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5일 월요일

정부, 백신 2300만명 분 추가 계약...총 7900만명 분 확보

 화이자·노바백스와 계약, 두 백신 모두 2분기부터 접종 시작 예정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21-02-16 10:42:22
수정 2021-02-16 10: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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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2.13.
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2.13.ⓒ뉴시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2300만 명분 추가로 확보했다. 또 하반기로 예정됐던 일부 백신의 접종 시기도 2분기로 앞당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기존 5천6백만 명분에 2천3백만 명분을 추가해 총 7천9백만 명분의 백신 도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추가로 도입되는 백신은 화이자 백신 300만명 분과, 노바백스 백신 2천만명 분이다.

이어 "화이자 백신 50만명 분을 3월말에 앞당겨 공급받고, 300만명 분을 2분기에 도입하는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라며, "2분기에 총 350만명 분의 화이자 백신 접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질병청)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5일 화이자 측과 300만 명분의 백신을 추가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 당초 3분기였던 공급 시작 시기를 1분기(3월 말)로 앞당겼다.

정부는 당초 올해 하반기에 1천만명 분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지난해 화이자와 계약한 바 있다. 최근 일정 물량의 공급을 앞당기고, 상반기 중 추가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협의를 해온 끝에 이 같은 결과를 냈다.

현재 화이자 백신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다. 질병청은 오는 3월 말 공급되는 분량에 대해, 국가 출하 승인이 완료되면 4월부터 예방 접종을 시행할 예정이다.

19일 독일 대도시의 백신 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비오엔테크 코로나 19 백신 주사약병을 들고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 일원으로 12월27일부터 화이자 접종을 시작했다. 2021.1.19.
19일 독일 대도시의 백신 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비오엔테크 코로나 19 백신 주사약병을 들고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 일원으로 12월27일부터 화이자 접종을 시작했다. 2021.1.19.ⓒ사진 = AP/뉴시스

정 총리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 백신 구매계약을 체결한다"라며 "노바백스 백신의 2천만 명분 도입을 확정하고 2분기부터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바백스 백신은 우리 기업이 기술을 이전 받아 국내 공장에서 직접 백신을 생산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크다.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순수 국산 백신 개발을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이날 오전 충북 오송 질병청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 백신 선구매 계약을 체결한다.

질병청에 따르면, 노바백스 백신은 기존 인플루엔자, B형간염 등 다수 백신에 적용되는 합성 항원 방식의 백신이다. 이는 항원 단백질을 합성하여 면역증강제와 섞은 후 인체에 투여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냉장(2~8℃) 조건으로 보관 및 유통이 가능하다.

정 총리는 각국이 백신 확보 경쟁을 벌이고 글로벌 제약사들이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상반기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전하며, 정부의 백신 조기 도입 노력을 강조했다.

한편,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오는 26일부터 시작된다. 정 총리는 이와 관련해 "정부는 백신 접종의 전 과정에 걸쳐 빈틈없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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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두꺼운 패딩을…모레까지 강추위, 오늘 낮에는 짧고 강한 눈

 등록 :2021-02-16 08:08수정 :2021-02-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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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낮 경기남부·충청 중심 2∼7㎝ 큰눈
17·18일 내륙 중심 영하 10도 안팎에 강풍
19일 오전까지 춥다 오후에 기온 큰폭 상승
눈이 내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눈이 내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낮에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짧고 강한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18일까지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기상청은 이날 “중국 발해만 부근에서 남동진하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은 낮 한때 눈이 오는 곳이 있고 호남과 경북, 경남 서부 내륙에는 오후부터 저녁에, 제주도는 늦은 오후부터 밤 사이에 한때 비 또는 눈이 오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기상청은 특히 “눈이 3시간 안팎으로 짧은 시간 안에 내려 경기 남부와 충청권을 중심으로는 2~7㎝의 많은 눈이 쌓이는 곳이 있겠다”고 설명했다.예상 적설량은 경기 남부, 충청권, 서해5도 2~7㎝, 서울·경기 북부, 강원(동해안 제외), 전북, 호남 북부, 경북, 경남 서부 내륙, 제주 산지, 울릉도·독도 1~3㎝이다.


이번 눈은 17일에도 이어져 서해상에서 해기차(대기하층의 기온과 해수면온도 차)로 만들어진 구름대의 영향으로 전라 서해안에서 시작된 눈이 17일 새벽에 충남 서해안과 호남 내륙, 경남 서부 내륙, 제주도로 확대되겠다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호남 서해안과 제주에는 눈이 모레까지 이어진다.예상 적설량은 호남 서부, 제주 산지, 울릉도·독도 5~15㎝(많은 곳 20㎝ 이상), 충남 서해안, 호남 동부 3~10㎝, 충청 내륙, 경남 서부 내륙, 제주(산지 제외) 1~5㎝이다.기상청은 또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17일과 18일 아침 기온이 16일보다 3~5도 더 떨어지면서 강원 내륙·산지는 영하 15도 이하, 경기 북부·동부와 충청 내륙, 경북 북부 내륙, 전북 동부는 영하 10도 이하로 낮겠다”고 밝혔다.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된다.이번 추위는 19일 오전까지 이어지다 오후부터는 기온이 크게 올라 주말에는 평년보다 5∼6도 높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83111.html?_fr=mt1#csidx1bc72d7854fe0a8a3054688ff0cc697 


[여성, 정치를 하다](21)권력의 부패와 환경파괴에 맞서…3000만그루의 ‘민주주의’를 심다

 입력 : 2021.02.16 06:00 수정 : 2021.02.16 08:58


왕가리 마타이 

케냐 ‘그린벨트 운동’을 이끈 왕가리 마타이는 민주주의 가치를 나무로 환기시킨 정치인이었다. 그는 나무도, 민주주의도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언젠가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Green Belt Movement

케냐 ‘그린벨트 운동’을 이끈 왕가리 마타이는 민주주의 가치를 나무로 환기시킨 정치인이었다. 그는 나무도, 민주주의도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언젠가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Green Belt Movement

케냐 독재 정권의 탄압에 맞서며
‘그린벨트 운동’ 이끈 환경운동가
현실정치 뛰어들어 녹색당 창설
 

“나는 케냐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마치 모든 정치인이 다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라는 듯이 여기는 통념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케냐에서는 국민의 열망을 억압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정책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결정이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상황을 오해하는 것이다. 왜 당신의 운명을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의 손아귀에 맡겨야겠는가?”
 

1997년 12월, 케냐는 새로운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원조국들의 압박에 못 이겨 케냐 정부는 모든 정당이 후보를 낼 수 있는 “공식 절차를 모두 승인”했다.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야권 통합이 관건이었다. 케냐 정부의 탄압에 맞서며 그린벨트 운동을 이끌어 온 왕가리 마타이는 야권 통합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5년 전인 1992년 야권 단일화에 실패하고 부패한 독재 정권에 또 한 번 권력을 내주었던 쓰라린 경험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단일 연합당’을 만들지 못하면 이번에도 승산이 없었다.

왕가리 마타이는 1992년에도 곳곳에서 국회의원 및 대통령 출마를 요청받았지만, 자신은 환경운동가로서 사회 변화에 일조하겠다고 답하며 줄곧 ‘정치권 밖’을 지켜 왔다. 하지만 케냐 국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997년 9월) 엘도레트의 시민 1000여명과 무랑가 지역의 시민 1000여명이 집회를 열어 내게 하원의원과 대통령직에 출마할 것을 요청했다.” 지지자들은 마타이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그린벨트 운동을 “주류 정치에서 실현”해주기를 원했다. “왕가리 마타이는 국회의원도 아니면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 그가 국회의원이 될 경우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왕가리 마타이는 제도권 밖에서 권력을 감시하며 환경 보호와 빈곤 퇴치, 여성인권 향상에 기여하고자 했지만, 마타이의 꿈은 케냐의 정치가 제대로 기능할 때만 실현될 수 있었다. 케냐 정부는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합법적으로 또 불법적으로 숲이 파괴되고 있었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케냐의 땅과 주요 시설이 권력의 측근들에게 헐값으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케냐에는 정말 ‘좋은 정치인’이 필요했다. 환경 보호와 빈곤 퇴치, 여성인권 향상이 민주주의와 맞물려 있다고 믿어 온 마타이는 ‘정치권 안’으로 뛰어들기로 결심을 굳혔다. “나는 그냥 앞만 보고 전진하다가 어느 문이든 열린 문이 있으면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맞닥뜨린 정치 현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1997년 11월, 왕가리 마타이는 자유당 후보로 대통령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27개 당에서 15명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후보 단일화를 위해 가까운 지역의 후보들부터 만나기 시작하자 ‘부족주의자’라고 공격받았다. 선거자금은 심각하게 부족했다. 마타이를 더 놀라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과거에 우호적이었던 언론들마저 마타이의 출마 동기를 의심하며 “왕가리 마타이가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그린벨트 운동에만 집중한다면 나라를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사들은 마타이가 또 다른 여성 후보인 채러티 응길루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후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기득권의 배타성과 케냐 사회의 고질병인 부족주의와 개인숭배를 선거를 치르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야권은 전체 유권자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표를 얻었지만, “통합에 실패했기 때문에” 패배하고 말았다. 마타이는 우선 그린벨트 운동 사무실로 복귀했지만, “낡은 정치문화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케냐의 미래에 희망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왕가리 마타이는 선거 패배 후, 마징기라(스와힐리어로 ‘환경’) 녹색당을 창설했다. 그린벨트 운동의 기본 가치와 동일한 강령을 채택했다. 아프리카 녹색당 연맹에도 합류했다. 녹색당은 독일과 같은 유럽 선진국에서만 가능하다는 조롱 섞인 비난이 쏟아졌지만, 마타이는 케냐야말로 녹색당이 필요한 곳이라고 대중에게 부지런히 설명했다. “과거 독재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수천 에이커의 숲이나 공원을 자신들의 지지자와 측근들에게 사유지로 나눠 주었다. ‘토지횡령’의 폐단은 케냐에 만연해 있다.”

1999년 카루라 숲의 용역들과 대치 중인 왕가리 마타이.  왕가리 마타이 재단 홈페이지

1999년 카루라 숲의 용역들과 대치 중인 왕가리 마타이. 왕가리 마타이 재단 홈페이지

카루라 숲에 대한 ‘토지횡령’ 적발
유엔 등 국제사회에 큰 반향 불러
숲에서 진행되던 건축 중단시켜
 

1998년 여름, 왕가리 마타이는 “너무나 노골적이며 광대한 지역에 걸친 토지횡령”을 적발한다. 케냐 정부는 수도 나이로비 북쪽에 위치한 카루라 숲에 정권 실세의 동맹들에게 사무실과 사택을 짓도록 했을 뿐 아니라, 카루라 숲의 그린벨트 지역을 민간 개발업자들에게 할당했다. 마타이는 법무부 장관에게 편지를 썼다. 언론에도 제보했다. 마타이와 동료들은 카루라 숲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끌려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카루라 숲이 “나이로비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귀중한 천연자원”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마타이는 그들과 함께 카루라 숲에 나무를 심었다.

케냐 정부는 반격에 나섰다. “사유재산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자 책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개별적으로 용역을 구해 “자기 땅은 자기가 지키라”는 뜻이었다. 폭력을 용인하는 발언이었다. 나무를 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환경운동을 이끌어 온 왕가리 마타이는 “칼과 곤봉, 채찍, 단도, 활, 화살로 무장한 200여명의 수비대와 마주쳤다”. 마타이는 그저 나무를 심으러 왔을 뿐이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용역 깡패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했다. “나는 머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경찰들은 수수방관했다. 마타이는 언론 보도로 용역 깡패들이 미리 “경찰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은 케냐 전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공개적으로 폭력 사태의 책임을 추궁했다. 케냐의 모이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과문이 아니었다. 자신은 환경운동단체들이 카루라 숲 개발에 왜 반대하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으며, 나이로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카루라 숲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달려 나왔다. 나이로비에 “최루탄과 총탄이 난무했고, 대학들은 휴교령을 내렸다”. 국가 폭력이 국민들 분노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1999년 8월, 모이 대통령은 “공공부지에 대한 모든 매각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숲에서 진행되던 모든 건축이 중단되었다.”

왕가리 마타이가 2009년 9월22일 유엔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왕가리 마타이가 2009년 9월22일 유엔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 나무 통해 환기
‘빈곤의 역사 개혁 운동’ 앞장서
2004년 노벨 평화상 수상하기도
 

왕가리 마타이는 한발 더 나아갔다. 마타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양극화 문제를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 케냐와 아프리카는 왜 이토록 가난한가? 1998년 ‘주빌리 2000 아프리카’ 캠페인의 공동의장으로 취임한 마타이는 2000년 부유한 국가들에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탄원운동을 전 세계적인 규모로 추진했다. “1970년에서 2002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의 총부채는 약 5400억달러에 달했고, 부채와 이자 가운데 5500억달러를 갚았다. 그러나 채무국들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2002년 말 현재 3000억달러에 가까운 빚이 남아 있었다.” 마타이는 아프리카에 민주주의와 유능한 정부 기구가 들어선다 할지라도 채무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빈곤의 역사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다. 아프리카의 구조적 문제에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U2의 보노는 마타이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며, ‘주빌리 2000 아프리카’를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왕가리 마타이가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기(再起)하자, 정권의 탄압도 거세졌다. 2001년 7월 마타이는 불법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체포되었다. 정권 교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2002년 12월 마타이는 통합 야당인 ‘전국무지개연합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마타이는 지역구인 테투 선거구에서 9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자신의 당선보다 더 큰 경사(慶事)가 있었다. 케냐 국민들은 “만약 정부가 제대로 통치하지 못할 경우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정부를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한 달 후인 2003년 1월, 마타이는 환경 및 천연자원부 차관에 취임했다. 그린벨트 운동을 이끌며 아프리카에 3000만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은 마타이는 아프리카의 환경, 여성인권, 빈곤 퇴치, 교육, 민주주의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1940년 케냐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왕가리 마타이는 어린 시절부터 ‘글 읽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195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타이는 케냐 임시정부의 국가인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마타이는 대학 교수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타이는 케냐의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와 독재 정권의 부패를 용인하지 않았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연이은 이혼과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다.

왕가리 마타이는 천천히 싸워도 끝까지 하면 세상이 아주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케냐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나무로 환기시켰다. 민주주의는 단숨에 이룰 수도 혼자서 완성할 수도 없으며, 만병통치약도 아니었다. 마타이는 협치를 강조한 정치인이었다. “살면서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될 겁니다. 그 어떤 일도 혼자서 해낼 수 없음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일을 혼자 하면, 제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그 일을 맡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2011년 왕가리 마타이는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뜻을 잇는 왕가리 마타이 재단과 그가 심은 3000만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지구를 지키고 있다. 마타이는 나무도 민주주의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아름다운 진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장영은

[여성, 정치를 하다](21)권력의 부패와 환경파괴에 맞서…3000만그루의 ‘민주주의’를 심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논문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쓰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160600035&code=910100#csidxd78cf2b33d69465a38ff2b00db3ffc7 


DMZ를 걷다가 개성을 지나 평양으로 가는 길을 바라 보았다

 [접경지역 바로알기] ⑦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땅

직접 가까이 가서 볼 수 없기 때문에 멀리서 보는 전망대도 있다.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바로 옆에서 본 듯 보고 싶기 때문이다. 갈 수 없는 북쪽 땅을 바라보기 위해 만든 전망대를 접경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한 번 쯤은 가 보았을 것이다. 도라산 전망대, 오두산 전망대, 통일전망대 등등. 나들이 길에 들러볼 수 있는 곳으로는 인천의 강화평화전망대와 김포 애기봉전망대가 멀지 않다. 군사시설의 느낌이 더 나는 곳들도 있다. 연천의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를 꼽을 수 있다.


 

태풍전망대는 사전 출입 승인 없이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출입통제 초소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올라가는 길의 양쪽에 우거진 나무숲의 울창함과 푸르름이 유명 리조트 입구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2019년 하반기부터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코로나로 갈 수 없다. 통일의 열쇠가 되겠다는 열쇠 전망대, 이름이 참 멋지다. 그 굳건한 의지로 통일의 문이 빨리 열리길 기원한다.


 


전망대도 세월에 따라 많이 변해왔다. 조성한 지 오래되어 시설이 낙후된 채 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시물이 많았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남북 공존과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이 반영되었다.


 

자유로변에 있어 접근이 쉬운 오두산 전망대에서는 2020년 남북한 미술가들의 작품 40여 점을 모은 전시회, '평화, 바람이 불다'가 열리기도 했다. 2층 전시실에는 실향민이 기억을 더듬어 그린 북녘고향 그림 5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분단 70년이 넘었음에도 지척의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에 숙연해지며 어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재개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오두산 전망대 2층 전시실 ⓒ오두산 전망대 홈페이지(www.jmd.co.kr)

▲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2000년 6월 15일 오두산전망대) ⓒ김효은

서해에서 보는 북한은 놀랍게도 가깝다. 강폭이 넓지 않은데다 물이 빠져 있을 때엔 몇 발짝 뛰면 닿을 듯하다. 강화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방 약 2.3㎞ 해안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황해도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개풍군이다.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북한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비슷하다. 애기봉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이름에서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성탄트리로 남북은 물론 남남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 전망대는 새 단장이 한창이다. 노후화된 전망대를 철거하고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이 올 상반기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평화생태공원 야외공연장과 미술관 같은 전시관도 조성중이다.


 

접경지역 동쪽 끝의 전망대는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다.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의 해발 70미터 고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최단 16㎞, 최장 25㎞밖에 되지 않는다. 동해안 지역의 금강산 비로봉(毘盧峰:1,639m)과 해금강(海金剛)을 바라볼 수 있고, 해금강 주변의 섬과 만물상(사자바위), 현종암, 사공암, 부처바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올라가기 전에 2009년 문을 연 DMZ 박물관도 들러봐야 할 곳이다. 정전협정의 상세한 과정부터 전쟁과 냉전이 남긴 어두운 역사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DMZ의 생태와 도약하는 DMZ의 밝은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고성 통일전망대의 동해바다와 미륵불이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 풍경 ⓒ강원도 고성군(www.tongiltour.co.kr)

코로나로 인하여 현재 방문 가능한 전망대는 파주의 오두산 전망대와 고성의 통일전망대 2곳뿐이다.


▲ 방문 가능한 DMZ여행지 ⓒ디엠지기 홈페이지(www.dmz.go.kr)

북한을 바라보기 위해 조성된 전망대는 아니지만 파주 문산의 장산전망대에서는 DMZ의 생태를 조망할 수 있다, 굽이 진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초평도((草坪島)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평평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53만 평의 습지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기에 잘 보존되어 흰꼬리수리, 왜가리 등의 조류와 습지 생물의 서식지다. 강도 들도 산도 정지된 것 같은 평온한 곳에 야영객들이 많아졌다.


 

▲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초평도 ⓒ김효은

망향(望鄕), 잊을 수 없는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이런 저런 사연으로 고향에 갈 수 없고, 가족과 조상들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북에 고향을 두신 분들이나 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된 분들은 고향을 잃어버렸다. 고향 방향을 바라보며 부모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망향단이나 망향대를 만들었다. 수몰의 아픈 이야기는 망향비에 담겨졌다. 알려진 곳으로는 임진각 망향단을 들 수 있다. 그리운 고향,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며 눈물 담은 술잔을 올릴 수밖에 없는 실향민들은 저 망향단을 넘지 못한다.


▲ 연천 호로고루 망향단(왼쪽), 한울원자력본부 망향비(오른쪽), 1979년 12월 8일 당시 울진원전 1, 2호기 건설로 고향을 떠난 1000여 명 이주민들의 망향의 뜻을 기리고 있다. ⓒ김효은

길 위에 길이 있다.


 

남북의 길은 끊어졌지만 그 길을 잇고자 하는 우리의 염원은 길을 만들었다. 강화나들길, 평화누리길, 평화누리 자건거길, DMZ 평화의 길...이름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한다.


 

평화누리길은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접경지역 10개 시군에 조성되어 있다. 자연, 생태, 역사, 문화, 안보자원을 연계한 시군의 관광명소 위주로 거점 순환형 소규모 탐방로를 만들었다.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2011.7.27)에 따라 2021년까지 총 551km로 조성될 계획이다. 평화누리길은 비포장도로와 기존 사용하고 있는 도로 및 폐 도로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동시에 군 작전로를 활용하는 친환경적인 길이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에서 전쟁의 위협 없이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희망을 담은 평화누리길에 평화의 발자국을 남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일이리라.


▲ DMZ 길 조성계획 ⓒ디엠지기 홈페이지(www.dmz.go.kr)

그 중 경기도의 평화누리길은 2010년 5월 8일 개장되었다. DMZ 접경지역 김포, 고양, 파주, 연천 4개 시군을 잇는 총 12개 코스, 189km의 길로 김포 3코스, 고양 2코스, 파주 4코스, 연천 3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안길, 논길, 제방길, 해안철​책, 한강하류, 임진강 등 역사유적이 산재해 있는 길로 이루어져 있다. 길 이름에서도 역사와 문화,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조강철책길, 행주나루길, 출판도시길, 반구정길, 임진적벽길, 통일이음길' 등.


 

강화나들길은 강화도의 20개 길로 이루어져 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왕릉과 건축물, 조선시대에는 외세 침략을 막아 나라를 살린 진보와 돈대 등 역사와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생활·문화 그리고 세계적 갯벌과 저어새·두루미 등 철새가 서식하는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다.


 

평화누리길에는 자전거길도 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경기 김포, 고양, 파주, 연천에 걸쳐 7개 코스가 조성됐고 모두 215㎞에 달한다. 군사시설을 만나 끊기기도 하고, 자유로와 함께 시원하게 달리기도 한다. 자동차와 길을 함께 써야 하는 위험한 길도 있고 굴곡 많은 비포장길도 나타난다. 평화누리자전거길이 평평해지고 평탄해질 때까지 길을 내듯이, 남북의 끊긴 길도 잇고 돌아가는 길은 곧게 펴서 막힘없이 쭉 이어지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 철원 구간 안내도(왼쪽), 평화누리 자전거길(파주 자유로, 오른쪽) ⓒ김효은

쉽게 갈 수 없었던 길, 'DMZ 평화의 길'이 열렸다. 2018년 4,27 남북 정상이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바꾸어 나갈 것을 약속하고 9.19 평양정상선언에서 상호 GP를 시범 철수하기로 하였다. 이중 GP 철거, 유해 발굴 등 긴장 완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파주, 철원, 고성 3개 지역에 평화 안보 체험 길인 DMZ 평화의 길을 조성하였다. 2019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하여 고성 구간이 첫 개방되었고 6월 1일 철원 구간, 8월 10일 파주 구간이 개방되었다.


필자는 철원 구간을 가 보았다. 백마고지에서 시작하여 남북 합동 유해 발굴의 역사적 현장인 화살머리 고지도 가 보았다. 사진 촬영이 제한된 데다가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다소 긴장한 채 구간별로 걷다가 차량으로 이동하다 보니 DMZ 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남아있다.


 

▲ DMZ 평화의 길 노선(왼쪽) ⓒ통일부 2020 통일백서 / 기념 부채(오른쪽) ⓒ철원군

파주 임진각에서 차로 10여 분만 가면 통일대교 입구에 닿는다. '통일의 관문' 인데 그 문을 열 수가 없다. TV에서 자주 봐서 낯익은 곳인데도 사진촬영을 하려니 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온다. 개성공단으로 가는 차들이 줄을 서서 지나던 곳이었는데, 공단이 닫힌 지도 벌써 5년이다. 비록 우리의 길은 여기에서 끊기지만 우리의 눈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개성을 지나 평양으로 가는 길이다. 다음 편에서는 지역에서 평화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보겠다.


▲ 통일대교 입구 판문점(왼쪽, 파주시) ⓒ파주시청 / 개성·평양 도로 표지판 (오른쪽, 고양시 자유로) ⓒ김효은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151018003335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아침신문솎아보기] 조선일보, ‘MB국정원 사찰의혹’ 박형준 공격용

 [아침신문솎아보기] 사찰의혹 18대 의원들 직접 정보공개 나서…백기완 선생 별세, 사회장으로 19일 영결식


 


1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당시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국정원의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과거의 일을 꺼낸 이유는 부산시장 재보선에서 박형준 예비후보 공격용이라고 주장했다. 박형준 후보는 MB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은 옛 친이계 인사다. 국민의힘도 해당 사건을 선거용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평생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재야인사 ‘백기완 선생(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4시45분 별세했다. 관련해 경향신문은 “재야의 거목이 스러졌다”고 전했고,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거리의 투사’, 서울신문은 ‘민중운동 불쌈꾼’으로 표현했다. 백 선생 장례는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진행하고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 16일자 종합일간지 1면
▲ 16일자 종합일간지 1면

 

MB정부 불법사찰 의혹, 정치공세일까

MB정부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과 사찰 의혹 당사자들이 국정원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관련 문건을 입수하면서다. 지난달부터 다수 매체에서 관련 문건의 구체적 내용이 소개되면서 다시 MB정부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문건의 내용을 보면 국정원은 보수단체를 이용해 공공기관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방송, 예술계, 체육계의 좌파 인물 활동을 수집했다. 또 이들을 압박해 정치개입을 막을 것을 주문했다. 방송사 간부나 광고주 등에게 좌파 연예인들의 정치활동 문제점을 주지시켜 배제하도록 하거나 이들의 비리를 알려 사회적 공분을 유도하라는 내용도 등장했다.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을 보면 국정원이 방송 장악을 위해 검찰을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검찰을 압박해 정부 비판 언론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강하게 할 것을 유도했다. 실제 해당 보고가 있던 2010년 하반기, 총파업을 진행한 전국언론노동조합 간부들에게 검찰은 최대 3년6월 징역형이라는 중형을 구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15일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정치인 관련 신원정보 등을 파악해 국정원이 관리토록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오래전 일이라 하더라도 결코 덮어놓고 갈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현재 불법사찰 의혹은 MB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이후 18대 국회의원 전원과 법조인, 언론인, 시민단체 인사 등 1000명의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그 규모가 작지 않다. 

▲ 16일 조선일보 사설
▲ 16일 조선일보 사설

 

야권에서는 이를 정치공세로 몰아갔다. 정진석 국민의힘 4·7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국정원의 정치공작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박지원 국정원장이 답하라”라고 했다. 

부산지역신문인 부산일보는 16일 해당 소식을 전하며 정치면에서 “‘국정원 불법사찰’ 여, 박형준 정조준”이란 제목으로 같은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부산일보는 “국민의힘은 보선을 겨냥한 여권의 계산된 행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며 “박 후보를 비롯해 야권의 서울시장 유력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모두 친이계 인사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12년 전 국정원 문제 왜 들추나 했더니 부산 野후보 공격용”에서 “정권 매체 보도의 출처는 ‘국정원 고위 관계자’다”라며 “박지원 국정원장은 ‘정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더니 국정원이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8일자 SBS “MB 국정원, 18대 국회의원 전 원 사찰…문건 있다”란 리포트를 가리키는데, MB정부 당시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청와대까지 18대 국회의원 전원의 개인정보가 담긴 문건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보도다. 

관련해 한국일보 16일 보도를 보면 사찰 의혹을 받는 18대 의원들이 직접 정보공개 청구에 나설 예정이다. 안민석·안규백·홍영표 민주당 의원, 이종걸·정동영·이석현 전 의원 등이 그 의사를 밝혔다. 한국일보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악재를 맞은 국민의힘은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라고 반발하지만 사찰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국민의힘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사찰의혹 관련 추가 보도도 있었다. 15일 MBC 보도를 보면 MB 국정원은 KT노조 선거에 개입해 ‘강경파’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고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유도한 것을 과시하는 내용을 담은 문건도 작성했다. 

▲ 16일 중앙일보 기사
▲ 16일 중앙일보 기사

 

전 정권 문화계 블랙리스트들의 현재는?

중앙일보는 “화이트로 바뀐 블랙리스트…공공기관 자리잡은 그들”이란 2면 기사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보고서 등에 나온 블랙리스트 명단을 놓고 이들이 현 정부에서는 어떤 자리에 가 있는지 보도했다.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가 이젠 화이트리스트가 됐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한동안 뜸했던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또다시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며 기사를 시작했다. 현 정권도 지난 정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다. 

이 신문은 배우 권해효, 김여진과 희극인 김미화 등이 문화 관련 공공기관 이사를 맡은 사실을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 김규리씨에 대해 중앙일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족쇄가 풀린 그는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며 “서울시 산하 서울미디어재단 TBS에서 2019년 2월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김규리의 퐁당퐁당’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세월호 참사 유족을 도왔다는 이유 등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가수 이은미씨 역시 TBS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16일 경향신문 만평
▲ 16일 경향신문 만평

 

백기완 선생 마지막 글귀 
‘김미숙·김진숙 힘내라’

16일 언론에선 백 선생이 폐렴으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에 주목했다. 백 선생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단식으로 요구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지지하고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글귀를 남겼다. 15일 오후 2시부터 조문이 시작됐는데 김미숙 이사장은 고인을 조문하기도 했다. 

백 선생은 투쟁가의 대명사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원 글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명동 YWCA 위장결혼 사건(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을 주도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 감금된 채 고문을 당했다. 

당시 10시간의 모진 고문을 받다 정신을 잃고 깨어난 시가 ‘묏비나리’인데 1980년 옥중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듣고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중요성을 담았다. 황석영 작가가 이 ‘묏비나리’의 일부를 따서 5·18 광주 민주화 항쟁 희생자 추모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썼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는 백 선생 얼굴을 1면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