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5일 목요일

수입의 80% 먹는 것에... 어느 4인 가족의 식비 공개합니다

 


[2024 신년 글로벌리포트 - 세계 장바구니 물가⑨] 멕시코 식료품비의 역설, 절망의 연구 결과

24.01.26 07:06최종 업데이트 24.01.26 07:06
'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코카콜라!'

아이가 태어나 '엄마', '아빠' 다음으로 익히는 말이 '코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나라, 멕시코 이야기다. 작은 고마움을 표할 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 코카콜라 한 병이 충분한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코카콜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코카콜라를 마신다. 미취학 아동 열 명 중 일곱 명이 코카콜라를 마시고 이른 아침 직원회의에 들어가도 커피 대신 코카콜라가 나온다. 가난한 누군가의 장례식, 정말 나눌 것이 없을 때에도 코카콜라는 있어야 한다.
어지러울 때,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혈압이 떨어졌을 때, 머리가 아플 때, 감기에 걸렸을 때, 기침을 할 때, 이 나라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마신다. 이쯤 되면 신비의 묘약이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 맵고 짠 멕시코 음식에 코카콜라는 영혼의 단비다.

평균 가계소득의 10%를 코카콜라 소비에 쏟아 붓는 나라. 정말 지극한, 아니 지독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코카콜라 가격이 인상된다는 뉴스가 큰 화제가 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빅뉴스다. 지난해 11월 14일 코카콜라 가격 인상 소식이 거의 모든 언론의 톱뉴스로 전해졌다. 코카콜라 600㎖ 한 병 가격이 기존 17페소에서 18페소로 인상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환율 기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360원이다. 미화 1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1억 3천만 명에 달하는 멕시코 전체인구 중 한 사람이 1년에 마시는 코카콜라의 평균 소비량은 164리터. 성인 인구로 한정한다면 소비량은 훨씬 많아진다. 어쨌든, 통계에 의하면 멕시코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에 약 440㎖의 콜라를 마시는 셈이다. 4인 가족이라면 하루에 50페소 이상을 코카콜라에 소비한다. 한화 4000원 정도다.

멕시코 4인 가족의 식비
 

▲ 멕시코 정부가 집권 이후 최근 5년 간 멕시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구매력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2018년 당시 하루 최저 임금으로 프리홀 3kg, 혹은 계란 3.5kg, 혹은 또르띠쟈 6.5kg을 살 수 있었던 반면, 2023년에는 프리홀 5kg, 계란 4.6kg, 혹은 또르띠쟈 10.2kg을 살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멕시코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 정도는 하루 8시간을 일하고 계란 4kg(대략 60개)을 살 수 있을 뿐이다. ⓒ 멕시코 정부

 
기왕 계산이 시작되었으니 우리 마을 흔하디흔한 후안 곤살레스의 하루도 계산해보자. 그는 아내 마리아 산체스, 그리고 미성년 두 아이와 함께 산다.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건축 현장을 돌아다닌 세월이 오래인지라 거의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닌다. 전기도 고치고 수도도 고치고. 집의 이곳저곳 어지간한 곳은 다 고친다. 나름 인기맨이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 맡길라 치면 기본 일주일은 대기해야 한다.

그의 아내 마리아 산체스는 잡화점에서 일한다. 아침 여덟 시 반에 출근해 오후 세 시에 퇴근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은 쉰다. 남편 후안이 하루에 버는 돈은 대략 300페소(한화 2만2800원). 아내 마리아가 버는 돈은 하루에 200페소(한화 1만5200원)다. 2023년 멕시코 하루 최저임금이 207페소(한화 1만5500원)이니 후안은 최저임금을 훌쩍 넘어서고 마리아는 최저임금에 살짝 미치지 못한다.

멕시코 경제활동 인구 5130만 명의 47%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자임을 감안하면 후안이나 마리아의 소득이 썩 나쁜 편은 아니다. 참고로 멕시코 교사들의 급여 평균은 7500페소다. 택배기사 급여는 7200페소 언저리다. 대졸자 초임과 은행 창구직원의 평균급여는 8410페소이다.

그러니 후안이 한 달에 25일을 일한다면 교사 혹은 택배기사와 비슷한 수준, 그리고 대졸 사원이나 은행 창구 직원보다는 조금 낮은 소득을 얻는 셈이다. 마리아의 소득은 우리학교(주립대학교) 비서직 종사자들이 받는 수준의 급여쯤 되겠다. 다행스러운 점은, 둘이 맞벌이를 하고 있고 부양해야 할 아이가 둘 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둘 다 마을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출퇴근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른 새벽, 날이 밝으면 후안의 큰아이가 마을 코카콜라 집으로 간다. 그 곳에서 1.5리터 혹은 2리터 정도의 코카콜라를 산다. 이 때 35페소가 지출된다. 그리고 토르티야 가게에 들러 1㎏의 토르티야를 산다. 다시 23페소가 지출된다. 이 두 가지를 사는 데만 부부 하루 소득의 10% 이상이 사라진다.
 

▲ 멕시코 사람들에게 토마토는 우리나라 김치와 같은 것이다.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멕시코 소스의 주재료가 토마토다. 여전히 거의 대부분의 집에서 토마토를 불에 구운 뒤 매운 고추와 함께 돌확에 갈아 소스를 만든다. 토르티야는 이미 가게에서 사먹는 가구가 대부분이지만, 소스는 여전히 집에서 만드는 편이다. ⓒ 림수진

  
아침은 최대한 간단하게. 여느 흔한 멕시코 가정에서처럼 코카콜라와 토르티야와 달걀요리가 전부. 멕시코식 오믈렛으로 한다면 계란 8개(500g, 28페소), 양파 하나(5페소), 토마토 2개(5페소), 고추 하나(0.3페소), 식용유(2페소)가 추가될 것이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적용해도 40페소가 지출된다. 앞서 산 토르티야와 코카콜라를 포함하면 벌써 부부 합계 소득의 20%가 지출된 셈이다. 물론 물 값과 가스비와 전기요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침으로 먹고 남는 음식이 있다면 엄마 마리아가 자신의 도시락으로 챙긴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는 점심값을 챙겨준다. 다행스럽게도, 현 정부에서는 초등학교에 한해 최소 비용(1인당 10페소, 한화 750원)으로 학생들에게 아침 간식과 점심을 제공한다. 밖에서 먹으려면 최소 70-80페소는 줘야 하는 정도의 양과 질이다.

엄마의 출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멕시코 사람들의 특성 상 맹물에 음식을 먹을 수는 없으니 출근길에 코카콜라 한 병을 더 살 것이다. 원래 17페소였는데 최근에 올라서 18페소. 다시 부부 합계 소득의 8%가 엄마와 아이들 점심값으로 지출된다.

이미 부부 합계 소득의 30% 정도가 지출되었다. 아빠 후안의 점심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식구들은 저녁도 먹어야 한다.
 

▲ 우리마을엔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이 없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토요일 오후 장이 선다. 마을에 있는 모든 가게들이 이곳에 물건을 내 놓기에 한 곳에서 한꺼번에 장을 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물론, 도시의 대형마트보다는 저렴하지만 최근 모든 값들이 껑충껑충 뛰고 있어 자꾸만 장바구니가 가벼워진다. 흔한 치즈도 예전처럼 흔전만전 먹을 수가 없다. ⓒ 림수진

  
아빠 후안의 점심은 복불복. 운이 좋으면 일을 하러 간 집에서 간단하게나마 간식 혹은 점심을 내 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인심은 더 박해졌다. 그렇다면 멕시코에서 가장 흔한 길거리 음식, 타코.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타코는 길거리 음식임에도 어지간해선 후안의 가족이 먹기 어려운 음식이 되어버렸다.

하나 당 10페소 아래쪽이었던 가격들이 슬금슬금 올라가는가 싶더니 15페소 선도 넘어선 지 오래다. 네 개만 먹어도 60-70페소, 거기다 코카콜라가 빠질 수 없으니 한 명 당 얼추 90페소쯤 지불해야 한다. 매일 본인 점심으로 하루 가계 소득의 20% 가량을 지출할 수는 없다. 결국 가장 저렴한 볼리조(멕시코식 바게트빵, 16페소)와 삶아 으깨 기름에 볶은 프리홀 한 컵(16페소), 거기에 역시나 코카콜라 600㎖ 한 병(18페소), 합 50페소. 가장 저렴한 선택을 해도 본인의 점심 한 끼로 부부 합계 소득의 10%가 지출된다. 물론, 저렴한 대신 부실해 매일 먹기는 힘든 음식이다.

중산층 수준 부부 1일 소득의 80%가 식비로
 

▲ 내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는 대형 마트나 슈퍼가 없다. 마을 곳곳의 작은 가게들에서 생필품을 조달한다. 닭은 닭집에서 치즈는 치즈집에서 고기는 고기집에서 사는 식이다. 다만 매주 토요일에는 마을에 장이 열린다. 마을 각 가게 주인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한 군데 모아 놓고 파는 식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마을 장터에서 토마토 열 개, 오렌지 네 개, 양파 아홉 개, 당근 여섯 개, 사과 여섯 개, 호박 두 개, 바나나 다섯 개, 파파야 반 통, 포도 1kg을 샀다. 내가 계산한 돈은 289페소다. 그 중 절반(140페소)가 포도 값이었다. 멕시코에서 포도는 매우 비싼 과일이다. ⓒ 림수진


중간에 간식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이른 저녁이 되어 식구들이 모일 때까지 부부 합계 소득의 40%가 오직 식비로 이미 지출되었다. 저녁은 그래도 아침이나 점심보다는 나아야 할 텐데, 부부에겐 이제 300페소(한화 2만2800원)의 돈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날이 제법 쌀쌀해진 요즘 닭수프라도 끓여 먹으면 좋으련만, 2㎏ 기준 닭 한 마리 값이 150페소(한화 1만1400원)를 넘어섰다. 고기 중 가장 만만한 게 닭인데, 이젠 닭도 맘대로 사 먹기 쉽지 않다. 닭수프를 끓이자면 쌀, 마늘, 양파, 토마토 등을 사야하기에 적어도 200페소는 써야 한다. 물론, 여기에 전기료와 가스값은 포함되지 않는다.

맘 크게 먹고 저녁은 닭수프를 끓인다. 저녁을 먹고 나면 부부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일을 하며 벌어온 돈 중 100페소가 남는다. 일요일엔 일을 하지 않기에 하루에 100페소 정도는 일요일을 위해 모아둬야 한다. 하루 번 돈 80%를 일용할 양식으로 지출하고 20%를 남기는 셈이다.

후안과 마리아 부부가 한 달에 25일을 일하고 버는 돈은 1만2500페소(한화 95만원), 2023년 멕시코 중산층의 가계소득 기준이 1만4500페소(한화 110만원)에서 시작되니, 약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멕시코 도시에서 절대빈곤선 기준이 1인 한 달 소득 2225페소(17만원), 그리고 빈곤선 기준이 4415페소(34만원)이니 마리아와 후안의 경우 결코 빈곤층이라 할 수 없다. 둘의 소득을 합하면 교사, 은행 창구 직원, 대졸 신입사원, 택배 기사들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가계 소득의 80%를 식료품 지출로 사용한다. 주거비나 의복비 혹은 교육과 여가는 이들의 지출 항목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 멕시코는 최저임금이 두 지역에 차등으로 적용된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의 최저임금은 나머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23년 최저임금의 경우 국경지역 최저임금은 312페소, 나머지 지역은 207페소였다. 2023년 최저임금 상승률은 20%였다. ⓒ 멕시코 정부

  
지난 5년 간 멕시코 최저임금은 매년 20% 이상 상승하여 총 235% 증가했다. 2018년 현 대통령 취임 당시 88페소이던 1일 최저임금은 2023년에는 207페소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 멕시코 사람들의 삶이 후안과 마리아 부부처럼 한 치 여유도 없이 팍팍한 것은 물가도 같이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멕시코의 물가상승률은 평균 8%를 상회했다. 물론 공식 통계치다. 실제 삶에서 느끼는 상승폭은 더 거세다. 2013년 토르티야 1㎏ 가격이 10페소를 상회했을 때 멕시코의 모든 언론은 금방이라도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이었다. 작년에 20페소를 넘어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23페소. 물론,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토르티야 가격만 유유히 올라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많은 것들이 '사치재'가 되어버렸다. 그 중 단연 으뜸은 빵이다. 지난 3년 사이 가격 상승률이 50%에 육박한다. 아무리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가 주식이라고 하지만, 빵 역시 소비가 큰 편이다. 1인당 연간 34㎏을 소비한다(우리나라는 약 7.5㎏이다). 그러니 빵 소비에 대한 지출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단품 빵 하나에 6페소 혹은 7페소 하던 가격이 10페소를 넘어섰다. 몇 해 전 6페소 하던 빵 값을 7페소로 올린 뒤 밤이 늦도록 도무지 빵이 팔리지 않아 다시 가격을 내렸던 마을 빵집의 2023년 빵 한 개당 가격은 11페소였다.

하루 24시간 31분을 일해야 하는 밑지는 삶
 

▲ 오렌지 9개, 토마토 10개, 양파 7개, 사우어크림 작은 컵 하나, 치즈 500g, 계란 500g (8개), 작은 빵 4개, 바나나 9개를 사고 치른 가격이 360페소였다. 사과, 포도, 파파야 등과 같은 과일이 있지만, 사람들은 예전처럼 쉽게 과일을 사지 않는다. 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같이 간 이웃이 그랬다. 요즘 같으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라고. ⓒ 림수진

 
지난 주말, 마을에 장이 섰을 때 같이 장을 보러 나선 이웃은 돈이 훨훨 날아간다며 연신 툴툴거렸다. 오렌지 9개, 토마토 10개, 양파 7개, 크림 작은 컵 1개, 치즈 500g, 빵 4개, 계란 500g, 바나나 9개를 사면서 그녀가 치른 값은 360페소였다. 혼자서도 거뜬히 들 수 있는 양인데 360페소라니. 불과 2-3년 전만 해도 장에서 200페소만 지출해도 장바구니는 혼자 들고 오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비싸!'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일단 채소는 사되, 과일 사는 것을 포기한다고 했다. 고기는 일주일에 한 번만 먹는다고 했다.

결국 자급의 정도를 서서히 올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다행히 내가 사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는 채소와 야생 과일들이 흔한 편이다. 닭과 계란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문제는 토르티야와 코카콜라. 아무리 옥수수가 풍년이라도 결국 토르티야의 가격 결정에서 소비자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 10억 장 이상 팔리는 토르티야에 대한 영향력은 이미 소비자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25페소든, 30페소든, 정해진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멕시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의 기조는 ‘적절한digno’ 수준의 임금 회복이다. 현 정부가 집권을 시작한 2018년 88페소였던 최저임금은 임기 마지막이 될 2024년에 멕시코 국경 지역의 경우 374페소, 나머지 지역은 248페소로 상승하였다. 6년 간 280% 이상 상승하였지만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물가 상승이 원인이다. ⓒ 멕시코 정부

 
예전에 비해 세상은 더 발전했다고 하는데, 삶은 더 팍팍하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행한 연구에 따르면 1987년에는 하루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들을 구하기 위해 4시간 53분 만 일하면 되었다. 이후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2006년에는 13시간 17분, 2015년에는 20시간 38분, 그리고 2016년에는 23시간 53분을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하루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 나면 겨우 7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더 슬픈 사실은, 급기야 2017년에는 24시간을 넘겨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하루 24시간을 살기 위해 24시간 31분을 일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다. 아이러니다. 하루하루 살수록 밑지는 삶이다. 슬픈 현실이다.
 

▲ 아!! 맥주. 코로나 맥주.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만만하게 마시는 코로나 맥주. 355ml 여섯 캔을 한 다발로 묶어 파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절 자가 대피하는 와중에 전국적으로 맥주 소비가 급증하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자 정부가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금주령을 내렸었다. 그 와중에 맥주 가격이 폭등하여 한 캔 당 10페소 미만이던 값이 14페소를 넘겨버렸다.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도 막을 내리고 금주령도 해제되었는데, 맥주 값은 여전히 그 시절 값이라는 것이다. 한 번 오른 물건 값은 절대로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시절, 더 오르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 림수진

    
코로나바이러스야 그렇다 쳐도, 대관절 지구 반대편 나라들 사이의 전쟁이 왜 당장 내 밥상을 한없이 초라하게 하는지, 내가 사는 이곳 멕시코의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이미 30%를 육박하는 물가상승률을 경험해 본 바, 최근의 8% 정도는 견딜 만하다. 물론, 기꺼운 일은 아니다. 그냥 바짝 엎드려 견디는 거다. 그나마 술이 위로일 텐데, 코로나 시절 금주령과 함께 생산이 중단되면서 가격이 올랐던 맥주는 코로나와 금주령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가격이 오르고 있다. 참 희한하다.

맥주야 안 먹고 견딘다 치지만, 토르티야와 토마토와 양파와 계란과 붉은 콩을 안 먹고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멕시코의 흔하디흔한 후안과 마리아들은 어쩌면 이미 그들 하루 소득의 100% 이상을 오직 먹고 사는데 쏟아 부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고도 어쩌면 2%가 부족할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24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아직 살지 않은 미래를 담보 잡지 않는 한 도무지 살 수 없는 삶이라니, 아무리 봐도 이 나라 숱한 후안과 마리아들이 공상과학 소설 속 주인공 같다.

[전쟁위기] 국민주권당, 전쟁 방지 4개 입법 제시

 


이형구 | 기사입력 2024/01/25 [17:44]

국민주권당은 25일 긴급 성명을 발표해 “국회가 전쟁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주권당은 올해 한반도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며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주권당은 “전 정권에서는 남북 전쟁 위기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라며 현 전쟁 위기는 극단적인 대결 정책을 편 윤석열 정권의 책임이라고 규탄했다.

 

국민주권당은 “정부가 나서서 전쟁 위기를 계속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적극 나서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라며 국회가 4가지 법을 만들자고 제시했다. 국민주권당은 전쟁 방지 4개 입법 과제로 ▲한·미·일 연합훈련 중지법 ▲미국 전략자산 반입 금지법 ▲(미국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국회 비준 거부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재추진을 제시했다.

 

아래는 성명 전문이다. 

 

[긴급 성명] 이대로 가면 전쟁이다. 국회가 전쟁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전쟁 위기가 심각하다. 국내외에서는 지금이 1950년 6월 이후 가장 위험하다며, 올해 내에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현 전쟁 위기는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를 극단적인 대결 정책 일변도로 끌어온 결과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한 후 한미 연합훈련, 한미일 연합훈련 등이 연중무휴에 가깝게 진행됐다.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한국에 전개된 것만 해도 2022년부터 2023년 11월까지 27회에 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선제타격, 북한 정권 종식을 외치며 북한에 대해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 ‘선조치 후보고’하라고 군에 주문하고 있다. 그 결과 전쟁 위기가 끊임없이 고조되어 오늘날 군사적 충돌과 실전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전 정권에서는 남북 전쟁 위기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평화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대한민국 경제와 민생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전쟁이 일단 벌어지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되며 절대로 그 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전쟁을 막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정부가 나서서 전쟁 위기를 계속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적극 나서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행보를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규탄만으로 윤석열 정권이 멈춰 서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권한을 발휘해 전쟁을 억제할 구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 한·미·일 연합훈련 중지법 

 

북한을 상대로 다른 나라의 군대와 무기를 동원해 연합훈련을 벌이는 것은 한반도 군사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래서 한미연합훈련을 계기로 심각한 전쟁 위기가 촉발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한미연합훈련에서 더 나아가 한·미·일 연합훈련까지 빈번하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며 군국주의 야욕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전범기를 단 일본 자위대를 한반도와 우리 영해로 끌어들여 가면서까지 남북 대결에 매달리고 있다. 

 

<한·미·일 연합훈련 중지법>을 만들어 도 넘은 윤석열 정권의 군사 대결 행보에 제동을 걸고 전쟁 위기를 누그러뜨려야 한다. 

 

▲ 미국 전략자산 반입 금지법 

 

전략자산은 핵 및 그에 버금가는 큰 위력을 가진 무기다.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자주 반입되는 것이 군사 긴장과 대결을 키운다는 것은 자명하다. 북한이 핵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도 미국에 대한 핵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자주 들어오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윤석열 정권은 아예 미국에 핵협의그룹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하여 한반도 핵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 전략자산 반입 금지법>을 만들어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와 전략무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으면 적어도 핵전쟁 위험은 한층 완화할 수 있고 남북 간에도 충돌의 가능성이 확 줄어들 것은 명백하다.

 

▲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국회 비준 거부 

 

우리 정치권과 국회가 미국에 한반도에서의 대북 한미일 연합훈련 중단, 전략자산 진입 억제를 요구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국회 비준을 거부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군사 충돌을 유발할 가능성이 가장 큰 요소로 서해 NLL과 대북 전단을 꼽을 수 있다. 과거 9.19 군사합의나 대북 전단 금지법은 남북 충돌 가능성을 얼마간 억제하는 기능을 했지만, 지금은 둘 다 무력화되었다. 

 

대북 전단 금지법은 2020년 국회가 법을 만들었지만, 2023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보복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군사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대북 전단 금지법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곧 바람의 방향이 남풍으로 바뀌는 계절이 온다. 시급하게 대북 전단 금지법을 보완할 방안을 모색하고 재추진해야 한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윤석열 정권이 전쟁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정치권과 국회,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나서서 윤석열 정권을 멈추고 전쟁을 막자! 

 

2024년 1월 25일

국민주권당


'가치 외교' 몰두하는 윤석열 정부, 지혜 발휘할 역량 되나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5) 뜨거워지는 북러 밀착, 김을 빼려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4.01.26. 05:02:49


올해 예정된 전 세계의 주요 외교 일정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가장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푸틴은 1월 중순 모스크바를 방문한 최선희 외무상에게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을) 방문할 용의"를 표명했다. 아마도 푸틴의 방북은 3월로 예정된 러시아 대선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기만 남은 것으로 보이는 푸틴의 방북이 국제사회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북러관계 밀착이 가져올 지정학적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을 전후해 수면 위로 올라온 '북러 무기거래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동북아 안보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는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 제공으로 혜택을 보고, 북한은 러시아의 첨단무기 개발 지원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며, 북러 관계 심화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미일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북러 무기거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위반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비판하고 있지만, 북러 밀착을 견제하는 데에는 역부족인 현실이다. 오히려 북러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방적인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24년 만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푸틴의 방북은 그 백미에 해당될 수 있다. 매우 우려스러운 흐름이다. 동시에 북러관계 밀착의 배경과 원인부터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 주에 위치한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단극체제의 쓴맛 

우선 1990년대 초반 소련 몰락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이 자신도 지분을 갖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출현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1989년 몰타에서 소련의 미하엘 고르바초프 공산당 총서기와 냉전 종식을 선언했던 미국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91년 12월에 소련이 해체되자 "냉전은 종식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승리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샴페인을 터트린 미국은 그 이후에 자제의 미덕을 잃었다. 미국이 약속을 깨고 나토 동진을 계속 밀어붙인 것이 이에 해당된다.

KGB 관료로서 이를 목도한 푸틴은 대통령이 되자 소련의 몰락을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러시아가 미국에 철저하게 모욕당했다고 여겼다. 나토의 동진과 미국이 동유럽 국가들에 미사일방어체제(MD)를 전진 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푸틴은 2007년 뮌헨안보회의에서 "주인이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 강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는데, 이런 감정이 강해질수록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바꾸겠다는 결의도 강하게 다졌다. 

한편 소련 몰락 이후 북한의 최대 목표는 제국의 지위에 올라선 미국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핵 카드가 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핵비확산이라는 제국의 뜻에 도전해 제국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북한은 제국의 뜻을 수용하는 대가로 "조미 적대관계의 평화로운 관계로의 전환"을 도모했었다. 이것이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북한이 살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소련의 몰락으로 위기에 처한 세력은 또 있었다. 바로 미국의 군산복합체이다. 1990년대 들어 미국 군수산업계엔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쳤고 미국 국방비는 1980년대 중후반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하여 한반도 문제의 보이지 않는 핵심은 위기에 처한 두 세력, 즉 북한과 미국 군산복합체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위기에 처한 북한은 미국과 친해지려 했지만, 위기에 처한 군산복합체는 '북한위협론'을 필요로 했다. 미국 군산복합체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MD를 밀어붙이려고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2000년 들어서는 북-미-러 삼각관계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북핵 문제는 제네바 합의로 관리되고 있었기에 북한 미사일 문제만 풀리면 북미관계 정상화도 가능한 듯 보였다. 그럴수록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겐 북한위협론이 더욱 절실해졌다.

바로 이때 푸틴이 구소련을 포함한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7월에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곤 북미 미사일 협상 중재안을 내놓았다. 러시아가 북한의 위성을 대리로 발사해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러-우 전쟁과 남북한의 엇갈린 선택

이것이 목표한 바는 미국과 소련이 1972년 체결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사수에 있었다. 러시아가 북한의 위성 발사 수요를 대신 충족해줄 테니, 미국은 북한위협론을 빌미로 삼아 ABM 조약에서 탈퇴해 MD를 강행하려는 생각을 접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MD 구축을 최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북미관계 정상화 흐름도, 푸틴의 ABM 조약 사수도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의 승자는 군산복합체였지만, 북한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핵 개발을 지렛대로 삼아 북미관계 정상화를 도모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핵무력을 국체로 삼아 거침없는 행보에 나선 것이다. 2019년은 그 전환점이었다. 한미일과 '손절'을 선택한 북한은 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렇듯 북러 관계 밀착에는 미국 단극체제 시기에 겪은 동병상련이 똬리를 틀고 있다. 북러가 공유해온 미국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양국 관계에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이다. 

때마침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북중, 북러 관계도 강화되었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의 대담한 행보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북중러가 한미일만큼이나 결속된 것은 아니지만 3자가 미국 단극체제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다극체제로의 전환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정세가 고도로 연결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이 짙은 이 전쟁에서 남한의 '친미'와 북한의 '반미'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이 한국에서 제공받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155mm 포탄량이 모든 유럽 국가들의 공급량보다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던 러시아는 급기야 북한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방위적인 협력을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자 미국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발사대까지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남북한이 유라시아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주요 무기 공급국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가 표방해온 '가치 연대'와 김정은 정권의 '반미 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전세가 심상치 않다. 작년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감도 엿보인다. 러시아는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고 있는 반면에, 우크라이나에는 실패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스며들고 있다. 

윤 정부가 추구해온 '가치 연대'의 실상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윤 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뿐만 아니라 미국이 주도해온 인도-태평양 전략, 한미일 준군사동맹 추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관계 강화에 몰두해왔다. 자유·인권·시장경제 등 가치를 내세웠지만, 실은 동맹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북·중·러와의 관계는 1990년대 이래 모두 최악이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미국의 위상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전쟁 방지와 조속한 휴전에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미국에 등을 돌리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가자지구에서 전쟁 범죄를 일삼는 이스라엘에 미국이 외교적 보호자를 자처하고 다량의 무기를 제공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대미 관계 개선의 미련을 접고 반미를 기치로 든 북한은 이를 기회로 삼고 있다. 두 개의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을 다극체제로의 전환 기회로 간주하고는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드는 반제자주적인 나라들과의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기로 한 것이다. 북한의 자신감은 대외 환경의 변화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은 거의 모든 이가 인정하고 우려할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 앞선 글들에서 소개한 것처럼,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난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군사·외교·경제 등 각 방면에서 낯설지만 만만치 않은 북한이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 12월 31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의에서 올해 각 부문 사업을 총화하고 내년 당 및 국가사업의 발전 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로동신문=뉴스1

'헤드 게임' 벌이는 북러와 골치 아픈 한미 

북러 밀착이 유럽과 동북아에서 만만치 않은 변수가 되면서 국내에선 북러 관계가 더 밀착되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또 미국은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과 대러 무기 지원을 규탄하면서도 대화 테이블로 나와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러는 한미를 상대로 '헤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무기거래와 관련해 한미가 왜곡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하면서도 군사협력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선희 방러 기간에 양국 관계를 전방위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며 여기에는 "민감한 분야"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북한도 "두 나라 관계를 전략적인 발전 방향에서 새로운 법률적 기초에" 올려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북러가 "민감한 분야"와 "새로운 법률적 기초"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무기거래 및 군사동맹을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외부에서 이러한 해석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법률적 기초'가 1961년 우호조약에 버금가는 내용을 담게 되면 그 파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동맹 복원도 문제이지만, '핵보유국 소련'과 '비핵국가 북한' 사이의 조약이 아니라 두 핵보유국 사이의 조약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미래는 정해진 것은 아니다. 푸틴의 방북 시 상기한 문제들이 논의되고 합의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지정학적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북러 밀착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핵심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북러관계에 김을 빼는 작업에 있다. 한미, 혹은 한미일이 연합군사훈련의 수위를 낮추거나 유예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을 제안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때마침 한미일은 올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이다. 또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정치협상을 줄곧 제안해왔고, 미일도 북한과의 대화를 타진해왔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이다. 한국이 이러한 외교적 공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역량과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는 것이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몰카 함정 당했지만...명품백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나”

 [아침신문 솎아보기] 윤대통령 방송사 신년대담 가능성에 신문들 우려 목소리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중대재해법 확대에 노동부 ‘공포마케팅’ 지적

기자명김예리 기자

  • 입력 2024.01.26 07:50

  • 수정 2024.01.26 08:13

  • 언론자유를 지키는 힘, 미디어오늘을 지지해 주세요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특정 방송사 대담 형식으로 김건희씨 논란을 비롯한 현안에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거론되자 26일 신문들은 우려 목소리를 냈다. 신문들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25일 윤 대통령이 방송사와 신년 대담으로 김건희씨를 둘러싼 논란을 설명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방송사로는 KBS가 유력하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기사 <신년 기자회견 대신 방송 대담 검토, 윤대통령 김여사 논란 입장 밝힐 듯>에서 “정제된 질문과 대답을 통해 윤 대통령의 입장을 충실히 밝히려는 의도로 보이나, ‘언론 패싱’과 ‘불통’ 이미지가 더욱 굳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신년 기자회견의 경우 김 여사에 대한 의혹과 입장을 묻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고, 윤 대통령에게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게 일부 참모들의 생각”이라고 했다.

▲26일 한국일보

한국일보는 “윤 대통령이 방송 대담으로 선회할 경우 '일방적 정권 홍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공식 기자회견이나 다양한 언론 매체의 비판적 질문에 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앞서 문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대담으로 바꿀 때도 ‘정권 친화적 매체를 선택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신년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선 “김 여사에게 민심이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단순히 명품백을 받아서가 아니다. 국정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영부인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해온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대담 방식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모양새를 띨 수 있는데다, 질문 내용과 답변 등을 사전에 협의할 수 있다”며 “결국 김 여사는 ‘몰카 공작 피해자’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형식이 될 공산이 크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지금껏 한차례도 기자회견을 연 적이 없다”며 “언론을 정권의 홍보 수단 정도로 폄하하는 왜곡된 언론관을 드러내는 행태”라고 밝혔다.

▲26일 한겨레

조선일보는 사설 <윤 대통령 하고 싶은 말보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 하길>에서 김건희씨가 함정에 당한 것이 분명하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김씨 관련한 다양한 논란을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26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이번 일은 김 여사가 친북 목사의 몰래 카메라 함정에 당한 것이 분명하다. 상식 있는 사람이면 함정을 파고 몰카 행각을 한 목사의 행태를 비판한다”고 주장한 뒤 “그렇다고 해서 김 여사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친북 목사를 어떻게, 왜 만났는지부터 납득할 수 없다”며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나. 그 백은 왜 돌려주지 않았으며, 지금 어디에 있나. 이런 의문은 상식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건희씨 관련 업무를 전담할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에도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경향신문 “‘김건희 문제는 역린’ 확인되자 꼬리 내려”

▲26일 경향신문

김건희씨 금품 수수 의혹에 사과를 요구하던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결국 ‘꼬리를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이 25일 야당이 김건희씨의 관여 의혹을 제기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더 이상 밝혀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은 앞서 여러 차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과를 요구했다. 한 위원장도 이날 자신이 김 여사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김 여사(김씨) 문제가 ‘역린’이란 점이 확인되자 ‘꼬리를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이용욱 경향신문 정치에디터는 칼럼에서 “과거 대통령들도 가족 비리가 불거졌을 때 여론을 따랐다”며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해명과 사과,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여론은 외면한 채 김 여사 보호가 최우선 가치임을 자인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처지는 말년이 초라했던 이전 대통령들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윤 대통령은 자신의 위기상황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26일 경향신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서울 강남에서 습격 당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는 미성년자로 인근 중학교에 재학 중이다. 아침신문들은 이 소식을 1면에 올렸다.

배 의원은 이날 오후 5시께 강남구 신사동 건물 안에서 한 남성에게 돌로 머리를 맞고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배현진 의원실은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신문들은 영상과 현장 경찰 등의 말을 종합하면 피의자는 배 의원에게 다가가 ‘국회의원 배현인인지’ 물은 뒤 돌연 손바닥 절반 크기의 돌로 배 의원을 가격했다. 피의자는 다른 시민들이 제지하기 전까지 28초간 16회 가격했고 돌을 손에서 놓치자 맨손으로 폭행하기도 했다. 피의자는 특수폭행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돼 강남경찰서로 압송됐다고 신문들은 전했다.

다수 신문이 1면 머리기사에서 이 사건을 ‘정치 테러’라고 규정했다. 서울신문은 1면 머리에 <강남 한복판서 또 정치인 테러>라는 제목을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에 <중학생의 정치테러>란 제목을 올렸다. 한국일보도 <3주 만에 또 정치 테러… 배현진 대낮 도심 피습>을 올렸다. 국민일보는 <민주주의 흔드는 정치테러>라는 제목을 썼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피습이라는 단어를 썼다.

▲26일 조선일보

▲26일 동아일보

▲26일 경향신문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빵집도 중대재해 처벌”?

오는 27일부터 5명 이상 일하는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5~49명 노동자가 일하는 전국 83만여개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추가로 유예하는 법 개정안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으면서다. 일부 신문은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며 ‘공포 마케팅’에 나섰다고 지적했고 다수 신문은 ‘유예가 불발됐다’는 사용자 단체 입장을 전했다.

여야는 이날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추가로 유예하도록 한 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중소기업 대부분이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며 법 시행을 추가로 2년 유예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지난해 9월 발의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추가 유예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등의 추가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을 앞두고 “정부가 ‘추가 유예’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4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대 시행된다면 상시 노동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적용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고, 27일에도 노동부가 같은 주장을 했다. 경향신문은 일반 산재를 넘은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설명했다.

▲26일 경향신문

한겨레는 사설에서 “(노동부가 밝힌 빵집, 카페 등)이런 사업장은 직원이 사망하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적을 뿐 아니라, 50인 이상 사업장과 달리 기본적인 안전 조처를 취하면 중대재해법상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은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사실 호도에 앞장서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했다.

노동부는 영세·중소기업에서는 대표이사가 생산부터 기획·영업·안전관리까지 모든 역할을 하므로 대표가 중대재해로 처벌을 받으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중대재해 발생으로 대표가 기소된다고 해도 구속되거나 실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50인 이상 사업장 대표 중 실형을 받은 사례는 한국제강 대표 1명뿐”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영세사업자 83만명 예비범법자 만드는 정치>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26일 한겨레

이날 경남 거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사업장에서 31살 하청노동자가 중대재해를 입고 사망했다. 같은 사업장에서 28살 노동자가 폭발 사고로 숨진 지 12만이다.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이 소식을 전했다. 이들 신문은 이 노동자가 거제사업장에서 바닷물에 들어가 선체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고 했다. 위험작업허가서에 승인된 작업자는 사망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나타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지회는 기본 안전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현실이 사망을 불렀다고 했다.

▲26일자 종합일간지 1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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