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갑오와 을미사이 & 거짓과 진실의 사이

박근혜 정권의 조-조 코스프레는 실패했다
임두만 | 2014-12-31 12:56:0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구속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슈퍼갑질을 하고 그것을 무마하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을 장막 안에서 행사했던 댓가다. 또 장막 안에서 조현아씨의 갑질을 도우며 출세를 기도했던 고위직급의 두 남자도 같이 구속되었다.
1.이들의 구속을 지시한 서울 서부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인 김병찬 판사는 “혐의 내용에 대한 소명이 이뤄졌다”며 “사건의 사안이 중하고 사건 초기부터 혐의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볼 때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로써 비행기의 일등석에서 땅콩을 봉지 째 줬다고 화를 내며 승무원과 사무장을 욕하고 때리다가 화가 풀리지 않아서 기장에게 비행기를 돌리게 했던 슈퍼갑 여성은 감옥에 수감됐다. 그녀에게 적용된 죄명은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혐의였다.
사건이 불거진 뒤 “슈퍼갑은 잘못이 없고 마땅히 알아야 할 수칙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 매뉴얼도 숙지하지 못한 을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라며 당당하던 대한항공은 침통을 넘어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영장이 발부된 뒤 영장 집행에 응하던 날 밤 11시 경, 슈퍼갑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눈을 감은 채 “죄송합니”"라고 세 차례 말했다. 그리고 서울남부구치소로 가는 차에 올랐다. 누구도 법접할 수 없을 것 같던 슈퍼갑이 갑오년과 을미년의 사이 세밑을 감옥 안에서 맞게 된 것이다.
2.이른바 정윤회씨의 국정농단이 담겼다는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에 연루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조응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엄상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1일 새벽 “범죄 혐의 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이 기각된 뒤 검찰 청사를 나온 조 전 비서관은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고 생각하는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데 대한 심경을 말해 달라” 등 취재진의 질문에 “많이 피곤하다” “오늘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짧게 답한 뒤 자신을 태우러 온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영장을 기각 당한 검찰은 권력층이 그린 그림을 훼손시키면서 인상을 구겼다. 권력층의 사건 수습과정 전체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측근인 조응천 비서관과 그의 지시를 받는 박관천 경정 등이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정윤회씨를 모해하기 위하여 전혀 있지도 않은 일을 꾸몄다”는 것이 그림이었던 같은데 훼손된 것이다.
3.이 사안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아무리 권력자라고 거짓을 참으로 치환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킨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 경영진, 그 경영진에 종속된 고위직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권력을 마음껏 행사하면서 자신들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슈퍼갑임을 과시했다. 사건의 발생, 수습과정, 그리고 마지막 대외적 해명과정까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갑질에 대한 당위성을 강변했다.
하지만 진실을 요구하는 여론 앞에 이들의 조작과 강변은 통하지 않았다. 검찰도 법원도 진실을 요구하는 여론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의 최소 희생자로 이들 3인을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여론에 밀린 그들 슈퍼갑과 그냥갑들은 결국 그렇게 체면을 구겼다.
반면 또 다른 여론은 대통령 권력과 그 권력에 순응하려는 국가 소추권 대행자인 검찰에게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우리 국민들은 청와대라는 권력의 장막 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권력 투쟁에 대하여 알 수가 없다. 다만 역사의 교훈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특히 이 사건은 각종 언론들의 추측대로 대통령을 두고 벌어진 ‘물과 피’의 쟁투였으며, 이들의 은밀하고 추악한 힘겨루기가 어떤 식으로 벌어지는 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검찰은 자신들을 장악한 권력자가 그린 그림을 완성하고 전시하면서 큐레이터를 통해 그림을 설명하면 되었다. 그렇다면 관람객 대다수는 ‘그게 그렇구나’정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전혀 믿을 수 없지만, 설명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피카소의 이 그림은 이런 의미가 있다’고 큐레이터가 설명하면 ‘그렇구나’로 인식할 수밖에는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던 그림의 처음과 끝이 훼손된 것은 아무리 큐레이터가 설명을 잘해도 그 그림이 팔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결국 전시장 직원이 비토를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거짓을 참으로 치환하려는 작전이라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야 하는데 이 사건은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전시장 직원의 판단이 그림의 처음과 끝을 훼손시켜 버렸다.
4.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인 1594년(선조27년)이 갑오년이었는데 그해 조선은 극심한 가뭄으로 역사에 유래 없는 흉년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때 사람들이 너무도 배가 고파서 콩이 익어서 수확하기 전에 풋콩을 따다가 불에 구워먹으며 연명했다고 한다.
얼마나 흉년이었는지 조선왕조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숙종실록에 “갑오년의 흉년을 당하여 굶주려 죽는 사람이 날마다 쌓이므로, 선조께서 ‘먼저 죽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전교가 계셨는데...”라는 기록이 있다.
그 흉년 당시 풋콩을 구워먹던 관습 때문에 지금도 농촌에는 가을이 오기 전에 풋콩을 베어다가 구워먹은 관습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과거 케케묵은 얘기를 하면 곁에서 “갑오년에 꽁 까먹은 소리 작작하고…”라며 핀잔을 주므로 말을 막아버린다. “갑오년에 콩 까먹은 소리”라는 격언이 나올만큼 우리 역사에서 갑오년은 교훈으로 간직해야 할 기억이 많은 해란 얘기다.
가까운 예로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도 그렇다. 양반과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가 극심하던 때 결국 한 고을의 목민관이던 조병갑의 비리와 남형이 갑오농민혁명의 도화선이다. 그리고 120년 후 올해 갑오년도 역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해로 기록할 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 진실의 훼손…거짓의 횡횡…그런 기록들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필연적으로 갑오년이 가면 바로 을미년이 온다. 그 때문에 우리 역사는 또 을미년은 더욱 잊지 말아야 하는 교훈까지 남기고 있다.
국권을 침탈하려는 외국 군인들이 왕궁에 난입, 왕비를 죽인 사건이 벌어진 해도 을미년이다. 역사는 이를 ‘을미사변’또는 ‘명성왕후시해사건’으로 부르지만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은 ‘민비시해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갑오와 을미사이가 그렇다. 거짓과 참이 극명하게 갈리던 시기이다. 양반과 관리들이 민중들에게 극심한 착취도 모자라서 극한 형을 때리며 괴롭히던 남형들을 일삼았는데, 그 끝은 민중의 혁명이었으며 종래 권력의 패망이었다. 그 패망의 징조는 그리고 언제나 바로 뒤에 왔다. 갑오민중혁명 뒤에 을미사변, 이어진 국권찬탈…이게 19세기 말의 우리 역사다.
우리는 21세기인 지금 갑오와 을미 사이에서 거짓과 참을 그대로 목격하고 있다. 참을 거짓으로 치환하려던 한 재벌가 딸의 일탈은 재벌가 전체와 우리 사회의 갑들을 진면목을 보여줬다. 그러고 끝내 당사자는 감옥으로 갔다.
반대로 권력자의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참을 거짓으로 치환하고 싶은 검찰의 기도는 그나마 남은 판사의 법치주의 정신에 따라 좌절되고 있다. 그래서다. 거짓과 참의 사이…참과 거짓 사이…갑오년과 을미년의 사이 마지막 날, 나는 이 절절한 교훈 앞에서 옷깃을 여민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228 

홍방울새 떼지어 눈터널 만들며 논다


조홍섭 2014. 12. 30
조회수 2937 추천수 0
모이통서 배 채운 뒤 눈 바닥에서 한 마리가 하자 모두 따라 해
먹이 찾거나 추위 대피도 아닌 그저 재미로…다른 동물도 놀이 흔해

dn26726-1_300.jpg» 보송보송한 눈 속을 홍방울새들이 뚫고 다니며 만든 고랑과 터널 모습. 사진=베른트 하인리히

개나 고양이가 아닌 야생동물도 장난을 좋아한다. 무슨 보상이 따르는 행동이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까마귀 가운데는 눈 비탈에서 몇 번이고 미끄러져 내리는 행동을 하는 종류가 있다. 재갈매기의 일종은 조개를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려 먹는 재주가 있는데, 종종 땅에 떨어지기 전 공중에서 낚아채는 놀이를 한다.

Acanthis_flammea,_Kotka,_Finland_3.jpg» 홍방울새. 북극 주변에 서식하며 한반도에도 겨울철 찾아온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북극과 툰드라에 주로 서식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에 관찰되는 홍방울새는 색다른 놀이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눈 속에 고랑이나 터널을 뚫으며 노는 것이다. 

베른트 하인리히 미국 버몬트대 명예교수는 메인주의 오두막에서 모이통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홍방울새 무리가 특이한 행동을 벌이는 것을 관찰했다. 모이통에서 해바라기씨를 배불리 먹은 홍방울새들이 눈 바닥에 내려와 뛰어다녔다.  

f01_n45.jpg» 모이통에서 먹이를 먹고 주변 눈 바닥에 내려앉은 홍방울새 무리. 사진=베른트 하인리히

그러다 한 마리가 갓 내린 보송보송한 눈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가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다른 새들도 비슷한 동작을 따라했다.  

눈밭에는 두더지 떼가 출몰한 것처럼  수많은 고랑과 터널이 생겼다. 새들이 만든 흔적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인리히 교수는 과학저널 <노스이스턴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홍방울새의 이런 행동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2년부터 두 번의 겨울 동안 4번 보았을 뿐이다. 100여 마리가 나흘 동안 252개의 터널과 고랑을 만들었다. 폭과 깊이는 5㎝, 길이는 6~20㎝ 정도 됐다.

red1.jpg» 홍방울새들이 눈밭에 남긴 고랑과 터널 모습. 사진=베른트 하인리히 

홍방울새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눈 속에 아무런 먹이도 없고, 모이통에서 두둑이 배를 채운 뒤여서 먹이를 찾는 행동은 아니다.  

관찰 당시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이었다. 그러나 새들은 밤에 숲으로 자러 갔기 때문에 눈 속에 대피소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새들은 눈 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목욕하는 동작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고개를 반복해 들어올리거나 몸을 털고 깃털을 다듬는 핵심적인 동작은 하지 않았다. 또 눈이 축축한 날에도 터널 파기를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교수는 이 모든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홍방울새가 놀이를 한다고 추정했다.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남들이 하니 따라 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런 행동이 북극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몹시 추운 날 눈 속에 들어가면 체온을 지킬 수 있다.  

단,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 뒤쥐 같은 천적을 만나거나 젖은 눈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 눈 속에 갇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그렇게 춥지는 않은 메인주에서 홍방울새는 눈 속에서 잠을 청하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rnd Heinrich, Redpoll Snow Bathing: Observations and Hypothesis, Notes of the Northeastern Naturalist, Issue 21/4, 2014, http://dx.doi.org/10.1656/045.021.040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김무성에게 무릎까지 꿇었다, 이유는 단 하나


14.12.30 21:51l최종 업데이트 14.12.31 10:3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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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지난 5월 9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한 부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잠들어 있다.
ⓒ 권우성

"저희들에게 2014년은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한 해예요. 그저 악몽이었으면 싶은, 지금 이 모든 게 슬픈 꿈인 것만 같은…. 차라리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어요. 그러나 죽어야만 이 꿈에서 깰 수 있겠죠." (단원고 2-4 고 박수현군 아빠, 박종대씨)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부모들은 기다리고, 울부짖고, 화를 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로 인해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이 희생·실종되는 등 승객 304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아래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를 2014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선정 공모를 알린 뒤, 댓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독자들이 투표를 종합한 결과다. (관련기사 : 당신이 뽑은 '올해의 인물'은 누구입니까?)

2014년, 독자들은 세월호 유족들의 소식에 가장 많이 공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단연 떠오른다(ID: ismd***)", "단원고 학부모들과 생존학생들(ID: 배**)" 등 누리꾼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올해의 인물'로 꼽았다. 한 누리꾼은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분들을 추천하고 싶다"며 이모티콘으로 검은색 추모리본을 달기도 했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이 중심이 된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는 '올해의 인물' 선정 소식에 감사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함을 전했다. 아들 고 전찬호(18)군을 잃은 전명선 유가족 대책위 위원장은 "세월호 사고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사였다"고 단언했다. 박수현(18)군을 떠나보낸 박종대(대책위 진상규명분과부위원장)씨도 "2014년은 없어졌으면 하는 해"라고 말했다.

유족들 "삶이 바뀌어버린 한 해", 그래도 전국 다니며 특별법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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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사진 좌측)씨와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사진 우측)씨가 나란히 걷고 있다. 이들은 7월 초부터 38일간 무게 5kg 십자가를 짊어지고, 1900리 도보 순례길에 나섰다.
ⓒ 김종술

사고 초기 나온 '전원 구조' 오보, 해경의 "최선을 다해 실종자들을 구조하겠다"는 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언까지. 부모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불신과 배신의 연속"이라고 평가했다. 국가와 언론, 사회 모두에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박 부위원장은 "삶 전체가 바뀌어버린 한 해"라고 말했지만,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고 나서 그저 슬퍼만 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전국 서명 운동에 나섰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생전 속해있던 반 별로 나뉘어, 각 반마다 반대표·부대표를 뽑았다. 대책위를 꾸려 위원장 등 집행부를 선출했고, 지금까지도 매주 회의를 하고 있다.  

일부 유가족은 참다못해 박 대통령에게 "내 아이가 언제, 어떻게, 왜 죽었는지를 알려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38일간 무게 5kg 십자가를 짊어지고, 1900리 도보 순례길에 나선 아버지들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40일 넘게 단식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박 대통령은 뮤지컬을 관람해 구설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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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 앞에 무릎 꿇은 세월호 유가족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린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를 타고 떠나려하자, 한 세월호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제정 꼭 도와주십시오"라며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 이희훈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에 나섰지만 경찰에 가로막히고, 추석 연휴도 결국 길에서 보내며 세월호 특별법 서명 운동에 매진해야 했던 유가족들. 안산 분향소부터 여의도 국회까지 1박2일 도보행진, 청와대 앞과 국회 앞·광화문광장 노숙농성 등 부모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국회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전 위원장은 "아이를 잃은 부모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뭉치게 했다"며 "'안전사회·진실규명'이라는 공통 목적이 유족들을 끊임없이 움직인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2015년 1월, 세월호 특별조사위 활동 개시... "진상규명 끝까지 지켜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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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 해양경찰청 제공

그렇게 나온 결과가 오는 새해부터 시행되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에 들어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 17명도 30일 현재 모두 선정된 상태다. 전 위원장은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진상규명을 밝히는 일은 하루 아침에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짧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현재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며 국민들에게 세월호 문제와 특별법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머무른다. 정부가 혹시나 사고해역을 은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족들은 사고가 일어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섬) 근처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전 위원장은 "아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안전에 대한 인식이 일깨워지고, 그 희생을 초석으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것이 저희 유가족의 숙제"라며 "평생을 지고 갈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참사를 겪은 사람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연계해 준 것도 아이들이 해준 일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특별조사위는 내년 1월 1일부터 참사 발생원인과 후속 조치 등 사실관계를 밝히고, 종합대책을 낼 예정이다. 전 위원장은 "저희가 지치고 힘들 때 곁에서 항상 지켜주셨던 분들은 정부가 아닌 국민들이었다"라며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힘을 얻었다, 2015년에는 진상조사가 더 활발히 이뤄질 텐데 함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사였습니다. 과거 수많은 대형 참사가 있었는데 결국 이번에도 막지 못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 저희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입니다. 아이들의 죽음이, 그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정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해, 2015년은 꼭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고 안전사회를 만드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과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00~2013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
2000년 문정현 신부(매향리 공대위 활동 등)
2001년 화덕헌(누리꾼, 이문열 도서 반환운동)
        박경석(장애인이동권연대 상임공동대표)
        덕성여대 총학생회 및 교수협의회
2002년 행동하는 누리꾼
2003년 문규현 신부(새만금 및 부안핵폐기장 투쟁)
2004년 국보법 폐지 여의도 천막농성단 1000명
2005년 노충국 부자
2006년 평택 대추리 사람들
2007년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전 <시사저널> 기자들)
2008년 촛불소녀
2009년 용산참사 유가족
2010년 천안함 북풍 이겨낸 6·2 지방선거 유권자들
2011년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
2012년 왕복 40시간 대선 투표 인도 벵갈루루 거주 재외교포 김효원씨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축소·은폐 폭로한 권은희 수사과장

NK투데이 선정 2014년 북한 10대 뉴스

NK투데이 선정 2014년 북한 10대 뉴스
nk투데이 
기사입력: 2014/12/31 [10: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2014년 한 해도 벌써 저물고 있습니다. 올해 북한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NK투데이에서 북한 10대 뉴스를 꼽아보았습니다. 

1. 최룡해 특사 러시아 방문


최룡해 비서가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 푸틴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내년 5월 전승 기념식에 김정은 제1위원장을 초청해 작년부터 두드러진 북-러 관계가 최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가 합작으로 북한 철도 전체를 현대화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돼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2. 북한 고위인사 3인 한국 방문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깜짝 인사가 등장했습니다.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양건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장이 긴급 방한한 것입니다. 이들은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요인들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합의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대북전단 살포 논란 속에 결국 대화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3. 김책공대 교육자살림집 완공


북한이 김일성종합대 교육자살림집(교수·교직원 아파트)에 이어 김책공대 교육자살림집을 완공했습니다. 최고급 트윈타워로 짓고 곧바로 들어와 살 수 있도록 기본 시설까지 다 갖췄다는데요, 최근 공개된 위성과학자거리, 연풍과학자휴양소 등과 함께 교육, 과학에 국가적 관심을 돌리고 투자를 집중하는 북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전면시행


북한이 2012년에 결정한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을 2년의 준비 끝에 올해부터 전면 시행했습니다. 원래 11년제였던 의무교육 기간이 1년 늘어난 것이며 소학교(초등학교) 기간이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나 고급중학교(고등학교) 졸업 나이가 1년 늦춰졌습니다. 북한은 지식경제시대에 맞춰 인재 양성에 큰 힘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5. 에볼라 바이러스 강력 차단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 북한은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예방책을 마련했습니다. 아예 모든 이의 입국을 제한해버린 겁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입국 후 21일 동안 격리수용을 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관광은 물론 각종 외교, 해외교류 일정에 큰 차질이 발생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6.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실시


3월 9일 우리의 총선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 결과 김정은 제1위원장을 포함해 687명의 대의원이 선출됐습니다.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조선로동당 대의원이 606명, 조선사회민주당이 50명, 천도교청우당이 22명, 기타 9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입니다. 



7. 인천아시안게임 종합 7위


44억 아시아인의 축제,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습니다. 비록 응원단은 오지 못했지만 한국 국민들의 열띤 응원으로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북한은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4개로 종합 7위를 차지하며 전성기 실력을 회복했습니다. 북한은 아시안게임에 이은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도 참석했으며 그 밖에 U-16, U-19 남자축구 대회, 기계체조 세계선수권대회, 세계역도선수권대회, 국제유도대회 등에도 참석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체육분야 국제교류에 힘을 쏟았습니다. 



8. 고산과수농장 확장


2011년부터 시작한 강원도 고산과수농장 확장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약 10배에 달하는 대규모 과수원으로 사과를 기본으로 복숭아, 배, 자두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2018년 6만5천 톤 과일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잼, 식초는 물론 향수, 샴푸, 린스 등 각종 가공품 생산공장도 신축하고 있습니다. 



9. 모란봉악단 활동 재개


북한 최고의 여성악단으로 꼽히는 모란봉악단이 신곡들을 들고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모란봉악단은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아 일부 언론들이 온갖 설들을 보도했는데 신곡 준비 때문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북한은 5월 16일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열어 문학예술부문을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10.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개건


강원도 원산시에 있는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가 확장 개건됐습니다. 송도원야영소는 북한 최대 규모의 소년단 야영소로 각국 청소년들이 야영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입니다. 국제친선소년회관, 음악감상실, 실내수영관, 물놀이장, 수족관, 조류사, 각종 체육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있습니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광복 70주년, 다시 해방의 꿈을


[신년칼럼] 역사의 흐름을 읽으며 현실에 대응해야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텄다.”

8·15 직후 부르던 「독립행진곡」의 첫머리다. 돌이켜보면 일본의 식민지통치 35년은 분단 70년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어둡고 괴롭고 치욕스러운 남의 나라 종살이였기에 해방의 환희와 감격이 그만큼 벅찼다. 그런데 70년이 지난 오늘도 이 노래가 가슴을 울리는 것은 환희의 기억이 생생해서라기보다 어둡고 괴로운 세월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리고 해방의, 해방의 깃발 날리는 날에 대한 목마름이 간절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더라도 1945년 8월 15일은 확실히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이었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비록 분단시대라 해도 자기 나라 이름을 걸고 운영되는 역사를 명실상부한 식민지 역사와 혼동하는 부실한 역사인식이요, 일제통치를 끝내기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유달리 어두웠던 2014년 

다른 한편 광복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강제된 어둡고 괴로운 날들은 그것대로 직시해야 한다. 연합군의 승리는 국토의 분단을 가져왔고 온갖 혼란과 낭자한 유혈사태를 거치며 두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곧이어 3년여에 걸친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쟁이 뒤따랐다. 그런 뒤에도 38선과 크게 다름 없는 휴전선이 60년 넘게 존속되어 분단체제라 부름직한 현실이 굳어졌다. 내부 기득권세력과 외부 강대국들의 ‘갑질’에 취약한 사회가 남북 모두에 자리잡았고, 주민들 스스로도 ‘갑’이 되고 싶은 욕망과 기회만 닿으면 ‘갑질’을 마다않는 행태가 널리 퍼졌다. 매사를 ‘갑을관계’로 보는 습성마저 내면화된 듯하다. 이제 70년 전과는 다른 차원의, 훨씬 다면적인 해방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2014년은 그런 목마름이 유달리 애타는 한해였다. 특히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사고가 국가적 사건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수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 깨달은 것은 또 하나 있다. 국민들이 애통하고 분노하며 변화를 갈망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세월호사건을 겪었다고 일대 전환이 당장 이루어질 사회라면 애당초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사회라면 쉽게 전환하고 개조될 사회일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끔찍한 군부대 사건들이 잇따랐고 군과 정부는 ‘우리는 갑이니까 아무렇게나 말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다고 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진정한 강자의 모습을 위정자들이 보여준 것도 아니다.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 논란이 표상하듯이 정권의 난맥상은 실로 엽기적 수준이었다. 

수많은 자살자가 세상을 떴고 노동현장의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여성들은 또 다른 성격의 안전사고에 항시 노출되어 마음놓고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한창 꿈에 부풀 나이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도 없고 일할 전망도 막막한 상태로 무기력해지거나, 젊은 기운을 ‘일베’ 식으로 엉뚱하게 발산하기도 했다. 과거보다 나아진 면이 있다면 ‘4대강사업’ 같은 초대형 국토파괴 작업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 또한 국고가 바닥나고 집권자가 자신의 뚜렷한 국정목표를 못 가졌다는 현실의 다른 일면이었을 뿐, 환경의식과 준법정신의 부재가 지난 정부와 전혀 달라진 바 없음은 부실하고 부정확한 4대강사업 조사보고에서도 확인된다.

통합진보당 해산, 정권의 꽃놀이패인가? 

대선 2주년이 되는 12월 19일에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당 강제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마저 벌어지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죽음을 선포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바로 87년 민주화의 값진 열매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법치주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헌법을 빈껍데기로 만들 수 있는 위험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는 ‘무모’하고도 ‘비겁’한 결정을 ‘무책임’하게 내려버렸”기(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보당 해산 결정문 살펴보니>, 한겨레 2014.12.22, 8면)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파시즘의 복귀라고 단정한다든가 반대로 통진당 옹호가 될까 두려워 미온적인 비판에 그치는 것은 정권의 꽃놀이패에 걸려드는 일이다. 체념하거나 이제 물리적 투쟁만 남았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태 또한 집권층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대중의 체념은 그들이 바라는 바이며, 물리적 투쟁이 성가시긴 해도 공권력이나 ‘재건 서북청년단’ 등의 물리력 동원에서는 자신의 우세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가 싸우는 일 따위는 아예 접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을 선택할 일이되 상황에 대한 판단만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도 그 양면적 성격을 두루 보아야 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무슨 희한한 묘수라기보다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겪어온 하수농락법의 일종일 뿐이다. 1987년의 민주화는 독재를 끝장냈지만 독재의 토대가 되었던 분단체제를 허물지는 못했기에, 위에 인용한 “민주적 법치주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헌법을 빈껍데기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은 87년 이후에도 여전히 남았던 것이며, 87년체제의 민주헌법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면헌법’이 수반했던 것이다(졸저 <2013년체제 만들기>, 창비 2012, 제7장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분단체제」 145~7면).

다른 한편 이번 결정의 과정에 87년체제의 남은 생명력이 작동했음을 놓쳐서도 안 된다. 헌재는 87년 민주화의 성과물답게, 정당해산을 어째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지를 상세히 설파한 뒤에야 한국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그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에 의한 진보당 해산과 조봉암 처형과는 엄연히 다르다. 당시의 진보당은 미군의 ‘군정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행정부 처분으로 해산되었고 조봉암 재판은 날조된 증거에 입각한 그야말로 사법살인이었다. 

굳이 이런 차이점을 밝히는 것은 역사의 큰 흐름을 바로 읽으면서 현실에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8·15해방으로 먼동이 트고도 어둡고 괴로운 날들이 이어져온 게 사실이지만 줄곧 어둡기만 했던 역사는 아니다. 오늘날 어둠이 다시 짙어진 것은 6월항쟁으로 한결 밝아진 날들을 맞이했건만, 87년체제가 다음 단계로 제때에 진화하지 못함으로써 말기국면 특유의 혼란과 퇴행현상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말의 칼럼에서도 “지금은 유신2기도 망국전야도 아닌 시대전환기”(<사회통합,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2013.12.27, http://weekly.changbi.com/?p=1609&cat=5)라고 주장했는데, 현 시기가 87년체제의 막장이자 분단체제 자체의 전환기라는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런 고비에서 분단체제의 일익인 북녘에 대한 비판의식이 부재하고 내부적 자기쇄신 노력이 결여된 집단이라면 통합진보당이든 누구든 원칙있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리해본 그 원칙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한다. 관심있는 분들은 졸고 ‘큰 전환, 큰 적공을 위하여’,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제6절 ‘무엇이 변혁이며 어째서 중도인가’를 참조해주시기를.) 어쨌든 ‘종북’과 선을 긋는답시고 헌재의 행태에 결연히 항의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정치권에 흔한 행태는 과도한 흥분 못지않게 정권의 꽃놀이패에 걸려든 꼴이다. 

말기국면의 핵심적 위기와 새로운 해방의 꿈 

헌재도 헌재지만, 체제말기적 혼란의 핵심에는 87년 6월항쟁 최대 성과인 직선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위기가 있다. 2012년 대선은 국정원과 군부의 선거개입 같은 부정사례가 있긴 했지만, 87년 민주헌법의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선출되어 취임하였고 그 합헌성을 야당이나 국민 대다수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87년체제 최고·최강의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거의 모든 여타 헌법기관의 권위와 권능을 무시하는 행태를 견지하고 있는데다가 그 때문에 정권의 통치력이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 권력 자체의 급속한 무기력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핵심적 위기요 혼란의 진원(震源)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민주헌정 의식이 원래 희박한 점과, 누구 말대로 집권플랜만 있었지 집권 후의 통치플랜은 없었던 준비부족 및 통치능력의 결여, 그리고 어느 누가 하더라도 발본적 전환 없이는 수습이 안 되는 체제말기적 여건 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따라서 쉽게 개선될 현상이 아니며, 그렇다고 기득권구조의 큰 전환 없이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제로 바꾸는 보수작업만으로 시정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혼란이 곧 파시즘은 아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랫말이 있지만, 파시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이다. 다만 파시즘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힘센 자리에 너무 많다보니 내공도 없는 파시스트 지망생들에게 난동 면허가 곳곳에서 발부되고 있을 뿐이다. 87년체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없으려니와 유신정권 같은 파시즘을 재연하기에는 분단체제의 고착기도 멀리 가버렸다. 남북대결을 새로 격화시킨다고 분단체제가 안정되기는커녕 더욱 변덕스럽고 위태로워질 따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능한 정부의 거듭된 실정과 극심한 사회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혁세력이 적공(積功)을 못하고 계속 밀리기만 한다면 언젠가 강력한 파시즘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당장의 괴롭고 고달픈 현실에서 이러저런 ‘체제’를 들먹이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 아무나 붙들고 체제 논의를 벌이자는 건 물론 아니다. 우리 삶이 왜 이렇게 괴롭고 답답한지를 올바로 알아서 제대로 대응하려면 한층 체계적인 인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체제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들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둠과 괴로움이 한반도의 분단과 얼마나 일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분단체제론은 한갓 이론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일 수 있다. 물론 만악의 근원이 분단이라는 단순논리라면 전혀 가당치 않은 소리며, 오히려 통일이 안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절망의 메시지가 될 터이다. 그러나 매사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고 이 범세계적인 대세와 싸우라고만 다그치는 것도 아득하고 절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신자유주의와 낡은 군국주의 등 여러 국내외적 요인이 한반도 특유의 분단현실을 매개로 우리 삶을 옥죄는 실상을 정확히 짚어낼 때만 그 멍에를 벗어던질 길이 보이게 된다.

더구나 분단체제의 작동이 시기마다 다르다는 점에 유의함으로써 그때그때의 단기적 과제와 분단시대를 관통하는 과제, 나아가 분단시대 이후까지 내다보는 세계사적 과제를 식별하고 이들 사이에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은 87년체제의 말기국면을 청산하는 일이 우선 급하다. 다만 어려운 점은, 2016년과 17년의 선거가 이 단기적 과제의 관건일 수밖에 없지만 선거중독증에 걸려 적공 없이 승리만 챙기려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야당이 하는 꼴을 보니 선거승리는 아예 물 건너갔다고 스스로 패배주의에 젖어들어서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적공의 구체적 방안은 널리 논의되어야 하고 그것 자체가 적공의 한 과정이겠지만, 한반도의 남북 모두에 지금의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를 이룩하는 중기적 과제와 보수·진보를 떠나 너무 몰상식한 현실을 남녘에서만이라도 일단 정돈하자는 단기작업을 적절히 배합하는 성격이어야 할 것이다.

분단을 만악의 근원으로 볼 일은 아니라고 앞서 말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갖 ‘갑질’과 ‘갑을관계’는 분단 안 된 대다수의 나라들에서도 만날 수 있는 현상이다. 빈부격차, 환경파괴, 성차별, 폭력문화 등이 모두 현존 세계체제에 공통된 문제들이다. 이걸 싸잡아서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며, 분단체제의 작용을 빼놓은 채 마치 한국인들이 유달리 못나서, 또는 위정자가 유달리 사악해서 나라가 이토록 엉망이라는 듯이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지, 분단이 극복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장기적 문제들을 인식하고 그 극복노력을 각 분야에서 지금부터 차분히 진행할 필요성은 그것대로 절실하다. 

이런 다면적인 해방의 과제를 의식할 때 <독립행진곡> 제3절의 “유구한 오천년 조국의 역사 / 앞으로 억만년이 더욱 빛나리”라는 첫 대목은 확실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아, 청춘의, 청춘의 피가 끓는다”는 결말도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피 끓는 청춘을 만나기도 한결 어려워진 지금은 실감이 덜하다. 그러나 당시의 희망찬 열정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실제로 달라진 세월과 한결 원대하고 복잡해진 시대의 과제를 의식할수록 당면의 짙은 어둠부터 걷어냈으면 하는 우리의 목마름이 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새해에는 다시 해방을 꿈꾸는 피 끓는 청춘을 많이 만나고 싶고 남녀노소가 해방을 위한 적공의 길에 “발맞추어 함께 나가자”고 노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