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월요일

이해찬이 이기는 길, 그 시안 하나

이해찬이 이기는 길, 그 시안 하나
게으른농부 | 2018-08-28 09:43:2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해찬이 이제부터 일궈 갈 승리는 민주당의 승리를 뜻하고, 민주당의 승리는 대한민국의 승리를 뜻한다. 참 지저분한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이해찬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시안 하나 제시하겠다.
더구나 아마도 연말 전후에 시작될 당권 쟁탈을 위한 혈투가 예정되어 있기에 강성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한국당은 ‘죽어도 Go!’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기에, 이른바 협치는 더욱더 불가능하다. 협치를 이룩하려 하다가는 꿩도 매도 다 잃는다. 단지 협치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 바치는 척만 해야 한다.
(재미로) 예들 들어볼까. 한국당에게 평양 함께 가자, 성심껏 말씀 올린다. 그들이 끝까지 버티면, 모시고 함께 가지 못해 정말 유감이다 하고 잔뜩 안타까운 표명을 불려 지어보이면서, 다른 야당들과 함께 가는 일정을 잡는다. 그러면 한국당에서는 틀림없이(로텐더홀에서 연좌하고 있다가 다른 당들이 모두 입장하니까 저희들도 기어 들어온 전례도 있다) ‘국익을 위해’ 자기들도 가겠다 나서겠지만, 그다음에는 국익이 아니라 당익을 위한 발언을 하게 된다. 그때 그것을 듣고만 있지 말고, 조목조목 면박한다. 가볍게 이야기하면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서 한국당 말씀만 기사화하니까 아무리 철면피하다 할지라도 상대방에서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원색적으로 까올려, 그들이 평양에 함께 가기는 하되 생색 효과는 전혀 올릴 수 없도록 한다.
이해찬의 등록상표처럼 되어 있는 ‘강성’. 대표 취임 이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불식’을 위한 흉내는 열심히 내되, 그대로 유지하는 게 정답인 이해찬의 강성 기조가 본격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할 적기는 다가오는 정기국회다.
국정조사와 예산 심의에서 아직도 112석이 있다는 힘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들의 행패는 자심해지게 될 텐데, 그때 그들의 행패가 더욱더 자심해져서 아무리 둔감한 국민이라 할지라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도록 열심히 멍석을 깔아주면서 냅다 뒤통수를 친다. 예를 들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를 전국 방방곡곡에 내거는데, 거기 메인 카피는 이런 게 된다 - 한국당,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가요?
법정 기한을 지킬 가능성은 희소한 예산 국회에서도, 국가를 위해 부디 법정 기한을 지켜달라는 간곡한 호소를 되풀이하면서, 총선을 몇 달 앞둔 내년에는 그 짓을 할 수 없을 그들에게 마지막 발악 기회가 되는 이번 예산 국회에서, 그들이 법정기한을 지키려야 지킬 수 없도록 그들의 부아를 최대한 자극한다. 그 방법은 아주 쉽다. 주로 자기네 지지자들을 위해, 특히 자기 선거구 생색을 위해, 그들 쪽에서 요구하는 예산 항목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나라를 망친 한국당 때문에 나라가 존망지추에 처하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또 하나의 공세적 뒤통수치기. 예산 확정이 늦어지면 국정 운용에 불편이야 있겠지만, 어차피 지난 10년 세월도 견뎌냈지 않은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후년 총선이다. 총선 전략을 위해 그 불편은 아주 값진 떡밥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예산 투쟁, 적극적으로 역이용한다.
<한국당 관계자는 “적폐청산, 보수궤멸을 내세운 이 대표 등장으로 보수들이 결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당으로선 생큐”라고 했다.> (경향신문, 2018-8-27) 나의 관점에서 이것은 더러 발동되는 경향신문의 악의성 가짜 전언이다. 그보다는 <강성 대표 등장에 긴장하는 야당> (한국일보, 2018-8-26)이 정확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결집할 수 있는 보수’란 태극기族 정도다. 그들은 이미 광적 결집 상태다. 그들의 결집도를 더 높일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민주진영으로선 생큐’다. 그들을 더욱더 결집하도록, 그 결집을 위해 짐승태동지 (동지다! 그는 아주 값진 존재다!)가 엉덩이에 불 화살 맞은 짐승처럼 더욱더 미친 듯이 강성 발언을 하도록 몰아가야 하고, 관점만 확고하다면, 그쪽 전략은 매우 쉽다.
이해찬 민주당의 전투 성과는 실시간으로 매우 정확하게 측정해볼 수 있다. 조중동 등, 오류 가능성 제로인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극렬하게 이해찬의 강성을 씹어댈수록, 이해찬은 더 잘하고 있는 게 된다. 만일 그들의 비판 톤이 약해진다면 그것은 이해찬에게 경종을 뜻한다. 신들메를 다시 조여매고 칼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이해찬과 보수 언론과의 관계를 연대기적으로 분석해둔 미디어오늘의 <신임 여당 대표 이해찬과 다시 충돌할 조선·동아> (2018-8-26)는 정독할 가치가 있다. 이해찬의 승부는 결국은 그들 언론과의 전투 결과에 의해 결판날 것이다.
조금만 더 적겠다. 이 블로그에서 이미 여러 차례 적어둔 바 있지만,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망언급 발언처럼, 시시하게 중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왼쪽에 인용해둔 저 말씀이 정답이다. 가다가 중지곳하면 아니감만도 못하다.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었는데도 나라 꼴이 요지경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 감만도 못한 중지곳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는, 남북 문제와 마찬가지로, 적폐 청산과 경제는 그 지향이 같다. 남북 문제나 적폐 청산의 합당한 진전은 경제 문제 해결과 그 궤를 같이한다. 적폐 청산은 그만큼 중요한데, 이 역사적 과업의 궁극적 목표는 조중동 극복이다. 그들이 극복되지 않는 한, 적폐 청산 과업은 더욱더 강도 높게 추진되어야 한다.
‘마지막 소임’으로서 이해찬의 업적도 그들을 얼마나 죽여 놓는가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 미디어오늘에 인용되어 있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로 대표될 수 있는 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이해찬의 관점은 그들이 극복될 때까지는 금과옥조가 되어야 한다. 이해찬의 이른바 ‘강성’이 특히 대한민국 언론 쪽에서 더욱더 능력을 발휘하게 되기를 바라는 나의 이유다. 꼭 이기시기 바란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살아날 수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2&table=domingo&uid=56 

김 & 장, 둘 다 놓친 것

18.08.27 19:03l최종 업데이트 18.08.27 19:03l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 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한 최근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 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한 최근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 연합뉴스

갈등?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몇 달간 지켜보았다. 그 논의의 형식적 마침표는 어제(26일) 장하성 실장의 기자회견인 것 같다. 마침 같은 날 여의도 통개발 등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전면 보류하는 발표도 있었다.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통계청장도 새로 임명되었다. 가계소득통계 논란이 일었던 통계청장이 바뀌었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 일들이 모두 일요일 하루 동안 벌어졌다. 현상은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지만, 본질은 경제다. 그 와중에 논란이 된 경제지표를 작성한 청장이 경질되었다. 그 정도로 상황은 심난하다. 그나마 장하성 실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우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지, 그 정도 아니었으면 아마도 정책실장이 바뀌어도 몇 번 바뀌었을 상황이다.

ad외형상으로는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의 갈등, 그것도 개인 간의 사적감정이 아니라 경제 노선 갈등처럼 보인다. 참여연대 출신과 정통 EPB(옛 경제기획원) 관료, 말을 붙이기에 따라서는 시민단체와 관료기획통이 철학과 노선에서 정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지, 둘 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금융경제 전성기 시절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융경제 중심, 거시경제 중심, 그리고 대기업 중심 시대, 이 두 사람이 익숙하던 시대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다. 두 사람 모두 실물  경제나 제조업에는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세계협동조합의 날 지정 등 2008년 이후에 세계적 경제 침체의 대안으로 등장한 사회적 경제에는 역시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실물 경제와 사회적 경제는 빼고 논하는 국민경제, 그게 장하성-김동연 논의의 한계다.

실물 경제와 사회적 경제는 빼고 논하는 국민경제

쉬운 것부터 얘기를 해보자.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정권 초기에 결정된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상가 임대료나 프랜차이즈의 공정성 제고, 이런 사전적인 제도 정비가 거의 없이 최저임금부터 인상한 것은 좀 무리해 보였다.

업종별로 최저임금 상승의 충격을 상쇄할 정도의 대비책을 마련하고 최저임금 인상폭을 증가시켜도 되는데, 사전 조치 없이 바로 강행하면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들에서 곡소리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 실업률이 영향을 받는다. 이건 그냥 산수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진작 정책 같은 게 따라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건 또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에도 경제 위기가 왔다. 2010년 당시 43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앞세운 영국 보수당이 정권을 되찾아왔다. 젊은 보수쪽 총리가 7월 9일 리버풀 호프 대학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한다. 그 내용중에는 "협동조합, 상호조합,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부 자료집을 발간하겠습니다" 라고.

논쟁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 때 영국의 보수당이 사회적 경제를 자신들의 중심 축으로 활용을 했다. 경제 위기 때 사회적 경제를 핵심으로 운용하는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때 파시즘의 바로 그 무솔리니가 협동조합을 엄청나게 강조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패전 후 폐허의 상태에서 일본 정부도 생활협동조합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일본 정부가 무슨 진보 정부고, 민주당 정부고 그런 건 아니다. 1962년 5.16 이후 8월에 군인들이 지금의 농협을 만든다. 그들도 협동조합을 중요한 경제 수단으로 여겼다.

국내외 보수정권이 했던 일
질의에 답변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질의에 답변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률의 단기적 하락이 예상될 때 사회적 경제를 활용해 충격을 줄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 있었다. 1998년 IMF 경제 위기 때 DJ 정부는 '자활'이라는 이름으로 실업자들이나 지방 거주민들에게 긴급히 일자리 대책을 세웠다. 그 해 우리나라의 복지 기본법이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자활 항목이 들어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MB는 사회적 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대적인 지원 방안을 만들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기 고용관리로 사회적 경제만큼 효과가 빠르고 즉각적인 것도 없다. 특히 마을 기업이나 지역 서비스 분야는 여전히 우리가 취약하기 때문에 예산으로 좀 큰 돈을 쓴다고 해도 필요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출산율 저하와 보육 대책, 필요성도 존재한다. 사회적 경제가 김동연 부총리나 장하성 실장, 두 사람 모두에게는 낯설고 너무 단기대책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사회적 경제가 주요 선진국 경제 운용의 핵심축이 된 것은 사실이다.

긴급 대책으로 사회적 경제가 들어갔음직한 자리에 김동연 부총리의 '생활 SOC'라는 요상한 단어가 들어갔다. 결국 믿는 것은 토건밖에 없다는 정통(!) 경제관료의 얄팍한 발상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슬쩍 수소 충전소를 끼워 넣었다.

지역 주민들이 꺼려하는 대표적인 혐오 시설인 수소 충전소가 무슨 생활 SOC냐? 수소차를 지금처럼 무리하게 추진하면 결국 이 문제로 몇 사람 국회 청문회에 나가게 될 것이다. 이건 별도의 에너지 논의가 필요한 건데, 살짝 '생활' 시설인 것처럼 집어넣은 것은 해도 너무한 일이다(수소 에너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두 사람이 다 관심을 안 보이는 것은 사회적 경제만이 아니라 제조업을 비롯한 실물 경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해괴한 단어에 갇혀, 전통적이지만 엄연히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제조업은 찬밥이다. 요즘 표현대로 하면 '아웃 오브 안중'인 것 같다.

제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독일이나 스웨덴의 화려해 보이는 경제 담론 내부를 들여다보면 결국 어떻게 하면 제조업을 고도화하고 미래 체계에서도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제조업 정책이다. 트럼프 경제도 뭔가 복잡하고 과격한 것 같지만, 그 실체는 철강이나 자동차 등 이전 정권이 '구산업'이라고 방기한 분야를 어떻게 하면 되살릴 것인가, 그런 것이다. 산업정책, 쉽지 않은 문제지만, 제조업의 관점으로 보면 장하성 실장이나 김동연 부총리나 전부 낙제점이다. 뭘 했어야 채점이라도 하지, 한 게 없으니 틀린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참여정부 사례 하나 들어보자. 2007년 참여정부 5년차, 경제가 굉장히 좋았다. 성장률도 좋았지만 내용 자체가 좋았다. 원화 가치가 높아졌는데, 수출도 기록적으로 높아졌다. 강한 원화를 극복하고 수출 증가, 전 세계가 원하는 경제 성장의 목표다. 이것이 힘드니까 수출 증가를 위해서 우리는 늘 원화 가치를 희생시켜왔다(원화 가치 하락은 수출 상품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 편집자 말).

당시 경제가 좋았던 이유가 뭘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일부는 정치적으로 레임덕에 빠진 노무현 청와대의 약화를 거론하기도 한다. 정부가 쓸 데 없이 나서지 않으니까 국민경제가 알아서 잘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물론 박근혜 레임덕 때 경제가 안 좋았으니까 이는 부분적인 설명이다.

또 다른 설명은 좀 코믹하다. 한미 FTA 때 업종별 대책 만든다고 각종 협회 등 업종별로 몇 년간 자주 모이다 보니까 동종 회사들 사이에 소통과 정보 교환이 원할해지면서 혁신이나 공동 과제 도출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진짜로? 그럴 가능성도 실제 배제하기는 어렵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소비를 덜 하고, 각종 구매지수가 내려가는 것만 생각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회원사들이 어려워서 회사들의 정보가 모이고 공동 대책을 세우는 협회도 어려워진다. 당연히 협회 차원의 분석 능력도 떨어지고 미래 과제에 대한 대응도 늦어지게 된다. 한 때 한국 제조업 전성시대에 화학공업협회나 자동차공업협회 같은 데에 정말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갔고, 거기서 멋진 보고서들이 나왔다.

탈핵 정책에는 태양광이 핵심이다. 한 때 열 명 정도 있던 관련 협회에 세 명, 네 명, 겨우겨우 간판만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조업의 각종 회사들이 공동 대응하는 후방 조직들이 경제 위기에서 연명 상태인 것이 엄연한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그 상태에서 경제부총리든 기재부든, 개별 회사한테 뭐 좀 가지고 오라고 해봐야 나올 것이 없다. 산업 후반 지원능력이 지금 너무 떨어져 있다.

규제 탓이 아니다

생활형 SOC, 특히 수소 충전소 이런 데 쓸 돈을 제조업 협회 등 후방 지원분야에 인건비 지원으로라도 먼저 쓰면 좋을 것 같다. 서너명이 해당 산업 전체를 지원한다는 것, 말이 안된다. 이게 1~2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가장 확실하게 고용효과 등 경제효과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건 협회 지원이라서 내국민 대우 등 WTO 조항에도 위배 안된다. 정부가 제조업을 간접 지원할 수 있는 편안한 방법이다.

이렇게 기반 지원부터 하고 공동 과제와 중장기 과제를 발굴해 나가는 것이 지금 쓸 수 있는 제조업 지원의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효과는 천천히 나오지만, 사실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정부가 앞으로 수소에 쓴다고 하는 돈만이라도 제조업의 각종 협회에 지원하시길 바란다. 산업 후방지원 기능이 지금 고사하기 직전이다. 

장하성 실장, 김동연 부총리, 뭔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제조업 등 실물경제에 관심 없고, 사회적 경제에는 무관심한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현 내각에서 그나마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있는 것은 이낙연 총리 정도다. 이 양 쪽 분야에 돈을 넣어야 내년이라도 고용 상황에 단기적으로 변화가 온다.

SOC, 이건 아니고, 수소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지금처럼 하다간 두 사람 모두 언젠가 국회 수소 청문회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IT만 붙잡고 있다고 제조업의 경쟁력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규제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이 위기를 겪는 것이 아니다. 발로 뛰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 관료가 한국에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우석훈 기자는 스스로를 비(B)급 경제학자라고 부른다. 2007년 '88만원세대'를 통해 세대간 불평등 문제를 실랄하게 지적했고, 이후 생태와 환경 등 사회경제 다양한 분야에서 글쓰기와 책을 펴내고 있다.


시민사회, 규제프리존법 찬성하는 더불어민주당 규탄

시민사회, 규제프리존법 찬성하는 더불어민주당 규탄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8/28 [03: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시민사회단체들이 규제완화 관련 법안 통과에 나서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과 함께 오는 30일 임시국회에서 규제프리존 특별법’ 등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가운데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규제프리존법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으로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2(세종시는 1)의 전략사업을 지정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는 것이다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이 안전 규제를 없애고 대기업 특혜를 준다며 반대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규제프리존법·서비스산업발전법 폐기와 생명안전 보호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등은 27일 오후 2시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규제프리존법 등 박근혜-최순실 법을 졸속 합의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했다.

공동행동은 규제프리존법을 포함한 일련의 법안들과 관련해 민간자본의 규제특례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규제특례는 국민의 안전과 관계된 의료법 등 기존의 규제 법안을 무력화하는 효력을 발휘하며사전허용-사후규제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한국형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공행동은 기업이 원하면 언제든 사전에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규제하겠다는 것이며신제품의 테스트 목적으로 국민을 시험·검증 대상으로 삼고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안전성 판단을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취지라며 안전성·유효성이 미확립된 의료기술의약품 등도 첨단·혁신이라는 포장 하에 조기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규제특례를 적용하겠다는 것규탄했다.

또한 공동행동은 국회가 규제혁신을 명분으로 처리하려는 관련법 일체는 보건의료 및 정보통신을 포함하여 산업분야 전반을 겨냥한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정보인권과 연계된 민감한 법안들을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졸속 합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관련 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 경찰에 막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 면담은 불발됐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한편공동행동은 기자회견 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를 면담해 의견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경찰에 저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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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규제프리존법 등 박근혜 적폐 악법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규탄한다
-국민 볼모 삼는 민간자본 규제특례 반대한다-
-국회 졸속합의 즉시 철회하고 촛불정신 파기하는 적폐 법안 폐기하라-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공약파기를 일삼고 있다은산분리 완화원격의료 허용규제프리존법 처리 등 줄줄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의료 영리화 등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은 중단한다고 약속하였다그러나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서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재벌 친화적 정책보다 더 위험한 규제완화 기조를 내세웠다민간자본이 주도하는 신기술의 시험·검증을 목적으로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규제샌드박스 도입과왠만해서는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완화가 그것이다국민을 신제품의 안전성위해성 검증을 위한 시험대상으로 내모는 현 정부의 규제정책 기조는 정말 경악스럽다산업육성을 위한 신기술의 우선사용·사후규제규제샌드박스규제특례가 모두 이 같은 기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이런 식의 경제기반 조성이라면 4차산업혁명이건 그 이상이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국민을 볼모로 삼는 부도덕한 경제기반 조성은 어떠한 이유라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다지난 정권에서도 경험했듯이 대기업 및 산업자본을 위한 특혜성 규제완화는 일자리 창출과도 무관하며또 다른 독점적 이윤 창출의 수단과 경로를 마련해 줄 뿐이다.

지난 8월 17일 국회 교섭단체 3당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완화와 규제샌드박스를 골자로 하는 규제프리존법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산업융합촉진법정보통신융합법 등 개악 법안들을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일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위협적인 법안을 어떠한 사회적 합의나 검증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겠다는 것이다우리는 이 같은 졸속 합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첫째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민간자본 규제특례 허용은 중단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대기업 청부 입법'으로 규정한 규제프리존법을 포함하여, 3당 교섭단체가 강행 처리하기로 졸속 합의한 지역특구규제특례법 등 일련의 법안들은 민간자본의 규제특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규제특례는 국민의 안전과 관계된 의료법 등 기존의 규제 법안을 무력화하는 효력을 발휘하며사전허용-사후규제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한국형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다는 것이다기업이 원하면 언제든 사전에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규제하겠다는 것이며신제품의 테스트 목적으로 국민을 시험·검증 대상으로 삼고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안전성 판단을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취지이다이미 우리는 가습기살균제라돈침대 등 시민의 생명과 안전성에 심각한 폐해를 가하는 사건들을 경험하였다사후규제는 어불성설이다기업이 판매하는 상품과 서비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특히규제샌드박스는 지역 제한 없이 신기술·서비스에 대해 민간이 신청하면 모두 허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이 같은 무제한적인 규제완화는 국민안전을 한층 위협하는 것으로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는 산업간 융합이 되는 모든 신제품과 서비스를 규제특례의 일차적 대상으로 규정하였다기존 규제프리존법의 지역전략사업까지 포함하면 대상범위는 보다 확장된다보건의료자동차에너지관광농생명화장품 등 해당 영역은 거의 제한이 없으며빅데이터와 스마트 기술이 융합·접목 신기술이라면 예외 없이 규제특례가 가능하다스마트헬스케어(원격의료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3D프린팅 의료기기바이오의약품 등)분야가 포괄되며안전성·유효성이 미확립된 의료기술의약품 등도 첨단·혁신이라는 포장 하에 조기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규제특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또한 병원의 부대사업은 조례 제정만으로도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허용이 가능한 것으로 병원자본의 증식 경로를 보다 강화해 주었다국민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민간자본 특례 일색의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둘째국회 졸속 합의 즉시 철회하고 적폐 법안 폐기하라

지금 국회가 규제혁신을 명분으로 처리하려는 관련법 일체는 보건의료 및 정보통신을 포함하여 산업분야 전반을 겨냥한 것이다국민의 건강과 생명정보인권과 연계된 민감한 법안들을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졸속 합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규제특례와의 연관성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기존 규제 법안들만도 60여 개를 넘으며관계 부처 간 협의도 잇따라야 하는 사항이다무엇보다기존의 법률적 근거를 초월하는 과도한 민간자본 규제특례가 과연 국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어떠한 논의나 협의도 진행된 바 없다절차적 정당성만을 따져 보아도 문제가 되는 법안들을 불과 며칠 사이에 졸속으로 심의하고 일괄 처리하겠다는 것이 지금 집권 여당의 입장이다이는 국회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명백히 남용하는 것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국회교섭단체 3당은 이 같은 입장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규제프리존법은 박근혜 정부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통해 대기업에 입법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기업 청부 입법'"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청산해야 할 이런 적폐 법안을 다시 불러내 현 정부 경제운영의 기틀로 삼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인가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촛불정신의 파기가 아니라면 대기업거대자본 규제 특례 위주의 경제정책은 반드시 수정해야 하며이를 뒷받침하는 규제프리존법 등 일련의 규제특례법안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지금 국회가 처리하고자 하는 규제특례 법안들은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한 악법이다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기업 특례 중심의 경제기반 조성은 어떠한 경우라도 합리화 될 수 없다는 점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명심해야 한다.--

2018년 8월 27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규제프리존법·서비스산업발전법 폐기와 생명안전 보호를 위한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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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은 던지고 진짜 '진보 경제'를 내놓을 때

[특별기고] 미래노동사회 가치와 비전 위한 격렬한 논쟁 필요
2018.08.27 17:54:08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시장경제로 압축되는 세 바퀴 경제를 기치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최근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상황이 더는 해석의 문제로 합리화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악화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발표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장기구조화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넘어 경제활동인구의 중추적 세대인 40대에서조차 외환위기 이후 최대라고 할 만큼 취업률이 감소하고, 실업자가 7개월째 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어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였던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양극화 문제를 넘어 노동의 전반적인 프레카리아트화(불안정화)가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의 신규일자리 창출이 급감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은 보이질 않아 소득(임금)-유효수요창출(투자)-성장의 선순환에 대한 기대는 거품처럼 사그라지고 있다.  

고용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세바퀴 경제의 전륜구동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였던 소득주도성장론이 이 모든 상황의 주범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십수 년 전 의사들도 할 말이 있다고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변하던 한 학자는 이제는 최저임금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생살여탈권을 박탈하고 있다면서 다시 자영업자의 대변인을 자임하고 나섰다. 

지난 2년 동안의 두 자릿수에 달하는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이 그 원흉이라는 것이다. 소위 현장의 목소리를 참칭한 이러한 목소리는 사실 별반 새로운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사실은 대단히 악의적이어서 기업 로비스트에게나 어울릴만한 저급한 주장이다. 

1997/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추진된 금융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적 성장전략은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열쇠였으며, 노동유연화의 이름 아래 양산된 저임금 노동력과 생존형 자영업자는 심각한 사회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의 처음과 끝이다.  

일부 대기업과 첨단 산업기술분야를 제외하면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주요 경쟁국 대비 상당 부분 저가노동력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불안정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유연한 인간'의 대응전략은 각종 갑질로 점철된 직장에서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영업자라는 이름으로 규제 없는 시장 상황 속에서 스스로 내 노동의 주인이 되는 방식이다.

중소기업에 '가본' 사람들은 알지만, 국가의 다양한 보조금과 '병’ 대한 착취를 방치하는 지금의 조건에서 '을'이 생존하는 기이한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이러한 경제구조는 시장 행위자들에게 대단히 마약 같아서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심각한 금단현상을 유발하고 있는 지경이다. 자영업자마저 임금인상의 아우성으로 이런 상황을 존속시키는 일은 더는 안 될 일이다.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취재진에 답하고 있다. 장 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한 최근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일자리 창출, 개념의 성찬으로 끝내선 안돼

그렇다고 소득주도성장론이 현재의 구조를 개혁하는 대안으로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기존에 소득주도성장론의 가치와 정책적 효과를 대변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의 경질은 청와대의 어떤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더욱 아이러니한 상황은 올 상반기 동안 보수언론과 학자들의 이 경제철학에 대한 광기어린 비난 속에서 스스로도 별반 적극적으로 방어의 모습을 보인 적도 없고, 이 정책의 입안에 별반 관여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던 정책실장이 현재는 가치의 수호자로 인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문재인 선거캠프에 결합하고 정권 출범 후 각종 국가자문위원회에 포진한 경제학자 중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과연 신자유주의철학과 재벌의 하수인으로 찍힌 엘리트 '관료'만의 문제로 돌리면 될까? 이 무슨 허약한 경제철학이란 말인가? 거기서 힘들면 나오시던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논쟁이라도 해야지 이 무슨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러한 소동은 예고된 일일 듯싶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 혹은 '포용적 성장'은 새롭다기보다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가 제시한 일종의 권고모델이다. 

대단히 진보적 경제정책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정책의 핵심가치는 1960년대 후반 이후 현재까지 자본주의 주요국가가 직면한 핵심적 문제인 수요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신자유주의의 첨병을 자임했던 국제기구조차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소득과 분배의 불균형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소위 2014년 발표된 OECD의 '포용적 성장론'이다. 최저임금도입, 공공부문의 일자리 확대, 노동시간 단축, 확장적 재정정책은 기업로비스트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시쳇말로 국제적 대세이며, 당장 OECD 한국보고서마저 이를 권장하고 있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고용이 단순히 경제성장의 결과라는 낡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가치를 부정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면 개념의 성찬으로 끝내서는 안 될 일이다. 포용적 성장이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개념의 차용에 안주하지 말고 정책의 목표와 추진력이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 컨트롤타워, 심각한 철학의 빈곤 드러내 

일부 여론의 동향에 민감해서 우왕좌왕하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현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는 심각한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이미 필자도 참여한 지난달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아쉽게도 이후 진보진영에서조차 정작 정부정책의 방향성을 둘러싼 대안적 논의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비판과 우려, 심지어는 비아냥의 목소리가 칼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지면을 채우고 있다. 흡사 노무현 정부 시즌 2를 상기시킨다. 

이래서는 안 될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민의 염원을 담아 탄생한 정부이나 이를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참칭하거나, 혹을 그들만의 것으로 희화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촛불시민은 정부의 교체가 아닌 이 사회의 근본적인 권력지형의 변화를 원하였으며, 현 정부가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기존의 권력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적 가치와 정책이 이를 견제하고 보완하지 않는다면 집권여당의 희망대로 우리사회의 헤게모니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우리사회 중도와 진보의 대단히 역설적인 공동정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의 내용을 채우던지 혹은 심지어는 이를 대체할 수도 있는 보다 진보적인 정책들이 각축을 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의 가치와 정책이 유일한 진보정책도 아닌 마당에 관념엔 순사(殉死)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례로 고용의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신자유주의 이념 속에 시장의 문제로 축소된 고용의 문제를 성장의 동력으로 이해하려는 소득주도정책의 기본발상을 보다 더 구체화하고 나아가서 이를 사회정책의 문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자리 문제를 노동시장의 문제로 제한하여 고용정책의 미세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확인된 바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연안정성이나 직업훈련 및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다양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과거의 정책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하기는 어려울 만큼 별다른 정책적 변화는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에 대해 논의하는 한, 그 동력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31개 대기업이 전체 수출의 66%를 차지한다고 자화자찬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조차 연구개발(R&D)비중은 45%에 불과하다고 실토한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가 OECD 하위수준일 정도이니 재벌개혁을 넘어 재벌에게 투자와 고용창출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제1 가치와 연계시키는 정책은 시급하다. 물론 이때 (노사간의) 사회적 합의가 투자의 전제가 되는 황당한 논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임금의 재분배는 결국 미래세대의 일자리를 좀먹을 뿐이다. 임금중심의 단체협약에서 투자 중심의 단협의 중요성은 지난 봄 GM사태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수출주도적 성장전략에서 향유된 저임금구조(정규직의 고임금구조와의 샴쌍둥이)로부터 대기업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생산적 투자는 요원할 뿐이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장 구조에서 대기업은 생산보다 금융에서 달콤한 수익을 내는 데 익숙해졌기에 생산적 투자에 미온적이었고, 따라서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금산분리를 반대해왔는데 다시 은산분리를 완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터무니없는 일이다. 

한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서 재벌식 경영을 규제하겠다는 일부 시민사회와 정부의 발상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금융시장주도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그러한 긍정적 사례가 있었던가? 해외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와 같은 약탈적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민연금은 과연 수익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버린과 엘리엇의 기억을 재벌과 연계시키는 게 악의적이라고 느낀다면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CalPERS)의 악랄한 전략을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같은 제도가 재벌을 규제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기업의 투자구조를 바꾸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재벌에 대한 규제와 기업의 투자문제를 혼동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방식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애플식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의 꿈은 재벌뿐만 아닌 신흥벤처기업까지 포함한 오너의 꿈일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으로 대변되는, 소위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Barbrook/Cameron)로 무장한 '디지털 자본주의자'들은 생산적 투자보다는 금융시장 수익과 규제없는 고용의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모든 사회적 문제는 기술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솔루셔니즘(Solutionism)의 맹신자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맹신이 과연 국내의 얼치기 미래학자들의 이상과 다를까? 산업현장의 근처에도 안 가본 듯한 느낌이 드는 자칭 4차산업 전문가들은 허구한 날 인공지능 기술과 미래사회의 변화를 떠들어댄다(이들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도 몇 번 보면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창의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서로 베껴대기 일쑤인데 안습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소위 산업 4.0으로 독일식 4차산업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대기업 기술이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던진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인공지능 연구로 한국은 도대체 얼마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냐고? 미래사회의 변화에 둔감해서도 안 되겠지만, 기껏해야 시끄러운 '노동자놈들'이 싫어서 자동화를 추진하려는 한국의 기업문화 속에서 뜬금없이 인공지능 연구가 산업과 고용의 미래라고 떠드는 말도 안 되는 행태도 더 이상 경제정책에서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위 '사람' 중심이 되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위원들을 보면 노동부 장관을 빼고 모두가 기술 솔루셔니스트들로 채워져 있다. 당연히 일자리와는 상관없는 뜬구름 잡은 논의만 무성할 수밖에. 기업의 투자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투자의 방향과 목표는 국가의 고용정책과 연계된 산업정책의 전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것이 최근 국내에 자주 소개되는 독일 산업 4.0/노동 4.0의 요체이다. 직무와 직업이 일치하는 과거 포디즘적 고용 행태는 앞으로 점차 사라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미래의 산업 전망 속에서 어떠한 일자리가 생성될 것인지, 어떠한 교육과 직업훈련이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 산업구조에 맞는 연구가 있어야 할 텐데 산업정책도, 그와 연계된 고용정책도 보이질 않는다. 이러하니 소득(최저임금)을 둘러싼 헛소동과 혁신성장이라는 빈 수레만 요란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세금으로 정부가 공무원이나 창출한다는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의 비난과는 달리 정부 지원에 따른 공공부문에서의 좋은 일자리 창출은 지속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부의 확대재정지출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며, 이는 인건비 지출에 대한 지원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에 대한 투자는 더욱 필요한데, 이는 보다 구체적 비전 속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 

재정에 대한 보수진영의 과도한 우려는 이미 OECD 한국보고서가 반박해준 바 있지만, 궁극적으로 소득과 자산의 공정분배를 위한 시도 속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만으로 현재의 소득과 자산불평등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이다. 2012년 이후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 속에서 사회불평등의 확대, 심화라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바로잡는 일은 조세정의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고 내수진작은 물론 미래의 일자리를 위한 공적 투자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보유세든, 토지세든, 법인세 인상이든 조세의 공적 지출 내역을 분명히 하면 저급한 국가만능주의 시비에 휩쓸리지 않고 사회의 동의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던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는 사회연대의 원칙을 공고히 하는 일이다. 

이처럼 경제정책은 성장과 고용이라는 관점에만 제한되지 않고, 고용정책, 산업정책, 조세정책, 사회정책의 모든 분야에 대한 가치와 비전을 담지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급격한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잣대, 심지어 정치경제학에 대한 기초적 안목도 없이 지금은 희미하게만 존재하는 1970/80년대의 서구 복지국가의 이상향에 맞춰 개별 이슈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대안적 경제정책의 전망을 그려내는 일은 불가능하고 헛소동에 불과하다. 

진보진영, 대안 제시 못하고 마을만들기 사업 등 복마전 우려 수준
  
미래 노동사회의 가치와 전망을 담아내는 일은 자본주의의 미래와 관련된 만큼 다양하고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태친화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경제정책은 여전히 소득주도성장론의 대안으로 제시되지도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규모가 50조 원이 넘어 4대강 사업보다 규모가 큰 마을만들기 사업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복마전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전국 곳곳에서 전개되는 이 사업의 지지자들은 고용창출까지 염두에 둔다고 하는데 정말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이런 수준으로 진보적 지식인과 진보적 사회운동 및 정당이 문재인 정부를 견인해내기란 언감생심이다. 이제 소득주도성장론의 정책적 한계(가치의 한계가 아니다!)가 분명해진 만큼 이 정책의 기본적 가치는 존중하되 보다 넓은 차원에서 미래노동사회의 비전과 전망을 담아내는 포괄적 산업-고용정책, 사회정책의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사회개혁의 다양한 전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건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격렬한 진보적 경제정책의 쟁론이 전개되어야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이는 단순히 경제성장과 분배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서 민주적 정치시스템을 공고히 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의 대표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사상은 옳건 그르건 간에 세간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강력하다. (...) 스스로 어떠한 지적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고 있는 실용적 사람은 대개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들이다."  

그렇다.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본주의의 급격한 전환기에 더욱 구체적이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경제학의 쟁론을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그러한 논쟁의 끝이 아닌 출발점에 되면 충분하다. hic Rhodus, hic saltus!(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editor2@pressian.com다른 글 보기

자카르타에는 분단선이 없었다

스포츠를 넘어 ‘단숨에’ 가까워질 남북을 기대하며
자카르타=이하나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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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8  0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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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 통신원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정책국장
얼마 전 팔렘방에서 카누 남북단일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단일기가 시상대에 올랐다. 선수들은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울고 웃었다. 국제대회에는 ‘코리아’의 메달이 공식 기록된다. 아시안게임 현장에서 남도 북도 아닌 ‘코리아’를 응원한 사람들. 6.15남측위원회가 한겨레통일문화재단등과 주최한 2018 아시안게임 ‘원코리아 공동응원단’의 활동 소감을 전한다. / 편집자 주

  
▲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개막식장에서 단일기를 든 응원단.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농구장에 ‘단숨에’가 울려퍼지다
“단숨에! 단숨에!”
20일 여자농구 남북단일팀과 인도와의 경기장에는 원코리아 응원단 및 현지 남북 교민들 200여명의 응원단이 함께 했다. 이 날 새로운 구호 ‘단숨에’가 등장했다. 이 구호는 가수 강산에씨 말에서 시작됐다. 19일 자카르타 팀코리아 하우스에서 열린 ‘원코리아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평양방문 소감을 밝히던 강산에 씨가 이렇게 말했다.
“평양에서 우리가 ‘원샷’이라며 건배를 하는데, 북측 분들이 ‘단숨에!’이러면서 한잔 마시더라. 원샷이라는 정체불명의 구호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이제 우리 ‘단숨에’라고 하자.”
  
▲ 남북 응원단은 단일팀의 농구경기를 응원하며 ‘단숨에’를 외쳤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단일팀 농구경기장, 원코리아 응원단 및 현지 남북교민들이 함께 응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농구 특유의 빠른 경기 호흡에 맞추어 응원단들은 신나게 외쳤다. “단숨에! 단숨에!” 북측 응원단들은 익숙한 구호여서인지 더욱 목소리가 커졌다. 이 날 단일팀은 인도를 104대 54로 앞서며 크게 승리했다.
  
▲ 20일 단일팀의 농구경기장에는 이낙연 총리, 도종환 문체부 장관등이 응원단을 찾아 격려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가수 강산에 씨는 19일 열린 ‘원코리아 페스티벌’에서 평양 공연 소감을 전하며 ‘단숨에’ 구호를 제안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팬미팅을 방불케 한 리성금, 엄윤철 선수와의 만남
20일 역도경기장. 북측에서 여자 48kg 리성금 선수, 남자 56kg 엄윤철 선수가 출전했다. 경기장에는 인도네시아 응원단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리성금 선수와 엄윤철 선수가 등장했을 때만큼은 경기장 전체가 떠나가라 선수들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리성금! 힘내라!” “엄윤철! 엄윤철!”
긴장된 표정으로 선수가 등장하고 모두가 숨죽여 경기를 바라본다. 리성금 엄윤철 선수가 번쩍 바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 모두가 일어서 함께 환호했다. “장하다 리성금! 장하다 엄윤철!”
  
▲ 아시안게임 역도경기장, 단일기가 가득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 함께 기뻐하는 응원단.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금메달의 기쁨과 함께 경기장은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북측 관계자들은 경기가 끝나고 응원단석에게 엄지를 치켜들고,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금메달을 목에 건 리성금 선수는 멀리서부터 응원단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응원단 옆 좌석에 리성금 선수가 앉는 순간 응원단은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열광하며 몰려들었다. 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순간이었다. 옷에 사인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으며 금메달을 함께 축하했다.
리성금 선수의 사인 줄이 끝나질 않자 북측 관계자들은 “거 사인 내일 해주라고. 우리 내일 시간 많다고~”라며 웃었지만, 응원단은 오늘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며 리성금 선수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 금메달을 딴 엄윤철 선수에게도 응원단이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다. 엄윤철 선수는 이날 세계신기록에 도전했다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의식한 듯 “더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지만, 우리는 “너무 멋진 메달을 선사해주어 고맙다. 남쪽에서도 모두 응원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 리성금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원코리아 응원단 대학생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여느 선수와 팬들처럼 응원단 옷에 사인을 해주는 북 리성금 선수.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엄윤철 선수가 단일기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응원단에게 세계기록을 성공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웃으며 인사한 엄윤철 선수.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이날 응원단과 리성금, 엄윤철 선수의 만남을 두고 몇몇 언론들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처음 보게 된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선수에게 응원단이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받고 악수하는 모습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동안 무수한 스포츠대회에서 남북 선수들과 응원단이 만났는데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것이 이상한 일 아니었을까.
평창과 달랐던 자카르타
올해 2월 평창올림픽에서도 남북은 자유롭게 만나지 못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고 경기장에서는 국정원 관계자들이 북측 응원단을 차단하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남북 응원단이 악수하는 것조차 가로막기도 했다. 평창은 물론 그 이전의 스포츠 대회들에서도 만남과 교류보다는 차단과 경계가 익숙했다.
자카르타에서 남북은 함께 응원하고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응원단과 현지 남, 북 교민들은 정말 똑같았다. 응원단의 구호를 열심히 따라하다가도 경기가 긴박해지면 앞에 선 응원리더들에게 좀 비켜보라고 말하는 것도 똑같았고, 선수가 공을 놓치면 ‘어이구’라고 탄식하는 순간도 똑같았다. 남이나 북의 대학생들이 외신기자와 영어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고 “우리 학생들 다 영어 잘 한다”면서 자랑하는 모습마저도 똑같았다.
남과 북의 사람들은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게 하트에요”라며 손가락 하트를 가르쳐주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왔던 북측 아이는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앞에 서서 열심히 응원하던 누나에게 사탕을 쥐어주기도 했다.
  
▲ 남측 응원단 대학생이 북측 교민들에게 ‘손가락 하트’를 알려주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남북은 같이 하트를 만들며 기념 사진도 찍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응원단과 친숙해져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해준 북측 아이.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응원단이 처음 마주치던 날, 북측 교민들이 바로 뒷좌석에 앉자 남측 응원단 한 사람이 “우리 같이 앉아도 돼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웠던 것도 잠깐, 한 경기 두 경기 지날수록 남북은 섞여들었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왕래가 이루어진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자카르타에는 분단선이 없었다 
“대동강 맥주 너무 먹어보고 싶어요. 한국 맥주는 맛이 없거든요.”
자카르타 농구경기장에서 남북응원단이 나눈 대화다. 격세지감이다. 재미동포 신은미 씨가 대동강 맥주가 더 맛있다고 해서 북을 ‘찬양’한 죄라고 검찰 조사까지 받은 일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카르타에는, 분단선이 없었다. 판문점 선언 이후 우리의 마음에서도 두려움이나 경계, 걱정은 사라지고 있었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손잡고 분단선을 넘나들었듯 우리도 이렇게 넘나들며 장벽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된 경험이었다.
원코리아 공동응원단을 함께 준비한 현지 교민 이주영(4.16 자카르타 촛불행동 공동대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네시아에도 많은 북측 교민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가 북측 동포들을 이렇게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남북이 모여앉아 같이 응원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이제 만남이 시작됐으니 앞으로 더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긴다. 통일이 별게 아니지 않나. 이렇게 만나는 계기가 늘어나고, 자꾸 만날 수 있는 것. 그것이 통일인 것 같다.”
“단일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요”
역사적인 남북 공동입장 순간, 개막식장에는 단일기가 나부꼈다. 경기장 저 멀리 단일기와 선수들이 입장하는 순간부터 응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선수들은 입장부터 퇴장까지 관중석을 바라보며 손 흔들어 주었고,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도 평화의 상징으로 남북 공동입장을 강조했다.
현지 자원봉사자들도, 외국 관광객들도, 응원단이 지나가면 ‘코리아?’라고 물으며 엄지를 치켜들거나 단일기를 같이 흔들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19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원코리아 페스티발’ 현장에도 외국인과 현지 교민들이 참가해 단일기를 흔들며 코리아를 함께 응원했다.
  
▲ 현지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원코리아 응원단은 인기 만점이었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개막식 경기장에 가득했던 단일기.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북한'은 다른 국기를 가진 다른 나라였는데 단일기를 들고 응원하고, 북한선수와 사진도 찍고 북한교민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정말로 하나된 느낌이 들었다. 북한선수가 경기를 할 때에도 원래 우리나라 선수였던 것처럼 진심으로 목이 터져라 응원하게 되었다.” 성희윤(19, 대학생 겨레하나)
“누군가한테 북한은 아직도 적대국가겠지만, 우리는 그런 마음 없이 같은 마음으로 응원했다. 북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좋아하는 것을 보는데 그 마음이 뭔지 나도 조금 알 것 같았다. 같은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리성금 선수와 사진 찍고 인사하는데, 남측 응원단이라서 더 반갑게 대해준다는 것이 느껴졌다.” 방슬기찬(21, 대학생겨레하나)
응원단에 함께 했던 대학생들은 “이제 단일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단일팀을 응원하면서 통일을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꼈다는 것이다.
평창에 이어 자카르타까지. ‘통일응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더 큰 꿈을 꾼다. “스포츠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단일팀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농구경기장에서 남북이 함께 외친 ‘단숨에’라는 구호처럼, 앞으로 스포츠를 넘어 민간교류의 장이 단숨에 열리는 날을 기대한다.
  
▲ 아시안게임 개막식장에서의 단일기. 앞으로 스포츠를 넘어, 민간교류가 ‘단숨에’ 열리기를 기대한다. [사진-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