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7일 일요일

대미징벌의지 시위한 선제핵타격모의시험

[개벽예감214] 대미징벌의지 시위한 선제핵타격모의시험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6/08/08 [10:3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아홉 차례의 선제핵타격연습, 다섯 차례의 선제핵타격모의시험
2. 청년영웅도로와 서해갑문 언제도로 통과한 화성-7 자행발사대
3. 뜻밖의 교란전술에 말려든 미국군 미사일경보체계
4. 일본 배타적경제수역 안쪽 120km 해상에 떨어진 화성-7
5. 유엔군전초기지와 유엔군주력기지 날려버릴 화성-7

▲ <사진 1> 2016년 8월 6일 미공군 전략폭격기 B-1B 편대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었다. 이것은 미국이 조선을 겨냥한 선제핵타격연습을 올해 들어 아홉 번째로 감행하였음을 말해준다. 위쪽 사진은 미공군 전략폭격기 B-1B가 앤더슨공군기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B-1B 조종실 내부 모습이다. 이 전략폭격기의 비행속도는 마하 1.25이며, 항속거리는 9,400km이며, 56,000kg의 각종 폭탄을 싣는 폭탄창에는 정밀유도폭탄, 기화폭탄, 집속폭탄, 핵폭탄 등이 실린다. 현재 미공군은 B-1B 전략폭격기를 100대 보유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아홉 차례의 선제핵타격연습, 다섯 차례의 선제핵타격모의시험

올해 2016년 1월부터 8월 초까지 미국이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여 조미핵대결을 발화점으로 끌어간 적대행동은 거의 매달 빠짐없이 감행되었다. 재래식 타격수단을 동원한 미국의 대조선적대행동들은 너무 많아서 제외하고, 핵타격수단을 동원한 대조선적대행동만 날짜별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 1> 

1월 10일 제1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공군 전략폭격기 B-52 1대가 평택의 오산미공군기지로 출동

2월 17일 제2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공군 스텔스전투기 F-22 4대가 평택의 오산미공군기지로 출동

3월 9일 제3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공군 전략폭격기 B-2 3대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로 전진배치

3월 24일 제4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해군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를 주축으로 하는 항모전투단이 동해로 출동하여 한국 해군 제1해상전투단과 함께 대조선합동공격연습 감행

6월 13일 제5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해군 전략핵잠 미씨씨피호가 부산의 해군작전기지로 출동

6월 13일부터 20일까지 기간 중 제6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공군 전략폭격기 B-52 2대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한반도 인근 공역까지 북상, 접근하는 공중핵타격연습 감행.

6월 30일 제7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해군 전략핵잠 오하이오호가 일본 가나가와현 요꼬스까의 미해군기지로 출동

8월 2일 제8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공군 F-16 전투기 12대가 평택의 오산미공군기지로 출동

8월 6일 제9차 선제핵타격연습 = 미공군 전략폭격기 B-1B 편대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로 전진배치

위에 열거한 아홉 차례의 선제핵타연습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올해 들어와 미국은 핵타격수단들인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스텔스전투기, 전략핵잠을 모조리 동원하여 조선에 대한 선제핵타격연습을 강행하고 있다. 만일 조선의 폭격기, 전투기, 전략핵잠이 미국 뉴욕 인근 대서양에 속속 출현하여 미국에 대한 선제핵타격연습을 감행한다면, 조미핵대결을 발화점으로 끌어가는 장본인이 조선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위에 서술한 것처럼 올해 들어와 미국이 감행해온 아홉 차례의 대조선선제핵타격연습은 조미핵대결을 발화점으로 끌어가는 위험한 도발자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또 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사진 2> 올해 들어 8월 초까지 무려 아홉 차례나 거듭된 미국의 대조선 선제핵타격연습에 대응하여 조선은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을 다섯 차례 진행하였는데, 여기에는 핵탄두를 장착하는 화성 계열의 각종 탄도미사일들이 동원되었다. 위쪽 사진은 화성-5 자행발사대의 기동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화성-6 자행발사대의 기동장면이다. 화성-5와 화성-6은 4축8륜 자행발사대에 각각 탑재되기 때문에 얼핏 보면 구분하기 어렵지만, 화성-5 탄체길이는 화성-6보다 짧아서 탄두부 첨두의 뾰족한 끝부분이 4축8륜 자행발사대의 맨 앞부분에 미치지 못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스텔스전투기, 전략핵잠이 각각 동원된 미국의 아홉 차례 선제핵타격연습에 대응하여 조선은 올해 들어와 8월 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총 11발의 화성 계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을 진행하였다. 그 진행일정을 날짜별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 2>

3월 10일 제1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 = 화성-9 두 발 발사
3월 18일 제2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 = 화성-7 세 발 발사
6월 22일 제3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 = 화성-10 두 발 발사
7월 19일 제4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 = 화성-6 한 발, 화성-7 두 발 발사
8월 3일 제5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 = 화성-7 한 발 발사

미국은 지난 시기에도 조선에 대한 선제핵타격연습을 수없이 감행해왔지만, 올해처럼 아홉 차례에 걸쳐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스텔스전투기, 전략핵잠을 골고루 동원하여 집중적인 선제핵타격연습을 감행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다른 한편,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에 맞선 조선도 지난 시기 대응타격연습을 수없이 해왔지만, 올해처럼 다섯 차례에 걸쳐 화성 계열 탄도미사일 11발을 발사하여 집중적인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을 진행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홉 차례에 걸친 미국의 선제핵타격연습과 다섯 차례에 걸친 조선의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은 올해 들어와 조미핵대결이 발화점에 근접하면서 매우 위험천만한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 8월 3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진행한 제5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에 대해 분석한다.


2. 청년영웅도로와 서해갑문 언제도로 통과한 화성-7 자행발사대

한국군 합참본부가 2016년 8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당일 오전 7시 50분쯤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 한 발이 동해 쪽으로 약 1,000km를 날아갔다고 한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그 탄도미사일이 황해남도 은율군의 어디에서 발사되었는지도 밝히지 않았고, 그 탄도미사일이 동해의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충청북도 청주시보다 조금 더 넓은 황해남도 은율군 어디에서 발사되었는지도 밝히지 않았고, 한반도보다 4.3배나 더 넓은 우리나라 동해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밝히지 않았으니,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이처럼 탄도미사일의 발사구역과 낙탄구역을 모호하게 밝힌 까닭은, 그들에게 정확한 식별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발사구역과 낙탄구역은 한국군이 운용하는 저급한 성능의 방공레이더로는 식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군이 운용하는 고급한 성능의 조기경보레이더도 식별하지 못하고, 심지어 미국군 정찰위성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다. 그들이 제대로 식별하는 것은, 조선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비행궤도 뿐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이 탄도미사일이나 방사포를 발사한 ‘발사원점’을 찾아내서 그보다 몇 배의 화력타격으로 보복하겠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는 완전한 허풍임을 알 수 있다.

▲ <사진 3> 2016년 8월 3일 황해남도 은율군의 어느 구역에서 동해쪽으로 발사되어 약 1,000km를 날아간 탄도미사일은 화성-7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운용하는 화성-7은 사거리가 1,500km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이다. 그 날 새벽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는 청년영웅도로와 서해갑문 언제도로를 통과하여 황해남도 은율군에 들어선 뒤 화성-7 한 발을 발사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미국군 정찰위성의 감시망을 따돌리고 고속도로를 신속히 통과할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위의 사진은 열병행진에 등장한 화성-7 자행발사대의 기동장면이다. 화성-7이 화성 계열의 다른 탄도미사일들과 구분되는 특징은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다는 점이다. 조선의 탄도미사일들 가운데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되는 탄도미사일은 화성-7밖에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황해남도 은율군의 어느 구역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동해 쪽으로 약 1,000km를 날아갔으니, 화성-7을 발사한 것이 틀림없다. 아홉 종에 이르는 화성 계열 탄도미사일들 가운데 화성-6의 사거리는 700km이고, 화성-8은 존재하지 않고, 화성-9의 사거리는 3,000km이므로, 1,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탄도미사일은 화성-7밖에 없다. 화성-7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운용하는, 사거리가 1,500km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이다.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화성-7의 사거리가 1,300km라고 보도하였는데, 그것은 25년 전에 나온 낡은 정보를 수정,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전한 오보다. <사진 3>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은율군의 어느 구역에서 발사한 화성-7이 약 1,000km를 날아가 떨어진 동해의 낙탄구역이 어디인지를 밝힌 쪽은 일본 방위성이었다. 그들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 아끼따(秋田)현 오가(男鹿)반도에서 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동해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낙탄하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군 합참본부는 발사구역이 은율군 안에 위치한다는 정보만 알았을 뿐 낙탄구역이 동해의 어느 해상구역 안에 위치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탄도미사일은 둥근 지구표면을 넘어 곡선으로 날아가는데 비해, 레이더 전파는 직선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레이더는 둥근 지구표면을 넘어 곡선으로 날아간 탄도미사일의 종말비행궤도를 파악할 수 없고, 중간비행궤도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은 일본 방위성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둥근 지구표면 너머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의 초기비행궤도를 파악할 수 없고, 중간비행궤도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군 합참본부는 낙탄구역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일본 방위성은 발사구역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포착하기 쉬운 개활지나 고속도로에서 발사하는 담대한 발사연습을 계속 진행하는데도, 미국군 정보당국은 화성포병부대들의 미사일발사정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한국군 관계자의 아래와 같은 발언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 2014년 7월 13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탄도미사일을 쏠 때 “예전에는 통신감청을 통해서도 발사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지만 올해 들어 시험발사 전에 일절 통신을 하지 않고 있다. 발사장소와 시간이 불규칙하고 감시장비를 회피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사전발사징후를 포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노컷뉴스> 2014년 7월 13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북한이 기만전술에 능해 가짜 이동식 발사차량을 운용하거나 철저하게 은폐, 엄폐한 뒤 기습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사진 4>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은 탄도미사일을 실은 자행발사대를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출동명을 받는 즉시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출발시켜 발사위치까지 20-30km를 신속히 이동시켜 발사한다. 조선의 고속도로들은 자행발사대의 신속한 장거리이동에 사용되고 있는데, 평양에서 남포까지 이어지는 청년영웅도로도 그렇게 사용된다. 위의 사진은 청년영웅도로의 한 구간을 촬영한 것이다. 왕복 10차선 고속도로인 청년영웅도로의 길이는 46.3km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의 출동양상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2014년 7월 10일 보도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는 탄도미사일을 실은 자행발사대를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출동명령을 받는 즉시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출발시켜 발사위치까지 20~30km를 이동시켜 발사한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발사징후를 미국군 정찰위성에게 노출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발사하는데, 이것을 무징후기습발사전술이라 한다. <사진 4>

황해남도 은율군은 대동강 하구와 서해에 접해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화성-7 자행발사대를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출동시켜 은율군의 발사구역까지 이동시키려면, 평양과 남포 사이의 46.3km 구간을 잇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그 고속도로가 바로 청년영웅도로인데, 청년영웅도로를 타고 가면 대동강 하구에 건설된 서해갑문을 만나게 된다. 화성-7 자행발사대가 대동강 하구를 건너 은율군에 들어려면, 서해갑문의 8km 구간에 놓인 갑문언제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지난 8월 3일 새벽 지하미사일기지를 출발한 화성-7 자행발사대는 미국군 정찰위성의 감시망을 따돌리면서 청년영웅도로와 서해갑문 언제도로를 전속력으로 통과하여 은율군의 어느 발사구역까지 신속히 이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뜻밖의 교란전술에 말려든 미국군 미사일경보체계

<경향신문> 2016년 8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미국 전략사령부는 화성-7이 황해남도 은율군이 아니라 황해북도 황주군에서 발사되었다고 하면서, 한 발이 아닌 두 발이 발사되었다고 발표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화성-7 한 발이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발사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미국 전략사령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황해남도 은율군 중앙부에서 황해북도 황주군 중앙부까지 직선거리는 약 50km이므로, 화성-7이 어느 군에서 발사되었는지 혼동할 수 없다. 또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비행궤적이 조기경보레이더 화면에 명확하게 나타나므로, 화성-7 몇 발이 발사되었는지도 혼동할 수 없다. 그런데 왜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와 미국 전략사령부의 발표가 달랐던 것일까?

조선의 미사일발사정황을 집중적으로 감시, 식별하는 쪽은 한국군이 아니라 미국군이다. 미국군은 한국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성능첨단장비를 갖추고 조선의 미사일발사정황을 손금 보듯 24시간 감시한다. 그러므로 한국군은 조선의 미사일발사정황에 관한 정보를 미국군으로부터 넘겨받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다.

▲ <사진 5-1> 2016년 8월 3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황해남도 은율군의 어느 구역에서 화성-7을 발사하였을 때, 미국군 정보당국은 완전히 헷갈렸다. 그들은 화성-7이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발사되었는지 아니면 황해북도 황주군에서 발사되었는지 헷갈렸으며, 화성-7이 한 발 발사되었는지 아니면 두 발 발사되었는지도 헷갈렸다. 정보판단에서 혼란이 조성된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미국군 미사일경보체계가 뜻밖의 교란전술에 말려들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혼란에 빠뜨린 교란전술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과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실전분위기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이다. 탄도미사일을 한 종류만 발사하지 않고,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발사하고, 300mm 방사포를 함께 발사하는 것이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이다. 그렇게 혼합사격을 하면, 미국군 정보당국이 화성-7의 비행궤적을 분간하지 못한다. 위의 사진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신형 300mm 방사포를 시험사격하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 8월 3일 한국군 합참본부는 처음에 화성-7이 한 발 발사되었다고 발표하였다가, 몇 시간 뒤 미국 전략사령부가 화성-7 두 발이 발사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발은 발사된 직후 공중폭발하였다고 발표하자, 자기들의 발표내용을 미국 전략사령부의 발표내용으로 황급히 변경하였다. 이것은 미국군 정보당국이 화성-7이 정확하게 몇 발 발사되었는지 분간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화성-7이 한 발 발사된 것 같기도 하고, 두 발 발사된 것 같기도 한 정황이 나타난 것이다. <사진 5-1>

미국군 정보당국은 왜 그처럼 화성-7 발사정황을 제대로 분단하지 못하고 헷갈렸던 것일까? 그 까닭은 미국군 미사일경보체계가 뜻밖의 교란전술에 말려들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군 미사일경보체계를 혼동에 빠뜨린 교란전술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과 서부전선화력타격부대들이 실전분위기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이다.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이란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화성-7을 동해로 발사할 때, 다른 지역에 배치된 화성포병부대가 그와 다른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거의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발사할 뿐 아니라, 조선인민군 서부전선타격부대도 대구경방사포를 거의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연속발사하는 매우 특이한 사격술을 말한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과 서부전선타격부대가 그런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을 연습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은 <교도통신> 2016년 8월 5일부 보도기사에서 밝혀졌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화성-7이 발사되기 전후에 “복수의 로켓포와 단거리미사일도 발사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로켓포는 사거리가 200km인 300mm 방사포를 뜻하고, 여기서 말하는 단거리미사일은 사거리가 550km인 화성-5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은율군의 어느 발사점에서 화성-7을 동해로 한 발 발사할 때, 다른 화성포병부대가 제2발사구역에서 화성-5을 동해로 두 발 발사하였고, 다른 방사포부대가 제3발사구역에서 300mm 방사포 여덟 발을 동해로 거의 동시에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탄도미사일과 조종방사탄을 모두 11발이나 동시다발로 쏜 것이다. 서로 다른 사거리의 길이를 생각하면, 서해 해안지대로 화성-7 자행발사대 한 대가 출동하였고, 서해와 동해의 중간지대에 화성-5 자행발사대 두 대와 300mm 방사포 1문이 각각 출동하여 동해 상공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5-2>

▲ 북의300mm 신형대구경방사포 로켓포탄이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비상하는 장면     ©자주시보

서로 다른 지역들에 출동한 화성-7, 화성-5, 300mm 방사포가 같은 방향으로 거의 동시에 발사되면, 3개의 탄도미사일 비행궤적과 8개의 조종방사탄 비행궤적이 한꺼번에 상대편의 레이더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레이더 화면에 나타난 11개의 비행궤적들은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광점(point of light)들의 비행궤적으로 표시되는데, 그 광점들 가운데서 화성-7을 표시한 어느 한 개의 광점을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전략사령부가 이번에 화성-7이 발사된 지역을 황해북도 황주군으로 오인한 까닭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화성-7 한 발을 발사하는 시각에 맞춰 은율군보다 동쪽에 있는 황해북도 황주군에서 다른 화성포병부대가 화성-5 두 발을 거의 동시에 발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전략사령부가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화성-7 두 발을 발사하였다고 발표한 까닭은, 거의 동시에 동해쪽으로 날아간 화성-7의 비행궤적과 화성-5의 비행궤적을 구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전략사령부가 이번에 발사된 화성-7 두 발 가운데 한 발은 발사된 직후 공중에서 폭발하였다고 발표한 까닭은, 화성-7과 함께 발사된 화성-5 두 발 중에서 한 발은 일정한 고도에서 터지는 공중폭발시험에 사용되었는데, 미국군 정보당국이 공중폭발시험을 공중폭발사고로 오인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화성-5 두 발을 발사하면서 그 중에서 한 발을 공중폭발시험에 사용한 까닭은, 미사일을 일정한 고도에서 공중폭발시키면 수많은 파편들이 공중에 흩어져 관성비행을 하면서 상대편 조기경보레이더의 표적식별을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교도통신>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을 이번에 처음 연습한 것이 아니라 지난 6월 22일 화성-10 두 발을 발사하였을 때도 연습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함경남도 호도반도의 미사일발사장에서 화성-10 두 발을 발사할 때, 강원도 원산의 갈마공항 인근에서 다른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한 것이다.

그런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을 실행하려면 탄도미사일 자행발사대 3대와 방사포 1문이 서로 다른 발사위치로 각각 출동하여야 한다. 자행발사대 3대와 방사포 1문이 각자 지하기지들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발사위치로 이동할 때, 미국군 정찰위성에게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아야 하고, 서로 다른 발사위치들에서 각자 정해진 시각에 동시다발로 발사할 때도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무선통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무징후기습발사전술을 고도로 훈련해야 동시다발혼합사격술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무징후기습발사와 동시다발혼합사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4. 일본 배타적경제수역 안쪽 120km 해상에 떨어진 화성-7

사거리가 1,500km인 화성-7에 비핵탄두를 장착하여 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파괴력이 강한 고폭탄두라도 그 파괴범위는 반경 50~60m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1,500km를 날아가면서 그처럼 좁은 범위밖에 파괴할 수 없는 탄도미사일은 제작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모의핵탄두를 장착한 화성-7이 발사되는 법이다. 이번에도 그러하였다.

모의핵탄두는 크기, 모양, 무게를 실제핵탄두와 똑같이 만든 것이다. 조선에서 제조된 전술핵탄두는 무게가 약 300kg인 소형 핵탄인데, 선제핵타격으로 교전국의 군사전략거점을 날려보낼 때 사용하게 된다. 그에 비해, 조선에서 제조된 전략핵탄두의 무게는 약 700kg인데, 조선이 미국의 선제핵타격을 받았을 때 미국 본토에 대한 보복핵공격으로 미국을 멸망시키거나 전자기파(EMP)공격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완전히 마비시킬 때 사용되는 것이다.

화성-7은 주일미국군기지를 선제핵타격으로 파괴할 때 사용되는 미사일이므로, 이번에 발사된 화성-7에는 무게가 약 300kg인 모의전술핵탄두가 장착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모의핵탄두는 지상의 타격대상에 직접 부딪쳐 충돌폭발하는 게 아니라 40km 이하의 저고도에 이르렀을 때 자동기폭장치를 가동하여 공중폭발하는 것이므로, 이번에 발사된 화성-7도 약 1,000km를 날아가 일본 배타격경제수역 안의 목표구역 상공에 이르렀을 때, 자동기폭장치를 가동하여 모의전술핵탄두를 공중폭발시켰다. 모의핵탄두가 공중에서 폭발하면, 잘게 부서진 수많은 파편들이 그 일대의 넓은 해상구역에 쏟아져 내리게 된다. 충돌폭발이 아니므로, 넓은 해상낙탄구역은 형성되지만 어느 한 점으로 표시되는 해상탄착점이 형성될 리는 없다.

▲ 북이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쏜 화성미사일이 1천km를 비행하여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떨어졌다.     ©자주시보
▲ <사진 6> 2016년 8월 3일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발사된 화성-7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 120km 해상에 떨어져 일본을 충격과 공포로 뒤흔들어놓았다. 만일 화성-7의 사거리를 500km 정도 줄이지 않고 원래 사거리로 발사하였더라면, 일본 열도의 태평양쪽 해안에서 약 100km 밖의 해상에 낙탄하였을 것이다. 일본 영토 전역이 화성-7의 사정권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화성-7의 충격으로 발칵 뒤집힌 일본은 미국산 저고도미사일방위체계인 페이트리엇 요격미사일체계를 증강배치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위의 사진은 일본 도꾜에 있는 방위성 청사 주변에 배치된 페이트리엇 요격미사일체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미사일방위체계로는 화성-7을 요격하지 못한다. 조선이 화성-7을 쏘면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아야 하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일반적으로 배타적경제수역은 해안선으로부터 약 370km 밖까지 이르는 수역을 말하므로, 이번에 조선에서 발사된 화성-7은 아끼따현 오가반도에서 동해로 약 250km 나간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 안쪽으로, 다시 말해서 일본 배타적경제수역 안으로 120km나 아주 깊숙이 들어가 떨어진 것이다.
만일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화성-7의 사거리를 약 500km 줄이지 않고 원래 사거리로 발사하였더라면, 일본 열도의 태평양쪽 해안에서 약 100km 밖의 해상까지 날아가 낙탄하였을 것이다. <사진 6>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일본이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일보> 2016년 8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가 화성-7을 발사하였을 때 “일본 열도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고 한다. 아베 신조(安培晉三) 일본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급히 소집하여 대응방안을 협의하느라고 법석을 떨었고, 일본의 “주요방송은 출근길 시민들에게 실시간 속도로 북한 미사일 발사소식을 내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화성-7을 정작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으니, 그들은 주일미국군이다. 주일미국군은 조선인민군이 화성-7을 주일미국군기지들을 향해 불시에 발사하는 선제핵타격으로 ‘최후결전’을 시작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화성-7은 무징후기습발사전술과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을 응용하여 일제히 발사되기 때문에, 일본에 설치된 조기경보레이더는 완전히 교란당할 것이고, 주일미국군은 화성-7의 선제핵타격을 받아 궤멸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실행한 화성-7 발사는 무징후기습발사전술과 동시다발혼합사격술을 응용한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5. 유엔군전초기지와 유엔군주력기지 날려버릴 화성-7

한반도에서 6.25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던 1951년 9월 8일 미국이 일본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할 때, 딘 애치슨(Dean G. Acheson)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요시다 시게루(吉田武) 당시 일본 총리를 만나 별도의 군사협정을 체결하였다. 그것이 바로 ‘미일안보조약체결에 즈음하여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과 요시다 일본 총리가 교환한 공문(Notes Exchanged between Secretary of State Acheson and Prime Minister Yoshida at the Time of the Signing of the Security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Japan)’이다. 그 군사협정에 이런 문구가 있다. “미일안보조약이 발효된 이후, 유엔회원국이나 유엔군이 극동지역에서 어떤 유엔행동에 참여하는 경우, 일본은 유엔군을 지원할 것이다.” 여기서 유엔군이란 주한미국군과 주일미국군을 뜻하며, 유엔행동이란 미국의 대조선전쟁을 뜻한다. 애치슨-요시다 군사협정이 6.25전쟁 중에 체결된 것은 그것이 미국의 대조선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협정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애치슨-요시다 군사협정은 미국이 조선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 일본은 미국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미국은 애치슨-요시다 군사협정에 따라 주일미국기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유엔군을 대조선전쟁에 유엔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출전시킬 수 있다.

▲ <사진 7> 이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초 중국 어선들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강행하는 불법조업을 단속, 퇴치하기 위해 유엔군기를 달고 서해 분쟁수역에 출동한 한국군 해병대 고속단정의 해상기동장면이다. 한국군 해병대가 왜 유엔군기를 달았을까? 미국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만이 아니라 주일미국군까지 유엔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도록 유엔군사령부 지휘체계를 확장해놓았다. 그로써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자기 휘하의 주일미국군에게 일본의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시에는 주일미국군을 한반도 전선에 출전시키면서 일본의 무제한적인 전시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주일미국군은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유엔군주력부대다. 따라서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한국에 주둔하는 유엔군전초부대들은 물론이고, 일본에 주둔하는 유엔군주력부대들까지 집중적으로, 선제적으로 공격하게 되었다.     © 자주시보

원래 미국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만이 아니라 주일미국군까지 유엔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도록 유엔군사령부 지휘체계를 확장해놓았다. 따라서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자기 휘하의 주일미국군에게 일본의 군사기지를 무기한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전시에는 주일미국군을 한반도 전선에 즉각 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사진 7>

미국은 일본 영토에 해병대기지 35개, 해군기지 31개, 공군기지 20개, 육군기지 15개,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의 공동기지 49개를 설치해놓고, 거기에 유엔군기를 달아놓았다. 미국의 해외군사기지들이 여러 친미추종국들에 설치되었지만, 일본처럼 150개나 되는 미국군기지들이 설치된 나라는 없다.
사람들은 일본 영토에 설치된 150개의 미국군기지들이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서울 용산기지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관리하는 유엔군후방기지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군사기지들은 후방기지가 아니라 주력기지다. 왜냐하면, 유엔군주력부대들은 모두 일본에 주둔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일본에 주둔하는 유엔군주력부대의 핵무기고에 각종 핵무기를 비밀리에 배비해놓고, 그 부대들을 동원하여 핵전쟁연습까지 진행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유엔군이라는 이름을 도용하여 핵전쟁연습까지 자행하는데도 유엔은 그런 불법행위를 제지하지 못한다. 미국이 일본에 주둔하는 유엔군주력부대의 핵무기고에 각종 핵무기를 비밀리에 배비해놓고, 그 부대들을 동원하여 핵전쟁연습까지 진행하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의 핵무기연구자 핸스 크리스텐슨(Hans Kristensen)이 기밀해제된 비밀문서들을 분석하여 작성한 장문의 논문 ‘미국 핵우산 아래의 일본(Japan Under the US Nuclear Umbrella)’에서 드러난 바 있다. 실상이 그런데도 일본은 미국이 일본 영토에 핵무기를 배치한 것과 일본 영토 안에서 핵전쟁연습을 감행한 것을 은폐해주기 위해 ‘비핵3원칙’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 세상을 기만하였다.  

주한미국군기지는 28,500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유엔군전초기지이고, 주일미국군가지는 51,810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유엔군주력기지다. 150개나 되는 유엔군주력기지들이 조선을 침공하기 위한 핵전쟁거점들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명백하다.

만일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면, 유엔군사령관의 모자가 날아가게 되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국군과 한국군만 지휘하고, 주일미국군은 지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유엔총회에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라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는데도, 낡은 유엔군기를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년이 넘도록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것이다. 유엔군이라면 유엔안보리 산하의 군사참모위원회(Military Staff Committee)의 작전통제를 받아야 마땅하고, 유엔군사령관이라면 그 군사참모위원회에 보고를 해야 마땅하지만, 유엔군사령부는 처음부터 미국의 독단과 전횡으로 운영되어왔다. 그런 까닭에, 주일미국군, 주한미국군, 한국군을 포괄하는 유엔군은 유엔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파견되는 유엔평화유지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처럼 유엔군사령부는 미국이 자기의 전쟁목적수행을 위해 조작해놓았고, 줄곧 자기의 독단과 전횡으로 운용해오는 불법적인 전쟁기구이므로 이미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안에 따라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강력한 핵무력으로 세계 패권을 틀어쥐고 유엔을 움직이는 아메리카제국은 유엔총회 결의안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망나니처럼 행동한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망나니짓을 저질러도 미국의 패권적 위세에 눌려 그런 망나니짓을 감히 제지하려는 나라가 없다. 핵강국이라고 자처하는 러시아나 중국도 미국과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미국의 망나니짓에 대해 모른 척한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망나니짓을 저지르는 미국을 징벌하려는 참으로 담대한 나라가 등장하였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그러나 미국의 망나니짓을 징벌하겠다는 조선의 당찬 선언을 믿는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핵강국들인 러시아나 중국도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작은 나라인 조선이 하겠다고 나섰으니 좀처럼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이 일본의 유엔군주력기지와 한국의 유엔군전초기지를 무징후기습발사전술과 동시다발혼합사격술로 1시간 안에 모두 날려버릴 막강한 핵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올해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올해 들어와 조선이 다섯 차례의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을 차츰 강도를 높여가며 연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대미징벌의지를 거듭 천명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허풍을 떨거나 미국에게 빈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망나니짓을 일삼는 미국을 반드시 징벌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제5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을 진행한 조선은 지금쯤 제6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제6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은 8월 안에 진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제6차 선제핵타격모의시험이 진행되는 날, 사람들은 조선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강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며 조선의 대미징벌의지를 확인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일당 8만원,불법 선거,계파싸움 진흙탕 ‘새누리 전대’


폭염과 올림픽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8.9전당대회
임병도 | 2016-08-08 09:22:4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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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8.9 전당대회 마지막 수도권 합동연설회 모습 ⓒ새누리당 캡처
새누리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8.9전당대회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8.9전당대회이지만, 실제 선거인단이 대부분 투표했던 8월 7일에 승부는 갈렸다고 봐야 합니다.
8월 7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 전국 선거인단 투표율은 20.7%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선거인단 33만 7천375명 중 6만9천817명이 투표했습니다. 2012년 14.1%보다는 높지만, 2014년 29.7%에 비하면 낮습니다. 여름 휴가철과 폭염, 올림픽 등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새누리당의 전당대회이지만, 친박과 비박 간의 계파 싸움과 불법 선거 논란으로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일당 8만원, 버스에 도시락까지 제공하는 불법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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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일당 8만원을 받았다는 증언 ⓒMBN 캡처
MBN에 따르면 새누리당 8.9전당대회에 대학생들이 일당을 받고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 현장에는 대학생들이 입구에서 후보자들을 응원하고 있었는데, 일부 참가자들은 일당 8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현장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관광버스 수십 대가 있었고, 도시락도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대가를 받거나 도시락, 버스 등을 제공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새누리당 경선과정에서 아르바이트 인원 30여 명을 모집하여 합동연설회장에 동원하고 그 대가를 제공하였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계파 오더에 따라 투표? 진흙탕보다 더 지저분한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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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전당대회 후보자들이 서로 투표를 요구하는 문자를 발송했다며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JTBC 캡처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시작되면서 각 계파 후보들은 상대방이 ‘오더 투표’를 했다면서 문자 메시지 등을 공개했습니다. 이주영, 한선교 후보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당원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오더 투표’가 난무한다며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함진규 후보는 문자 메시지가 출력된 종이를 흔들면서 “위로부터 특정인에게 찍으라는 이런 문자를 보내는 것이 당내 민주화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무성 전 대표 측과 친박계 의원들이 주축이 된 ‘오더 투표’ 문자 메시지 발송은 가뜩이나 불법 선거 등으로 중앙선관위의 조사를 받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진흙탕보다 더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계파 간의 대결이 일상인 새누리당 전당대회, 말이나 하지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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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계파 간의 대결은 늘 벌어졌습니다. 2006년은 17대 대선을 앞두고 친이계 이재오와 친박계 강재섭의 대결이 있었습니다. 2008년 친이계 지원을 받는 박희태와 정몽준, 친박계 허태열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2014년은 친박계 서청원과 비박계 김무성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계파 대결은 시기에 따라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됐습니다. 2008년, 2011년 MB정권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친이계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친박계가 승리했습니다. 문제는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전당대회가 흘러가는 양상입니다.
2012년 5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는 황우여가 대표로 친박계 이혜훈, 정우택, 유기준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습니다.대선을 앞둔 지도부라고 하지만 마치 ‘박근혜 사당화’처럼 전당대회가 치러졌습니다.
2006년 전당대회에서는 박근혜가 이재오 연설 도중 자리를 떠나면서 친박계가 결집, 강재섭이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가 보여준 행동이 마치 투표 지시처럼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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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는 새누리당 경선과정에서 아르바이트생 30여명이 돈을 받고 동원됐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중앙선관위 캡처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치의 속성상 미래 권력에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보들이 저마다 단상에서는 ‘계파 갈등 청산’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계파 오더’를 내리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습니다.
새누리당 8.9전당대회는 폭염과 올림픽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새누리당의 당 대표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불법 선거와 더 지저분해진 계파 갈등을 주목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당이니 불법을 자행하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치러져도 된다는 식으로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중앙선관위는 물론이고 새누리당 차원에서도 불법 선거를 철저히 조사해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18 

북한의 올림픽 출전사

"시상대 높이는 조국의 높이"[친절한 통일씨] 북한의 올림픽 출전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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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8  00: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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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제31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 총 9개 종목 31명이 참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제31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5일 막을 올렸다. 오는 21일까지 207개국 1만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실력을 겨룬다. 여기에 북한은 총 9개 종목 31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북한은 1972년 뮌헨올림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8회 출전했다. 북한의 올림픽 출전사는 어떠한가.
'DPRK' 인정받기 위한 북한의 올림픽 불참
북한의 올림픽 출전은 국호와 관련이 있다. 올림픽은 국가 간 경기라는 점에서 북한은 국제무대에서의 국호를 중시여겼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냐 '북한'(North Korea)냐에 민감했던 것. 물론, 이들 국호가 뭐 큰 문제냐고 할 수있지만 대한민국을 국제대회에서 '남한'(South Korea)라고 하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북한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 총 13개 종목 144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그런데 개막 직전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의 공식 국호를 'North Korea'라고 지정했기 때문. 당시 IOC는 북한의 DPRK 사용요구에 "올림픽 국호는 정치적 명칭이 아니라 지리적 구역을 뜻할 뿐"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물론, 당시 철수는 국호에 국한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 한해 전인 1963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신흥국대회(GANEFO)에 북한이 참가한 이유도 작용했다. 신흥국대회는 1962년 제4회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인도네시아가 대만과 이스라엘 선수들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은 데서 시작됐다. IOC는 인도네시아를 제명했고, 이에 인도네시아, 중국, 아랍연합공화국 등을 중심으로 1963년 제1회 GANEFO가 열렸다.
이에 IOC는 정치와 스포츠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밝힌 GANEFO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참가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불허했다. 결국 북한은 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출전 선수들에 대한 IOC 불허로 철수했다. 여기에 대표적인 인물이 여자육상 신금단 선수다.
  
▲ 북한 육상 간판스타 신금단 선수. 1963년 제1회 GANEFO 출전을 이유로 IOC로부터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신금단 선수는 제1회 GANEFO에 출전해 400m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지만, 대회 자체에 대한 국제스포츠계의 불인정으로 비공인기록이 됐으며, ICO 블랙리스트에 올라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귀국 직전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부친 신문준 씨와 10분 상봉하는 일도 있었다.
올림픽에서의 국호문제는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IOC 총회에서 한국이 '한국은 코리아, 북한은 노스코리아'로 명시할 것을 요구해 통과됐고, 1972년 뮌헨올림픽부터 'DPRK' 사용 타협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쿠바에 머물던 북한 선수단은 철수했다.
IOC에서 북한 국호 논란은 분단 상황과 맞물려 있다. 한국은 1947년 6월 IOC 정식회원국이 됐는데, 북한은 1963년 정식 가입했다. 이는 북한이 스포츠외교의 중요성을 늦게 깨닫게 된 점도 있지만, IOC가 1개국 1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를 둬야 한다는 규정때문이었다. 당시 IOC는 남북을 하나의 국가로 봤다. 이는 북한의 국호를 둘러싼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 1972년 뮌헨올림픽으로 향하는 북한 선수단. 북한의 첫 올림픽 참가대회로 여기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의 올림픽 도전기..역도.유도 종목 강세
1969년 IOC 총회에서 'DPRK'라는 정식 국호사용을 승인받은 북한은 한국전쟁 전후 16년만인 1972년 뮌헨올림픽에 10개 종목 3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당시 올림픽에서 북한의 첫 금메달 선수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50m 소총 복사경기에 출전한 리호준 선수로 60발 사격에 600점 만점에 1점 뒤지는 599점을 기록해 세계신기록, 올림픽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한국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딴 첫 금메달보다 앞선 것으로, 리호준은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역도 은메달 1개, 레슬링 동메달 1개, 여자배구, 레슬링, 유도 등 동메달 3개로 종합 순위 22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어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복싱 구영조 선수가 미국선수를 상대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복싱 리병욱 선수는 은메달을 따 종합순위 21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적들과 직접 맞서 있는 나라이므로 사격, 권투 같은 종목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사격과 권투는 우리 인민의 혁명적인 투쟁정신과 우리 민족의 기개를 보여주는 체육종목"이라고 말했다.
냉전시대는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한다는 올림픽의 정신이 무색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이 불참해 북한은 은3, 동2개로 26위를 기록했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은 사회주의 진영의 보이콧으로 북한도 참가하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미.소 양 진영이 모두 참가했지만 남북분단 정치사는 북한의 불참으로 작용했다.
북한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참가했다. 불참 12년만이다. 레슬링 김일, 리학선, 남자체조(안마) 배길수, 복싱 최철수 등이 금메달을, 탁구 여자복식 리분희,유순복, 개인 리분희, 복싱 리광식 등이 동메달을 따 종합순위 16위에 올랐다.
12년만에 만에 거둔 큰 성적이었고, 배길수는 정신력을 내세운 북한 스포츠의 상징이 됐으며, 이후 여자체조 김광숙과 함깨 '선수권보유자들'이라는 북한 기록영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 북한 유도영웅 계순희 선수를 다룬 우표. [자료사진-통일뉴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레슬링 김일 선수는 금메달을 따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대표적인 선수는 계순희다. 당시 17세 무명선수인 계순희는 국제무대 84연승으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일본 유도영웅 다니 료코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금2, 은1, 동2개로 종합 33위를 차지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계순희 선수는 동메달을 따는 등 은1, 동3개로 종합 60위에 올랐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계순희 선수 은메달 등 은4, 동1로 종합 57위를 하는 등 과거 성적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남북 동시입장은 세계에 큰 감동을 선사했다.
북한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재도약했다. 여자체조 홍은정 선수와 역도 박현숙 선수의 금메달, 유도 안금애 선수의 은메달, 역도 오정애, 유도 박철민, 원옥임 선수의 동메달로 종합 33위에 올랐다.
그리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 11개 종목 56명 선수가 출전해 역도 엄윤철, 김은국, 림정심 선수, 유도 안금애 등이 금메달을 따는 등 금4, 동2로 종합 20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 북한 역도 엄윤철 선수. 2012년 런던올리픽에 이어 리우올림픽에서도 2연패를 달성할지 주목된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시상대의 높이는 곧 조국의 높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딴 메달은 총 47개로 금14, 은12, 동21개이다. 이 중 역도종목에 금4, 은4, 동5으로 전체 28%를 차지한다. 이어 레슬링(금3, 은2, 동5), 복싱(금2, 은3, 동3), 유도(금2, 은2, 동4) 등이 뒤를 이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북한은 역도를 메달밭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인 엄윤철, 림정심 외에도 김국향, 최전위, 김명혁 등이 금메달 유력후보로 떠오른다.

여기에 남자체조 간판스타인 리세광 선수는 예상대로 예선 1위로 통과했다. 그리고 레슬링 양경일, 여자체조 홍은정, 여자다이빙 김국향 등도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하루빨리 체육강국의 지위에 올려세우려는 것은 당의 확고한 결심이다. 시상대의 높이는 곧 조국의 높이라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체육인들을 백두의 넋과 기상을 지닌 사상과 신념의 강자로, 승리의 금메달로 조국의 영예를 떨치는 당의 체육전사로 튼튼히 준비시키자." 북한의 체육강국 의지이다.

북한의 '첨단' 기술력, 모른 척할 수 없다


16.08.07 20:11l최종 업데이트 16.08.07 20:1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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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제, <과학기술로 북한 읽기1> (RPScience, 2016) 표지. 이번 책은 강호제 박사가 등록한 출판사 (주)알피사이언스에서 출판한 관계로 8월 4일 기준, 아직 인터넷 서점 등에서는 판매가 되고 있지 않다. 구입은 강호제 박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woojuri) 메시지를 통해 가능하다.
ⓒ RPScience

공부하기에 '과학기술'이 어려울까? '북한'이 어려울까?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공부한 이가 있으니, 바로 '북한 과학기술 정책사 1호 박사'인 강호제 박사이다. 경남과학고, 배정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거치며 과학기술자를 꿈꿨던 강호제 박사가, 평화통일에 힘을 보태기 위해 선택한 분야가 바로 '북한 과학기술 정책사'이다. 

강호제 박사는 2007년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북한의 기술혁신운동과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 : 천리마 작업반 운동과 북한 과학원의 현지 연구사업을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북한 역사학자이다. 

그가 지난 2007년 그의 논문을 그대로 출판한 <북한 과학기술 형성사Ⅰ> 이후 9년 만에 <과학기술로 북한 읽기1>라는 제목의 북한 과학기술 관련 책을 펴냈다. 

이번에 펴낸 책은 나름 읽기 쉽도록 '대화식' 표현을 가득 넣는 친절을 베풀었다.(아쉽게도 3장에서는 '대화식' 서술이 현격히 줄어들고, protocol, TCP/IP, CNC, spin-off, Reverse-engineering 등 영어 알파벳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주제당 글의 길이도 늘었으니 참고하시길...)

과학기술로 북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다

이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은 24개 에피소드로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리승기, 려경구 등 111명에 달하는 남측 과학기술자들이 월북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고(pp. 16-21), 1958년 뜨락또르(트랙터)를 역설계방식(Reverse-Engineering)으로 자체생산하며 시작한 북한의 자립 기계공업이 로켓(미사일)과 인공위성까지 제작, 발사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 이유도 알 수 있다(pp. 89-92).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 하는 '주체와 과학기술의 결합'이 왜 당연한지를 주체의 발전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pp. 68-71). 강호제 박사는 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에서 주체는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군사에서 자위, 사상에서 주체'를 뜻하는데, 경제에서 자립을 형성하는데, 과학기술 분야가 선도적인 모델이 됐다. 즉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료, 원료, 기술, 인력의 자립'이라는 구체적인 틀을 잡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의 자립'으로 나아갔다는 게 강 박사의 생각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김일성이 가장 신뢰한 테크노크라트 강영창, 비날론 신화의 주인공 리승기, 북한핵물리학의 아버지 도상록, 누에 품종 개량의 최고권위자이자 북한 1호 박사 계응상, 갈섬유생산연구 마형옥, 경락의 대발견 김봉한, 함철콕스 연구 주종명, 1:20만 지질도 작성사업 박성욱 등 북한 과학자 8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인물열전이다. 여기서 소개된 8명의 과학자 중 주종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월북과학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에 수록된 16개의 글들은 그간 '프레시안, 통일뉴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고쳐 실은 것들인데, 이전 장에 비해서는 분량이 길고, 내용도 깊다. 이 글들은 2007년 이후에 썼던 글들이기 때문에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 전 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 쓴 시점에서 전망한 내용들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전망은 대북전문가들도 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2012년 4월 실패한 '광명성 3호'를 2012년이 가기 전에 다시 발사한다고 예측한 경우(pp. 227-240)나 당시 정확한 위치가 공개되지 않았던 은하과학자거리를 룡성구역으로 추측한 경우(p. 191)를 보면, 강호제 박사는 본인의 연구 분야에 걸맞게 과학적 근거에 바탕해 추정하거나 예측하고 있다. 

세 번째 장은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과학기술을 통해 읽고 있다. 최근 김정은 시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 북한의 모습을 과학기술 발전이란 측면에서 읽어볼 수 있다. 하지만 강호제 박사는 최근 김정은 시대의 변화 요인을 김정일 정책의 철저한 계승에서 찾고 있다. 

최근 북한의 주요변화 요소인 핵, 미사일, IT, 첨단 공작기계 등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대부분 시도들이 김정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pp. 190-191) 또한 국방 부문에서 개발, 발전시켰던 첨단 과학기술이 2000년대 이후 북한 경제발전의 원동력, 밑천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국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만 있다면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으로 이전(spin-off)하여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한다.(p. 198) 

현재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을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우주발사체 제작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에서 기계제작 능력이 최첨단에 도달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광물 매장량이 많은 북쪽 지역에 광공업 부문 자산은 72%를 차지했지만 '기계기구 공업 부문'은 17%로 낮았다. 이는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제작하는 기술분야인 기계기구 제작 능력이 월등히 떨어진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한 최근 우주발사체 발사 현황을 보면 북한 지도부가 기계공업 분야 발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다.(pp. 218-220). 

강호제 박사는 왜 '과학기술'을 통해 북한을 읽으려 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북한을 알아야 할까? 혹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북한을 이기기 위해서 알아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보다도 북한이 우리와 통일을 이뤄야 할, 등을 맞대고 있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분단된 현실에서는 우리가 북한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분단이 낳은 숙명과 같다. 과학기술은 동전의 양면이며, 칼과 같다. 누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북한을 대하는 것도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북한을 '요리하는 칼'로 인식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동반자로 인식할지, 북한을 '강도가 든 흉기'로 인식하고 싸우려다 결국 공멸의 길을 선택할지는 우리 몫이다. 

월북과학자에서 월미(越美)과학자를 양산하는 우리 사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핵물리학자라는 과학기술자의 꿈을 안고 1997년 KAIST에 입학하였지만, 입학 후 마주한 현실은 꿈과는 달랐다. IMF 이후 가혹한 구조조정 속에 과학기술자 홀대는 가속화되었고, 그 여파가 대학에도 그대로 전가되었다. 

주변 정부출연 연구소에서는 PBS(Project-Based System) 도입으로 연구원들의 고용불안이 시작했다. PBS란 한마디로 연구원의 인건비와 연구비 모두를 정부출연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프로젝트 발주처로부터 직접 조달하는 제도로,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하는 연구원들은 인건비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 즈음 어느 날 동아리 한 선배가 학교를 그만두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갔다. 그 선배는 3년 뒤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다. 다른 동아리 친구는 졸업 후 변리사 공부에 몰두 해 몇 년 만에 변리사가 되었다. 다른 동아리 후배도 졸업 후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치과의사가 되었다.

과에서는 갑자기 회계사 열풍이 불어 여러 사람이 학교를 휴학하고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했지만, 그즈음에는 1~2명 정도만이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어떤 친구들은 외도하지 않고 박사가 되었지만, 졸업 후에 정부출연연구소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필자 본인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과학기술자의 꿈을 뒤로 하고, 진로를 변경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해보니, 해방 이후 과학기술에 대한 남쪽의 척력(斥力)과 북쪽의 인력(引力)이 배합되었기 때문에 상당수의 월북과학자가 생겨났다는 이야기(p. 19)가 더욱 와 닿는다. 

지금도 북측의 인력(引力)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과학기술에 대한 남측의 척력(斥力)은 여전하고, 미국의 인력(引力)으로 인해 상당수의 '월미(越美)과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

강호제 박사는 이 책에서 북측의 과학기술 관련 모든 일을 담당하는 기구로 국가과학원을 지목하며, 국가과학원은 남측 행정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 연구기관인 정부출연연구소, 교육기관인 KAIST, 원로 과학기술자 모임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통합시킨 조직이라 볼 수 있다고 말한다(p. 24). 

남측에서도 과학기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읽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과학기술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이다.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 없는 미국의 대표적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 방대한 자료 조사로 쓰였기 때문에 뛰어난 일본 연구서로 평가받듯이, 강호제 박사도 한 번도 북한에 가본 적 없지만 방대한 1차 문헌들을 토대로 역사학적 관점에서 북한 문헌을 교차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썼기 때문에 뛰어난 북한 연구서라 할 수 있다. 

특히 강호제 박사는 기존 북한연구자들과는 달리 과학기술을 통해 '북한적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현재의 북한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기존 북한연구자의 주장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강호제 박사의 책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이 책을 읽고 너무 쉽다고 느끼시는 분이라면, <북한 과학기술 형성사Ⅰ>(도서출판 선인, 2007)도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 글(책소개)을 쓴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은 KAIST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정치통일(석사)을 전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