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교급식노동자가 뜨거운 연기가 가득 올라오는 솥을 바라보고 있다. (본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14년 경력의 베테랑 학교급식노동자였던 이지은(가명·50대) 씨는 지난 2022년을 끝으로 정든 일터를 떠나야 했다.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던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마친 뒤에도, 이 씨는 학교급식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온몸에 골병이 들면서도 함께 버텨온 정든 동료들과 급식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행복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씨를 병들게 한 급식실의 변화는 더디기만 했고, 산업재해로 인정됐음에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이 이 씨를 떠나게 만들었다.
이 씨는 지난 19일 민중의소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간절히 호소했다.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이들이 먹는 밥을 만드는 일인데,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우리도 학교 구성원인데, 왜 우리의 병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느냐”라고.
“한 번도 문제있다 생각 못 했는데…”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안전할 거라 믿었던 학교급식실
이 씨는 2009년부터 경기도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폐암 수술을 받은 뒤에는 직종 변경을 신청해, 현재는 특수지도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21년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승인이 급증하자 전국적으로 학교급식노동자에 대한 저선량 폐 CT 검사가 진행됐는데, 이 씨 역시 당시 검진을 통해 폐암을 발견했다.
이 씨는 “일하면서 한 번도 폐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다”고 말했다. 그가 일한 학교급식실은 조리사 7명이 800여명분의 급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급식노동자 1인당 100명 이상의 식수를 담당하는 셈이다. 이 씨는 “많은 양을 굽고 볶고 튀기는 일이 힘들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으니 환기가 잘 된다고 생각하면서 일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환기시설은 잘 작동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상하게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이 씨는 전했다. 그는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연기가 많이 나오고, 대형 솥을 세척할 때도 심했다”며 “그때는 아무리 환기가 되더라도 (연기가 발생하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 일해야 하니 호흡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일한 급식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정부는 폐 CT 검사 결과 폐암 의심자가 다수 나오자,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개선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2023년 당시 전체 학교 11,389개 중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개선 대상에 포함된 학교는 무려 9,043개로 80%가량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의 급식실’이 수치로도 확인됐지만, 변화는 더뎠다. 각 시도교육청은 짧게는 2025년까지 길게는 2027년까지 학교급식실 환기설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올해 8월 기준 전국 평균 개선율은 41%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은 17개 시도교육청 중 8곳에 달했으며, 다른 지역보다 학교 수가 많은 서울의 개선율은 12%로 압도적으로 저조했다. 경기 지역 역시 33%에 불과했다. (관련 기사 : [단독] 14명 숨질 동안 ‘폐암 유발’ 학교급식실 개선은 ‘미적’…서울은 고작 12%)
폐암 산재 인정됐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 너무 무섭다” 결국 급식실 떠난 베테랑
한 학교급식실의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이 씨를 더욱 힘들게 한 건, 폐암 투병 과정에서 교육 당국의 조치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 씨의 폐암은 산재로 공식 인정됐지만, 이후 과정은 오롯이 이 씨 홀로 감당해야 하는 문제로 남았다.
이 씨의 경우 다행히 폐암이 초기에 발견돼, 수술을 받은 뒤 추적 관찰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수술 외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는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씨는 폐암 수술 후 회복을 위해 9개월가량 무급으로 휴직해야 했다. 정부의 폐 CT 검사로 전국의 학교에서 집단 산재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이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나 치료 후 학교급식실로 복귀하는 대책은 전혀 준비된 게 없었던 것이다.
이 씨는 “폐암 산재가 승인되더라도, 심하게 아파서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에만 요양급여가 인정되고, (저같이 초기에 발견된 경우)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휴직은 무급으로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대처하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에 따르면, 폐암 초기의 경우 요양 기간이 짧게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회복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복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무급으로 휴직하거나, 무급 휴직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 씨는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적극적으로 후속 조치를 하는 곳이 없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아픈 사람만 억울하고, 그 이후부터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 했다. 노동조합 외에는 아무도 도와주는 곳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이 씨가 학교급식실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오랜 고민 끝 다른 직종으로 변경할 때도, 교육당국은 ‘왜 학교급식실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지’를 증빙하는 각종 서류를 요구했고 이 씨는 수십곳의 병원에 전화를 돌린 뒤에야 노동조합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폐암 산재 학교급식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종합계획이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교육청이다. 경남교육청은 지난 7월 ‘급식노동자 폐암 관리 종합계획’을 마련해, 폐암 유병자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산재 승인을 위한 절차도 교육청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치료를 위한 질병 휴직 절차를 완화하고 치료 후 충분히 회복한 뒤 단계적으로 일터에 복귀할 수 있도록 대체 전담 인력 배치 등을 시행하고 있다. 복직 후에도 건강 악화로 인한 퇴직을 예방하기 위해 최대 20일의 유급 폐암 요양 휴가를 보장한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 일하는 학교급식노동자는 같은 기준으로 산재를 승인받더라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씨는 “같은 일을 하는데, 교육청마다 기준도 다르고, 처우도 다 다르다”라며 “특히 산재의 경우 기본적인 조치는 똑같이 보장돼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답답해했다.
‘14년 경력’ 학교급식노동자도 “무섭다”는 현재 상황 더 이상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헌신으로만 버틸 수 없다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는 교육청과 교육부, 고용노동부가 모두 얽힌 문제다 보니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없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될 때마다 학교급식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반짝 주목받지만,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관계 기관들은 서로 책임만 미루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범부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이제 학교급식실은 그나마 버티던 이들도 병들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 일터가 되어가고 있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학교급식노동자의 광주와 전북을 제외한 15개 시도교육청이 모두 정원보다 현원이 부족한 결원 상태이며, 신규 채용 모집 역시 대구 제외 전 지역에서 미달돼, 전국 평균 미달률은 29.1%에 달했다.
이 씨가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일터가 되도록 책임자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이 씨는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지원하는 분이 많아 학교급식실에서 일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학교마다 대체 인력이 없는 학교가 없다. 그만큼 정원을 못 채우는 것”이라며 “사명감으로 일하는 분들이 퇴직하고 나면 인력난은 더 심해질 것이다. 지금도 물론 힘들지만, 몇 년 안에 학교급식실은 버티기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현실이 너무 무섭다. (관계 기관들이) 책임 회피를 할 게 아니라 서둘러 환기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며 “식수에 비해 너무 적은 인력 문제도 해결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최근 시민사회는 학교급식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100만 청원 운동’에 돌입했다. 학교급식노동자가 안전해야 학교급식도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무상급식을 만들어 낸 범국민운동에 다시 나선 것이다.
청원에는 학교급식노동자의 안전과 인력기준을 제도화하고, 폐암을 비롯한 학교급식노동자의 산재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청원은 ‘안전한 노동, 행복한 급식 100만 청원운동 링크’에 접속하면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