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일요일

‘12.3계엄 사태’로 알게 된 한미동맹의 본질과 북의 전쟁억제 전략

 

윤석열, ​​​​​​​4차례 국지전 도발 시도

계엄선포 사후 명분 쌓기 공작

북, 전략적 인내와 전쟁 억제력

한미동맹은 반공‧전쟁동맹

내란수괴 윤석열은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선포의 명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4차례의 대북 교전 시도는 북의 ‘전략적 인내’로 불발됐다.

급기야 윤석열은 비상계엄부터 먼저 선포하고 사후 내란 조작을 통해 계엄 요건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본질이 구시대 반공동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4차례 국지전 도발 시도

윤석열이 계엄선포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던 국지전 도발과 내란 공작은 군대를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군사작전통제권을 가진 주한미군의 승인 없이 계엄선포가 불가능한 이유다.

처음 윤석열은 대북 전단을 이용해 교전을 유도했다. 지난 2023년 11월 윤석열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기구·무인기 등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9·19 남북군사합의 1조3항을 콕 집어 효력을 정지시켰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3월 대북 전단이 집중 살포됐다. 북은 대북 전단을 원점 타격할 대신 대남 오물 풍선으로 응수했다. 덕분에 윤석열의 교전 기도는 좌절됐다.

윤석열의 2차 교전 시도는 7년 만에 재개한 휴전선 부근 포사격 훈련이다. 지난해 7월 육군은 군사분계선 5km 이내 사격장에서 K-9 자주포 6문과 차륜형 자주포 6문을 동원해 실탄 140여 발을 발사했다. 이 지역은 주한미군의 방조가 필수다.

윤석열은 9.19 남북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에 따른 훈련 정상화 조치라고 했지만, 북의 대응 사격 유도가 주된 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김여정 부부장은 포사격 훈련을 "자살적인 객기"라고 비난하면서 윤석열이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전쟁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의 교전 기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참고로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는 국군이 80여 발의 대포병 사격에 대해 조선인민군은 170여 발의 포로 응수한 바 있다.

윤석열의 3차 시도는 무인기 평양 침투를 통한 국지전 유발이었다. 지난 10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지시로 평양에 무인정찰기를 침투시켰다.

당시 김여정 부부장은 ‘한국군부의 3차례 무인기 침투’ 사실을 폭로하면서 “다시 발견되는 그 순간 끔찍한 참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도의 인내력을 발휘한 것이다.

김용현이 무인기 평양 침투를 주한미군과 사전 협의했음은 자명하다. 김여정 부부장도 “핵보유국의 주권이 미국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하여 침해당하였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미국에 경고했다.

4차 시도는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한 원점 타격 지시다. 계엄선포 1주 전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이 김명수 합참 의장에게 ‘북에서 오물 풍선이 날아오면 경고 사격 후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다.

원점 타격은 오물 풍선을 띄우는 황해도 지역을 국군이 공격하는 것이어서, 국지전 도발을 위한 선제공격을 의미한다. 다행히 핵보유국과의 전면전을 우려한 한미연합사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계엄선포 사후 명분 쌓기 공작

국지전 유발이 번번히 실패하자 인내력을 상실한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먼저 선포하고, 사후에 내란 공작을 꾸며 계엄 요건을 충족하려고 했다.

12.3계엄 당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북파공작원 특수부대 HID 요원들이 ‘체포되어 이송되는 한동훈을 사살한 후 북한군 소행으로 위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한동훈 전 대표가 계엄선포 당일 “체포되면 사살되니 피하라”는 전화를 받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몸을 피해 미수에 그쳤다.

아울러 체포되어 호송되는 이재명‧조국·김어준 등을 구출하는 시늉을 하다가 도주하고, 특정 장소에 북한군복을 매립해두었다가 일정 시점 후에 발견해 북한 소행으로 발표한다는 작전까지 세웠다. 실제 정보사가 비상계엄 3주 전에 북한군 군복 300벌을 구매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치인, 종교인, 판사 등 ‘수거 대상’ 16명을 체포해 납북으로 위장한 뒤, 백령도 인근에서 그 배를 폭파한다는 내용이다.

계엄 준비 과정에 작성된 이런 계획을 미국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되면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미국은 뒤늦게 이런 사실을 김어준 뉴스공장 공장장 등을 통해 공개했다.

전략적 인내와 전쟁 억제력

윤석열의 국지전 도발에 북이 한 번이라도 말려들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만약 3월 대북 전단에 원점 타격을 가했다면, 7월 포사격에 대응 사격을 가했다면, 10월 무인기를 휴전선 일대에서 박살냈다면,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북이 12.3내란사태 과정에 보여준 전략적 인내는 한반도 전쟁을 억제하고, 내란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 힘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북이 남침 의사가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남북공동선언에는 평화통일 노선과 적대행위 금지가 적시돼 있다. 7.4남북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선언 등.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모든 선언은 파기되고 말았다.

어느 쪽, 누가 약속을 어겼나?

누가 평화통일 주장을 탄압하고 선제공격 운운하며 전쟁연습을 강화했나. 어느 쪽이 상대를 반국가세력이라 적대하고 민족연대를 범죄시했나.

한미동맹은 반공‧전쟁동맹

계엄선포 과정에 드러난 한미동맹의 본질은 전쟁동맹이자 반공동맹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비단 12.3계엄에 국한되지 않는다.

1948년 제주도를 레드아일랜드(빨갱이섬)로 규정하고 계엄을 선포해 도민 3만명을 학살할 때도, 1950년 예비검속을 이유로 보도연맹 가입자 120만명을 학살할 때도,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4.19혁명을 뒤집을 때도, 1972년 유신 계엄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민청학련 사건을 일으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40명을 긴급체포할 때도, 전두환이 5.17계엄선포로 광주시민 2800여명을 향해 총을 난사할 때도 모두 미국의 지시와 승인이 있었고, 그때마다 한미는 늘 반공동맹, 전쟁동맹을 강화했다.

전쟁동맹은 필연적으로 반공동맹을 부른다. 전쟁을 일으키려면 먼저 적대국을 선정하고, 필요에 따라 도발을 유도해 선제공격 명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8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연공‧연북을 주장하면 빨갱이‧종북세력으로 매도됐다. 독재정권은 민중의 저항에 부닥칠 때마다 내란세력을 등장시켜 반국가세력 척결에 나섰다. 난데없이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그때마다 대북 적대와 한미동맹이 강조돼왔다.

요컨대 12.3계엄사태를 계기로 한미동맹의 실체가 드러났다. 반공을 앞세워 독재정권을 유지해 왔다. 북은 남침 의사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때문에 '한미동맹과 민족동맹', '반공과 연공'에 대한 새로운 설정이 필요해졌다.

데스크sonkang114@gmail.com

쌀이 남아돈다는 거짓말…윤석열이 저지른 또 다른 실책

 [경제뉴스N시선]남태령 연대와 농업정책의 미래


남태령에서 농민과 시민의 연대가 추운 겨울을 녹였다. 트랙터를 몰고 올라온 농민들의 투쟁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폐정개혁안 12조'라는 이름의 요구안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과거 동학농민운동을 연상시키는 폐정개혁안 12조에는 △내란수괴 윤석열 처벌 △내란동조 국민의힘 해체 △군대·경찰·검찰 민주화 △농산물 공정가격 실현 △경자유전 원칙 △국가 책임 농정 실현 △노동기본권 보장 △대기업 경제력 집중 해소 △이태원 참사 등 진실규명 △여성, 장애인 등 차별 철폐 △선거연령 하향 △종속 외교 청산과 한반도 전쟁 종식 등이 담겨 있었다. 즉 농민들은 농업 정책을 포함해서 사회 전반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폐정개혁안 12조에 등장하는 국가 책임 농정이라든가 농산물 공정가격 같은 개념을 시민이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선 경제뉴스에서 농업 관련 보도를 찾아 읽으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윤석열 정부의 농정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농산물 가격 낮추기에 방점을 찍으면서 농민과 도시민을 갈라치기 하는 방식으로 농업 정책을 집행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벌어진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에 대응한다면서 저율할당관세(TRQ)를 늘리고 또 늘렸다. TRQ는 원래 일정 물량까지만 저관세로 수입하고 그 이상의 물량은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인데, 애초 취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수시로 시행규칙을 개정해 저관세 수입 물량을 늘렸다. TRQ 물량만이 아니라 품목도 늘렸다. 심지어는 국내 농민들의 마늘, 양파 수확을 앞둔 시기에 마늘과 양파의 TRQ 물량을 증량해서 가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TRQ 증량 정책은 수출업자와 유통업자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국내의 농업 기반을 훼손하는 정책이다. 농산물 물가를 근본적으로 잡지도 못한다. 며칠 전 동네 슈퍼마켓에 갔더니 체리 한 팩에 1만900원, 딸기 한 팩에 1만2900원이었다. 2000원 덜 내고 농약이 도포된 체리를 사먹을 것인가? 2000원 더 내고 싱싱해 보이는 국내산 딸기를 사 먹을 것인가? 소비자 입장에서 윤석열 농업정책의 효과는 이런 것이다. 사실 이건 농업정책도 아니다. 기재부가 주도하는 보여주기식 물가 억제 정책이다.

쌀의 경우 매년 40만8700톤을 의무 수입한다. 이렇게 매년 낮은 관세로 수입되는 쌀이 시장을 교란해서 쌀값이 하락한다. 농민들은 40만8700톤이 신성불가침의 숫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관련 5개국(미국, 중국, 태국, 베트남, 호주)과 재협상을 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재협상 노력을 해봤는데도 안 된다면 수입쌀의 활용 방안이라도 농민들과 협의하자고 요구한다. 일본의 경우 수입하는 쌀의 70퍼센트 정도를 사료용으로 돌린다. 반면 한국은 수입쌀의 3% 내외만 사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식품 대기업 등에서 가공용으로 쓴다. 지난해에는 대한한돈협회에서도 수입산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올랐으니 수입쌀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정책의 변화는 없었다. 정부는 매년 40만8700톤의 쌀 수입을 기정 사실화한 토대 위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국내의 쌀 재배 면적을 그만큼 줄이려고 한다.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

언론은 TRQ라든가 수입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대신 쌀의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 양곡관리법과 쌀에 관한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자.

[사설] 쌀 보관에만 연 4500억원 드는데 정부 매입 더 늘리자는 野(24.10.03 한국경제)

쌀 매입·관리에 혈세 3조…농망법 폭주 멈춰세워야 [사설](24.11.28 매일경제)

'쌀 과잉생산' 확 줄인 일본… 비결은 '시장논리'에 맡긴 쌀값'(24.12.10 매일경제)

필리핀 쌀 인플레, 15년 만에 최고치…"가격상한제 무용"(24.02.07 뉴시스)

<매일경제>의 11월 28일자 사설은 양곡관리법을 '농망법'이라 부른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의 표현을 제목에 그대로 넣었다. 사설은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매입·관리하는 데 쓰는 돈만 3조 원이 넘는다"면서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기 때문에 농업의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래서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가 보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수요와 공급이다. 쌀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서 생긴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한다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 그러나 농민의 시각에서는 "남는 쌀"이 아니라 막대한 수입 물량 때문에 "남게 된 쌀"이다. 구조적으로 한국 농업은 벼농사 위주였는데 갑자기 수입쌀이 밀려 들어왔고, 그런 상황에 맞게 농민을 보호해 주는 정책은 수립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쌀 과잉생산의 주범이자 경쟁력 없는 산업의 종사자로 몰렸다.

쌀값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024년만 해도 폭염과 폭우, 이상고온 피해가 있어서 쌀 수확량이 줄었는데도 쌀값은 하락했다. 통상 7월부터 9월 사이에는 산지 쌀값이 오르는데, 2024년의 경우 8월 초에 17만 원대(80kg 기준)까지 떨어졌다. 통계청 국가포털에 게시된 2024년산 11월 5일자 산지 쌀값은 18만2700원. 2023년 수확기 평균 산지 쌀값 20만2797원보다 낮다. 1만 원으로 비빔밥 한 그릇도 사 먹지 못하게 된 지 오래인데 쌀값은 오히려 내려갔다.

2022년에는 즉석밥의 대표격인 햇반의 가격이 7% 올랐는데, 그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하락이라고 할 만큼 많이 내려갔다. 햇반의 제조사인 CJ제일제당은 연료인 LNG 가격과 포장재 가격이 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럼 농민들은 어떨까? 비료 가격과 면세유 가격 등 모든 생산비가 올랐지만 쌀값에 반영할 길은 없었다. 이거야말로 경제신문들이 외치는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난 5년간의 수확기 산지 쌀값과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지수화한 '농가구입가격지수'(2020년=100)를 나타낸 표. 2022년의 경우 농가구입가격지수는 크게 뛰었지만 쌀값은 폭락했음을 볼 수 있다. ⓒ안진이

<한국경제>는 2024년 10월 3일자 사설에서 쌀 수입을 이야기했다. "쌀 수입을 위해 외국에 지급한 돈은 올 들어 8월까지 2억4000만 달러, 연말까지는 4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라며 "쌀이 부족하면 몰라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한다고 하니 이런 부조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부조리하긴 하다. 그런데 쌀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한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한국의 쌀 자급률은 2022년에만 104.8%를 기록했을 뿐 평년에는 100%에 못 미친다. 국내산 쌀의 일부에 대해 시장격리와 공공비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이유는 수입 물량이 너무 많아서다.

식량주권과 기후위기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22년 기준 46%밖에 안 된다. 정부와 언론의 시각은 '식량자급률은 낮지만 쌀은 남아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둔다면 '식량자급률이 그나마 46%인 것은 쌀 덕분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곡물 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식생활이 비교적 온전했던 것은 주곡인 쌀 생산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입 물량이 있으니 쌀 생산을 줄여야 하지 않느냐고? 지금도 쌀 생산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정부 정책도 쌀 생산을 줄이는 방향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농민들에게 쌀 생산을 줄일 것을 강요했다. 다수확 품종이라는 이유로 품질 좋은 신동진쌀 재배 면적을 강제로 줄이는 정책을 도입해 농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가루쌀(분질미) 사업을 시행하는가 하면, 논과 밭의 오랜 구분을 깨뜨리고 논에다 벼 대신 논 콩을 심으라고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벼 재배면적을 8만ha나 감축한다는 목표를 잡고 모든 벼 재배 농가에 논 면적 10%를 의무 감축하라고 통보했다. 지금은 윤석열이 직무 정지된 상황인 만큼 이런 정책들도 일단 멈춤이 필요하다.

무작정 재배면적을 줄이면 쌀마저도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상기후가 세계 곳곳을 강타하면서 주요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는 일은 이미 현실이다. 농식품부는 2027년 쌀 자급률 98%를 목표로 한다면서 목표 재배면적을 68만ha로 잡았지만, 2023년 감사원의 지적에 따르면 이 수치는 미래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 쌀 생산성만을 토대로 설정한 것이다. 모의실험 결과를 반영할 경우 목표 재배면적은 78만2000ha로 상향해야 한다.('감사보고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I(물·식량 분야)', 2023.7, 감사원) 2024년의 벼 재배면적은 69만8000ha. 감사원의 지적대로라면 쌀 생산량 줄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량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사례 - 일본과 필리핀

2024년 12월 10일자 <매일경제>는 '쌀 과잉생산 확 줄인 일본… 비결은 '시장 논리'에 맡긴 쌀값'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보다 앞서 국가적으로 쌀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국가"가 일본이라면서, 1970년 약 1200만 톤의 쌀을 생산하던 일본이 2023년 660만 톤 수준으로 생산량을 대폭 줄인 것을 모범 사례처럼 제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초기에는 각 농가에 일괄적인 쌀 감산을 강제했고, 2004년부터는 아예 쌀 생산을 '민간 주도'로 전환했다. 쌀 재배 시 지급하는 보조금도 폐지하고 다른 밭작물에 대한 보조금을 늘렸다. 아마도 한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일본 정부의 쌀 감산 정책을 베껴온 것 같다.

그런데 <매일경제>가 일본의 정책을 칭찬하던 시점에 일본은 쌀값 폭등으로 난리를 치르고 있었다. 2024년 3월부터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쌀값은 11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63.3퍼센트나 올랐다. 일본 가정에서는 주곡인 쌀을 사재기하기 시작했고, 슈퍼마켓 매대에서 쌀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일본의 쌀값이 오른 원인은 쌀의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이상기후로 고온 피해를 입은 지역의 1등급 쌀 비율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엔저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외식산업에서 쌀 소비량이 급증했고, 난카이 트로프 지진에 대비해서 비축용 쌀 수요가 늘었다. 쌀값 폭등으로 일본의 가계가 어려움에 빠지자 최근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쌀 생산 정책 재검토를 약속했다. 쌀 생산량을 늘리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다시 언급했다.

한때 쌀 수출국이었다가 쌀 농사를 포기했던 필리핀의 사례도 있다. 필리핀은 1년에 4모작이 가능한 조건을 바탕으로 아시아 농업혁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국제 쌀값이 1톤당 200달러(장립종 기준)로 안정세를 보이자 필리핀 정부는 '부족한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는 기조를 채택했다. 농지는 골프장·휴양시설·공장 등으로 바뀌었고 농민들은 도시로 떠나거나 관광가이드로 나섰다. 국제 비교우위론에 따라 필리핀은 쌀 수입국이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곡물 가격과 석유 가격이 불안정해지면서 2023년 쌀값이 치솟았다.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국산 쌀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쌀값이 급등하자 필리핀 정부는 쌀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쌀값은 높게 유지되었고, 2024년 필리핀에서는 물가 전반이 안정되었는데도 쌀값만 급등하는 '쌀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2024년 1월 필리핀의 쌀값은 전년 동월 대비 22.6% 올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쌀과 옥수수 등의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도 일본도, 쌀농사 포기의 결말은 행복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에 대비해 농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럼 우리는? 농업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전략산업으로 대우할 것인가? 농민과 시민이 남태령에서 만났던 것처럼 이후에도 농업정책의 방향을 함께 토의해 나간다면 좋은 해답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안진이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는 더불어삶 회원들과 함께 해고노동자 지원, 인터뷰, 강연 기획 등 노동 현장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모순을 파악하고 공론화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어서 경제 뉴스와 각종 문헌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더불어삶 뉴스레터 구독 링크 https://livetogether.substa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