한) 입장문을 발표한 검사장 18명과 노 대행 사퇴를 요구한 대검 부장 7명은 현 정부 출범 후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간부들이다. 여기엔 이 대통령이 임명한 요직인 전국 지검장 15명도 포함돼 있다”라고 한 뒤 “민주당은 이번에도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정치적 편 가르기와 검찰 악마화로 국면을 바꿔보려고 한다. 하지만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민의 법 상식과 정의감에 너무도 동떨어졌다. 대장동 일당이 6000억원 이상을 차지하게 만들어준다면 법치가 어디에 있나.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檢亂)은 국민적 반발로 확산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11일 조선일보 사설.
대체로 11일 자 아침신문들 사설은 항소 포기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히 노만석 직무대행은 지난 9일 “법무부 의견 참고 후 항소 제기하지 않는 것이 판단했다”라고 말했는데, 정성호 법무장관은 지난 10일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의견만 전달했다”라고 말한 뒤 외압 행사는 부인했다.
한국일보는 <대장동 항소 포기 일파만파… 대통령 관련 아니어도 그랬겠나> 사설에서 “정 장관 설명을 받아들이더라도, 하필 왜 이런 결정이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에서 이뤄졌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정 장관은 ‘이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계 없다’고 했지만, 이 대통령이 대장동 별도 재판(배임 혐의)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다.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했을 뿐 소추 자체를 무효로 간주하지 않는다. 대통령 사건에서 이런 예외가 계속된다면, 국민은 여권이 이 대통령 기소 자체를 무효로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대장동 항소 포기, 현명한 결정 아니다> 사설에서 “윤석열 정부 때는 침묵하던 검찰이 이번 일에 집단 반발하는 모습은 볼썽사납지만, 실익이 뭔지 알 수 없는 항소 포기를 해서 이 혼란이 벌어진 상황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한 뒤 “항소 포기의 실익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대장동 일당이 검찰을 상대하지 않고 2심 재판을 하게 됐다. 검찰이 그간의 무리한 수사·기소나 기계적 상소 관행을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모범 사례는 결코 될 수 없다. 정 장관은 남욱 변호사가 ‘검사가 배를 가른다고 했다’고 한 점을 언급하며 ‘사건이 계속되면 오히려 더 정치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검찰이 ‘정치 사건’에 매달리지 말고 혁신·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항소 포기로 정치적 문제가 더 커졌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부담도 커지게 만들었다”라고 지적했다.
▲11일 한겨레 사설.
종묘 앞 고층 건물 이슈로 오세훈·김민석 서울시장 선거 전초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정부와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고시를 바꿔 종묘 인근 건물의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두 배 올린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 6일 대법원은 서울시의회가 문화재 인근 개발 공사를 규제하는 조례를 일방 폐지한 것에 반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제기한 소송을 각하해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했다.
지난 10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서울시 종묘 일대를 직접 방문하면서 “국익과 국부를 해치는 근시안적 단견”이라고 비판에 나섰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 중 무엇이 근시안적 단견인지 공개토론을 제안한다”라며 반박했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두 후보가 선거 전초전을 벌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11일 경향신문 5면.
▲11일 조선일보 5면.
경향신문은 빌딩을 세우려고 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142m 개발 앞의 종묘, 세계유산영향 평가 받았어야> 사설에서 “김건희식의 무도한 차담회나 초고층 건물 피해로부터 종묘를 보존하는 건 문화·역사의 가치와 미래를 중시하는 결정이다. 이제라도 유네스코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시는 눈앞의 개발이익 논리보다 문화유산과 공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키워가는 도시계획을 짜기 바란다”라고 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與, 문화재 문제 이슈 만들어 서울시장 선거운동 하나> 사설에서 “문화재 보호를 주무로 하는 부처들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상충하는 가치는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지금은 문화재 쪽에 너무 치우쳐 도시의 정상적 발전과 시민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지경”이라며 “이상한 것은 이 문제에 갑자기 장관이 나서 아무 상관 없는 ‘김건희’까지 들먹이며 격하게 반응하더니 이제 총리까지 나선 사실이다. 이들도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 것이다. 결국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현직 오세훈 시장을 공격할 소재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31. 연합뉴스
이명현 특별검사팀(해병 특검팀)이 채 상병 순직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속기소했다. 해병 특검팀이 출범한 지 넉 달 만에 1호 기소다. 사건이 발생한지 2년 4개월 만이다.
정민영 특별검사보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특검은 2023년 7월 19일 발생한 채수근 해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군형법상 명령위반죄로 오늘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박상현 당시 제2신속기동부대장(전 해병대 7여단장), 최진규 전 포11대대장, 이용민 전 포7대대장, 장모 전 포7대대 본부중대장 등 해병대 지휘관 4명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박모 전 포7대대 간부와 신모 포병여단 군수과장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불기소했다.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권리대행 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한 해병대 지휘관 5명은 지난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교 내성천 유역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이들은 당시 수색작전을 하던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 등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채 허리 깊이의 수중수색을 하게 한 업무상과실로 채모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이들은 당시 물에 빠졌다가 구조된 이모 병장에게 30일간 입원, 6개월 이상 정신과 치료 진단을 받는 등 정신적 상해를 입힌 혐의도 함께 받았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맨왼쪽)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2025.10.17. 연합뉴스
임 전 사단장은 합동참모본부·제2작전사령부에서 발령한 단편명령에 의해 제2신속기동부대에 대한 작전 통제권이 육군 50사단에 이양됐는데 현장 지도, 수색방식 지시, 인사명령권 행사 등을 통해 작전을 통제·지휘한 혐의도 받았다.
정 특검보는 임 전 사단장 혐의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육군에 이양한 상부의 단편명령을 위반해 실질적으로 작전을 통제·지휘했다"며 "대원들의 안전보단 언론 홍보와 성과를 의식해 무리한 수색을 지시했고 '바둑판식 수색' '내려가면서 찔러보면서 수색' 등 수중수색으로 이어지게 된 각종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해병대원들은 사고 전날부터 수중수색을 하고 있었고 사진도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수색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묵인·방치했다"며 "특검은 임 전 사단장 작전 지휘가 업무상 과실에 해당하고 채수근 해병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박 전 여단장에 대해선 작전 지침을 불명확하게 전파했고, 안전대책 없이 임 전 사단장의 무리한 수색지시와 포병부대에 대한 질책을 하달했다고 봤다.
사단장과 여단장이 실종자 수색을 압박해서 대대장·중대장 등 현장 지휘관들이 안전장비를 확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입수를 시켜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정 특검보는 임 전 사단장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데 대해 "일반적인 직무 권한 자체는 있다고 판단되는데, 당시 작전 통제를 하고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편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임 전 사단장은 작전통제권을 넘기고 이 작전에 대해선 통제하면 안 되는 의무가 있었다고 본 것"이라며 "단편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명령 위반으로 의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직권남용보단 명령 위반으로 의율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특검팀은 당시 채 상병이 속한 포7대대를 포함해 포11대대, 73보병대대 등에서도 수중수색 등 위험한 상황이 있었던 점, 임 전 사단장이 공범들과 주요 참고인들의 진술을 회유한 정황 등을 추가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포렌식을 통해 임 전 사단장이 경북경찰청의 해병대 압수수색 당일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던 해병대원들의 수중수색 모습이 담긴 현장 사진을 보안폴더로 옮겨 이를 은닉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특검팀은 이 외에도 임 전 사단장이 수중수색 관련 영상기사의 링크를 수신하고,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직후 이용민 전 포7대대장과 통화해 '니들이 물 어디까지 들어가라고 지침을 줬냐'는 등 수중수색을 인식했다는 증거를 추가로 확보했다.
정 특검보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사건을 수사했고 기존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며 "특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24.1.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편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석열은 오는 11일 해병 특검팀의 출석 요구에 응해 대면 조사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윤 전 대통령 변호인 쪽에서 내일 오전 10시에 특검에 출석하겠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윤석열은 특검 사무실 지하를 통해 비공개로 들어갈 예정이다.
윤석열 측 변호인단이 특검팀의 세 번째 통보에 응하면서 해병대원 순직사건과 관련한 수사 외압 의혹의 정점인 윤석열에 관한 첫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윤석열 측은 지난달 23일과 지난 8일 출석해 조사받으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변호인들의 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불응한 바 있다.김민주 기자
11월 4일 미국 뉴욕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가 당선되자 언론 지면과 사회관계망 서비스 화면은 온통 '맘다니'라는 낯선 이름으로 도배됐다. 몇 달 전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예비경선에서 맘다니 시의원이 쟁쟁한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됐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만 해도 다들 '만다니'인지 '망담니'인지 이름마저 헷갈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름을 모르면 상식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할 지경이다. 그만큼 자칭 '민주사회주의자'가 자본주의 유일체제 시대에 뉴욕시장이 됐다는 사실이 세계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뉴욕시장 선거 있기 며칠 전인 10월 25일에는 아일랜드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단일후보 캐서린 코놀리가 압승을 거뒀다. 아일랜드에서는 노선이야 달랐더라도 어쨌든 반영국 독립투쟁에 뿌리를 둔 두 우파정당, '피어너 팔'(흔히 '공화당'이라 소개된다)과 '피너 게일'(흔히 '통합아일랜드당'이라 소개된다)이 오랫동안 교대로 집권해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재정위기 이후 줄곧 신페인당, 사회민주당, '이윤보다 인간-연대' 같은 좌파 정치세력들이 지지를 늘리더니 급기야 이들이 함께 지지한 코놀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NATO의 군비 확장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아일랜드공화국 대통령의 등장은 맘다니 당선과 함께 또 다른 신선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떠들썩한 주목을 받을만하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뉴욕과 아일랜드를 넘어 과연 어떤 보편적이며 중장기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런 이변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분석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 한데 뜬금없이 '서울의 맘다니'를 자처하고 나서거나 다른 이들의 '맘다니'론에 훈수와 핀잔을 토하는 글들은 많아도 정작 두 사건을 관통하는 특정한 민주주의 제도의 중대한 역할에 충분히 눈길을 주는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그 제도란 바로 선거제도다.
▲4일(현지시간) 뉴욕 시장으로 선출된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가 브루클린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린 축하 연설에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jpg
맘다니와 코놀리, 즉석결선투표제도를 통과하다
뉴욕시장 선거를 앞둔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민주당 주류가 지지한 후보는 앤드루 쿠오모였다. 쿠오모는 예비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본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맘다니에게 결국 패배하고 말았는데, 어쨌든 예비경선에서 민주당 주류 성향 유권자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쿠오모 말고 다른 유력 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주류를 심판하고자 한 진보적 유권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맘다니 말고도 유능하고 원칙 있는 후보가 한 사람 더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 처음 뉴욕시의원으로 당선돼 12년 동안이나 시의회에서 활약했고 2021년에는 뉴욕시 회계감사관으로 선출된 브래드 랜더가 그 사람이었다.
랜더는 시의원으로 있으면서 뉴욕시에 참여예산제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고, 노동자와 세입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정 활동을 펼쳤다. 이번 선거에서 맘다니 지지를 선언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2021년 회계감사관 선거에서는 랜더의 공식 지지자였다. 맘다니와 랜더의 차이라면, 맘다니는 민주당 후보이기 이전에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회원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데 반해 랜더는 좀 더 전통적인 민주당 좌파 혹은 리버럴 좌파라는 정도였다.
한국이었다면 예비경선에 참여한 진보 성향 시민들이 맘다니와 랜더, 둘 사이에서 엄청나게 고민을 해야 했을 것이다. 평소 시의회나 시청에서는 막역한 동지 관계였던 두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서로를 깎아내리다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됐을 가능성이 높고, 유권자들은 둘 중 누가 쿠오모를 꺾는 데 더 유리한지 따지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는 후보와 유권자 모두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아도 된다. '즉석결선투표제(instant-runoff voting)'로 시장 후보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즉석결선투표제는 '대안투표제(alternative voting)' 혹은 '선호투표제(preferential voting)'라 불리기도 한다. 한데 '대안투표제'나 '선호투표제'라고 하면,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어떤 투표제도인지 감이 잘 안 온다. 반면에 '즉석결선투표제'는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해준다. 이 제도는 한 마디로, 유권자가 투표를 한 번만 하고도 1차 선거와 결선을 동시에 치르는 효과를 거두게 하는 투표제도다.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가 되려면 예비경선 투표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결선투표제 원리와 같다. 그러나 뉴욕시 민주당은 시장 후보 결선을 따로 치르지 않는다. 유권자는 투표용지에 적힌 시장 후보 모두에 대해 선호 순위를 매긴다. 가령 맘다니를 1순위 지지 후보로 기표하고, 랜더를 2순위로, 쿠오모는 가장 낮은 순위로 기표하는 식이다. 이런 유권자의 선호도 표시 덕분에 즉석결선투표제에서는 굳이 결선투표를 따로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예비경선에서는 1순위 투표만 개표했을 때 맘다니가 44%, 쿠오모가 36%, 랜더가 11%를 득표했다. 맘다니가 1위를 달리기는 했지만, 민주당 시장 후보가 되는 데 필요한 과반은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각 1위, 2위를 한 맘다니와 쿠오모를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들을 탈락시킨 뒤에 이 후보들을 1순위로 지지한 표 가운데 2순위로 맘다니나 쿠오모를 지지한 표를 두 후보의 득표에 각각 합산했다. 그랬더니 맘다니 56%, 쿠오모 44%라는 결과가 나왔고, 맘다니가 과반수 지지를 받는 시장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이런 투표제도 아래에서 경쟁했기에 맘다니 진영과 랜더 진영은 굳이 복잡한 정치 게임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두 진영은 예비경선 캠페인 기간부터 서로 연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진보적 유권자들은 맘다니와 랜더를 1순위나 2순위로 기표하는 단순한 선택을 통해 이런 연대를 손쉽게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맘다니가 시장 후보로 결정된 뒤에 랜더는 맘다니 선거운동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뉴욕시 민주당에 이런 투표제도가 도입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6년 전인 2019년에 뉴욕시는 시민투표를 통해 처음으로 각 당의 시 공직자 예비경선에서 즉석결선투표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정확히는, 투표자가 복수 후보를 선택하는 투표제도를 실시할 수 있다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2021년 민주당 예비경선부터 즉석결선투표제로 시장 후보를 선출했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이런 방식에 따라 맘다니를 시장 후보로 선택했다.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만 완강히 고집하는 것 같은 미국에서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이렇게 조금씩이나 기존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뉴욕이 이제 막 이 길에 들어섰다면, 아일랜드는 즉석결선투표제의 본고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 됐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번에 캐서린 코놀리가 승리한 대통령 선거를 오래 전부터 즉석결선투표제로 치러왔다. 이 제도 덕분에 양대 정당,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 말고도 노동당 같은 상대적 소수 정당 역시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는 코놀리 후보가 워낙 압도적인 1순위지지 표(63%)를 얻는 바람에 결선투표에 해당하는 추가 개표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뉴욕뿐만 아니라 이런 아일랜드 사례까지 확인하고 나면, 이제 눈길이 우리 자신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투표자 과반수 지지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 즉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개혁을 외치는 이들의 오랜 숙원이다. 지금 당장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가장 확실하게 국민투표를 통과할 개헌 의제는 결선투표제 도입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시야를 조금만 더 확장하면, 결선투표제 도입 취지를 구현할 또 다른 방안으로서 아일랜드 대통령선거식 즉석결선투표제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결선투표를 실시하면 국력을 낭비할 뿐이라는, 지겨운 반론에 굳이 대꾸할 필요 없이 우리도 대통령을 즉석결선투표제로 뽑는 게 어떨까. 민주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구현하려는 제도적 틀은 이처럼,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허용해온 상식의 한계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다양하다.
▲지난 6월 25일 뉴욕 한 공립학교 근처에서 조란 맘다니 선거운동원들이 임대료 동결 등 구호를 걸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SWinxy, CC BY 4.0
아일랜드 정치의 역동성을 일군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
아일랜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일랜드 하원의원 선거의 독특한 투표 방식도 짚어볼까 한다. 아일랜드는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single transferable voting)'로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단기이양식'이라니, '대안투표제'나 '선호투표제' 같은 말보다 더 아리송하기만 하다. 일단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제도가 어쨌든 비례대표제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독일식 소선거구-정당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북유럽식 광역별(대선거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비례대표제다.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는 우선 광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로 선거구마다 복수의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보통 한 선거구에서 3명에서 5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의 중선거구제처럼 유권자가 한 명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종다수로 2위 득표를 한 후보까지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방식이 '결코' 아니다. 유권자들은 마치 즉석결선투표제의 경우처럼 복수의 후보에 대해 선호도를 기표한다. 단, 이 경우에 복수의 후보를 선택하는 이유는 한 후보를 과반 득표자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다.
이 대목에서 좀 복잡한 논의가 등장한다.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에서는 각 선거구마다 복수 당선자의 당선 기준이 될 '기준수'를 산출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산정 방식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면, 3인 선거구에서 기준수는 26%이고, 4인 선거구에서는 21%, 5인 선거구에서는 17%다(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전용주 옮김, 한울, 2012. 203쪽). 즉, 3인 선거구에서 당선자는 득표율이 26%를 넘어야 한다. 1순위 지지 표가 이미 기준수, 즉 26%를 넘는다면, 그 후보는 단번에 당선이 확정된다.
문제는 나머지 2인의 당선자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방향에서 차순위 지지표를 각 후보에게 합산해 기준수인 26%를 넘는 또 다른 당선자들을 산정해낸다. 한편으로는 이미 당선이 확정된 후보의 득표 중 26%를 초과하여 '남은' 표를 2순위 지지 기표 내용에 따라 다른 후보에게 배분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1순위 지지 표를 가장 적게 받은 후보부터 탈락시키면서 그가 받은 표를 2순위 지지 기표 내용에 따라 남은 다른 후보에게 배분한다. 이런 절차에 따라 결국 최종 합산이 26%를 넘는 3인의 하원의원 당선자를 확정한다.
글로만 봐서는 누구든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모의 투표를 한 번만 해보면, 단박에 익숙해질 수 있다. 아일랜드 국민 500여만 명이 다 수학 천재라서 이런 투표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민주 사회의 시민이면 누구나 경험으로 익힐 수 있는 제도이기에 아일랜드에서 지금껏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이런 아일랜드 하원의원 선출 방식이 다른 비례대표제들과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독일식이든 북유럽식이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결국 유권자가 '하나의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제도다. 그러나 아일랜드식은 비례대표제임에도 유권자가 '복수의 후보'를 선택한다. 유권자는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기보다는 자기가 선호하는 전체적인 정치 지형을 염두에 두고 그에 걸맞게 후보들에게 순위를 매긴다. 결과적으로 다른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로 승자 독식을 피하고 다당 구도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유권자의 선택 논리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들과는 다르다.
아무튼 아일랜드는 독립 이후 계속 이런 비례대표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이 교대로 집권하는 와중에도 상대적 소수 세력이나 신진 세력의 원내 진출 통로를 열어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캐스팅보트 역할을 통해 현실 정치에 계속 개입하면서 양대 우파정당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대표적 정치세력이 2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좌파-노동계급 여론을 대변한 노동당이다.
그리고 오늘날은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새 세대 좌파 정치세력들이 노동당을 대체하며 성장하고 있다. 남북 아일랜드 통일과 사회주의를 동시에 강조하는 신페인당이 2020년 총선에서 제1당(1순위 지지 24.5%)으로 부상할 만큼 약진했으며,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세대교체를 내걸고 노동당에서 분리한 사회민주당이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보다 많은 1순위 지지(4.8%, 노동당은 4.6%)를 기록하는가 하면 트로츠키주의 정파들의 연합인 '이윤보다 인간-연대'가 원내에 계속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이번 대선에서 코놀리 후보의 승리를 이뤄낸 주역들이다.
'그럼에도' 선거제도 개혁은 중요하다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필생의 과제였던 선거제도 개혁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위성정당의 일상화라는 난장판으로 귀결된 이후에 '선거제도 개혁'은 다시 꺼내기 쉽지 않은 구호가 되어 버렸다. 혁명의 원대한 꿈을 꾸는 이들은 여전히 이따위 하찮은 '개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현실 정치를 파고들자고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선거제도를 탓하지 말고 '한국형' 정치 지형에 익숙해지라고 훈계한다.
그러나 문제는 진보정당의 성장 여부가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민주주의 자체의 더 풍부하고 생생한 발전을 위해서다. 그런 성숙해진 민주주의가 있기에 좌파나 신진 세력이 진출하기도 수월해지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선거운동원의 호별 방문을 허용하는 민주주의였기에 맘다니 시의원 같은 신진 후보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고, 독특한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민주주의였기에 금융-재정위기 속에 신페인당 같은 대안 세력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한국의 '가난한' 정치 지형에 던져진다면, 맘다니는 '공직 박탈이 확정된 선거법 위반 사범'일 뿐이고, 북아일랜드 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신페인당 고참 당원들은 '현실 정치에 무능한 늙은 운동권'이 될 뿐이다.
그래서, 이 모든 아수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라면 선거제도 개혁을 다시 의제에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과제들의 긴 목록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바꾸는 일은 여러 과제들의 하나일 수는 있어도 절대로 생략되거나 주변으로 밀릴 수는 없다.
장석준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상승 출발해 개장 직후 4000선을 재돌파했다. 코스피는 이날 오전 9시 3분 현재 전장보다 59.79포인트(1.51%) 오른 4,013.55에 거래되고 있다.연합뉴스
1. 붕괴
주가는 오르거나 떨어진다.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주가가 올랐다. 상승했다. 급등했다. 폭등했다. 내렸다. 하락했다. 급락했다. 폭락했다 등이다.
그렇다면 '붕괴'란 어떤 의미인가? 붕괴란 무너지고, 내려앉고,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 붕괴하고, 건물이 붕괴하면 폭삭 무너져 내려앉는 것이다. 폭락이나 급락해서 망해버렸다는 뉘앙스다.
아래 <주간조선> 기사는 주가지수 3900선이 붕괴됐다고 말하면서 앞에 "내 돈이 휴짓조각 됐다"고 표현했다. 4200정도가 고점이었는데 300포인트, 그러니까 7% 정도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은 휴짓조각이 된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해석하면 2000선에 머물던 주가가 4200까지 치솟았다가 3900선으로 밀리자 내 돈이 갑자기 휴짓조각이 됐다는 말이다. 그럼 불과 1년전만해도 2000선에 머물렀던 그 시기 내 돈은 무엇이었다는 말이지?
▲기사는 "장 초반 낙폭을 키워가던 코스피는 10시 25분 전장보다 5.67% 하락한 3887.95를 기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주간조선> 보도 갈무리
아래 <뉴스핌> 기사는 코스피 하락폭이 확대되며 장중 3820선이 붕괴됐다고 표현한다. 코스피 4000선이 붕괴됐다는 표현은 그나마 어색하지라도 않다. 그러나 코스피 3820선이 붕괴됐다면, 3810선도, 3790선도 붕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퍼센티지로 따지면 주가지수가 0.2% 정도만 떨어져도, 매 10단위로 주가지수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지수가 0.2% 떨어지면 주식시장이 무너지고, 내려앉고, 허물어져서 망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언론이라니…
▲10월 22일 자 <뉴스핌> 기사뉴스핌 홈페이지 캡처
반면 주식시장의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이렇게 최고점 대비 7% 정도 하락하는 시점에 한결같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가지수가 '조정'받고 있다".
'조정'과 '붕괴'는 투자자에게 주는 어감뿐만 아니라 본질적 의미가 다르다. 한국어를 배운 사람 중 조정과 붕괴를 똑같은 의미의 단어라고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조정은 급등했다가 숨 고르기를 한다는 의미지만, 붕괴는 종말, 끝, 죽음이다.
그런데 왜 기자들은 '붕괴'와 같은 선정적인 단어를 주로 쓰는 것일까? 전문가들처럼 투자이론을 배우지 못해서? 아니다. 저널리즘 교육을 할때도 기자들에게 이렇게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
세계 최대의 통신사인 미국의 <AP통신>은 매년 AP스타일북이라는 것을 발간하는데, 거기에도 경제 현상을 표현할 때는 언론 소비자들에게 절제된 표현을 하라고 명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2분기 이상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그럴 조짐이 확실히 보여야 경기침체(recession)라는 단어를 쓰라고 조언한다.
경제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 투자자, 기업인들의 소비 및 투자 심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언론이다. 그래서 언론은 최대한 절제된 표현을 통해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에 6%가 폭락했다면 폭락이 맞다. 누가 봐도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3900선이 붕괴되고, 3820선이 붕괴되고, 3800선이 붕괴되고, 3750선이 붕괴됐다고 말하는 건 장삿속 가득한 선정주의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기사를 자극적 헤드라인으로 팔아먹기 위해 쓰는 천박한 상업주의다.
2. 부글부글
▲<한국경제> 11월 6일 자 기사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에 눈물?"…2030 '부글부글'한 이유한국경제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언론이 이렇게 과격한 형용사를 쓰는 이유가 꼭 선정주의 때문인가? 다른 이유는 없을까? 여기 또 다른 형용사가 있다. '부글부글'. 100도 이상에서 물이 끓을 때처럼 화가 넘쳐 나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웹소설 기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2030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극 중 50대의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서울에 자기 집도 있으면서 그런 사람에게 무슨 눈물을 짓느냐는 힐난이다. 드라마까지도 세대 갈등을 부추긴다고 비판하지만 이 기사가 헤드라인과 부제를 통해 주려는 메시지는 '청년들이여 분노하라'는 것이다.
누구를 향해? 자신들의 삼촌이나 아버지뻘들을 향해. 자신들이 좋은 직장을 선택할 기회를 미리 빼앗은 것 같은 세대를 향해. 자신들의 좋은 집을 미리 빼앗은 것 같은 중장년층을 향해. 자신들의 연금도 빼앗을 것 같은 기성세대를 향해 분노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언론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이런 식의 분노를 부추겨왔다. 그리고 그 분노의 기준, 분노의 방향은 이른바 보수 정치권에서 정치적 이유로 설파해 온 이른바 '세대 갈라치기'와 맥을 같이 해왔다. 공교롭다. 2030과 나이든 보수세대가 연합해서 4060을 사회적으로 왕따시켜보려는 보수 정치권의 선거 전략과 흡사하다.
이들은 586을 겨냥했다. 기초연금을 받는 가난한 노인들을 겨냥했다. 지하철을 타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겨냥했다. 집이 있는 중장년 세대를 겨냥했다. 앞으로 청년세대들은 국민연금도 못 받는다고 불안과 공포를 부추긴다. 그 모든 게 기성세대 중장년층의 잘못이라는 투였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기초연금을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이란 제도는 90년대 초반 도입돼서 90년대 중반이후에나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후세대인 40~50년대 생들은 뼈 빠지게 노동했지만 돈을 벌 기회가 많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GDP는 북한에도 뒤졌다.
IMF전후 취업한 중장년세대는 1200조 원의 국민연금 대부분을 낸 주축 세대다. 상당수의 그들은 고등학교때까지 학교에서 몽둥이로 교사들에게 맞고 살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불심검문을 당하면서 경찰에게 맞았다. 학생인권조례도 없었고, 대학교 장학금도 희귀했다. 복지제도도 열악했다.
실업급여제도가 도입된 연도도 겨우 1995년이다.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고 직장에서 쫓겨나도 어디에 하소연도 못 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극중에 나오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52세 김부장'도 만약 그 나이에 실직하면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까지 남은 13년을 뭐로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한 가장일 뿐이다. 거기에 만약 갚아야 할 아파트 대출금까지 많이 남아 있다면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렇다고 2030 청년세대가 무슨 죄를 지었나? 그들의 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다. 이들이 선망하는 직장 대부분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평균 12억 원이라는 서울 아파트를 자가 소유하려면 매년 5000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4년 모아야 한다. 결혼이 아니라 연애도 포기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집도 없고 직장 구하기도 힘든 청년들의 미래를 그렇게도 걱정한다는 이른바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신기하게도 서울 집값이 떨어지는 모든 정책들은 또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집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집값 하락 조짐에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서울 집값이 오르고 분양가가 오르면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환호한다.
그러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세대 간 분노를 부추긴다. 정치권을 향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하라고 하면서 본인들은 본인들의 독자와 시청자들을 향해 서로가 서로에 주먹질을 하라는 투다. 자식이나 조카가 삼촌이나 아버지의 재산을 뺏으라는 말인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9조는 이렇게 명기하고 있다.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성·집단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
3.어포더블
▲지난 10월 8일 미국 뉴욕시에서 뉴욕 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가 무료 고속 버스 도입 제안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M57번 버스를 타고 이동 중 승객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 도시인 뉴욕시의 시장이 된 조란 맘다니의 핵심 캠페인 전략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감당이 되는"(affordable)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감당되지 못했기에 뉴욕시민들은 맘다니를 선택했는가?
우리들은 일상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주거비가 감당이 안 된다." "아이들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된다." "요즘 물가가 감당이 안 된다."
맘디니는 약 100만 가구의 임대료를 동결하고, 생후 6주부터 5세까지의 모든 아동에게 무상 보육을 제공하고, 시내버스를 무료로 하고, 공공주택을 확대하고, 시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식료품점을 설립해서 물가를 안정시키고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사회주의인가? 맘다니를 공격하는 한국 언론의 주장대로 그의 정체성을 "무슬림 사회주의자"라고 정의한다면 미국적 자본주의를 만끽해 온 뉴욕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맘다니의 마술에 걸려 사회주의자들이 되어버린 것인가? 갑자기 이교도적 이데올로기에 매혹되어 맘다니를 시장으로 뽑아버린 것인가?
그럴리가.
미국의 뉴욕시민들은 여전히 미국 자본주의의 신봉자들이다. 부자를 동경하고, 투자를 좋아하고, 돈을 사랑한다. 다만 그들의 형편이 어려웠을 뿐이다. 주거비가 감당이 안 되고,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되고, 물가가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1년여 전 뉴욕에서 우버 택시를 탔을때 그의 월 소득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600~700만원 정도였다. 그가 사는 원룸의 월세가 400만 원이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이민 온 2명의 친구와 함께 3분의 1씩 부담한다고 했다. 월 소득 600만 원으로 혼자 월세 400만 원짜리 원룸에 산다는 건 감당이 안 된다.
그런데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낳는다면? 가정을 꾸린다면? 지금의 소득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근로소득 상승은 쥐꼬리,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미래가 불투명하면 좌절하기 쉽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의식주는 삶의 기본이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뉴욕은 당장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기본도 안 된 도시다. 뉴욕 시민들이 조란 맘다니를 선택한 이유다.
물론 그가 임기 내 약속을 다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재원 조달이 문제다. 슈퍼리치나 법인에 대한 증세도 이미 저항을 맞고 있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보조금 중단을 공언해왔다. 그의 실험은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것은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었다. 힐난이 아니라 힐링이었다.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었다. 갈등이나 대립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조정을 통해 화해와 통합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핵심 단어는 뉴욕시민들의 삶의 형편,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였다. "당신 소득으로 뉴욕에서 살 형편이 되나요?"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4. 한국인으로 어포더블하게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 삶의 기본은 의식주다. 먹을 것, 입을 것, 나와 내 가족이 저녁에 들어와 살 곳.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언론은 빵값과 라면값은 몇백 원만 올라도 비싸다고 난리 치지만 신기하게도 집값은 1~2억 원이 일주일 새 올라도 눈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수도권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외치는 정치인, 전문가 등을 '좌파' 또는 '폭락론자'로 낙인찍는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처럼 자기들의 주요 소비자인 독자, 시청자, 대중의 절반 이상(중장년층과 가난한 노인들)을 힐난하며 공격하는 언론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이른바 '정론지'로 자처한다. 일베같은 극우 커뮤니티처럼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부정확한 정보로 왜곡된 분노를 돋우는 '정론지'는 없다. 형용모순이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그 정치경제적 이유는 앞의 설명으로, 지난 한국사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다만 독자나 시청자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정론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 경제가, 우리가 실질적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소비도, 투자도, 경제도 심리가 절반이다. 경제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대중의 심리가 부정적이면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 현실이 진짜 그런지, 객관적으로 폭락한 것인지, 붕괴한 것인지, 아니면 먹고 살만한 것인지, 서울 집값은 미친 집값이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따져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많은 언론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일부러 감정적이고 선정적이라면, 독자나 시청자들이라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경제 현상들을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한국인으로 '어포더블'하게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