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6일 수요일

기자였던 게 부끄러웠다, 죽을만큼 부끄러웠다



[기고] 기자 후배들도 원망스러웠다, "너희가 신문이면 우리집 화장실 휴지는 팔만대장경이다"

김기만 단국대·우석대 초빙교수,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media@mediatoday.co.kr  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기자가 최고인 줄 알고 한 때 천방지축 뛰었던 자의 넋두리이다. 현역기자였을 때의 나를 돌아보는 부끄러움의 고해성사이다.
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박근혜(대통령) 퇴진 국민대행진’이 벌어진 광화문 광장에 밤늦게까지 있었다. 만 62년 이상 살았으니 한국전쟁을 뺀 우리 현대사의 주요 사건은 대부분 겪은 셈이다. 그러나 백만 인파의 다섯 시간에 걸친 축제 같은 그런 시위는 처음이었다. 1987년의 장엄했던 ‘6월 민주화항쟁’도 내내 현장에서 취재했지만 규모와 비장미에서 체급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이 날 백만 인파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끌며 널리 불려진 노래는 세 곡이었다. 첫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의 ‘민주공화국가’. 둘째는 ‘아리랑 목동’이라는 곡을 개사해 후렴구를 <하야 하야하야 하야하야 하야하야>로 부르는 ‘하야가’. 셋째는 윤민석 작사 작곡의 ‘이게 나라냐’라는 곡. 세 번째 곡은 가사가 4절까지 있고 비판의 강도가 엄청나게 높은데, 3절의 기사가 <새누리당아 조선일보야/ 너희도 추악한 공범이 아니더냐/ 쇼 하지 마라 속지 않는다/ 너희들도 해체해 주마>로 되어있다. 한번 떠올려보라. 어마어마한 인파가 입을 모아 <새누리당아 조선일보야/ 너희들도 해체해 주마>라고 천둥치듯 노래하는 광경을.
▲ 11월12일 서울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부끄러웠다. 정말 부끄러웠다. 기자였던 것이 부끄러웠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조선일보 기자 아니었던 것이 결코 덜 부끄럽지 않았다. 꽤 오래 전부터 ‘저널리스트’를 비꼬아 ‘너절리스트’라고 부르는 걸 듣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뒤로는 ‘기레기’라고 힐난하는 소리도 자주 들렸다. 그 때도 부끄러웠지만 12일 광화문 광장에서처럼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었다. 백만 인파의 함성과 절박함을 주는 환경 때문이었을까? 기자였던 것이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기자 후배들도 미웠다.
그렇게 부끄럽고 후배 기자들이 미웠던 순간은 사실 그 직전에도 있었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때였다. 대통령은 이날 원고를 ‘낭독’한 뒤 질의응답 없이 퇴장했다. 낭독을 마친 그녀는 단상에서 내려와 기자들을 향해 서서 “여러분께도 걱정을 많이 끼쳐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라는 말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 일부는 좀 당황해서 쭈볏쭈볏하는가 하면 일어서려다 엉거주춤 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그 말만 던지고 돌아섰고 기자들은 누구 하나 한 마디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이 순간을 지켜보며 기자였던 것이 부끄러웠다. 후배들이 미웠다. 설혹 사전에 질의응답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치자.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다가서서 한 마디 했을 때 누구라도 나서 질문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게 기자의 최소한의 본분이요, 존재이유가 아닌가? 그 상황에서 질문했다면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제지했을까? 대통령은 그냥 돌아섰을까? 너무나도 길이 잘 든 기자들. 당연한 질문을 당연히 하지 않는 기자들. 대한민국의 기자라는 게 국민 앞에 한없이 부끄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월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기자였던 것이 매우 부끄러웠던 영상이 또 하나 떠올랐다. 2010년 11월 12일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 직전 있었던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기자회견 때였다. 전 세계 언론을 상대로 한 이 날 회견 말미에 오바마는 “회의개최국인 한국의 기자에게 마지막 질문권을 주겠다”고 말한다. 호스트 국가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한국기자 누구도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 회견장은 썰렁해졌다. 이 순간 한 동양인 기자가 일어나 “중국 CCTV 기자”라며 “아시아를 대표해서 제가 질문해도 되겠는가”라고 물었다. 오바마는 웃음을 지으며 “공정하게 말해서는 한국 기자에게 마지막 질문권을 줬다. 한국기자가 질문해 달라”고 받아넘겼다. 그래도 질문하는 한국기자는 없었다. 중국기자가 다시 일어나 “한국 기자 친구들이 저에게 그들을 대표해서 질문하게 한다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오바마가 “질문할 한국기자 없느냐”고 재차 물은 뒤 결국 그 중국기자의 질문을 받고 답변했다. 이 동영상의 충격은 너무 컸다. 그 날 이후 대학에서 저널리즘, 커뮤니케이션, 문화컨텐츠론 등을 강의할 때마다 이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토론한다. 질문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특징에 대하여. 이 동영상을 볼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대하여.
신문기자를 그만두던 1999년 봄, 한 ‘언소주’(언론소비자 주권운동) 단체의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던 격문 한 편. 며칠간 망설였던 ‘사직서’를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일필휘지로 휘갈기게 만들었던 그 격문. 내용은 이러했다. <조중동, 겨레와 민족에게 짓는 너희의 죄가 얼마나 큰 줄 아느냐. 너희가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실의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이래저래 요즘 기자였던 것이 부끄럽다.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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