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54] ‘자주동천’과 ‘빛내리’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스님으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왔다. 첫 문장은 옛 동시로 시작한다.
“‘감자꽃’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캐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지꽃 핀 건 자지 감자/ 캐보나 마나 자지 감자.”
권태응(1918~1951)의 동시 ‘감자꽃’이다. 사람들은 자지꽃·자지색의 ‘자지’가 남성의 성기를 일컫는 말과 음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주’로 바꿨다. 그래서 원래는 자지색(紫芝色)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자주색(紫朱色)이 되었다. 영지(靈芝)의 짙은 붉은 빛이 사라지고 그냥 붉은 색(朱)으로 변한 것이다.
스님은 계속 말한다. 예전에 거주하던 암자 옆에 자지동천(紫芝洞泉)이란 샘터가 있었는데 어느날 관에서 나와 이름을 ‘자주동천’으로 바꿔 버렸다고 한다. 음가가 바람직하지 않아서 바꿨다고는 하지만 원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고을 이름을 한자로 바꾼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음가에 치중한 것과 의미에 치중한 것 등 종잡을 수 없는 마을 이름도 있다. 바깥마을(豆磨面·계룡시 두마면)·목골(木谷·원래는 연못을 의미하는 ‘못골’이었는데 발음이 변하여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뀜) 등과 같이 알 수 없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전라도에 가면 ‘光川(광천)’이 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빛내(리)’였다. 듣기에는 ‘빛내리’가 훨씬 좋은데….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