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2일 월요일

“학교 내 일제잔재 전수 조사하고, 청산하라!”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부산지역 학교 내 일제잔재 실태조사 결과 발표
▲ 사진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전교조 부산지부를 비롯한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소속 단체들이 12일 오전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지역 학교 내 일제잔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약 한 달간 부산지역 내 초·중·고등학교의 교화, 교목, 교가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초등학교 305교, 중학교 174교, 고등학교 143교, 특수학교 15교 등 총 637교/ 유치원 413교 제외).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가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현재 자위대의 군기로 사용되고 있는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교표(학교 상징)를 사용하는 학교가 있었다.
▲ 자료 :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교목·교화를 조사한 결과,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국채보상운동이 활기차게 진행되던 대구에 가서 의도적으로 기념식수 1호로 심어 조선침탈의 상징으로 알려진 ‘가이즈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채택한 학교가 122개교였으며, 일본이 3대 미수(美樹)로 꼽은 나무이며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들어와 국내에 퍼진 대표적 수종인 ‘히말라야시다(설송)’가 교목인 학교는 23개교로 나타났다. 이 외에 일본이 원산지인 영산홍(연산홍), 국화, 벚꽃을 교화로 채택하고 있는 학교도 52개교로 밝혀졌다. 또, 친일 인사가 작사 또는 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학교는 16개교로 나타났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학급 급장’, ‘담임’, ‘차렷, 경례’ 등 친일문화(용어)도 여럿 지적했다.
학급 급장의 ‘급장’은 일제시대 교육부의 최말단 행정 기구인 ‘학급’에서 총독부 발행 교과서 성적이 1등인 자를 급장으로 임명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담임’은 학급의 업무를 맡아서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제시대 때 사용되던 용어라는 것이다. ‘차렷, 경례’ 역시 일본식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이며, 교감(校監)이나 교육감(敎育監)에 들어있는 감(監, 살필 감)이라는 말도 교사를 감시하기 위한 일제시대의 흔적이라는 지적이다.
‘수-우-미-양-가’로 표기되는 성적표기 역시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를 하는 방식이지만, 이 제도는 일본 전국(戰國)시대에 사무라이들이 누가 적의 목을 많이 베어오는가에 따라 ‘수-우-양-가’로 표기하던 방식”이라며 “해방 후 일제강점기의 학적부를 생활기록부로 바꾸면서 ‘미’를 추가해 평가·기술하면서 5단계 성적표기 방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유아들을 교육하는 학교가 ‘유치원(幼稚園)’이라고 불리게 된 사연도 “1897년 일본인들이 자기 자녀들의 유아교육을 위해 부산에 세웠던 유아학교 이름을 ‘부산유치원’으로 부르면서부터 시작됐다”면서 “유치(幼稚)라는 단어는 ‘나이가 어리다’ 혹은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1945년 해방 후 중국에서는 유치원 명칭을 ‘유아원’으로 변경해 일제 잔재를 청산했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천황에서 충성하는 황국신민’이라는 뜻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라고 바꾸는데도 무려 51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상기하곤 “우리 주변의 일제잔재를 조사하고 이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부산시 교육청에 ▲학교 내 일제잔재 전수 조사 ▲학교 내 일제잔재청산 위한 계획 수립 ▲학교의 자발적인 일제잔재 청산운동 전개를 위한 방안 강구 및 시행 등을 요청했다.
학교 내 일제잔재를 전수조사하고 청산하라!
지난 3월 4일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은 여전히 군국주의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상황 속에서 우리 안의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회원단체들과 함께 학교 내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조사하여 개선을 촉구하는 친일잔재 청산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지난 6월 말부터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의 소속 단체들과 함께 부산의 각 자치구를 나누어 맡아서 해당 자치구 관내 초·중·고등학교의 교화와 교목, 교가 등을 전수 조사하였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산지역 몇몇 학교에서는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교표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학교들은 해방 이전에 개교한 학교라는 특징이 있었다.
둘째, 교목과 교화 조사 결과, 가이즈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채택한 학교가 122교(19.2%), 히말라야시다 23교(3.6%), 연산홍 33교(5.2%), 국화 16교(2.5%), 벚꽃 3교(0.5%)였다. 특히 가이즈카 향나무의 경우,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침탈의 상징으로 기념식수를 하였으며, 이후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학교와 관공서에 심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문화재청에서는 가이즈카 향나무를 사적지에 심을 수 없는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한 바 있다.
셋째, 학교에서는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여전히 부르는 학교가 있었다. 친일인사인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가 4개교, 김성태가 작곡한 교가가 4개교, 김동진이 작곡한 교가가 7개교, 이항녕이 작사한 교가가 1개교, 총 16개교이다.
넷째, 교가 내용에서 성차별적인 내용이 있는 교가가 많았다. 여학교 교가의 경우, 수동적 이미지나 꽃에 대한 비유가 많고, 착함·순결·요조 등의 여성성을 강조하였다. 반면, 남학교 교가에는 씩씩하고 굳세며 큰 뜻을 지니며 이끌어가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현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의 교가도 적지 않았다. 즉, ‘학생의 성장’보다는 ‘나라에 충성하고 성실한 일꾼이 되자는 계몽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작사 또는 작곡 미상의 교가를 쓰는 학교도 32개교나 되었다.
다섯째, 학교 내에는 친일문화가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때부터 사용되어온 용어가 다수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담임, 교감(교육감), 각종 상장(개근상·정근상·표창장) 등이 있고,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로 ‘차렷, 경례’, 교문지도, 군대식 거수경례, 애국조회나 조회대, 주번제 등도 있었다.
여섯째, 학교 내에는 친일 기념물로 버젓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OO고에 설치되어 있는 안용백 흉상이다. 안용백은 조선총독부 학무부에 근무하면서 내선일체를 찬양하고, 대한국인들을 선동, 회유하여 일본 대동아전쟁 시 징병과 노역 등으로 우리 선조들을 내몰았던 인물이다.
위의 조사 결과를 통해서 보았듯이 학교 안에는 일제잔재가 많이 잔존해 있다. 그것은 해방 이후 일제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주변의 일제잔재를 조사하고 이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더 많은 내용을 조사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부산시교육청이 나서야 할 때이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학교 내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부산시교육청과 함께 노력할 것이며, 다음과 같은 사항을 교육청에 요구한다.
첫째, 부산시교육청은 학교 내 일제잔재를 전수 조사하라.
둘째, 부산시교육청은 학교 내 일제잔재 청산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라. 셋째, 부산시교육청은 학교문화혁신의 일환으로 학교가 자발적으로 일제잔재 청산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시행하라.
넷째, 부산시교육청은 부산시 내의 일제잔재 조사를 위해 부산시와 협력하라.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앞으로도 유무형의 방대한 친일잔재 청산에 힘을 쏟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친일잔재를 청산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 동참을 요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8월12일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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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미국과 이스라엘에 붕괴 경고

이란, 미국과 이스라엘에 붕괴 경고

이장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8/13 [06:45]
 이란, 미국과 이스라엘에 경고
▲     © 자주일보

 이란이 해사면합군창설을 앞두고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두고 '붕괴'라는 말을 써가며 강력  경고했다.

이란 외무상 모함마드 자바드 자리프가 9일 페르샤만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미국의 책동을 비난하였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최근 미국이 페르샤만지역의 안전보장을 구실로 해상연합군을 창설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그는 전략적인 이 지역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것 자체가 바로 불안정을 조성하는 근원으로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페르샤만이 이란의 국가 안전 보장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이란 외무성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해상 연합군 창설 책동에 합세하려 하고있는 데 대해 이것은 명백히 이란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고 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위험한 행동으로 부터 초래 될 모든 후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 하였다.

한편 "이란 이슬람교 혁명 근위대  총사령관이 8일 자기 나라를 반대하는 임의의 새로운 전쟁은 이스라엘에 커다란 위협으로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그 어떤 대결도 유태 복고주의 정권에 전면적인 위협으로 되며 되 돌릴 수 없는 붕괴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도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반일 종족주의’ 독후감 적은 홍준표

“좌파보다 더한 보수 유튜버”
임병도 | 2019-08-13 09:31:26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읽어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데 왜 이 책을 보수 유튜버가 띄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글을 올리자, 보수 유튜버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12일 홍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토지조사사업, 쇠말뚝, 징용, 위안부 문제 등 전혀 우리 상식과 어긋난다”며 “오히려 일본의 식민사관 주장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책에 관한 소감을 올렸습니다.
홍 전 대표는 “반일운동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제국의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러니 보수·우파들이 친일 프레임에 걸려드는 거다”라며 보수·우파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페이스북에 홍준표 전 대표의 글이 올라오자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비판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극우 만화가로 알려진 윤서인씨는 “실제 진실은 이러한데 그 책의 이런 부분은 이러이러해서 문제입니다. 이렇게 명확한 근거와 논리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홍 전 대표는 윤서인씨의 댓글에 “짧은 글로 반박하니 그렇습니다. 윤 작가님도 한 번 읽어보시면 생각이 다를 겁니다.”며 “나는 조국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적었는데 달려드는 것을 보니 좌파들 보다 더하네요”라는 답글을 남겼습니다.
보수 유튜버도 홍준표 전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커뮤니티에 인용하면서  “진실에는 동의 따위는 필요치 않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마지막에는 “세상이 흉흉해지니 벼라별(별의별) 사람이 다 정치를 하네요”라며 홍 전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조국, 반일 종족주의를 가리켜 “구역질 나는 책” 
홍준표 전 대표의 글에 보수 유튜버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페이스북에 “이런 구역질 나는 책을 낼 자유가 있다면 시민들은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나와  “그러한 말버릇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고 싶다”라며 “평생 비정치적으로 연구실을 지켜온 사람을 부역·매국 친일파라고 매도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보수 유튜버들이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을 옹호하는 것과 달리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읽는 동안 심한 두통을 느꼈다”라며 “저자가 뱉은 침이 제 얼굴에 튄 것 같은 불쾌함을 느낀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장 의원은 “강제징용은 허구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라며 “한편에서는,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매국행위를,  다른 한편에서는, ‘지식인의 용기’로 포장된 ‘역사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일종족주의에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들 
‘반일 종족주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김낙년 낙성대경제연구소장, 김용삼 이승만학당 연구자와 함께 낸 책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양에서 발흥한 민족주의와 구분됩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란 범주가 없습니다. 한국의 민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이며 하나의 권위이며 하나의 신분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종족이라 함이 옳습니다. 이웃 일본을 세세(歲歲)의 원수로 감각하는 적대 감정입니다. 온갖 거짓말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은 이같은 집단 심성에 의해서입니다. 바로 반일 종족주의 때문입니다.” (‘반일 종족주의’ 중에서) 
이영훈 전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이웃나라 일본을 원수로 적대하기 때문에 ‘종족’이라고 표현했다며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이 반일 종족주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독도 영유권에 관해 “한국 정부가 독도가 역사적으로 그의 고유한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합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서도 “이는 한일 간 최선의 합의였다.”며 “한국인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과의 과거사가 매듭지어졌음을, 과거사가 청산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안부 강제동원도 “일본군의 전쟁범죄라는 인식에 동조하지 않는다”며 “그것은 당시의 제도와 문화인 공창제의 일부였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단순한 학자의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전 교수는 스승인 안병직 교수와  ‘근대 조선의 경제구조'(1989년), ‘근대조선 수리조합 연구'(1992년)라는 책을 일본 ‘도요타 재단’으로부터 400만엔을 받고 진행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日극우재단 자금 받는 뉴라이트와 한국교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가 과거에 일본의 지원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주장을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정통 보수 우파의 생각과도 맞지 않아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859 

러시아 우스리스크서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 열려

한청단도 참석...내년 순국 100주년 앞두고 다양한 행사
우스리스크=오정윤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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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2  2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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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리스크=오정윤 통신원 /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 대표

  
▲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 12일 오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기념관(고택)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기념관(고택)에서 12일 오후 4시(현지시간)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제막식에는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문영숙 최재영기념사업회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이 플라디미르 우수리스크시의원, 최재형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개회사는 안민석 국회의원, 기념사는 소강석 이사장, 건립문 낭독은 문영숙 이사장이 맡았고 답사는 유족을 대표하여 최발렌틴 회장이 하였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기념비 건립문>
  
▲ 제막식을 가진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최재형 선생의 2020년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에 그의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소강석 이사장의 제안으로 대한민국 국회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김니꼴라이 회장, 최재형 선생의 후손 및 각계 인사들의 뜻과 정성을 모으고, 국가보훈처와 주블라디보스톡 한국영사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을 추모하는 역사적인 기념비를 세운다.
민간공익단체인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한청단)은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 참석을 위해 연해주 항일독립-발해 역사대탐방의 우수리스크 일정을 12일로 맞추고 한국의 답사단체로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석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에서 막대한 부를 쌓고 대한의군, 13도 의병, 안중근 의거를 지원하고, 항일민족지인 <대동공보>를 맡아 운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맡는 등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웠지만 안타깝게도 블라디보스톡을 침략한 일제가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4월참변’으로 1920년 4월 5일(6~7일설도 있음)경에 일본군의 만행으로 순국하였다.
  
▲ 기념비가 흰 천으로 가려진 채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 민간공익단체인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한청단)이 일정을 맞춰 개막식에 참석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내년 2020년은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으로 그의 업적과 항일독립의 의지를 계승하는 대대적인 추모사업이 진행중이고 12일에 거행된 기념비 제막식은 여러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한청단은 이곳 연해주 항일독립과 발해역사를 널리 알리고 그 뜻을 계승하는 연해주답사를 매년 여름방학에 실시할 계획이고, 많은 한국의 청소년, 일반인들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계획한다면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고택, 기념관, 그리고 이번에 제막한 최재형 기념비를 꼭 찾아주기를 희망한다.
  
▲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최재형 고택'.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 기념과 내부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최재형의 생애 연표(1860-1920)
1860 8월 15일, 조선(이북지역) 경원군에서 출생.
1869 러시아 연해주 남부 티진헤 마을로 이주.
1871 집에서 가출하여 포시에트(Посьет)항 무역상선의 견습선원이 됨.
1871-77 2회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г.Владивосток, 해삼위)-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그) 구간을 항해.
1878 선장의 추천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무역회사에 취직.
1881 얀치헤(с.Янчихе, 연추)에서 큰 아들 부부와 거주하고 있는 아버지 최흥백(Цой Хын Бек-원문에서는 세 가지 형태(Цой Хын Бяк, Цой Хын Бек, Цой Хен Бяк)로 표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역자는 이 중에서 한국식 표기에 가장 가까운 Цой Хын Бек으로 통일해서 표기)에게 돌아옴.
한인들 사이에서 문화-교육계몽 및 농업정착 사업 활동을 시작.
1882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 하마탕)-크라스노예 셀로(Красное Село) 구간 고속도로 건설국과 지구경찰서장의 통역으로 일을 시작.
1886 한인 젊은이 첫 번째 그룹을 상대로 러시아 유학 파견 사업을 조직.
1888 고속도로 건설관련 공로로 첫 은메달을 받음.
1890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최재형-П.С.Цой)의 발의로 노보키예프스크에 공원이 조성되었고, 1916년에는 슬라뱐카(Славянка)의 학교 내에 공원이 조성됨.
한인들의 생활정착 및 복지에 필요한 지원 자금 마련을 위해 산업체 인사들과의 사업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함.
1893 스타니슬라프 금장으로 된 두 번째 은메달을 수여받음.
얀치헤 볼로스치(Янчихинская волость, 얀치헤 읍,邑)의 책임자(старшина)으로 선출됨.
1894 제1차 전러시아 읍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 페트로그라드에 다녀옴.
1895 얀치헤에 최초의 정교 교회와 교사 및 사제를 위한 학교와 주택들이 건립됨.
1896.5.13 수도와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황제 니콜라이 2세(Н.А.Романов Ⅱ)의 즉위식에 참석함.
1898 친선-형제관계에 의거해 상업회사를 설립하고, 회사를 통해 한인들의 생활정착 및 복지에 필요한 교육계몽, 건설, 농업관련 비용들을 조달함.
1904 항일운동 조성을 위해 연해주 한인들 사이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함.
최고영예의 금메달을 수여받음.
1905 한국과 관련한 국가정책을 알기위해서 일본의 수도 도쿄에 다녀옴.
가족과 함께 노보키예프스크(현재 크라스키노)로 이사해옴.
1906 최초의 한인 빨치산 부대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무장시킴. 의병부대를 지휘하며 일본군 수비대에 대해 기습을 감행함.
1910 가족과 함께 슬라뱐카로 이사해옴.
1911 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비밀회의에서 전 극동지역 57명의 대표위원 입회하에 새로운 단체 ‘권업회’가 조직되고, 최재형(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이 권업회 회장으로 선출됨.
11월에 권업회의 합법적인 활동권을 보장받았으며, 12월에 창립총회가 개최되어 권업회의 지도부가 선출됨.
1913 로마노프(Романов) 왕조 제위 300주년 기념식에 한인단체(7명)의 일원으로 페트로그라드에 다녀옴.
권업회의 지도자들(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최재형), 박 에스. 베.(С.В.Пак), 채 아.(А.Цхай)이 곤닫티 프리아무르 군사령관지사(Н.Л.Гондатти, Приамурский генерал-губернатор)에게 한인의 러시아이주 50주년 기념행사 조직위원회의 조직을 허락해 줄 것을 청원했으며, 동년 10월에 프리아무르 군사령관지사로부터 허가를 받음.
1915 슬라뱐카에서 헌병대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3일 후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이송되었다가 11일째 되는 날 석방됨.
1917 얀치헤 읍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
1918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이동해 옴.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군자치단체(군참사회, Уездная Земская Управа)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군자치단체 감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
일본군에 대항해 한인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고 무장시킴.
1919 상해임시정부 위원으로 선출됨.
1920 4월 5일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총살당함.
1953 7월 13일 부인 엘레나 페트로브나(Елена Петровна)가 사망했으며, 7월 16일 (키르기즈스탄) 비쉬케크시 (프룬제) 공동묘지에 안장됨.

<출처 -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자료>


머리 기르러 서울대 갔던 조국, '두꺼비'에서 장관 후보자로

19.08.13 08:25l최종 업데이트 19.08.13 08:25l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그는 자신의 연구실을 "작고 견고한 성(城)"이라고 말했다. 또 스스로를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 철학자가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2년 전 자신의 성을 떠나 현실 정치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는 법무부라는, 7평짜리 연구실보다 훨씬 커다랗고, 어쩌면 더 굳건할 성 앞에 섰다. 그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역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조국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해왔을까. <오마이뉴스>는 그의 책 <진보집권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하다>,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와 언론 보도 등을 중심으로 조국의 생각을 정리했다.

[사노맹] 자본주의 모순 비판... "경제적 살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학생이라고 가정하고 재임 기간 동안의 법률적 통치 행위에 대해 어떤 점수를 주겠나"라는 질문에 "이명박은 C마이너스, 박근혜는 D마이너스"라고 답했다.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5년 1월 13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학생이라고 가정하고 재임 기간 동안의 법률적 통치 행위에 대해 어떤 점수를 주겠나"라는 질문에 "이명박은 C마이너스, 박근혜는 D마이너스"라고 답했다.
ⓒ 남소연
 
12일 오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대전'에 출전했다. 그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전복 집단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법무부장관이 되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라고 했다. 조 후보자가 1993년 울산대학교 법학과 전임강사 시절 옥고를 치른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 이야기였다.

조국 후보자는 이때 자신은 대한민국의 전복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계 극복을 꿈꿨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모순을 분명히 드러내고 독점재벌과 대결하는 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의 평소 신념은 그를 사노맹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1심은 조 후보자의 활동을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 활동으로 보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이 사노맹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을 뿐이라며 이적단체로 판단,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대하는 문제의식은 이후에도 변함없었다. 조 후보자는 2012년 <한겨레> 연재 코너에서 고 전태일씨의 동생 전순옥 당시 국회의원을 인터뷰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나라 중 한국만큼 독점자본의 무한독주를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요즘 재벌은 '문어발'이 아니라 '지네발'"이라고 했다. 자신의 책에서도 "경제적 살인"이란 말을 써가며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나 직업병 등으로 숨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두꺼비'의 현실 참여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문재인-김인회이 검찰을 생각한다> 발간기념 'The 위대한 검찰' 토크 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은 조국 서울대 교수와 김인회 교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선수 민변 회장(왼쪽부터)이 검찰개혁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2011년 12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문재인-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발간기념 "The 위대한 검찰" 토크 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은 조국 서울대 교수와 김인회 교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선수 민변 회장(왼쪽부터)이 검찰개혁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고교 시절, 한 교사는 그에게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친구 중에도 "너는 딱 군인 체질"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혜광고 3학년 조국은 "가뜩이나 숨이 턱턱 막히는 사회와 학교분위기에 질렸던 탓에" 사관학교로 진학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복을 입고, 편하게 머리를 기르고 싶었던 그는 198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진학했다.

캠퍼스의 낭만보다 한국 현대사의 야만을 몸으로 겪던 시절이었다. 결국 조 후보자는 '비(非)고시파'의 길을 택했다. 학생운동에 점점 관심이 높아가던 대학교 2학년 때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회보를 찾아 읽기도 했다.
 
"민청련의 상징은 두꺼비였다. 두꺼비는 알을 품으면 뱀을 찾아 나서 스스로 잡아먹히지만 그 알은 뱀을 자양분으로 부화해 마침내 뱀을 죽이고 수많은 두꺼비로 태어난다. 80년대 대학가에는 이러한 '두꺼비'가 되려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다. ...(중략)... 이러한 과정에서 나도 작은 '두꺼비'로 변해가고 있었다."
-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중에서

'두꺼비' 조국은 현실에 뿌리내린 법학자로 거듭난다. 감옥을 다녀온 뒤에는 국보법을 더욱 고민하게 됐다. 이후 조국은 한국 사회에서 반공과 분단의 논리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빨갱이'라고 낙인찍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국보법은 "친미, 반공, 분단, 자본의 논리를 일탈하는 사상과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며 완전한 폐지를 주장했다.

[살인검 휘두르는 검찰] 검찰개혁이라는 소명
 
머리 맞댄 법무장관·민정수석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수처설치법 제정 관련 당정청회의 개의를 기다리며 대화하고 있다.
▲ 머리 맞댄 법무장관·민정수석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민정수석으로 재직 중이던 2017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수처설치법 제정 관련 당정청회의 개의를 기다리며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조 후보자는 교수 시절부터 줄곧 검찰개혁을 외쳐왔다. 그는 지난해 1월 14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직접 권력기관 구조개혁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1987년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언급하며 "검사 개인은 진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검찰 전체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재직 때는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휘두르는 칼을 '살인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권의 신뢰를 얻는 데 급급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검찰에게 미래는 없다. '검사(檢事)'들은 종종 스스로를 '검사(劍士)'에 비유한다. 이들은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쌍검을 휘두르며 범죄와 투쟁을 벌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략)... 그 칼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칼이거나 권력의 의향에 따라 휘두르는 칼이라면, '활인검'이 아니라' 살인검'이라면, 검사의 손에 있을 필요가 없다."
- <조국, 대한민국에 고하다> 중에서

오랜 문제의식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첫 민정수석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조 후보자는 청와대에서 권력기관 구조개혁을 주도하며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수사 지휘-통제에서 협력관계로 재설정해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는 등 검찰의 수사권을 분산하는 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

남은 것은 개혁의 실행이다. 관련 법안은 이미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탔다. 차기 법무부 장관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는 검찰을 추스르고, 국회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조국 후보자는 이 모든 과제를 풀어내고, 스스로 "소명"이라고까지 한 검찰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치열할 국회 인사청문회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