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4일 일요일

집회 자유 막았다는 ‘재인산성’, ‘명박산성’과 비교해보니

 

문재인 정부가 집회의 자유를 막았다?
임병도 | 2020-10-05 08:59:4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경찰이 10월 3일 광화문집회를 경찰버스로 막으면서 ‘재인산성’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명박산성’을 빗댄 단어입니다.

홍준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났는지 광화문에 재인 산성 쌓아 놓고, 국민들의 분노를 5공 경찰로 막고”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재인산성’이 집회의 자유를 막았다며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독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재인산성 vs 명박산성 비교해보니

보수 단체와 야당이 주장하는 ‘재인산성’이나 과거 ‘명박산성’ 모두 집회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명박산성’은 2008년 6.10 민주항쟁 21주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재협상 요구 ‘100만 촛불 대행진’을 막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컨테이너 60여개에 모래 주머니를 가득 채워 용접을 한 뒤 광화문 사거리와 청와대 길목이었던 안국로 등에 배치했습니다. 경찰은 시민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컨테이너를 2층 구조로 쌓아 올렸고,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외부에는 윤활유까지 칠해놨습니다.

이후 계속된 집회에서 경찰은 최루액 물대포를 발사했고, 군홧발로 여성을 구타하거나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는 등 폭력 진압을 했습니다.

‘재인산성’은 경찰 버스 30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 광장 주변을 막은 경찰 차벽을 말합니다. 경찰은 시위 차단을 막기 위해 검문소 등을 운영했는데,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차벽을 이용해 집회를 막은 가장 큰 이유는 지난 8.15 집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방역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집회의 자유를 막았다?

▲(좌) 2019년 10월 3일 자유한국당이 주최하는 광화문광장 집회 모습 (우) 2020년 10월 3일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위해 집회 차단 경찰 차벽

국민의힘과 보수 단체, 보수 언론은 ‘재인산성’을 가리켜 집회의 자유를 막았다며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집회를 막지 않고 오히려 허용했습니다.

2019년 10월 3일 광화문 광장에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집회 참가자가 300만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집회의 자유를 막는 정책을 펼쳤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모여 집회를 할 수 있었을까요?

‘재인산성’이라는 말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명박산성은 누가 봐도 시민들의 입과 집회의 자유를 막기 위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진압이었고, ‘재인산성’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조치에 불과합니다.

시민들은 추석 연휴 기간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방역 수칙을 지켰습니다. 국민의힘과 야당, 보수 언론은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정부의 방역조치를 조롱하는 ‘재인산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보수 단체, 보수 언론은 집단 발병을 일으켰던 8.15 집회를 벌써 잊었나 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137 

온라인을 통해 울려 퍼진 '이석기 의원 석방'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10/0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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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4일 대전교도소 정문 앞 본행사장을 비롯하여 전국 주요 도시 16개 거점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 2020 추석한마당'이 열렸다. [사진제공-구명위]  

 

▲ 이석기 의원이 수감 중인 대전교도소 앞에서 열린 집회 모습 [사진제공-구명위]  

 

 

랜선 너머 ‘이석기 의원 석방’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추석 연휴 마지막인 4일 낮, ‘이석기 의원 석방 2020 추석 한마당’ 랜선 집회가 열렸다. 

 

줌(ZOOM)으로 동시 참여한 대전교도소 정문 앞 본행사장을 비롯하여 전국 주요 도시 16개 거점에서 5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가 주최한 이 날 행사는 구명위원회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되었다. 

 

윤희숙 진보당 공동대표의 사회로 행사는 시작되었다. 

행사의 첫 순서로는 16개 거점별로 인사가 진행되었다. 멀리 강원과 제주, 서울과 영호남의 참석자들이 각자 특색있게 마련한 인사가 이어지며 눈길을 끌었다. 

 

김한성 한국구명위 공동대표가 여는 말을 했다. 김 교수는 “아무런 죄도 없이 8년째 추석을 혼자 보내는 사람이 있다. 이석기 의원이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새 정권, 스스로 왕년에 인권변호사였다고 자부하는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적폐 청산”이라며 “헌법 19조 양심의 자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는 헌법 79조 사면권. 잘못된 걸 바로잡으라고 권한을 주었는데, 박근혜, 양승태 잡아가두었으면서 피해자를 왜 풀어주지 않나”라고 석방을 촉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은 석방 촉구 발언을 했다. 양 본부장은 “어린 형제를 뒤로하고 부모는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라면을 끓이다가 화상을 입는 참혹한 현실에 맞서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백만조합원과 함께 하겠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고 비정규직 세상을 끝내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석기 의원의 누나인 이경진 씨가 보내온 편지도 소개되었다. 이경진 선생은 석방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1천일의 농성 끝에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병 중이다. 

 

이경진 씨는 편지에서 “눈이 아리게 푸르고 푸른 가을 하늘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하늘이 보입니다. 꼬박 두 달만입니다”라며 “꼭 살고 싶습니다. 동생에게 따뜻한 밥 한술 먹이는 날까지. 끝내 살아내겠습니다. 여러분이 주신 사랑으로”라고 심경을 전하였다.

 

울산 노래모임 ‘청춘’의 노래 공연도 무대에 올랐다. 노래모임 ‘청춘’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선언2’를 랜선을 통해 전국 각지의 참가자들에게 선사했다.

 

행사의 마지막에는 이석기 의원이 참가자들에게 최근 보내온 서신이 낭독되었다. 

 

이석기 의원은 “옥중에서 여덟 번째 맞이하는 가을입니다. 긴 장마와 폭염을 겪고 난 뒤 바라보는 가을 하늘은 여느 해보다 더 푸르게 느껴집니다”라며 “코로나는 수인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번 연휴 기간에는 나흘 동안 접견도 면회도 금지되어 묵언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석기 의원은 “오늘처럼 눈 부신 햇살과 투명한 바람이 불 때 푸르게 빛나는 하늘을 보면, 저 하늘처럼 민중을 위해 살고자 했던 청년 시절의 첫 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라며 “어려운 시절에도 전국에서 한걸음으로 달려 온 여러분, 지금 이 시간 각 현장에서, 지역에서 함께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 마음이 내 마음입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 공연은 구명위원회 청년 회원들의 무대였다. 청년 회원들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올해 안에 반드시 감옥 문을 열자’는 피켓과 함께 노래 ‘달리고’에 맞추어 흥겨운 율동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행사 말미에는 전국 16개 거점의 참가자 전원이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펼쳤다. ‘감옥에서 8년째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이석기 의원 석방이 새시대 시작'이라고 쓴 대형 글자가 카드섹션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민중의 노래’ 합창이 이어지는 동안 16개 화면 분할로 카드섹션이 연이어 펼쳐지며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한편, 이날 대전 행사장과 각 거점의 행사는 사전 발열 체크, 참가자 인적사항 기재 등을 비롯하여 방역 당국의 제반 지침을 엄격히 준수하며 진행했다.

[단독] 박덕흠 ‘부정채용’ 의혹도…“조카·지인 자녀 등 전문건설협회에 꽂아”

 등록 :2020-10-05 07:06수정 :2020-10-05 07:31


협회 관계자 ‘부정채용자 명단’
박, 협회장 때 친형 아들 채용
출신 대학의 교수 딸도 협회에
입찰 담합 건설사 간부 아들도
“25명이 부정채용 의혹 대상자”
박, 서울교통공사 채용의혹 비난
박덕흠 의원이 지난해 11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 통합과 인적 쇄신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당시 자유한국당 당내 중진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덕흠 의원이 지난해 11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 통합과 인적 쇄신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당시 자유한국당 당내 중진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신적폐” 등의 용어를 써가며 강력히 비판했던 박덕흠 무소속 의원(충북 옥천·영동·보은·괴산)이 과거 대한전문건설협회장 등을 지낼 때 조카와 출신학과 교수의 딸, 입찰 담합을 대행한 일가 소유의 건설사 간부 아들, 전 서울시 공무원 등을 협회에 입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4일 <한겨레> 취재 결과, 박 의원이 전문건설협회장을 맡았던 2010년께 친형인 파워개발 박아무개 대표의 아들이자 박 의원 조카인 박아무개씨가 중앙회 사원으로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2018년 무렵에 퇴직했다. 전문건설협회 직원 평균 연봉은 중견기업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 일가가 운영하는 건설사 간부의 자녀도 2011년 직원으로 채용됐다. 이 직원은 2008년 서울시 취수장 공사에서 박 의원의 지시에 따라 입찰 담합을 한 혜영건설 손아무개 본부장의 아들로 현재 중앙회 기술관리부에 재직하고 있다.


박 의원의 모교인 서울과학기술대 토목공학과 ㅈ아무개 교수의 딸도 2005년께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ㅈ교수는 2008~2009년 박 의원과 함께 공동저자로 에스티에스(STS) 공법에 대한 논문을 집필했다. 박 의원은 서울과기대에서 토목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발전후원회 회장을 지냈다. 2018년까지 중앙회에 재직했던 ㅈ교수의 딸은 현재 퇴직한 상태다. 박 의원 일가 소유의 건설사는 에스티에스 공법을 이용해 국토교통부 등으로부터 신기술 이용료 371억원을 부당하게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 의원이 전문건설협회 서울지회장을 지낼 땐 서울시 토목 관련 부서의 간부 출신 공무원이 채용되기도 했다. 서울시 도로관리과장을 지낸 공무원 이아무개씨는 2003년께 서울지회에 입사해 2005년까지 건설경영센터장으로 일했다. 공사금액 514억원의 서울시 취수장 입찰 담합을 주도하기도 했던 박 의원은 서울시 공무원들과 남다른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협회 인사를 담당했던 관계자 ㄴ씨는 “서울시 출신으로 협회에 채용된 직원은 이씨 외에도 2명이 더 있다”며 “박 의원과 관련된 부정채용 의혹 대상자는 총 25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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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입수한 ‘부정채용자’ 명단에는 25명의 전·현직 협회 중앙회·지역회 직원 명단과 박 의원과의 관계, 입사연도 등이 기재돼 있다. 


이 명단은 ㄴ씨가 2018년께 작성한 것으로, 지난달 10일 업무상 배임 의혹으로 박 의원이 검찰에 고발될 때 함께 제출됐다.

협회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취재원은 명단의 직원들이 박 의원 인맥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 ㄴ씨는 “매년 5명 내외로 채용됐는데 결과를 보니 박 의원 조카, 지역구 인사·지인 자녀 등이 대거 채용돼 있었다”며 “최종 결정은 회장이 하기 때문에 박 의원의 뜻이 채용에 반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전 협회 고위관계자는 “박 의원은 회장일 때나 이후에도 측근을 통해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체 직원이 200명가량인데 15% 정도는 박 의원이 ‘꽂은’ 사람”이라고 했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박 의원이 회장일 때 공·특채로 협회에 입사한 이들은 총 97명이다.앞서 박 의원은 2018년 10월 서울시 국감에서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을 ‘신적폐’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박 의원은 “국민들이 서울교통공사를 신적폐라고 한다”며 박원순 당시 시장에게 “여기서 비리가 나오면 엄중 조치해 고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한겨레>는 부정채용 의혹과 관련해 협회와 박 의원 쪽에 수차례 입장을 물었지만, 두 곳 모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채윤태 강재구 오승훈 기자 cha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4388.html?_fr=mt1#csidx2b72503f1db488a89f08b509d37d684 

한국 비판할 때 꼭 나오던 말, 이들이 바꾸고 있다

 [2020 케이팝 월드 리포트]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은 어디서 온 것일까?

본문듣기 등록 2020.10.05 07:09 수정 2020.10.05 07:09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오마이뉴스 해외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경험한 케이팝 현상을 소개합니다. 또한, 2020 케이팝 열풍의 명암을 조명합니다.[편집자말]
   

▲ 8만5천 명이 다녀간 케이팝 콘서트(케이콘) 2017 LA 컨벤션 전경 ⓒ CJ ENM

  
세계화된 한국의 대중문화를 '한류'로 칭하는 것이 이제는 일반화됐다. 케이팝(K-pop)을 선두로 케이드라마(K-dramas), 케이뷰티(K-beauty), 케이무비(K-movie) 등 분야별 한류문화의 확장을 나열하는 표현도 점점 늘고 있다. 몇몇 분야가 최근 십 수 년 사이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점차 세계인의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의 다양한 대중문화가 세계 속에서 이처럼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20년 남짓. 아시아권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에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 것은 그나마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몇몇 아티스트들은 심지어 주목받는 차원을 넘어 최고 수준의 자리에서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불과 10~20년만에

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현상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서구 비평가들에게 한국의 드라마는 국가 이데올로기나 사회의 전통 관념을 국민들에게 세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대중매체 정도로 이해됐다. 실제 저개발국가에서 티브이 드라마가 정부의 효과적 계몽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제작되고 수출되고 있는 다량의 한국 드라마들은 구성의 탄탄함, 스토리텔링의 풍부함, 소재의 참신함이 다른 나라의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독특한 개성과 한국문화가 잘 스며들어 있는 고유성도 가지고 있다. 한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보다 늦게 세계무대에 알려진 한국의 대중음악은 이제 그 지명도에서 드라마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남미, 북미, 유럽 등지에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팬들은 부드러움과 강렬함이 어우러진 군무의 세련됨에 흠뻑 취한다. 음악적 완성도에서도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는 수준급이다. 어린 나이부터 합숙을 통해 체계적으로 익힌 이들의 율동과 창법은 잘 다듬어져 있어, 이러한 수련 방식에 대해 공장에서 기성품 찍어내듯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는 평론가들마저도 그 완성도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을 한다. 무대를 꽉 채우는 화려한 군무는 관중을 흡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국 영화가 세계인의 눈에 띈 것은 드라마와 음악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몇몇 작품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유사한 정서를 가진 문화권이라는 이점에다 몇몇 스타급 배우들의 인기도 한국 영화의 일본 흥행에 한 몫 한 것이 사실이다.
 

▲ 아카데미상 수상 발표후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프랑스 문화원을 해방구 삼아 드나들며 그들의 영화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지금의 50대 감독들의 출현은 한국 영화를 단숨에 세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봉준호 감독의 2019 칸영화제 대상과 2020 아카데미상 4관왕 쾌거는 '봉준호 장르'라는 용어까지 등장시키면서 예술 분야에서 한국인이 먼저 간 새 길을 세계인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한류 바람을 이끄는 드라마, 음악, 영화에 이어서 음식, 미용 등 후발 분야들도 북미지역은 물론 유럽과 남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점점 두터운 마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문화적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한국인들의 자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000년대 들어 활짝 피어오른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은 어디서 온 것일까?

철학자들의 예언

한국 문화가 만개하기까지는 3세대에 걸친 한국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 열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했다. 문화는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의 끝에서 비로소 꽃을 피운다. 자유를 포기한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문화를 만날 수 없다. 문화는 진부하고 평범한, 그렇지만 필연적인 우리의 일상을 넘어서 새롭고 특별한, 그렇지만 당장 필연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비상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진다. 그 비상함은 비움, 빈 공간, 즉 여유를 의미하며, 여유를 찾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문화는 만나기 어렵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찾아 나서야 가능해진다. 문화를 만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창조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본래의 일상은 영원히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 문화는 이처럼 일상을 벗어나야 얻어지지만 그렇게 얻은 문화는 다시 일상을 바꾸기도 한다.

20세기 초 대중문화를 둘러싼 벤야민(Walter Benjamin)과 아도르노(Theodor Adorno)의 유명한 논쟁이 있었다. 과연 대중문화가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두 사람은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았다. 아도르노는 '대중'과 '문화'는 전혀 호환될 수 없는 개념이라면서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문화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의지의 산물인데, 대중들에게 주어지는 문화란 삼키기 좋게 적당한 규격으로,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고소한 맛으로 가공돼 저작(咀嚼) 활동도 필요 없이 목구멍으로 넘기도록 돼 있는 가공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대중들 앞에 내놓은 문화라는 것들은 거위의 목 안으로 부어 넣는 사료와 같은 것이라는 비판인 셈이다.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없고 오로지 '문화산업'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벤야민은 대중의 힘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달리 대중은 언젠가 문화를 능동적으로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문화도 소수자들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예술품이 대규모로 복제되고 공장에서 양산되는 시대에 예술과 문화는 새로운 형태로 본질적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수 귀족들의 요청으로 그들의 살롱에서 연주되는 형태로나 가능했던 음악이 지금은 무한 복제되면서 누구나,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오늘날 예술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권력이 과거에는 소수자의 전유물이었지만 다수의 국민이 공유할 수 있었듯이 문화 역시 이러한 대중들의 주체적 공유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벤야민은 꿰뚫어 봤던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벤야민의 예언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대중이 문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무뇌인'이 음식 삼키듯 눈앞에 던져주는 것을 받아 삼키는 수용 자세로는 곤란하다. 그런 문화소비가 지속되는 한 그가 지적한 문화 없는 문화산업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는 대중의 기호가 아닌 자본가의 기호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경고 또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민계급' 즉 생계로부터의 자유와 정치적 존재자로서의 자유를 모두 쟁취한 자들이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세기의 철학자들은 잘 보여줬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후 한국의 대중문화 발전이 그 생생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들의 3단계 역동성

20세기 중반까지 침략과 착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한국인들은 그들이 찾아야 하는 첫 번째 자유가 잿더미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탈출 의지로서의 자유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역동성은 무엇으로 향하겠다는 역동성이 아닌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역동성이었다. 무엇을 향한 자유가 아닌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50~7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자유를 얻기 위해 벗어나야 했던 그것은 굶주림이었다. 그리고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그 과정을 우리는 산업화라고 불렀다.

원초적 속박인 굶주림을 벗어나는 동안 또 하나의 속박이 우리를 구속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싸워야 했던 시간들은 지났지만 정치적 자유를 얻기까지는 새로운 역동성이 필요했다. 그렇게 또 한국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고 그렇게 싸웠던 70~90년대 한국인들이 보여줬던 역동성 역시 무언가를 벗어나기 위한 절박함이었다. 이 시기의 한국인들은 육체적 굶주림이 아닌 정신적 굶주림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투쟁을 했고, 그렇게 싸워온 과정을 우리는 민주화라고 불렀다.

지난 한 세기를 불꽃같은 열정으로 살아온 한국인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다시 쏟을 열정은 무엇을 위한 열정이었을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을 새로운 열정의 대상은 바로 문화였다. 그러한 여정은 한국인들에게 필연적이었다. 아니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그들처럼 자유를 향한 필연적인 역동성을 보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문화가 비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앞서 살펴봤다. 그리고 그러한 비움은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존재자로서의 자유를 획득하고 나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도 봤다.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가 국가의 역량을 문화발전을 향한 장기적 계획에 집중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한국 현대사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시기였다. 그에 따른 시대적 요구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졌고, 국가 부도 수준의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비롯해, 꼬여 있는 남북관계 등 정치-경제-외교-안보 분야와 같은 하드웨어적 과제들이 산적해있던 당시였다. 게다가 5년 단임으로 끝나는 짧은 시간 동안 문화라는 소프트웨어 담론을 국가의 장기적 실천 계획으로 옮겼다는 것은 철인적(哲人的) 혜안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를 놓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 지난 2007년 목포 MBC 단독 대담에서 한류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 MBC

 
물론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이 성장을 하고, 주변국들로 수출이 되기 시작한 것이 정권의 임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90년대 들어서면서 특히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 산업 전체가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 당시 문화관광부가 중심이 되어 한국 대중문화를 세계에 소개하기 위한 계획들이 추진되고 '한류'라는 용어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9년 문화관광부가 한국의 대중음악을 외국에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음반의 제목은 <韓流(한류)-Song from Korea>였다.

이렇게 국가 차원의 대대적 뒷받침은 해외로 진출하는 대중문화 아티스트들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정부와 예술계가 함께 구동하는 한류라는 열차가 전 세계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외국의 비판적 언론들은 '한류는 예술인들의 자발적이고 자생적 본능에 의한 창작이 아닌 정부주도의 경제적 목적 지향의 국책사업'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주목해 들어야 할 지적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케이팝의 젊은 아티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표현이 아닌 기획사의 의도에 따라 맞춤 제작된 기성품들이라는 비판 역시 전혀 허무맹랑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문화적 역량은 이미 긴 자유를 향한 여정 끝에, 앞서 말한 벤야민(Benjamin)적 의미에서 "대중문화를 진정한 문화로 만드는 단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가?

비판적 시선마저 압도한 또 한 번의 변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방탄소년단(BTS)의 활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방탄소년단은 현재 그리고 과거까지 통틀어 한국의 대중음악 뮤지션들 가운데 가장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세계 젊은이들의 환호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지금까지의 모든 한류를 합한 것보다 더 열광적이다. 무엇이 이들의 인기를 가능하게 할까? 바로 벤야민이 말한 복제시대에 이른 문화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문화 주체의 근본적 변화다.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구상의 수많은 팬들이 이들의 신곡 발표를 동시에 듣는다. 사회망을 통해 반응하고 교감한다. 이들의 음악적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도 이들에 대한 추종과 신뢰는 절대적이다. 요컨대 과거와 같은 일방적 '팬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적 팬덤문화를 만들어 가면서도 팬들이 뮤지션에게도 또 뮤지션이 팬들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8월 30일(현지시간) MTV 주관으로 생중계된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베스트 팝', '베스트 K팝', '베스트 그룹', '베스트 안무' 등 후보로 오른 4개 부문에서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혹자들은 이런 문화현상을 보텀업(Bottom-up) 문화라고도 한다. 과거의 대중문화의 전형적 유형과 같이 아티스트가 뭔가 만들어 보이면 팬들은 조건반사처럼 집어 삼키는 톱다운(Top-down) 문화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아티스트와 팬들이 상당부분의 교감을 하는 방식이다. 이들 팬들에게 아티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스타가 아니라 무명부터 함께 만들어온 동지가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우려한 산업의 타깃으로 전락하는 대중이 아닌, 벤야민이 예측한 대중문화의 주체가 되는 대중, 이들이 방탄소년단의 팬들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을 그토록 열광시키는 방탄소년단이 왜 현대 대중문화의 신생국 한국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그 답은 3세대 동안 자유를 찾아 쉬지 않고 달려온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 

김종인이 찬성한 공정경제 3법, 보수균열 신호탄 될까?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10-04 16:02:33
수정 2020-10-04 16: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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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비대위원들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9.28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비대위원들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9.28ⓒ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지난달 22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로 한 사람이 다급히 들어갔다. 재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비공개로 잠시 면담을 가진 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장내를 빠져나갔다.

다음 날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김 위원장을 다급히 찾아왔다. 그 역시 비공개로 짧은 면담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박 회장과 손 회장은 김 위원장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를 따로 만났다.

모두 같은 목적이었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처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이 공정경제 3법 처리에 찬성하면서 보수진영 균열이 예상된다.

재계 반발에도 밀어붙일 기세 보이는 김종인,
경제민주화 전도사 행보 보일까

재벌개혁과 지배구조 합리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이다. 이는 ‘일감 몰아주기’, ‘공익법인을 통한 편법 증여’, ‘복잡한 지분구조로 인한 계열사 간 리스크 확산’, ‘금융과 산업 분리’ 등 그동안 재벌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온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여당이 국회 다수당이 된 만큼 21대 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찬성’ 발언은 그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이에 재계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입장은 단호해 보인다. 김 위원장은 박 회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나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 관련해 공약을 만든 사람”이라며 “그때는 지금 법안보다 더 강한 공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직접 작성하고 관철한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구상대로 실현하는 데에 늘 한계가 있었다.

그는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 영입돼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기도 했지만, 그 공약은 박 전 대통령 당선 뒤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30일 국민의힘 전국 지방의회 의원 연수에서 “선거 때 약속한 걸 최소한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선거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니 옛날식으로 돌아가자는 사람이 자꾸 생겼다”며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승리하니까 일반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공약의 글씨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민심이 이반되고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시절에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김 위원장은 민주당 비례대표를 지내던 20대 국회 때 다중대표 소송제가 담긴 상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는 등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에 들어가 있는 내용과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김 위원장의 꿈은 좌절됐다.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은 기업에 대한 소송 남발 등 부담을 우려해 철저한 보완책 없이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재계가 경영권 위협을 주장하며 이를 적극 반대하던 논리와도 같았다. 법안을 심사하는 법사위원회에서도 늘 여야 간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지난 9월 23일 국회를 방문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이동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국회를 방문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이동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과거와 다른 21대 국회 분위기,
김종인의 시도가 수구세력 균열로 이어질까

하지만 21대 국회 분위기는 다르다. 여당의 총선 압승과 김 위원장의 보수정당으로 ‘이적’이 그 배경이다. 자유한국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을 이끄는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면서 공정경제 3법도 덩달아 급물살을 타게 됐고, 민주당도 두 팔 벌려 환영하면서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정경제 3법은 21대 총선 직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당 쇄신 작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 3법의 찬성은 비대위가 그동안 해온 당 쇄신 작업과는 또 다른 성격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기본소득 주장, 정강정책 개정, 5.18 무릎 사과 등 과감한 외연 확장 행보를 보였다. 당명과 당색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에 당내 일각에서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이내 수그러들었다. 이러한 쇄신 작업은 국민 정서에 맞춘 선언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반면 공정경제 3법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선다. 보수정당이 지녀온 정책 기조를 실제로 바꾼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은 대기업을 지원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늘 입을 맞추면서 기업에 대한 규제도 반대해왔다.

그런데 공정경제 3법의 경우 재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도 보수야당에서 이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 됐다. 대기업에 대한 기존 보수의 입장과는 판이해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내부 반감이 보다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화상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화상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총선 참패를 겪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종인표 쇄신 작업에 대놓고 반대는 못 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법사위원 중 한 명인 장제원 의원만 “경제민주화는 우리의 약속이었다”며 공정경제 3법 처리에 공개적으로 찬성한 상태다.

그 외 다른 의원들은 ‘반시장적 요소는 없애야겠지만 큰 틀에서는 필요하다’는 정도의 유보적인 입장만 표명하고 있다. 공정경제 3법을 심사할 국회 정무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하거나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자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성일종 의원은 최근 MBC라디오에서 “왜 우리 국민의힘이 전향적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저도 그렇고 (김종인) 위원장도 그렇고, 큰 틀에서는 수정하고 시장을 보완하자는 것에 이견이 없다”면서도 “반시장적 요소가 있어서 기업을 옥죄거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분이 있으면 여야가 협의해서 그 부분을 열어줘야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서 ‘경제통’으로 꼽히는 윤희숙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현재 법안 논의는 근거도 없이 재계의 걱정을 엄살로 치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런 법안들은 다른 나라에서 입법 사례를 찾아보기도 힘들고 도입했다가 부작용으로 폐지한 나라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내 여론을 수렴한 주호영 원내대표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기자들과 만나 “쟁점 하나하나마다 기업이나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저희 의견을 정리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당내 반대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기자들과 만나 “(공정경제 3법) 자체가 큰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원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정할 것이 몇 개 있으면 다소 고쳐질지 모르지만 3법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의원 숫자가 많으니까 반대 의견도 제시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도 법안을 세밀하게 만들면 재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진 않을 것이라며 ‘반대파’를 달래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번의 ‘좌클릭’ 시도가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주목된다. 특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에 김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가 동조하면서 보수진영에선 균열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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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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