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4일 금요일

이젠 '찐윤 검사'들도 못 믿겠다는 '24% 대통령'의 위험한 도박

 [박세열 칼럼] 윤석열식 '공정과 상식'의 파산 선언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5.25. 05:06:58 최종수정 2024.05.25. 05:06:59

지난 14일 대통령의 검찰 인사는 '찐윤횡사'였다. 그래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생겼다. '찐윤 어벤저스' 검찰 진용을 대통령이 스스로 해체한 이유는 뭘까?


앞서 검찰은 윤석열 라인의 핵심 중의 핵심들로 짜여져 있었다.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 김창진.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특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고, 윤석열 정부 법무부 초대 검찰과장을 지낸 '찐윤' 검사였다 그는 1차장 산하 형사 1부에 김건희 영부인 수사 전담팀을 꾸렸다가 이번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튕겨져 나갔다.

김건희 영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고형곤 4차장. 박영수 특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 시절 조국 전 민정수석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수사해 구속시키고 유죄를 받아냈다. 윤석열식 '공정과 상식'의 상징인 '조국 수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지만, 영부인 수사에 손을 댄 후 이번에 수원고검 차장 검사로 튕겨져 나갔다.

이 모든 사건을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송경호. 2017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임명돼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밑에서 이명박 정부 비리 수사를 담당했다. 2019년 8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자마자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승진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다가 역시 '영부인 수사'를 앞두고 갑자기 부산고검장으로 튕겨나갔다.

한동훈·이원석과 연수원 동기이자, '특수 트로이카'로 불리던 부산고검 차장 주영환. 그는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사청문준비단당을 맡았고, 이후 대구지검장을 지냈으나, 이른바 '쥴리 의혹'을 제기했던 안해욱 전 대한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한 후, 갑자기 부산고검 차장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이번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두번째 좌천을 당하면서 아예 스스로 옷을 벗었다.

검찰총장 이원석.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내면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를 위해 조직된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 되자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승진했지만, 추미애의 '검찰총장 패싱' 인사 때 좌천당했다가 현 정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 그가 이젠 '검찰총장 인사 패싱'의 당사자가 됐다. 사실상 '나가라'는 신호다.

윤석열 정부의 '1기 검찰 진용'은 '윤석열 라인' 특수통 엘리트 중 엘리트들로, 과거 검사 윤석열을 정점으로 하는 '동일체'의 손과 발, 눈과 귀를 담당해 왔다. 그 '어벤저스'가 이번에 윤 대통령의 스냅 한 방으로 절반이 날아갔다. 쉽게 말해 '자해 인사'다. 그래서 이런 인사가 설명되려면 '자해 인사'를 할 만큼 '대통령은 찐윤 검사들마저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란 의심을 먼저 앞세워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에 그 단서가 있다.

"도이치니 하는 이런 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도 사실은 지난 정부 한 2년 반 정도, 사실상은 저를 타깃으로 해서 검찰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서 정말 치열하게 수사를 했습니다. 그런 수사가 지난 정부에서 저와 제 가족을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것인지, 봐주기 수사를 하면서 부실하게 했다는 것인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정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저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부 검사의 버릇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수사'가 곧 '최종 결과'라는 착각이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이 그 예다. '초동 수사' 결과가 보고된 후 드라마틱하게 뒤집힌 건 '누군가'가 '초동 수사'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고 '격노'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검찰 특수통 출신의 이 정부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는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정순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윤석열 수사팀은 2019년 9월 6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청문회 도중에 '공소시효 임박'을 이유로 정경심 교수를 소환 한번 하지 않고 전격 기소했다. '유죄 확신'이 없었다면 형사 제도 실무와 상식을 뛰어넘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의 동네 주민으로 알려진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자신의 책 <위기의 대통령>을 통해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독대에서 "제 상식으로는 조국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정경심을 기소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썼다. 검찰의 힘은 '수사 단계'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극대화된다. 실제 무죄인지, 유죄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소 단계에서 모든 판단이 끝난다.

그런 면에서 "도이치니 하는" 사건은 대통령의 인식 속에서 이미 마무리된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의 '찐윤 어벤저스'는 "도이치니 하는" 사건을 끝맺음하지 못했다.

"봐주기 수사를 하면서 부실하게 했다는 것인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정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발언의 수취인은 문맥상 특검을 주장하는 '야당'이지만, "치열하게 수사를" 한 사안인 "도이치니 하는"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는 검찰을 향한 말로도 들린다. 그 말을 들은 검사들은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이치니 하는" 사건에서 동일체의 머리(윤석열)와 손발은 따로 논 셈이 된다. 동일체가 동일체로 작용하지 못한 것이다. '찐윤 어벤저스' 해체 명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정말 묻고 싶은 건 송경호와 이원석에게 돌아갈 질문들이다. 왜 "치열하게 수사"를 한 사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었는지, '무혐의' 처리를 못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송경호와 이원석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식 속에 이미 '셧다운'된 사건을 그들은 왜 쥐고 있었던 것인가. 혹시 대통령의 '약점'이라도 쥐고 흔들려 했던 것은 아닌가. 대통령의 '통제 밖'으로 감히 나가려 모의하지 않았는가. 이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게 놔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재임 시절 왜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었을까?

검찰 수뇌부의 거취가 영부인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공적인 검찰 인사는 드라마 속 궁중 암투 스토리 수준으로 격하된다. 그리고 시중에 '궁중 암투' 소문이 널리 퍼진 나라라면 그 권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대통령의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할 때, 셰익스피어식 비극은 시작된다. 비극의 요인은 욕망과 의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의 천성적 결함이다. 권력은 파멸로 하면서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 맥베스는 전장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를 만나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전해들은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를 회유해 왕을 죽이도록 하고, 맥베스는 결국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권력을 욕망할 줄 알고 쓸 줄은 몰랐던 맥베스는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다른 예언들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 친구와 경쟁자의 주변인들을 제거하며 왕위를 유지하지만, 파멸의 예언이 실현되는 걸 막는 행위가 그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인간의 권력과 욕망은 두려움과 의심을 낳고,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판단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공적 영역'에 '사적 안위'를 개입시킨다. 권력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균형 감각과 공적 마음가짐을 상실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우린 역사와 문학을 통해 배워왔다.

이번 검찰 인사는 이 정부 출범 모토인 '공정과 상식'이란 상징 자본의 파산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 부부의 안위' 앞에서 '친윤 검사들'마저 내친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내 근본적인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대통령도 '갸웃'할 그런 의문이다.

과연 최고의 충성파로 꾸린 '1기 친윤 진용'보다, '2군'으로 꾸려진 '2기 친윤 진용'이 더 (대통령 입장에서 볼때) 유능한 사람들일까? 지지율 24%(한국갤럽 24일자 여론조사 기준)짜리 대통령은 그들을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인사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까? 지금 신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그 두 갈래 길이 각각 어떤 길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지에서 열린 '회암사 사리 이운 기념 문화축제 및 삼대화상 다례재'에서 헌등 뒤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기자수첩]연금개혁 미루는 정부·여당, 1%p도 합의 못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추가 질문을 더 받겠다는 의사를 김수경 대변인에게 전달하고 있다. 2024.05.09.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연금개혁을 위해 제안한 '원포인트 영수회담·3자회담'을 대통령실이 거부하면서 사실상 연금개혁 시계는 더 뒤로 밀리게 됐다.

21대 국회 마지막 일주일 안에 연금개혁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키자는 야당의 요구를 무시한 처사다. 윤석열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3대 개혁(교육·노동·연금)' 중 하나로 연금개혁의 속도전을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실의 회담 거부는 실망스럽다.

국민연금 개혁은 애초에 윤석열 정부가 시작한 일이다. 정부가 3대 개혁 중 하나로 밀어붙이고, 여기에 발맞춰 여당에서는 대선 직후부터 연금특위 구성을 주장하면서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연금개혁을 미뤄온 것도 정부였다. 2023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은 모수개혁 등 아무 내용이 없는 '맹탕 개혁안'이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3가지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국민의힘이 '단일안을 가져오라'며 논의 조차 거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윤석열 정부의 '맹탕 개혁안'은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

당시 정부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국회에 공을 던졌다. 이에 국회 연금특위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공론화 작업을 시작했다. 국민 500명으로 구성된 시민대표단은 3주 동안 연금개혁 의제에 대해 학습하고 주말마다 4차례에 걸쳐 토론을 진행했다. 이 같은 공론화 결과, 시민대표단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현행 40%에서 50%로 인상하는 '소득보장안'을 선택했다.

정부가 필요하다고 한 공론화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내지 못한 개혁안, 그것도 단일안을 시민들이 의견을 모아 도출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연금개혁을 또 미뤘다. 정부, 여당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공론화 결과를 두고 "현재보다 재정을 더 악화시켜 재정안정을 위한 연금개혁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야당에서는 소득대체율을 대폭 양보하기도 했다. 공론화 결과인 '소득대체율 50%'에서 45%로 낮춘 안을 제안한 것이다. 소득보장 강화를 선택한 시민들의 의견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지만, 여당과의 합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소득대체율 43%를 고수하면서 '2%p(포인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연금특위는 지난 7일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21대 국회 임기를 20여일 남긴 시점에서 이른 포기 선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05.24. ⓒ뉴스1

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5%에서 44%까지 더 양보하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4일 "연금개혁을 할 의사가 있다면 1%p 범위 내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든 아니면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만나든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 타결지어야 한다"고 직접 제안했다. 보험료율이 9%에서 13%로 4%p 상향되는 것을 고려하면, 보험료율이 오른 만큼만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셈이다. '소득보장 강화'라는 연금개혁의 방향성이 퇴색되지만, 여당과 합의를 위한 양보다.

여당 안에서도 모수개혁만큼은 합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보험료를 13%로 올리는 데 여야가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 중요한 진전이지 소득대체율이 44%냐 45%냐는 큰 차이가 아니"라며 "여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즉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재명 대표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1%p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조차 포기했다.

정부와 여당이 기어이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를 다시 하자고 고집하는 것은 것은 공론화 결과를 '없던 일로 하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앞선 공론화를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좀 더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대합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공론화 결과가 나왔는데 또 다른 '폭넓은 공론화'를 언급한 것은 지금 공론화를 무시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정부·여당의 회담 거부로 결국 연금개혁의 공은 22대 국회로 넘겨졌다. 22대 국회 개원 후에도 원 구성에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빨라도 올해 하반기에나 연금개혁의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구성에 여야가 속도를 낸다고 해도 논의가 본괘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21대 국회 연금특위에서 논의를 주도하던 여야 간사를 포함해 7명의 의원들이 22대 국회에 재입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연금개혁 논의를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안에 연금개혁안이 도출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면 윤 대통령 임기 내 연금개혁이 결론 날지도 난망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연금개혁의 의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회적 대합의를 이끌어내서 제 임기 내에 앞으로 백년대계인 연금개혁안이 확정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확언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공론화를 통해 이미 나와 있다. 윤 대통령의 결단만 필요하다.

“ 김백겸 기자 ” 응원하기

"이재용은 바지회장"... 삼성전자 사옥앞 마스크 벗고 외친 젊은 직원들

 [현장] 첫 서초사옥 노조집회에 2천명 참가… "'실세' 정현호와 사업지원TF, 노조탄압 멈춰라"

24.05.24 19:19l최종 업데이트 24.05.24 19:19l

글: 김성욱(etshiro)

사진: 이정민(gayon)

▲ 삼성전자노조, 원만한 단체교섭 요구 문화행사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5.24 가자! 서초로!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문화행사는 삼성전자 창사 이후 최초로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삼성전자 사업지원TF(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에 노사협의회를 앞세운 노조 무력화 시도를 철회하고, 노동조합과의 대화를 통한 원만한 단체교섭을 요구'하기 위해 열렸다.

ⓒ 이정민

▲ 삼성전자노조, 원만한 단체교섭 요구 문화행사

ⓒ 이정민

"우리 노조는 이재용 회장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바지회장'이라고 표현한다. 이재용 회장에게 결정 권한이 있었다면 이곳 서초사옥이 아니라 (이 회장 자택이 있는) 이태원에서 행사를 했을 것이다. 지금 삼성의 모든 결정권한은 정현호 부회장에게 있다. 이재용 회장이 정말 삼성을 책임지는 오너라면, 지금이라도 직원들에게 입장을 밝히라." - 이현국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부위원장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24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창사 55년 이래 두 번째 단체행동을 벌였다. 수원·화성·기흥·평택·천안·광주·구미·온양 등 전국의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모여든 2000여 명 조합원들은 무노조 경영으로 일관해온 사측을 향해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2020년 5월 국정농단 뇌물죄와 노조 탄압문제 등으로 구속 위기에 처한 이재용 회장이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종식하겠다고 공식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사협의회를 통한 노조 무력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5.24 가자! 서초로!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 이정민

회사가 세워진 1969년 이후 50년 넘게 이렇다 할 노조 활동이 없었던 삼성전자에 최근 노조 바람이 불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1만명 선에 멈춰있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조합원수가 올해 들어 3배 가까이 급증, 현재 2만 8000여명까지 불어났다. 삼성전자의 전체 직원은 12만 명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의 약 23%가 노조에 가입한 것이다. 이를 동력으로 노조는 지난달 17일 창사 이래 첫 노조 집회를 경기도 화성 사업장에서 열었다. 당시에도 2000명 넘는 조합원들이 공개 집회에 참석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이날 노조는 삼성의 심장부인 서초사옥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집회에 모인 상당수가 20~40대 사이의 젊은 조합원들이었고, 대다수는 마스크 등을 쓰지 않고 얼굴을 드러낸 채 시위에 참가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소속으로 지난 2019년 11월 설립됐다.

"실세는 정현호와 사업지원TF"… 얼굴 드러내고 모인 삼성전자 젊은 노동자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긴부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5.24 가자! 서초로! 문화행사'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이정민

삼성전자 노조가 주목받는 이유는 삼성의 노사관계가 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그간 공개적으로 무노조 경영을 표방해온 삼성은 경영계 전반에 퍼진 '노조 혐오'의 첨병이었다. 전통적으로 삼성은 노조가 아닌 소수의 근로자대표가 참여하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동조건을 결정해왔고, 금전 보상으로 불만을 눌러왔다.

하지만 최근 임금인상률이 낮아지면서 내부 불만이 쌓였고, 이것이 노조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경기도 지역 사업장의 노조 대의원은 "더 이상 경영진의 잘못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임원진만 잇속을 차리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노조는 특히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조 무력화의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정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이기도 하다. 노조는 사업지원TF가 과거 '미래전략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앞서 삼성은 2017년 초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뇌물죄 등 국정농단 수사가 벌어지자 그 책임이 있는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바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와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노사협의회를 앞세운 노조 무력화 시도를 철회하고, 노조와의 대화를 통한 원만한 단체교섭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위원장은 연설에서 "오늘 서초사옥에 모인 건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업지원TF, 즉 구 미래전략실이 있기 때문"이라며 "정 부회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섭과 이재용 회장이 약속한 무노조 경영 폐기를 즉각 지키길 바란다"고 했다. 조합원들은 "정현호 나와라", "노동존중 실천하라", "노조탄압 중단하라"를 구호로 외쳤다.

노조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에 전격 발탁된 전영현 신임 부문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이현국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지난 2018년 삼성SDI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을 때 관계자들을 해외로 파견하려고 시도하는 등 사측의 탄압이 있었는데, 이때 전영현 부문장이 삼성SDI의 사장이었다"고 비판했다. 전 부문장 역시 삼성 미래전략실 출신이다.

노조는 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항소심 재판과 관련해서도 "이 회장을 더 이상 오너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 회장은 아무 결정 권한이 없는 바지회장"이라며 "정말 오너라면 직원들 앞에 나와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언론은 '귀족노조'라 하겠지만, 우리가 노조하는 이유는…"

▲ 뉴진스님, 삼성전자노조 문화행사 출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개최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5.24 가자! 서초로! 문화행사'에서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윤성호가 공연을 하고 있다.

ⓒ 이정민

ⓒ 이정민

집회에는 뉴진스님과 에일리, YB밴드가 출연했다. 이 부위원장은 "어떤 분들은 우리를 향해 '귀족노조'라고도 하고, 돈이 많아서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귀족은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명인사들의 공연이 이어지자 삼성전자 직원들은 물론 강남역을 찾은 외국인들도 집회 현장 주변을 둘러싸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부 조합원들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기도 했다.

이현국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부위원장 : "아마 오늘 행사가 끝나면 언론에서 '삼성전자 귀족노조'란 말이 나오겠죠. 그럴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렇지만 귀족들은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하겠죠.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서, 돈이 많으니까 이런 행사를 기획하는 거 아니냐고. 저희 조합 설립한 지 4년 지났습니다. 4년 동안 조합원들이 한 달에 만원씩 내어주신 소중한 조합비를 차곡차곡 모아서 이 자리 마련했습니다. 저희 노동조합이 돈이 많아서가 아닌, 조합원 수가 많아서 이 자리가 가능했다고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노동운동 왜 하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저희가 사실 과거에는 대답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답을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님이 주셨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때 노동3권이 들어갔습니다.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하고, 사측과 대화하고, 그리고 주위 분들에게 피해를 주는 파업까지 허락한 내용입니다. 이런 막강한 권한을 왜 노조에 주었을까요. 한국사회 경제 활동 인구는 2900만 명 정도입니다. 이중 80%가 급여소득자라고 합니다. 우리들처럼요. 이 80%에 해당하는 수많은 급여소득자들에게, 한 달에 50만원의 추가금이 지급된다면 어디로 갈까요? 다 소비와 지출을 통해 사회에 환원됩니다. 그러면서 지역 경제가 부강하게 됩니다. 이것이 누구나 노조 활동을 해야 하는 당당한 이유이자 권리라고 배웠습니다.

노동자들의 역할은 나의 뱃속을 채우는 것을 넘어, 내가 좀더 정당한 보상을 받음으로써 우리 지역경제를 윤택하게 함에 있다고 저는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노조 운동하는 이유입니다.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 삼성전자노조, 원만한 단체교섭 요구 문화행사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개최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5.24 가자! 서초로! 문화행사'에서 YB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 이정민

▲ 에일리, 삼성전자노조 문화행사 공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개최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5.24 가자! 서초로! 문화행사'에서 가수 에일리가 공연을 하고 있다.

ⓒ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