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탄소 가둬두는 ‘흙’ 속에 기후위기 해법 있습니다”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서승신 KBS 전주방송총국 기자

이영광 객원기자 | 승인 2022.01.01 08:13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최근 기후위기의 징후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단 빙하가 녹는 것뿐만 아니라 기록적인 기온 상승과 산불·홍수 등의 재해가 인류 전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이제 탄소 중립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지난달 19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흙, 묻다’ 편을 방송했다. 전북 장수의 사과밭 이야기로 문을 연 이날 방송에서는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미국의 곡창이자 옥수수벨트의 시작점인 사우스다코타 주의 탄소 농법이 소개되었다. 탄소를 묻어둘 수 있는 ‘흙’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듣고자 ‘흙, 묻다’ 편을 취재한 서승신 KBS 전주방송총국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서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

지난 19일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이 방송됐는데, 소회가 어떠세요?

“아주 시원섭섭합니다. 프로그램 만드는 중간부터 허리가 무척 아팠었거든요. 그래서 한방병원 양방병원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았어요. 이제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무 아파서 회사 출근하고 누구를 만나러 갈 때 양말을 신어야 하는데 양말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도 있었고요.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한자리에 앉아서 고민도 해야 하고 원고도 써봐야 하고 정리도 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한 3~4시간 정도 거의 꼼짝없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보니까 허리가 굳어 아파졌거든요. 원래부터 디스크하고 협착증 환자였는데 이렇게 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지구 온난화,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셨는데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는지요?

“제가 전북에서 경제하고 농업 부분을 담당해요. 전북이 농도잖아요. 그래서 거의 매일 농민들하고 대화하고 통화하는데, 매년 봄이면 기후변화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예요.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과수원 같은 데는 열매 달린 게 별로 없어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좀 바꿔봐야겠다. 이게 원인이 뭔지 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이런 현상이 계속 진행된다면 우리 다음 세대가 엄청나게 힘들 거 아니에요? 저 같은 경우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부모로서, 또 기자로서의 고민으로 기후변화 대책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이전부터 기후위기나 지구 온난화에 관심이 있었나요?

“제가 물리학과를 나왔어요. 기상에 대해서 관심도 많았고요.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현상에 대해서 왜 그럴까나 아니면 뭐가 문제일까란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 기후위기 부분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취재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었죠.”

서승신 KBS 전주방송총국 기자 (KBS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전북 장수의 사과밭 이야기로 시작하셨잖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봄에 전북 정읍의 한 배 농가와 사과 농가에 갔는데 피해가 너무 심각했거든요. 그래서 이걸 나중에 다큐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읍은 실제로는 배와 사과 주산지가 아니거든요. 전북 장수가 사과 주산지잖아요. 그래서 장수를 찾아간 거죠. 그전에도 장수를 몇 번 방문했는데 ‘갈수록 온난화가 심해서 사과 농사를 못 지을 상황’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었고, 정말로 폐원하는 과수원들을 많이 봐서 장수를 택하게 된 거죠. 실제 현장에 가봤더니 그 농가에도 사과가 없어요.”

지구 온난화 영향이라는데 전국의 과수 농가가 ‘저온’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나옵니다. 왜 그런 거죠?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요. 온난화라고 항상 따뜻한 건 아니에요. 갑자기 따뜻해졌다가 또 추워질 때가 있거든요. 올해 같은 경우도 사과와 배꽃이 예년에 비해 보름 이상 일찍 피었어요. 지구 온난화로 초봄에 기온이 일찍 올라간 거죠. 그러니까 나무들이 앞다퉈서 서로 꽃을 피운 거예요. 그런데 꽃은 다 피웠는데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어요. 엄청 낮은 것도 아니고 약간 낮을 수 있는 건데, 이미 꽃들이 핀 상태에서 서리가 내리고 저온이 찾아오니까 이 꽃들이 다 말라 죽어요. 검게 타버려요. 사람으로 말하면 동상을 입는 거죠. 그러다 보면 열매 맺을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피해가 큰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방법이 없어요. 꽃이 늦게 피도록 하기 위해 나무뿌리에 얼음을 갖다 놓거나 하죠. 그러나 그렇게 하는 건 쉽지가 않아요. 앞서 말한 정읍 농민은 수만 평 배밭과 사과밭에다가 비닐하우스를 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비닐하우스를 하면 서리가 내려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그 수만 평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한다고 해봐요. 돈이 얼마나 들겠어요. 그러면 비용 대비 수익이 안 맞아요. 사실상 배 농사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이죠.”

전북만 그런 건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인가요?

“지금 온난화로 피해를 보는 건 전국적인 상황이고요. 제주도도 봄에 갑자기 추워져서 감귤 나무가 많이 죽어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북극의 제트 기류가 약해지면서 영하 몇도 떨어지는 한파가 갑자기 한반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죠.”

제주에서는 2도만 올라도 감귤 재배가 어려워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던데 기온이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지 않을까요?

“그렇죠. 기온 상승이 제주도만 국한해서 어찌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대기 중에 기온은 전 세계가 하나이고, 전 지구적인 문제예요. 그래서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본 거죠. 그러니까 일부 지역만 잘해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쪽에서 다 잘해야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공기는 전 지구를 떠돌거든요.”

미국도 취재하셨던데 미국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번 기획의 주제가 탄소 농법이지 않습니까. 탄소 농법 취재하며 교수님들하고 전문가들하고 상의도 했고 몇 달 동안 유튜브도 다 찾아봤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매타이슨 씨가 나오는 유튜브를 봤는데, 지구 온난화 관련해 나파밸리에서 실험을 하고 있고 포도를 어떻게 잘 재배할지 고민도 많이 하더라고요. 유튜브나 자료를 보고 그분들을 한번 만나봐야겠다 싶어서 메일을 거의 한 달 넘게 보냈죠. 그런데 저를 안 만나려고 해요. 그래서 계속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설득하고 ‘제 주제가 이런 건데 좀 응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면서 취재에 들어간 거죠.”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

스티브 매타이슨 씨는 포도를 재배하는 땅에 피복작물을 심었다고 나와요, 피복작물은 땅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작물이나 풀을 뜻하죠. 피복작물 효과가 어느 정도라고 하나요?

“요즘 뉴스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캘리포니아가 가뭄이 일상화됐잖아요. 그래서 매타이슨 씨도 위기를 느끼고 있어요. 해결 방안을 찾느라 6년째 자기 포도밭 한쪽에서 실험하고 있더라고요. 피복작물을 심은 땅을 파보면 물기가 있어요. 피복작물이 땅을 그늘지게 해서 지표면 온도를 낮추고 온도가 낮으면 수분 증발이 적어지는 거죠. 그리고 매타이슨 씨는 거기 자생 식물을 갖다가 피복작물을 쓰고 있었는데 얘네가 죽으면 바로 퇴비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는 거죠. 그래서 6년째 실험을 해왔는데 결과가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밭 전체에 확대할 생각이고, 인근 농가에도 연구 데이터 같은 것을 알릴 거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또 밭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을 제시하셨어요. 밭을 갈지 않았을 때 더 좋은 효과가 있다고 나오던데 그럼 이전에는 왜 밭을 간 것인가요?

“그러니까 역사책에 삼국시대 무슨 왕 이후로 소를 이용해서 눈밭을 갈기 시작했다고 나와요. 아마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우경이라는 것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워낙 농경지에 풀들이 많으니까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밭을 갈았던 것 같고, 또 옛날에는 돌들도 많았잖아요. 돌을 걸러내려면 흙을 파야 했겠지요. 또 옛날에는 흙도 단단하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땅들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아주 정제된 상태거든요. 그러니까 무경운을 해도 된다는 거죠.”

온실효과를 측정하는 모형실험을 하신 이유는?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더워진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 하면, 거의 없어요. 저 역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물리학과 나와서, 이산화탄소가 있으면 적외선 영역의 에너지를 흡수해 몸속에 저장하면서 지구 전체를 덥게 한다고 이해는 하겠어요. 그런데 눈으로 본 적은 없거든요.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번 보여주자고, 우리나라 여러 기관에 요청을 해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도 실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만 하는 거예요. 그럼 실험 한번 해보면 어떠냐고 했더니 실험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더라고요. 

친구 한 명이 물리학 박사인데 대전 표준과학연구원에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하고 상의를 했죠. 표준과학연구소는 우리나라 모든 표준을 만드는 곳이에요. 그 연구소에서 이정순 박사를 친구한테 소개받아서 한번 해자고 했는데, 박사님도 처음에는 약간 당황한 거죠. 7월 말 8월 초에 의뢰했는데 답변이 오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어요. 

결과를 보고 저도 놀랐던 게 온실가스 효과가 진짜로 되는 거예요. 모형실험을 해봤더니 이산화탄소하고 육불화황이라고, 특히 육불화왕은 강력한 온실가스인데 그 온실가스가 있는 데에광을 쏘니까 공기하고 3개를 비교해서 보니 온도 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온실효과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고요.“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

탄소는 공기 중에 있으면 기후위기의 주범이지만, 신기하게도 땅속에 있으면 흙을 더 기름지게 만든다고 하던데요.

”나무나 풀이 유기물이잖아요. 그 유기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그 탄소는 몸에 갖고 있고 산소는 배출하잖아요. 그래서 식물을 심으면 산소가 많이 나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CO2에서 O2를 빼면 C가 남잖아요. C는 나무나 이 생물체들의 몸이에요. 그 몸이 땅속에 들어가면 퇴비가 되죠. 그렇게 하면서 땅을 건강하게 해요. 그런데 이게 공기 중으로 가면 CO2가 되잖아요. 그럼 온실효과가 나타나는 거고, 이게 아이러니한 거예요. 

과거에 우리 흙이 건강했다는 것은 흙에 탄소가 많았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흙에 있던 탄소가 다 대기로 올라간 거예요. 그래서 재앙이 된 거죠. 그러면 재앙의 원인인 탄소가 공기 중에 올라갔으니, 올라간 탄소를 다시 땅속에 집어넣으면 재앙이 사라지지 않겠냐가 프로그램 취지입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죠. 인위적으로 하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에너지가 들어가는 방식이면 또 다른 온실가스가 나오는데 자연농업은 인위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추가 에너지가 들지 않으니까 온실가스만 줄일 수 있죠.”

취재하며 느끼신 게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너무 풍요롭게 사는데 풍요를 조금씩만 줄이자. 좀 불편하게 살자. 불편하게 살면서 미래 세대에 좋은 지구를 물려주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큐멘터리 마지막 음악이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예요. 제가 다큐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천 번 가까이 들었거든요. 후손들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서 만들었는데 우리 현세대가 덜 풍요롭게, 약간 불편하게 살면서 온실가스를 줄여 좋은 지구를 물려줘야 한다는 게 제 의도입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학자들은 너무 늦었다고도 하는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생활 패턴이나 산업의 패턴을 빨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걸 취재했는데 다 담을 수 없었던 게 아쉽습니다. 방송 시간이 한정돼 있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최근 UN 산하 IPCC(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말했다시피, 지금 기후변화의 주범은 누구냐 하면 인류거든요. 지금 기후재난이라 불릴 만큼 상황이 심각한데, 인류가 그런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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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객원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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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정권” 비난하는 윤석열, ‘통신자료 조회’ 둘러싼 오해와 진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통신자료 조회 의미 알면서도 “사찰” 주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 선대위 출범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1.12.30.ⓒ뉴시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서서 죽겠다. 야당 대선후보까지 사찰하는 ‘문재명’ 집권세력에 맞서 정권 교체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전방위적인 ‘사찰’을 벌이고 있다며 이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의 격한 표현이다.

또한 윤 후보는 이날 대구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많은 언론인들 통신 사찰하고, 우리당 의원의 60~70%가 통신사찰을 받았다. 저도 저, 제 처, 제 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 사찰을 했다”며 “이거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막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도 “불법 사찰”이라고 규정하며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일각에선 ‘공수처 해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진욱 공수처장은 할 말이 많은 듯 보인다. “검찰과 경찰도 조회했는데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다만,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답습한 것 같다며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윤석열이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이유는 있었다

논란은 최근 공수처가 윤 후보와 그의 아내 김건희 씨에 대해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최근 공수처는 윤 후보에 대해 3회, 김씨에 대해 1회 통신자료 조회를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이 먼저 이 사실을 공개했고, 이후 김 공수처장이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사실임을 확인했다. 윤 후보의 통신자료 조회 시기는 9~10월, 김씨에 대한 조회 시기는 10월이었다.

이에 윤 후보는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기관을 만들어놨더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국내 파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되면 공수처의 불법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한 바 있다.

하지만 공수처 입장에선 억울한 모양새다. 법사위에 출석한 김 공수처장은 ‘윤 후보 통신자료 조회 이유’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이라 원칙적으로는 말씀을 못 드리지만 국민적 관심이 됐기에 말하자면, 현재 수사 중인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윤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지난 9월부터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수사 과정에서 불가피한 통신자료 조회였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윤 후보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도 4회, 인천지검 1회, 서울경찰청 1회, 관악경찰서 1회씩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김씨에 대해선 서울중앙지검이 5회, 인천지검이 1회 통신자료를 들여다봤다. 최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김 공수처장이 “검찰과 경찰도 조회했는데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하느냐”고 항변한 이유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그런데 문제는 윤 후보를 비롯한 사건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도 숱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자당 국회의원들도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집계에 따르면 31일 오전 8시 기준으로 국민의힘 의원 105명 중 86명에 대해 공수처가 지난 10월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 의해서 통신자료를 조회 ‘당한’ 의원들까지 모두 합치면 88명에 달한다.

이에 국민의힘은 “무소불위 권력의 불법 사찰 민낯이 드러났다”고 반발하며 김 공수처장을 고발했고, 시민단체도 “불법 사찰”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국민의힘은 선거대책본부에 ‘문재인정권 불법사찰 신고센터’도 차리며 정권 차원의 불법 사찰 의혹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대로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정말 불법일까.

통신자료 조회가 뭐길래?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이 되기는 어렵다.

여기서 언급되는 ‘통신자료’는 통신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입자 개인정보를 뜻한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통신사 가입일과 해지일 등 6가지 정보만 담긴다. 통신사 가입자의 통화내역 등 민감한 사생활 정보가 담긴 ‘통신사실확인자료’와는 다르다.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 일부ⓒ독자 제공

통신자료 조회는 통상적으로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있는 수사 대상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된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피해자나 참고인 등 수사상 반드시 연락할 필요가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목적 등으로도 실시된다.

예를 들어 A씨가 수사 대상자인데 그가 누군가와 통화했는지 수사기관이 꼭 확인해야 한다고 치자. 그래서 수사기관이 법원으로 영장을 받아 A씨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살펴봤다. 그런데 통화 상대방 중 모르는 전화번호를 발견했다면? 수사기관은 그 전화번호가 누구의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이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군지를 통신자료 조회로 확인하는 것이다.

통신자료 조회의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다. 이에 따르면 재판이나 수사 등을 위해 수사기관에서 필요할 경우 통신자료 열람을 할 수 있고, 통신사는 이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범위도 가입자 이름 등 6가지로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 근거한 통신사실확인자료와 달리 법원의 허가, 즉 영장도 필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해서 ‘불법 사찰’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윤석열은 통신자료 조회가 뭔지 알고 있었다

이를 검사 출신인 윤 후보가 모를 리가 없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검찰은 통신자료 조회를 무수히 많이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검찰이 통신사로부터 받은 가입자 ‘통신자료’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총 342만3천572건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민감한 통화내역까지 담겨 있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검찰이 확인한 ‘통신사실확인자료’도 같은 기간에 총 23만7천176건에 달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 모두 과거에 비해 점차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 후보가 과거에는 ‘통신자료 조회는 사찰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상반된 발언도 공개적으로 한 사실 역시 확인됐다.

검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이날 법사위에서 2017년도 국정감사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후보가 고 노회찬 의원의 통신자료 조회 추궁에 대해 ‘통신자료제공은 통화내역 조회 같은 것이 아닌 가입자 조회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을 공개했다.

윤 후보는 당시 “통신 조회는 통화 내역이나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는 통신 조회도 있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다”라며 “어떤 혐의자 또는 참고인에 대해서 법원에 영장을 받아서 통화내역을 조회했는데 (통화) 상대방이 수십, 수백 명이 나오면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것이고) 그 중 한 사람으로서 (통신자료 조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수사 대상이 아니어도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 조회를 당할 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이에 소 의원은 윤 후보가 공수처의 합법적인 통화내역 조회를 사찰이라고 비난하고 공수처장을 구속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바꾸기’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위헌적인 제도임에도 윤 후보 자신이 검찰총장직에 있었던 검찰은 물론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자행해 온 것”이라며 “게다가 윤 후보는 검찰총장 재직 중 수차례 있었던 사찰 및 검찰권 남용 의혹으로 수사 받고 있는 피의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윤 후보는 자신과 관련된 사찰 논란에 대해 먼저 해명과 사과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일방적인 통신자료 조회, 법 개정 시도했지만 새누리당이 막았다

참여연대가 언급했듯,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가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공수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검찰이나 경찰이 정치인이나 언론인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마다 논란이 되곤 했다. 민간에도 알게 모르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문제다.

공수처가 이번 논란에 대해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 등을 빚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수사상 필요에 의한 적법한 수사 절차라 해도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유다.

이에 지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원의 영장도 받지 않은 채 수사기관이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통신자료 조회가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법 개정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5년 11월 18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요구할 때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박민식, 배덕광 의원이 반대했다. 소위원장이었던 박민식 의원은 “사실 이것까지 영장을 (청구)하게 되면 수사를 못 하게 된다”라며 반대했고, 배광덕 의원은 “국가기관이 일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제한하는 것도 문제”라며 반대했다.

새누리당이 국민의힘의 전신이라는 점에서 보면, 지금 국민의힘이 ‘불법 사찰’을 운운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당시 회의 기록을 공개하면서 “그러게 진작에 저희가 수사기관의 통신 자료 요구를 제어할 수 있는, 아니면 적어도 본인 자료가 제공됐다는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만들자고 주장해왔던 것 아니냐”며 “국민의힘은 이번 일을 정치공세로 만들 생각만 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이참에 법을 개정하자”고 촉구했다.

2016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무단수집 행위는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며 그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조항도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5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결국 해묵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은 관련 법이 개정되거나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와야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통신자료 조회는) 헌법의 영장주의를 무력화하는 위헌적 제도”라며 “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을 바꿔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법원의 영장주의가 관철되도록 입법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헌재 역시 참여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의 심판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가 정보 주체인 당사자에게 ‘깜깜이’로 이뤄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수사기간이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사실을 알려면, 통신사 가입자가 통신사에 직접 ‘알려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그나마 이것도 최근 1년 동안 이뤄진 것만 확인할 수 있다.

통신자료 제공의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은 ‘제공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이기 때문에 통신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되는데, 수사기관의 요청에 통신사가 기계적으로 가입자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2020년 6월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 등 사업자로부터 가입자 통신자료를 요청해 제공받더라도 이용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트럼프 세력 무장 폭동'으로 시작해 '코로나 기록 갱신'으로 저무는 2021년

 [워싱턴 주간 브리핑] 2021년 미국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 5가지


 2021년이 시작될 때 많은 이들은 2020년을 규정했던 문제의 해결 방법들이 윤곽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패배 불복으로 촉발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 2020년 미국 전역에서 폭발했던 인종차별 철폐운동(Black Lives Matter)이 재각성시킨 제도화된 인종주의 등에 대한 진전과 성과를 많은 이들이 희망했다.


그러나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 지지자들에 의해 자행된 미국 의사당 무장 폭동 사건은 이런 기대가 얼마나 난망한 일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2022년을 목전에 두고 2021년을 냉정히 평가해보면 오히려 이런 문제들이 악화된 한해였다.

'2021년의 미국'은 역사책에 어떤 한해로 기록될까? 미국 언론에 소개된 미국 정치학자, 역사학자 등의 의견을 종합해 5가지 이슈로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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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6일 의회 폭동과 민주주의의 위기, 글로벌 리더십까지 잃어버린 미국


 

2021년 1월 6일 백주대낮에 발생한 의회 폭동은 전 세계인들에게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날 워싱턴DC로 모여든 트럼프 지지자들은 백악관 앞에서 트럼프의 연설을 듣고 의회로 행진해 의사당 건물을 부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확정짓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저지하려고 했다. 결정적으로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이 이 계획에 협조하지 않아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고, 바이든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 1월 21일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데이비드 브라이트 예일대 역사학 교수는 29일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일상적 쿠데타의 서막"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대선 도둑질" 주장은 초기에는 공화당 내에서도 루디 줄리아니, 로저 스톤, 스티브 배넌 등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만이 동조하는 '소수 의견'이었지만, 2021년 말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60% 이상이 동의하는 '다수 의견'이 됐다. 이 과정에는 <폭스뉴스> 등 친(親) 트럼프 언론, 정치적 이득을 위해 실체적 진실에 눈감아 버린 절대 다수의 공화당 정치인들, 트럼프 정권에서 완성된 보수 절대 우위의 연방대법원을 포함한 정치화된 사법체계 등이 역할을 했다. 브라이트 교수는 "현대사의 가장 한심하지만 성공적인 '거짓말'에 심취한 공화당은 '네오 파시즘'에 굴복했다"면서 "이념 노선을 따라 완전히 분리된 정보 유통 시스템 사이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새로운 종류의 '내전'으로 변형됐고 미국인들은 '국가'의 의미를 꾸준히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던 미국 정치 시스템 붕괴 조짐은 글로벌 리더십의 붕괴도 야기하고 있다. 마크 마저워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는 "미국은 지난 세기에 걸쳐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제도와 규범을 확립했다. 그러나 중도 보수주의가 붕괴한 미국의 현 상황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끌었던 독일과 현저하게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16년간 집권한 메르켈은 독일을 유럽의 실질적인 리더로 만든 뒤 67세라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물러났다. 이는 바이든 취임 첫해의 나이(78세)보다 10년 이상 어린 나이였다"며 "올해 말 바이든 정부가 소집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재확인한 것일까, 아니면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데이비드 레니 이코노미스트 베이징 지국장은 27일 <이코노미스트> 보도에서 "중국은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실패를 더 대조적으로 확인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확인된 국가주의의 장점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경제회복을 추진하는 반면, 미국은 내년 11월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게 되면 정치적으로 '식물' 상태에 빠지면서 더 어려움에 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자행된 1월 6일 의회 무장 폭동.ⓒCNN 화면 갈무리
 

2.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절반의 실패


 

바이든의 취임은 미국 민주주의의 '탈선'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트럼프)이 가담한 쿠데타(대선 결과 전복)가 다행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취임이 곧 '정상으로 복귀'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정권 교체만으로 노정된 문제를 해결할 추진력을 얻기엔 이미 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트럼프의 '유산'을 넘겨 받은 바이든 정부가 설정한 '방향' 자체에 대해선 이견이 크게 없다. 멕 제이콥스 프린스턴대 공공정책학 교수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2021년은 레이거니즘이 끝난 해로 기억될 것"이라며 바이든이 로널드 레이건 정부 이래로 계속된 '작은 정부'라는 지향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든의 입법 성과는 코로나19 구제책에서부터 1.2조 달러의 대규모 인프라 법안까지 FDR(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견줄 만한 것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가 출신인 데이비드 프럼 정치평론가는 지난 22일 <애틀랜틱> 칼럼에서 "바이든은 나쁜 패로 크게 이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 구제법안, 인프라 법안 통과 등을 거론하며 "바이든 정부는 의회에서 가진 힘에 비해  뛰어난 성공을 거두었다"며 "바이든은 또 75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다수가 이민 개혁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트럼프보다 두 배 많은 40여명의 연방판사들에 대한 인준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 핵심 공약의 또 한축인 1.75조 달러 규모의 사회복지법안(Build Back Better), 투표권 보장 법안 등은 여전히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특히 민주당 내 보수성향의 상원의원들(조 멘친, 커스틴 시네마)이 BBB 법안을 반대하면서 민주당 내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멘친 의원(웨스트버지니아)은 지난 22일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BBB에 찬성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정치적 양극화가 고착된 미국 정치 환경에서 바이든 정부는 실질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고정된 '당파성'에 따라 평가 받는다. 여기에 예상보다 팬데믹이 오래 지속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 등 경제 문제까지 가중되면서 바이든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처참한 수준이다. 그는 트럼프 다음으로 취임 첫해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갤럽 조사 43%)이다.


데이비드 케네디 스탠퍼드대 교수는 "전례 없이 빠른 백신 개발과 배포는 연방정부의 재정적, 인적, 과학적 자원 확보 능력을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가장 유익하게 계몽된 정책들조차도 낡은 비합리성이 얼마나 어그러뜨릴 수 있는지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3. 팬데믹의 지속,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의 시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12월 28일 기준 7일간 하루 평균 신규 코로나19 확진자수는 26만542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의 기록을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염성이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지배종이 되면서 지난 2주 사이 2배 넘게 증가한 숫자다. 29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5300만 명, 사망자 수는 82만 명 이상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7월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코로나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를 원했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코로나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집단 면역을 달성해 팬데믹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우선적인 국정 과제로 발표했다. 그러나 극도로 분열된 미국 정치는 백신 접종, 마스크 착용 등도 정치화 시켰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접종 회피로 '독립기념일 이전 성인 인구의 70%의 백신 접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변이들이 출연했고, 코로나19와 싸움은 지구적 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예상보다 길어진 팬데믹은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앤서니 클로츠 텍사스 A&M 대학 부교수는 팬데믹 기간 동안 일어난 대규모 노동자 이탈 현상에 대해 '대퇴사'라는 용어를 붙였다. 영미권 언론은 1930년대가 '대공황'의 시대였다면, 1960-80년대의 '대압착'의 시대를 지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대퇴사'의 시대에 이르게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올해 8월까지 430만 명이 일자리를 떠났다(전체 노동인구의 약 3%에 해당)고 밝혔다. 제이 자고르스키 보스턴대 경영대학원 전임 강사는 지난 11월 20일 BBC와 인터뷰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초과 근무에 시달리고 있고 인정을 받지 못하다고 느끼는 등 직장에 진저리가 나서 그만 두고 있다"고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퇴사'를 하게 된 것은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기존 일자리의 열악한 노동조건, 팬데믹으로 인한 가족 돌봄 노동의 증가, 직업과 일의 본질에 대한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대퇴사' 현상은 노동운동이 전멸했다고 볼 수 있는 미국에서 아마존, 스타벅스 등 새로운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과 고용주들의 더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 제공 약속 등 긍정적인 영향도 끼쳤지만, 여성들의 전통적인 역할로의 회귀, 빈곤 문제의 악화 등 부정적인 영향도 크다. 누가, 왜, 일자리를 떠나는가를 살펴보면 코로나19가 계층, 인종, 성별 등에 얼마나 불균등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4. 아시안 혐오범죄 등 인종주의...또 다른 전염병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종주의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더 악화됐다. 특히 이 기간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API)들은 '증오범죄'라는 가중된 인종차별 문제를 직면해야만 했다.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 'Stop AAPI Hate'에 따르면,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9월 30일까지 총 1만370건의 증오범죄가 신고됐다. 지난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아시안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알렸다. 21세의 백인 남성이 저지른 이 사건의 사망 피해자 8명 중 6명이 아시안계 여성, 특히 4명이 한국계 여성들이었다. 


 

브렌다 스티븐슨 옥스포드대 존즈 칼리지 교수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아시안이 팬더믹의 '원인'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증오범죄가 본격화 됐고, 이는 다른 인종, 성소수자, 이민자, 노인 등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증오범죄를 '또 다른 전염병'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비뚤어진 질병이 여전히 창궐했으며, 이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미국의 '정상'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 지난 3월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 직후 아시안 여성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사건 현장을 찾았다. ⓒAP=연합뉴스
 

5. 아프간 철군, "영원한 전쟁"의 종식?  


9.11 테러를 이유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2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올해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조 바이든은 지난 8월 31일 백악관 연설을 통해 미군 철군을 완료했다고 밝히면서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아프간 철군은 전임인 트럼프 행정부가 탈레반과 협상을 통해 약속한 일이며, 바이든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상과 또 한번의 테러 공격으로 미군 13명이 사망하면서 비난이 쏟아졌고, 바이든의 리더십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본격화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존 가즈비니언 펜실베이니아대 중동센터 이사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아프간 전쟁에서의 패배는 더 큰 변화의 상징"이라며 "미국은 마침내 중동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이 이 전쟁을 끝낸 것은 중국, 러시아 등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적'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다. 

 

아프간 철군 과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지만, 아프간 전쟁은 미국 입장에서도 너무 큰 희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연구소 '전쟁비용 프로젝트(Costs of War)'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지속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약 92만900명이 사망했다. 미군은 7052명 사망한 반면 이라크, 아프간, 예멘, 시리아, 파키스탄 등에서 33만5000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전쟁 난민은 약 38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쟁 비용도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미국이 9.11 이후 전쟁으로 소모한 돈은 총 2.2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는 참전용사에 대한 의료비, 복지비, 전쟁비용 이자 등이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해, 오는 2050년에는 총 8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간 철군이 바이든 정부의 주장처럼 "영원한 전쟁"의 종식인지는 의문이다. 스테파니 사벨 왓슨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지난 9월 8일 <복스>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85개국에서 대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미국에는 전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위산업체들도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많은 그늘진 방법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지난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카불 공항으로 모여든 미국인들과 아프간인들 때문에 카불 공항은 대혼란을 빚었다.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2300533342983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여자 혼자서 위험하게 귀촌? 잘 먹고 잘 삽니다

 [지리산 힙쟁이] '나눔꽃' 대표 온빛,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은 도전

21.12.31 18:57l최종 업데이트 21.12.31 18:57l
귀농·귀촌 1번지 지리산권(구례, 남원, 하동, 함양, 산청)에 사는 청년들은 독특하다. 퀴어, 페미니즘, 동물권, 비혼·비출산, 탈성장 등 진보적 의제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작지만 놀라운 실험을 벌인다. 그들은 왜 지리산 시골을 무대로 택했을까. 이전 귀농·귀촌 세대와 무엇이 다를까. 남원시 산내면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말]
▲ 온빛은 4년 전 홀로 전북 남원으로 내려왔다. 그는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을 운영하며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 김혜리
  
'나눔꽃'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자원순환가게이자 지역 핫플레이스다. 주민들이 기부한 옷과 물건들을 최소한의 금액에 재판매해 생태·친환경 문화에 힘을 보탠다. 귀촌한 돌쟁이 아기 엄마 둘이 '우리 마을에도 아름다운가게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으로 2012년 2월 문을 열어 약 10년 가까이 운영된 역사 깊은 곳이다.
 
지금까지도 40대 기혼 여성들을 주축으로 돌아가는데, 딱 한 명 비혼 여성이 있다. 20대 청년이자 나눔꽃의 대표인 온빛(26)이다.
 
온빛은 '나 홀로 귀촌' 4년차다. 동네 어른들은 "이런 시골에서 뭐 먹고 살 거야",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해"라고 걱정 어린 잔소리를 건네지만, 정작 그는 친구도 사귀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대표도 맡으며 멋지게,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오후 나눔꽃 옆 살림꽃 공방에서 온빛을 만났다. 살림꽃은 나눔꽃에 들어온 옷 등을 리폼, 새활용(업사이클링)하는 협동조합이다. 그는 나눔꽃을 운영하며 살림꽃에서도 활동 중이다.
 
반짝거리지 않아도 괜찮아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대표 온빛(26)
▲ 온빛은 세월호 참사 3년을 맞아 진행한 4.16 순례길에서 산내 생명평화대학을 알게되면서 자연스레 남원에 정착했다. 그는 이곳에서 1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며 대안적인 삶에 대해 배워나갔다. ⓒ 김혜리
   
처음부터 '귀촌해야지', '시골에 가야지' 결심하고 산내에 온 건 아니었다. 우연히 길 위에서 알게 된 대안대학 공동체를 찾아갔는데, 그곳이 마침 지리산 산골이었다.
 
경북 울진에서 나고 자라 경남 창원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그는 휴학 후 친구들과 2017년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사정이 생겨 일찍 돌아오게 됐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그에게 주변 어른이 '4.16 순례길'을 권했다. 세월호 참사 3년을 맞아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염원하며 인천항에서 팽목항까지 53일간 걷는 행사였다.
 
온빛은 군산에서부터 순례에 합류했다. 서해안 뱃길이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걸으며 다양한 결을 지닌 사람들을 만났고, 그동안 굳게 믿어온 성공의 정의가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오로지 대학 합격만을 목표로 공부만 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야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을 좀 뜨게 됐지만 여전히 성공 하면 반짝거리고,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건 줄 알았어요. 저 또한 그렇게 돼야 하는 줄 알았고요. 근데 길 위에서 참가자들과 걸으며 성찰을 하다 보니 그건 제가 원하는 성공이 아니더라고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을 살아가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삶이었어요. 가치관이 바뀐 거죠."
 
그는 순례길에서 대안대학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그중 실상사 도법스님이 만든 산내 생명평화대학에 2018년 입학했다. 1년간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자연 곁에서 스스로 살림을 꾸려가는 법을 배우며 대안적인 삶을 어렴풋이 알아갔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졸업 후엔 학교 기숙사를 나가야 했다. 다행히 실상사에서 100일간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줬지만 그는 막막했다. 행정주소만 산내일 뿐, 공동체에 있는 동안에는 마을 사람들과 만날 일이 없어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도시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당장 어디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고민하던 중 운 좋게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고, 동네 또래친구들이 머무는 셰어하우스에 자리가 났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대표 온빛(26)
▲ 온빛은 졸업 후 기숙사를 나오게 되면서 부딪힌 장벽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그는 '당장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부터 '언제 떠날 거냐'는 주민들의 냉대에 힘이 들었지만 지지해주고 연대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 김혜리
   
2019년 6월, 본격적으로 산내 마을살이가 시작됐지만 초반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을 못 잡았다. 이전과 다른 삶을 원하지만 내가 원하는 '다름'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대안적 삶이 나와 맞을까 망설였다.
 
기대와 다른 마을 현실도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온빛을 만나면 "그래서 언제 떠날 건데?"라고 물었다. 가족 단위는 정착할 확률이 높지만 청년을 '언제든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간혹 마주치는 냉대에도 피곤해졌다.
 
귀농·귀촌으로 유명한 산내 특성상 도시에서 온 사람이 많아 새로운 흐름에 열려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온빛이 알고 있는 페미니즘을 몇몇 어른들은 공감해주지 못했다. 아저씨들이 지나가며 건네는 '예쁘다'는 말이 듣기 싫었고,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이 답답했다.
 
셰어하우스에서 나와 독립한 뒤엔 동네 어른이 '절대 여자 혼자 산다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약한 존재로만 여기는 것 같아 불편했다.
 
힘들어하는 그를 보듬어준 것 역시 페미니즘, 그리고 이웃이다. 온빛은 마을 페미니즘 책 읽기 동아리에 들어가 같은 생각과 고민을 공유했고, 여성학자 박이은실이 산내에서 운영하는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에 들어가 여성과 젠더 등을 공부했다.
 
"불편하고 이상하다 느낀 감정과 감각들이 언어화되면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네 감정이 맞다'고 지지·연대해주고 '힘들면 언제든 불러'라고 말해주는 '언니'들 덕분에 산내에서 더 잘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을 꿈꾸며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대표 온빛(26)
▲ 마을 여성들의 바느질 공간이었던 살림꽃은 온빛과 구성원들에 의해 새활용 마을공방으로 재탄생했다. 온빛과 동료들의 노력을 아는 마을 주민들 덕분에 "더 잘하고 싶어진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 김혜리

나눔꽃에서 활동한 건 2020년부터다. 생태주의와 비거니즘(동물권을 옹호하며 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을 알아가면서 자원순환에도 관심을 뒀는데, 나눔꽃 멤버가 와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자연스레 살림꽃에도 참여하게 됐다. 전임자의 권유로 올해부터는 나눔꽃 대표도 맡고 있다.
 
그가 오면서 나눔꽃과 살림꽃에 변화가 일었다. 나눔꽃에선 한달에 300벌의 옷이 순환될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지만, 물건 당 1000원~2000원에 판매하다 보니 수익이 미미하다. 월 3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자원봉사자에게 나눠주는 정도다. 온빛 역시 삼선재단에서 지역 청년활동에게 지원하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으며 생활한다.
 
누군가 입던 옷, 쓰던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도 나눔꽃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 누군가 다시 입거나 쓸 수 있는 깨끗한 상태로 보내야 하지만 가끔 더럽거나 망가진 채로 오기도 한다.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넘어 수익·이미지의 개선이 필요했다. 지역 시민단체인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지원사업에 응모해 사연 인터뷰와 전시회를 열고 나눔꽃이 얼마나 지역에 중요한 자산인지 알렸다.
 
들어온 물건의 장점과 사연도 페이스북을 통해 열심히 홍보 중이다. 한번은 아이 옷 사진 게시물에 달린 한 주민의 댓글이 화제기 됐다. "이거 10년 전 제가 냈던 건데...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입던 게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으니 신기하네요." 아이들 장화 옆에는 신었던 아이들의 이름이 줄지어 적혀 있다. 온빛과 동료들의 노력을 아는 마을 주민들은 고마움을 표한다. "그런 걸 보면 재밌고 뿌듯해 나눔꽃 활동을 더 잘하고 싶어진다"고.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내부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내부 ⓒ 김혜리
 전북 남원시 산내면 살림꽃 협동조합 펼침막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살림꽃 협동조합 펼침막 ⓒ 김혜리

살림꽃 역시 지금의 협동조합이 된 건 올해 4월부터다. 이전까지는 그저 마을 여성들의 바느질 공간이었다. 업사이클링 활동의 가치를 오래, 더 널리 지속하고 싶어 온빛과 구성원들이 남원시 농촌 신활력플러스사업에 지원해 새활용 마을공방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제는 수익이 생기면 조합원들이 나눠가지는 구조다.
 
살림꽃에서 새활용한 제품은 가방, 수납 바구니, 필통, 책꽃이, 물병 주머니 등. 지난여름에는 쓸모를 다한 청바지와 안 입는 유아 원피스로 '힙한' 버킷햇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인기가 좋았다.
 
"좋은 공익활동이니까 친구들에게 같이하자고 제안하고 싶은데 말을 못해요. 급여를 줄 만큼 수익이 안 나니까요. 어떻게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에요. 단 한 명이라도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사업적 관점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년엔 브랜딩·마케팅 측면에서 집중해보려고요. 가치를 계속 잘 전달하다 보면 수익적으로도 활로가 생기지 않을까요."
 
올해 들어 '에코페미니즘'을 삶의 방향으로 정한 온빛은, 적어도 이곳만큼은 모두에게 불평등하지 않길 바라며 새로운 상상을 한다. 비건(완전채식)을 실천하게 된 온빛은 올해 친구들과 '오이밥(오 이런 밥상이)'이라는 채식 모임을 만들어 함께 요리하고, '쑥덕쑥덕 채식 수다회'를 열어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밖에도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피켓팅 등 친구들과 함께 마을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 최근엔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여성회의'에 참여해 지역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응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워크숍을 함께 기획한다.

"도시 활동가 중에서 산내에 놀러왔다가 살게 된 친구들이 꽤 있거든요. 앞으로도 산내를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안전함을 느끼도록 해주는 좋은 친구와 어른들이 있으니 언제든 오세요. 환영입니다(웃음)."
태그:#지리산

남북․북미관계 교착 원인은 ‘평화프로세스’

 

[연말 인터뷰] ‘두물머리 이장’ 윤종일 신부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12.31 16:43
  •  
  •  수정 2021.12.31 19:46
  •  
  •  댓글 0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윤종일 신부는 [통일뉴스]와의 연말 서면인터뷰를 통해 남북, 북미관계의 교착 원인을 짚고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제공 - 윤종일 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윤종일 신부는 [통일뉴스]와의 연말 서면인터뷰를 통해 남북, 북미관계의 교착 원인을 짚고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제공 - 윤종일 신부]

“저는 비핵화(CVID)를 출발에 두는 북미대화는 반복적인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 평화 후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프로세스는 긴장과 대화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답답했던 올해를 결산하며 ‘두물머리 이장’ 윤종일 신부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짚었다. ‘두물머리 이장’ 애칭은 윤 신부가 3년간 4대강사업 저지투쟁을 성공으로 이끌며 지역 농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작위인 셈이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관구장을 역임한 윤종일 신부는 [통일뉴스]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교착 원인을 “북미대화는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대화를 하고, 남북대화는 ‘선 평화 후 통일’을 지향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확언했다.

그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말과 행동방식’에 주목하고 “만남-대화-이해-용서-화해의 과정을 거쳐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며 “명칭을 화해프로세스로 바꾸고 화해의 과정을 실천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당면한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화해세력이 단결하여 민족대결세력을 극복했으면 좋겠다”면서 “새 정부는 자기역할이 제한된 비핵화 보다 실현가능한 화해프로세스에 집중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6.15선언 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점에 주목을 돌렸다.

다음은 윤종일 신부와의 연말 서면인터뷰 내용이다.

윤종일 신부는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프로세스 보다는 화해프로세스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 윤종일 신부]
윤종일 신부는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프로세스 보다는 화해프로세스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 윤종일 신부]

□ 통일뉴스 : 신부님은 ‘두물머리 이장’이라는 애칭을 갖고 계신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 윤종일 신부 : 4대강사업 저지투쟁 때, 얻은 관직(?)입니다. 4대강사업 저지 천주교 연대가 두물머리에서 3년간 유기농업과 한강을 보존하는 투쟁을 했습니다. 그때 유기농민들이 붙여준 애칭입니다.

□ 신부님은 두물머리 정신으로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두물머리는 태백산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시작한 북한강이 하나로 만나는 곳입니다. 남북의 두 물길이 하나로 만나는 이곳은 뭇 생명들이 우글거리고 평화로운 광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과 평화를 두물머리 정신을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정신을 강조하면서, 생명과 평화의 열쇠로 화해와 통일의 문을 열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올해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이 이루어진지 30년이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에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여러 정치․군사적인 요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교착상태의 원인을 대화방식에서 찾고 싶습니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은 ‘선 평화 후 통일’과 ‘비핵화 평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노선위에서, 북미대화는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대화를 하고, 남북대화는 ‘선 평화 후 통일’을 지향하며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대화방식이 교착상태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의 진행방식, 즉 입구-과정-출구의 설정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북미대화는 비핵화(CVID)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핵화는 북미대화의 출구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북미가 대화하는 이유이고 대화를 통해 도달해야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남북대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화의 노선이 ‘선 평화 후 통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적 사유에 따르면, 평화는 궁극적 가치이고 최종목표입니다. 여러 과정을 통해 도달해야할 목표입니다. 평화는 대화와 이해와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목표입니다. 그런데 평화프로세스는 평화를 통일에 앞에 둠으로써 대화진행이 어렵고 교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적으로도 통일이 없으면 지속가능한 평화가 불가능하고 군사적 긴장을 가져옵니다.

이와 같은 철학적 인식에 따라, 저는 비핵화(CVID)를 출발에 두는 북미대화는 반복적인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 평화 후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프로세스는 긴장과 대화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회칙 ‘모든 형제자매들(Fratelli Tutti)’을 발표한 지난 10월 윤종일 신부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소재 ‘정하상 바오로 수도원’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교황의 방북을 제안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회칙 ‘모든 형제자매들(Fratelli Tutti)’을 발표한 지난 10월 윤종일 신부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소재 ‘정하상 바오로 수도원’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교황의 방북을 제안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그렇다면 이런 교착상태를 어떻게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까?

■ 저는 가장 보편적인 인식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대화에서도 그렇습니다. 북미대화는 전제조건(CVID)이 없이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남북대화는 ‘선 통일 후 평화’로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핵무기는 전쟁무기가 아니라 협상무기입니다. 왜냐하면 핵무기는 서로에게 가공할 공포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의 균형은 전쟁이 아니라 협상을 강제하고 일방주의가 아니라 상호주의를 요구합니다.

저는 북측의 핵무기 개발이 공포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김일성 주석과 그의 동지들은 항일 빨치산 활동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체험했습니다. 막강한 일본군대가 핵무기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에 맥아더의 핵무기 사용의 위협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한국전쟁 후에도 그들은 미국의 핵공격의 공포에 떨었습니다.

저는 이런 공포가 북측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병영국가와 선군정치를 하게 했다고 봅니다. 한국전쟁 후 그들은 전국토를 요새화하고 핵무기 개발에 집착했습니다. 마침내 핵무기를 완성하고 공포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그들에게 일방적이고 전제조건이 따르는 대화는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대북제재와 압박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북미대화는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대화의 방식을 따라야 교착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방식, 즉 ‘정-반-합’의 변증법적 방식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발전적 과정을 통해 완성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대화방식이 지금까지의 대화현장에서 있어왔다고 봅니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말과 행동방식’이 그것입니다.

저는 남북대화가 교착상태를 극복하려면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철학적 인식론에 따르면, 평화는 궁극적 가치이며 목표입니다. 그런데 평화프로세스는 ‘선 평화 후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를 과정에 두는 인식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류는 과정에서 실천해야할 화해의 정책을 소홀히 하게 합니다.

한반도 평화는 비핵화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과 70년의 갈등과 반목은 화해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만남-대화-이해-용서-화해의 과정을 거쳐 평화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교류와 협력, 연대와 연합, 연방과 통일의 과정을 거쳐 한반도 평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명칭을 화해프로세스로 바꾸고 화해의 과정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윤종일 신부는 공개 강론을 통해 화해와 통일을 위한 메시지를 발신해 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윤종일 신부는 공개 강론을 통해 화해와 통일을 위한 메시지를 발신해 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진행시켰으면 좋겠습니까?

■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화해세력이 단결하여 민족대결세력을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새 정부는 자기역할이 제한된 비핵화 보다 실현가능한 화해프로세스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이중에서도 6.15 공동선언 2항의 실천방안을 찾았으면 합니다.

저는 남북대화의 최종목표가 민족화해와 통일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표로 가는 지도와 나침판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외적 여러 요인으로 남북대화가 북미대화에 종속되고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이정표가 있어야 제재와 압박을 뛰어넘으면서 민족대단결을 할 수 있습니다. 새 정부가 자기역할의 가능성과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서 화해프로세스를 펼쳐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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