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3일 화요일

[김애화 칼럼] 영화 ‘미나리’와 아시아 혐오

 김애화 칼럼니스트

발행2021-03-24 09:05:43 수정2021-03-24 10:13:22

‘미나리’ 남매가 만나는 문화적 갈등

한국 이민자 가족이 시골의 작은 교회 예배에 참가한다. 신자가 전부 백인인 교회에서 첫 예배가 끝난 후에 백인 소년이 한국 소년 데이비드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왜 너는 얼굴이 평평하니?” 데이비드는 억울한 표정으로, 평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 소녀 앤에게 백인 소녀가 다가와서 자신이 우물거리는 소리 중 너의 언어와 비슷한 단어가 있냐고 묻는다. 앤은 한국어와 비슷한 단어를 찾는다. 백인 소년소녀의 악의 없는 호기심은 한국 소년소녀를 불안하게 한다. 데이비드는 역으로 ‘너는 왜 그렇게 생겼어’라고 묻지 못하고, 누나는 ‘너희 말도 이상해’라고 말하지 못한다. 백인 소년소녀는 소수자가 이상하지만, 비주류인 한국인 소년소녀는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그저 수용해야만 한다.

영화 ‘미나리’는 지극히 사적인 친밀성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정형화된 문화 대립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하다. 영화는 낯선 곳에 정착하면서 부딪히는 물리적 어려움, 그를 둘러싼 가족의 갈등 나아가 가족애라는 보편성을 보여준다. 외부로부터의 갈등보다는 내부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백인 사회에서의 문화적 갈등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은 교회 장면뿐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나는 인종적 갈등으로 인하여 가족이 어려움을 겪게 될까 불안했다. 다행스럽게 그런 전개는 없었다. 그럼에도 교회 장면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 혐오범죄와 겹치면서 불편했다. 다른 인종이 거의 보이지 않는 아칸소에서의, 미나리 남매의 청소년 생활은 어땠을까. 무사히 잘 지냈을까.

최근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 때문에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외출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편안한 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 남의 일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자신들이 경험했던 인종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시네마

보이지 않던 오래된 오늘

미국내 인종문제는 백인우월주의가 만들어내는 흑인에 대한 폭력, 혐오로 대부분 표현된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반인종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달에 발생한 애틀란타의 총격 사망사건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최근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가 있다. 2020년 신고된 아시아계에 대한 범죄는 3,800건에 달하고, 아시아 혐오 범죄가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150%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코로나19 공포 때문에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이 늘어났다는 것이 일반 언론의 태도이다.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 ‘차이나 바이러스’, 쿵푸에 빗대어 ‘쿵 플루’라고 부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과 선동도 반아시안 정서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아시아계의 인권단체는 아시아 혐오 사건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힘없는 아시아계 노인들에게 쏟아진 폭력을 알리는 비디오가 없었다면, 그리고 애틀란타처럼 누군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는 예전처럼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내 아시아인에 가해진 역사적 폭력의 사례들은 많다. 미국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대표적인 폭력의 역사를 보면, 우선 중국인 이민자들을 향한 폭력이 있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인의 재입국 금지와 시민권 중지를 합법화했다. 그리고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차이나타운은 전염병을 옮기는 진원지로 낙인 찍혀서 격리되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적국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혐의로, 미국내 일본인 전체를 수용소에 강제로 수용했다. 2차 세계대전의 다른 적국 출신인 독일인, 이탈리아인에 대해선 그런 조치가 없었다. 또한 LA 폭동 때 한국인 소유 가게들에 벌어진 방화와 도둑질에 미국 경찰은 거의 수수방관했다. 만약 백인 소유 사업이라면 그랬을까. 9.11 이후 벌어진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와 폭력이 있다. 명분은 내부 테러 방지였다. 이렇게 전쟁, 전염병 등 중대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국내 이민자들에 대한 폭력이 공적으로 사적으로 급증되었다.

미국 백인우월주의, 주류사회는 한 손에는 이런 폭력적 수단을, 다른 한 손에는 분리정책 또는 회유책을 사용하여 아시아인을 조종했다. 그들은 흑인 사회를 정신적으로 억압하기 위해서 아시아계를 이용했다. 미국 주류사회는 아시아인을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라고 부르며, 흑인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갖게 했다. 1950년대에 미국내 중국인계와 일본계 일부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이를 일반화하였다. 유교적인 가족관, 공동체성, 자녀에 대한 학업열, 근면성이 바로 ‘Model Minority’의 기초라고 했다. 아시아들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종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흑인들이 생각하는 불평등은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의식이었다.

Model Minority는 아시아계 이민자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었다. 이는 대다수 이민자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 사회적 고립, 인종 차별 등을 덮는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아시아 이민자들을 지배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80년대에 이민간 ‘미나리’ 가족, 특히 아버지 제이콥은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강하게 보여준다. 제이콥 같은 가부장적 아시아계 아버지들에게 인종문제나 문화적 대립은 부차적인 성질이었을 것이다. 인종적 피해 경험은 흑인들의 몫이고, 스스로가 성공하지 못해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내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시아인이 경험하는 인종주의 피해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아시아계의 이민 특징도 작용을 했다. 아시아인들은 이민온 후 영주권, 시민권이란 합법적 신분을 얻기 위해서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조용히 지내야 하는 이주의 기간이 필요했다. 또한 스스로 자신들의 경험을 소리낼 수 있는 운동 경험과 기반이 약했다. 아시안은 오리엔탈 또는 출신국으로 불렸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스스로를 호명하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은 후였다.

이민 제2세대, 3세대가 되면서 스스로 자신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시안계 단체, 여성단체들은 끊임없이 소중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들은 ‘영원히 외국인’으로 취급당할 수밖에 없는 미국이란 사회에 아시아인만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아시아인 내에서 인종적 언어, 물리적 폭력 외에 인종적 언어, 문화를 경험한 사례들이 더 공될 것을 기대해 본다.

22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위대가 ‘증오 범죄 중단’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2021.03.23.ⓒ뉴시스/AP

인종주의에 의한 Model Minority에 갇히지 않길

한국에서 미나리 영화는 미국에서 아시아인 혐오범죄가 급증하는 때에 상영을 했다. 미나리가 이 때에 상영되는 것이 어쩌면 불운일지 모른다. 나와 같은 관객은 이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인종주의와 그 갈등을 추측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환경 때문에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가 더 많이 이야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감독은 문화적 갈등을 가볍게 스치듯 지나갔으나, 영화가 내딛은 세상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골든 글로브에서 현지 영화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외국어영화로의 분류는 다양한 인종 사회로서의 현실을 무시한 인종주의적 판단이었다. 어쩌면 미나리 제작진은 이런 영화계의 인종주의를 예측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어를 고집하면서 다양한 이민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은 인종주의에 대한 다른 저항의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아카데미에는 외국어 영화에서 벗어나서 본선 후보 명단에 올랐다. 본선 후보 부문 중 하나라도 누군가 수상을 한다면, 그것이 Model Minority 표상으로서 수상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수상 소감에서 인종주의 문화에 힘찬 발언을 하길 기대해본다. 세상은 다양한 역사를 가진 다양한 인간이 살고 있음을 외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북, 지대함 순항미사일 2발 발사 '제재 피한 저강도 무력시위'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입력 : 2021.03.24 08:53 수정 : 2021.03.24 10:17

북한의 ‘금성3호’ 지대함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조선중앙통신

북한의 ‘금성3호’ 지대함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 21일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4월 14일 이후 11개월여만으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24일 “북한이 지난 일요일(21일) 오전 서해상으로 단거리 지대함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며 “구체적인 제원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북한의 발사체는 탄도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이어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는 탄도미사일 발사만 금지하고 있다.

이 순항미사일은 한국군의 탐지 자산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제트엔진을 쓰기 때문에 비행 속도도 마하 0.8∼0.9 정도이다. 북한이 저강도 무력시위로 한국과 미국의 반응을 떠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미 워싱턴포스트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북한이 지난주 말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23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14일 강원도 문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 수 발을 발사한 바 있다.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16일)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18일)의 담화, 한미 전반기 연합지휘소훈련 종료(18일),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이후에 이뤄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시험발사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직접적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북정책을 수립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이 핵 도발을 재개할 경우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왔으며 이달 초 북한이 시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미 정보당국이 탐지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더욱 시급해졌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가 마무리 단계라면서 내주 말 한미일 3국의 안보실장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참은 북한의 이번 발사 사실을 미 언론이 보도하기 전까지 숨겨 왔다. 군 관계자는 “순항미사일의 경우에는 북한이 발사할 때마다 공개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4월에는 북한이 합동타격훈련 연장선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공개했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한미 군 당국은 당시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파악하고 있었는데 발표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했고 과거에도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한미 합의로 발표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고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언급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240853001&code=910302#csidx94164ad76856506b2d89af1083c6861 

[영상] 개처럼 기게 하고 게임하듯 사살... 인간성 잃은 미얀마 군경

 화풀이 하듯 시민들에게 폭력... 상점 테러·약탈도 이어져

21.03.24 07:46l최종 업데이트 21.03.24 07:46l
▲ 개처럼 기고, 게임하듯 사살... 인간성 잃은 미얀마 군경 .
ⓒ Highlights Myanma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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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도 신지 않은 한 여성이 몸뚱이만한 모래 포대를 버겁게 들고 있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시민들이 군경의 총격을 막기 위해 쌓아둔 모래 포대 중 하나였다.

여성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총을 든 경찰이 마구 위협했다. 결국 경찰이 밀어붙이자 여성은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여성이 모래 포대를 더 이상 들지 못하자 경찰이 이상한 손짓을 하며 위협을 이어갔다. 그러자 여성이 잠시 옆으로 이동해 무릎을 꿇고 양손을 바닥에 댔다. 경찰이 여성에게 엎드려 기어가도록 지시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달려온 다른 경찰이 엎드린 여성의 엉덩이를 마치 축구하듯 발로 찼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상대로 이러한 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그 옆을 모래 포대를 진 다른 시민이 경찰의 감시 속에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미얀마 경찰이 한 여성을 엎드려 기어가게 강압하고 이를 지켜보고 있다.
▲  미얀마 경찰이 한 여성을 엎드려 기어가도록 강요하고 이를 지켜보고 있다.
ⓒ Highlights Myanma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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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억압하는 미얀마 군부의 행태가 단순 잔혹함을 넘어 시민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치닫고 있다. 상점을 테러·약탈하며 저항하지 않은 시민을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것은 물론, 한 시민을 여러 명이 둘러싸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음에도 총격을 가해 버리는 모습도 보인다.


위 영상엔 이러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코앞에 둔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쓰러진 시민을 질질 끌고 가면서도 곤봉으로 폭행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멀리서 찍은 영상이지만 '탕'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지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조용한 음식점에 손님들이 혼비백산 흩어지자 대규모로 경찰 병력이 들이닥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모두가 도망가고 없는 음식점에 남겨진 오토바이를 무자비하게 부수던 경찰은 먹다 남은 음식이 있는 테이블도 곤봉으로 마구 내리쳤다. 그 와중에 양주병을 챙기는 경찰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이 목을 축이기 위해 모아둔 대형 생수통을 칼로 찔러 모두 쏟아버리는 비인간적인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쿠데타 이후 사망한 이가 250명으로 집계된다고 22일 발표했다. 현지 매체들은 행방불명된 이들이 많아 실제 사망자는 이를 훨씬 웃돈다고 보도하고 있다.

현지에선 유혈 진압은 물론, 군부가 시민들을 상대로 약탈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양곤 외곽의 여러 마을에서 군경이 시민을 총으로 위협해 현금, 귀금속, 카메라, 시계, 전자제품, 식료품 등을 약탈했다. SNS를 통해서도 미얀마 곳곳 상점이 군경에 털리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위 영상을 보내온 미얀마인은 "시민을 개처럼 기어가게 하는 모습을 보며 쿠데타 군부가 시민을 노예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듯 시민을 사살하고 약탈을 일삼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세훈 안철수 윤석열 ‘빅텐트’ 시나리오 제시한 조선·동아

 [아침신문 솎아보기] ‘사법농단 유죄판결’ 기사 조선일보만 1면에 없어... 광주 언론 “매일신문 변명 대신 사과가 순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꺾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되면서 24일 다수 아침신문은 오세훈 후보의 ‘부활’을 조명하며 대선 판세를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2개월새 조연서 주연... ‘보수 부활극 쓰나” 기사를 내고 “오 후보는 개인적으로도 10년 전 멍에를 벗을 기회가 주어졌다”며 “오 후보가 10년 만에 후보가 되면서 서울시장 탈환뿐 아니라 보수 재건의 주춧돌을 쌓는 역할도 맡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 24일 1면 기사들.
▲ 24일 1면 기사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운명, 보선에 달려... 제3지대 흡수하나, 흡수되나 기로” 기사를 내고 “당 재건조차 불투명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1년 만에 정권교체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당 내 평가를 전했다. 중앙일보 역시 “단순히 임기 1년 짜리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를 넘어 대선 정국을 앞두고 펼쳐질 야권 재편의 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보수신문들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국민의힘 중심 ‘빅텐트’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중심의 빅텐트에 안철수, 윤석열 등을 모아 경쟁하는 시나리오를 전하며 “중도우파 주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국민들의 관심을 끌면 내년 3월 대선에서 정권교체도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오 후보가 승리하면 국민의힘은 국민의당은 물론 윤 전 총장을 포함해 반민주당 세력 규합에 나서며 몸집을 키울 전망”이라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으로 나왔다. 경향신문은 “존재감을 잃은 3석짜리 국민의당 대표가 아닌 국민의힘으로 들어가야 활로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했다. 한겨레 역시 “정치권에선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제3지대의 한계를 절감한 안 후보가 결국 약속했던 합당을 통해 제1야당에 편입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라고 전했다. 

▲ 24일 조선일보 1면.
▲ 24일 조선일보 1면.

 

▲ 24일 동아일보 1면.
▲ 24일 동아일보 1면.

‘사법농단 유죄판결’ 조선일보만 1면에 없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첫 유죄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윤종섭)는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모임을 와해시키려고 한 혐의, 국회의원이 피고인 사건 결론에 관해 재판부 심증을 파악한 혐의,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아침신문 8곳에서 판결 소식을 1면에 다루며 비중 있게 전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1면에서 관련 사안을 다루지 않았다.

다수 신문은 사설을 통해 판결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겨레와 경향은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낮은 형량을 문제로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재판부의 판단이 사법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들에게 내려진 집행유예 처분이 법 상식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겨레 역시 “범행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여전히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며 “향후 재판에서 법원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 24일 경향신문 사설.
▲ 24일 경향신문 사설.

“사법농단 첫 유죄, 남은 재판도 엄정하게 단죄하길”(한국일보) “사법농단 첫 유죄 판결, 사법 정의 세우는 계기 돼야”(서울신문) “사법의 정치화 첫 유죄.. 사법농단 단죄 마땅하다”(국민일보) 등 사법농단 판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설이 나왔다.

반면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판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진짜 사법 농단으로 불러야 될 일들은 현 정권에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동아일보는 “(유죄판결 받은 법관들이) 법관의 본분을 한참 벗어난 행위”라면서도 “기소된 14명 가운데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람이 8명으로 늘었고, 이 중 3명은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무죄판결이 무더기로 나오고 있는 것은 그만큼 기소가 무리하게 이뤄졌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광주 언론 “매일신문 변명 대신 사과가 순서”

집값이 급등해 세 부담이 늘어난 상황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에 빗댄 대구 지역신문 매일신문 만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국가보훈처에 해당 만평이 5·18 역사왜곡처벌법으로 처벌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매일신문은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인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성과 무게감을 전적으로 공감하나 광주시민의 명예를 훼손하려 했다는 건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취지를 강조했다.

광주전남지역 신문들은 매일신문의 입장을 비판했다. 광남일보는 사설 “매일신문, 변명 대신 사과가 순서 아닌가”를 통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대체 그 언론사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기가 막힌다”며 “매일신문이 바로 선 언론이라면, 즉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전남매일 역시 사설을 내고 “만평의 목적은 국정비판이라 보이지만, 이는 광주시민들의 깊은 상처를 덧내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사회적 공감대와 상식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광주일보 장필수 제2사회부장은 칼럼을 통해 국내외 만평에 대한 역대 논란을 전하며 “아무리 촌철살인의 풍자라 해도 때로는 비유가 적절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비수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무등일보는 “매일신문 만평 5·18 왜곡법 처벌 가능할까” 기사를 통해 해당 만평의 처벌 가능성을 다뤘다. 기사에 따르면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측은 다수의 법조계 인들로부터 처벌할 수 없다는 자문을 받았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은 당초 ‘부인’ ‘비방’ ‘왜곡’ ‘날조’ 등을 처벌하는 내용이었으나 법안 심사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만 가능하도록 수정했기 때문이다. 

▲ 24일 조선일보 기사.
▲ 24일 조선일보 기사.

서울지역 신문에서도 이 논란을 다뤘는데 한겨레와 조선일보 기사의 온도 차가 컸다. 한겨레는 “5·18 기념재단과 5·18단체들은 22일 성명을 내어 매일신문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매일신문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매일신문 소유주인 천주교 대구대교구측 인사들이 1980년 전두환이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전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부동산 실정, 5·18 계엄군에 빗댄 만평 ‘특별법으로 처벌’ ‘표현의 자유’ 논란” 제하의 기사를 내고 “(5·18 처벌법 적용이) 정치권, 법조계, 문화계 등에선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했다. 사안 자체를 조명하기보다는 5·18 처벌법 적용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전하는 내용이다.

'작전명령 5호'로 시작된 어린이·여성·노인 무차별 학살

 [손호철의 발자국] 8. 경남 산청‧함양‧거창 : '거창 사건'은 '산청‧함양‧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거창 사건을 다루기에 앞서 명확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1951년 2월 지리산에서 벌어진 학살을 '거창 (학살)사건'이라 부르지만 거창 학살은 일부에 불과하고 정확한 명칭은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 사건'이다.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1951년 2월 7일 아침, 산청(정확히 이야기해 산청군 금서면 가현)에서 시작해 함양(지곡면)을 거쳐 2월 11일 거창(신원면 과정리 박산골)까지 학살을 자행했다. 다시 말해, 이 학살은 지리산 동남부를 돌며 5일간 지속된 '연쇄학살사건'이었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수는 알려진 거창 719명 이외에 산청·함양에서도 705명이 희생되어 모두 1424명에 달한다.

 


하지만 거창 학살사건을 아는 사람도 산청‧함양 학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 역시 부끄럽지만 이번 역사탐방 이전에는 산청‧함양 학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거창추모공원을 찾느라 내비게이션을 뒤지면서 산청‧함양 추모공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곳을 방문해 여러 자료를 접하면서 비로소 학살의 전모를 알게 됐다.


▲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희생자 위령탑 ⓒ손호철

문제는 왜 거창 학살만이 알려지고, 정작 학살의 시작인 산청‧함양 학살은 묻히고 말았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그것은 지역 국회의원의 차이였다. 당시 학살에 대한 정보를 몰래 제보 받은 거창의 (무소속) 신중목 의원은 이를 국회 본회의에서 폭로했다. 반면 여당 소속이던 함양 의원, 병원 입원을 핑계로 삼은 산청 의원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발생한 학살에 침묵했다는 것이 산청함양 유족회의 조사 결과이다.


 

신 의원의 폭로로 국회가 조사단을 꾸며 현장조사를 갔으나, 여순사건 때 무자비한 학살로 '살인마'라는 별명을 얻은 김종원 정보대령이 국군을 빨치산으로 위장시켜 조사단을 공격하도록 했다(김종원에 대해서는 '손호철의 발자국' 18. '토벌대의 두 얼굴' <한국일보>, 2020년 12월 7일자 참조). 조사단은 이에 놀라 제대로 조사도 못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외신에 학살 사실이 보도되자 이승만 정부는 서면으로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산청‧함양 학살을 완전히 누락하고 거창도 187명만 학살한 것으로 보고했다. 이에 따라 군사재판에 회부된 관련 지휘관들은 징역 3년부터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지만, 이후 사면을 받고 풀려나 승승장구했다.


 

▲ 산청함양추모공원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는 산청‧함양‧거창 학살의 경로. 1951년 2월 7일 산청에서 시작해 함양을 거쳐 2월 11일 거창에서 끝난다. ⓒ손호철

"이 년들도 죽여 버리자." 

"어차피 오늘 밤 호랑이 밥이 될 턴데 뭐."


 

1951년 2월 7일 아침, 7시경 3대대 군인들은 산청군 가현마을 40가구 100여 명을 모아 뒷동산 골짜기에 4열종대로 앉혀놓고 집단학살했다. 어린 이점순 씨와 두 여동생은 그 와중에도 이렇게 살아남아 부모님을 비롯한 123명의 학살을 증언하고 있다.


 

'견벽청야(堅壁淸野 : 지킬 곳은 견고한 벽을 쌓고 나머지 지역은 빈 들판만 남겨라). 2월 2일 이 지역을 담당하는 11사단 9연대는 이 같은 이름의 작전명 5호를 3대대에 하달했다. 빨치산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복구 지역의 주민은 전원 총살하라"는 지시였다.


 

▲ 산청‧함양‧거창 학살을 지시한 작전명령 5호의 내용과 배경 설명 ⓒ손호철

북쪽으로 이동, 산청군 방곡에 도착한 3대대는 오전 10시쯤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부녀자와 노인들이어서 "젊은이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대부분 "군대에 갔다"고 답했지만, 군인들은 듣는 둥 마는 둥 212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다시 북상해 오후 1시 30분 경 함양군 휴천면 점촌에 도착한 군인들은 마을 우물가에 63명을 모아놓고 사살했다. 노하우가 생겼는지 자혜, 지곡, 손곡, 주암, 주상, 화계마을의 주민들을 끌고 북상한 군인들은 경호강변에 있는 서주마을 둔치에 오후 4시경 도착했다. 이곳에서 310명을 학살하고 시신 더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렇게 하루 동안 산청‧함양 10개 마을 주민 705명이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이다.


 

산청‧함양추모공원은 두 번째 학살지인 방곡에 세워져있다. 역사관이 리모델링 중이라 추모공원만 볼 수 있었던 거창과 달리, 이곳은 추모관에 사건의 배경, 진행 과정, 이후 명예회복 과정들을 다양한 시각적 자료와 함께 잘 전시해 놓았다(거창 역시 답사 후 리모델링을 끝내고 역사문화관을 개장했다고 한다).


 

▲ 방곡마을 학살을 그래픽으로 만든 슬라이드 ⓒ손호철

전시물 중 가슴 아픈 것은 사체로 발굴된 300여 명을 분류한 결과이다. 이중 여성이 51.3%였고, 어린이와 청소년 45.3%, 60세 이상 노인 5%였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지리산 밑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어린이들이 국군에 의해 이처럼 비참하게 죽어가며 자신들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가슴이 메어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지휘라인에 있었던 사단장 최덕신 장군, 연대장 오익경 대령, 경남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대령, 대대장 한동석 소령 등 학살주범 4인을 빚어놓은 조각상이다. 다들 학살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총애로 승승장구한 이들 가운데 이력이 특이한 사람은 최덕신이다. 그는 박정희 아래에서 주독대사, 외무부 장관 등을 지내다 월북해버렸다. 민간인 학살 주범의 월북이라니, 기이한 이야기이다.


 

▲ 산청함양추모공원 기념관에는 김종원 등 학살 주범 4인을 잊지 않기 위해 이들의 모습을 부조로 만들어 놓았다. ⓒ손호철

▲ 거창사건추모공원 입구에는 1954년에 있었던 학살자들에 대한 재판판결문을 크게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사면을 받고 승승장구했다. ⓒ손호철

산청 생초초등학교에서 야영을 한 다음 날 거창군 신원면으로 넘어간 학살군은 9일 덕산리 청연골 주민 84명을, 10일 대현리 탄랑골 주민 100명을, 11일 과정리 박산골에서 무려 517명을 학살함으로써 5일 간의 잔혹한 학살극을 마무리했다.


산청‧함양추모공원을 떠나 거창사건추모공원에 다다르면 길가에 '거창사건 희생자 박산골 학살처'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화살표를 따라 산 쪽으로 올라 골짜기에 들어서면 커다란 바위와 '총알흔적 바위'라는 팻말이 나타난다. 517명의 목숨이 처참하게 사라진 박산골이다. 70년이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바위에는 아직도 총탄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놀랍게도 이중 3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거창 학살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 거창의 민간인 517명이 희생당한 박산골 총알바위. 아직도 바위에는 총알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손호철

거창사건추모공원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안과 밖의 차이'다. 밖에는 '거창사건추모공원'이라고 쓰여 있는데,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거창양민학살사건 판결문', '거창양민학살 사건 안내도' 등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사방에 표기돼 있다. 정부가 '거창양민학살사건 추모공원'이라는 표현을 팻말에서도 막아왔다는 이야기다.


거창 사건은 다른 많은 학살 사건들과는 달리 용감한 지역 국회의원 덕분에 학살 당시의 비극이 알려지는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명예회복의 길은 길고 험난했다. 추모공원 초입에 설치되어있는 문병현 유족회 부회장의 공로비가 이를 증언해주고 있다.
 


암흑과 통곡 속에서 살아온 유족들은 보도연맹 등 다른 학살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유족회를 만들어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에 들어갔다. 특히 5월에는 학살 당시 학살 대상자를 선별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 신원면장 박영보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가 거부하자 분노한 유가족들이 그를 생화장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거창 학살은 다시 한 번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회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입법에 들어갔고, 문 부회장의 주도 아래 시신을 수습해서 합동묘소를 설치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모비도 설치했다. 그러나 5‧16 쿠데타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군사정부는 추모비를 부숴 묻어버렸고 합동묘역을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문 부회장을 구속해 반국가단체구성죄로 고발했다.


 

▲ 4‧19혁명 후 설치된 거창학살희생자 위령비를 5‧16 쿠데타 후 군부가 다시 부숴 버렸다. ⓒ거창사건추모공원 제공

▲ 거창사건추모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희생자 추모 조각상 ⓒ손호철

긴 어둠은 민주화가 된 뒤인 1996년, 즉 학살 45년 만에 국회가 명예회복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끝났고, 2004년 거창추모공원을 준공했다. 그러나 같은 학살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역사적 체험 때문에 산청‧함양과 거창 학살 유가족들은 추모와 명예회복사업을 함께 추진하지 않고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행히 두 유가족회는 2018년 국가에 대한 배상요구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거창을 떠나며 생각해보니, 산청‧함양‧거창의 민간인 학살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 베트남전쟁, 그리고 1980년 광주의 시민 학살로 이어져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억울한 영혼들이여, 고히 잠드소서.


▲ 거창 학살 현장 사진

<보론> 한국전쟁 전후 학살 유가족 박정희?


 

"마산 유족회입니더." 

"저는 부산기지사령부사령관 박정희라고 합니더. 내도 같은 유족인데, 점심 사면 안 되겠십니꺼?"


4‧19혁명 후 한국전쟁의 학살 유가족들이 전국유족회를 조직해 명예회복에 나선 때인 1960년 8월25일, 전국유족회 회장인 마산유족회 노현섭 회장에게 박정희부산기지사령부사령관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박만순, "박정희의 전화, '내가 점심사면 안 되겠심니꺼?'", <오마이뉴스> 2020년 1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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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형인 박상희가 1946년 대구 10월 항쟁 때 구미경찰서를 공격하고 도주하다 사살됐으니, 자신도 유족이라는 박정희의 말은 사실이었다(이에 대해서는 '손호철의 발자국' 26, '대구는 진보도시였다', <한국일보> 2021년 2월 1일자 참고). 박상희의 부인인 조귀분은 선산유족회 부녀부장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박정희는 형수를 위해 유해 발굴 때 군 트럭도 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1년 뒤 5‧16 쿠데타에 성공하자 표변한 박정희는 한국전쟁 유가족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는 등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을 탄압했다. 쿠데타 이틀 뒤인 1961년 5월 18일 노현섭 씨는 영장도 없이 방첩대에 연행되어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1972년까지 11년 간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3231815066316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