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1일 화요일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가요?


[포토뉴스]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가요?
임병도 | 2015-08-12 10:02:0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광복 70주년’을 기념한다고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태극기 제작업체가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호황을 맞고 있을 정도랍니다. 관공서 건물은 물론이고 관용차에도 태극기가 부착됐습니다. 지하철 손잡이에도 태극기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태극기 달기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부대와 지자체는 태극기 조형물이나 태극기 동산을 조성했습니다.
기업들의 사옥마다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한화그룹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를 내세웠고, 기업 이미지가 하락된 롯데그룹은 ‘광복 70주년이라 국내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 70층에 태극기를 내걸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극기 마케팅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려 몽둥이로 맞아 죽거나 총살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태극기는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공포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애국심은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극기를 달았다고 모두가 애국자가 아니며 태극기를 안 달았다고 모두가 애국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비상식적인 세상에서라면 한국전쟁 당시처럼 ‘너는 태극기를 달지 않았느니 애국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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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로 맹독 주입 신종 개구리 발견

박치기로 맹독 주입 신종 개구리 발견

조홍섭 2015. 08. 11
조회수 5407 추천수 0
머리뼈에 밤송이처럼 돋은 가시로 살모사 25배 강력 독물 주입
나무구멍에 숨을 때 독가시 무장한 머리만 내놓고 천적 방어

fr2_CARLOS JARED_BUTANTAN INSTITUTE.jpg» 살모사보다 25배 강력한 독물을 주입할 수 있는 신종 개구리(학명 Aparasphenodon). 납작한 머리와 길고 유연한 목으로 피부 밑에 숨긴 독가시로 상대를 찌른다.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열대숲에는 독개구리가 많다.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피부에서 역겹거나 치명적인 독을 분비한다.

이런 개구리가 포식자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기겠지만 독사나 전갈처럼 독물을 상대에게 주입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존 독개구리와 달리 능동적으로 독을 상대에게 주입하는 개구리가 발견됐다.
 
카를루스 자리드 브라질 부탄탕연구소 생물학자는 대서양 연안인 브라질 동북부의 건조한 숲에서 양서류를 조사하다가 손을 무언가에 물렸다. 팔까지 번진 극심한 통증은 5시간이나 지속됐다.

fr1_Corythomantis greeningi_Carlos Jared_Butantan Institute.jpg» 자리드가 발견한 또 다른 독물 주입 개구리(학명 Corythomantis greeningi). 다행히 자리드는 독성이 덜한 이 개구리에 찔렸다.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채집하던 개구리에게 찔렸으리라고는 당시에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 자세히 조사했더니 이 개구리는 개구리 가운데 처음으로 독물을 적극적으로 상대에 주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연구진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7일치에 실린 논문을 통해 맹독성 독물을 주입하는 신종 개구리 2종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나무에 서식하는 청개구리의 일종인 이 개구리를 손으로 쥐자 끈끈한 분비물을 내면서 동시에 유난히 긴 머리를 전후좌우로 휘두르며 가시로 찌르고 비비려는 행동을 했다.

fr4.jpg» 독물 주입 개구리 2종의 성체, 두개골, 가시 부위 모습. A가 독성이 더 강한 A. brunoi, B는 C. greeningi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두개골 가장자리에는 뼈가 밤송이처럼 뾰족하게 피부 밖으로 돌출돼 있었고 이들은 독샘과 연결돼 있어 독을 주입하게 되어 있었다.
 
발견한 2종의 개구리가 모두 맹독성 독물을 주입하는 구조를 보유했는데, 한 종은 그 지역에 서식하는 살모사보다 25배나 강한 독물을 분비했다. 자리드를 찌른 개구리는 독성이 덜했지만 역시 살모사의 2배 독성이었다.

fr5.jpg» A. greening의 피부 확대 모습. 별표한 부분이 피부를 뚥고 가시처럼 돌출한 뼈 돌기이다.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fr6.jpg» A. brunoi(B와 C), C. greening(D와 E)의 피부 독물분비샘과 가시 모양의 돌기(별 모양) 주사전자현미경 모습.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이들 개구리가 맹독을 분비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건조한 서식지에 적응하기 위해서일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건기 동안 이 개구리들은 구멍 속에 틀어박히는데, 머리를 마개처럼 이용한다.
 
두개골의 윗부분은 뼈들이 뭉쳐 병뚜껑처럼 납작한 형태다. 천적이 구멍에 숨은 이 개구리를 공격하려고 머리에 입을 들이대다간 끔찍한 독물 세례를 받도록 돼 있다. 특별히 길고 유연한 목으로 휘두르는 이 개구리의 머리는 치명적인 무기다.
 
연구자들은 “독물을 주입하는 개구리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독성이 강하고 더 흔할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ared, Mailho-Fontana, Antoniazzi, Mendes, Barbaro, Rodrigues & Brodie. 2015. Venomous Frogs Use Heads as Weapons. Current Biology http://dx.doi.org/10.1016/j.cub.2015.06.06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어느 친일파의 후손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제 때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정운현 | 2015-08-11 19:45:4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람이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둘 있다. 조국과 조상이다. 자신이 태어날 땅을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으며, 부모를 가려서 태어날 수도 없다. 한날한시에 태어나도 한국 땅에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반대편 남미 땅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또 부잣집 맏이로 태어나기도 하고 찌들게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기도 한다. 누구도 그 연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불가의 인연법을 수긍할 따름이다.
친일파 후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해서 친일파의 아들딸로 태어났다고 볼 순 없다. 태어나고 보니 그들의 부모가 친일파였을 뿐이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친일파 후예들은 그들의 조상과 함께 비난의 대상이 돼 왔다. 그 이유는 후손들의 태도 또한 조상들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부끄러운 반민족 행각을 비호, 왜곡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인호 현 KBS 이사장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다.
최근 <뉴스타파>에서 해방 70년 특별기획물로 ‘친일과 망각’ 4부작을 야심차게 내놨다. 지난 6일 1부 ‘친일후손 1177’을 선보였는데 8개월 동안의 작업성과라고 한다. (2부는 10일 공개)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확정 발표한 친일인사 1,006명의 후손들이다. ‘국가공인 친일파’ 1,006명은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귀족,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 군수급 이상의 고위 관료, 친일단체 주요간부, 저명 언론인·예술인 등 일제 강점기 최고 엘리트들이다.
▲<뉴스타파> 화면 캡쳐
그간 친일파에 대한 조사 및 연구 작업은 더러 있어 왔다. 일생을 친일파 연구에 몸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을 필두로 그 후학들이 거둔 성과가 그것이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에 대해서는 그간 이렇다 할 만 한 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그 주된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후손을 거론할 경우 자칫 연좌제로 오해받을 수 있는데다 첫머리에서 언급한 ‘조상선택 불가론’도 한 몫을 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친일파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인, 고위관료, 대학교수, 기업인, 언론사주 등 우리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일 뿐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부와 권세를 거머쥔 부모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심지어 해외유학까지도) 다시 사회에 나와서는 앞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밀어주니 쑥쑥 크는 것은 당연지사다. 친일기업인들의 재산은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대물림됐으며, 이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지금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10여 년 전 필자는 대표적인 친일문인 파인 김동환의 3남 김영식 씨(2008년 작고)와 교류한 적이 있다. 총경 출신의 김 씨는 은퇴 후 십 여 년에 걸쳐 전국을 돌며 부친과 관련한 자료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파인 김동환 전집>(전5권), <삼천리 영인본>(전 32권), <파인 김동환 문학연구>(전 30권), <언론인 파인 김동환 연구-신문기자. 잡지인>(전 15권) 등을 펴냈다. 2001년 파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는 음악회, 전시회 등 무려 7회의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는 한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일들이었다.
필자가 그를 주목한 것은 부친에 대한 효성만이 아니었다. 그는 94년 부친의 일대기를 펴내면서 그 서문에서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해 부친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후 김 씨처럼 조상의 친일 행각을 사죄하는 후손이 더러 나타나긴 했지만 그 시작은 김 씨였다. 비단 사죄의 글만이 아니었다. 친일파 관련 토론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 증언을 하는 등 사죄의 마음을 행동으로도 보여주었다.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 보자. 조상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이상 후손들에게 조상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이 친일의 대가로 형성한 기득권을 그 후손이 향유하고 있다면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김영식 씨와 같은 처신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정부를 상대로 조상 땅찾기 소송을 하는 것까지를 봐줄 순 없는 노릇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제 때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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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간 매월 보상금 수령 '가짜' 독립운동가 유족이 사는 법


15.08.12 08:05l최종 업데이트 15.08.12 08: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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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공동대표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이하 공동조사단)가 지난 6월 24일 오후 2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심규상

최근 독립운동가 유족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대전 김태원'의 후손은 수십 년간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을 받은 것 외에도 생가터와 어록비, 묘지 등 각종 시설물을 남겨 놓았다. 여기에는 여러 허위기록까지 담겨 있다(관련기사: '대전 김태원' 후손, 독립운동가 유족 아니었다).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최근 심사를 통해 대전 출신 김태원(金泰源, 1900~1951)의 유족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한 인물은 평안북도 출신 김태원 선생(金泰源, 1902~1926)인데 동명이인인 대전 출신 김태원의 후손이 유족으로 등록됐다는 것이다.

50년 가까이 매월 유족 보상금... 환수는 5년 치만 가능

결국 '대전 김태원'의 후손들은 남의 독립운동 행적을 이용해 수십 년 동안 보훈혜택을 받아온 것이다. 후손들은 약 50년 가까이 매월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을 받아왔다. 유족 보상금은 올 8월 기준 월 181만 8000원이다. 하지만 관련법에는 허위인 경우에도 지난 5년간 받은 보상금(1억여 원 상당)에 대해서만 환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에게는 중학교 학습보조비 지급, 고등학교 입학금-수업료 전액 면제, 대학 독립유공자 특별전형 응시 수혜와 입학금-등록금 면제 혜택을 준다.  또 취업지원과 교사나 기업체, 공무원 채용시험 시 가산점 혜택도 부여한다. '대전 김태원'의 유족으로 등록된 아들 김아무개(80)씨의 경우 8명의 자녀를 두었다.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김씨 자녀들이 모두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고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김태원 묘지가 국가지정문화재? 문화재청 "그런 사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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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동구 상소동에는 김태원의 묘지와 묘지 앞 표지석. 묘지 표지석에는 지난 1977년 12월 1일 자로 당시 문화재 관리청(지금의 문화재청)이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없다고 11일 밝혔다.
ⓒ 심규상

대전 동구 상소동에는 김태원의 묘지가 있다. 보훈처는 묘소 단장비 등 일부를 지원한다. 그런데 묘지 표지석에는 지난 1977년 12월 1일 자로 당시 문화재 관리청(지금의 문화재청)이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관리번호까지 쓰여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김태원의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없다고 11일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김태원의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없고, 1977년은 조직명칭도 '문화재관리청'이 아닌 '문화재관리국'이었다"며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표지석 기록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후손들이 묘소를 단장하면서 임의로 표지석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재청은 애국지사 등 독립유공자의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

생가터 문화재 자료 지정한 대전시, 인근 주민들 "이곳에서 산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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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가 1997년 문화재자료로 지정한 대전 김태원 생가터와 설명문.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김태원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 심규상

대전시는 홍도동에 있는 김태원의 생가 유허(터)를 문화재자료 제41호로 지정해(1997) 관리중이다. 대전시는 "김태원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설명한다. 안내문에도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김태원이 사망한 지 수년 뒤에 그의 아들이 지은 집"이라며 "김태원이 생전에는 이곳에서 단 하루도 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생가터가 아닌 곳을 엉터리 고증으로 문화재자료로 지정했다는 얘기다.

대전시 관계자는 "유족들이 생가터라며 문화재자료로 신청해 지정한 것으로 안다"며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이 아니라는 관련 서류가 넘어오면 사실 확인 후 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지정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보훈처 어록비 현충시설 지정... 안내문에는 허위사실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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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10월, 대전지방보훈청이 대전 대덕구 쌍청공원 내에 소재한 김태원 선생 어록비에서 정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 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대전 대덕구 쌍청당(조선 시대 학자 송유선생의 별당) 앞에 있는 김태원의 어록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중이다. 이 시설물은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1997년 설치했다. 

이 시설물 안내판에는 '김태원이 1918년 김용원 선생과 중국에 망명하여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임시정부 내무부 국내 특파 충청도 책임자로 임정의 자금조달을 담당하였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대전 김태원'은 황포군관학교를 다닌 사실이 없다. 임시정부 충청도 책임자를 역임한 인물은 '대전 김태원'이 아닌 '안성 김태원 선생'이다. 보훈처가 가짜 독립운동가의 어록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한 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공훈록에 허위사실이 기록돼 있는 데도 전혀 수정하지 않은 것이다. 

'대전 김태원'의 유족은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이의 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문화재 지정 취소와 시설물 철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훈장'까지 받은 독립운동가, 행적이 의심스럽다).

한편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의혹 진실규명 시민공동조사단'(단장 이순옥)은 12일 오전 10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김태원 유족 허위등록 보고 및 김정필 유족 양심선언에 따른 사실 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관련기사: "제 증조부 김정필은 독립유공자가 아닙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나이 들어 몸 아파도 쉴 수 없게 만드는 광복 70년’


[참가기] 광복 70년,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2일차 농성장을 다녀와서
홍휘은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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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1  18: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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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에도 계속된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2일차 농성장.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고도 갈증이 나는 8월의 광화문 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과 근처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간혹 서서 농성장의 발언과 피켓의 문구를 지켜보았지만, 많은 관심은 두지 않는 듯 무심히 지나쳐 갔다.
버스마다 붙여진 광복 70주년 기념광고판, 가로등마다 휘날리는 태극기, 빌딩마다 대형 태극기가 광복 70년을 홍보하지만 정작 8.15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 2일차 농성장엔 민가협 어머니들이 함께 자리를 해 주셔서 더욱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2일차 농성장. 11일, 오늘은 민가협 어머니들이 함께 자리를 해 주셔서 더욱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민주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늘 앞장서서 투쟁의 현장을 지키는 어머니들은 이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이 정권은 ‘나이 들어 몸이 아파도 쉴 수도 없게 만든다’고 하신다.
민가협 조순덕 회장께서는 “올해 8.15는 더 암울하다”며 “박근혜 정권은 군사 정권 때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세력을 탄압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 유선근 사월혁명회 공동대표(여성).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사월혁명회 유선근 공동대표도 “올해 8.15 공동행사를 치르지 못하게 된 점이 안타깝고, 더구나 진보민주진영이 더 단단하게 뭉치고 단결하게 하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역할”이라고 말씀하셨다. 통일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될 때만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시는 고언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발언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 몸 자보를 부착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선전하시는 장기수 김영식 선생님.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지하철에서 몸 자보를 부착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선전하시는 장기수 김영식 선생께서는 전철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일제 36년 끝내고, 다시 외세가 들어 왔는데 그게 어떻게 광복이고 그게 좋다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만세 부르고 난리야~~?”라고 했다고 전하시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합시다” 하셨다.
가장 쉽고 간단한 구호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 말이 오늘은 가슴에 큰 울림이 되어 남는 것은 왜일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께서는 “해방 70돌, 분단 70돌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외세에 의해 통한의 70년이 되었으며, 아직도 미군이 70년간 이 땅을 강점하는 현실에서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미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이 모든 상황의 극복은 우리 끼리 통일하는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시며 “자주적으로 통일 세상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하셨다.
아울러 박근혜 정권의 방해 책동으로 8.15 공동행사를 치르지 못하게 된 점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 시국행동 2일차 농성에 앞서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준) 주최로 ‘박근혜폭압정권퇴진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시국행동 2일차 농성에 앞서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준) 주최로 ‘박근혜폭압정권퇴진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하늘도 찌뿌둥하게 흐린 8월 둘째 주 화요일,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자주적인 통일을 염원하는 외침이 광화문에 울려 퍼지길 바라며 떠 오른 노래 가사.
“...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이 노래를 이 꿈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