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일 목요일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2)]곧 사라질 직장에 다니는 석탄 노동자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입력 : 2021.06.04 06:00 수정 : 2021.06.04 08:33


기후위기 시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소멸과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석탄화력발전은 순차적 폐지가 예고됐다.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다. ‘모두’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이같은 전환이 필수적이라면 전환 과정 역시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손실을 나눠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이 일어날 때,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전환 책임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향신문은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기획을 통해 전환 대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석탄 발전’ ‘내연기관’ 이라는 큰 이름에 가려져 있는 노동자 삶으로 들어가 그들이 체감하는 전환의 상황은 어떻고, 바라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기후위기도, 산업 전환도 결국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한태교씨(왼쪽)와 박낙호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권도현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한태교씨(왼쪽)와 박낙호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역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권도현 기자

“한때는 선망의 직장…이젠 ‘석탄발전소 다닌다’ 어디서 말 못해” 

석탄발전이 사회적으로 지탄 대상 되며
노동자들까지 ‘잠재적 범죄자’처럼 위축
발전소 일 해도 기후위기 둔감하진 않아
 

박낙호씨(38)는 3년 반쯤 뒤면 사라질 직장에서 일한다. 그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의 경상정비 노동자다. 하역부두에서 들어온 석탄을 발전기 안에 집어넣는 석탄취급설비의 계측제어 업무를 10년째 맡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 있는 총 10개의 발전기는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박씨는 1·8호기에서 일하는데, 그중 1호기의 폐지 시점은 2025년이다.

그는 몇년 전 강릉의 영동화력발전소가 바이오매스 연료로의 전환을 앞두고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뒤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태안으로 넘어온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발전소가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죠. 그 당시엔 언론에서도 기후변화라든가, 미세먼지라든가, 이런 게 이슈화된 적이 없었거든요.” 폐쇄된 발전소에서 일거리를 찾아 태안까지 넘어온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실감하지 못한 일은 불과 몇년 만에 박씨가 맞닥뜨린 현실이 됐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정의로운’ 과정을 거칠 수 있을까. 석탄 노동자들은 지금까지의 과정은 정의롭지도, 정부의 표현대로 공정하지도 않다고 했다. 직장이 한순간에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지만 그 이후의 대책은커녕 직장이 문 닫게 되는 시기도 정확히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현재 5개 발전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1만3846명, 비정규직 노동자는 1만1286명으로 추정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자 수가 거의 비슷하지만 전환에 따른 일자리 상실 등 피해는 공기업 직원인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경향신문은 현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석탄 노동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미세먼지, 기후위기… ‘안정된 직장’의 쇠락 

지금은 ‘끝이 정해져 있는’ 직장이 되었지만 박씨의 동료 이태성씨(48)가 22년 전 입사했을 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선망받는 직장이었어요. 안정적이고, 지역에도 대공장이 처음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화력발전소에 대한 인식도 좋았죠. 젊은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이 입사지원서를 냈고, 지역특채 가점까지 주면서 채용했어요.” 그는 “국가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자긍심도 있었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은 미세먼지가 본격적으로 사회 이슈가 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이슈가 나오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어요. 그냥 일하는 노동자가 언론을 통해서 지탄받는 대상이 된 거예요.” 이씨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를 맡고 있다. 그가 노조 일을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많이 위축됐어요. 잠재적 범죄자 같은 느낌도 있는 거예요. 예전엔 누가 직장을 물으면 ‘화력발전소 다닙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뭐 그냥, 발전소 다녀요’라고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어요.”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남상무, 이진길, 장성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기자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씨는 기후위기에 대해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남상무, 이진길, 장성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기자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씨는 기후위기에 대해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석탄 노동자들도 느끼는 기후위기 

전 세계적으로 석탄발전은 폐지되고 있다. 석탄 노동자들도 기후위기를 체감한다. 신보령화력에서 일하는 남상무씨(58)는 올해 초 미국 텍사스 지역에 닥친 이상 한파를 보고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남씨가 말했다. “저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우리 어렸을 때와 지금과 기상이변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고요. 우리 세대가 아닌 우리 자식, 손주 세대가 과연 살 수 있게 세상이 유지될까 하는 생각이 들죠.” 당진화력에서 일하는 손일원씨(41) 느낌도 그렇다. “변화를 느껴요. 열대야도 심해졌고, 진짜 비 오는 것도 예전보다 많이 준 것 같아요. 겨울에 눈 내리는 것도요. 솔직히 걱정은 돼죠.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북극에 얼음 녹아내리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돼요.”

먼지에 뒤덮인 발전소 일을 한다고 미세먼지에 둔감해지는 건 아니다. 손씨의 동료 김경민씨(36)는 서해대교를 넘어갈 때마다 의문이 든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게 해무(바다 안개)인지, 아니면 미세먼지인지 저도 헷갈려요.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는 없지만 느끼는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남씨의 동료 이진길씨(48)는 남씨가 걱정한 ‘텍사스 겨울폭풍’은 정말 ‘남의 나라 일’ 같다고 했다. “제가 사는 곳에선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보령화력의 장성일씨(27)는 “체감으로 느낀 적은 없다”면서도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사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심각하게 여기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묻는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에서도 ‘불안하다’는 답은 45.4%에 불과했다. 절반이 되지 않는 이 수치조차 기후변화가 지금보다 덜 이슈였던 2018년 49.3%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22%는 ‘불안하지 않다’, 32%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폐지 일정 

정확한 폐쇄 일정 아무도 안 알려줘 답답
폐쇄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 쌓이기도
“현장 사람들에게도 이해와 동의 구해야”
 

곧 문을 닫는 직장에 다니는 석탄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아무도 이들에게 정확한 폐쇄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령화력 1·2호기는 지난해 12월 폐지됐다. 하지만 폐지 직전까지 누구도 보령화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그 시점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들은 1·2호기가 ‘언제 폐지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 10번이 넘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화력발전에서 일하는 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같이 일하는 동료의 입을 통해 들은 대략적인 일정만 짐작하고 있다.

당진화력의 손씨는 당진 1·2·3·4호기의 폐지 시점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했지만, 제9차 전력수급계획이나 언론보도, 노동조합을 통해 알게 된 것일 뿐 공식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발전소 폐지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노동조합을 하니까 일정을 알고 있는 거거든요. 조합원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같은 발전소에 있어도 모르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태안화력의 박씨도 “원청이나 (소속된 하청) 회사로부터 들은 건 없다. 뉴스를 통해서도 봤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게 더 빠르다”고 했다.

폐지해야 하는 이유도, 폐지 일정도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폐지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쌓인다. 노동자들은 기후변화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는데 그 발전한 기술로 발전소를 개조해 운영하면 안 되는 것인지 물었다. 탄소 저감 기술로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이 있고, 일부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을 그대로 유지한 채 CCS 기술만으로 기후위기를 막기는 어렵다. ‘기후솔루션’의 박지혜 변호사는 3일 “CCS 기술을 이용해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도 있겠지만 CCS와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 수준을 비교해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재생에너지 기술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방침을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제대로 된 설명’ 없는 일방적 폐지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당진화력의 김씨는 “현재의 자원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을 우리가 당겨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탄소 저감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다만 ‘전환의 당사자’인 이들에게 누군가는 제대로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산업 자체를 없앨 정도의 위기인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동의를 구하면 되지 않나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주지 않고) 주야장천 ‘탄소 배출이 문제야, 탄소를 줄여야 돼, 그러니까 석탄화력을 없애야 해’ 이렇게 공표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보령화력의 이씨는 정부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고 느낀다. 그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닥친 2018년 여름의 발전소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 내내 풀 출력으로 (발전소를) 돌리고 난리가 났었어요. 비상이었어요. 한 기라도 가동 중지되면 안 되니까 교체운전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불과 얼마 전 일인데, 그렇게 돌리다가 이제 와 다 없앤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업무는 다양하다. 크게는 항만에서 석탄을 나르는 일(석탄하역), 그 석탄을 발전기에 넣는 일(연료설비), 발전기를 돌리는 일(메인설비), 그 설비들이 모두 잘 돌아가도록 점검하고 정비하는 일(정비),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일(환경설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인설비인 발전기를 돌리는 일은 발전사 정규직이 담당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 몫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 중 일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익혀야 하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에 한정된 업무도 많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면, 많은 이들이 하던 일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당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경민씨(왼쪽)와 손일원씨가 당진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당진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경민씨(왼쪽)와 손일원씨가 당진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하던 일만 계속할 수 있다면… 

석탄화력발전소에만 한정된 업무 많아
폐쇄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 가장 큰 걱정
“일 계속할 수 있다면 거주지 이전 감수”
 

먼저 폐지된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충남 서천군의 신서천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A씨는 그 전에는 보령 1호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황을 제거하는 탈황설비 일을 했다. 지난해 12월 보령 1·2호기가 폐지될 때쯤 새로 지어진 신서천화력이 운행을 시작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신서천에서 경력자들이 좀 필요했어요. (수요가) 맞아떨어진 거죠. 지원자를 뽑길래 옮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옮겼어요.” 집에서 20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40~50분으로 늘었지만 어쨌든 그는 거주지를 아예 옮기지 않고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사업장만 옮겼을 뿐 같은 업무를 하기 때문에 처우의 변동도 없었다.

“타이밍이 좋았죠.” 신보령화력의 남씨가 말했다. “보령 1·2호기 인력은 대부분 신서천화력으로 옮겨갔어요. 삼천포화력 인력은 고성발전소로 옮겨갔고요. 기존 발전소 폐지와 신규 발전소 가동이 맞물며 오히려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더 이상 지어지지 않는다.

석탄 노동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발전소 폐지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다. 연료설비, 환경설비 같은 업무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만 필요한 일이다. 경상정비의 경우 플랜트 등 다른 분야에서도 할 수 있지만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석탄 노동자는 거주지를 옮겨서라도 A씨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평생 살던 지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아서 지역을 옮기지 못할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반반이에요. 이 일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지역을 옮겨서라도 하겠다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태안화력의 이씨가 말했다.

태안화력의 박씨가 하는 계측제어 일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대체발전소가 들어와도 일을 계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지역을 옮기고 싶지 않지만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옮겨야겠죠. 이 업무를 계속 영위만 할 수 있다면, 지역이 바뀌더라도 갈 용의는 있어요.”

환경설비를 하는 보령화력의 이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에라도 가야죠. 그렇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저 혼자만 가더라도 해야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노동자들은 다른 발전산업으로의 이직을 준비하기도 한다. 보령화력의 장씨 역시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산업 분야가 꼭 발전일 필요는 없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지는 못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이들의 일자리 

새로 지어지는 대체발전소에서 일을 계속하길 희망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LNG발전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 30기 중 24기를 LNG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한태교씨(42)는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석탄취급설비 일을 하다가 폐지된다고 다른 지역의 석탄설비로 보내지 말고, 다시 교육을 시켜서 LNG발전소에서 일하게 하는 게 옳지 않나요? LNG에 있는 기계들을 정비하는 것도 정비업체에서 하는 거고 제어시스템도 제어과에서 하는 건데, 교육만 받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없애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없애겠다는 건데, 고용을 보장해 줘야죠.”

“고용 전환은 되는지, 어떤 재교육 받을지…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LNG·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기기 위해
재교육받는다고 해도 미래는 불투명
임금·복지 등 동일하게 유지 어려울 듯
 

석탄 노동자들이 LNG발전이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길 경우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야 관련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노동 전환을 위해 필수적으로 연구돼야 할 부분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연구하고 있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체발전소로 가도 오작동 등 기초매뉴얼에 대한 습득 기간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의 임금 수준과 비슷한 업무로 가려면 1년6개월 이상은 교육받고 배치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재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모든 이들이 LNG발전소로 갈 수는 없다. LNG발전에는 기존 석탄화력에서 일하는 인력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인력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탄발전소가 폐지된 지역에 LNG발전소가 그대로 들어서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인 이들의 고용 전환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사)정의로운전환을위한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충남연구원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 ‘탈석탄 예정지역 연구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했다. “연료환경설비 노동자는 석탄발전소에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 교육을 통해 LNG발전소에서도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러나 발전사 정규직과 달리 이들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전환 배치는 공기업 발전사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

사실 환경 측면에서 본다면 LNG발전은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LNG는 가스전에서 채취한 메탄을 액화시켜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 방식이다. 발전 과정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덜 하지만, 이를 위한 채취 과정부터 되짚어보면 온실가스 배출에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많다. 박지혜 변호사는 “가스개발 단계부터 비교해 보면 LNG발전의 탄소 배출량은 석탄화력발전과 비슷하다”고 했다.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남상무, 장성일, 이진길씨(오른쪽부터)가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권도현 기자

보령지역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남상무, 장성일, 이진길씨(오른쪽부터)가 보령석탄화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권도현 기자

■재교육받는다 해도 불투명한 미래 

운이 좋아 대체발전소로 옮긴다고 해도 ‘지금의 처우가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다른 직무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받던 임금은 깎일 가능성이 크고, 복지 수준도 담보할 수 없다. 당진화력에서 일하는 김씨가 말했다. “사람은 일정한 양의 금액을 갖고 생활할 것으로 계획하잖아요. 그런데 그 금액을 엄청나게 줄여가면서 다른 지역으로까지 가야 한다고 하면, 그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죠.”

노동자들은 재교육받을 준비가 돼 있다. 태안화력의 박씨는 “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하지만 재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지, 재교육이 취업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태안화력의 한씨는 “교육을 한다면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도 명확한 게 없다. 나한테 꽃꽂이를 가르치고, 화원에서 일하라고 할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진화력의 손씨도 말했다. “교육을 다 받았는데 취업이 안 되면 또 문제잖아요. 또 교육은 일을 그만두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요. 실업급여만 받아가면서 교육을 받기에는 생활이 힘들잖아요.” 김 연구위원은 “실업급여 외에 부족한 부분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실업급여에 준해 줄 것인지, 아니면 정의로운 전환 기금에서 줄 것인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정부 

충남도는 지난 2월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을 위한 조례를 공포했다. 2025년까지 100억원의 전환 기금을 조성해 산업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지역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충남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먼저 이런 기금을 조성한 이유는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28기가 충남에 있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는 충남의 지역경제와도 직결된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찾아 지역을 빠져나가면 그것 자체로 큰 타격이다. “10년 전쯤인가,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회식을 금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발전소 주변 식당 주인들이 와서 회식 금지 취소하라고 시위를 했어요. 발전소 노동자들이 없으면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거예요.” 신보령화력의 남씨가 말했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지자체의 노력은 아직까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지자체에는) 기대를 못해요. 실사한다고 발전소를 오거든요? 그럼 ‘깨끗한 곳’만 가요. 실제로 저희가 일하는 공간은 정말 더럽고 힘든데, 그런데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김용균씨 사고 이후에 잠깐 왔다 갔을 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저희는 전혀 공감을 못하겠어요.” 태안화력의 박씨가 말했다.

지자체보다 더 힘 있는 곳’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다뤄주길 바라기도 한다. “지자체는 서로 눈치를 볼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곳이 뭔가 할 때까지 기다릴 것 같아요. 먼저 했다가 몰매 맞는 건 피하고 싶을 테니까요. 지자체의 파워가 얼마나 있는지도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정부와 입장이 다르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자체장인가, 아닌가가 중요해질 것 같아요.” 당진화력 김씨의 말이다.

‘대응이 늦다’는 지적을 받지만 노동조합은 나름대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노조는 최근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함께 비정규직 석탄 노동자 3600여명을 대상으로 현재의 전환 과정에 대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해 발표했다. 사실 노조가 아니라 더 풍부한 자원과 인프라를 갖춘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이다. “석탄발전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사회적으로 비판이 커지는 것을 보고 석탄발전이 오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던 거죠. 그런데 원래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이태성씨가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박낙호씨가 지난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태안화력 1호기는 2025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림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권도현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박낙호씨가 지난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태안화력 1호기는 2025년 폐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림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권도현 기자

■정의로운 전환이 되려면 

현장의 목소리 들어줄 ‘창구’가 절실
정부가 ‘공정한 전환’을 추진한다면
노동자들도 지원방안 논의 참여해야
 

‘전환의 당사자’인 석탄 노동자들이 보기에 지금까지의 상황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일단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줄 ‘창구’가 없다.

태안화력의 박씨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저희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어요. 이런 (인터뷰할)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저희 목소리를 내는 건 청와대나 광화문 앞에 가서 시위하는 그런 방법밖에 없고… 정부가 ‘공정한 전환’을 한다고 하면, 폐쇄되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를 정해서 같이 대화를 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항상 그림자인 거예요. 저희도 실체가 있고, 사람이고, 이 나라의 국민인데….” 이태성씨는 “옆에 있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해서 우리는 5조3교대도 감수할 수 있다. 줄어드는 임금을 전환 기금에서 일부 보상해주고, 재교육도 시키고, 그렇게 공정하게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식으로 ‘완만하게’ 갔으면 좋겠는데, 그냥 갑자기 폐지한다고만 하니까 불만이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오는 7월 산업 전환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이해당사자로서, 이 지원방안의 논의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이씨는 “정의로운 전환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으니, 사전에 촘촘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40600075&code=940702#csidx9e0ecfff944cc56bdca62073b0030f4 

백신 접종 99일째... 언론의 예측은 틀렸다

 접종률, 백신 수급, 예약률 모두 '청신호'... 11월 이전 집단면역 달성 가능 전망도

21.06.04 07:09l최종 업데이트 21.06.04 07:09l
 조선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자고나면 하나씩 차질 빚는 백신' 기사
▲  조선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자고나면 하나씩 차질 빚는 백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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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 중앙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문 대통령 약속한 모더나 백신, 공수표 될 우려' 기사
▲  중앙일보 4월 15일자 1면에 실린 "문 대통령 약속한 모더나 백신, 공수표 될 우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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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5일)이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지 딱 100일째다. 99일째인 4일 현재,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분위기는 암울했다. 백신 수급은 불안했고, 접종률은 낮았다. 백신 접종 한 달이 지나도록 인구 대비 1%대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부 목표였던 4월 300만 명, 6월 1200만 명 접종은 어림없어 보였다. 심지어 4월 7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논란으로 60세 미만 접종이 중단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11월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라는 지적과 함께 접종 계획을 현실적으로 수정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언론도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4월 말 화이자 2000만 명분 추가 도입, 300만 명 1차접종 목표 달성,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위탁생산 계약, 5월 27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60~74세 대규모 접종 시작, 잔여 백신 접종 열풍, 원활한 백신 수급 등...


언론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가 됐다. 
  
언론이 집단면역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근거는 '접종률과 백신 수급'이었다. 하지만 백신이 제때 들어오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백신 수급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상반응 관리만 잘한다면 괜찮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인구 대비 접종률은 13.1%로, 5월 27일부터 대규모 접종이 시작되면서 7일만에 5.3%p를 끌어올렸다. 6월까지 1400만명 접종이 무난한 분위기다. 오히려 정부는 접종 속도를 올려서 11월 이전 집단면역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얀센 예약 폭주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제1스포츠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제1스포츠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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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논란을 겪고 한국을 비롯해 유럽 다수 국가에서 접종 중단이 일어나면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 실제로 5월 대규모 접종까지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을 담는 기사는 반복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잔여백신 접종예약 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국민들은 줄곧 정부가 강조해왔던 아스트라제네카의 안전성을 믿었고, 접종예약 서비스를 이용했다. 

역시 '희귀 혈전'이 발생해 우려를 낳았던 얀센 백신 역시 대환영을 받았다. 미국으로부터 오는 100만회여분 중 일반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에게 공개된 백신분 90만회분이 18시간만에 예약을 마감했다. 

분명 '백신 보릿고개'였다. 4월 중순에는 그나마 300만 명 접종을 위해 한창 접종을 했지만, 5월 마지막주가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2차 접종에만 집중했다. 정부가 5월 14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공급된다고 밝혔지만, 예정대로 온다고 마냥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 발표대로 4일까지 2분기에 공급될 물량인 아스트라제네카 724만회분을 받게 된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700만회분중에 260만회분을 남겨두고 있고, 이 역시 6월 중에 순차적으로 공급받을 예정이다.

60~74세 접종 예약률 80% 육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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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5월 12일자 1면에 실린 <"아스트라 불신"...고령층 접종 예약률 예상치 밑돌아> 기사.
ⓒ 동아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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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1400만명 접종 목표에 가장 우려가 됐던 부분은 60~74세의 접종 예약률이었다. 그러나 2일 0시까지 77.7%로 정부의 목표치인 80%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갑 교수는 "무엇보다 내 친구가 맞았다는 것, 즉 사회생활이 비교적 활발한 60~74세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맞고 괜찮은 것을 보고 안심을 하게 된 것 같다"면서 "종교집회 등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크게 독려가 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역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자체가 좋은 신호다. 효과성과 안전성을 증명할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하지 않은 20%는 걱정스럽다. 20%를 접종 현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김준형 “우리가 먼저 미국에 대북제재 면제조항 요구하며 치고 나가야”

 국립외교원장이 말하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과제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은 이후 북한은 약 열흘 만에 비난 성명을 내놓았는데,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국내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은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수차례 언급해왔다. 실제로 북한은 비난 성명에서 한미 정상의 대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겨냥하지 않고,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만을 문제 삼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로 비난했다. 김 원장은 2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최근 나온 북한 반응을 두고,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우리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올 불쏘시개를 선제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북한이 오랜 기간 고심하다가 ‘조선중앙통신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 명의로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위가 생각보다 높지 않고, 명의자(직급)가 낮았어요.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거죠. 보통 북한은 비난할 때 비난 성명이 빨리 나오거든요. 그래서 반응 나오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민이 깊었다는 것이고, 수위는 (빨리 나올 때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성을 과거에 보였습니다.

결국 이렇게 볼 수 있죠. 한미 정상회담에서 결정적인 ‘불쏘시개’는 없었지만, 북한 반응에서도 결정적인 ‘소화기’는 없었다는 겁니다. 불을 꺼버리는 소화기는 없었다는 거죠. 결국 다시 이후의 후속 조치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지난주 한반도평화포럼 토론회에서 예상했던 부분과 거의 일치합니다.
“제가 북한 반응 나오기 전에 언론에서 했던 이야기가 뭐냐면, ‘비판을 안 하고 지나가긴 힘들 거다’라는 것이었어요. 왜냐면 (한미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원하는 핵심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당 부분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완전히 판을 깨는 정도의 비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행간을 읽어야 하고, 수위를 봐야 한다고 했죠. 그리고 세 번째가 ‘누구 명의로 나오느냐’는 것이었죠. 다만 ‘이슈’ 부분은 확실히 좀 예상 밖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원장은 26일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의 토론회에서 “북한은 지금까지 해온 얘기들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환영한다’는 얘기가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문제는 수위 부분에서 여지를 남기는지, 헹간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관측했었다.

- 북한이 그동안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미사일 지침 해제’를 비난했는데, 왜 하필 그걸 꺼내들었을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본질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그걸 거절하거나 찬성해야 되는 것이 따라오잖아요. 그렇게 되면 자기들의 고민을 우리 쪽이나 미국 쪽에서 오해해서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오히려 다른 이슈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 ‘미사일 지침’이 북한과 아예 무관하다고 볼 순 없지요?
“네. 북한 쪽에서 보면 한미 군사력(증대)이 자기들한테 적대시가 되고, 그 적대시 정책이 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였으니깐요. 결국 큰 틀에서 보면 그런 군비경쟁이라는 부분을 치고 들어간 것 같고, 그다음 남북 간 군사합의 문제도 있고요. 또 그것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미사일 문제는 국내에서 나오는 것처럼 중국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좀 들어갔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와 관련해 “미국이 남조선 미사일 족쇄를 풀어준 목적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군비경쟁을 더욱 조장해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데 있다. 이와 함께 남조선 미사일 사거리를 늘려주는 대가로 우리 주변 나라들을 겨냥한 중거리미사일 배비(배치)를 합법적으로 실현해보려는 것이 미국의 속심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 북한이 매우 강경하게 나올 여지는 없었을까요?
“북한이 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해왔잖아요? 그 적대시 정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재고, 다른 하나는 군사적 압박이죠. 만약 (한미가) 북한 체제 안전 보장에 관한 부분을 건드렸다면, 아마 북한에서는 ‘더이상 의미 없다’, ‘대화에 나오지 않겠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으로 대표되는 ‘실용적 접근법’ ‘최대유연성’을 두고 ‘권모술수’라고 한 문장 비판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정상회담 전체를 언급했다고 보긴 어렵고, 오히려 ‘우리에게 위협이 되니 빨리 해결하라’는 소리로 들릴 수 있죠.”

남북미 대화 복원을 위한 출발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 중 희망적인 부분은, 바이든 정부가 2018년 트럼프 정부 때 남북 간 판문점 선언과 북미 간 싱가포르 성명을 추인했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대결 구도와 전쟁 위협 제거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완성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싱가포르 성명에서 북미는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약속했다.

김 원장은 최근 펴낸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에서 판문점 선언에 대해 “강대국 이해관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담겼다. 길잡이를 넘어 당사자라는 인식을 담아 평화를 주도할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길을 선택했다”고 했고, 싱가포르 성명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불신의 구조를 뒤로하고 비핵화와 평화의 새판 짜기를 위한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현 단계는 최소한 2019년 ‘하노이 노딜’ 이전의 상황까지로 복원된 상태다. 따라서 남북미 모두 교착상태가 더욱 고착화될 경우 자칫 폐기될 가능성도 있었던 과거 합의들을 구체적인 약속과 실천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을 모두 안고 있다. 한미가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고, 북한은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 답한 상태다. 다만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서 미국의 대북 대화 긴급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 미국은 대화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급하게 하진 않겠다’는 것 같습니다.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성명, 한반도 비핵화 등 인풋들이 다 들어가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실제적으로 타임라인이 안 나와 있고, 타임라인을 당길 수 있는 긴급성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거죠. 물론 그것까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미국이 한국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양보 조치를 선제적으로 던진다는 건 지나친 기대였을 수 있어요.”

김 원장이 강조하는 건 한국 정부의 선제적 역할론이다.

-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요인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 정부가 1년도 안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급한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느긋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단 북한 문제보다 우선순위에 놓인 과제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북한 문제는 풀기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거든요. 그것과 동시에 풀어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왜냐면 문제를 풀려면 먼저 양보 조치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결국 급한 쪽에서 첫 단추를 끼우거나, 실질적인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고 했잖아요. 그건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불쏘시개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죠.”

- 결국 그 ‘불쏘시개’가 무엇일까 했을 때 염두에 둘 건 무엇일까요?
“북한은 미국이 모든 걸 한 방에 줄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자기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보다 미국이 주는 것들이 대부분 후반부에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아요. 그러다 보니 북한이 그동안 미국에 요구했던 게 뭐냐면, ‘우리가 뭔가를 포기할 수 있는 정도의 신뢰를 보여달라’는 것이었어요.

- 북한의 대미 신뢰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북한이 지금까지 제시했고, 또 테스트하고 싶은 건 세 가지에요. 군사훈련과 종전선언, 그리고 제재완화죠. 일단 북한이 보기에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안 지켰다고 보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군사훈련이 이슈가 되고 있죠. 그리고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전된 생각을 내놓거나 해야죠.”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 결국 핵심적인 사항인 대북 제재 부분에서도 우리가 밀고 나가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미국은 제재 완화라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요. 또 북한에 먼저 제재 완화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전체 제재 체제가 붕괴될 수 있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그걸 우회할 수 있어요.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먼저 제재 완화를 꺼내는 것보다 한국이 요구해서 항목별로 예외조항을 두는 건 덜 부담스러울 수 있죠. 그리고 미국이 말한 남북 대화와 협력 지지를 근거로 해서 미국에 대북 제재를 면제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거죠. 결국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실질적으로 북한에 도움이 되는 걸 줄 수 있게 제재면제조항을 만들어낸다면 북한이 우리를 다르게 보죠.

그러기 위해선 북한이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돼요. 북한이 본질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 구분해서 이야기하지만, 본질적인 것만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비본질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있겠죠. 예를 들어 김정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양 종합병원에 의료기기를 지원한다든지, 이런 건 북한에서도 확실히 요구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하반기에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든지, 개성공단·금강산 문제나 인도적 지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을 거고요. 평화조약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이죠.”

“내년 초 하노이 3주년 즈음 북미 정상회담 성사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즉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면 일단 물밑에서라도 남북 접촉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통일부장관)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은 최근 한 언론사 대담에서 “정부가 6월 상순 중으로 남북 사이 특사(급) 판문점 (물밑)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문정인 이사장은 ‘6월이 골든타임’이라고 했습니다.
“5월에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나왔고, 북한도 대북정책 리뷰를 봤겠죠. 그렇다면 서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절차, 넥스트 스텝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아무것도 없이 또 한 달이 지나가면 다시 관리 수준으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으니깐요.”

- 먼저 연락해서 접촉을 하든지 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알기로는 한미 간에 각층에서 꾸준히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과 관련해 북한에 제안할 게 있으면 제안할 것이고요. 그렇다면 북한도 반응의 수준이 있겠죠. 우리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반응했을 때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미국의 경우도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 조치 다음에 해줄 것을 미리 얘기할 수가 있죠. 당신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조치를 하면 제재에 대해 어느 정도 (풀어줄) 용의가 있다든지, 이런 신호는 서로 주고받아야 (협상안이) 맞춰지는 거니깐요.”

- 내용상 공개적인 만남은 어렵겠습니다.
“비핵화 조치나, 재제 완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비공개 회담이라고 생각해요. 상당한 밀당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실무접촉 내용이) 생중계되듯이 진행되는 건 하노이 때 등 여러 경험들에 비춰봤을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 그런 절차가 큰 무리 없이 진행된다고 했을 때, 북미 정상 만남 시기를 예측해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부터 북한하고 조율을 한 다음, 하반기에 북미 실무접촉이 비공개로 본격화돼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가능하다면 이르면 올해 말, 내년 초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합의안을 추인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겠죠. 하노이 3주년이 되는 시기가 제일 좋은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다른 중요한 변수, 8월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어떻게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완전히 안 하는 건 미국 쪽이 싫어할 거고, 원스케일대로 하면 북한을 완전히 자극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2월 수준에서 꼭 필요한 부분으로만 규모를 축소해서 하는 방안이 있을 겁니다.”

“동결론+영변 합친 ‘하노이 리패키지’로 간다면 굉장한 성과”

한미 정상회담으로 인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최소 요건은 충족됐지만, ‘하노이 노딜’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노이 노딜’의 여파는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일부 완화를 맞바꾸는 ‘스몰딜’을 버리자, 미국 정치권이 일제히 그 선택을 지지했다. 이후 볼턴 등 강경파들이 대북정책 주도권을 잡았다. 나아가 ‘리비아식 빅딜’, 즉 선제적 비핵화를 요구하며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결렬됐던 교환조건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결과라고 보고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 북한의 조치는 비가역적인데, 미국의 상응 조치는 가역적입니다. 불균형 문제가 존재하는데요.
“북한이 계속 불만인 게 그런 겁니다. 그래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제재 완화를 한번 교환해봄으로써, 미국을 믿을 수 있는지 가늠해보겠다는 것이었죠.”

- ‘단계론’이요?
“그렇죠. 그 원리가 그대로 작동했던 게 이란 핵합의,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잖아요. 10년 간 두고 봐서, 서로 믿을 수 있으면 비핵화로 가는 것인데, 하노이는 그 모델 그대로 갖고 있다고 봐요. 그걸 했던 사람들이 지금 다 바이든 정부였고, 그리고 그들이 대북정책을 리뷰하면서 단계론을 받았단 말이에요.”

- 하노이로 돌아가서 다시 뭔가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보시는 거네요?
“굉장히 가능한 이야기죠.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중간단계론이 하노이 때 거의 손안에 잡혔다가 사라진 것이거든요. 일단 영변에서 비가역적 비핵화가 이뤄지면 그게 성과잖아요. 지금까지 있었던 말뿐인 약속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죠. 그런 면에서 하노이 리패키지는 최고의 카드라고 생각해요.”

- ‘리패키지’면 그때보단 교환조건이 더 들어가게 되는 겁니까?
“하노이에서 북한이 가져와서 최선희가 들이밀었던 ‘노란봉투’에 북한이 더 양보할 뭔가가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 생각해보니 ‘동결론’이거든요. 핵시설 돌리고 있는 걸 일단 정지하는 것과 영변 폐쇄를 합치는 것. 그리고 미국도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북한의 체제보장에 관한 불가침 선언, 종전 선언, 평화조약 이런 것들을 모두 합쳐서, 하노이 때가 ‘스몰딜’이었다면 ‘미디엄딜’ 쯤으로 리패키지한다면 굉장한 성과라고 봐요.”

- 미국으로선 쉽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나 원샷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갖고 있는 위협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위협감소’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비핵화가 최종적 목표가 되는 건 맞지만, 위협감소를 중간단계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실제적인 예가 바로 동결입니다.”

"북 당규약 개정, 남북대화에 긍정적 영향 줄 것"

 

[기고] 제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유영구

  • 기자명 유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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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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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06.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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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
 

유영구 /  전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저자

 

북한은 지난 1월 9일,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 5일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개정된 당 규약은 공개되지 않았고, 최근 [한겨레] 단독보도 이후 확인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지난 1월 9일,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 5일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개정된 당 규약은 공개되지 않았고, 최근 [한겨레] 단독보도 이후 확인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의 5일째 회의가 진행 중이던 1월 9일 결정서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 대하여》를 채택했다. 이 결정서는 1월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는데 개정 당규약(이하 제8차 당규약)의 전문(全文)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이하 제7차 당규약)과 마찬가지로 공개되지 않았다.

제8차 당규약이 최근 국내에 입수된 가운데 몇 대목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로동당규약은 당의 지도사상, 노선과 정책을 기본으로 하여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고 세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해석상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밝혀보고자 한다.

서문, 김일성-김정일주의 부각

첫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에 관한 규정이 삭제되고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부각된 점이다. 조선로동당은 이념정당이고 지도사상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이기 때문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문의 첫 네 문장은 당규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①“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이다.” ②“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전일적으로 체계화된 혁명과 건설의 백과전서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투쟁 속에서 그 진리성과 생활력이 검증된 혁명적이며 과학적인 사상이다.”(지도사상)

③“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들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수반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이다.”(당의 정치적 기반. 수령은 김일성․김정일, 수반은 김정은 지칭) ④“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당의 성격)

제7차 당규약 서문에는 제8차 당규약 서문의 ①과 ③ 사이에 ‘당의 창건자’‘영원한 수령’인 김일성 주석, ‘당의 상징’‘영원한 수반’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당의 강화 발전과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이끄는 ‘영도자’ 김정은 당위원장의 업적에 관한 긴 문장들이 이어져 있었다.

이 업적 서술을 제8차 당규약에서 제외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의 승계’와 업적을 당규약에서 상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 안팎과 국내외에서 충분한 ‘인증’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7차 당대회와 제8차 당대회 사이의 5년 간 일어난 일에 대한 당중앙의 총화(결산)의 측면이다. 이 기간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와 확대회의,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와 확대회의 등이 빈번히 열렸고(거의 정례적이라 할 만큼), 그 내용의 일부가 공개되는 등 당의 제도적 운영이 자리를 잡았다.

당의 제도적 운영이 안정화된 여건에서 ‘수령들’의 업적을 내세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된다. 당의 운영에서 볼 때 ‘오늘의 현안’이 중요하고 당의 지도사상(김일성-김정일주의)과 노선이 더욱 중요해진다.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②문장을 제외한 각 문장의 ‘주어’를 조선로동당으로 한 것은 ‘제도화된 당’을 중시한다는 방증이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 수행’ 삭제

둘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 수행’을 삭제하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변경한 점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 ’북 주도의 혁명통일론의 폐기‘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 것과 관련해 짚어 봐야 할 점이 있다. 일단 이 부분의 전체 문맥을 보자.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①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며 ②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③최종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번호 표시는 필자)

①에 대해 제7차 당규약에서는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며”라고 되어 있었다. ‘사회주의강성국가’라는 표현을 버리고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라는 표현을 채택한 것이다. ‘강성국가’를 삭제하고 ’실천 가능한‘ 사회주의사회를 만들겠다는 미묘한 변화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진다.

②에서 ‘전국적 범위에서’는 남북한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전국적 범위에서’가 과거에는 ‘국토완정론’의 입장에서 언급됐던 것이지만 지금은 ‘시대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남북한은 두 개의 사상과 제도를 지닌 민주공화국이 ‘정치적 실체’로서 존재하고(대한민국은 자유주의 민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민주공화국), 두 국가에 의거해 점진적 평화통일(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성에 기초한 통일 노력=6.15남북공동선언)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남한의 연합제 안을 둘러싸고 ‘남북연합’과 ‘국가연합’의 논의가 남아 있지만, 남한에서 국가연합을 계속 주장할 경우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서 그 접점을 찾으려고 할 수 있다.

②에 대해 제7차 당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라고 되어 있던 것이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로 바뀌었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시정방침의 둘째 항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나라의 전 지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민주주의를 실시하며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제안이 나올 때 북한은 ‘무력통일’ 노선을 사실상 포기했지만 당규약에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또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남겨놓음에 따라 남한에서 북측의 의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국가보안법은 도대체 왜 폐기를 안 합니까? 우리도 남쪽에서 제기하는 옛날 당 규약과 강령을 새 당대회에서 개정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이런 합의를 감안하면 북한의 제8차 당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을 삭제한 것은 앞으로 남북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일찍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남쪽 사회에서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를 둘러싼 사회구성체 논란을 남겼다. 남한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으로 인한 정치군사적 종속상황이 남아 있다고 해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시대는 아니라는 인식이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변경함으로써 ‘혁명’을 제거했다. 제8차 당규약은 남한에서의 ‘혁명’을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여전히 남겨 놓고 있다. 자주에는 ‘반미(반제)자주’가, 민주주의에는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더 나은 민주주의’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제7차 당규약 서문에서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제8차 당규약에서는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며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와 ⓐ는 표현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다. ㉯와 ⓒ에서는 ‘미국의 지배’를 분리했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가 새로 추가됐다(‘경제적 지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시대변화에 따른 것이다).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은 북한의 첨단 전략무기 개발에 따라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변화를 감안해 제8차 당규약에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가 삭제된 것은 북한이 남한 내부의 정치투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남북한이 줄곧 합의해온 ‘내정불간섭’의 원칙). 새로 들어간 ⓓ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기 위해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겠다는 것은 최첨단 전략무기의 개발능력과 그 향상에 자신감을 보인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8차 당대회 이전과 이후(엄밀히 말하면 《화성》계열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북극성》계열의 지상․수중발사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2017년 이후)의 근본적인 차이를 감안해 이 대목을 추가한 것이다. 핵무력 완성과 전략무기 개발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계속 강조해온 것을 당규약에 반영한 것이다.

㉲와 ⓔ의 차이는 제8차 당규약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고”라고 함으로써 평화통일을 향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와 ⓕ의 차이는 ‘민족의 공동번영’이라는 남북한의 ‘합의적 표현’으로 바꾸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 바탕에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당연히 내재되어 있다. 이상의 전체를 관찰해야 제8차 당규약 서문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7차 당규약의 당원의 의무에서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 투쟁해야 한다”는 대목이 제8차 당규약에서 삭제됐다고 주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당원의 의무에서 삭제됐지만 사실상 위의 ⓔ에 반영됐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짐작컨대 조국통일 주제가 당원들의 일상적인 의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자리로 이동 배치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③과 관련하여 제7차 당규약 서문에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고 되어 있었다.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는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자주성 실현’에서 ‘공산주의사회 건설’로 바뀐 것은 심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지난 4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0차 대회 등의 정치행사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언급이 잦았다. 이를 감안하면 김정은 당 총비서를 위시한 당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들은 ‘공산주의사회 건설’의 꿈(최종목적)을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심히 살펴보면 제8차 당규약 서문에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하여 투쟁한다”가 새로 추가됐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 발전단계론과 관련하여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선군정치와 병진노선 사라져

셋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로 규정함에 따라 ‘선군정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에 연동하여 ‘자주, 선군, 사회주의의 노선과 원칙’은 ‘노동계급적 원칙, 사회주의적 원칙’으로 바뀌었다. 김 총비서의 집권 초기의 정치노선이었던 ‘자주․선군․사회주의의 노선’은 10년이 안 되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넷째,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이 삭제되고 ‘자력갱생의 기치 밑에 경제건설을 다그치고’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이 채택된 이래 2018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병진노선의 삭제는 당연한 일이었다.

201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재편성이 채택된 것을 반영하여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 ‘자력갱생의 기치 밑에 경제건설을 다그치고’라는 표현으로 변경한 것이다.

병진노선을 삭제한데 따라 국가방위력과 관련해서도 변화가 있었다. “공화국무력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부단히 강화하고 자립적 국방공업을 발전시켜 나라의 방위력을 끊임없이 다져나간다”는 문장을 당규약 서문에 첨입했다. 제7차 당규약의 ‘혁명무력’을 제8차 당규약에서 ‘공화국무력’으로 수정할 정도로 당규약 개정은 과거에 비해 국가를 중시한다. 이것은 ‘공화국’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한편, ‘혁명무력’이 ‘무력혁명’을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섯째, 제7차 당규약 서문에 “전 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고 되어 있던 것에서 제8차 당규약 서문에서는 이에 더하여 해외동포의 권리․이익 보장과 그들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다. 해외동포들이 “조국의 통일발전과 융성번영을 위한 길에 적극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 그 표현이다. 융성번영은 ‘민족의 공동번영’과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에 해외동포들이 기여해야 한다는 담론으로 읽힌다.

제1비서 신설, 아직 공석인 듯

여섯째, 당의 중앙조직에서 다섯 가지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1)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위원장을 추대한다”(제23조 4)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를 선거한다”(제23조 5)로 바꾸었다. ‘추대’를 ‘선거’로 바꾼 것이 실제로는 차이가 없겠지만(‘만장일치에 의한 찬성 선거’일 것이기 때문), 당규약에서 이처럼 바꾼 것은 조선로동당이 민주집중제에 의한 민주주의적 절차를 수행한다는 것을 내외에 보여주려는 면이 있다.

당 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규정하던 것(제7차 당규약 제24조)에서 당 총비서를 ‘당의 수반’으로 전환한 것(제8차 당규약 제24조)도 같은 맥락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당 위원장은 “당을 대표하며 전당을 영도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당 총비서는 “당을 대표하며 전당을 조직영도한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도’와 ‘조직영도’의 차이는 가볍지 않을 수 있다.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2)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중요한 사업으로서 제7차 당규약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선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 선거 △정무국 조직 △당중앙군사위원회 조직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선거 등을 들고 있다(제26조). 이에 비해 제8차 당규약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선거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 비서들 선거 △비서국 조직 △당중앙군사위원회 선거 △당중앙검사위원회 선거 등이었다(제26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조직하는 대상 가운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비서로, 정무국이 비서국으로,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가 당중앙검사위원회로 각각 변경되었다. 그런데 비서들 외에 ‘제1비서’를 선거한다는 새 규정이 있었고 제1비서는 “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라는 규정이 붙어 있었다(제8차 당규약 제26조).

제8차 당대회 기간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전원회의(1월 10일)에서 선거된 인원들(발표)에는 분명 ‘제1비서’가 없었다. 이것으로 보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이후의 어느 전원회의에서 ‘제1비서’를 선거할 수 있을 것이다. 총비서는 ‘전당의 조직영도’ 권한을 갖고 있으니 ‘대리인’도 그러한 권한을 대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리인’ 규정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제1비서와 비서들, 비서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당중앙검사위원회 등의 선거 및 조직에 관한 규정과 같은 조항(제26조)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제1비서는 김정일 총비서를 ‘영원한 총비서’로 모시고 김정은 자신은 제1비서로 낮추었던 때(2012년 4월~2016년 5월)와는 명백히 다르다. 그 당시에는 제1비서가 ‘최고영도자’였고 지금은 “당 수반인 총비서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조용원 조직비서와 같은 최측근의 제1비서 임명 등에 관한 일각의 추측보도는 틀릴 수 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제1비서를 선거했을 것이고, 최근의 ‘공개방식’에 따라 공개됐을 것이다. 조용원은 조직비서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이 직책의 성격상 업무가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

그를 김정은 총비서의 업무와 권한을 대리할 ‘대리인’으로 지명하려면 조직비서를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당은 조용원 조직비서, 국가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군은 리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이다. 이렇게 진용이 짜여져 국정을 운영하는 여건에서 총비서의 ‘대리인’인 제1비서를 선거하게 된다면 다른 인물을 생각하고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북한의 역사를 돌아보자. 1974년 2월 김정일 조직비서가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당은 거의 전적으로 김 조직비서가 담당했고 김일성 총비서(국가주석)는 국가와 군대를 담당했다. 1975년 이후에는 김정일 조직비서가 군의 당조직(인민군당위원회와 그 집행기관인 총정치국)을 통해 군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는 김정일 조직비서가 김일성 총비서의 ‘후계자’로 추대된 상황이었다. 김 주석이 62세의 나이로 환갑을 넘겼고 김 주석과 김 조직비서는 30세의 연령 차이가 난다. 지금은 ‘후계자’를 운운할 시기가 아니고 ‘잠정적 후계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북한에는 ‘2인자’의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제1비서가 누구든지 2인자가 되는 순간, 혹은 되려는 순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따른 엄청난 비판과 공격에 직면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1비서는 말 그대로 ‘총비서의 대리인’이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김정은 총비서 밑에 당․국가․군대의 각 책임자를 두고 있으면서도 새로 제1비서의 규정을 당규약에 신설한 것은 당․국가․군대의 전체 업무를 당 총비서와 ‘함께’, ‘대신하면서’ 수행할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중앙당에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국가․군대의 국정 전반을 세밀하게 총괄하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제1비서 제도를 생각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제1비서를 신설하는 당규약 개정 과정에 중앙당의 조직지도부를 비롯해 여러 부서에서 의견을 제출하고 김정은 총비서를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했을 것이다.

‘백두혈통’의 젊은 지도자 김여정 당 부부장 혹은 제3의 인물, 또는 조용원 조직비서 등을 적절한 시기에(앞으로 5년 안에, 혹은 그 다음 5년 안에) 제1비서로 선거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비서가 ‘2인자’나 ‘후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1비서로 선거된 인물이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교체될 것이다. ‘제1비서 제도’의 기능이 예상처럼 효율적이거나 원활하지 못하면 다음 제9차 당규약에서 제1비서를 삭제할 수도 있다.

(3)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조직’에서 ‘선거’로 바뀌었는데 그 의미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서들을 선거한 뒤에 비서국을 조직하는 것과 달리,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선거하는 것으로만 규정되어 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대하여 제7차 당규약에서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 군사분야에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당적으로 조직 지도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제8차 당규약에서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의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다”라고 표현했다. 당 총비서가 위원장인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지금까지도 실질적으로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는데 굳이 이 표현을 당규약에 새로 포함시킨 데에는 필시 그럴만한 사유가 있음직하다.

군의 당조직과 관련하여 총정치국은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로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한다”는 규정(제7차 당규약 제50조)에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한다”는 부분이 제8차 당규약에서는 삭제됐다. 이것은 총정치국은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라는 규정으로 충분하기 때문이고, 총정치국은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다’고 하기 보다는 “도당위원회 기능을 수행”하는(제8차 당규약 제48조)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이기 때문이다.

(4) 제8차 당규약 제26조에서 “당중앙위원회의 부서(비상설기구 포함)를 내오며 필요한 경우 당규약을 수정하고 집행하며 당대회에 제기하여 승인을 받는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당중앙위원회에 부서 설립에 따른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한다.

정치국 상무위원회 권한 강화

(5)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별개 조항(제27조)으로 독립될 정도로 중요성이 커졌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시급히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며 당과 국가의 중요간부들을 임면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군사적으로 시급히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의 결정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은 정치국회의를 사회할 수 있다”는 내용이 같은 조항에 포함됐다. <조선중앙통신>이 1월 10일 보도한 당 결정서에 따르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관한 새 조치는 “당수반의 혁명영도를 더욱 원만히 보좌하며 당 사업과 당 활동을 보다 민활하게 진행해나가기 위한 현실적 요구를 구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총비서를 제외한 4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 즉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이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가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정치국회의를 사회할 수 있게 됐다. 정치국회의 사회는 지금까지 총비서의 고유권한이었다. 제도의 탄력적 운영과 당중앙위원회의 역동적인 활동을 예고하는 규정이라 할 수 있다.

당대회 개최의 5년 정례화 등 기타 사항은 생략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제8차 당규약 서문과 조항들에서 이전 당규약과 달라진 점은 여러 차원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특정 구절을 뽑아서 과잉 해석하다보면 전체 맥락에서 빗나갈 수 있다. 북한에서 당규약이 갖는 중요성과 정치적 비중을 고려해 신중히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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