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6일 목요일

식물인간 '경자유전', 윤희숙을 타격하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윤희숙 의원 사퇴와 부동산 투

21.08.27 07:33l최종 업데이트 21.08.27 07:33l
큰사진보기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이 시간부로 대선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며 대선 경선 후보직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이 시간부로 대선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며 대선 경선 후보직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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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25일 발표한 사퇴의 변에서 "권익위 조사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당 의원 평판을 흠집 내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한 뒤 자신을 둘러싼 대립 구도의 반대쪽에 민주당 정권을 위치시켰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행태입니다. 그 최전선에서 싸워온 제가 우스꽝스러운 조사 때문이긴 하지만, 정권교체 명분을 희화화시킬 빌미를 제공해 대선 전투의 중요한 축을 허물어트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선이라는 큰 싸움의 축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국회의원 부동산 실태 조사로 인한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치적 대결 구도에서 찾고 있다. '민주'가 '희숙'을 흠집 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인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의 보다 깊은 본질은 그게 아니다.

경작할 의사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상태에서 농지를 매입해두는 행위로 인해 경제정의가 위협 받은 데 대한 '경자유전 원칙'의 대응이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 경자가 희숙을 타격한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윤희숙 사퇴의 본질

그런데 경자유전 원칙은 싱싱하게 꿈틀대는 이념이 아니다. 현행 헌법 제121조 제1항에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돼 있지만, 이 원칙은 하위 법령들에 의해 사실상 형해화돼 있다.

일례로, 농지법 제6조 제1항에서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지만, 제2항에서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써가며 다양한 예외를 인정한다. 상속을 받거나 주말농장·영농체험을 하는 경우 등에는 제1항의 예외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2019년에 <농정연구> 제68호에 실린 조석곤 상지대 교수의 논문 '농지개혁과 경자유전'은 "1996년 시행된 농지법의 제정은 완강히 저항하던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경자유전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농지법 제정을 통해 사실상 와해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자유전 원칙이 상당부분 훼손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는 문장이다.


경자유전 원칙이 훼손된 데는 부동산 투기세력의 역할이 컸다. 비농민이 농지를 매수해 토지투기를 하는 일은 공공연히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훼손이 꼭 투기세력 때문에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산업구조의 변화나 인구의 대규모 이동도 이 원칙을 약화시켰다. 농촌에 사는 농민 부모의 소유 토지를 도시에 사는 비농민 자녀가 상속하는 일이 많아진 1960년대 후반 이후의 산업환경 변화도 이 원칙의 현실성을 떨어트렸다.

농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다른 직업을 겸하는 일이 많아지는 현상도 그런 영향을 끼쳤다. 농민 개인과 더불어 영농법인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농업환경 변화 역시 경자유전 원칙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생존한 까닭
 
 26일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일대 모습.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이 2016년 이 일대 논 1만871㎡를 사들였던 것과 관련해 농지법과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2021.8.26
▲  26일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일대 모습.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이 2016년 이 일대 논 1만871㎡를 사들였던 것과 관련해 농지법과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2021.8.2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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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런 요인들로 인해 경자유전 원칙이 사실상 무력해졌는데도 이 원칙이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6월항쟁 직후에 등장한 1987년 헌법에서는 이전 헌법에는 없었던 경자유전 원칙이 새로이 규정되기까지 했다.

정부수립 당시의 1948년 헌법은 제86조에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고 함으로써 농지개혁 원칙을 규정했지만 농지개혁이 경자유전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고는 규정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경자유전 원칙의 3대 요소인 비농민의 농지 소유 금지, 소작제 금지, 소유 상한 3정보 제한은 농지개혁법 같은 하위 법령에 규정됐다.

그 뒤 경자유전 원칙을 훼손하는 입법조치들이 꾸준히 시도됐지만, 이 원칙은 죽어 쓰러지지 않고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했다. 해방 42년 뒤인 1987년에 이르러 헌법 규정으로 포섭된 것은 이 원칙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1987년 이후의 입법 조치들에 의해 사실상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지만, 이 원칙은 대한민국 헌법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의 생명력은 농업을 홀대한 박정희 정권 하에서도 증명됐다. 경자유전 원칙과 그 3대 요소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이를 지키려는 힘들이 나타나곤 했다. 위의 조석곤 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67년 4월 마련된 농지법안 기초요강에서는 농지소유 상한을 폐지하고 법인의 농지소유도 인정하고 농지담보도 허용하였다. 1967년 11월에 성안된 농지법안에서는 기업농 육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br /><br />1968년 4월 민주공화당은 3정보 소유상한은 원칙적으로 인정하되 3정보 이상을 소유·경작하고자 할 때는 구·시·읍·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기업농 육성에 관한 조항은 삭제하는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여 이 법안은 국회에서 심의되지 않은 채 보류되었다.
 
공업화 및 서비스업화가 진행되고 대중의 삶이 농업과 멀어지는 속에서도 경자유전 원칙을 지지하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결집되곤 했다. 그런 에너지가 6월항쟁 직후에 다시 결집돼 현행 헌법 제121조 제1항을 낳게 됐다.

경제정의와 토지공개념, 그리고 경자유전의 원칙
 

한국인들은 자기 삶의 중심이 농업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경자유전 원칙이 위협받을 때마다 이 원칙의 수호자가 되곤 했다. 농촌이 아닌 도시에 살고, 농업이 아닌 2차·3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 원칙을 살리는 데에 힘을 보탰다. 공업화에 진입한 지 한참 지난 1987년에 제121조 제1항이 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비농민들의 지지도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이 원칙을 지지해온 것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토지공개념과 이 원칙이 이념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나 건물임대차와 관련된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전반적인 토지정의 혹은 부동산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원칙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한국은 강남 개발로 상징되는 부동산 투기 붐에 시달렸다. 이때 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대응 논리로 활발히 논의된 것이 토지공개념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토지공개념의 당위성을 경자유전 원칙 같은 데서 찾아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신문 기사 중 하나가 1978년 3월 17일자 <매일경제> '부상하는 토지공개념 (2): 토지제도의 변천'이다. 이 기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당시의 후진국과 패전국을 주로 하는 각국이 농지관계의 입법에서부터 토지제도의 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며 독일·인도·일본·타이완의 농지개혁 혹은 토지개혁 사례를 소개한 뒤 경자유전 원칙을 토지공개념과 연결시켰다.

기사는 "우리나라는 농지개혁으로 농지 소유 상한선이 3정보로 제한되어 있고 유휴 농지의 대리 경작권이 법제화됨으로써 경자유전 원칙에 따른 공개념이 오래 전에 도입되었다"라고 말한다. 토지공개념을 뒷받침할 이념적 자산이 예전에 이미 형성돼 있으며 그 자산이 바로 경자유전 원칙이라고 이해하는 관념을 이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또 부동산 투기 문제를 다룬 1984년 7월 10일자 <경향신문> '투기의 핵 막을 대책 어디까지'는 "토지정책의 기본 정신은 토지를 점차 공개념화하고 토지개발 방식을 공영으로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토지정책이 토지공개념과 공영개발 방식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토지소유 상한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라고 한 뒤 이렇게 말한다.

"현재 농지의 경우 경자유전의 원칙에 의해 최고 3ha로 소유 면적을 제한하고 있듯이, 주거지·상업지·공업지역들에도 이러한 상한제를 실시, 과다한 토지소유를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한국인들이 공업화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도 경자유전 원칙을 고수해온 것은 이 원칙에 담긴 경제정의 이념이 부동산 투기를 막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이미 식물인간 상태가 된 이 원칙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윤희숙 의원은 우스꽝스러운 이번 일이 민주당 정권의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곤경에 처한 근본 이유는 그의 가족이 경자유전 원칙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사정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경자'를 지켜 토지정의, 부동산 정의를 지키려는 우리 사회의 염원이 '희숙'을 곤란케 한 배후다.

한국지원한 아프간인 378명 인천공항 도착

 

이슬라바마드에 13명 남아...법무부, ‘거주비자’ 발급키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8.26 16:31
  •  
  •  수정 2021.08.26 2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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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우리 군 수송기에 오르기 위해 대기 중인 아프간인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우리 군 수송기에 오르기 위해 대기 중인 아프간인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한국을 지원한 공로가 있는 아프간인 직원과 가족 중 한국행을 희망한 378명이 오늘 오후 4시 24분께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국행 희망자 총 391명 중 3가족 13명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남아 다음 항공편으로 도착할 예정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첫 군 수송기에 탑승한 아프간 인사는 우리 측 지원하에 아프간 현지를 출발한 국내 이송 대상자 총 390여 분 가운데 이슬라마바드 현지 사정으로 동 수송기에 미처 탑승하시지 못한 10여 분을 제외한 전원이 탑승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이번 ‘미라클 작전’을 위해 동원된 군수송기 KC330 1대와 C130 2대 중 KC330 편으로 378명이 먼저 입국했고, 이후 13명은 C130 편을 이용할 계획이다. KC330에 전원을 탑승시키려 했지만 항공기 사정 등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 이들은 이슬라마바드 안전한 곳에서 대기 중이다.

앞서, 한국행 희망자 391명은 미군의 협조로 버스 편으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에 집결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KC330은 오늘 새벽 4시 53분 아프간인 378명을 싣고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이륙해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오늘 도착한 아프간인 378명은 인천공항내 별도 보안구역에서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은 뒤 공항 인근 대기시설에서 6-8시간이 소요되는 검사결과를 확인하고 충북 진천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최영삼 대변인은 “그간 주 아프가니스탄 우리 대사관을 통해 확인한 국내 이송 대상자 가운데 한국행을 희망한 인원은 이번에 국내 이송이 완료되었다”고 확인했다.

이들은 수년간 주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 KOICA,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에서 근무했고, 미군 철수에 따라 우리 대사관에 신변안전 문제를 호소하며 한국행을 지원했다. 우리 정부는 이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국내로 이송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26일 오후 기자들에게 “절반이 넘는 숫자가 18세 미만의 청소년, 어린이 영유아 대상자”라고 확인하고 “과거에 우리 대사관을 포함해서 우리 기관들과 협조해서 일한 분들이 기본적으로 연령대가 젊은 분들이 많아 그분들 자녀가 많이 포함된 것”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8월에 출생한 신생아도 포함돼 항공기 탑승 가능 여부를 두고 의료진 검사까지 거치기도 했다고.

최영삼 대변인은 “만일 이후에 추가로 한국행을 희망하는 아프간인이 있을 경우에는 과거의 고용관계라든가 신원 등을 감안해서 지원 여부 및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주아프간대사관을 비롯한 범정부 TF는 아프간인 지원인력 중 한국행 희망자를 파악한데 이어 미국측의 버스를 이용한 카불공항 이동 협조, 우리 군수송기 3대 투입 등 ‘미라클 작전’을 차질 없이 수행했고, 이 작전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진행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아프간 지원인력의 국내 이송까지는 외교부가 주관했다면 이후 정착과정은 법무부가 주관하게 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수차례의 토론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특별입국을 수용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며 “아프간인 특별입국자들에게 단계별로 국내 체류 지위를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항에서 단기방문(C-3) 도착비자를 발급한 뒤 입국 이후 장기체류가 허용되는 체류자격(F-1)으로 신분을 변경하고,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임시생활이 끝난 뒤엔 자유롭게 취업이 가능한 거주(F-2) 비자를 발급할 예정이라는 것.

최영삼 대변인은 “이번 입국은 대한민국 외교사에 있어 우리가 인도적 고려에 따라 적극적으로 인력과 자산을 투입해 현지인들을 구출해 온 첫 번째 사례”라며 “우리나라는 친구를 잊지 않고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도의적 책무를 이행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우리 대한민국이 어려움 속에서도 마땅한 책무를 완수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갖춘 나라라는 점도 분명히 보여주었”고, “이번 임무는 공항지원 및 영공 통과 등 많은 분야에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조 속에서 이루어졌”다며 ‘우호국’들에 사의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우리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가니스탄 직원과 가족들을 치밀한 준비 끝에 무사히 국내로 이송할 수 있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아프간인들이 국내 도착 후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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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 폭탄 테러, 미군 등 최소 90명 사망... 바이든, “대가 치르게 할 것”

 바이든, 테러 공격에도 기존 철군 예정대로 진행 천명... IS에 강력한 보복 공격 예고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에서 26일(현지 시간) 발생한 폭발 테러로 부상한 아프간인들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뉴시스, AP통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을 피해 대피 작업이 진행 중인 카불 공항 인근에서 26일(현지 시간) 폭탄 테러가 발생해 미군 13명을 포함해 최소 90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테러 공격을 감행한 사람들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첫 번째 폭발은 공항 외곽의 한 케이트에서 발생했다. 곧이어 두 번째 폭발은 미국인들이 대피를 위해 집결하는 공항 인근 바론 호텔에서 발생했다.

케네스 매켄지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테러로 인해 미군 12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후 미군 사망자가 한 명 증가해 이번 테러로 미군 사망자는 13명으로 늘어났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외신들은 이번 테러로 어린이를 포함해 아프간 주민 60명 등 최소 90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또 두 폭발 모두 자살 폭탄 테러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지 목격자들은 갑자기 순식간에 엄청난 폭발이 발생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폭탄 테러에 대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다. IS는 자신들의 선전 매체인 아마크통신을 통해 공유한 메시지에서 약 16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이같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군에 이번 테러 배후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을 지목하고 공격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이번 테러가 탈레반과 연관성은 없다면서, 이번 테러 공격에도 미국은 철군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IS 테러리스트들은 이기지 못할 것”이라면서 조만간 강력한 무력으로 보복할 방침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고, 완수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테러리스트에 의해 제지되지 않을 것이며, 이제는 20년간의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며 기존 철군 입장을 재차 천명했다.

“남북관계 차단 주범, 코로나 부대 주한미군 철수하라”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8/2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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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국민주권연대 회원.  © 김영란 기자

 

국민주권연대는 26일부터 9월 11일까지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남북관계 차단 주범, 주한미군 철수하라!’, ‘노마스크 코로나 파티 상습범 미군 추방’의 내용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서울은 현재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거리 집회를 금지하고 있어 1인 시위만이 가능하다. 

 

국민주권연대는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해 14개월 만에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이 끊기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현 남북관계의 진척을 가로막는 근본 요인이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오산의 미 공군기지에서 주한미군이 노마스크 파티를 벌이는 등 한국의 방역법을 무시하는 행태도 짚었다.

 

1인 시위를 진행한 국민주권연대 회원은 “8월 한미연합훈련의 결과로 전쟁 위기와 남북관계 차단을 맞게 되었고 그 주범인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주권연대는 미군이 한국에 들어온 날인 9월 8일을 전후로 전국의 주한미군 기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예정이며, 9월 4일과 11일 집중 행동도 계획하고 있다. 


‘기자들의 빨간 펜 선생님’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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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8-25 20:38ㅣ 수정 : 2021-08-26 04:37 문화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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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

잘못 쓴 기사 표현을 바로잡은 편지를 30년 가까이 보내 ‘기자들의 교열 선생님’으로 알려진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이 별세했다. 94세. 가족들은 25일 고인이 신장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24일 밤 9시쯤 세상을 떠났다고 25일 밝혔다.

1928년생인 고인은 1943년 최연소로 초등교원자격을 얻고서 1944년부터 48년 동안 초·중·고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1993년 2월 서울여고 국어교사로 정년 퇴임하기까지 한국 최장기간 교사 생활을 한 이로도 기록됐다.

퇴임 후에는 28년 동안 우리말을 바로잡는 데에 힘썼다. 새벽에 일어나 방송과 신문을 모두 살펴보고 기사의 틀린 표현을 빨간 펜으로 수정해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1990년대부터 대학교수들의 글에도 빨간 펜을 댔다. 기사나 칼럼 속 틀린 표현을 바로잡은 고인의 편지를 받은 이가 지금까지 5000여명, 보낸 편지만도 2만여통에 이른다.

1994년에 낸 첫 책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는 고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쓰기’와 더불어 이 분야 최고의 교과서로 손꼽힌다. ‘우리말 바로 쓰기’, ‘우리글 갈고닦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등을 냈다.

한글학회는 2004년 고인을 우리글 지킴이로 위촉했다. 2014년 제36회 외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빈소는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10호에 마련됐다. 발인 27일 오전 6시 30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