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일 화요일

정윤회와 박지만의 권력암투, 김기춘이 조장했다


두 사람 뒤에 있는 청와대의 권력투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가 핵심
임병도 | 2014-12-03 08:32:5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청와대 문건 유출을 통해 드러난 정윤회씨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의 진실공방이 더욱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정윤회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야인처럼 살고 있다’고 말하며 비서관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와 이재만이 지난 4월 연락을 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말이 나오자 정윤회씨는 다시 ‘4월 이재만과 전화 연락을 한 적은 있었다’며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정윤회씨는 이번 문건이 자신을 음해하려고 증권가 찌라시를 모아 놓은 조작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첩보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60% 이상이며, 실제 모임 참석자도 내용을 확인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 비서관은 지난 4월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 전화를 받으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얼마 뒤 자신이 퇴출당했다고 주장하며 정윤회씨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진실공방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두 사람 뒤에 있는 청와대의 권력투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가 이번 사건의 핵심입니다.
사건 뒤에 숨은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쫓겨나는 박지만의 사람들’
이번 사건의 핵심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람이 바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입니다. 조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는 검사와 마약사범으로 만난 사이였습니다.
1993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조응천 검사는 히로뽕 중독으로 구속된 박지만씨를 국립서울정신병원에 감정유치시키기로 했습니다.[각주:1]
당시 박지만씨의 히로뽕 중독을 국민들은 아버지 박정희가 총탄에 죽었던 충격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독재자의 아들로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했던 그에게 그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 와야 했던 현실이 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박지만씨는 수차례의 히로뽕 중독으로 물의를 일으키다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도움으로 삼양산업 부사장으로 취임했고 지금은 EG그룹 회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G그룹 회장으로 살아가는 박지만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자신을 수사했던 조응천 검사가 청와대에 입성한 점입니다.
물론 정윤회와의 파워게임에서 진 까닭에 ‘1호 국장’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청와대에서 쫓겨났습니다. [각주:2]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중앙고와 육사 동기였던 이재수 육군 인사사령관은 중장 진급 6개월 만에 2013년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됐습니다. 당시 박지만 회장의 육사 37기였던 전인범, 엄기학, 조보근 소장 등도 중장으로 진급하기도 했습니다. [각주:3]
군 정보조직을 담당하는 기무사령관으로 발탁된 박지만 회장의 절친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고작 1년 만에 전격 교체됐습니다. 한 마디로 경질된 셈입니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의 경질은 물론이고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사표 논란[각주:4] 등은 결국 박지만 회장의 권력이 축소되는 권력이동을 암시했습니다.

‘박지만의 사람들. 그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 비서관이 정윤회씨의 말에 반박하며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공격하는 이유는 박지만 라인이 권력 다툼으로 쫓겨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 중의 하나가 박근혜 정권에서 매번 문제가 됐던 인사 시스템이 벌어진 배경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재만 비서관과 같은 비서관 측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인사 실패가 많았던 이유가 '검증을 충분히 할 시간이 없었고, 검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각주:5]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청와대 인사검증을 하려고 해도,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비서관 3인방이 문고리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십상시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처음 ‘정윤회 문건’이 유출됐을 때는 문건을 작성한 박 모 경정이 아니냐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미 지난 5월 문건 유출자가 박 경정이 아니라고 파악한 걸로 확인했습니다.
박 경정도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문건을 유출했을까요?

‘김기춘 비서실장, 청와대 문건 유출 알고도 왜?’
세계일보에 따르면 박지만 EG 회장은 지난 5월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되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고 합니다. [각주:6]
박지만 회장은 지난 5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작성된 문건을 입수했습니다. 여기에는 박지만 회장 주변 인물에 대한 비리 의혹 등이 있었고,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박 대통령의 특별 지시를 받아 국정원 인력이 들어가 대대적인 점검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내려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박 회장에게 밝혔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지시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사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문건이 다량으로 유출되고, 비리와 문제점이 나오는데도 소극적으로 대처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정윤회와 박지만의 권력투쟁이 밖으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에 무조건 덮어버리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윤회와 박지만, 두 비선라인의 싸움을 통한 어부지리를 취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검찰 장악'이라는 큰 명제를 해결한 김기춘은 정윤회나 박지만 라인 모두에게 토사구팽 당해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견제를 막기 위해 김기춘은 오히려 내부 갈등은 키워 자신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하려는 계획이었을 수 있습니다.
물고 뜯고 까발려지는 청와대 권력 투쟁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지금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는지 정치를 보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지금 이들이 벌이는 암투는 오로지 자신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는 욕심이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민이 아닌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고 벌이는 싸움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독재 공화국 시대에 사는 것인지,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역사드라마로 남기에는 너무 추잡한 이들의 권력 암투를 보다 보니 악취가 너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1. 한겨레 1993년 12월 31일 ‘박지만씨 정신병원에 감정유치’
2. “조응천 ‘1호 국장’으로 불리며 막강… 교체 뒤 공직비서관실 축소” 경향신문 12월 2일http://goo.gl/GSkDRM
3. 박지만씨 동기 육사 37기 軍 핵심보직 포진. 연합뉴스 2013년 10월 25일http://goo.gl/4ECZPx
4.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던 이헌수는 정년이 됐다며 사표를 제출했지만, 이미 4월 임명당시에도 정년은 넘었었다. 논란이 일자 사표를 반려했고 유임됐다.
5. [‘정윤회 文件’ 파문] “한창 검증 작업하는 도중 人事 발표나기도” 조선일보 2014년 12월 2일http://goo.gl/Q0mCrb
6. 박지만씨 “靑문건 다량 유출” 진정 세계일보 2014년 12월 3일 http://goo.gl/Mg1GaU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94 

꽃뱀의 치명적 독은 잡아먹은 두꺼비의 독


조홍섭 2014. 12. 03
조회수 5078 추천수 0
독 못 만들어...자체 가공해 더 강력한 독으로
암컷은 알에도 독성물질 물려줘 ‘지독’한 모성

sn1.jpg» 흔히 유혈목이는 독뱀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꺼비로부터 얻은 독을 분비한다. 사진=<한국양서 파충류 생태도감>, 국립환경과학원

유혈목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숲이나 초지, 하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뱀이다. 목덜미 부분에 엇갈려 난 붉은 띠와 검은 띠가 두드러져 화사 또는 꽃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흔히 독 없는 뱀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혈목이는 분명히 독사이다. 이 뱀은 공격을 당하면 목을 활처럼 구부려 목덜미에 있는 두 개의 독샘을 드러내는 자세를 취한다.
 
포식자가 유혈목이의 목을 물려다간 이 독샘에서 분비된 독액 세례를 받게 된다. 점막을 자극하는 이 독은 기도와 심장근육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이 뱀의 목덜미에는 독물을 분비하는 세포가 전혀 없다. 이 독물은 어디서 왔을까.

sn2.jpg» 금개구리를 잡아먹고 있는 유혈목이. 개구리가 주요 먹이이다. 사진=김태형 기자
 
유혈목이도 다른 뱀처럼 개구리를 즐겨 잡아먹는다. 그런데 유독 이 뱀은 두꺼비를 잘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꺼비는 피부에서 독물을 분비해 웬만한 포식자는 기피한다. 그렇다면 유혈목이의 독은 두꺼비에서 온 것일까.
 
독액은 매우 효과적인 방어 또는 공격 물질이지만 복잡한 화학물질이어서 만드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따라서 남이 만들어놓은 독을 가져다 자신의 독을 쓰려는 생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실제로 딱정벌레 독충을 먹어 독을 내는 독개구리와 바다의 독성 해파리를 이용해 독을 내는 갯민숭달팽이가 보고돼 있다.
 
유혈목이가 먹이인 두꺼비로부터 독을 얻는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은 2007년 데보라 허친슨 미국 올드 도미니언대 생물학자 등 연구진에 의해서였다. 연구자들은 일본에 서식하는 유혈목이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sn3.jpg» 일본두꺼비. 일본의 고유종이다. 한국 등 유라시아에 분포하는 두꺼비와 마찬가지로 피부에서 독액을 분비한다. 사진=오픈케이지

먼저 두꺼비가 있는 곳의 유혈목이는 목덜미 독샘이 있지만 두꺼비가 전혀 없는 섬에 사는 유혈목이에는 그런 분비행동이 없음이 드러났다. 이 섬의 유혈목이한테 두꺼비를 먹였더니 독샘에서 독액이 분비됐다.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유혈목이 새끼를 길렀을 때도 방어 독물을 분비하지 않았지만 두꺼비를 먹인 뒤에는 독이 생겼다. 또 두꺼비의 독을 그대로 보관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처리해 독성을 더욱 강화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두꺼비 독을 갖느지 여부는 유혈목이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독이 있는 개체는 성격이 대담했지만 독이 없을 때는 슬슬 도망치기 바빴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일본 교토대 연구자들은 최근 유혈목이 24마리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행동을 조사했다.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수태한 암컷의 행동이 수컷과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혈목이는 5~6월 동안 강변의 초지에서 주로 지내면서 개구리를 잡아먹는다. 그런데 초지를 떠나지 않는 수컷과 달리 수태한 암컷은 종종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발견됐다.

800px-Rhabdophis_tigrinus.jpg»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유혈목이. 사진=Komeccho, 위키미디어 코먼스
 
두꺼비는 강변이 아닌 숲속에 산다. 새끼를 가진 암컷 유혈목이가 두꺼비를 찾아 숲속에 들어가는 까닭은 자신의 알에 독성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늦여름에 알에서 깬 유혈목이 새끼는 입이 작아 두꺼비를 잡아먹을 수 없다. 이런 무방비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 암컷이 두꺼비를 넉넉하게 잡아먹으면 낳은 알에도 독성물질을 포함되는 것이다. 이듬해 봄 어린 두꺼비가 태어날 때쯤에는 유혈목이도 자라 스스로 두꺼비를 사냥할 수 있게 된다.
 
유혈목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그러나 일본에 분포하는 두꺼비는 일본 고유종으로 우리 두꺼비와는 다른 종이다. 아직 우리나라 유혈목이와 두꺼비 사이의 관계는 연구된 적이 없지만, 우리 두꺼비에도 독성이 있어 비슷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ojima & Mori. 2014. Active foraging for toxic prey during gestation in a snake with maternal provisioning of sequestered chemical defence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http://dx.doi.org/10.1098/rspb.2014.2137
 
Deborah A. Hutchinson et. al., Dietary sequestration of defensive steroids in nuchal glands of the Asian snake Rhabdophis tigrinusPNAS, vol. 104 no. 7,  2265~2270, doi: 10.1073/pnas.061078510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정윤회 4월 행적이 수상하다

'집에만 있었던 민간인'? 정윤회 4월 행적이 수상하다

14.12.03 10:32l최종 업데이트 14.12.03 12:04l



정윤회 : "제가 혼자서 다 만나고 다녔거든요. 박(관천) 경정도 만나고, 박지만 회장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조응천 비서관인데, 제가 문자도 여러 번 남기고 전화도 여러 번 남겼습니다. 저 혼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저는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 만나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조응천 비서관을 만나려 했는데 만날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도 안 받고 문자를 제 이름을 밝히고 좀 만나자고 그래도 안 만나주고 그래서 제가 그거를 (이재만 비서관에게) 부탁한 겁니다."

12월 2일 오후 4시에 방영된 KBS 1TV <황상무의 시사진단>과의 인터뷰에서 정윤회씨는 지난 4월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정씨는 관련 인사들을 혼자서 만나고 다녔다고 했다. 정씨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다른 언론에서 한 '문고리 권력인 비서관 3인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기존 발언을 뒤엎었다.

하루 전인 지난 12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접촉이라고는 당선 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 한 번 한 게 전부"며 "3인 비서관과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정의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데… 나는 섭섭하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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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응천 전 비서관의 증언 지난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와 이재만 비서관이 지난 4월 연락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PDF

정씨가 자신이 주장한 '비서관 3인과 연락이 없었다'는 입장을 뒤집고 '통화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한 데에는 2일 <조선일보>에 등장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결정적이었다. 조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올 4월 11일 퇴근길에 이(재만) (총무청와대) 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조 전 비서관은 "이 비서관에게 '좀 생각을 해보고요'라고 답변했으나 정씨와 통화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력한 민간인' 정윤회는 어떻게 박 경정을 만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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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발단, 시사저널의 보도 '박지만 "정윤회가 나를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를 보고 정윤회씨는 청와대 내사를 담당한 박 경정과 만났고, 조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시사저널PDF
지난 4월로 돌아가 보면 '민간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정윤회씨의 특이한 움직임과 만나게 된다. 그 발단은 3월 말 <시사저널> 보도였다. 이 매체는 <박지만 "정윤회가 나를 미행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박지만 EG 회장이 자신을 미행하는 오토바이가 있어 확인한 결과 '정윤회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됐고, 이 사실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하며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김기춘 실장에게 경고한 박지만 회장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부 ㄱ씨에게 미행사실을 알렸고, ㄱ씨는 경찰에서 파견된 부하직원 ㄴ씨에게 지시해 '박지만 미행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 <시사저널>은 익명으로 민정수석실 간부와 부하직원을 보도했다. 

당시 ㄱ씨는 민정수석 산하 4명의 비서관 중 한 사람일 것으로 추측이 가능했겠지만, 경찰직원으로 소개된 ㄴ씨는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청에서 파견된 부하직원은 단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바로 익명의 ㄱ씨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ㄴ씨는 박관천 경정(전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이다.  

<시사저널> 보도를 확인한 정씨는 '당사자인 자기에게 확인도 없이 내사가 진행된 것에 대해 억울함을 밝히고자 조응천 비서관과 통화를 시도'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윤회씨가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등장한다. 

먼저 궁금한 대목은 정씨는 <시사저널> 보도를 보고 그 내사 문건을 작성한 경찰관이 박 경정임을 어떻게 특정했는가 하는 대목이다. 앞서 해당 매체는 보도하면서 담당자를 익명으로 처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 중인 경찰관이 10여 명인 점을 감안할 때 의문점이 생긴다. 정씨는 문건 작성 주체가 박 경정임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설령 어떠한 방법을 써서 작성자를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박 경정의 연락처를 정윤회씨가 무슨 방법으로 확보해서 만날 수 있었는지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가 만난 사람이 청와대 행정관, 그 중에서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임을 고려한다면 자신이 원할 때 그런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정씨를 다시 보게 된다. 

박 경정을 만난 정씨는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현정부 출범 후 어디서 뭐하고 지내셨느냐'는 질문에 정윤회씨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그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할 수도 없고요"라고 자신의 생활을 설명했다. 3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정씨는 스스로를 "제가 무슨 힘이 있나. 너무 무력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정씨가 무슨 방법으로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고, 공직기강비서관의 휴대폰 번호를 획득해서 전화를 걸 수 있었는지 추후 검찰 수사를 통해 풀어야 할 대목이다. 

극적인 대목은 조응천 비서관과 통화가 되지 않자 정윤회씨가 취한 행동이다. 그는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박지만 미행 건과 관련해) 나는 그런 사실이 없다. 조응천 비서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정씨는 이재만 비서관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고 KBS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신의 전화를 조 비서관이 받지 않자 정윤회씨는 '연락조차 없어서 섭섭했다'던 이재만 비서관에게 연락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게 그렇게 연락할 수 있다는 대목도 놀랍지만, 더욱 인상적인 대목은 이재만 비서관이 정씨의 전화를 받고 조 비서관에게 전화해서 '전화 좀 받으시죠'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각종 언론은 문고리 3인방이 철저한 자기관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사실상 외부 접촉을 끊고 지내고 있다,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보도했다. 그럴수록 정씨의 전화 한 통에 이재만 비서관이 보여준 반응은 인상적이다. 정씨는 과연 '집에만 있었다'는 '민간인'이 맞는가.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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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입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브리핑에서 "정윤회의 말 그대로"라고 말했다.
ⓒ JTBC화면갈무리

2일 오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했는데 이 역시 특이했다. JTBC는 이날의 대변인 브리핑 장면 전체를 '이례적'이라는 소개와 함께 방영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생략)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만남은 없었다고 합니다"라고 브리핑했다. 치열하게 '진실공방'을 벌이며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라는 브리핑을 한 것이다.

정리해 본다. 지난 4월 <시사저널> 기사를 본 정윤회씨가 취한 행동은 '비서관 3인방과 연락이 없었고, 집에만 있었던 민간인'이라는 그의 설명과는 사뭇 달랐다. 공직기강비서관 휴대폰으로 수 차례 전화했고 받지 않자 문고리 권력에게 바로 전화했다. 통화를 원한다는 그의 뜻을 문고리 권력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전했다. 이것이 지난 4월 10일~11일 일어난 일이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3일자 사설을 통해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에게 진실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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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씨와 문고리 3인방, 의심하는 조선일보 정윤회씨와 이재만 비서관과의 통화 사실 등을 보도하면서 이들의 관계를 추궁하고 있는 <조선일보> 12월 3일자 사설
ⓒ 조선일보PDF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은 끝내 정윤회씨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흘 뒤인 4월 15일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이 불러 가보니 "그 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그만두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것으로 정씨와 조 비서관과의 악연은 끝이 난 듯 보였지만 8개월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 두 사람은 당시의 일을 놓고 '진실공방'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하루 뒤인 4월 16일의 행적을 놓고 정윤회씨는 일부 언론에 의해 '풍문'의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해당 보도와 관련해서는 '명예훼손'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의 4월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싶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그의 4월을 묻고 있다.

유신이 재림할 2015 한국정치

<2015 신년전망> 1. 유신이 재림할 2015 한국정치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4/12/03 [10: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어느덧 12월, 연말연시다. 국민들은 2014년을 떠나보내고 2015년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15년,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월호 특별법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야합으로 그 취지를 잃어버린 지금, 박근혜 정권의 권력독점을 국회가 저지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대로 가면 2015년은 박근혜 정권의 독주가 더욱 강화된 한해로 역사에 쓸쓸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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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당 해산시켜 투쟁력 거세

새해벽두부터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청구가 한국정치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 당시 검찰은 ‘RO’를 지하단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재판과정에서는 ‘RO'혐의를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재판부도 내란음모가 아닌, 내란선동이란 혐의를 끌어올 만큼 검찰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무리수였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청구를 강행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 추구하는 것은 용공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기 위한 암적 존재”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장관이 법조인의 기본을 상실한 채 선동가로 전락한 셈이다.

진보당의 거취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권에 도움이 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다. 솔직히 이제 누가 대한민국 시국사건에서 민주적 판결을 기대하는가.

시국사건에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이석기 의원은 2013년 5월, 마리스타 수녀회 강연에서 정치적으로 과도한 발언을 언급하였다고 해서 징역 9년에 처해졌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 군부의 수장자리인 합참의장에 있으면서 군부 쿠데타를 의미하는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던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9월 24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잘못한 기업인도 여건이 조성되고 국민 여론이 형성된다면 기회를 줄 수 있다”며 비리 재벌총수 사면을 시사하였다. 하지만 11월 17일, 대법원은 무려 25명이 생을 마감하게 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다.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소송에서 막다른 벼랑에 내몰리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그간 정권의 전횡과 부정에 대해 눈치를 보지 않고 투쟁해 왔다. 진보당이 해산되면 야권에는 이제 투쟁보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만 남게 될 것이다.

2. 본격적 재갈물리기

박근혜 정권의 진보당 탄압은 자연스럽게 야권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될 것이다. 11월 6일, <조선일보>는 검찰이 안보 위해(危害), 테러 등의 범죄에 대해 압수수색, 계좌 추적 요건을 완화하고 해외 및 사이버상에서 수집한 증거 능력을 좀 더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증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하였다.

이미 서울중앙지검은 김수남 지검장의 지시에 따라 공안부장들과 공안부 및 공판부 검사가 모두 참여하는 연구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증거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9.11 테러의 틈바구니에서 법원 허가 없이 수사 당국 결정에 따라 1년간 테러·간첩 혐의자의 이메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애국법(Patriot Act)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일명 “한국판 애국법”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수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나아가 "국가 안보 위해 사범에 대해서는 증거법을 완화하거나 '안보 형법'을 별도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법원의 기능을 사실상 거세한 것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들은 상시적 수사대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가는 1970년대처럼 어느 날 선글라스 낀 요원들이 찾아와 “같이 좀 갑시다.”라며 지프차로 끌어가게 생겼다. “영장없는 체포”와 “재판없는 구금”이 70년대 유신독재의 표상이었다면 2015년에는 “법원없이 만든 증거”가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터넷 상에 박 대통령을 비판했던 인사들 가운데, 누가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3. 장기집권전략 의혹

박근혜 정권이 이처럼 집요하게 투쟁세력을 해산시키고 비판세력들의 입에 재갈을 채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야권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집권당의 독재회귀가 거세지면 이는 필연코 권력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은 신통히도 1972년 유신헌법을 열었던 박정희 정권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민청학련) 사건을 일으켜 김근태, 김지하, 류근일, 서중석, 유인태, 이철 등이 인민혁명당과 조총련, 일본공산당 혁신계 좌파의 배후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이들을 구속·기소하였다. 1975년, 인혁당 관련자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여정남,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소가 기각된 다음날 곧바로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이러한 재야 탄압 끝에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계엄을 발동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비상조치로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한 10월 유신을 열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1972년 4월 민청학련 사건 – 7월 7.4 남북공동성명 – 10월 유신의 흐름은 박근혜 정권이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이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은 박정희 정권의 민청학련 탄압과 형태가 같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 발언,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 논란은 박정희 정권 시절 일시적인 대북 유화국면과 유사하다. 하물며 정치권에서는 현재 개헌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물론 지금 야권과 여권 일각에서 논의 중인 개헌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분권형 개헌이 주된 맥락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거나 대통령과 총리가 외교국방 부문과 경제민생 부문을 서로 나누어 맡는다는 분권형 개헌이 그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개헌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10월 6일, 청와대는 “개헌 논의는 경제블랙홀”이라며 강하게 반대하였다. 개헌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독주가 제 아무리 막무가내라 하여도, 87년 6월항쟁의 역사가 있는 이 땅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과연 가능할까?

정치권에서 개헌을 강력히 반대할 세력은 차례로 거세되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보수세력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였다. 박근혜 정권 내부의 “합리적 보수”세력도 차례로 쫓겨났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였던 김종인이 낙마하였다. 복지예산 논란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였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던 과정에서 최대석 검찰총장도 낙마하였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대통령을 여왕처럼 모시는 시중들이 정권의 핵심요직에 들어앉았다. 유신헌법에 관여하였던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꿰찼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모셨다는”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보좌관과 그 우두머리 격인 정윤회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부상하였다. 권력이 대통령 1인에 집중되면 반드시 그 수하들에게 암투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 정윤회 논란이 뜨거운 것도 지난 박정희 정권 시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의 암투를 연상케 한다.

국민들은 개헌을 결사 저지할 수 있는가? 이미 2012년 대선에서 보수세력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비롯한 국가기구를 동원해 국민여론을 왜곡시키고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어떠한 부정을 저지를 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극우이념은 어버이연합, 일베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으며 급기야 ‘종북척결’을 기치로 든 서북청년단이 재건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2015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리의 곳곳에 나타나 국민들에게 백색테러를 자행하고 인터넷 신상털기를 통해 민주의 싹을 거세하려 할 것이다.

상황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어버이연합과 일베충, 서북청년단이 개헌논의 마당에서 종북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을 지켜달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재집권을 호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종편과 일베가 이토록 난리치는 상황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번 한 번만 더 집권해달라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란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정윤회 사건에서 초원복집이 보인다


유체이탈 화법의 명수 박근혜 대통령과 이 땅의 허망한 언론실체
임두만 | 2014-12-02 11:47:5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문건 보도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자신이 직접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하며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사건 자체를 강력 부인했다.
이어서 “이 문서 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에 대해 조속히 밝혀야 한다”며 검찰의 조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더구나 “그동안 ‘만만회’를 비롯해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국민이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문건 유출과 관련된 부분을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검사 산하 특수2부에 배당하고, 명예훼손 부분은 전담 수사 부서인 형사1부(정수봉 부장검사)에 분리 배당하는 것으로 이원수사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국정 운영의 핵심기관인 청와대 내부의 문서가 무단으로 유출된 것은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한다고 밝힘에 따라 검찰 수사는 문건 유출에 수사력이 모아질 전망이다.
이런 흐름을 보는 나는 과연 이 사건의 실체가 문건유출자만 색출하여 벌주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문제인지 특별한 관심을 갖기로 했다. 즉 아무도, 어떤 언론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내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에서 끄집어 낸다.
그 복집 골방에서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 밑에 빠져죽자”자는 말로 선거개입을 한 법무부장관, 당시 안기부 부산총책, 검찰 부산총책 등을 모아놓고 공직자가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고위 공직자, 그가 지금 이 사건의 한쪽 실세인 김기춘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 언론은 이들 고위공직자의 선거개입이라는 범법행위보다 이 범법행위를 밝혀 낸 사람을 불법도청을 한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 물꼬를 돌려버렸다. 결국 검찰은 선거가 코앞인데 공직자의 불법은 그대로 덮어두고 도둑놈을 신고한 신고자가 불법적 방법을 통해 도둑질을 밝혔다면서 신고자만 죽어라고 패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정윤회와 십상시’ vs ‘김기춘과 공안패밀리’의 내부 권력투쟁 현상...이를 두고 사건의 키를 ‘문건유출자’로 국한하여 물꼬를 돌리려는 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의 행태...이런 행태도 누군가는 고발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기록을 남긴다.
1.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의 장남인 김성원(48)씨는 올 초인 지난 1월 22일 사망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성원씨는 교통사고로 2013년 12월 31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끝내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아주 간략하게 보도하는 것으로 끝내버려서 많은 국민들이 알지 못했다.
2.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와 스위스를 국빈으로 방문하는 중이었다. 김 실장은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사경을 넘나들고 있는 관계로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아들의 사망을 막지 못했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 김 실장의 아들 사망에 대해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자발적 엠바고였다.
3. 그런데 다음날인 23일 서울신문은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그 보도의 출처는 여권과 청와대의 복수 관계자였다. 사의의 이유로는 장남의 사망 등에 따른 급격한 건강 이상 등 일신상의 이유라고 썼다. 이에 모든 언론사들은 김 실장의 사의를 확인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결국 이 법석은 외유 중인 대통령에게까지 들어갔다. 따라서 인도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를 순방 중인 대통령을 수행하던 이정현 홍보수석이 귀국길에 오르면서 기자들과 만나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4. 이때 나온 이정현 수석의 브리핑 내용은 "김 실장이 '몇 차례나 사표를 냈다고 하는 등 왜 나를 흔들려고 하는 거지? 전혀 그런 일 없는데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참 좀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며 "김 실장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였다. 그리고 귀국한 다음 날인 24일은 특별히 “김 실장을 흔들어 대서 무엇을 얻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특정인을 겨냥해서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했음에도 건강 이상이 있다고 하고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데 정말 알 수가 없다"는 말로 누군가 김기춘 실장을 흔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 3인방 김기춘 내치고 싶어하나…
당시 벌어진 이상의 정황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정윤회 국정개입설과 너무도 일치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특정한 인물의 국정개입 의혹 및 청와대 심부의 권력투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문건의 유출에 대해서만 일벌백계 운운하고 있다. 유체이탈이다. 공직사회나 청와대의 기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어떻게든 치부만 감추면 된다는 사고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일보가 보도한 1월 6일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관련 보고서에서 언급한 김 실장 사퇴 공작은 위의 4가지 사실로 보아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메인스트림이 당시 김기춘 실장을 매우 버거워하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버거운 실장을 치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박 대통령의 김기춘 신임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김기춘을 치우려 했다면 그 작전을 한 측의 실책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또 그렇다고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를 사법처리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국민들 사이에서 설만 무성하게 한 뒤 내부고발을 한 어떤 힘없는 공직자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1992년 선거에 개입한 실권자는 당당하고 선거에 패한 정주영측만 작살이 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린는 또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처럼 김기춘을 총애하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1.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2012년 당시 국정원장이던 원세훈과 서울경찰청장이던 김용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애초 청와대는 원세훈의 죄목에서 공직선거법을 빼기를 원했다. 그가 공직선거법으로 재판을 받으면 결국 2012년 대선 전체에 대한 검증이 재판을 통하여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직선거법만은 극구 막아보려 했으나 당시 검찰총장이던 채동욱은 공안부 회의라는 카드까지 쓰면서 공직선거법을 적용했다.
2.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8월 경남 사천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73세의 김기춘씨를 비서실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이후 곧바로 청와대의 말을 듣지 않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이 터지면서 낙마했다. 이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이 당 핵심들 여럿을 내란음모협의로 구속하고 법무부는 통진당을 해산하겠다고 나섰다. 이로서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이 주요 이슈에서 사라졌다.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급격하게 여권이 틀어쥐면서 김기춘 실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왕실장’ ‘부통령’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여권 내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3. 그러나 김기춘의 권력 장악이 강고해질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엉망이 되었다. 총리후보로만 안대희와 문창극이 낙마하는 등 수습하기 어려운 인사 참사가 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취임 후 곧장 흔들리던 검찰을 잡아 쥐고 강력하게 친위권력을 장악한 김 실장의 능력을 높이 산 박근혜 대통령의 김기춘 의존도는 쉽게 그를 내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갔다.
따라서 정윤회 측은 잦은 인사참사 같은 실책을 한 김기춘을 경질해야 한다고 봤던 것 같다. 즉 취임 초기 검찰을 장악하면서 권력을 안정시킨 것으로 김기춘의 역할은 끝났다고 본 것이다. 더구나 박지만과 충성 경쟁을 하는 와중에 김기춘이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는 점도 낙마시키기로 한 이유가 아닌가 보인다.
오늘(1일) 세계일보는 [정윤회씨가 지난해 말 청와대 비서관 등과의 송년모임에서 김 실장 교체설을 ‘찌라시’ 등을 통해 유포할 것을 지시했으며 이를 조사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이 모든 내용 등을 담은 정씨 동향보고서를 1월6일자로 작성했다. 그 후 이 보고서는 당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홍경식 민정수석->김기춘 비서실장 라인으로 보고되었으며 당사자인 김 실장이 이 수석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며 공식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투의 기사를 썼다.
또 [그러함에도 청와대는 1일까지 지난 1월 23일 이정현 홍보수석이 “김 실장을 흔들어 대서 무엇을 얻을지 모르겠다”며 ‘김기춘 흔들기’라고까지 규정했던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세계일보의 논조는 청와대가 이미 정윤회 측의 김기춘 흔들기 내용이 적힌 문건이 청와대 공식 문건임을 인정하면서도 문서유출만 문제를 삼는 것은 김기춘도 홍경식도 조웅천도 어찌할 수 없으며 더구나 정윤회도 어찌할 수 없음을 자인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이 사건은 더 이상 진전은 없을 것이다. 힘없는 한두 명의 공직자가 문서유출이라는 죄목으로 소추를 당하고 유야무야 될 것이다. 이를 노리고 조선일보는 사건의 실체보다 문서유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 아류들은 지금도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도가 성공한 초원복집 사건도 결국은 누가 실패자인지 나타났다. 지금 힘없는 한두 명 공직자가 처벌된다고 이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란 교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패밀리는 이처럼 역사가 주는 극명한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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