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5일 금요일
겨울 바다, 흰줄박이오리는 파도를 탄다
윤순영 2019. 01. 25
조회수 454 추천수 1
단열 뛰어난 깃털…파도 뚫고 잠수해 먹이 사냥하는 드문 겨울 철새
» 겨울 바다 파도를 타며 먹이를 찾는 흰줄박이오리 수컷.
강원도 고성 토성면 아야진을 몇 차례 다녀왔다. 겨울 철새 흰줄박이오리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움직이는 자연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날그날의 날씨와 환경이 맞아야만 해, 이 새를 만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1월18일 앙증맞은 흰줄박이오리를 만났다.
» 아침 햇살에 물든 파도.
해뜰 무렵부터 흰줄박이오리를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파도마저 높고 거센 바람이 시야를 가려 관찰이 쉽지 않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퍼런 물결은 냉기를 더한다. 성난 파도가 쉬지 않고 모래사장을 향해 달려든다.
» 온종일 거센 파도가 쉬지 않고 친다.
흰줄박이오리는 거침없이 거센 파도를 이용해 잠수한다. 이런 날이라야 바닷물이 뒤집히며 만족스럽고 풍부한 먹이를 파도가 운반해 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에도 익숙한 솜씨로 사냥하는 흰줄박이오리야말로 파도를 다스리는 동물이다.
» 파도를 뛰어 넘는 흰줄박이오리.
» 먼 바다에서 돌아와 바위에서 휴식하는 흰줄박이오리들.
오후 1시께 흰줄박이오리가 보인다. 파도를 피해 바위에 올라선다. 이름 대로 흰색 줄무늬가 유난히 눈에 띈다. 하나둘씩 모여들어 모두 7마리의 흰줄박이오리가 바위에 앉았다. 서로 아주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도 영역을 지키려는 몸짓 언어가 긴장감을 돌게 한다.
온종일 집채만 한 파도와 싸워가며 생활하는 흰줄박이오리의 수영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지만 아야진 먼바다에서 잠수하여 작은 게, 패류, 갑각류, 무척추동물 등을 잡아먹는 일이 이들에게도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 거센 파도 속에서 먹을거리를 건져낸 흰줄박이오리.
» 흰줄박이오리들은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리싸움을 한다.
휴식은 필수적이다. 아야진항 가까운 곳의 나지막한 바위는 흰줄박이오리의 휴식처로 적합하다. 운동장처럼 넓은 바위는 파도가 마지막으로 쉬는 곳이라 홍합이 자리 잡았다. 해조류가 풍부하고 파도에 실려 오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주민들도 이곳으로 낚싯대를 들고나온다. 홍합을 따거나 파도에 밀려온 해조를 줍곤 한다. 하물며 새들이 이런 천혜의 환경을 모를 리 없다. 사람과 새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는 흰줄박이오리.
» 바다로 뛰어드는 흰줄박이오리 수컷.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후 4시께 바위에서 휴식하던 흰줄박이오리가 하나둘 바다로 뛰어든다. 거센 파도를 물리치며 먹이 사냥에 나섰다. 파도와 맞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잠수하여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잠수성 오리답다. 잠수성 오리들은 파도타기의 명수다. 주변에 있는 수면성 오리인 홍머리오리나 청둥오리는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 수면성 오리인 홍머리오리.
» 흰줄박이오리가 바다로 뛰어들자마자 파도를 만났다.
휴식터 인근 바위에서 사냥하던 흰줄박이오리들이 먼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먹잇감이 있나 보다. 흰줄박이오리는 몸길이 43㎝로, 45㎝인 원앙보다 약간 작다. 원앙처럼 금실이 좋으며 행동하는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부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내며 사냥을 즐긴다.
» 거센 파도를 여유롭게 즐긴다.
수컷은 전체적으로 검은 회색이며 부리 위, 머리, 눈 뒤, 목 앞 뒷부분, 가슴에 흰 줄무늬가 있다. 특색 있는 무늬다. 옆구리의 붉은빛 감도는 밤색이 인상적이다. 부리는 회색빛이고, 다리는 갈색이다. 암컷은 어두운 갈색 몸에 눈 주위로 세 개의 흰점이 있다. 부부가 함께 있으면 암수의 깃털 색이 조화를 이룬다.
» 파도타기 명수임이 틀림없다.
» 흰줄박이오리는 부부가 언제나 함께한다.
흰줄박이오리는 잠수하기 전에 주변을 신중히 살핀다. 잠수를 마치고 나올 때 위험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조심성이 많아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특히 눈치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잠수하기 전보다 매우 민첩한 행동을 보여 언제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다. 마치 코르크 마개가 물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다. 몸집이 작은 이 오리는 단열을 위해 깃털이 매우 빽빽하게 나 있다. 털 속에 공기를 많이 머금기 때문에 부력이 커, 물속에서 총알처럼 빠르게 나온다.
» 항상 주변을 살핀다.
물이 흐르는 산림 계곡에서 번식하고 서식하며, 둥지는 물가 바위틈, 풀숲의 땅 위에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다. 알을 낳는 시기는 5~8월이다. 노르스름한 빛이 옅게 도는 흰색 알을 4~8개 낳아 28~29일간 품으며 그동안은 거의 울지 않는다.
» 거센 파도지만 여유롭게 파도타기를 하는 흰줄박이오리.
» 다정한 흰줄박이오리 부부.
새끼들은 부화 후 둥지에서 바로 이소하며 어미와 함께 물길을 따라 이동한다. 새끼들은 2~3년이면 번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번식하며 캄차카,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쿠릴 열도 북부, 알류산 열도, 알래스카, 북아메리카 등이 번식지다.
» 필요한 먹을거리를 찾아 먼 바다로 나간다.
» 암컷 흰줄박이오리가 수컷 흰줄박이오리를 앞서간다.
흰줄박이오리는 월동을 했던 장소를 해마다 찾아온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새가 먼저 떠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다. 바닷가에 암석이 많은 우리나라 고성, 양양, 속초, 울진, 포항 등의 동해안과 사천만, 부산, 울산 등의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 해안에서 월동한다.
» 우리나라에는 매우 적은 수의 흰줄박이오리가 찾아와 월동을 한다.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개체 수는 적으며, 2000년 동해안 10개체, 2001년 동해안 37개체, 2004년에 60여 개체, 2006년 66개체, 2008년 130여 개체, 2010년 30여 개체로 지난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개체 수는 적으며, 2000년 동해안 10개체, 2001년 동해안 37개체, 2004년에 60여 개체, 2006년 66개체, 2008년 130여 개체, 2010년 30여 개체가 관찰됐다. 지난 10년 간 개체 수는 전반적으로 증가했으나 불규칙적이다(환경부 1999~2010). 적은 수의 흰줄박이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아오지만, 어망에 걸려서 익사하는 경우가 있으며, 기름 유출에 의한 오염도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 겨울 바다 파도를 타며 먹이를 찾는 흰줄박이오리 수컷.강원도 고성 토성면 아야진을 몇 차례 다녀왔다. 겨울 철새 흰줄박이오리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움직이는 자연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날그날의 날씨와 환경이 맞아야만 해, 이 새를 만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1월18일 앙증맞은 흰줄박이오리를 만났다.
» 아침 햇살에 물든 파도.해뜰 무렵부터 흰줄박이오리를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파도마저 높고 거센 바람이 시야를 가려 관찰이 쉽지 않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퍼런 물결은 냉기를 더한다. 성난 파도가 쉬지 않고 모래사장을 향해 달려든다.
» 온종일 거센 파도가 쉬지 않고 친다.흰줄박이오리는 거침없이 거센 파도를 이용해 잠수한다. 이런 날이라야 바닷물이 뒤집히며 만족스럽고 풍부한 먹이를 파도가 운반해 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에도 익숙한 솜씨로 사냥하는 흰줄박이오리야말로 파도를 다스리는 동물이다.
» 파도를 뛰어 넘는 흰줄박이오리.
» 먼 바다에서 돌아와 바위에서 휴식하는 흰줄박이오리들.오후 1시께 흰줄박이오리가 보인다. 파도를 피해 바위에 올라선다. 이름 대로 흰색 줄무늬가 유난히 눈에 띈다. 하나둘씩 모여들어 모두 7마리의 흰줄박이오리가 바위에 앉았다. 서로 아주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도 영역을 지키려는 몸짓 언어가 긴장감을 돌게 한다.
온종일 집채만 한 파도와 싸워가며 생활하는 흰줄박이오리의 수영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지만 아야진 먼바다에서 잠수하여 작은 게, 패류, 갑각류, 무척추동물 등을 잡아먹는 일이 이들에게도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 거센 파도 속에서 먹을거리를 건져낸 흰줄박이오리.
» 흰줄박이오리들은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리싸움을 한다.휴식은 필수적이다. 아야진항 가까운 곳의 나지막한 바위는 흰줄박이오리의 휴식처로 적합하다. 운동장처럼 넓은 바위는 파도가 마지막으로 쉬는 곳이라 홍합이 자리 잡았다. 해조류가 풍부하고 파도에 실려 오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주민들도 이곳으로 낚싯대를 들고나온다. 홍합을 따거나 파도에 밀려온 해조를 줍곤 한다. 하물며 새들이 이런 천혜의 환경을 모를 리 없다. 사람과 새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는 흰줄박이오리.
» 바다로 뛰어드는 흰줄박이오리 수컷.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후 4시께 바위에서 휴식하던 흰줄박이오리가 하나둘 바다로 뛰어든다. 거센 파도를 물리치며 먹이 사냥에 나섰다. 파도와 맞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잠수하여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잠수성 오리답다. 잠수성 오리들은 파도타기의 명수다. 주변에 있는 수면성 오리인 홍머리오리나 청둥오리는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 수면성 오리인 홍머리오리.
» 흰줄박이오리가 바다로 뛰어들자마자 파도를 만났다.휴식터 인근 바위에서 사냥하던 흰줄박이오리들이 먼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먹잇감이 있나 보다. 흰줄박이오리는 몸길이 43㎝로, 45㎝인 원앙보다 약간 작다. 원앙처럼 금실이 좋으며 행동하는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부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내며 사냥을 즐긴다.
» 거센 파도를 여유롭게 즐긴다.수컷은 전체적으로 검은 회색이며 부리 위, 머리, 눈 뒤, 목 앞 뒷부분, 가슴에 흰 줄무늬가 있다. 특색 있는 무늬다. 옆구리의 붉은빛 감도는 밤색이 인상적이다. 부리는 회색빛이고, 다리는 갈색이다. 암컷은 어두운 갈색 몸에 눈 주위로 세 개의 흰점이 있다. 부부가 함께 있으면 암수의 깃털 색이 조화를 이룬다.
» 파도타기 명수임이 틀림없다.
» 흰줄박이오리는 부부가 언제나 함께한다.흰줄박이오리는 잠수하기 전에 주변을 신중히 살핀다. 잠수를 마치고 나올 때 위험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조심성이 많아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특히 눈치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잠수하기 전보다 매우 민첩한 행동을 보여 언제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다. 마치 코르크 마개가 물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다. 몸집이 작은 이 오리는 단열을 위해 깃털이 매우 빽빽하게 나 있다. 털 속에 공기를 많이 머금기 때문에 부력이 커, 물속에서 총알처럼 빠르게 나온다.
» 항상 주변을 살핀다.물이 흐르는 산림 계곡에서 번식하고 서식하며, 둥지는 물가 바위틈, 풀숲의 땅 위에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다. 알을 낳는 시기는 5~8월이다. 노르스름한 빛이 옅게 도는 흰색 알을 4~8개 낳아 28~29일간 품으며 그동안은 거의 울지 않는다.
» 거센 파도지만 여유롭게 파도타기를 하는 흰줄박이오리.
» 다정한 흰줄박이오리 부부.새끼들은 부화 후 둥지에서 바로 이소하며 어미와 함께 물길을 따라 이동한다. 새끼들은 2~3년이면 번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번식하며 캄차카,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쿠릴 열도 북부, 알류산 열도, 알래스카, 북아메리카 등이 번식지다.
» 필요한 먹을거리를 찾아 먼 바다로 나간다.
» 암컷 흰줄박이오리가 수컷 흰줄박이오리를 앞서간다.흰줄박이오리는 월동을 했던 장소를 해마다 찾아온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새가 먼저 떠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다. 바닷가에 암석이 많은 우리나라 고성, 양양, 속초, 울진, 포항 등의 동해안과 사천만, 부산, 울산 등의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 해안에서 월동한다.
» 우리나라에는 매우 적은 수의 흰줄박이오리가 찾아와 월동을 한다.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개체 수는 적으며, 2000년 동해안 10개체, 2001년 동해안 37개체, 2004년에 60여 개체, 2006년 66개체, 2008년 130여 개체, 2010년 30여 개체로 지난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개체 수는 적으며, 2000년 동해안 10개체, 2001년 동해안 37개체, 2004년에 60여 개체, 2006년 66개체, 2008년 130여 개체, 2010년 30여 개체가 관찰됐다. 지난 10년 간 개체 수는 전반적으로 증가했으나 불규칙적이다(환경부 1999~2010). 적은 수의 흰줄박이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아오지만, 어망에 걸려서 익사하는 경우가 있으며, 기름 유출에 의한 오염도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당신도 믿지 않았던 일... 대하드라마가 된 '사법농단'
2년 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법원이 판사를 뒷조사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법부 자체 조사 보고서에도 법원행정처가 어떤 판사와 어떤 모임의 동향을 살폈고, 행정부 눈치를 보거나 부적절한 판단이 있었다는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결국 이 많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진술들이 2019년 1월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켰다. 사법신뢰는 그 사이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사법신뢰의 회복은 사법농단 사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결정적 장면 6가지를 꼽았다.
[장면 ①] 사표 한 장이 불러일으킨 태풍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으로 막 파견된 이탄희 판사가 급작스레 사표를 냈다. 법원행정처는 그를 발령 11일 만에 원래 근무지,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복귀시켰다. '출세의 길'로 알려진 자리를 버린 이 판사도, 곧바로 그를 돌려보낸 법원행정처도 이례적이었다.
그해 3월 초, 이 판사가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판사 뒷조사 파일' 작성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개인 사정에 따른 조치"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 '사법 독립' 스스로 흔든 대법원... 내부 반발 이어져
☞ '판사 길들이기' 당사자, 대법원 해명 정면 반박
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구성해 조사를 지시했다. 한 달 뒤, 이인복 위원장은 "보복성 인사조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개된 진상조사보고서에 나오는 이탄희 판사의 진술은 상세했다.
☞ 컴퓨터도 못 보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없다"는 조사위
[장면 ②] 3차 조사 끝에 드러난 것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하고 나서야 2차 조사가 시작됐다. 2017년 11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판사 인사개입 문건뿐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이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재판 거래를 시도한 정황들을 밝혀냈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컴퓨터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3차 조사단(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꾸려졌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원 전 원장 사건만이 아니라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 결과를 상고법원과 맞바꾸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법원이 처음 공개한 내부 문건 410개 중 174개만 보더라도 청와대와 관계를 두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윈윈" 같은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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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문건 'CJ'의 의미, 정치놀음에 빠진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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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조사의 한계는 명확했다. 특별조사단은 2018년 4월 24일과 5월 24일 두 차례나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려 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이들이 내놓은 결론조차 '문제는 있지만 범죄가 아니다'였다. 곳곳에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면 ③] 양승태의 자신감 "검찰에서 수사한답니까?"
마침내 양 전 대법원장이 침묵을 깼다. 지난해 6월 1일 그는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허리춤에 두 손을 얹은 채, 양 전 대법원장은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대법원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대법원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법원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반적인 재판이나 특정한 성향을 나타낸 사람이나, 그런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
그는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검찰에서 수사한답니까? 그때 가서 보겠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 유체이탈, 책임전가, 자기모순... 양승태 "대법원, 순수하고 신성하다"
[장면 ④] 쪼개지는 법원, 김명수의 약속
양 전 대법원장의 해명에도 법원 안팎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비교적 젊은 판사들인 단독·배석·중앙 부장판사들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윗선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과 전국 법원장들은 "대법원장 등이 형사 고발, 수사 의뢰, 수사 촉구 등을 할 경우 법관과 재판의 독립이 침해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라며 나아가 "(사법농단 의혹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했다.
☞ 10시간 격론 전국법관대표회의 "양승태 사법농단, 형사조치 필요"
☞ 법원장들 '재판거래 의혹' 7시간 격론…신중론 속 '엄벌' 반론
2018년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처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이후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을 구성, 수사를 시작했다.
☞ 김명수 대법원장 "수사 진행될 경우 협조하겠다"
[장면 ⑤] 기각에 또 기각... 하지만 조금씩 열리는 빗장
하지만 법원은 쉽게 수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현직 판사들,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번번이 기각됐다. 법원행정처의 관련 자료 임의제출도 원활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팀 내부에선 "압수수색영장은 수사의 기본인데, 뭘 줘야 들여다볼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 계속되는 재판거래 의혹에도 법원은 '내부 지키기' 급급
☞ 풀리지 않는 법원 '빗장'... 외교부만 '영장 발부'
☞ 또다시 '제 식구 감싸기' 나선 법원
수사 착수 약 3개월 만에야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27일 임민성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라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상급자인 양 전 대법원장과 하급자인 심의관들 사이에서 '실무'를 담당한 임 전 차장은 처음으로 구속된 사법농단 피의자였다.
☞ 사법농단 '키맨' 임종헌 결국 구속, 법원 "범죄사실 소명"
이후 검찰 수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 윗선을 향해 나아갔다.
[장면 ⑥] 모든 것이 '헌정사 최초'가 된 그
2019년 1월 11일 마침내 양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전날 미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만들어진 포토라인이 아니라 대법원 앞에서 소회를 밝히길 고집했다.
당시 여러 판사는 "설마 가시겠나, 주위 의견 아니냐"며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대 소리에도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법원에서 전 인생을 근무한 사람으로서 법원을 한번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사건 관련 법관들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것도 제 책임이고, 안고 가겠다."
☞ 대법원은 양승태의 추억거리로, 모든 비판은 선입견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말을 바꿨다. 검찰이 확보한 결정적 증거에도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며 후배 법관이 "의혹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는 것 같다"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결국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그를 구속했다.
☞ 2019년 1월 24일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법부 자체 조사 보고서에도 법원행정처가 어떤 판사와 어떤 모임의 동향을 살폈고, 행정부 눈치를 보거나 부적절한 판단이 있었다는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결국 이 많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진술들이 2019년 1월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켰다. 사법신뢰는 그 사이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사법신뢰의 회복은 사법농단 사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결정적 장면 6가지를 꼽았다.
[장면 ①] 사표 한 장이 불러일으킨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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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사표를 제출하며 "판사 뒷조사 의혹"을 공론화한 이탄희 판사. 사진은 지난 12월 22일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 소식을 보도한 MBC 뉴스 화면 | |
| ⓒ MBC 뉴스 화면 갈무리 | |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으로 막 파견된 이탄희 판사가 급작스레 사표를 냈다. 법원행정처는 그를 발령 11일 만에 원래 근무지,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복귀시켰다. '출세의 길'로 알려진 자리를 버린 이 판사도, 곧바로 그를 돌려보낸 법원행정처도 이례적이었다.
그해 3월 초, 이 판사가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판사 뒷조사 파일' 작성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개인 사정에 따른 조치"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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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구성해 조사를 지시했다. 한 달 뒤, 이인복 위원장은 "보복성 인사조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개된 진상조사보고서에 나오는 이탄희 판사의 진술은 상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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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②] 3차 조사 끝에 드러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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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정에 뛰어든 해고노동자의 절규 지난해 5월 29일,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이 법원 진상조사 결과 드러난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하고 나서야 2차 조사가 시작됐다. 2017년 11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판사 인사개입 문건뿐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이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재판 거래를 시도한 정황들을 밝혀냈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컴퓨터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3차 조사단(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꾸려졌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원 전 원장 사건만이 아니라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 결과를 상고법원과 맞바꾸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법원이 처음 공개한 내부 문건 410개 중 174개만 보더라도 청와대와 관계를 두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윈윈" 같은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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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조사의 한계는 명확했다. 특별조사단은 2018년 4월 24일과 5월 24일 두 차례나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려 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이들이 내놓은 결론조차 '문제는 있지만 범죄가 아니다'였다. 곳곳에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면 ③] 양승태의 자신감 "검찰에서 수사한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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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마침내 양 전 대법원장이 침묵을 깼다. 지난해 6월 1일 그는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허리춤에 두 손을 얹은 채, 양 전 대법원장은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대법원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대법원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법원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반적인 재판이나 특정한 성향을 나타낸 사람이나, 그런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
그는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검찰에서 수사한답니까? 그때 가서 보겠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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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④] 쪼개지는 법원, 김명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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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 |
| ⓒ 이희훈 | |
양 전 대법원장의 해명에도 법원 안팎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비교적 젊은 판사들인 단독·배석·중앙 부장판사들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윗선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과 전국 법원장들은 "대법원장 등이 형사 고발, 수사 의뢰, 수사 촉구 등을 할 경우 법관과 재판의 독립이 침해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라며 나아가 "(사법농단 의혹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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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처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이후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을 구성, 수사를 시작했다.
☞ 김명수 대법원장 "수사 진행될 경우 협조하겠다"
[장면 ⑤] 기각에 또 기각... 하지만 조금씩 열리는 빗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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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 심판대 오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 "키맨"으로 불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오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
| ⓒ 권우성 | |
하지만 법원은 쉽게 수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현직 판사들,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번번이 기각됐다. 법원행정처의 관련 자료 임의제출도 원활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팀 내부에선 "압수수색영장은 수사의 기본인데, 뭘 줘야 들여다볼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 계속되는 재판거래 의혹에도 법원은 '내부 지키기'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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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착수 약 3개월 만에야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27일 임민성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라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상급자인 양 전 대법원장과 하급자인 심의관들 사이에서 '실무'를 담당한 임 전 차장은 처음으로 구속된 사법농단 피의자였다.
☞ 사법농단 '키맨' 임종헌 결국 구속, 법원 "범죄사실 소명"
이후 검찰 수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 윗선을 향해 나아갔다.
[장면 ⑥] 모든 것이 '헌정사 최초'가 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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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장실질심사 마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 |
| ⓒ 유성호 | |
2019년 1월 11일 마침내 양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전날 미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만들어진 포토라인이 아니라 대법원 앞에서 소회를 밝히길 고집했다.
당시 여러 판사는 "설마 가시겠나, 주위 의견 아니냐"며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대 소리에도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법원에서 전 인생을 근무한 사람으로서 법원을 한번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사건 관련 법관들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것도 제 책임이고, 안고 가겠다."
☞ 대법원은 양승태의 추억거리로, 모든 비판은 선입견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말을 바꿨다. 검찰이 확보한 결정적 증거에도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며 후배 법관이 "의혹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는 것 같다"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결국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그를 구속했다.
☞ 2019년 1월 24일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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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손석희 폭행 의혹? 쟁점 살펴보니
공개자료 의혹 뒷받침엔 아직 부족, 기정사실화 곤란... 자료 푸는 당사자, 말 아끼는 손석희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2019년 01월 25일 금요일
손석희 JTBC 사장의 폭행 혐의 논란이 양측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폭행 피해자라 주장하는 프리랜서 기자 김아무개씨는 “얼굴, 어깨 등을 수차례 가격당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손 사장은 “손으로 툭툭 건드린 것이 전부”라 반박하며 김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지난 24일 밤 9시15분께 기자 23명이 초대된 카카오톡 대화방에 지난해 8월께부터 이달 초까지 손 사장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 캡쳐사진 11장을 공개했다. 대부분 손 사장이 김씨의 JTBC 취업을 알아봐주는 내용이다. 이를 공개한 김씨는 자신이 먼저 JTBC 취업을 청탁하며 손 사장을 협박했다는 손 사장 입장을 반박했다.
김씨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도 공개하며 손 사장이 2017년 교통사고를 낸 후 도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사고 사실 및 당시 동승자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손 사장이 기사를 막기 위해 일자리로 회유했다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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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조선일보 1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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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조선일보 12면 |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며 의혹보도했으나 공개된 자료는 일자리 회유 의혹을 뒷받침하기 부족하다. 5개월 텔레그램 대화 기간 중 10여일 대화만 갈무리된데다 날짜 별로 띄엄띄엄 갈무리돼 앞뒤 맥락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누가 먼저 왜 제안했는지, 취업 요구를 누가 지속 제안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김씨는 “JTBC 탐사기획국 기자직 채용은 분명 손 씨가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손 사장은 “접촉사고 취재 중 김씨가 정규직 특채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상반되게 주장한다. 공개된 텔레그램 대화만으론 분간할 수 없다.
'전치 3주' 폭행도 들여다 볼 부분이다. 공개된 물증은 사건 이후 김씨가 녹음한 녹취록이 유일하다. 사건 현장엔 둘 밖에 없었다. 일부 언론은 손 사장의 ‘아팠다면 폭행이니 사과한다’는 답을 인용해 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가 공개한 11분 분량 녹음파일 맥락은 이와 온도차가 있다. 김씨는 녹음시작과 함께 “손석희 사장님, 방금 저한테 폭력을 행사하셨죠?”라고 물었고 손 사장은 물음 도중 웃으며 “야 그게 폭력이야? 앉아. 알았어. 앉아 앉아”라 답한다. 11분 대부분이 폭력을 인정하냐는 김씨 물음과 “그게 폭력이니?” “아팠니?” “생각해보니 물리적 강도와 상관없이 아플 수 있겠다” “사과한다” 등의 손 사장 답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 김씨는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상해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손 사장은 “집요하게 취업청탁을 해온 김씨가 사고 당일에도 같은 요구를 했고 이를 거절하자 김씨가 갑자기 화를 내며 지나치게 흥분했다. ‘정신 좀 차리라’고 손으로 툭툭 건든 것이 사안의 전부”라 주장했다.
손 사장이 김씨와 대화·만남을 지속한 배경도 쟁점이다. 손 사장 입장에선 취업 청탁하는 김씨가 반가울 리 없다. 김씨 공개 자료를 보면 손 사장은 5개월 간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김씨와 손 사장은 지난 12월에도 한 차례 더 만났다.
김씨는 이와 관련 2017년 4월 손 사장의 접촉사고를 들었다. 손 사장이 2017년 4월16일 밤 10시께 경기도 과천 한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내고 도주했고 피해자들이 추적해 도로변에 정차했으며 이후 150만원을 사비로 물어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피해자들은 당시 젊은 여성이 동석했다고 말했으나 손 사장은 어머니라 주장한다’며 동승자 의혹까지 꺼냈다.
손 사장은 “접촉 자체를 모르고 자리를 떠났을 정도로 차에 긁힌 흔적도 없었지만, 자신의 차에 닿았다는 견인차량 운전자의 말을 듣고 쌍방 합의한 것”이라며 “김씨가 지난해 여름 어디선가 이 사실을 듣고 찾아와 ‘아무것도 아닌 사고지만 선배님이 관련되면 커진다’며 ‘기사화 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고 반박했다.
동승자 의혹 관련해 손 사장은 “명백한 허위”라며 “이번 사안을 둘러싼 모든 가짜 뉴스 작성자와 유포자, 이를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매체에 대해선 추가 고소를 통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빈민생존권 투쟁만 아니라 분단 끝내는 투쟁도 할 것”
“노동자, 농민, 빈민이 하나의 주체로서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투쟁을 전개하고, 나아가 한반도 분단과 외세지배를 끝내는 투쟁에서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은 올 한해 빈민운동의 핵심과제를 질문 받자 “먼저 곳곳에서 탄압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도시빈민들의 생존을 지키는 투쟁에 적극 결합해 빈민들의 권리를 찾는 싸움을 적극 전개하겠다”며 이같이 답했다.
도시빈민의 생존권 지키기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인 불평등과 분단체제, 나아가 그 원인인 외세의 지배개입 문제도 못지않게 중요하단 거다. 그래서 한국사회 진보변혁운동의 주체로서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이런 근본문제들에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장은 또 내년 총선 준비와 관련해 “그동안 관행화된 대리정치, 위탁정치를 뛰어넘어 빈민후보 출마를 포함해 직접정치의 결정적 계기로 만드는 것이 목표”고 강조하기도 했다. 진보진영 대표자들의 정세진단과 사업구상을 들어보는 네번째 순서로 준비된 최 위원장과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 지난 한해를 돌아볼 때 가장 기억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먼저 서울시와 수협의 잘못된 현대화사업을 반대하며 3년간 투쟁을 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 구(舊) 시장 상인들의 조직가입을 승인하고, 함께 수협의 탄압에 맞서 투쟁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봉구청의 기만적인 노점상 허가제에 속아 영업을 1년 여간 하지 못했던 창동역 노점상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또 빈민통일선봉대를 대중적으로 모집해 빈민 투쟁현장에 연대한 것은 물론 도시빈민들도 통일운동의 한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도 기억납니다.”
- 지난해 4.27판문점선언, 6월 북미정상회담, 9월 평양선언으로 이어지는 정세 발전이 빈해련(민주노련)에게 준 의미는 무엇인지요?
“남북간, 북미간 대결국면에서 혜택을 보는 집단은 수구보수세력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바로 우리 도시빈민들입니다. 분단으로 인해 발생되는 분단비용의 일부라도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쓴다면 도시빈민들의 삶은 지금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한반도 정세에 화해 분위기가 형성 되고 통일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쳇바퀴처럼 양산되는 도시빈민들의 삶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고 봅니다.”
- 평화번영 통일시대를 열어가는데서 가장 큰 걸림돌과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먼저 내정간섭과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미국이 가장 큰 걸림돌이며, 남과 북의 평화시대에 걸맞지 않고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입니다. 평화 통일시대에 걸맞게 이제는 미국에 당당하게 요구하는 대한민국, 남과 북이 적이 아닌 동반자로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양심수를 석방해야 할 것입니다.”
-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도시서민 정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합니다.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에게 일부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대가 공염불이었다는 것이 증명된 2018년이었습니다. 지난해 박준경 철거민 열사의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문재인 정부 아래서도 도시빈민들의 삶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투쟁하는 도시빈민들을 용역깡패와 경찰을 동원해 짓밟는 것은 이전 정부와 전혀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수많은 복지정책들이 폐기되거나 후퇴하는 모습에 이제는 더 이상 촛불정부가 아니라는 인식이 도시빈민들 사이에 팽배해져 있습니다.”
- 앞으로 경제상황이 계속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빈민해방실천연대(민주노련)의 입장에서 이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말씀해주십시오.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들어 안정된 일자리 부족으로 자영업자들이 대폭 증가하고, 또 서로간의 치킨게임으로 인해 자영업자의 몰락이라는 공식이 우리사회의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결국 가진 자들의 곳간을 털어 서민들에게 분배할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도시서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역대 최고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삼성 등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벌해체 수준의 대개혁만이 현 경제상황의 탈출구라 생각합니다.”
- 올해 빈해련(민주노련)은 무엇을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있나요?
“먼저 곳곳에서 탄압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도시빈민들의 생존을 지키는 투쟁에 적극 결합하여 빈민들의 권리를 찾는 싸움을 적극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 빈민이 하나의 주체로서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투쟁을 전개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분단과 외세 지배를 끝내는 투쟁에서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빈민 대중조직이니 만큼 사회 곳곳의 빈민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사업도 적극 전개하려고 합니다.”
- 올해는 2020년 총선을 준비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빈민운동진영은 어떻게 할 구상이신가요?
“2020년 총선은 어느 때 총선보다 중요합니다. 도시빈민 탄압의 선봉대이자 철전지 원수인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한 수구보수세력을 국회에서 몰아내는 총선이 돼야 하며, 도시빈민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는 총선이 돼야 합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시빈민들은 자기 후보를 내세워 직접정치의 시작을 알려냈습니다. 내년 총선에서는 그동안 관행화된 대리정치, 위탁정치를 뛰어넘어 빈민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을 포함해 직접정치의 결정적 계기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 진보진영 전반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이 아직 높지 않습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십니까?
“진보운동은 위대한 촛불항쟁의 시발점 역할을 했고 촛불항쟁 내내 중심축 역할을 했지만, 사회전반의 위상과 역할은 높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보진영 특히 진보대중조직이 더욱 대중들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소속 회원들 교육을 통해 조합주의를 극복하고 사회 발전의 주체로 세워야 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불평등 사회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 개인적으로 올 한해 중점을 둬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노점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오세훈의 실패한 노점관리대책을 박원순 시장이 다시 가이드라인이라는 형식으로 들춰내 상생을 빙자한 노점상 감축을 도모하고 있는 겁니다. 민주노련은 노점상 대중들의 사활을 걸고 막아내는 투쟁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 새해를 맞아 민플러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빈민투쟁의 현장에 늘 관심을 가져주시는 민플러스에 감사 인사를 드리며, 민플러스 관계자와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9년에도 도시 곳곳에서 빈민들은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조직하고 투쟁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도시빈민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도시빈민들도 사회발전, 역사발전의 보다 큰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
- 답변 고맙습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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