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9일 수요일

베네치아 검문소와 북촌한옥마을 주민 시위

중앙일보가 수사내용 가장 구체적으로 보도, 반기문 전 총장 공항철도 발매기, 턱받이, 퇴주잔도 묘사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2018년 05월 10일 목요일

드루킹 작업기사 1만9000건, 2만건, 9만건 제각각
드루킹 김동원(49) 일당의 댓글 조작 수사내용이 오늘 일간신문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세계일보는 1면에 ‘드루킹 대선 전후 기사 9만건 댓글 조작’이란 기사를 썼다. 국민일보는 ‘1만 9000건’이라고 달았고, 몇몇 신문은 이를 줄잡아 ‘2만 건’이라로 표현했다.
▲ 중앙일보 2면
▲ 중앙일보 2면
대부분 경찰이 드루킹의 최측근 김모(필명 초뽀)씨의 USB에서 확보한 내용을 근거로 삼았다. 중앙일보는 오늘 2면에 ‘초뽀 USB엔 기사 9만 건... 반기문 치명타 턱받이 댓글도’라는 머리기사로 다른 신문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드루킹 일당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2017년 1월 12일 귀국 당일부터 댓글 조작을 벌인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드루킹 일당이 12일 귀국한 반 전 총장이 공항철도에서 표를 구매하기 위해 1만원권 2장을 발매기에 집어넣고, 14일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죽을 떠먹이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턱받이 한 것과 같은 날 선친 묘소에서 퇴주잔을 받아 마신 장면에 조롱과 비난 섞인 댓글을 어김없이 달았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도했다.
1만 9000건, 2만 건, 9만 건으로 신문마다 서로 다른 숫자으로 제목에 뽑아 독자들이 헷갈릴 수 있다. 초뽀의 USB에 담긴 기사주소(URL)의 총량이 9만 건이고, 이 가운데 1만 9000건이 지난해 대선기간에 활용한 주소다.  
베네치아 검문소와 북촌한옥마을 주민 시위 
조선일보는 국제면(16면)엔 ‘베네치아에 관광객 검문소, 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한 이탈리아 북서부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한 해 20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바람에 물가가 오르고 혼잡이 심해 주민들 삶의 질이 떨어지자 시 당국이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 2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성수기엔 현지 주민만 통과시키겠다는 조치를 취했다.  
비슷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틀 전 한겨레신문은 13면에 ‘관광에 뺏긴 사생활 돌려주오... 북촌은 시위중’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를 썼다. 북촌한옥마을운영회가 지난 5일 오전 한옥마을 입구에서 ‘북촌 주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기사에서 주민들은 “골목에 대소변을 보고 가는 이들(관광객)도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일회용 음료 컵이나 아이스크림 컵 등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2017년 6월 30일 20면. 베네치아를 소개한 여행가 김남희씨의 글.
▲ 경향신문 2017년 6월 30일 20면. 베네치아를 소개한 여행가 김남희씨의 글.
이탈리아 베네치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팔마 등 유럽 유명 관광지는 10여 년 전부터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 유입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차츰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유명세 때문에 찾아간 관광지가 막상 가보면 언론보도만큼 볼거리가 없는 경우도 많다. 언론이 온갖 수사로 화려하게 포장해준 기사를 믿고 한여름 베네치아에 갔다가 푹푹 찌는 습한 더위에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잠만 자다 왔다는 이들도 많다.
반면 화려한 수사와 냉정한 현실을 잘 배합해 베네치아를 소개한 여행기도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6월 30일자 20면에 한 면을 털어 보도한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아름다움에 빠져 몸유병자처럼 걷다’는 제목의 글을 권한다. 김씨는 베네치아를 토마스 만의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모티브로 해설했다. 부와 명성과 예술적 성취를 모두 이룬 노작가 아센바흐 교수가 베네치아로 여행 왔다가 14살 폴란드 소년 타치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파멸한다는 스토리 자체도 극적이지만 소설 속 주무대인 베네치아 리도 해변 묘사도 아름답다. 하지만 김씨는 관광지 미화만 늘어놓지 않는다. “무서운 물가와 연중 이어지는 소란과 운하의 오염을 피해 원주민들은 점차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 주인 없는 방앗간의 쥐들처럼 온 도시를 관광객이 장악하고 있었다. 수상버스 바포레토는 러시아워의 서울 지하철만큼이나 붐볐다. 운하에서 올라오는 썩은 물냄새가 코를 찔렀다.”  
반면에 베네치아는 곤돌라 모는 사공도 오페라을 부르고,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할머니조차 패션 센스를 뽐낸다. 허름한 식당의 테이블에도 이웃한 무라노 섬의 수공예 유리잔이 놓여 있다. 이렇듯 김씨는 도도하고 오만한 베네치아를 잘 표현했다.
급기야 주민들이 시위에 나선 북촌한옥마을을 놓고 서울시는 실태조조사와 설명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베네치아처럼 관광 시간대를 제한하는 방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촌은 조선 후기 북촌은 노론 집권세력의 권문세가가 살던 화려했던 땅이다. 북촌 바로 아래 안국동을 중심으로 기생집과 요릿집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김종필 같은 군사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70년대까지 ‘요정 정치’를 이어갔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안국동 아래 요즘 한창 뜨는 익선동엔 이후락과 김두한 김성곤 같은 정관계 인사들이 들락거렸던 요정 ‘오진암’이 있었다. 오진암은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4남북공동성명을 위한 물밑 작업을 벌였던 장소다. 오진암은 헐리고 그 자리엔 엠베서드 호텔이 들어섰다. 호텔 출입구 옆에 옛 영광을 추억하듯 오진암의 유래를 적어 놨다. 중국 관광객들이 그게 뭔지 알기나 할까.  
서울시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 시행  
여러 신문이 서울시가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전국에서 첫 시행한다는 소식도 비중 있게 다뤘다. 국민일보는 12면 머리기사로 ’감정노동자 악성민원 대응 후 30분 휴식‘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서울시는 시 산하 사업소와 출연기관까지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 서울시는 민원 응대 통화를 의무적으로 녹음하고, 민원인이 감정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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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계엄군, 여성 3~4명 산으로 끌고가 집단 성폭행”

[단독] “5·18 때 계엄군, 여성 3~4명 산으로 끌고가 집단 성폭행”

등록 :2018-05-10 05:00수정 :2018-05-10 08:38

피해자 ㅇ씨에 대한 5·18재단의 구술록 확인
여성만 3~4명 차에 태워 끌고 가 집단 성폭행
공포를 일으키기 위한 성폭력적 학살 사례도
전문가 “국가에 의한 성폭력으로 처벌해야”
“‘인도에 반한 범죄’로 공소시효 없다고 봐야”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여성들을 집단으로 납치해 성폭행했다는 구술 자료가 확인됐다. 이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당시 군인들에게 납치돼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승려가 된 ㅇ씨였다. 이는 광주항쟁 당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상습적으로 벌어졌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성·인권 단체들은 이들 사건을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로 규정하고 당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별도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항쟁 20년 뒤인 2000년 ‘5·18기념재단’이 5·18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기록한 구술 자료집을 보면, 당시 여고생이었던 집단 성폭행 피해자 ㅇ씨의 증언이 실려 있다. ㅇ씨는 1980년 5월19일 계엄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 혼자였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들 서이(셋)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아줌마 같애”라고 말했다. 자신 외에 계엄군에게 끌려가 성폭행당한 여성이 3명 더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ㅇ씨의 성폭행 피해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더 많은 피해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ㅇ씨의 증언을 보면 계엄군이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한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ㅇ씨는 당시 광주 주변 도시에서 광주의 한 여고를 다니던 중에 5·18을 맞았다. ㅇ씨는 다른 여성 2~3명 정도와 함께 계엄군들에 의해 강제로 차량에 태워진 것으로 보인다. ㅇ씨는 “(광주시) 유동에선가 어디서 잡혔는디, 집에 갈려다, 맞아 갖고 차에 끌려갔어요. 살려달라고 막 난리가 아니제”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당시 이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했던 계엄군은 계획적으로 이런 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군인들이 여성들만 납치했기 때문이다. 질문자가 “남자들은 내리고 여자들만 데리고 간 거예요? 아니면 원래 처음부터 여자들만 태웠어요?”라고 묻자 ㅇ씨는 “여자들만 태웠재”라고 답변했다.
ㅇ씨 등 여성 3~4명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지점은 광주시 남구 백운동 인근 야산으로 추정된다. ㅇ씨는 “어, 그때 기억으로 차에서, 아니 차에서 산에 데리고 갔어”라고 했다. 이들이 성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5월19일은 11공수특전여단이 광주에 증파된 날이다.
ㅇ씨는 성폭행당한 직후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해 학교에도 나가지 못했다. ㅇ씨는 “막바로 이상해 갖고, 집에서 가방 들고 갈라믄 못 가게 하고”라고 말했다. ㅇ씨 가족들은 3~4년이 지난 뒤에야 ㅇ씨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 5·18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들에 의해 불임수술까지 받았던 ㅇ씨는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5·18 당시 계엄군 군인들이 여성들에게 저질렀던 학살과 폭력행위는 전쟁범죄와도 같았다. 5월22일 광주시내에서 시위대는 온몸이 두부처럼 짓이겨지고 가슴이 잘린 여성 시신을 발견했다. 사망자는 당시 19살이었던 ㅅ씨였다. 1980년 6월20일 광주지검 공안과에서 작성한 검시 조서는 “ㅅ씨가 가슴이 날카로운 것에 찔린 ‘좌유방부 자창’에 골반부와 대퇴부에 여러 발의 총탄이 관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계엄군은 대검으로 ㅅ씨의 젖가슴을 찔렀고, 실신했거나 죽은 상태의 ㅅ씨의 성기 쪽에 집중적인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가슴과 성기를 난자하는 행위 등은 전쟁 때 진압군이 피지배 여성들의 전의를 꺾기 위한 전형적 ‘과시적 성폭력’으로 분석된다.
안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 때 여성에 대한 공격이 더 잔혹했던 이유는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계엄군이 여성에게 가한 만행은 남성의 경우와 달리 성적 차별까지 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5·18 당시 계엄군 등 신군부가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작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도 “만약 국내법상 공소시효 때문에 법적 처벌이 어렵다면, 5·18 때 저질러진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에 대해 진상 규명이라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적 심판이 이뤄져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2005년 집계한 통계를 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다. 항쟁 당시 숨진 165명 중 여성은 13명이다. 사망자 165명 중 129명은 총상, 9명은 자상, 17명은 타박상으로 희생됐다.
향후 5·18특별법 제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면 여성들에 대한 국가폭력을 더 엄정하고 섬세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 김상훈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나 친고죄 여부 등의 법적 조항만 보면 실정법상으로 처벌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5·18 당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국가 폭력 범죄로 다른 처벌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5·18 당시 여성에 대한 군인들의 성폭력을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는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경규 경북대 연구교수는 “군대가 총기를 이용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행위와 그 와중에 발생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된다”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런 범죄는 아예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기소해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 책임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5·18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입수한 당시 합동수사본부 직제표를 보면, 합수본부는 단장·국장·부국장 밑에 조정통제과, 수사1·2·3과, 특명반, 대공과 등의 6개 과에 66명이 근무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연재5·18 그날의 진실

선감도의 비극, 소년들은 암매장 됐다

[선감도의 비밀, 감춰진 아이들 ① - 르포]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도에 가다
18.05.10 08:01 | 정대희 기자쪽지보내기
▲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선감학원은 소년 강제 수용소였다. ⓒ 경기도

선감도엔 비밀이 있다. 감춰진 소년들의 이야기다. 일제가 어린아이들을 강제로 끌어가 노역에 동원했던 기록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똑같았다. 이곳저곳에서 애들을 잡아다가 모진 육체노동을 시켰다. 여기선 40년 동안 어린 소년들을 몽둥이로 다스리고 숨을 거두면 아무렇게나 땅에 묻었다. 그래서다. 이 섬은 인권유린의 땅이자 지옥 섬이었다. 

이런 생지옥의 흔적을 되짚고자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챙겼다. 지난 4월 24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선감도로 향했다. 혼자 간 건, 아니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과 함께 갔다. 그는 지난 20년간 선감도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도에 가다
▲ 선감도엔 죽음의 흔적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땅에 묻힌 자국이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풀이 푸성하게 자란 여기가 소년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 정대희

선감도는 섬이 아니었다. 한때 바닷물이 흐르던 곳에 콘크리트 길이 뻗어 있었다. 방조제는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했다. 자동차가 '지방도 301'을 따라 쉬지 않고 달렸다. 불도방조제 삼거리를 지나자 '경기창작센터'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비밀을 안고 있는 장소다.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학원의 현재 이름이다. 

네 바퀴의 속도가 줄었다. 선감학원 터로 향하던 차가 방향을 틀었다.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 엔진이 멈췄다. 정진각 소장은 "보여줄 게 있다"라고 했다. 산기슭에 있는 풀이 웃자란 땅으로 이끌었다.  

그가 손짓했다. 손끝을 따라 눈을 돌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현수막에 '이름도 없는 어린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라고 적혀 있다. 그제야 풀밭이라 여겼던 땅덩어리에 뭔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봉분이었다. 

"여기가 아이들이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작게라도 무덤이 있는 건, 무연고 분묘다. 어린 소년들의 무덤은 흔적도 없다. 강제로 끌어와 노역을 시키고, 그러다가 죽으면 대충 묻은 거다."

죽음은 흔적을 남긴다. 흙으로 덮여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장비가 동원됐다. 이 지역을 지표투과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로 탐사한 거다. '선감학원 사건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 조사 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에 실린 내용은 이랬다. 

"6개 블록에서는 45곳 정도의 이상대가 확인되었으며, 조사한 영역이 전체 조사지역의 1/3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조사지역 전체에는 150구 정도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풀이 무성히 자란 무덤 터를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 수첩엔 "죽음, 왜?"라고 썼다. 운동화에 묻은 흙을 털지 않고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유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소년들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컨테이너에 진실을 추적한 자료가 쌓여 있었다. 선감역사박물관은 컨테이너 3동을 연결한 시설이었다. 여기에 의문의 죽음을 풀어줄 단서와 실마리가 있었다. 앳된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이야기다. 벽에 걸린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부랑아 감화시설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부랑아들을 보호 육성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태평양 전쟁을 위한 인적자원으로 충원하기 위한 훈육기관으로 운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 시설은 계속 존치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군 주둔지로 41개 동의 건물이 신축되었는데, 미군이 철수하자 더 큰 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로 복귀되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내내 정부에 의해 강도 높게 진행된 부랑아 단속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혹은 성과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소년들을 부랑아로 무차별 연행하고 선감학원 등으로 보냈던 것이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력 착취, 심한 폭력 등 인권유린을 당하였고 많은 소년들이 생명을 잃었는데, 수용소 당국은 사망한 소년들을 적합한 절차 없이 암매장하였다."


때론 진실이 더 잔혹하다. 선감도의 숨겨진 이야기는 소년들의 비극이다. 선감학원은 물 위에 떠 있는 소년 강제 수용소였다. 이런 걸 짓느라 일제는 땅을 사들이고 주민들을 섬 밖으로 쫓아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시청 공무원과 경찰이 소년들을 납치하다시피 잡아다가 선감학원에 보냈다. 

선감도의 비밀, 소년의 비극
▲ 일제 강점기 선감학원 ⓒ 홍석민

섬 한가운데 비극의 현장이 있었다. 선감역사박물관을 빠져나오자 정 소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경기창작센터에서 온 연락이었다. 이날 열리는 선감학원 피해자 위령제를 위한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전화였다. 선감학원 터에 지금은 경기창작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기억의 발자국을 찾아 나섰다. 경기창작센터에 남은 선감학원의 흔적을 훑어봤다. 흑백사진에서 봤던 목조건물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뀌어 있었다. 먼지가 날리던 운동장엔 천연잔디가 깔렸었다.

두 발로 비극을 기록하고자 길을 나섰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경기창작센터에서 나루터까지 이어진 '선감이야기길'을 걷기로 했다. 정 소장과는 잠시 헤어졌다. 나 홀로 취재 장비를 챙겨 탐방을 시작했다.  

포도밭 옆에 비극의 자국이 남아있었다. 소년들이 머물던 막사였다. 빛바랜 사진 속에 있던 '원생 숙소'와 다르지 않았다. 가방에서 정 소장이 준 선감학원 자료집을 꺼냈다. 일제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아이가 '원생 숙소'에 끌려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1942년 6월 2일, <매일신보>에 게재된 '자취 감춘 부랑아 선감도에 200명 수용'이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29일 오전 4시 부내 각 경찰서를 총동원시켜 일제히 관내에 산재해 있는 부랑 소년 300여 명을 영등포역전에 모이게 하여 그중 7세로부터 14세까지 200여 명을 버스 6대에 분승시켜 오전 11시경 인천으로 보내 동일 오후에 선감도로 승선시켰는데..."

1942년 3월, 일제는 조선소년령을 제정했다. 같은 해 5월 29일, 선감학원은 설립기념일을 가졌다. 법을 만들고, 수용소의 문을 열고, 아이들을 끌어오기까지 약 3개월이 걸린 거다. 아귀가 '딱딱' 맞는 흐름이다.  

선감학원이 '소년 창고'였다는 기록도 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만든 문서다.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는 자료다. '선감학원 운영대책' 중 '별첨자료'인 '수용아동현황(1982년 7월 15일 기준)'에 수치가 기록돼 있다. '입원 누계 5775명, 퇴원 누계 5694명, 현원 65명'이라 쓰여 있다. '원생 숙소'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는 거다.
▲ 선감학원 터에 들어선 경기창작센터 ⓒ 정대희

한때 소년들의 숙소를 지나 언덕에 오르자 쉼터가 나타났다. 드넓은 평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고사리손으로 풀을 베고, 밭을 갈았던 터다. 이걸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군사정권 시절, 8살 나이에 선감학원에 끌려갔던 곽은수, 혜법 스님의 증언이다.
"뽕잎 따기 풀 뽑기, 산을 논으로 개간하는 일을 했는데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식당에 들여보내질 않는 거예요. 어떤 날은 새벽에 일하러 나가기도 했는데 작업량을 못 채우면 아침을 거르게 되는 거죠. 간신히 작업량을 채우고 식당에 갔는데 밥이 없으면 정말 피눈물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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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62)씨도 10살 즈음에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가 입을 연 국가폭력의 민낯은 이렇다.
"정말 힘든 게 노동이었어요. 그 어린아이들한테 성인도 하기 힘든 하역 작업을 시켰어요. 배에서 연탄이나 40킬로(그램)나 되는 시멘트 부대 같은 것을 내리는 일이었는데, 그때 시멘트 부대를 진 채로 배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게 지금도 저를 괴롭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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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일제 강점기에 기록을 찾고자 구술기록을 뒤졌다. 농사일 말고도 황민화 교육을 받고 군사훈련에 참여했다는 증언이 있다. 책 <아! 선감도>를 펴낸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84)씨의 말이다. 그는 선감도의 비극을 처음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소년들은)오전에 6시 기상, 7시 넘어까지 공부했습니다. 공부는 일본어와 천황폐하의 칙어를 반복적으로 따라 하게 했습니다. 7시 반이나 8시쯤 아침을 먹었고... 중식 후에는 농사일을 하거나 운동장에 모여서 교련을 했습니다.

식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영향실조에 걸리거나, 고픈 배를 달리기 위해 개구리, 쥐, 뱀을 잡아 먹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뭐든지 먹었기 때문에 위에 탈이 나서 쓰러지곤 했습니다... 피병사(避病舍)에 있는 어린이를 몇 명 봤습니다. 상처 난 곳에 파리가 잔뜩 꼬여서 커다란 검은 점같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어 보였습니다."


자료집을 덮었다. 더는 읽기 힘들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틈도 없었다. 가야할 길이, 기록해야 할 게 아직 남았다. 언덕길을 내려와 나루터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벚꽃이 땅 위를 하얗게 수놓았다. 발밑이 꽃길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어린 소년들에겐 생지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이들이 끌려와 처음 발을 내디뎠던 나루터에 도착했다. 대부도가 보였다. 

섬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는 이야기. 나루터에도 있다. 뒷산에서 봤던 죽음의 흔적은 지옥 섬을 탈출하다가 실패한 어린아이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일이다. 이하라 히로미츠는 이렇게 증언했다.
"해변에서, 물에 빠져서 죽은 아이를 본 건 2, 3명 정도였습니다. 도망갔지만 주변이 바다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헤엄쳐서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도망친 아이들은 대부도로 갔습니다. 대부도에서 민가로 가는데 모두 배가 고프니까 밥을 훔쳐 먹습니다. 그러다가 잡혀서 대부도 사람-당시는 조선인이라고 했는데-들이 선감도로 데려왔습니다. 잡혀 온 아이들은 매를 맡았고, 묶여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다르지 않다. 소년 임용남은 12살에 선감학원에 끌려왔다. 3년 동안 7번 탈출을 시도한 끝에 나루터를 벗어나 육지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의 증언은 취재 수첩에 적어둔 궁금증도 풀어줬다.


"7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면서 무턱대고 바다로 뛰어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요. 그곳에 있는 3년 동안 10번 정도 죽음을 목격했는데, 대부분 도망치다 바다에 빠져 죽은 경우였어요. 정말 끔찍합니다. 몸은 퉁퉁 불어 있고, 조그마한 조개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시체를 건지면 가마니에 둘둘 말아 묻으면 그만이에요. 개죽음이죠."


[관련 기사] 7번의 탈출, "정말 견디기 힘든 게 성폭력" 

이런 증언을 읽고 고개를 들자 방범대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태극기가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소년 임용남이 아른거렸다. 그에게 국가는 없었다. 아니, 키 작은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건, 국가였다. 

끝나지 않은 선감도의 비극
▲ 선감도에 강제로 끌려온 어린아이들이 생활했던 '원생 숙소' ⓒ 정대희

"나루터 옆 포장마차에서 칼국수 한 그릇 합시다."

지난 4월 24일 낮 12시 30분, 다시 정 소장을 만났다. 선감학원 피해자 위령제 회의가 뜻대로 안 됐는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칼국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얼굴이 상기됐다. 선감도가 한눈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갔다. 주인장이 정 소장을 아는 체한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이랑 종종 이 집을 찾아와요. 그러다가 알게 됐는데. 여기 주인이 말하길, 이따금 혼자서 칼국수에 소주 한잔하면서 우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나도 모르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이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여기서도 어린 소녀를 향했던 서슬 퍼런 폭력의 기억을 들을 수 있었다. 머리와 가슴을 할퀸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선감도를 떠나기 전, 선감학원 피해자 위령비를 찾았다. 경기창작센터 한 귀퉁이에 있었다. 혼자서 훑어볼 땐, 못 봤던 거다. 지난 2014년 정 소장과 뜻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세운 거였다. 위령비에는 이런 설명문이 달려 있었다.
"본 조형물은 유년시절 놀이기구의 하나인 방패연 이미지를 사용하여 구상한 작품으로 방패연, 얼레, 꽃잎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패연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 얼레는 연이 날 수 있도록 바람을 일으킴과 동시에 연을 묶어두는 양면적 상황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하였고 꽃잎은 어린아이의 고귀함과 순수를 은유한다. 이는 자유롭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속적인 자유를 염원하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다."

위령비의 방패연 문양 구멍 사이로 뒷산이 보였다. 선감도에 끌려왔다가 죽은 어린 소년들이 묻힌 장소다. 이날 처음 찾은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선감도의 비극,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을 시작으로 선감도의 비밀을 추적한다. 감춰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한다. 일제가, 군사독재 정권이 소년들에게 가한 강제노역과 폭력, 인권유린을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낱낱이 공개한다. 

진실은 아직 땅속에 묻혀있다.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진실이 규명되는 그날을 위해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놓지 않겠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다.
▲ 선감도 나루터는 한때 무덤이었다. 어린아디들은 섬을 탈출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다 실패하면 여기서 사체로 발견됐다. ⓒ 정대희

한중 정상 "서울-신의주-중국 잇는 철도 사업 가능"

"北에 일방 요구만 말고 체제·경제 보장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향후 북한 비핵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보상, 이른바 '당근'을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비핵화에 "상응하는 피드백"에 대해 국제사회가 논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9일 문 대통령과 리 총리의 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두 정상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양국 간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양국 정상은 특히 북한에 대해 일방적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행할 경우 체제 보장과 경제개발 지원 등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양국 정상은 북한의 경제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신의주-중국을 잇는 철도 건설 사업이 검토될 수 있으며, 한중 양국 간의 조사연구 사업이 선행될 수 있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고 구체적 경협 사업에 대해서도 한중 정상 간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같은 접근에는 중국이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 총리는 회담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피드백을 (북한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한국을 메신저로 삼아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 총리가 말한 '북한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 "핵실험장 폐기 등 북한은 나름 본인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미국의 피드백'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북한이 성의를 보이는 것에 대한, 미국 쪽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같은 '보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이야기"라며 "'비핵화가 이뤄진다면'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리 총리의 발언이 지금 단계에서 대북 제재를 완화해 달라는 등의 의미는 아닌 것으로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과 리 총리의 회담 전날, 중국은 북한과도 비핵화 관련 대화를 나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전날 전격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한 조선노동당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한 데 대해 지지"를 보냈으며 "중국은 한반도 정세의 발전과 변화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취한 중대한 결단과 조치들을 높이 평가하고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이날 전했다. 

전날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위해 "단계별 동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세기의 회담 '마지막 고빗길'...北은 '성의'를 보일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인 '단계적·동시적 조치'라는 말 자체가 지난 3월 28일 김 위원장과 시 주석 간의 북중 정상회담 당시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文 "남북회담 성공, 전적으로 中 지지 덕분"…李 "한반도 비핵화 함께 추진"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중국의 강력한 지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중국을 치켜세우거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국 쪽에서 많은 지지와 협력을 해준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하는 등 이른바 '차이나 패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저와 시진핑 주석, 리 총리의 전략적 소통이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뒷받침했다"며 "앞으로도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리 총리는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돼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데 대해 축하 인사를 드린다"며 "중국은 한반도 정세 완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대통령 본인의 노고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중국 측은 한국과 함께 양자관계에서 건전하고 안전한 관계를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며 "한국 측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리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중국공산당 외교부장의 지난 2~3일 방북 결과 등 최근 북중 간 교류 동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 정상, 오는 6월 미세먼지 공동 대응 '환경협력센터' 출범 환영

문 대통령은 "오늘 한중일 정상회의가 아주 성공적으로 잘 마쳐져서 기쁘다"며 "중국이 차기 의장국을 맡은 다음 회의도 조기 개최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주 기대가 크고, 이번을 계기로 한중일 회의가 정례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는 안보 사안 외에 한중관계 발전과 환경 문제 공조 등도 함께 논의됐다. 청와대는 "두 정상은 양국 국민들의 공통 관심사인 미세먼지 대응 등 환경 협력을 총괄하게 될 '한중 환경협력센터'의 내달 출범을 환영하고, 미세먼지 대응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한중 환경협력센터는 한중일 환경장관 회의(6.23~24, 중국) 계기에 출범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미세먼지와 관련해 "한중 양국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세먼지 문제고, 이 문제는 양국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양 정부가 진지하게 걱정하고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리 총리는 "미세먼지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며 그 이유도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한국과 함께 연구하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리 총리에게 한국 단체관광 제한 해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롯데마트 매각 및 롯데월드 프로젝트 조속 재개 등 지난해 중국 측에 요청한 사안이 하나둘씩 해결되고 있다며 사의를 표하고 "좀더, 보다 빠르고 활력있게 진전되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중국 내 위치한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에 중국 정부가 관심과 지원을 보내 달라고 당부했고, 리 총리는 적극 협력하겠다는 취지로 화답했다.  

한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리커창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드(THAAD)'에 대해 언급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께서 미세먼지 해결책, 여행객 제재 해제 등을 재차 요청하는 과정에서 리 총리도 한마디 언급하고 넘어갔고, 심각한 논의가 이뤄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윤나영 기자 dongglmoon@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획팀에서 노동 분야를 담당하며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 등을 다뤘다. 이후 환자 인권, 의료 영리화 등 보건의료 분야 기사를 주로 쓰다가 2015년 5월부터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떠오른 평양이 암시하는 제국주의시대의 끝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떠오른 평양이 암시하는 제국주의시대의 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5/10 [02: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9일 JTBC뉴스룸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은 미국인 3명 석방 이후  미 외교가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이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9일 JTBC뉴스룸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은 미국인 3명 석방 이후 미 외교가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이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본지에서 여러차례 예측했던 바 그대로다. 물론 아직 확정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제도권 언론에 이런 정보가 흘러들 정도라면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그리고 이해찬 총리까지도 팟캐스트 대담에 나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에 나선 것은 미국의 사상초유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으로 지금 북의 전방위적 외교를 분석하면 틀릴 수밖에 없으며 우리 정부도 기회를 놓쳐 막대한 손해를 피하기 어렵다.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솟구쳐오르는 전방위적 정상회담은 2016년 북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최첨단 재래식무기와 2017년 과시한 미사일 장착용 소형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어마무시한 핵전략무기 시험성공이 추동한 일로 봐야 정세를 정확히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본토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대결전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결정적 사변'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대북제재와 항공모함 5척까지 동원한 대북압박도 그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패배라는 주장이었다.

미국이 제국주의 패권국의 힘이 있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하는데 미국은 북과 대화를 선택했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문제 해결은 원래부터 북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일이었고 미국은 선핵폐기 없이는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강변해왔다. 결국 북의 요구가 관철된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이제 북과 종전에 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종전선언과 북미평화협정체결,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내용이고 미국은 북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을 푸틴 대통령식으로 평가하면 북이 승리한 대결전을 수습하는 회담인 것이다. 따라서 내용과 장소, 일정은 북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북은 한국전쟁과 그 이후 이어진 미국의 대북 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다. 북은 총알 한 발 미국 본토에 쏜 것이 없다. 회담 장소와 회담 내용은 피해자가 선택하는 것이지 가해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역사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린 상황에서 협의된 종전선언은 모두 다 그랬다.

물론 북의 승리는 미국 국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가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과의 대결전에서 승리이기에 사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은 호혜적인 나라로 거듭나게 될 것이어서 미국 국민들도 내용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장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이 감축, 철거되어 미국인들의 세금이 국방비로 쓰이지 않고 미국인들의 의료와 교육, 주거 및 엉망이 된 채 돈이 없어 보수도 못하고 있는 도로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철도 등을 정비하는 일에 쓰일 것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는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제국주의 미국의 패배인 것이다.

이것이 북미정상회담의 본질이다. 북이 핵시험장을 공개적으로 폐쇄하고 완전히 핵폐기에 나서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군사패권을 추구할 의사가 전혀 없는 북이기 때문에 북미대결전을 종식시키는 등 북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더는 핵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북의 판단으로 보인다. 그래서 폐기에 나서는 것뿐이리라.

물론 가능성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혹시 미국이 약속을 어기고 회담 이후 다시 북을 핵으로 위협할 우려를 품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대비는 어려울 것이 없다. 북은 유일하게 미국의 핵공격에도 전 주민을 대피시켜 일년 이상 생활할 수 있는 완벽한 지하대피시설을 갖춘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이 핵공격을 가하는 날 북의 지상은 좀 파괴되겠지만 북 주민은 모두 살아남는다. 그리고 바로 지하에서 미국 본토를 직격하여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릴 무기를 신속히 만들어 보복에 나설 것이다. 그날로 미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며 북 주민들은 오염된 한반도를 일시적으로 떠나 미국에 가서 살면 된다.
미국도 북의 그럴 능력까지는 폐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북이 자신있게 한반도 비핵화에 나선다는 것은 모든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제국주의가 종국적으로 완전히 끝장나지 않는 한 북의 선군정치 정신은 절대로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북에서 공식적으로 한 두번만 밝힌 내용이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0여일만에 다시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로 국경을 넘은 것도 뭔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중국 외교부에서도 이번 다롄 북중정상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불러서 간 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간 것이란 말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대결전을 대화와 협상으로 매듭지으려고 여러 수를 펴가다보니 중국과 전략, 전술적으로 추가 논의할 필요성을 느껴 다시 시진핑 주석을 만난 것일 뿐이다.
어쨌든 이번 북중회담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더욱 확고한 북중협력관계를 확인하여 미국이 대화에서 다시 발을 빼서 중국과 대북 제재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대못을 박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자세한 분석은 이미 기사화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9473)

▲ 북 노동신문은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두 번째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5월 7일 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방문하고 이틀 간의 정상회담 일정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수를 펼쳐가던 중 북중사이 전략, 전술적 추가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번 회담으로 북은 더욱 확고한 북중협력관계를 확인하여 미국이 대화에서 다시 발을 빼서 다시 중국과 대북 제재로 되돌아갈 수 없고 대못을 박았다.

그간 행보를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단히 실용적이며 대범 대담하고 대화 상대에 대한 아량도 깊어 미국의 애로도 들어주면서 대화를 진행시켜갈 것이기에 평양이 아닌 곳에서 회담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본다. 하지만 북미대결전의 흐름과 기본 관례를 놓고 보았을 때 평양 외에는 다른 곳은 생각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내용적으로 제국주의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협상이 북미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세계사적 대격변을 몰고 오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호혜평등 새로운 세계질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새벽 직전의 어둠이 가장 짙은 법이다. 우여곡절과 난관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기본 대세는 이미 굳어져가고 있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든다.

일본도 곧 북일정상회담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도 지난해 북미정상회담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북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독일 메르켈 총리는 미국 압박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의 대북압박 중단과 대화를 통한 한반도문제 해결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유럽의회 한반도관계대표단장 너지 데바는 북미평화협정을 최근에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영국도 북미전쟁이 발발한다면 이제는 미국을 도와 파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이미 오래 전에 북과 밀월관계에 들어섰다.  
북이 여기서 더 핵과 미사일 시험을 단행하게 되면 미국은 물론 유럽도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온 세계가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란 기관차를 고철 녹이는 용광로로 몰고가는 원격조종 운전대를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잡고 있는 형국이다. 북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북미정상회담이 정말 열릴 것인지, 장소는 어디로 될 것인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쓸데 없이 우리 정부에서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판문점을 권하는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닌가. 그런 헛수고야 세금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를 제대로 보지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조국통일의 적기를 놓치게 되면 그 피해는 실로 막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남북교류협력만이 우리 경제의 살 길이라는데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대세를 잘 못 읽으면 그 투자 적기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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