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경기도 수원 장안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 주제로 열린 세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1.15. ⓒ뉴시스 정부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346만개다. 한국은행이 산출한 고용 창출 지표를 대입한 수치는 110만개로, 격차가 크다.
16일 정부에 따르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서 창출되는 직간접 일자리는 총 346만개로 전망된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는 2047년까지 23년간 총 622조원이 투입된다. 삼성전자가 500조원, SK하이닉스가 122조원을 투자한다. 경기 남부 일대 2,102만㎡ 면적에 총 16개의 반도체 공장이 구축된다. 2030년 기준 77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로 계획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연 민생토론회에서 “앞으로 20년에 걸쳐서 양질의 일자리가 최소 300만개는 새로 생길 것”이라며 “당장 올해부터 향후 5년 동안 158조원이 투자되고, 직간접 일자리 95만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고용 창출 효과가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임금근로 일자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임금근로 일자리는 2,058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38만개 늘었다. 정부 전망으로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서 매년 15만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건데,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생기는 일자리의 40%에 달하는 셈이다. 반도체는 고용 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은 산업이다. 한국은행의 최신 통계인 2019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고용유발계수는 1.8명이다. 모든 산업을 통틀어 고용유발계수가 반도체보다 낮은 산업은 담배(1.26명)와 석유정제(0.99명) 등 소수에 불과하다. 자동차 산업은 6.2명이다. 반도체 산업 고용유발계수는 제조업 평균 4.7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산업 평균 7.4명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자본집약 산업인 반도체로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반도체 투자가 향후 한국 일자리 창출의 반 정도를 떠맡게 된다는 뜻이고, 앞으로 한국은 고용 문제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된다”며 “수치가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통상적인 고용 창출 효과 산출 방식을 대입해 보면, 숫자가 안 맞는다. 고용유발계수는 특정 산업에서 최종 수요가 10억원 발생할 때 모든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임금근로자 수를 이른다. 가령 자동차 산업 경우 투자가 이뤄지면 완성차뿐 아니라 타이어(고무) 등 부품 생산에 따른 고용유발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투자 금액인 622조원에 반도체 산업 고용유발계수 1.77명을 적용하면, 110만명 수준이다. 정부 전망치의 3분의 1도 안 된다.
정부 제시 수치 가운데 상당수는 공장·전력망 공사 인력으로 추정
정부가 산출한 신규 일자리를 분야별로 보면, 직접 고용 창출 효과로 193만명을 제시했다. 클러스터 내 공장 건설이 진행되면서 공장에 들어갈 반도체 장비 생산이 늘고, 원자재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인근 상권 활성화와 도로·전력·용수 등 인프라 건설 확대를 들면서 간접 고용 창출 효과를 142만명으로 전망했다. 다만, 구체적인 인과관계와 산출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인근 상권이 얼마나, 어떻게 활성화된다는 건지, 그로 인해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생긴다는 건지 불명확하다. 공장 운영 전문인력으로는 11만명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고용 창출 효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고용유발계수에서 직접적으로 유발되는 노동량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인력에 한한다. 즉, 공장 운영 전문인력 11만명이 이에 해당한다. 간접적으로 유발되는 노동량은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기업이 구입하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의 일자리를 의미한다. 정부가 임의로 ‘직접 고용 창출 효과’라고 이름 붙인 193만명 가운데 공장 건설 인력을 제외한, 반도체 산업 내에서의 소부장 분야 인력이 포함된다.
정부가 ‘간접 고용 창출 효과’로 제시한 142만명은 고용유발계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야 고용유발계수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도로·전력·용수 등 인프라는 투자금 측면에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별개의 사업이다. 정부는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규모 전력망을 구축할 계획인데, 비용이 총 12조 5천억원으로 추산된다. 동해안에서는 원전·석탄화력발전 전력을, 호남에서는 태양광발전 전력을 끌어온다.
정부가 전망한 346만개의 고용 창출 효과 상당수는 반도체 공장과 전력망 구축 건설 인력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 2일 평택시 고덕산업단지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배관 연결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7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윤 대통령이 말한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만 놓고 보면 고용 유발 효과가 그렇게 안 나올 것”이라며 “나머지 건설 설비 투자에서 늘어나는 인력을 종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높지 않아 직접적인 고용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세부적인 근거 없이 장밋빛 전망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산업통상자원부 향후 투자 집행 여부도 불확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대한 기업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질지도 불확실하다. 반도체는 기술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경기 변동의 영향도 많이 받아, 20년이 넘는 장기 투자 계획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정부 발표는 새로운 게 아니라, 기업의 기존 계획을 모아서 내놓은 것”이라며 “투자 계획이 얼마나 지켜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양산 검증을 위한 테스트베드와 인재 확보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미중 갈등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투자는 국내외 여건이 조성돼야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고용 창출 효과를 부풀린 데에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날, 당초 올해 종료 예정인 반도체 세액공제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시설투자에 대해서는 대기업 기준 15%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3월, 이른바 ‘K칩스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세액공제율이 8%에서 대폭 상향됐다. 정부는 최근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p를 추가 공제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도 연장할 방침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지난해 종료된 상태다.
대기업 투자에 25% 고율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투자 유인 효과가 미미해 기업의 기존 투자 계획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 정부의 재정 여력도 약화되는 실정이다. 정부로서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내세워 반도체 세액공제 연장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반도체 세액공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기업 퍼주기다’ 이런 얘기들이 있지만, 이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정세은 교수는 “정부가 감세를 강행하면서,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유로 대기업에 과도한 이익을 몰아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우려된다”며 “투자 효과를 과장해,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미미하고 부의 쏠림이 심화되는 문제를 덮어버리겠다는 태도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 16층 방심위 민원상담팀 앞. 김준희 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장이 취재진에 노조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재령 기자
▲ 수사관들과 실랑이 벌이고 있는 방통심의위 직원들. 사진=박재령 기자
이른바 ‘가짜뉴스 대응’에 주력하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위원장의 ‘민원신청 사주’ 의혹으로 전례 없는 혼돈을 맞고 있다.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야권 추천 위원들을 상대로는 해촉 건의가 의결됐고 의혹 관련 안건이 상정될 때마다 회의는 파행됐다. 방심위원장의 아들, 동생, 조카, 처제까지 등장한 민원의 경위는 아직 ‘미궁’이지만 경찰은 민원인 정보 유출을 이유로 방통심의위 직원들을 먼저 압수 수색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 위치한 방통심의위 사무실에 수사 인력 10여명을 보내 6시간가량 압수 수색했다. 민원 열람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16층 민원상담팀과 서버 관리 등 전산 총괄을 맡고 있는 19층 운영지원팀이 대상이었다. 경찰은 ‘위원장’과 ‘뉴스타파’를 키워드로 검색한 자료도 확인했다. 압수품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엔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달 27일 ‘민원신청 사주’ 의혹보도 이후 류희림 위원장이 ‘개인정보유출은 중대 범죄 행위’라며 수사를 의뢰해 벌어진 강제수사다. 김준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통심의위 지부장은 “위원장 가족과 지인으로 추정되는 민원인들의 민원 내용을 열람한 직원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한 압수수색으로 보인다”며 ‘공익제보자 색출’을 우려했다.
▲ 경찰 수사관들이 1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 직원이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윈회 민원상담팀 등을 압수수색 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으로 구성된 언론장악 저지 공동행동(준비위원회)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청부심의 정치심의 류희림 위원장을 압수수색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윤유경 기자.
정작 위원장 본인에 대한 수사 경과는 나오지 않아 ‘선택적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3일 공익제보자는 류희림 위원장이 가족, 지인 등을 동원해 방통심의위에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 관련 심의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윤성옥 심의위원은 지난 15일 “압수수색을 받아야 할 사람은 류희림 위원장”이라며 “선택적 압수수색이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헌법 가치이고 정의인가”라고 되물었다.
전례 없는 상황에 언론노조는 “양심의 손가락이 류희림 위원장의 위법 행위를 지적했더니 그 손가락을 부러트리겠다는 협박”이라고 비판했고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경찰의 압수수색은) 공익신고를 기밀 유출로, 공익신고자를 범죄자로 몰아가려는 전형적 보복 수사”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대통령은 범죄자 류 위원장을 해촉하고, 그의 낯부끄러운 범죄행위를 낱낱이 조사해 투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야권 추천 위원 2인에 대한 해촉 건의가 의결돼 여야 4대1 구조를 앞둔 상황도 전례 없는 일이다. 지난 12일 여권 추천 위원들 요구로 열린 임시 전체회의에서 옥시찬·김유진 위원(문재인 대통령 추천)에 대한 해촉 건의가 의결됐다. 대통령 재가가 이뤄지면 여권 추천 위원(류희림·황성욱·김우석·허연회)이 야권 추천 위원(윤성옥) 수를 압도하게 된다. MBC와 KBS 등에 ‘과징금’ 결정을 내렸던 방송심의소위원회엔 야권 추천 위원이 1명도 안 남는 상황까지 예고되고 있다.
▲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마치고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진, 윤성옥, 옥시찬 위원. ⓒ연합뉴스
김유진 위원은 16일 미디어오늘에 “해촉이 결정되면 부당성에 대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류희림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공익신고자 색출 행위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도 져야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해촉을 재가한다면 최근 6개월간 야권 추천 위원만 5명 연속 해촉되는 상황이벌어지게 된다. 지난해 8월 정연주 위원장(문재인 대통령 추천)과 이광복 부위원장(국회의장 추천)이 해촉됐고 지난해 9월엔 정민영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이 해촉됐다. 옥시찬·김유진 위원이 대통령 추천 몫이라 윤 대통령은 자신의 몫으로 보궐위원을 임명할 수 있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원 사주’ 의혹이 올라올 때마다 회의가 ‘파행’되는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야권 위원 해촉 건의를 의결한 것도 의혹에 대한 비판 발언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의혹 관련 안건이 상정된 지난 3일 전체 회의에 불참해 회의를 무산시켰고 지난 8일 전체 회의에선 회의를 두 차례 정회한 후 위원장이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옥시찬·김유진 위원에 대한 대통령 해촉 재가가 나오지 않아 정상 참석이 가능하자 16일로 예정돼 있던 정기회의도 불참해 무산 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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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심의위원 해촉 재가 없자 정기회의 취소…방심위 ‘연속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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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방송통신심의위 압수수색에 “직원들 겁박 의도”
이런 가운데 언론계도 대응에 나섰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16일 방통심의위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압수수색을 하러 갔으면 류희림과 위원장실을 뒤져야지 왜 직원들을 괴롭히고 제보자를 색출하겠다고 법석을 피우나”라며 경찰을 비판했다. 언론장악 저지 공동행동(준)은 오는 17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류희림 위원장을 업무방해,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추가 고발할 예정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창당 준비 중인 ‘개혁신당’의 당원 자격 조항이 더불어민주당의 당헌과 똑같다고 밝혀졌다.
이에 개혁신당이 의원 자리를 위해 내실 없이 졸속으로 급조된 당임을 입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인다.
16일 현재 개혁신당 홈페이지에 공지된 당헌은 ‘당원’에 관한 것과 더불어 ‘당비규정’ 등에 관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 조항은 더불어민주당의 당헌 ‘제2장 당원’ 부분의 ‘제4조 자격조항’과 표현과 글자 수까지 모두 똑같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신당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라는 반응이다.
당초 이 전 대표는 ‘반윤’을 명분으로 내세워 신당 창당에 나섰지만, 실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윤연대’를 제안하자 이를 거부하며 기회주의적 면모를 보인 바 있기 때문.
그 결과 이준석 신당은 금배지를 달고자 하는 욕망 이외에는 어떤 공통성도 없는 비주류 인사들이 중구난방으로 모인 당이 되었고, 그것이 이번 ‘당헌 복붙 사태’에서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이는 최근 이 전 대표가 행한 ‘비빔밥 연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14일 이 전 대표는 제3지대 ‘미래대연합’ 창당준비위 출범식에 참석하여 “고명이 각각의 색감과 식감을 유지한 채 올라가는 것이 비빔밥의 성공 비밀”이라며 제3지대로 이전투구 중인 여러 정치인을 상찬했다.
이날 이 전 대표는 조응천(대구·고기), 이원욱(보령·버섯), 김종민(논산·쌀), 박원석(고양·행주치마), 정태근·금태섭·이준석(서울·미나리), 양향자(화순·더덕), 이낙연(영광·고추) 등 제3지대 정치인의 출신지와 특산물을 열거하며 “비빔밥 구성 요건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멋진, 삐까뻔쩍한 식당에서 국민에게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 인사들은 공천 경쟁에서 탈락한 것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
당장 미래대연합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민·조응천·이원욱 의원과 국민의힘 출신 정태근 전 의원, 정의당 출신 박원석 전 의원이 핵심이다.
‘비빔밥’이라고 잘 포장했으나, 어떤 가치 지향도 입증하지 못하는 ‘푸성귀’들만 모인 셈.
이 전 대표의 개혁신당과 미래대연합 등 제3지대 정당들은 설 이전에 통합을 해야 한다고 말을 모으는 분위기지만, 애초 공통가치가 없는 만큼 통합 가능성은 미지수다.
특히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제3지대 정당 ‘새로운미래’를 준비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연일 이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나 이 전 대표 주변에선 “우리 지지율이 더 높을 텐데 굳이 민주당 출신들 손을 잡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 계속 나온다.
이에 이 전 대표 역시 “떴다방 같은 결사체엔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는 더불어민주당 당헌을 아예 베끼는 무책임한 처사를 볼 때 무색해 보인다.
제3지대 정당들이 우후죽순 난립하는 가운데, 이들 전부가 결국 ‘떴다방’으로 기능하여 ‘정권심판론’을 희석할 뿐이라는 회의 섞인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언젠가 네가 나한테 와서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날이 있을 거다', 딱 이렇게 말하고 가더라고요."
-유현주 씨, 이하 2023년 12월 7일 인터뷰
이규태(74) 일광그룹 회장. 회장님이자 고모부인 그는, 자신의 밑에서 20여 년간 일한 직원이자 처조카인 유현주(46) 씨에게 독한 경고의 말을 남겼다.
유 씨는 23년 전을 떠올렸다. 스물세 살의 유 씨는 이 회장에게 일손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모부인 이 회장과는 평소 왕래가 없었다. 당시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우촌초등학교를 인수했다. 그는 유 씨에게 학교 행정실에서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자 학교법인 일광학원 전 이사장. ⓒ연합뉴스
당시 유 씨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고, 한 지점의 운영을 맡을 정도로 인정도 받았다. 몸은 힘들지만 만족스러운 일자리였다. 솔직히, 고모부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편찮으신 아버지는 유 씨가 집안어른 밑에서 안정적으로 지내길 원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었다.
우촌초 행정실로 출근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이 회장의 부인(유 씨의 고모)은 유 씨의 친구 박선유 씨까지 불러서 학교에 취직시켰다. 둘은 함께 이 회장이 시키는 대로 밤낮 없이 일하면서도, 남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이 회장은 저를 처조카라고 인정을 안 하고, 그냥 '야', '너'라고 불렸어요. 자기 비서나 측근들은 추켜세워 주면서 저는 아예 바닥 취급 했어요."
-유현주 씨
이 회장이 이사했을 때는 이삿짐을 정리했다. 회장이 정원에서 파티를 하면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했다. 이 회장의 부인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하면 요리도 했다. 식모가 따로 없었다.
이 회장은 종종 유 씨를 '거지 취급' 했다. 이 회장이 불러서, 잘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운 유 씨였다. 그런데 이 회장은 자기가 유 씨를 먹고살게 해줬다며 생색을 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참았다. 그렇게 20년을 일했다.
▲이규태 회장이 교회에 타고 온 벤츠-마이바흐 승용차. 출고가 3억 원대의 최고급 세단이다. ⓒ셜록
"여기까지 찾아오는 건 경우가 아니지. 뭐하고 사는 사람인진 몰라도."
지난 7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교회 주차장에서 이규태 회장을 만났다. 그는 출고가 3억 원대의 최고급 세단인 벤츠-마이바흐에서 내렸다. 약 200억 원의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는 기자와 카메라를 밀쳐낸 뒤, 뒷일은 주차관리인들에게 맡기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셜록>은 이 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며칠간 연락이 되지 않고 사무실도 찾을 수 없어서 교회로 그를 찾아간 길이었다. 첫 만남에서 기자에게 "경우"를 강조한 그는, 2015년 배우 클라라에게 "목 따서 보내버릴 수 있다"며 협박하고 성희롱 한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일광공영(현 아이지지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한 1세대 무기중개상으로, 일광그룹 산하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사회복지재단, 사립학교 재단 등을 뒀다.
이 회장은 2009년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는, 이른바 '불곰사업'과 관련된 횡령·배임 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다. 2015년에는 방위사업청의 사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군무원 2명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또 한 번 구속됐다.
그는 구속 수감된 상태로 유 씨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그의 옥중 지시는 앞으로 펼쳐질 '결정적 사건'의 뿌리가 된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결과 보고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공소장과 불기소결정서, 서울북부지방법원 판결문 등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확인했다.
▲이규태 회장은 과거 배우 클라라를 협박한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셜록
"읽은 후 바로 파기하라."
이규태 회장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항상 이 문장으로 끝났다. 구속 수감 중인 이 회장은 자신의 '집사 변호사'를 통해 처음에는 손편지, 그 다음에는 음성 녹음이나 영상 파일을 유현주 씨에게 보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이규태 회장이 보낸 손편지는 약 200건에 달한다.
"학교 돌아가는 상황을 (감옥에 있는 이 회장에게) 보고하고, 이 회장 지시 아니면 학교 돈을 10원도 못 쓰는 시스템이었어요."
-유현주 씨
엄밀히 말해 당시 이 회장에게 학교에 관한 지시를 내릴 권한은 없었다. 이 회장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이사장을 지냈지만, 당시엔 그의 임기가 이미 끝난 때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자신의 가족과 측근에게 이사장 자리를 연이어 맡겼다. 이사회도 측근으로 구성했다.
2018년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10개월과 벌금 14억 원의 형을 확정했다. 범죄수익은닉, 조세포탈,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가 인정됐다. 이 회장은 집사 변호사를 통해 유 씨에게 음성 녹음을 보냈다. '가석방을 위해 벌금을 내야 하니 돈을 만들어내라'는 취지의 지시였다.
2015년부터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한 변호사 수임료만 약 23억 6500만 원. 게다가 가석방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벌금 14억 원을 완납해야 했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은행 대출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바로 '교비 횡령'이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에 달한다. 2019년 당시 우촌초의 이월금은 약 50억 원.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관내 다른 사립초의 이월금 평균이 약 2억 1000만 원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액수다.
회장님은 이월금을 노렸다. 그리고 '한탕'을 준비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우촌초. 학비가 연간 1468만 원에 달하는 사립학교다. ⓒ셜록
이 회장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바로 '스마트스쿨' 사업이었다.
태블릿PC, 학습용 로봇 등을 도입하는 스마트스쿨 사업의 통상적인 비용은 3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그 비용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범행을 모의한 A 업체가 입찰에 선정될 수 있도록 입찰을 방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A 업체에게 용역대금을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교비를 빼돌리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이 저한테 음성 녹음 파일을 보내서 '야 이 새끼야, 나 보고 여기(교도소) 얼마나 있으라는 얘기야'라고 했어요. 돈 안 만들어준다고 욕을 듣고 말았어요. 그래도 처음엔 학부모 핑계, 교장선생님 핑계를 대고 거절할 수 있었죠."
-유현주 씨
하지만 유 씨가 모른 척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2018년 11월 이 회장이 가석방되자 스마트스쿨 사업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자신의 측근으로 구성된 기획홍보실을 학교에 설치하고, 유 씨와 최은석 교장을 독촉했다.
"나중에 감사받으면 분명히 문제가 될 거 아니까 저랑 교장선생님이 책임지게 하려고 한 거예요."
-유현주 씨
20년 동안 '회장님'으로 모셔온 사람. 게다가 고모부와 처조카로 얽혀 있는 관계. 이 회장의 검은 지시를 따르는 건 어찌 보면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유 씨는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공익제보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규태 회장은 스마트스쿨 사업비를 부풀려 교비를 빼돌리려 했다 ⓒpixabay
2019년 5월 교직원 유현주 씨와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박선유 씨, 그리고 최은석 교장과 이양기 교감 등 6명은 서울시교육청에 이규태 회장의 전횡을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즉시 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취소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의 강압에 의한 추진'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스마트스쿨 사업이 부당한 까닭은 교육활동을 담당하는 교장 이하 교직원들의 자체 판단과 결정에 의하여 사업이 추진되지 않고 전 이사장 이규태의 강압에 의하여 추진되어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 집행을 통하여 부당한 사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혐의가 매우 크다는 점임."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보고서, 2019. 9. 11.
서울시교육청은 특별감사 결과에 따라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전원에 대해 '승인 취소'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학교 법인은 이를 거부했다. 교직원 수십 명, 학부모 수백 명은 학교 정상화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반성조차 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사학의 특성을 앞세워 관할청의 행정명령과 우리 사회의 법 질서마저 우롱하는 비리사학의 오만함에 대해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며 부적절한 관용으로 인해 용서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2020. 8. 27. 우촌초 학부모 탄원서 중
2021년 12월 검찰은 이 회장과 스마트스쿨 사업 추진에 가담한 학교 관계자 등 12명을 기소했다. 업무상횡령, 강요, 입찰방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현주 씨 등 6명의 공익제보자들은 2022년 참여연대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2022년 참여연대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사진은 이양기 교사(왼쪽)와 교직원 박선유 씨. ⓒ참여연대
"(이 회장이) 학교에 찾아와서, (공익제보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 줄 테니까 (스마트스쿨 사업) 하라고 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해고하고 학교 못 나오게 하고, 그다음부터 고소·고발을 하고…"
-유현주 씨
이 회장이 유 씨를 해고하는 과정은 집요할 정도였다. 직위해제와 부당 인사발령, 해고와 재해고로 이어지는 과정은 2019년 6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무려 2년 4개월간 진행됐다. 사이사이 서울시교육청과 국민권익위원회, 지방·중앙노동위원회 등의 구제 조치가 있었지만, 학교 법인은 끝내 유 씨를 해고하고야 만다. 다른 공익제보자들에게도 해임 등 중징계가 내려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학교 법인과 이 회장은 무더기 고소·고발을 쏟아냈다. 유 씨는 총 10건의 고소·고발을 당했다. 횡령, 위증, 입찰방해, 사문서위조, 손해배상청구 등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학교 법인은 공익제보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학교 인터넷 공지시스템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거짓 소문을 알렸다. 공익제보자들은 당시 학교 법인 이종명 이사장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 전 이사장 등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1심이 진행 중이다.
학교 법인은 3년째 유 씨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유 씨가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유현주 씨는 혼자만의 감옥에서 우울과 싸우고 있다. ⓒpixabay
"아무도 벌 주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벌 받고 있는 거예요. 창살 없는 감옥에 나 혼자 갇혀서 벌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유현주 씨
최근 유 씨는 침실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하루는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시작되고,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다가 끝난다. 빈 집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는 자신을 "은둔형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칩거 생활 2년째, 잠에 들지 못한 지도 그쯤 됐을 것이다. 의사가 더 이상 처방을 늘릴 수 없을 정도로 약을 많이 먹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의사가, 제 정신이 약을 이긴 거라고, 그래서 약이 안 듣는 거래요. 약 먹고 자려고 서너 시간 누워서 노력해도 머릿속에 자꾸 생각이 드니까…. 동트고 7~8시 정도 되면 몸이 힘들어서 한두 시간 졸고, 또 일어나서 하루 종일 깨어 있어야 해요."
-유현주 씨
우울, 불안, 강박, 공황, 대인기피…. 가끔 동생들이 찾아오거나, 친구이자 동료로서 공익제보에 함께했던 박선유 씨가 '생존 확인'을 하러 오는 게 대인관계의 전부다. 사람을 만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외로움과 친하지도 않다.
"의사가 잠깐이라도 햇볕을 보라고 하는데, 사람 마주치는 것도 싫고 스치는 것도 싫어서 쓰레기 분리수거 할 때도 밤 12시 넘어서 아무도 안 다닐 때 나가요.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이젠 그마저도 외롭죠."
-유현주 씨
유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멀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잠에 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문제가 해결돼야 약을 줄이거나 잠을 자겠죠."
▲대종상영화제 행사에서 배우들과 함께 선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왼쪽에서 네 번째). 그는 대중문화계에도 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연합뉴스
유 씨에게도 의지가 활활 타올랐던 때가 있었다. 학교 대신 경찰서, 검찰청, 법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형 로펌 소속 변호인단을 고용해 대응했고, 홀로 싸워야 하는 유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졌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 ‘어떻게 고모부한테 이럴 수 있지?’라고 저를 이상하게 보는 거예요. 그때마다 저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인데 왜 자꾸 그걸 강조하냐고. 이 회장 측에서는 처조카가 뒤통수 쳤다고 주장하고, 저는 또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야 했어요."
-유현주 씨
소름끼쳤던 순간은 이 회장과 함께 검찰에서 대질신문을 받을 때였다. 평생 "현주야"라고 다정하게 부른 적도 없는 고모부 이 회장은 신문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 새끼야…."
그러면서 이 회장은 유 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 씨는 손이 벌벌 떨리고,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심장이 튀어나가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 앉은 이 회장은 '가엾다', '불쌍하다', '어이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는 너무도 당당했고, 벌벌 떨고 있는 건 오히려 유 씨였다.
"제 40대 인생은 이 회장과 싸우면서 의미 없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싸워야 되고, 무조건 직진인데, 정말 살 수 있게 이기고 싶어요."
-유현주
학교 법인이 유 씨를 상대로 제기한 10건의 고소·고발 건 중 5건은 이미 유 씨가 승소하거나 혐의 없음으로 끝났다. 나머지 건들은 아직도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공익제보에 함께한 최은석 교장과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등도 고소·고발에 시달리고 있다.
▲이규태 회장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원로장로로서 대표기도를 했다. 주제는 '반성'이었다. ⓒ셜록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날이 있을 거다."
이 회장이 처조카이자 20년간 자신을 모신 직원인 유 씨에게 했던 그 말. 유 씨는 가끔 그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눈 감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됐을 텐데, 제가 안 그랬기 때문에 이 사달이 생긴 거죠. 주변에 계신 분들도 증언을 해주다가 이렇게 (불이익을 받게) 된 거잖아요. 그분들께 미안하지만, 어저께 변론기일에도 (법정에서) 말했어요. 제가 이렇게 (공익제보) 한 거 후회 안 한다고."
-유현주 씨
▲이규태 회장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셜록>
<셜록>은 이 회장, 학교법인 일광학원, 우촌초의 반론을 듣고자 여러 차례 입장을 요구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4일과 5일 이 회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통화할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문자메시지로 재차 반론을 요청했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난 5일에는 이 회장에 대한 질의서를 가지고 일광그룹 사옥을 방문했다. 대표번호로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건물 관리인은 “지금 공사를 하고 있다”며 일광그룹 관계자에게 질문지를 전달하겠다고만 했다.
▲기자는 일광학원 간판이 걸려 있는 사무실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셜록
일광그룹과 계열사 사무실이 임시 이전했다는 건물도 찾아갔다. 우촌초 바로 옆 상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 '사단법인 포사람', '사회복지법인 일광복지재단' 간판이 걸려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일광그룹 사무실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나가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7일에는 이 회장이 다니는 교회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질의서와 명함을 건넸지만, 기자의 팔과 카메라를 밀치고 교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학교법인 일광학원과 우촌초에도 반론 취재를 시도했다. 지난 2일부터 3일간 매일 우촌초 행정실 직원과 통화했지만 행정실에선 "일광학원의 사무실 위치나 전화번호를 모르고 교장, 교감도 연수 중이라 3월에 출근한다"고만 답했다.
지난 4일에는 일광학원과 우촌초등학교에 대한 질의서를 각각 우촌초 행정실 측에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다음 날 우편물 수령 사실이 확인됐지만, <셜록>은 아직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