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8일 월요일

항공사에서 한우, 첼로까지 국회의원들의 ‘별별 재산’

권력은 언제나 타락할 수 있다, 재산공개는 정확히 철저히 이루어져야
임병도 | 2019-04-09 09:13:4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회의원은 매년 공직자 윤리법에 따라 재산 변동사항을 공개합니다.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지 않았는지 감시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2019년에도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는 국회의원들의 재산을 공개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재산을 하나씩 보다 보니, 별나고 다양한 재산 보유 현황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재산인지 알아봤습니다.

항공사 최대주주가 된 국회의원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가 운용하는 항공기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 홈페이지 화면 캡처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지난해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의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현역 국회의원이 항공사 최대 주주가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는 강원도 양양과 부산, 제주, 일본을 운행하는 저가항공사입니다.
정 의원은 지난해 비상장사인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 주식 784만주를 30억 원에 매입했습니다.
정유섭 의원이 신고한 총재산은 62억 2655만 원입니다. 정 의원은 보유한 예금과 대출을 통해 주식을 매입했다고 하는데, 조금 과도한 투자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본인과 가족이 보유한 주식이 3000만 원 이상이면 직무관련성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주식을 보유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심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비상장 주식이라 심사를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왜 법을 잘 몰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식으로 대박 난 국회의원
▲비피도 코스닥시장 신규상장 기념식 모습과 최운열 의원의 재산공개 내역 ⓒ국회 공보, KOGMEDIA
2016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배우자가 ‘비피도’ 주식 7000주, 350만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2019년 최 의원은 비피도의 주식을 2억 755만 원으로 신고했습니다. 비피도가 2018년 12월에 코스닥에 상장됐기 때문입니다.
350만 원 주식이 2억이 넘었으니 주식으로 대박인 난 셈입니다.
최 의원의 부인이 주식으로 억대의 수익을 얻었지만, 불법은 아닙니다.
최 의원은 직무관련 심사를 받았고, 중간에 주식을 구입한 게 아니라 1999년 동료 교수가 비피도를 창업할 때 출자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꿈꾸는 ‘상장의 꿈’을 최 의원이 이뤘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한우에서 첼로, 참고서까지 국회의원들의 ‘별별 재산’
국회의원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조건 신고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신고한 재산 중에는 별난 것도 있는데요.
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배우자 명의의 한우 1억 5850만 원을 신고했습니다. 한 마리당 500만 원으로만 계산하면 대략 30~40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가의 악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은 본인 명의의 6000만 원 짜리 첼로를 정병국 의원은 배우자 명의의 6300만 원짜리 하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도 배우자 명의로 6500만 원짜리 비올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민주당 박경미 의원은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출신으로 수학 참고서를 집필했습니다. 박 의원은 지난해 인세 수입으로 약 40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신고했습니다.
국회의원이지만, 모두가 재산을 공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은 국정원 특수 활동비를 빼내 1억 원의 불법 자금을 조성한 혐의와 채용외압 등으로 구속됐다고 이번 재산공개에서는 빠졌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이런 사람일수록 더욱더 재산공개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법 자금이 흘러 얼마나 재산이 증가했는지 국민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의 재산이 많거나 증가했다고 불법은 아닙니다. 오히려 재산이 많기에 불법 자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를 가진 자가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그 말이 꼭 정답은 아닙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작위로 국회의원의 재산을 철저히 확인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국회의원들이 워낙 말을 자주 바꿔 재산을 속일 수도 있다는 의심도 듭니다.
권력은 언제나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국민이 감시할 수 있도록 재산공개는 정확히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73 

‘반값등록금’ 촛불 이후 8년, 대학등록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현장] 국가장학금 도입 8년, 등록금과 고등교육재정 토론회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4-08 22:42:29
수정 2019-04-08 22: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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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실현과교육공공성강화를위한국민본부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투표시간 연장, 반값등록금 실현을 염원하는 1000배 퍼포먼스를 가졌다.
반값등록금실현과교육공공성강화를위한국민본부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투표시간 연장, 반값등록금 실현을 염원하는 1000배 퍼포먼스를 가졌다.ⓒ이승빈 기자
 2011년 5월~6월, 전국의 많은 대학생들은 ‘조건없는 반값등록금’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고액의 등록금이 대학생과 그들의 가족들을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졸업을 하고 나면 수천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 대출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인 청년들을 빚쟁이로 만들었다.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전국등록금네트워크(등록금넷)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 및 이명박 대통령 사과 촉구 비상대책회의’를 꾸려 야당과 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대학 등록금 문제’를 사회적 의제화 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정부는 이같은 사회적 압력을 받아 2011년 11월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2012년 국가장학금 사업 기본계획(안)’을 확정하고, 그 다음해부터 시행에 나섰다.  
‘반값등록금’이 이슈화 된 2012년 이후 2018년까지 다행히도 대학등록금은 거의 동결된 상태다. 그리고 ‘국가장학금’제도가 시행된 지 8년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대학생과 그 가족들은 국가의 지원 아래 등록금 부담의 고통에서 벗어났을까? 제도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은 없을까? 8일 국회에서 이같은 궁금증에 해답을 주는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 교육희망포럼과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공동 주최로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국가장학금 도입 8년, 등록금과 고등교육재정’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1996년 3월 29일 ‘등록금 동결과 교육재정 확보,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 투쟁’ 과정 중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연세대 노수석 열사의 23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 마련됐다. 23년 전 대학교 2학년 학생 노수석이 외쳤던 외침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학 현장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상태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 지차철역 인근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대통령 후보 선출의 날 '대학생 U 투표행쇼'에 모인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 지차철역 인근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대통령 후보 선출의 날 '대학생 U 투표행쇼'에 모인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승빈 기자
“국가장학금은 대학 등록금 부담 낮추는 대표 정책” 
학부 재학생의 42%가 국가장학금 지원받아 
 
이날 발제를 맡은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2012년 도입된 국가장학금은 2019년 현재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낮추는 대표적 정책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고액 등록금으로 고통 받는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완화해 준 것은 획기적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연 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1학기 기준 전체 대학 학부 재학생의 42%인 802,430명이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았으며, 30.6%에 달하는 584,701명은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지원받았다.(국가장학금Ⅰ유형, 다자녀장학금 합산) 국가장학금Ⅱ유형과 지역인재장학금을 포함하면 등록금 절반 이상을 지원받는 학생은 더욱 늘어난다. 여기에 각 대학의 교내장학금까지 더해지면 실제로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학비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2018년 12월 한국교육개발원의 대국민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1순위 고등·평생·직업 교육정책’으로 ‘대학생이 체감하는 등록금 부담 경감’이 가장 많이 선택됐다. 연 연구원은 이같은 결과가 “정부가 국가장학금을 더욱 확대해 정책 체감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짚었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국가장학금 도입 8년, 등록금과 교육재정'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2019.04.08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국가장학금 도입 8년, 등록금과 교육재정'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2019.04.08ⓒ민중의소리
절반 넘는 대학생은 국가장학금 한 푼 못 받아 
학자금 대출은 줄지만, 생활비 대출은 증가 추세
 
실제로 학비 부담을 줄여주는 국가장학금은 2018년 1학기 기준 전체 대학 학부 재학생 1,909,330명 중 69.6%만이 신청했고, 실제 지급받은 인원은 42.6%(813,318명) 수준이었다. 나머지 절반이 넘는 대학생들은 단 한 푼도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왜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했을까?
연 연구원은 그 이유를 ‘성적 기준’에서 찾았다. 2018년 1학기 국가장학금 탈락 사유를 보면, 정확한 탈락 사유를 알 수 없는 ‘기타(38.8%)’외에 가장 많은 비율인 27.5%의 학생이 ‘성적’을 이유로 탈락했다.  
현행 국가장학금 성적기준은 평균 B학점(80점)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선발될 수 있다. 2018년 일부 완화돼,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대학생의 경우 C학점(70점)이 되었다. 소득 1~3분위에 속하는 학생의 경우엔, 2회까지 평균 B학점 미만이라도 C학점 이상이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연 연구원은 이같은 현황에 대해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 부담을 줄여주는 국가장학금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연 연구원에 따르면,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국가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 학부생 학자금 대출’은 줄어들고 있다. 2018년 1학기엔 약 12만명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2954억)’을 받았다. 이는 2012년 1학기에 비해 4만 1천명(대출액은 2216억 감소)이 감소한 수치다. ‘일반 상환 학자금 대출’도 적지만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대학 학부생 생활비 대출’은 증가하고 있다. 2012년 1학기엔 995억이던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중 생활비 대출’은 2018년 1학기엔 1,314억으로 32.1% 증가했다. ‘일반 상환 학자금 대출의 생활비 대출’도 2012년 1학기에 203억원이던 것이, 2018년 1학기엔 473억으로 133.1% 증가했다.  
등록금 부담은 줄었지만, 학업을 지속하기 위한 생활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장학금
국가장학금ⓒ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
대학원생, ‘국가장학금’ 등 혜택 못 받아 
심지어 일반 학자금 대출에도 성적 제한
 
또 연 연구원은 ‘학부생’의 등록금 부담은 줄었으나, ‘대학원생’의 등록금 부담은 줄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전체 대학의 86%) 대학원생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OECD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비싸지만, 이들은 ‘국가장학금’과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일반 학자금 대출’은, 대출 이후 바로 이자를 납부해야 하고, 최장 거치 기간도 3~4년(석사 1년차, 군 미필자 기준)에 불과해 상환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건으로 대출해주면서도, 성적 제한 까지 있다.  
그럼에도 대출액은 증가추세다. 2018년 1학기 일반 학자금 대출 인원은 4만 5,012명, 대출액은 2,247억원에 달했다. 이는 2012년 1학기보다 인원은 7131명, 금액은 4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이같은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연 연구원은 ‘국가장학금 및 학자금 대출 제도 개선’을 위해 크게 3가지를 제언했다.  
우선, 국가장학금을 확대해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성적 기준을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는 2019년 1학기 학자금 대출금리가 2.2%(취업후 상환, 일반 상환)인 점을 지적하며, 2018년 11월 기준 금리가 1.75%인 점을 감안해 더 금리를 낮춰야 하고, 나아가서는 학자금 대출 무이자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학원생의 학자금 대출 증가세에 주목하며, 이들의 학비 부담을 경감시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최소한 이들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시 교육부 전경.
세종시 교육부 전경.ⓒ제공 : 뉴시스
성적 기준 완화는 도덕적 해이 조장할 수도.. 
국가장학금 확대엔 사회적 합의 필요해
 
이날 토론회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 당사자, 시민단체 인사, 국회와 교육부 관계자가 참석해, 국가장학금과 대학등록금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대학생을 대표해 참석한 이민하(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준) 3기 공동의장) 씨는 2018년 12월 감사원의 ‘국가장학금, 학자금 제도에 대한 정책 감사’ 결과를 사례로 들며, 국가장학금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이 씨는 “국가장학금 미수혜자 중 등록금 전액(국가장학금 연간 520만원) 지원 대상인 저소득층 48,000여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7.2%가 국가장학금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신청기간과 방법을 몰라 신청을 못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신입생의 경우 대학입시 일정을 감안하면 신청기간이 짧아 기간 내 신청하지 못한 우려도 있었다”고 감사결과를 설명했다.
또 ‘일반 학자금 대출’제도를 비판하며, “2017년 한 해 동안 일반 상환 대출자 38만 여명의 재학중 이자 부담액은 465억원이다. 2017년 말 기준 재학 중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인한 6개월 이상 장기연체자는 36,104명, 신용유의자는 11,485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더 많은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성적기준 완화, 중앙정부의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 등의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회 입법조사처 조인식 입법조사관은 “국가장학금 제도의 수혜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면서도, “제도의 수혜자를 늘리기 위한 성적 기준 완화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고, 학생, 학부모, 대학 관계자, 전문가, 관련 부처 등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김태경 교육부 대학재정장학과장 역시 “국가장학금이 소득연계형으로 설계돼, 받는 학생과 못 받는 학생의 격차가 크다”면서도 “국가장학금을 어느정도까지 확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지적한 홍보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뼈 아프다”며, “올해부터는 등록금 고지서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기게 했고, 신입생 OT나 각종 행사서 국가장학금을 안내하도록 조치했다. 또 고등학생들까지 홍보를 확대했다.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또 ‘일반 상환 대출’과 ‘취업후 상환 대출’을 통합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자금 대출 제로(0) 금리와 관련해선, 현재 채권을 발행해 학자금 대출을 조달하고 있는 만큼, 이를 매우려면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정당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금리가 인하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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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의 세 가지 '오판'

[장석준 칼럼] 21대 총선까지 남은 1년, 촛불 시민의 마지막 충고

20대 국회의 마지막 재보선이 끝났다. 정의당은 작년 7월 노회찬 의원이 떠난 이후 처음으로 환호했고, 자유한국당은 애써 패배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으며, 다른 정당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어쨌든 결과는 이미 나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읽어내는' 작업은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없다. 본래 선거 결과란 여러 사회 집단과 흐름, 세력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자료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제 다른 선거 없이 내년 이맘때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 결과는 각 정당이 총선을 준비하며 해독해야 할 소중한 자료다. 

이 점에서 어떤 정당이든 이 결과에서 '성취'보다는 '위기'를 읽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나는 굳이 정부-여당이 이번 선거의 패배자라 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 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후보에 표를 던져 정권에 항의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쇄도하는 바람에 경남의 두 선거구가 재보선 치고는 사뭇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진지한 해석이야말로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 패배를 피할 마지막 기회의 문이 될 것이다.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 기조를 결정한 3대 전략적 판단  
나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지자도 아니면서 정부-여당의 선거 결과 해독을 놓고 훈수 두는 게 좀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이 촛불 항쟁 이후 첫 총선임을 생각하면, 어색해보이더라도 개입을 안 하기 어렵다. 

촛불 이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고, 이 두 선거에서는 촛불 연합이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총선만 남았다. 총선에서도 촛불 연합의 힘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새 국회를 구성하는 수순만 남았다.  

한데 만약 이 선거에서 지난 두 선거와 영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촛불 항쟁의 의미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현 정부-여당이 과연 촛불 민심의 올곧은 대변자인지는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이지만, 그 반대편이 촛불 항쟁을 원천 부정하는 세력임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여당 지지자가 아니어도 촛불 시민으로서 뭔가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조기 대선으로 집권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본다. 이 3대 전략적 판단이 지난 2년간 국정 운영의 주된 흐름과 테두리를 결정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바로 이 판단들이 심각한 오판이라는 선고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커다란 패배가 기다린다는 마지막 경고다. 그럼 3대 전략적 판단이란 무엇인가? 

첫째, 현 국회 구도에서는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는 쪽이 낫다는 판단이다. 

조기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거치지 못한 채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다들 궁금해 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3년이나 남은 차기 총선까지 새 정부가 선택할 국정 운영 기조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당시는 촛불 항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아 개혁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반면 국회는 촛불 이전에 실시된 총선의 산물이어서,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들이 여전히 다수였다. 즉, 정부-여당의 입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도였다. 새 정부는 이 딜레마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돌파할 것인가? 

말들이 많았다. 여당이 협상과 연합의 정치에 적극 나서서 정의당, 국민의당에다 바른정당까지 더한 원내 촛불 최대 연합을 결성해야 개혁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조언이 가장 많았다. 더 나아가 자유한국당까지도 진지한 협상 대상으로 삼아 견인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왼쪽으로는 정의당을 포함하는 연립정부가 시도될 수 있다고 넘겨짚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실제 보여준 선택은 너무나 단순했다. 정부-여당은 국회 입법 절차가 필요한 개혁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다들 어려우리라 예상한 국회 정치를 그냥 포기해버렸다. 촛불 이후 민심과 촛불 이전 선출 국회 사이의 어긋남을 해결하려 시도하기보다는 그저 우회해버린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현 정부 개혁 정책의 상징처럼 된 사연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부-여당이 사회 개혁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신호탄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꺼내든 것은 소득 주도 성장에 끼칠 영향에 관한 무슨 심오한 고민이나 구상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이 주된 이유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개헌 시도가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부-여당의 개혁 전략(그런 게 있었다면)이 결코 진지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에 제출하는 거의 첫 번째 안건으로 개헌안을 내밀었다. 과반 동의를 얻으면 되는 법안 통과도 쉽지 않은 국회인 줄 빤히 알면서 의결 정족수가 2/3 이상인 개헌안부터 냈다. 정말 통과를 염두에 둔 개헌 시도였을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이런 행태의 밑바탕에는 20대 국회의 남은 임기를 어떻게 넘길지에 관한 정부-여당의 분명한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판단이다. 이 국회에서는 개혁을 성사시킬 수도 없고, 무리하게 이를 추진할 이유도 별로 없다. 섣불리 실험을 벌이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치중하며 21대 총선을 맞는 게 낫다. 정치보다는 행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3년을 보내더라도 21대 총선은 분명 조기대선과 지방선거에 뒤이은 또 다른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심판 선거가 될 것이다.  

3년이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현실 관리 중심의 국정 기조로 이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정부-여당은 지금 그 2년차 성적을 받아들고 있다.  

둘째 판단은 한반도 평화 실현이 중심 과제이고 이것만 잘 되면 국내 정치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전쟁 위험을 걷어내고 북미 대화 국면을 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기대 이상의 행보였다. 그래서 2018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개혁은 고사하고 퇴행이 곳곳에서 나타나는데도,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그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는 그만큼 중대했다. 한국 사회의 다른 모든 문제는 그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우리는 더욱더 실감하는 중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평화 노력에는 처음부터 어떤 그림자도 있었다. 그것은 평화 노력을 뒷받침할 국내 기반이 여전히 기대만큼 굳건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비핵화 협상은 북한과 미국이 주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남한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미 협상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을 운명이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이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대화 지속을 강력히 압박할 국내 여론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평화의 대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았다. 

몇 가지 조짐이 이미 있었다. 가령 평창 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이 있었다.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하지만 공정성 문제, 청년 문제 등이 불거지던 촛불 직후 한국 사회에서 이 시도는 전혀 예상 못한 방향의 논란으로 비화됐다. 흔들리지 않는 평화 국면의 구축이 국내 사회 개혁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런 신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가 경제"라거나 "평화가 민생"이라는 식의 구호만 반복했다. 여기에는 정부-여당의 또 다른 중대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한반도 평화 협상이 착착 진행되는 한, 국내 정치는 그 종속 변수일 뿐이라는 판단이다. 남북미 대화의 기대가 가장 높았던 시점에 실시된 작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이런 판단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미 대화는 난관에 부딪힌 상태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로 하락한 근본 이유는 결국 이것이다. 이 상황에서 집권 세력은 과연 무엇으로 반전을 시도할 것인가? 오로지 북한과 미국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가?  

지난 2년간을 지배한 정부-여당의 전략적 판단은 잘못됐다 

마지막으로 검토할 정부-여당의 전략적 판단은 더불어민주당의 장기 집권 전략과 직결돼 있다. 그것은 위 두 판단을 바탕으로 정국을 운영하면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층 상당수를 흡수해 한국 사회의 장기 집권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방선거 이후 여당 일각에서는 "20년 집권"이니 "100년 집권"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가올 총선을 지극히 낙관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재연하는 총선 결과가 거의 정해져 있다는 식이다.  

승리의 기본 전제는 바로 위의 두 전략적 판단, 즉 찬반 격론을 불러올 수 있는 개혁 조치는 되도록 피하고 한반도 평화 협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껏 새누리당 계열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으로 흡수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의 여론조사에서는 실제 그런 양상이 일부 나타났다. 50%에 치달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옛 새누리당 지지층의 구심력 와해와 일부 유입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개혁 조치에는 미온적이던 정부-여당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억제하는 반동 개혁에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통해 진보층 일부의 지지를 잃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옛 새누리당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으며, 그게 더 바람직하다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정치 스펙트럼 내 중앙의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정당들에게는 왼쪽과 오른쪽의 잔여 공간만 남기는 정당 구도를 만들려 한다. 이것이 이른바 "20년 혹은 30년 장기 집권 정당"의 공간적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전략은 먹히고 있는가?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줄어드는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점점 촛불 이전 수준에 근접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양당 구도가 복원되고 있다. 보수층은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되거나 심지어는 바른미래당을 선택하기보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 현 정부 반대 민심이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는 한 마디로 촛불 항쟁의 효과가 무(無)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결론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2년간 일관되게 보여 온 모종의 전략적 지향과 행보는 실패하고 있다. 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는 3대 전략적 판단은 오류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명확한 사실 때문이다.  

첫째,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의 침체 국면이다. 주기적 불황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 아니면 장기 불황의 초입이라 해야 할지는 쟁점이지만, 아무튼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간은 호황 국면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심을 정부 반대편으로 이끄는 중력이 작동한다. 더구나 정부가 이 중력을 상쇄하는 조치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두 번째 이유가 뒤따라 나온다. 정치 세계에서 상황을 단지 고수하려는 세력은 수동적 입장에 머물게 되고 수동적 정치 세력에게는 실패가 예정돼 있을 뿐이다. 반면 가장 저열한 수준에서라도 뭔가 정치 행위를 지속하는 정치 세력은 단기간이나마 주도권을 쥐게 된다. 총선을 1년 앞둔 지금이 그런 국면이다.  

1년, 반격에는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내년 총선이 촛불 항쟁의 최종적 실패로 귀결되지 않게 막으려면 정부-여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해오던 바의 정반대로 하면 된다. 관리 정부에서 개혁 정부로 돌아서면 된다. 북미 협상만 바라보기보다는 국내 개혁을 병행하면 된다. 

우선 뒤늦게나마 사회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일단은 복지 혜택을 늘리는 조치에 전념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자유한국당도 쉽게 반대할 수 없다. 가령 기초연금을 조기 인상해 현실화하거나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확충에 착수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장벽은 오직 경제 관료와 보수 언론의 균형재정 이데올로기를 돌파하지 못하는 정부-여당 자신의 소심함뿐이다.  

또한 개혁 공세를 통해 적극적인 국회 정치를 펼쳐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사법 개혁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한 방안이 현재 지지부진하기는 하지만, 이는 앞으로 1년간 국회에서 반복돼야 할 세력 구도와 대립 전선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한 대화의 정치를 시도할 때는 지났다. 극우화한 자유한국당과 정면 대립하길 두려워하지 말고 개혁 연합을 밀고 나가야 한다.  

단, 자유한국당과 대치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혁 입법을 실제 관철해야 한다. 그러자면 원내 최대 연합을 구축할 수 있도록 개혁 내용을 최소 합의 수준에 맞추길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극우 세력을 합리적 여론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촛불 계승 연합이 '유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보다 먼저 결단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노동법 개악과 같이 기득권층의 환심을 사려던 정책을 즉각 중단하는 일이다. 그런다고 보수층을 흡수하지도 못한다. 보수층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오히려 정부-여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 다시 관심과 지지를 표할 것이다. 이것이 촛불 국면에서 작동한 동학(動學) 아니었는가. 

이제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딱 1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국정 운영 기조를 지속한다면, 쏜살같이 지나갈 시간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조를 과감히 추진한다면, 결코 부족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다. 충분히 반전이 가능하다. 10년 같은 1년이 될 수 있다.  

정부-여당은 재보선 결과가 던지는 이 마지막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이 정권의 부침에 공동의 운명으로 엮여 있는 촛불 시민들이 던지는 마지막 충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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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취재거부, 이유 없는 일일까


[비평] 집회현장 기자 폭행에 잇딴 규탄 성명… 본질 사라진 노조 혐오 보도 되돌아봐야
송창한 기자 | 승인 2019.04.08 13:14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민주노총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와 관련해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MBN 촬영기자가 발목을 접지르고, TV조선 기자가 밀려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MBN·TV조선 기자협회를 비롯,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민주노총에 항의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정언론사에 대한 취재거부가 언론인에 대한 폭행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금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다. 
취재기자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협회 등이 폭행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민주노총 측도 "일어나선 안될 일이 벌어졌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왜 이 같은 사태가 반복해서 발생하는지에 대해 언론계 역시 따져볼 부분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의 취재거부를 유발한 특정 언론의 보도태도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지 않고 일방적인 유감입장만을 표명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저널리즘의 원칙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4월 3일자 MBN '뉴스8', 4월 4일자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3일 민주노총은 국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에 항의하며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를 참관하기 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경찰 간 대치가 격화됐고, 현장을 취재 중이던 MBN 촬영기자가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발목을 접지르는 부상을 입었다. TV조선 기자에 대한 폭행은 경찰서에서 발생했다. 집회 과정에서 김명환 위원장 등 민주노총 조합원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TV조선 기자는 김 위원장에게 “집회가 과격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조합원 3명이 취재영상 삭제를 요구하며 기자를 밀었고, 기자는 넘어졌다. MBN 기자와 TV조선 기자는 전치 2주 판정을 받고 경찰에 폭행 신고를 접수했다.
전국언론노조 MBN지부, MBN·TV조선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잇따라 민주노총에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 MBN지부는 민주노총에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및 집회 현장에서의 취재 자유 보장 등 적극적 조치를 촉구했다. MBN 기자협회와 TV조선 기자협회는 그동안 민주노총의 취재거부와 집회 현장에서의 위협이 적지 않았다며 취재거부는 취재원의 권리로서 존중하지만, 폭행은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59개 방송사, 3천 여명의 방송기자들이 소속된 방송기자연합회는 한 발 더 나아가 민주노총을 '과거 군부독재 하수인'에 비유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성명에서 "박정희 독재시절, 동아투위 선배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의 결의사항은 '언론인을 불법 연행 폭행하지 말라'였다"며 "수적 우세를 이용해 집회를 취재 중인 기자를 폭행한다면 과거 군부독재의 하수인들과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현직 기자 1만 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기자협회도 “취재기자를 폭행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헌법에 의해 언론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단지 불편한 관계, 다른 관점의 보도를 이유로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번 민주노총 일부 조합원들의 취재기자 폭행에 유감을 표명하며 기자들에 대한 폭행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을 밝힌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의 비판처럼 취재기자에 대한 폭행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MBN·TV조선 기자협회의 취재거부 권리를 존중한다는 입장 정도를 제외하면 이들의 비판 성명에서 사태발생의 근본 원인, 즉 특정언론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짚어보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기자협회가 언급하고 있는 '다른 관점의 보도'는 무엇이기에 이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4월 3일자 MBN '뉴스8', 4월 4일자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사태가 발생한 3일 MBN 종합메인뉴스 '뉴스8'의 관련 리포트는 민주노총과 특정매체 간 갈등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MBN은 민주노총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와 관련해 총 4건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우선 민주노총의 시위를 '폭력시위'로 규정한 리포트가 이 중 첫머리에 자리했다. 민주노총 집회 현장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장면들과 이에 대한 해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경찰 연행 내용이 대부분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주 52시간이 무력화된다는 입장이다'라는 문구가 민주노총 입장의 전부다.
이어 국회 환노위에서 이뤄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가 합의에 실패했다는 '단신' 뉴스가 전해진다. 남은 두 꼭지는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유달리 민주노총에서 폭력사고가 많이 난다"는 앵커멘트와 함께 민주노총 소속 MBN기자 폭행사태와 MBN노조·기자협회의 강력 항의 소식으로 채워졌다. 
이 날 MBN 뉴스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층위와 맥락, 쟁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국회 환노위 합의 불발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야의 입장차이마저 전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폭력성'으로 점철된 보도였다. 
같은 날 TV조선 종합메인뉴스 '뉴스9'도 <국회 담장 부순 민노총…김명환 위원장 연행>리포트에서 "민주노총은 이렇게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며 조합원 경찰 연행 소식을 전했다. MBN 보도와의 차이점은 조합원 연행에 대한 민주노총 측의 반응과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여야의 입장을 짧게나마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행된 조합원들이 석방된 4일, TV조선은 석방 소식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었다. '민주노총 공화국', '민주노총의 국정농단' 등의 발언 인용이 이어졌다. 뒤이어 TV조선 기자에 대한 폭행사태와 한국기자협회의 비판 성명 소식도 함께 전했다. 같은 날 MBN 역시 '민주노총 공화국'이라는 한국당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했다. 
민주노총은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 매일경제, TV조선, 채널A, MBN 등 8개 매체에 취재제한을 두고 있다. 보수·경제 매체다. 각 사별로 짧게는 7년, 길게는 20년째 취재제한이 지속된 상태다. 취재에 응한다 한들 이들 언론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고, 정해진 논조로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노조 MBN지부는 "지부는 그간 종편 출범 이후 민주노총이 MBN에 대해  취한 취재거부 조치를 풀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같은 노동자로서 동지의식을 가지고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에 적극 참여했고, 민주노총 측에도 여러 차례 대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한 것"이라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MBN지부의 '백방의 노력'이 취재거부의 근본원인이 되는 MBN 보도에도 미쳤는지 의문이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폭행 사태와 특정 매체들의 보도태도에 대해 "기자분들에 대한 폭력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보수·경제매체 중심으로 민주노총의 폭력성 문제를 얘기하는데, 어떤 집회와 시위를 하건 집회시위를 하는 이유나 주장을 담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노린다. 이 같은 보도행태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보수매체는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싼 임금, 장시간 노동'을 장려하는 식으로 보도하고, 경제매체는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다"며 "민주노총 주장의 합당함이나 그 주장의 내용을 싣는 게 아니라 답을 정해놓고 묻는 행태가 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민주노총은 향후 집회현장에서 집회 시작 전과 중간에 공지를 통해 취재제한 매체들에 양해를 구하고, 기자들에 대한 폭행금지 안내를 실시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의 변화가 없다면 특정매체들에 대한 민주노총의 취재제한과 집회 참가자들의 거부감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사태와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성찰과 노력도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가임기 여성과 갓난아이 시신 수백구..." 목격자들도 충격

19.04.08 21:03l최종 업데이트 19.04.08 21:03l






 아산시 배방읍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아산시 배방읍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어설프게 묻은 사체 일부와 옷가지 등이 땅 밖으로 노출돼 있었다. 그 주변에서 어린아이가 밤새 울다 지쳐 죽었다." - 증언 1
"산에 칡뿌리를 캐러 갔는데 사체가 방공호를 따라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부패한 시신이 나뒹굴고 악취가 진동했다." - 증언 2
"산에 나무하러 간 아이가 너무 무섭다고 도망쳤다. 곳곳에 삐져나온 해골바가지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증언 3


2018년 봄 설화산에서 부녀자와 아동, 노인 가리지 않고 학살당한 참혹한 현장이 공개됐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8구의 유해가 수습됐다.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 89점과 구슬을 비롯한 아이들 장난감이 다수 발견됐다. 감식 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성인 남성은 19구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인민군 부역 혐의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는 주로 20~3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설화산에서 확인된 희생자 상당수는 가임기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발굴에 직접 참여한 전문 인력과 현장을 찾았던 봉사자 등은 60여 년 전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까지 북한군 부역 혐의로 지목받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 진상조사와 재판 없이 무참하게 총살당하고 흉기에 찔려 죽었다. 

67년 만에 양지로 나온 유골들은 민간인학살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민간인학살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아산시에서 최소 8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산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을 계속할 예정이다.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작전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현장
▲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1950년 9월 26일(음력 8월 15일) 미군 기갑사단은 대전과 조치원을 차례로 수복했다. 이들이 천안을 통과해 서울로 진격할 것이라는 소식이 아산 지역에 퍼졌다.

아산지역 부역자 처벌은 1950년 9월 26일~27일 미군이 천안을 지나던 무렵부터 각 읍·면 치안을 맡았던 치안대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9월 29일 온양 경찰이 복귀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민간인 희생의 가해자는 온양 경찰과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의용 경찰,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등 치안대였다. 온양 경찰은 사찰계에서 주도해 부역 혐의자를 체포해 가두고 조사와 처벌까지 감행했다.

각 지서에는 본서에서 파견한 사찰 경찰이 지서 주임과 소속 순경 등과 함께 부역자를 분류해 처벌했다. 부역 혐의자 체포는 주민들의 증언이나 밀고로 이뤄졌고 조사과정에서 구타, 전기고문 등은 예삿일이었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았다. 희생 규모도 경찰서장이나 해당 지서 주임의 재량에 따라 달라졌다. 처형이 집행될 때는 경찰의 인솔로 치안대원들이 부역 혐의자들을 처형장소로 끌고 가 총살했다.

마을주민‧일가족 몰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명에 불과했다.
▲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명에 불과했다.
ⓒ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구에 불과했다.
▲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구에 불과했다.
ⓒ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공동조사단의 조사와 생존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을 보면 한국전쟁 중 부역자 외에도 이웃이 이웃을 밀고하고,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죽고 죽이는 억울한 죽음이 수없이 저질러졌다.

1950년 12월 초 배방면 북수리 4구에 살던 김석남씨는 온양경찰서에 수용됐다가 살해당했다. 앞서 김씨는 북수리 이장 곽세영씨의 공출 착복 사실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전쟁이 나자 청년방위대 소대장인 곽씨의 사위 정아무개씨가 김석남과 그 가족을 '빨갱이'로 몰아 김씨를 비롯해 일가족 5명을 살해했다.

의용군으로 징집 나간 방씨 가족 5명, 의용군으로 징집된 부친을 둔 성낙구씨 가족 5명, 엄진섭씨와 그 처가 살해당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1951년 1월 초 배방면 장재리에서는 양대운씨와 처 이만순, 딸 양춘자와 양영순, 아들 양구창과 양춘호, 임신 중이던 양대운씨의동생 양대록의 처 윤순희, 그의 자녀인 유아 2명 등 일가족 10명이 모두 참변을 당했다.

1951년 1월 5일 배방면 세교리 1구에서는 전달석과 모친 유아무개씨, 형 전윤옥과 전준옥, 형수 박아무개씨와 심아무개씨, 조카 전해달·전해광·전해자·전해종, 미작명 영아 1명 등 가족 11명도 경찰의 지시로 배방면사무소 창고에 감금됐다가 살해당했다. 이들은 전윤옥과 전준옥의 인민위원회 활동 혐의로 몰살당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세교리 주민 30여 명도 연행돼 총살됐다.

당시 전달석의 동생 전유는 전해천, 김병학 등 세교리 주민과 서울에서 피난 왔던 이광수와 함께 처형장소로 가던 중 도망쳐 생존했다.

배방면 창고는 1·4후퇴(1951년 중공군의 공세에 따라 정부가 수도 서울에서 철수한 사건)시기에 배방면 주민들을 감금했던 곳이다. 부역 혐의자 가족들은 별도로 관리하고, 도민증 발급을 이유로 야간에 연행했다. 감금 기간은 보통 2~3일 정도였다. 1950년 12월 창고 보초를 섰던 임아무개씨는 주민들이 밤에 연행됐고 맞거나 발가벗겨지는 것을 목격했다. 임씨에 따르면 보초를 섰던 당시 40~50명의 주민이 갇혀 있었고 부녀자, 노인, 유아는 물론 갓난아기까지 포함돼 있었다.

임씨는 당시 시체 썩는 냄새가 지독해 일하지 못했고, 결국 땅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1951년 1월 초 치안대원들이 주민 60~70명을 연행해 감금했다고 증언했다. "사람들이 '장날 소떼 엮이듯' 새끼줄로 묶인 채 끌려가 배방면 성재산 방공호에서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1951년 1월 7~8일 배방면 향토방위대가 면내 10여 개 마을주민 남녀노소 300여 명을 곡물창고에 집합시킨 후 저녁에 새끼줄로 묶어 성재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고 증언했다.

탕정면 용두리, 염치읍 대동리 유해발굴 계속
 
 한국전쟁 당시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한국전쟁 당시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2018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  2018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아산시는 올해 탕정면 용두리와 염치읍 대동리 새지기 일원에서 유해발굴을 이어갈 예정이다.

9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탕정면 용두리와 염치 대동리 새지기, 두 곳은 생존자 증언에 따라 일부 현장 조사를 마친 상태다. 주민들은 탕정지서와 면사무소 곡물창고 등으로 연행했다가 용두리와 대동리 야산에서 처형당했다.

아산시유족회 조사에 따르면 탕정면 희생자 유족은 70여 명이다. 희생자보다 유족이 적은 이유는 노인부터 갓난아기까지 부역 혐의자의 가족 전원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유족이 있더라도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 고향을 떠나야 했다. 생존한 유족들은 그동안 시신 수습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먼발치에서 술 한 잔 올리고 돌아서는 것조차 숨어서 해야 했다.

탕정면과 염치읍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다수의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살해 도구로 총칼뿐만 아니라 농기구와 죽창 등을 사용해 더욱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아산시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사건 유해발굴사업을 위해 2018년 지방보조금 예산 1억1400만 원을 의회로부터 승인받았다. 전국지방자치단체 중 유해발굴사업을 직접 지원한 사례는 아산시가 처음이다.

"생존자들은 잊히기만을 강요당해왔다"
 
 홍남화 회장은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역사를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불편해 하는 분들도 많다”며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매래는 없다’고 했던 신채호 선생님의 말처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산시민의 동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홍남화 회장은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역사를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불편해 하는 분들도 많다”며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매래는 없다’고 했던 신채호 선생님의 말처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산시민의 동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생존자들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잊히기만을 강요당해 왔다." 

홍남화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회장이 탕정면과 염치읍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을 앞두고 한 말이다.

홍남화 회장은 "갈수록 매장지 위치를 찾기가 어렵고, 도시개발과 도로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유해발굴이 불가능한 곳도 많다"며 "한국전쟁 당시를 목격한 생존자의 증언을 듣기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전수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역사를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불편해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산시민의 동행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는 일반 주부부터 회사원, 교사, 학생,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아산지역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일제 잔재 청산, 독립운동사 발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한국전쟁 아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충남시사신문>은 아름다운사회건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이나 단체를 찾아가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소개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2년째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을 추진중인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