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9일 수요일

“새 세력 구축하여 2017 대권 탈환 하겠다”



경희대 강연회 “12월 말 ~1월 창당…새정치와 합당·복당 없다”
임두만 | 2015-09-10 08:58:21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천정배의 로드맵이 나왔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9일 경희대 강연회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신당을 빠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1월에 출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대학교에서 강연 중에 청중의 질문을 듣고 있는 천정배 의원 © 임두만
이날 천 의원은 “내년 4월 13일 총선이다. 이를 역산하면 늦어도 내년 1월이면 신당이 출범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채는 분들이 있지만 중요한 건 당을 만드는 데 한 달이면 된다고 한다”며 “당을 만들면 정권을 교체할 파괴력 있는 엄청난 당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신당을 말하는 분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래와 한국 정치의 재구성’ 대해 역설하는 천정배 의원 © 임두만
그는 “지금 제가 꿈꾸는 건 먼 미래가 아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집권하려고 한다. 대선이 2년 3개월 정도 남았으니까 짧은 시간에 위력적인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새정치연합과 합당할 일은 없다. 제가 거기에 복귀할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즉 새정치민주연합과 관계없이 자신이 만든 신당으로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각오를 피력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현재 신당을 말하는 기성 정치인들의 발언과 관련해서도 “기성정치인 누구와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단 한 명도…”라며 “저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여러분과 같이 싱싱하고 패기있는 사람을 찾을까에 집중돼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천 의원은 “조만간 어떤 신당을 왜, 어떻게, 어떤 일정으로 만들지 제 생각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겠다”고 말한 뒤 강연 참가 청중의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정치연합은 가망이 없다”면서 “문 대표의 거취가 새정치연합의 부활과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강연회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만난 천 의원은 “새정치 혁신위의 혁신은 실패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 공감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천 의원이 안철수 전 대표의 의원회관 방으로 찾아가서 만난 이날 회동은 안 의원 사무실에서 배석자 없이 40분가량 진행됐다. 이후 두 사람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호남의 민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새정치연합 혁신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데 대해 공감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회동 후 안 전 대표는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천 의원의 역할이 있다. 함께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서로 각자의 입장을 나눴다”고 말했다. 이는 안 의원은 천 의원이 다시 당으로 복당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천 의원은 “새판을 짜는 게 불가피하다”며 자신의 신당 구상을 말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후 오후 늦게 시작된 강연회에서 천 의원은 자신의 생각을 유감없이 피력했다. 장소가 대학인 관계로 청년정치의 필요성, 기성정치의 퇴출 및 새로운 정치의 길에 대하여 제한선 없이 발언했다. “새 정치세력은 무엇보다 청년정당이 돼야 한다”며 “청년들이 마음껏 참여하고 청년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는 당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청년들 사이에서 ‘망한민국’ ‘헬조선(지옥(헬)+한국(조선)’이란 말이 회자되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잠작하게 하는 언어로서 그 같은 말을 듣는 것이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부끄럽다”면서 “헬조선을 극복하겠다는 사람들이 좌절할 게 아니라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질의를 한 대학생이 “신당 창당보다 다음 달 중간고사가 급하다”며 서울법대 수석입학의 비결을 묻자 천 의원은 “저는 공교육도 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제멋대로였던 것 같은데 지금보니 그게 자기주도학습이었던 모양”이라며 공부를 즐겁게 했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후 뒷풀이 장소에서도 천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위력적 신당’의 포부를 밝혔다. 아래는 이날 강연회의 이모저모를 담은 사진이다.
▲학생들이 천 의원의 강의를 메모하며 집중하고 있다. © 임두만
▲강연에 열중인 경희대 대학원 학생들 © 임두만
▲한국정치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는 대학원생에게 하는 답변도 천의원은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90 

<오래된 미래>의 권고, 지역화 통해 행복한 경제 전환을


김정수 2015. 0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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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래된 미래> 지은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구촌 다양한 환경·사회 문제엔 세계화 추구 경제 구조가 밑바탕”
“국제연대 통해 부자나라 더러운 빨랫감 가난한 나라 떠넘기기 막아야”
노르베리 호지 .jpg» 국제 지역화운동 단체인 '로컬 퓨터스' 설립자이자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70)가 3일 전북 전주시 팔달로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불행들, 우울증과 마약중독, 자살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기후변화 같은 환경 문제를 한 걸음 물러서서 지구적 시각에서 보면 그 핵심에 세계화된 경제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하지만 개인들은 이런 문제들이 자신들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행이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요. 파괴적인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주장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반면, 환경과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바로 옆 나라까지도 제대로 전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대안으로 생산과 소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지역화를 주창하는 국제단체 ‘로컬 퓨처스’의 설립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3일 전주 팔달로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처럼 규제를 받지 않는 자본이 전세계를 넘나들며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듯이 수조 달러의 돈을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시민들이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그 방향이 수정될 수도 있다”며 “이를 위한 국제 연대에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뜻을 같이해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5[503].jpg» 전주시과 공동주최로 4~5일 전주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서 노르베리호지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주시

환경 분야 고전의 하나가 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지은이로 잘 알려진 그는 4~5일 전주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를 전주시와 공동 주최하려고 방한했다. 이 국제회의는 인간과 생태가 조화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려면 세계화에서 벗어나 지역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을 확산시키려고 로컬 퓨처스가 여는 행사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를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에서 열렸으며, 이번 전주 회의가 7번째다.
 
40년 전 영국 런던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던 스물아홉살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티베트고원 지대에 위치한 북인도의 라다크를 찾았다. 지정학적으로는 인도의 일부이지만 문화적으로는 티베트에 속해 ‘작은 티베트’로 알려진 라다크의 언어를 연구하려는 목적이었다.
 
뛰어난 언어 습득 능력을 가진 그는 라다크 체류 1년여 만에 라다크말을 불편 없이 구사하게 됐고, 라다크 사람들한테 매료됐다. 그들은 ‘여름에는 탈 듯이 뜨겁고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 8개월 동안 온 지역이 얼어붙는’ 혹독한 환경의 오지에서 ‘범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십대 소년이 극히 자연스럽게 어머니나 할머니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사회’를 이루어 세상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라다크는 그가 처음 발을 디딘 1975년부터 인도 정부의 개방 정책으로 개발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 뒤 16년 동안 라다크가 변화해간 과정의 관찰 기록에 해당하는 것이 <오래된 미래>다.
 
라다크가 세계화 경제 시스템에 편입돼 붕괴돼 가는 것을 지켜보던 노르베리호지는 1980년 지역에 기반을 둔 생태적 개발 모델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라다크 프로젝트’를 조직했다. ‘로컬 퓨처스’는 이 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
 
37년 전 결혼한 영국 출신 남편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그는 일흔이 된 지금도 1년에 4개월가량은 국외 여러 곳을 돌며 로컬 퓨처스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리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경제학은 다국적 거대 기업들과 은행, 규제를 받지 않는 자본이 세계 시장을 넘나들며 일으키는 사회·환경 파괴 등 불행을 해소하려면 세계화에 저항하고 지역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 메시지로 한다.
 
“사람들이 지역사회와 더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즉 젊은 사람과 노인, 가족 간의 상호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사람들 사이에 더 행복감이 넘쳐흐른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화를 통해서 에너지 소비와 환경오염이 줄어들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8[125].jpg» "세계에서 지역으로!".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전주 선언문. 사진=전주시
 
행복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먹거리를 어떻게 생산하느냐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먹거리를 지역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달하느라 에너지 사용과 쓰레기가 늘어나고, 암 유발,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다품종 소량으로 재배해 소비하는 것이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증대, 물 이용의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잡은 생선이 중국으로 보내져서 뼈가 발라진 뒤에 다시 노르웨이로 오고, 영국에서 잡은 새우는 타이로 가서 껍질이 벗겨진 다음 다시 영국으로 와서 판매된다. 그런 운송과 그 과정에서의 냉장·포장의 필요가 지구 온난화를 점점 심화시키고 있다”며 “지구가 맞닥뜨린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인 기후변화는 부유한 나라가 자신의 더러운 빨랫감을 가난한 나라에 전가하는 것처럼 이산화탄소를 이전하는 것을 막는 정책적 변화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40년 전 라다크와의 만남이 이후 그의 삶을 결정했다. 그는 “라다크에서 늘 활기에 넘치고 유머 감각 있고, 즐겁게 살던 사람들이 개발 압력에 밀려 엄청난 변화를 겪는 것을 본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좀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40년 동안 그는 거의 해마다 라다크를 찾았다. 이번에 방한하기 직전에도 3주 동안 라다크에서 머물다 온 길이었다.
 
“과거에는 재생에너지 보급 등의 사업을 하며 현장에서 뛰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교육을 위해서 갑니다. 현지 엔지오들과 협력해 워크숍이나 강연 등을 진행하는 것 외에 라다크를 찾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진보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그는 “라다크의 중심 도시인 레를 가보면 엄청난 교통 체증과 환경오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질병들이 나타나고, 예전에는 한 세대에 한 번 정도 있던 자살이 이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특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점점 많은 라다크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라다크가 나아가는 방향을 선회시킬 때가 됐다고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작은 변화 큰 물결, 서울을 확 바꿔보겠습니다"


15.09.09 20:29l최종 업데이트 15.09.09 20:2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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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 권우성

"이제 행정의 힘만으로 거대도시 서울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없습니다. 혁신을 통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참여가 시대적 흐름인 이유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4년차. 그동안 서울특별시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정 구석구석에 '혁신'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시청 신청사 2층에는 혁신기획관실이 들어서서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은평구 3만평부지에 자리 잡은 서울혁신파크는 '혁신'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박 시장은 급기야 지난 6월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나 단체들은 어려움에 당할 때마다 너도나도 혁신으로 스스로를 확 바꿔보겠다고 부르짖는다. 선거를 앞둔 정당들도 혁신 대열에 동참한다. 그럼 과연 서울시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이고 왜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

지난 3일 기자와 만난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 박원순표 서울 혁신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그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관계의 단절'로 풀이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개인들이 지나치게 고립됐고, 그로인해 관계가 단절되다보니 많은 문제가 파생됐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문제는 고스란히 서울시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전 기획관은 이같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혁신으로 본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회복된 '보다 인간적인 도시'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사실 간단하고 작은 것들이다. 외로운 노인과 갈 곳 없는 청년들이 같이 살고, 손편지 쓰기로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하고, 이웃과의 공유로 주차장 부족을 해소하고, 시민의 제안으로 새벽에도 다니는 버스를 만들고….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면 거대한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위해 마을공동체센터, 청년허브, 인생이모작센터와 같은 중간조직을 만들어 민간단체들을 지원하는 것이 혁신기획관실의 일이다. 

전 기획관은 서울시의 혁신 사업이 "지금은 확산되는 단계라고 본다"며 "확산되면 반드시 시스템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행정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서울시가 선도하면 다른 지자체들이 따라오는 '서울모델'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박 시장이 퇴임하면 혹시 다 흐지부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마을공동체사업 모델은 경기, 대구 등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자체에서 오히려 훨씬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청년정책 지원기관인 '청년허브' 센터장을 지낸 뒤 작년 7월 부임한 전 기획관은 남은 임기 중 "민간 역량을 강화하는 보다 전향적인 조치로 혁신 노력이 단발로 끝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전 기획관의 일문일답.

성미산마을에 학교폭력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

- 서울시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인가.
"혁신에는 기술혁신도 있고, 행정혁신도 있다. 서울시가 주목하는 혁신은 사회혁신이다. 사회 문제를 국가가 행정의 힘으로 푸는 방법도 있고 시장이 경제논리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국가나 시장이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할 때, 다양한 해법들을 새롭게 찾아보는 것이 사회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경제 같은 조직을 통해, 그리고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고, 작게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찾을 수도 있다."

- 서울은 왜 혁신이 필요한가.
"서울은 문제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웃음) 고령화 문제, 지나친 경쟁, 도시빈민, 공해 등등 도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고 행정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또한 그 다음 서울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참여와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서울혁신기획관실은 사회혁신, 공유도시, 마을공동체, 청년생태계 조성, 거버넌스, 갈등조정 등 낯선 일들을 추진하는 조직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사실 서울시와 같은 거대 도시가 사회혁신이나 공유도시와 같은 플랜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사회혁신이나 협치의 실험이 행정영역과 결합되게 된 것은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와 같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아직은 불충분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과 나라에서 이런 일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서로 연결해서 효과를 만들어낼지 묻는 일들이 아주 많아졌다.

이런 사회적 흐름이 새로운 가치영역과 새로운 행정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민간에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아주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런 흐름들은 한국사회에 아주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 사회적 기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흐름은 때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이런 흐름들이 연결되고 상호학습하는 장이 마련된다면, 담론이나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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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 권우성

- 모두 시민사회 영역에 있는 조직들 아닌가. 시민사회를 행정조직 안으로 끌어들인 거라고 볼 수 있겠다.
"마을공동체센터 같은 경우는 지역에 있는 마을활동들을 지원하는 민간과 행정의 중간 역할을 한다. 서울시는 자원을 지원하고 민간의 성과가 축적되도록 상호협력을 한다."

- 그럼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겠다는 건가.
"개인들이 워낙 고립되어 있으니까 관계를 맺으며 풀어보자는 것이 하나의 측면이고, 또 다양한 영역간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거다."

- '관계'를 많이 강조하는 것 같다. 관계를 맺으면 서울시의 많은 문제가 풀린다고 보나.
"그렇다. 마포의 성미산마을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그 동네 아이들을 다 아니까 학교폭력 같은 게 잘 안 일어난다. 관계라는 것 속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문제가 풀리고 인간다움이 가능해진다.

영국에서 나온 <관계국가>라는 보고서를 보니, 그 전에는 국가가 서비스를 전달하는 '전달국가'였지만 이제 '관계국가'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즉, 예전의 질병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늘어난 만성질환, 우울증 등은 관계 없이는 치료나 발생억제가 안 된다. 이런게 거버넌스나 혁신이 행정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인 거 같다. 공공은 판만 짜주고, 주민들이 풀어가는 영역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외로운 노인과 집 없는 젊은이가 한 집에 산다면?

- 결국 서울 혁신의 목표는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어가자는 것인가.
"그렇다. 어느 사회나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그런 문제들을 행정과 민간이 공동으로 해결해가자는 것이다."

-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혁신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달라.
"성북구 등에서 많이 하고 있는 '한지붕세대공감'이란 사업이 있다. 청년들은 주거할 곳이 없다고 난리인데, 노인들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분들이 많다. 이런 청년과 노인들을 결합해주는 것이다. 청년들은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노인들은 외로움을 덜면서 약간의 수입까지 생긴다.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살려면 불편한 게 있을 수 있다. 그럼 시에서 약간의 주거 리모델링비를 지원해준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아파트에서는 손편지 쓰기 같은 걸 하는 사례도 있다. 위아랫층 간에 서로 알고 지내면 갈등이 해결된다. 아파트의 지하에 대피소가 있는데 이것을 문화공간으로 만든다든지 주민들의 휴식처로 만들기도 한다.

심야에 다니는 '올빼미 버스'는 시민이 아이디어를 낸 거다. 밤에도 다니는 버스가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통신회사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 시민들이 야간에 제일 많이 다니는 노선도가 나온 것이다. 기업의 데이터와 행정서비스가 결합되는 것이지만 시민의 제안이 없었으면 아마 그런 거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주차장을 공유하는 사업은 서울시 입장에선 주차장 확보하는 데 드는 돈이 줄어들고 이 공유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이같이 당면한 도시 문제를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푸는 게 혁신이다."

- 재미있고 의미있는 아이디어이지만, 무언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혁신학교로 유명한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이것이 정책과 맞물리면서 혁신학교 정책이 됐다. 일부 사례가 정책과 만나 확산된 것이다. 2, 3년 전만 해도 '공유도시'라고 하면 다들 낯설어 했다. 집에서 공구 쓸 일 1년에 몇 번이나 있나. 공유하면 소비를 절약해주고, 창고에 가야 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작은 동네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다. 작을 일로 볼 수도 있지만 여러 곳에서 함께 한다면 큰 사회적 효과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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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 권우성

이웃이 함께 나눠 쓰면 소비가 위축된다고?

- 그러면 공유경제가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반론이 나오지 않을까.
"숙박 관련 공유사례로 유명한 '에어비앤비'를 보자. 미국에서 빈 방 하나를 빌려주면 방 하나에 연 600~700불의 수입을 올린다. 자기 집에 노는 빈 공간을 이용해 수입이 올라가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경제 활성화가 되는 거다. 몇 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여행가방이나 취업면접 보러 갈때나 입는 양복정장을 왜 사야 하나. 이런 것을 빌려 쓰면 문화나 경제차원에서 이득이다."

- 이전 시장님들은 큰 사업들을 선호했다면, 박원순 시장은 작은 일을 꼼꼼하게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들이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지금은 확산되는 단계라고 본다. 확산되면 반드시 시스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기존의 제도 안에서라도 서로 협력해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 새로운 행정이 나올 수도 있다 최근 이뤄진 주민센터 개편을 보자. 지금까지는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복지서비스를 받았다. 앞으로는 행정이 찾아온다. 또 동사무소라는 공간을 공무원들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행정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동사무소일 것이다. 행정이 변하는 거다. 행정이 찾아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큰 혁신이다. 동사무소가 변하면 행정의 시스템 변화를 초래한다. 행정이 주민 사이에 있다는 혁신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 다 좋은데 시민들은 '이게 박원순이 한 거다'라는 생각을 안 할 것 같다.
"누가 했든, 굉장히 중요한 전환기에 있는 것은 맞다. 서구도 사회적으로 잘 안 풀리면 다른 해법을 모색하는 방식을 많이 추구한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6월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선정됐다. 서울이 혁신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박원순 시작 퇴임하면 혁신사업 흐지부지 된다?

- 박 시장이 퇴임하면 다 흐지부지 되는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약간 부침은 있겠지만. 마을공동체사업 모델은 새누리당 소속인 권영진 시장의 대구, 남경필 지사의 경기도 같은 곳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이것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으로 그런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센터는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다 하고 있다."

- 서울시 혁신기획관 같은 조직이 다른 지역에도 있나.
"시민소통이라고 하든, 시민참여라 하든 이름은 달라도 광주와 제주 등 많은 지역에서 시도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한 혁신운동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종의 '서울모델' 같은 게 형성되고 있다."

-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회혁신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까.
"먼저, 사회 내부에 사회혁신을 실천할 수 있는 단위들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민선 5기, 행정에서는 낯선 중간지원조직들이 만들어졌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허브, 인생이모작센터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센터들은 민간의 새로운 흐름들을 촉진하고, 지원하고, 연결하는 일들을 해왔다.

두 번째로는 행정 내부의 변화 노력이다. 내부적으로는 많은 행정혁신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의전에 대한 혁신, 절차에 대한 혁신, 계약 관계에 대한 혁신 등을 통해 행정 내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야만 행정이 유의미하게 민간의 자발적 흐름과 연계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사회혁신의 기반을 만들어내려는 다양한 시도다. 정보공개를 통해 행정정보를 가공해 시민의 서비스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공공데이터를 통해 항생제를 많이 쓰는 병원을 추려내 시민들에게 알려준 적도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 권우성

'보석같은 공간' 서울혁신파크의 가슴 벅찬 미래

- 은평구에 조성하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인터뷰에서 서울혁신파크를 '서울의 보석같은 공간'이라고 칭했던데,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
"지금 입주단체 1차 모집이 끝나고 2차에 들어간다. 올해 안으로 단체와 기업들 200~300개가 입주하게 된다. 그러면 혁신을 꿈꾸는 청년들 수천 명이 모여들게 될 것이다. 담장이 헐리고 야외는 빈 공간을 활용해서 시민들과 교류, 공유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넣으려 한다. 혁신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서로 알게 되고 새로운 활동이 일어날 것이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있을 거라고 본다. 아마 기반조성사업이 끝나는 내년말 내후년초 되면 크고 작은 건물들도 정비되고 어린이 복합시설이 들어서면 공간의 모습도 많이 바뀔 거다."

- 개방직으로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는 개인 입장에서 해야 하는 일과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스템 내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낯선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80년대에 청년시기를 보내고, 1990년대 후반에 하자센터 등을 통해 문화 시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과 30대 후반을 보냈다. 각각의 가능성과 한계를 지금 시점에서 많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고, 사실은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일이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논의하고 동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마당을 깔아보는 일이었다. 서울시 청년허브를 만든 맥락이다. 

그 정도가 내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하다, 서울시에 들어와서 일하게 되어 이 시간 동안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지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행정 내부에서 사회혁신에 속하는 일이 변방처럼 존재하지 않고, 행정 내부에서 그 의미를 인정받게 하는 일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사회혁신의 흐름이 작은 흐름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에 대응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라는 것을 실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내 여러 조직들이 이미 몇 년 동안 그러한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그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일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하는 일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노력이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인데, 이는 민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좀 더 전향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거버넌스 2단계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대략의 윤곽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10일부터 서울시가 박람회 2개를 한꺼번에 연다. 무슨 일인가.
"하나는 서울광장에서 여는 함께서울정책박람회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여는 서울마을박람회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추석 전에 열려고 하다보니 겹쳤다. 둘 다 이번이 4회째인데, 정책박람회는 이번에 1인가구문제, 젠트리피케이션 등 예민한 문제를 많이 다룬다. 마을박람회는 전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집단작업으로 마을선언을 만들어 발표한다. 지금까지 마을은 뜻맞는 사람들이 재밌게 살자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줄 계획이다. 지방정부협의회가 출범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기초단체만 50개가 혁신파크에 모이니 아마 떠들썩 할 거다. 시민 여러분들도 많이 오셔서 잔치에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연발소총 차고 9.11테러14주기 경계근무 강화 ...평화미국원정단 26일째

  • 연발소총 차고 9.11테러14주기 경계근무 강화 ...평화미국원정단 26일째



  • 평화미국원정단은 8일 펜타곤, 백악관앞에서 26일째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전개했다.

    원정단은 펜타곤지하철역앞에서 출근시간인 오전7시부터 1시간동안 카톨릭워커회원들과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펜타곤앞을 지키는 경찰은 카톨릭워커회원들과 원정단을 향해 인사를 한 후 피켓시위참가자들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했다. 무전기와 권총을 찬 채 근무를 서던 평소와 다르게 이날 어떤 경찰은 연발소총을 몸에 걸친 채 펜타곤지하철역주위를 돌며 피켓시위대앞을 지나치는 등 긴장을 조성시켰다.

    카톨릭워커회원은 <9.11테러14주기가 다가오면서 경찰들이 총들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은 테러위협에 대비하려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긴장감을 조성시키며 이데올르기공세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출근시간에 시민들과 펜타곤직원들은 대부분 원정단의 피켓시위를 대충 훑고 지나갔지만 몇몇사람들은 원정단의 피켓에 유다른 관심을 보이며 한참동안 서서 읽기도 했다. 
     
    펜타곤으로 출근하는 한 여성직원은 카톨릭워커회원과 잠깐 인사를 나눈 다음 원정단의 피켓문구를 읽더니 수고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미소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어 출근자들이 원정단의 피켓시위에 연달아 관심을 보였다. 어떤 한 흑인은 오랫동안 서서 피켓을 끝까지 읽은 후 옅은 웃음띤 얼굴로 인사를 나눴으며 시위대와 눈이 마주친 한 군인은 눈을 피한 채 바삐 걸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펜타곤역 <Free Speech Zone>시위장에서 반전평화를 외치던 10여명은 1시간의 투쟁을 마무리하고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원정단이 피켓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도 경찰들은 여느 때와 다르게 차량을 세운채 운전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원정단은 백악관앞에서 11시30분부터 1시간동안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24일째 전개했다.

    노동절연휴가 끝나 관광객들은 줄어들었지만 50여명의 단체관광객들이 백악관앞에 와 원정단의 피켓시위에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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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민족일보

9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역사속 오늘] 9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nk투데이 이동훈 기자 
기사입력: 2015/09/09 [21: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9월 9일은 북한의 주요 기념일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입니다. 1948년 9월 9일에 창건했다고 하여 '9·9절'이라고 하거나 '공화국 창건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임시 인민위원회에서 정부 수립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신은 북조선인민위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해방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행정기구입니다.
1945년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전국 곳곳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조직은 8월 말까지 남북 전역에 140여개의 지부가 건설되었으며, 실제 자치권과 치안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행정조직으로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미군이 진주하기 직전인 9월 6일, 정부 수립을 위한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해방된 조선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38선 이남에는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탄압을 받았습니다. 미군정이 자신들을 유일한 정부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불법조직이 되어 강제로 해산 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8선 이북에서 군정을 실시하던 소련군은 인민위원회를 인정했습니다. 정해구 교수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북조선인민위원회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구체적인 행정은 도인민위원회에서 직접 시행되었고 소련은 핵심적인 지침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6년 2월, 북한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1946년 11월 도, 시, 군 지방선거를 통해 1947년 2월 '임시'자를 떼고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립 경축대회ⓒ민족21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립 경축대회ⓒ민족21

남북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남북에는 다른 성격의 임시 기구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북조선인민위원회도 통일이 되기 전 임시기구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분단이 가시화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1945년 12월 미국과 소련, 영국의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갖고 조선의 독립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것이 모스크바 3상회의입니다. 서중석 교수의 책 '현대사 이야기'에 따르면 3상회의 결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만들고 미소공동위원회가 남북의 민주적 정당들 및 사회단체들과 협의해 남북을 아우르는 민주적인 임시정부를 세우며, 미·소·영·중 4개국은 임시정부의 독립과 민주적 발전을 위해 신탁통치(또는 후견)를 하고 그 기간은 5년 이내로 한정된다고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떤 단체들이 미소공동위원회와 함께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서 1947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1947년 9월 16일)하면서 분단이 가시화되자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이 벌어졌습니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논문 '1948년의 남북협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47년 10월 3일 북한의 김일성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은 북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 회의에서 남북의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를 제안했습니다. 남한에서도 중도파를 중심으로 남북회의를 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등 여러 제안이 오갔습니다. 비밀 협의가 이루어진 끝에 1948년 4월 18일 역사적인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와 '4인회담'(김구, 김규식, 김두봉, 김일성, 가나다 순) 등이 평양에서 열려 단독선거 불인정 등을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가시화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대처하는 조치들도 있었습니다. 1947년 11월 북조선인민회의 3차회의는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임시헌법초안'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서 조선은 북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아직 통일이 되기 전이므로 '임시헌법'을 만들고 통일 이후 이를 통합하거나 정식으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참고로 북한 뿐 아니라 남한도 1947년 남조선과도정부가 만들어졌을 때 7장 58조로 구성된 임시헌법을 만든 바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8년 5월 10일 단독선거가 치러지게 됩니다. 남한에는 국회가 구성되었으며 헌법을 심의, 제정하는 등 정부 수립이 진척되었습니다.
북한은 이에 6월 28일부터 7월 5일까지 제2차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개최했습니다. 회의에서는 5.10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를 "비법적 조직체"로 규정하고 남북 총선거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회의 이후 대의원을 뽑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북한지역에서는 8월 25일 최고인민회의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해 212명의 대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38선 이남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7월부터 지하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신철 교수의 논문 '북한 민족주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 총유권자의 77.5%가 선거에 참여했으며 선거 결과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1080명의 대표가 선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남측 대표들은 1948년 8월 21일, 38선을 뚫고 해주에 모였는데 38선을 넘는 도중 일부가 참가하지 못해 결국 997명이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정당·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360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북한의 첫 최고인민회의에는 북한 대의원 212명에 남측 대의원 360명을 합쳐 572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었으며 이 중 528명의 대의원이 참가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가 9월 2일 열렸습니다.

1차최고인민회의
1948년 열린 1차 최고인민회의

북한은 남측의 지하선거와 남측 대의원을 근거로 자신들의 정부가 남북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정부 수립 이후 첫 내각을 구성할 때 구성 비율에서 남북을 각각 10명 씩 두어 균형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5일 헌법 초안을 약간 수정한 뒤 통과시켰고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과국 헌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선거를 통해 김두봉을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에 홍남표, 홍기주 등을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인민위원회 김일성 위원장이 정권이양에 관한 성명 진술을 한 뒤 북조선인민위원회의 권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이양했으며 수상으로 김일성 위원장이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9월 10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강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수립 3일 후인 9월 12일 평양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군중대회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김일성 수상은 '모두 다 공화국정부 주위에 굳게 단결하여 민주조선창건을 위하여 전진하자'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수립 기념일을 축하하는 북한 사람들 연도 미상 ⓒ민족21
정부수립 기념일을 축하하는 북한 사람들. 연도 미상 ⓒ민족21

북한에서 공화국 창건일이란
북한에서는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인민의 국가를 세운 뜻 깊은 날"이라고 규정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창건한 날인만큼 북한에서는 9월 9일이 되면 행사를 치릅니다. 지난해의 경우 '공화국창건 66돌' 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열렸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당, 국가, 군대 책임일꾼들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 묘에 헌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학생들의 무도회가 평양을 비롯한 전국 주요 시군에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북한에서 '꺾어지는 해'라고 표현하는 5년 10년 단위 기념일의 경우에는 더욱 성대하게 행사가 치러집니다. 지난 2013년에는 '공화국창건 65돌'을 맞아 로농적위군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공화국 창건 65돌 열병식 장면 ⓒputevki43.ru
공화국 창건 65돌 열병식 장면 ⓒputevki43.ru

9월 9일에는 조국통일을 위한 중요한 내용이 발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8년 창건일 40주년이던 때, 당시 김일성 주석은 '연방제 통일 논의'를 전제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습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사이에 대화와 협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진정한 의사를 가지고 우리를 만나러 평양에 찾아오는 데 대해서는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북남 최고위급회담'이라고 언급해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제의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65돌 행사에서는 중앙보고 대회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조국통일 3대헌장을 비롯한 강령적 지침과 6.15통일시대가 개척되어 조국통일의 앞길에 밝은 전망이 펼쳐지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67주년 경축대회에서도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읽을 수 있는 표현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박봉주 내각 총리는 경축대회 연설자로 나서 "북남관계에서 대전환·대변혁을 일으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며 "공화국정부는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여러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적극 확대 발전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동훈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