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시스템·보안 물론 급식까지 전체 외주의 78% 계열사 맡겨 정부 보고 않는 ‘기타용역’ 분류 장부상 적자 4년간 법인세 ‘0원’ 면세·계열사 지원 일석이조 효과 고영인 의원 “회계감사·수사 필요” 병원쪽 “필수 분야만 계열사 거래”
삼성서울병원이 외주용역비 명목으로 2019년도에만 계열사에 1400여억원의 일감을 수의계약 등의 형태로 몰아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삼성서울병원이 최근 2년 동안 전산시스템 관리, 시설 운영 및 보안, 급식 등의 용역을 삼성그룹 계열사에 몰아줘 2천억원대의 비용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이사장 이재용)이 운영하는 삼성서울병원은 2018~2019년 삼성생명보험과 식음 브랜드인 삼성웰스토리, 에스원, 삼성에스디에스 등 24개 계열사에 모두 2666억원을 외주용역비로 지출했다. 2019년은 전체 외주용역비 1789억원 가운데 계열사에 1412억원, 2018년은 1737억원 중에 1254억원이 계열사에 지급됐다. 이 병원이 2019년 계열사에 지급한 외주용역비는 병상 수가 400여개 더 많은 신촌세브란스의 전체 외주용역비 827억원보다 585억원 더 많다. 고영인 의원은 “삼성서울병원은 계열사에 지불한 외주용역비를 보건복지부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기타 항목으로 분류해 회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 것을 감추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또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4년 동안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이익을 축소해 법인세를 적게 납부한 의혹 등으로 2017년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다. 전필건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은 “다른 대학병원들은 이익을 전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설정한 뒤 장부상 순손실로 처리해 면세 혜택을 받고 있는 데 반해, 삼성서울병원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면세와 계열사 지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병원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건강보험재정으로 유지하는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특히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2170억, 지분율1.05%), 삼성생명(3248억, 지분율 2.18%) 등 5천억원대의 삼성 관련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7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 단원갑)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인 의원실 제공
삼성서울병원의 외주용역 관련 행태가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삼성 계열사들은 경쟁사업자의 진입 우려 없는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를 통해 사업 기반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재무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강화하게 되므로 경쟁사업자에 비해 경쟁조건이 유리하게 된다”며 “공정거래법상 부당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도 “같은 대기업 소유 대형병원과 비교해도 200배가 넘는 외주용역비를 계열사에 지급한 것 자체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짙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서울병원의 수상한 회계에 대한 감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또한 “삼성에스디에스와 삼성서울병원은 국민 1천만명 이상의 의료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의 원격진료까지 넘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삼성이 보유한 공익재단은 사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쪼개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회적 의심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서울병원을 부당 계열사 불공정거래, 헬스케어사업 전초기지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운영의 특성상 효율성과 보안성이 요구되는 일부 분야에서 삼성 계열사와 거래하고 있으나, 계열사와의 거래에 있어서도 정상가격으로 거래를 하고 있으므로 공정거래법 위반은 아니다”라며 “지출 내용 면에서도 삼성생명은 건물 임차료, 웰스토리는 직원 및 환자식, 에스원은 시설 운영 및 보안, 에스디에스는 병원 정보시스템 개발 및 관리료 등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 근교 출신이지만,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프랑스인 사진작가 호맹(boulesteixromain)이 한국 풍경 촬영기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풍경 사진은 물론, 이에 담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기자말]
파리 근교 일드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지만 전체 일생의 3분의 1 이상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는 나는 멋진 자연 풍경을 렌즈에 담아내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사진작가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인테리어나 제품 사진을 찍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동시에 높은 산이나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일출과 일몰이 자연이나 도시와 함께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포착하기도 한다. 나는 이 일을 10년 넘게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해 오고 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이 나라와 도시 자체도 낯설었지만, 개인적으론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제 막 시작하던 중이었다. 모든 풍경이 새로웠으며 빨리 이 멋진 자연 풍광, 그리고 일출과 일몰을 아름답게 찍어야겠다는 욕심이 넘쳤다. 풍경 촬영 전에는 높은 건물의 옥상이나 산, 대교 등에 올라가 보는 답사가 꼭 필요하다.
열정이 넘치던 나는 어떻게든 빨리 어떤 사진사도 가보지 못했을 법한 뷰 포인트를 찾고, 비슷한 풍경을 찍더라도 누구보다도 새로운 시각으로 이를 보여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정말 여기저기 올라다녔다. 특히 서울 시내 및 근교에 위치한 산은 물론 봉까지 전망이 좋아 보이는 곳은 꼭 올라야만 했다.
한국은 도시 근처에 작은 산이 많아 매력적이다. 가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알프스 산맥의 스키 슬로프, 2주간의 피레네 산맥 하이킹과 호텔에서의 꿀맛 같았던 식사를 생각하면 유럽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특히 서울의 비교적 낮은 산은 큰 부담없이 오를 수 있어 좋은 데다,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고, 산 입구까지도 지하철만으로 아주 편하게 닿을 수 있으니 등산을 좋아하는 사진작가로서는 정말 행운이다.
파리를 기준으로 당일치기 몇 시간 만에 등산을 다녀온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다. 물론 차로 네 시간 정도 이동하면 천 미터도 채 안 되는 산에 닿을 수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등산을 즐기려면 이미 몇 달 전부터 기차표는 물론 차 렌트, 숙소 등등 모두를 큰돈 들여 예약해놔야 한다!
▲ 나의 개인 홈페이지에 업로드한 풍경사진 스크린샷. 한국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지만 고향에 갈 때마다 찍은 프랑스의 풍경 사진도 꽤 있고, 확실히 각기 대조되는 매력을 풍긴다. 시계방향으로 DDP, 여의도 불꽃축제, 성산 일출봉, 경복궁 경회루, 동대문, 경상북도 보은, 에즈(프랑스 남부지방 마을), 건국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 Blanc). ⓒ boulesteixromainfrederic
10년 넘게 이렇게 한국의 풍경을 찍다 보니 해볼 만큼 해봐서일까, 아니면 반복되는 작업에 좀 지쳐서일까? 불현듯 이제 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 풍경사진을 찍는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진은 풍경만을 보여주는 과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는 작업임을 오랜 기간에 걸쳐 깨닫기도 한 터다. 남들보다 좋은, 남들과 다른 풍경을 담아내겠다는 욕심에서 급하게 뛰어다닌 모든 발걸음에는 나의 불안함이 스며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엄청 신나긴 했지만!
올해부터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 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촬영의 모든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또 배우고자 하고 있다. 정상에서 최종적으로 찍게 될 사진의 프레임에만 나를 가두지 않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에 가능성을 열어두며 좀 더 천천히, 더 풍부하게 즐겨보고자 하는 것이다.
현명하며, 인내심 있고, 결과만큼 작업 과정에도 충실한 사진작가가 되기! 이를 목표로 나의 촬영 여정을 당신과 함께 나누며 나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고자 한다. 처음 소개하고자 하는 풍경은 지난 8월, 정말이지 싱그러웠던 여름날 찾았던 관악산 문원폭포다.
거칠지만 우아한, 문원폭포의 다채로운 얼굴
나는 매년 여름 산을 이곳저곳 찾아 폭포 촬영을 한다. 생각보다 폭포 물이 말라 있어 좋은 촬영이 되지 못했던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올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왔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가까이서 접한 홍수는 2011년 우면산 산사태뿐이었는데, 올해에도 크고 작은 비 피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비가 살짝 잦아들었을 때 문원폭포를 찾았다. 자연이란 '연악한 괴물'이 태연히 거센 물줄기를 콸콸 내뿜는 동안, 계곡은 물길 따라 찰랑찰랑 흐르고 있었다.
관악산에 위치한 문원폭포는 지하철 과천정부청사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시작되는 등산 코스를 따라 20분 정도만 더 가면 만날 수 있다. 사실 등산로는 두 개가 있는데 그중 더 낮은 1등산로를 선택한다면 편안한 하이킹을 즐길 수 있긴 하나 사진 찍는 사람 입장에서 특별히 매력적이진 않다. 대신 좀 더 높은 2등산로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준다, 그야말로 장엄하다!
▲ 이 아름다운 장관을 보라, 벌써부터 달려가고 싶지 않은가? ⓒ boulesteixromainfrederic
사실 전에도 이 폭포에 와 본 적이 꽤 있다. 나름 자주 왔던 이유는, 폭포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주변 환경이 아주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포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꼭대기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간 사이즈의 폭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아래로 눈을 살짝 돌려보자. 폭포가 바위의 등을 타고 지그재그 춤추며 일련의 곡선을 만들어가는 이 모습은 특히 우아하다.
폭포 자체가 온전히 포효하는 에너지와 이런 우아함을 동시에 목격하다 보면 그야말로 자연의 기적적인 '수완' 같다. 물줄기가 수많은 표면에 부딪치며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를 내뿜는 순간, 이 곡선은 올여름 그 화나 있던 '장맛비 괴물'보다는 왈츠를 추는 발레리나의 모습에 가깝다.
▲ 나무와 바위가 폭포를 담아내고있는 모습이 맘에 든다. 이 구도의 촬영 중 단연 맘에 들었던 사진. ⓒ boulesteixromainfrederic
▲ 올해 우기가 아닌 날 찍었던 이 폭포의 사진. 평범한 여름날엔 건조하고 안개가 끼어 ‘노쇠한’ 모습이다. ⓒ boulesteixromainfrederic
▲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우아한 곡선을 좀 더 가까이서 보여주는 사진. ⓒ boulesteixromainfrederic
한국에 오기 전, 나는 한국의 폭포를 떠올리며 막연히 높고, 물줄기가 곧고 세차게 퍼부어지는 절벽과 깊고 푸르른 웅덩이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 폭포의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의 폭포는 숲속에 숨어 있으며, 대부분 아주 높지도 않고, 물줄기는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경사진 바윗면이 적당한 각도를 만들어냄으로써 폭포 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좀 더 부드럽게 흐르게끔 한다. 이는 마치 거친 바윗면이 이를 타고 흐르는 물과 함께 만들어낸 혈관 같기도 하다.
▲ 물살이 돌에 부딪쳐 만들어내는 패턴도 멋지지만, 이 구도에서는 폭포 위의 또 다른 폭포처럼 보이지 않는가? ? ⓒ boulesteixromainfrederic
거센 물줄기와 단단한 바위가 만들어내는 풍경만이 전부가 아니다. 폭포 주변을 에워싸고있는 식물은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 이 사진은 사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사진에 보이는 끈적끈적한 바윗면을 지나 다른 식물과 곁들여 이 노란 꽃을 담아보려 했지만 카메라와 함께 이동시 미끄러질 위험이 컸기에 이 꽃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었다. ⓒ boulesteixromainfrederic
또, 식물만 있는 건 아니다. 올여름 한국에 쏟아진 어마어마한 양의 비로,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는 버섯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 산에서 발견한 이 버섯은 어떤 종류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떤 종류인지 아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 boulesteixromainfrederic
▲ 이 사진은 생기넘치던 계곡을 떠나, 관악산 등산로에 숨어있던 한 우물을 포착한 것이다. ⓒ boulesteixromainfrederic
이번 폭포 촬영에서 나는 꽤 직선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기 쉽게 담아봤다. 하지만 마지막 사진에서는 살짝 예술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흑백사진 촬영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사진을 통해 좀 더 다른 미학을 추구해보고, 나의 스타일을 좀 더 넓혀보고자 했다.
흑백 사진을 통해 연출할 특별한 질감, 그림자 등 친근한 아이템을 찾아 헤맸고 그 결과가 사진 속의 바위다. 깊이 패인 물줄기가 아무리 바위를 때려부수려 한들, 지금도 아주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바위는 오랜 기간 이 곳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장마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계곡물을 반으로 가르며. '회복력(resilience)'에 대한 시를 읊으며.
*문원폭포에 방문하고 싶다면 등산로 영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원고 번역 및 편집 : 김혜민
덧붙이는 글 | 사진작가 호맹의 홈페이지 호맹포토(http://www.romainphoto.com)의 Blog에 문원폭포는 물론, 다양한 풍경사진 촬영기가 영어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romainphoto_outside)에는 하이킹 사진 외에 더 많은 한국의 풍경 사진이 담겨있으니 많이 많이 들러서 감상해주세요!
정부가 7일 낙태죄를 유지한 채 임신 주 수 등에 따라 예외적 허용한다는 취지의 형법 등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여성계와 법조계는 “정부가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켰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라고 촉구했다.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 중단에 허락은 필요 없다,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9.24ⓒ김철수 기자
법무부·보건복지부가 이날 입법 예고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 낙태죄 처벌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임신 주 수에 따라 예외적 허용 조건을 신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까지는 여성 요청이 있으면 임신중지를 허용한다. 이후 24주까지는 ▲성범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친족간 임신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여성의 건강을 심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일부 허용한다. 이때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여성은 상담을 받고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임신 주 수 따라 처벌? “과학적·법적 근거도 없다”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남겨두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이다. 여성계·의료계·노동계 등이 모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처벌이 전제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과 평등권, 자기결정권은 온전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는 요건이 구성됐다”라며 “여성의 권리는 국가의 허락에 의한 ‘조건부’의 권리가 된다. 처벌을 끝내 유지하며 권리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태도에 강한 분노를 표한다”라고 질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역시 이날 성명서를 통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립하지 않는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언급하며 “이는 임신·출산으로 인한 모든 불이익은 여성이 감당하게 하고, 낙태한 여성을 형사처벌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생명을 보호한다고 자위했던 위선의 시대를 끝내라는 언명”이라고 말했다.
임신 주 수에 따라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조항은 과학적,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신 주 수는 ‘추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낙폐는 “임신 주 수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월경일을 기준으로 하는지, 착상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임신당사자의 진술과 초음파상의 크기 등을 참고해 ‘유추’되는 것일 뿐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라며 “주 수에 따른 제한 요건을 둔 것은 단지 처벌 조항을 유지하기 위한 억지 기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민변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형사 처벌의 기준으로 삼으려면 임신 주 수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초음파 검사를 해도 태아 크기 등에 비춰 임신 주 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임부가 과연 임신 23주 5일째인지 24주 1일째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라고 짚었다.
여성의 현실과도 괴리된 지점이 있다. 보통 임신 시작일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하는데, 생리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거나 임신증상이 특별히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 14주 차까지 임신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임신 14주 차~24주 차에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지를 원할 경우 상담과 숙려기간을 의무로 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의 임신중지 시기를 늦출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여성은 이미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대한 숙고를 거쳐 임신중지를 결정하며, 이 조건들은 대부분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라고 했다. 모낙폐는 “프랑스에서도 2015년 숙려기간 규정을 폐지했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의무 숙려기간 없이 상담은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받도록 한다”라며 “이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위원회 등에서도 거듭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임신 24주 차 이후 임신중지를 무조건 처벌하는 데 대해서 민변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 원칙인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강간 피해자가 장애, 나이 등으로 인해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24주 이후 임신중지를 하면 처벌받는다.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24주를 넘긴 여성도 마찬가지”라며 “여성은 임신을 지속해 건강을 해치거나 임신중지를 하고 처벌받아야 한다. 여성을 기본권 주체로 보지 않는 태도가 극명하다”라고 비판했다.
임신 주 수를 고려하는 데서 중요한 방향은 ‘언제부터,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르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을 보장할 것이냐’가 돼야 한다고 모낙폐는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지 경험 여성 중 95.3%가 12주 이내에 수술을 받았다. 주 수 제한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지적과 함께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도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들의 삶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낙태죄 폐지 위해 모인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임신중지 시술에 대한 의사의 진료 거부권을 명시한 점, 미성년자의 경우 동의 요건을 규정한 점도 여성의 건강권을 해치는 조항으로 지목됐다. 개정안에는 의사가 시술을 거부할 경우 관련 상담기관에 안내토록 할 뿐, 의료기관 연계 의무는 규정하지 않았다.
모낙폐는 “현재 산부인과의 지역별 격차도 매우 큰 상태에서 여성들은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건강권을 크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아르헨티나에서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11세 소녀가 임신 초기 임신중지를 요청했으나, 동의 요건 제한과 의사의 거부로 인해 시술이 지연됐고, 3주에 이르러 태아가 생존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제왕절개수술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하면 ‘낙태 남용’한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들이 낙태를 ‘남용’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지난 6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라는 불분명한 기준이 들어있다. 너무 포괄적이고 낙태를 남용할 소지가 굉장히 농후해진다”라고 말했다.
이에 여성 누리꾼들은 “자신의 몸을 해치는 낙태 수술을 어떻게 남용할 수 있냐”라며 “낙태를 남용한 건 과거 국가가 정책적으로 낙태를 권장하고 여아 낙태가 성행하던 시기 가능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서지현 검사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간통죄 폐지가 간통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듯, 낙태죄 폐지가 낙태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가 두려워 낙태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불법화된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안과 달리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이날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모낙폐는 “새로운 낙인과 허용의 기준이 아닌 임신중지를 필수의료행위로서 공공의료 영역에서 보장하는 법과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위기 임신에 대한 예방 사업이 아닌 임신중지와 유지, 출산과 양육 전반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지원 사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더는 여성을 기만하지 말라. 우리는 처벌도 허락도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시작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은 3일 만에 3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최근 일련의 흐름에 이 정부 및 민주당은 물론, 일부 진보세력 내에서도 ‘자주·민주·통일’ 노선에 부합하지 않는 수정주의 노선을 들고 나오는 경향이 발견된다.
해서 이 글은 <평화를 넘어, 통일로!!!>라는 주제 하에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는 방식으로 ‘자주·민주·통일’ 노선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왜 통일담론이 계속 유효해야 되는지를 시론(時論)해본다. (필자 주)
글 싣는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왜, 통일담론이어야 하는가? 2.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가? 3. 시대와 노선: ‘자·민·통’ 노선의 불변성
1. 들어가기에 앞서: 연평도 실종 공무원 사건발생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
연평도 실종 공무원 사건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 만큼, 사건발생이 여러 날 지났지만, 지금도 대한민국은 논란으로 뜨겁다.
보수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친북성을 부각하기 위해, 보수야권은 정권재탈환을 위한 정쟁의 도구로, 문재인 정부 지지 세력들은 파산직전의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나가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자 난리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러한 1차적 시각을 좀 뛰어넘으려 한다.
왜냐하면 현상은 ‘피격’이라는 불행으로 와 닿았지만, 본질은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불상사는 언제든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 그렇다.
2. 분단체제가 갖는 함의: 분단극복 없는, 평화는 없다
그래놓고 이번 연평도 공무원 실종사건을 접해보면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이 얼마든지 북미, 남북 관계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음이 가장 적나라하게 실증된다.
먼저, 미국의 움직임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은 공무원 실종 4시간 만인 22일 일본 가데나 공군기지에 있는 전략정찰기 코브라볼(RC-135S)을 오후 7시 16분께 서해 주변 상공에 띄웠고, 군용기 추적 전문 트위터 계정인 <노 콜사인>(No Callsigns)에 따르면 한국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 아이'일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체가 오후 9시 48분엔 미상의 비행체가 인천에서 약 100km 떨어진 서해 상공에서 서쪽 방향으로 비행했음이 확인됐다. 또한 그 시각 주한미군은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탱크 킬러'라 불리는 A-10(선더볼트-Ⅱ) 대전차 공격기 3대를 인천과 서해 일대에 전개했다. (<뉴스1>, 9월 25일자 보도)
다음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갈등들이다. 군사적으로는 ‘불필요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충돌의 위험도 배가된다.(실제 NLL를 둘러싼 갈등은 첨예화 되었다.)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쟁으로 하세월이다. 국민들은 정권지지 성향에 따라 이념갈등으로 네편, 내편으로 나눠진다. 거기다가 북에 대한 인식은 ‘무찔러야’ 하는 적대국가로 돌변된다.
위 두 진단으로부터 공무원이 피격될 무렵 북미군사 상황이 얼마나 긴장됐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음을, 또 가장 적나라하게 분단비용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 전제하에 한반도의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과 북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휴전상태이다.
둘째, 한반도는 현재까지도 분단을 종식시키지 못한 미(未)통일 상태이다.
그럼으로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평화체제 수립은 분단극복과, 종전을 거쳐 항구적 평화체제구축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해서 이번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도 진정한 교훈이 국민의 생명안전이라는 ‘실체적’ 진실과 함께,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단체제 극복없는 평화없다’는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이해이다.
즉, 분단체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숙명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달리는, 이 분단체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2의, 제3의 일촉즉발의 위기정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분단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 체제가 구축되지 않음도 분명하다.
그러니 그 어찌 분단체제 하에서 평화가 관리될 수 있다는 말인가? 허구이다. 가능하지 않는 가설일 뿐이다.
결과,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사실은 제가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추구는 허구이다’가 증명된다. 연장하면 분단체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민주당과 일부 개혁진보세력들의 평화공존론도 허상임이 분명하다.
3. 우리는 분단체제에서 왜 평화가 아닌, 통일담론에 눈을 돌려야만 하는가?
동시에 위 인식으로부터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분단극복정책은 반드시 평화·통일정책이라는 수fp의 두 바퀴로 접근되어져야 함도 알 수 있다. ‘평화’라는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없음이 분명하게 증명된다는 말이다.
복잡하지도 않다. 아주 간단명료한 인과적 결론이 이를 중명한다.
다름 아닌,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숙명이 존재한다. 이를 국운 도약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민족(국가)의 힘에 달려있다.
같은 논리로 분단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갖는다. 분단으로 인해 불완전한 국가주권이 형성되어 있고, 국가구성원인 민족이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이 엄청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분단국가는 필연적으로 통일을 지향하게 되어있고, 분단극복과 연동되지 않는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즉, '통일의 진전 없는 평화 없고, 평화진전 없는 통일진전도 없다'와,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만이 평화도 앞당겨 질 수 있다'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그렇게 성립하는 것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연휴 중이던 지난 4일, 원로 사회학자 이이효재 선생이 돌아가셨다. 이이효재 선생은 대한민국의 1세대 사회학자일 뿐만 아니라 여성운동의 거목이기도 하다. 더구나 1924년생이라 향년 96세다. 삶의 행적만 찬란하고 풍성한 게 아니라 한 세기를 거의 채운 그 시간의 무게 역시 압도적이다. 그래서 누구든 선생의 부고 앞에서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 역사라는 차원을 실감하며 새삼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20여 일 전에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밝기로 우리를 비추던 별 하나가 떨어졌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이효재 선생과 동갑이다. 20세기 이탈리아 좌파정치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오늘날은 무엇보다 위대한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로사나 로산다(Rossana Rossanda)가 그 사람이다.
9월 25일에 로마에서 거행된 로산다의 추도식에는 이탈리아에 유독 큰 상처를 입힌 코로나19 탓에 많은 이들이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7만 명 넘는 이들이 온라인 중계 사이트에 접속해 추모의 마음을 나누었다. 백 년도 훨씬 넘게 좌파의 아성이던 토스카나에서 극우파가 주지사 선거에 거의 승리할 뻔할 정도로(로산다가 사망한 다음날, 결선투표에서 중도좌파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이념 지형이 오른쪽으로 잔뜩 기운 요즘 이탈리아에서 이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숫자다.
그만큼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서 로사나 로산다라는 이름은 한 개인을 넘어 역사를 상징한다. 영광의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상처를 남긴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잃은 남은 자들이 손에 쥔 유일한 지도인 역사. 그리고 이 역사는 이탈리아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얼마간 빛을 던져주는 이야기보따리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좌파 일간지 '일마니페스토'가 자사의 설립자이기도 한 로산나 로산다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를 냈다. ⓒ일마니페스토 누리집 갈무리
▲일마니페스토 페이스북 계정에 로사나 로산다 추모 기사가 올랐다. 사진은 로산다의 자서전 '지난 세기의 소녀'에 표지에 사용된 사진이다. ⓒ일마니페스토 페이스북 갈무리
10대 소녀 빨치산에서 68세대의 믿음직한 선배로
한반도의 비슷한 세대와 마찬가지로 로산다 세대는 세계사의 가장 거대한 혼란 속에서 성년을 맞이했다. 이탈리아는 본래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지만, 1943년 연합군이 남부 이탈리아에 상륙하자 내전에 휩싸였다. 겁먹은 파시스트 고위층이 무솔리니를 축출하고 항복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독일군이 개입해 무솔리니를 구출하고는 북부 이탈리아에 그를 수반으로 한 괴뢰정부를 세웠다. 졸지에 사실상 독일군 점령지가 된 북부 각지에서는 민중의 무장 항쟁이 시작됐다. 공산당, 사회당, 행동당 같은 좌파뿐만 아니라 기독교민주당, 자유당까지 투쟁에 함께 했다.
슬픈 역사와 함께 한국어에 편입된 단어 '빨치산'이 이때 북부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험 같은 것이 되었다. 이 세대에 속한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초기작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이현경 옮김, 민음사, 2014)에서 당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바로 이런 젊은이들 가운데에 막 대학에 입학한 19세의 로사나 로산다도 있었다. 로산다는 '미란다'라는 조직명으로 밀라노 시내에서 지하 저항 세력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며 정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10대 소녀 빨치산 '미란다'가 택한 정치조직은 공산당이었다. 그 또래의 다른 많은 이들도 비슷했다. 반파시즘 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펼친 조직은 공산당과 행동당이었고, 그 중에서도 공산당에게는 러시아 10월 혁명의 후광이 따랐다.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해방 이후 쭉 좌파 정당들 편에 선 이 세대 덕분에 이탈리아는 이후 반백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에서 급진좌파 세가 가장 강한 나라가 됐다. 로산다 역시 공산당 밀라노 지부에서 상근자로 일하며 이런 시대 분위기를 이끌었다.
당 활동 초기부터 로산다는 잡지 지면을 통한 문필 활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50년대에 한때 200만 당원을 보유하며 곳곳에 민중의 집을 건설하고 당원 수보다 훨씬 더 많은 발행 부수로 일간 <루니타>('단결')를 내던 공산당은 이탈리아 문화계에서는 여당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문화 투쟁의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주간지 <리나쉬타>('재생')였는데, 로산다는 이 잡지의 편집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명성으로 당의 문화 담당 책임자가 됐다가 1963년에는 하원의원에까지 당선된다.
로산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이 시절을 보노라면, 참으로 서글픈 감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 로산다가 속했던 세대의 동년배들이 한반도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던가? 이탈리아에서는 반파시스트 내전이 좌우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게 어쨌든 막았고, 이후 반세기 가량 이어진 제1공화국에서는 “이탈리아는 노동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1항처럼 좌파가 적어도 제1야당으로서 민주공화국의 한 축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내전을 피하지 못했고, 냉전의 양 진영이 이 땅에서 맞붙었으며, '미란다'처럼 이상과 그 실천에 투신했던 한 세대가 파괴되고 말았다. 회한과 우울 없이는 마주할 수 없는 역사의 갈림길이다.
이렇듯 냉전 시기에 두 반도의 운명은 극명히 대비됐다. 하지만 영광의 시절이 마냥 지속될 수만은 없었다. 좌파의 양적 성장이 내부 모순에 대한 영구 처방이 될 수도 없었다. 1960년대에 학생운동이 폭발하고 노동운동이 급진화하자 이탈리아 공산당 안에는 조르조 아멘돌라를 중심으로 한 우파와 피에트로 잉그라오를 중심으로 한 좌파가 등장해 격렬히 논쟁했다. 로산다는 잉그라오 좌파의 이론가였고, 학생운동에 연대를 표한 몇 안 되는 공산당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급진적 사회운동들보다도 공산당에 더 심각한 충격을 준 것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었다. 이때 이탈리아 공산당 안에서 소련의 행태를 준열히 비판하고 나선 이들은 잉그라오 좌파의 차세대 지도자들인 루치오 마그리와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그리고 로사나 로산다 같은 이들이었다. 당 집행부는 처음에 이들의 비판을 묵인하는 듯 보였지만, 로산다 등이 <일 마니페스토>('선언')라는 독자 저널을 발행하고 나서자 더는 가만있지 않았다. <일 마니페스토> 그룹은 출당 당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한 시기의 종말에 그치지만은 않았다. 뜻밖에도, 새로운 시기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1971년 <일 마니페스토>는 일간지로 변신해 60년대에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경험한 수많은 이들, 즉 이탈리아의 68세대와 만났다. 로사나 로산다는 이 신문의 편집을 맡아 68세대가 가장 신임하는 언론인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평생의 동지인 마그리나 카스텔리나가 좌파 정당 활동에 계속 개입하는 와중에도 로산다만은 <일 마니페스토>를 무대로 좌파 문화 전반의 방향을 모색하고 개척하는 데 집중했다.
이 시기에 <일 마니페스토>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 사회주의 체제와 제3세계 해방운동이었다. 이 무렵 한국 사회에서도 리영희, 박현채 등을 통해 비슷한 관심이 젊은 세대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또한 <일 마니페스토> 지면은 신좌파 여성 활동가들이 새로운 페미니즘 사상과 운동을 태동시키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역시 같은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이이효재와 그 제자들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중적인 여성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로산다가 후반생을 바친 신문 <일 마니페스토>는 좌파의 다음 세대를 위한 자기 혁신 운동의 핵심 기관이었고, 20세기 말의 이 혁신 시도는 1980년대부터 남한에서 부활한 좌파 문화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공산당 신문 <루니타>가 폐간된 지금도 일간 <일 마니페스토>는 계속 발간 중이다.
▲일마니페스토가 페이스북에 올린 로산다의 과거 사진 ⓒ일마니페스토
로산다가 남긴 물음 –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시대에 변화의 주체는?
안타깝게도 로산다는 행복하기에는 너무 오래 살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강성했던 이탈리아의 급진좌파는, 아니 좌파 전체는 1990년대 이후 계속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며 좌파민주당으로 변신했다. 로산다와 동지들은 한사코 반대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문제는 이탈리아판 '민주대연합' 노선의 대두였다.
부패한 기독교민주당이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라 불리는 대대적인 정치 비리 수사 이후에 와해되자 이탈리아에서는 우파가 정치 지도에서 거의 사라질 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언론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선배인 영국의 마거릿 대처처럼 우파 포퓰리즘과 신자유주의를 기묘하게 뒤섞은 신약을 선보이며 우파를 기적적으로 되살렸다. 아니, 단지 되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선거에서 거듭 승리하며 장기 집권했다.
좌파민주당을 비롯한 나머지 모든 정치 세력은 “베를루스코니만 아니면 된다”는 깃발 아래 총결집했다. 이탈리아판 '반이명박-반박근혜 민주대연합'이다. 이런 대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좌파민주당은 당명에 붙어 있던 '좌파'마저 떼어 버렸다. 단지 당명만 짧아진 게 아니라, 당의 이념까지 창당 당시에 선언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서 미국식 자유주의로 바꿨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는 급진좌파가 기세를 부리는 나라에서 졸지에 제도 정치 안에 좌파 전체가 사라진 나라로 돌변했다. 한국 진보 세력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밟은 퇴행 과정을 이탈리아인들은 30여 년으로 늘여 경험한 셈이다.
로산다는 만년을 이런 못 볼 꼴을 보며 보내야 했다. 그러나 짜증나고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씩씩했다. 한동안 기피하던 정당 정치에도 다시 개입했다. 지금 이탈리아 정계에서 좌파의 전통을 제대로 이었다고 할 수 있는 조직은 '이탈리아 좌파'(이하 좌파당) 정도인데, 이 당의 지지율(2-3% 대)은 정의당만도 못하다. 하지만 로산다는 이 당을 반격의 최후 보루라 여기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증손주뻘 당원들에게 자극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로산다가 2017년 좌파당 당대회에 보낸 서한이다. 이 서한을 낭독하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사뭇 숙연했고, 어쩌면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90세 노인이 무슨 선동문을 전달한 것은 아니었다. 서한의 내용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이었다. 화두였다.
지구 자본주의는 지금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로산다의 90 평생에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지겨운 예언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런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역시 90 평생 처음으로 변화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좌파는 오랫동안 노동계급이 그런 주체라 했지만, 이제는 변화의 주체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면, 자본주의가 벽에 부딪히더라도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커다란 위기의 시대에 변화의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3년 전 서한 내용을 압축한 것이지만, 이를 로사나 로산다가 우리에게 남긴 유언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엄중한 물음이다. 극우파의 부상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이탈리아 좌파처럼 나 역시 지금 당장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다. 노동계급에 여전히 주목하되, 기후 재앙이라는 초유의 전면적 위기에 걸맞게 노동하는 시민 전체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답해야 할 절실한 물음을 지닌 삶은 어쨌든 살아볼만하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다음 세대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답은, 역시 늘 그랬듯이, 백지 위에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성취뿐만 아니라 오류와 비극까지 아우르는 인류의 모든 자취들 위에서, 오직 그 위에서 다음 번 한 발자국은 내디뎌질 것이다. 과감하고, 단단하게.
끝까지 꿋꿋했던 이의 모습에서 다른 어떤 메시지를 읽기란 불가능하다. 그녀가 살아냈던 것처럼 우리도 살아나갈 것이다. 뒤늦게나마 동지 로사나 로산다에게 진심을 담아 작별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