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3일 목요일

[취재수첩] 방송에선 볼 수 없는 ‘통합당 vs 민주당’ 의원들의 설전

탈북자 출신 태영호 의원, 사상 전향했느냐?
임병도 | 2020-07-24 08:59:3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7월 23일 오전 10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개최했습니다.
청문회가 시작하기 전 입장하는 이인영 후보자의 표정은 굳어 보였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쏟아질 질문과 공격에 대한 압박감은 아무리 4선 의원 출신이라도 쉽게 넘기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인사청문회가 열린 국회 본청 401호는 굉장히 좁았습니다. 전날 열렸던 문체위 청문회와 비교하면 위원들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취재진도 몰려 이동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입장하면서 취재진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겨우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원내대표 출신 4선 의원이었지만 통합당 의원들의 이인영 후보자를 향한 공격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태영호 통합당 의원이었습니다.
탈북자 출신 태영호 의원, 사상 전향했느냐?
통합당 태영호 의원은 총선에서 받은 네거티브 공격이 “태영호는 빨갱이다. 사상검증 안 됐다.”였다며 이인영 후보자도 이런 말을 들어봤냐고 물었습니다. 이 후보자는 “정권이 공개적으로 용공세력으로 지목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답변했습니다.
태 의원은 “제가 김일성 주체사상 원조 맞죠?”라고 물은 뒤 “북한에서는 남한에 주체사상 신봉자가 많다. 전대협 조직이 있는데 전대협 조직성원들은 매일 아침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남조선을 미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충성의 의지를 다진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운동권 출신 이인영 후보자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소위 말하는 ‘빨갱이’가 아니냐는 뉘앙스였습니다. 태 의원은 자신은 사상전향을 했는데, 이 후보자도 했는지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그러면 제가 추가 질문드리겠습니다. 이런 겁니다. 제가 대한민국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사상 전향했느냐 계속 물어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제가 이번에 이걸 준비하면서 후보자의 삶의 궤적을 많이 들여다봤는데.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사상전향을 했는가 이걸 제가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이렇게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저는 대한민국 만세 저는 이렇게 불렀어요. 그래서 누가 나보고 사상전향 안 했다 그러면 무슨 소리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대한민국에 와서 첫 기자 인터뷰입니다. 이렇게 저는 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혹시 후보자님께서도 언제 또 어디에서 이렇게 나는 주체사상을 버렸다, 또는 주체사상의 신봉자 아니다 하신 적이 있습니까, 공개선언 같은 거?
이인영 / 통일부 장관 후보자:이른바 전향이라는 것은 태 의원님처럼 북에서 남으로 오신 분에게 전형적으로 해당하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제가 남에서 북으로 갔거나 북에서 남으로 온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저에게 사상전향 여부를 묻는 건 아무리 위원님이 저한테 청문위원으로서 물어보신다고 해도 그건 온당하지 않은 그런 질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북에서는 이른바 사상전향 이런 것들이 그렇게 명시적으로 강요되는지 모르지만 남쪽은 이른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이런 것들이 법적으로는 되지 않아도 사회정치적으로 우리 민주주의 발전 수준에서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놓고 보면 위원님께서 저에게 사상전향 여부를 다시 물어보시는 것은 아직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인영 후보자의 답변은 태영호 의원이 ‘아직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수십 년 전 독재정권에서 벌어졌던 운동권 활동을 2020년 국회에서 묻는다는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었습니다.
변호사 출신 이재정 의원, 국회의원에게 헌법을 알려주다
태영호 의원의 사상전향 질의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중에서 이재정 의원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계속 움찔했습니다. 결국, 이 의원은 자신에게 배정된 질의 시간 7분 중 2분을 써가며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 냈습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여기 있는 의원들 모두가 헌법 앞에 맹세를 했다”면서 “이 후보자의 과거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질의 태도가 반헌법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사 출신 이 의원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잘 이해하는 전문가임을  내세우며 은연중 태 의원을 향한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의원은 “색깔론 공세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는 있겠지만 질의에 대한 자유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지적은 가능하지만 뭐뭐주의 신봉하느냐, 믿느냐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재정 의원은 “믿느냐, 신봉하느냐, 십자가 밟아라, 이것은 헌법이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이 없다”라며 “여기에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도 헌법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에 나온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말하는 이 의원의 표정은 헌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처럼 단호했습니다. 특히 이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면 헌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태 의원의 질의가 잘못됐음을 돌려서 말했습니다.
김영호 의원, 통합당에도 전대협 출신 있지 않느냐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오전 질의가 끝나기 전 안민석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자신도 80년대 운동권 출신이라며 또다시 사상검증, 사상전향을 꺼내 태영호 의원의 질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태영호 의원은 인사청문회가 “사상검증의 자리라는 소릴 듣고 질의했다”라며 자신을 향한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태 의원은 ‘자애로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마치 자유 대한민국이라며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식으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송영길 위원장의 정회 선언이 있었지만, 민주당 의원과 통합당 의원들 간의 설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통합당 의원을 향해 왜 잘못됐는지 알려주자 다시 통합당 의원들이 반발했습니다. 가방을 메고 나가려던 김영호 의원은 “4선 의원에 대한 사상검증은 국회를 모욕하는 일이다”라며 다시 맞받아쳤습니다.
의원들 간의 설전이 계속 이어지는 도중 김영호 의원은 “통합당에도 전대협 출신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통합당 의원은 “의원이 아니라 장관 후보자다”고 말했고, 김 의원은 “현재 국회의원이다”고 답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사상검증, 사상전향이라는 구시대 유물과 같은 발언이 통합당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얻는 것은 극우 보수의 결집이겠고 잃는 것은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정당이라는 이미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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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의 삶과 죽음

[김종철 선생을 기리며]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갔다온 사실로 해서 인류에게 어떤 기여가 있었다면 아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에서 인간이 지구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탑승했던 우주선 조종사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달에서 돌아오면서 지구를 보니까 너무 아름답고, 작고, 가냘프게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특별히 시적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도 아닌 한 우주선 조종사로 하여금 그러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지구라는 별을 하나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위에 자기의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 터전으로서의 지구가 허공 중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요컨대 그는 전지구적인 관점에 자연스럽게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는 우주로부터 지구를 바라보는 이 우주선 조종사의 마음을 “마치 어머니가 어린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심정”에 비유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아폴로계획의 유일한 성과이며, 또한 이러한 마음은 옛날부터 현명한 사람들이나 시인, 예술가들, 예언자들, 신비가들, 그리고 아메리카인디언들이 늘 지녀왔던 관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산업문명의 질주로 “인간은 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어리석은 욕망을 추구하다가 이제 가장 비참한 재난에 봉착”했다. 그는 인간들이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만물이 하나이고 형제라는 생각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생각보다는 감수성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하며 “인간 공동체나 사회 공동체라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감수성의 대전환이랄까, 하여튼 이제는 생명체 전체를 하나로 보는 생명 공동체의 개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사람이 성숙하게 된다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급적 죽음에 대한 의식을 배제하려고” 하며 “회피하기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을, 마치 그것이 불상사이기나 한 듯이 될 수 있는 대로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죽음에 임박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서둘러서 병원에 옮기고 단 몇 시간, 며칠이라도 목숨을 연장하려고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편리하게 변명되고 있지만, 실은 죽음을 정당하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들이 대개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우리가 물질주의적 가치만을 가치로 인정하는 생활방식, 즉 산업문화를 전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죽음을 삶의 불가결한 요소로서 파악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길러질 수 없”고, “죽음이란 그냥 불안스런 재난으로 인식될 뿐”이며, “우리가 소유한 것들, 사회적 성공, 명예, 이런 것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죽음은 단순히 두렵고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대상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비겁한 마음이 폭력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의 쇠퇴는 죽음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안팎의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간에도 폭력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성숙한 것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상이 죽음에 대한 김종철의 소신이고 사상이며 철학이었다. 코로나19로 그가 집요하게 경고했던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지속 불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난 이제, 돌연 그는 떠났다. 어찌 보면 지난 30여 년간 온축된 그의 지혜와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해진 지금 김종철은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죽음은 모든 것의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씨앗”이며 “죽음은 삶의 단순한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끝없이 순환하는 생명과정의 필수적인 고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몫을,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며 인간과 인간이 화해하고 각 개인이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삶을 온몸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연재 순서

1. '시대를 바꾸고자 한 예언자이자 실천적 사상가, 김종철' (박승옥 글)
2. 왜 녹색평론을 시작하였는가(1995년,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3. 거짓언어와 '성장'논리 속에서-나의 한국 현대사(2012년, <발언 1>)
4. 땅의 옹호(2002년,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5.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開眼이다(2006년, <땅의 옹호>)
6. 지역통화-삶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술(1998년, <간디의 물레>)
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책머리에(2019년)
8.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2008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9. 촛불시위와 시민권력(2017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0.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순환(1998년, <간디의 물레>)

이상기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이제 스산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고 있다. 이런 날 산책길이든 어디서든 떨어진 낙엽이나 아직까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빛깔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몸뚱이에 아무 상처가 없는 잎사귀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봄에서 여름 그리고 가을의 결실기에 이르는 동안 향기와 그늘과 소리와 빛깔로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던 나뭇잎들이었건만, 하나하나의 잎사귀들에게 있어서 계절의 변화와 성숙은 비바람에 찢기고, 햇볕에 타고, 벌레들에게 먹히며, 스스로의 피로로 쇠잔해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결국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처를 통해서만 나뭇잎이든 사람이든 조만간 닥쳐올 죽음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은 물론 회피해야 할 재앙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낙엽이 이윽고 썩어서 거름이 되고 또다시 흙이 됨으로써 거기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이 죽음은 모든 것의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씨앗이다. 죽음은 삶의 단순한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끝없이 순환하는 생명과정의 필수적인 고리이다. 또는 거꾸로 생각해서, 삶이 죽음의 일부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정신과학자로서 인간의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가장 골똘한 관찰과 사색의 기록을 보여준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의 아름다운 표현을 빌어 말하면, 우리가 삶을 누리다가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애벌레의 상태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큐블러―로스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낯선 경험을 앞두고 느끼는 두려움일 뿐이며, 실제로 그것은 근거없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죽은 뒤에 사람이 반드시 나비로 변신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 ― 미망(迷忘) ― 에 연유한다는 것은 인류의 스승들이 줄곧 말해온 핵심적인 가르침이었다. 권력과 재화와 명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의 궁극적인 근원은 따져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을 용기있게 대면할 수 없는 결과로서 우리가 끊임없이 쌓아가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수록 더욱더 죽음은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회피하고 싶은 공포의 재앙으로 다가올 뿐인 것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 ⓒ프레시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본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의지로써 어떻게 달리 변경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한계 내에서도 사람이 어떠한 세계관과 문화 속에서 살고, 어떠한 삶의 방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산업주의 문화가 사람들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기 이전의 동서양의 전통사회들이나 또는 좀더 나아가서 오늘날에도 산업문명의 주류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적지않은 토착민족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의미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이나 아마존의 인디언들의 문화에 대한 여러 인류학적 보고들 가운데는 이들 토착민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연한 태도에 놀라움과 존경을 표시하고 있는 증언이 적지않다. 인적이 없는 숲속에서 홀로 되었을 때에도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토착민들은 결코 겁먹거나 공포에 떨지 않는다. 북미 인디언의 한 지도자는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유럽 백인들에 의해 자기 종족의 삶의 터전이 무자비하게 침탈당하고 그 결과로 종족 자체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가는" 인간의 운명에 너그럽게 순종해야 할 필요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점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세계를 자기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만물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세계관과 감수성에 연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생과 조화의 세계를 근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토착민들은 자신을 생명의 그물의 한가닥으로 인식할 뿐 배타적인 이익이나 권력을 탐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남루하고 뒤떨어져 보일지 모르지만, 토착민들의 문화는 이처럼 비상하게 비폭력적인 공생의 세계관에 뿌리를 박고 있기에 그들은 자연히 깊은 내면적 안정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오랫동안 누려왔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마도 가장 결여된 것은 이와 같은 내면적 평화일 것이다. 산업사회를 뿌리로부터 지배하고 있는 성장의 논리 자체가 인간의 삶을 그 자신의 내면과 그의 이웃과 자연세계에 대하여 끝없는 폭력을 자행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궁극적인 한계를 쉽게 망각하고, 끊임없이 기술수단을 개발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갈수록 크게 하고, 우리 자신의 자아를 무한히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새로운 첨단기술을 통해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우리의 내면은 더욱더 공허하고 우리의 삶은 갈수록 황폐화하며, 생태적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우리는 갈수록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산업주의 문화와 그것을 떠받치는 과학기술이 근원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가장 단적인 예는 이른바 유전자 기술을 비롯한 첨단기술의 발전이다. 지금 각국 정부의 비호까지 받아가며 대대적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 이러한 기술개발들의 주요 명분은 인류의 건강을 지키고 식량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통하여 인간 유전자의 전체 지도를 읽어내는 일도 이제 거의 시간문제가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의 모든 질병치료는 물론이고 노화방지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 곧 다가온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유전자 조작기술을 통해 종래의 육종, 교배방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종(種)간의 벽을 가로질러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새로운 생물이나 작물을 인공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양이나 소와 같은 포유류 동물의 복제도 가능해졌고, 인간복제는 이제 기술문제가 아니라 단지 윤리적 저항에 부딪쳐 있을 뿐이다.

유전자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생태학적 위험에 대해서는 이미 심각한 경고가 있어왔다. 예를 들어, 지구상의 생물진화의 오랜 역사에서 한번도 나타나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생물이 유전자조작에 의해 돌연히 자연계에 투입되었을 때 그것이 생태적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어떤 가공할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는 예측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전예방 원칙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조금이라도 사려있고 책임감있는 사람이라면 유전자조작은 마땅히 거부해야 할 프로젝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심스러운 생각은 첨단기술이라면 덮어놓고 환호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분위기에서는 무시되거나 조소를 당할 뿐이다. 말할 것도 없이, 현재 유전자조작을 비롯한 생명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 분야의 새로운 시장을 통한 엄청난 이익을 노리는 다국적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이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사태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 널리 퍼져있는 오늘의 산업주의 문화와 그 문화에 깊이 세뇌된 대중들의 의식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인 것이다.

생태적인 또는 건강상의 위험성 여부를 떠나서도, 과연 유전자 조작기술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실은 엄격히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미 여러 비판자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유전자 조작기술은 오히려 전통적인 농민들의 손으로 오랜세월 동안 보존되어온 생물 및 작물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토양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전세계적인 범위에 걸쳐 인공적인 기근을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유전자 조작기술은 부분적인 합리성에 매달리다가 전체 국면을 돌이킬 수 없이 손상시키는 전형적인 현대기술의 무모함과 무책임성을 대변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무책임한 기술의 근저에 있는 정신적·심리적인 토대이다. 이것은 유전자 기술들이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또하나의 주요 혜택, 즉 인간의 모든 질병을 퇴치하고 노화를 방지한다는 생각에서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요컨대, 이제 인간은 아프지도, 늙지도, 그리고 가능하다면 죽지도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하기는 건강과 장생 또는 영생에 대한 꿈은 인류사의 시초부터 있어온 자연스러운 심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러한 단순한 꿈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끝없는 자기확대를 겨냥하는 권력욕망의 극치, 다시 말해서 자신이 운명적으로 죽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마저 부정하려고 하는 엄청난 교만성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극단적인 교만성의 뿌리에는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빈곤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죽음을 자신의 기술적 재간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미숙함의 결과이며, 어리석은 망상일 뿐이다. 우리가 실지로 병들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생불사에 대한 꿈이 아무리 큰 것이라 해도 그것이 단지 소박한 꿈으로 남아있는 동안에는 인간의 정신적 건강은 근본적인 손상없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러한 꿈이 소박한 수준을 넘어서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광적인 열정으로 추구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될 때, 그러한 과학기술은 자연의 전체적 질서와 균형을 무시하는 폭력의 기술이 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자기중심적인 비뚤어진 욕망충족에만 매달리는 심히 야만적이고 천박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초음파 기술로써 태아의 성과 건강상태를 미리 감별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일이 거의 관습화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생명의 신성함과 존엄성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

오늘의 첨단기술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 불임부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난치 또는 불치병 환자를 위해서, 기형아 출산을 예방하기 위해서, 노화방지를 위해서 인공수정, 장기이식, 유전자치료, 초음파검사, 기적의 약품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이 실지로 실현된다고 할 때 인간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겠는가.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의 신비를 느끼고, 생명의 근원적인 거룩함을 느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결핍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성숙과 교육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 난치병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나 그를 돌보는 가족이나 이웃의 경험은 단순히 소모적인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고통과 보살핌의 체험을 통해서 사람은 사람살이의 궁극적 테두리와 한계를 성찰하고, 자기보다 더 큰 존재에게로 다가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는 사회적·생태적 위기의 현실에 직면하여,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심리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이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건강한 인간생존은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끊임없는 순환 가운데서만 가능하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또하나의 눈부신 기술이 아니라 인간생존의 근원적인 바탕을 늘 잊지 않게 해주는 인문적 지혜와 종교적 감수성이다.(1998년)

출처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개정판), 녹색평론사, 2010년 246~252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310381523918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부산 역대급 폭우에 피해속출... 지하차도 침수로 3명 사망


 24일 부산소방재난본부 금정구조대 대원들이 부산 연제구 온천천 인근 한 아파트 입구에 침수된 차량에서 인명 검색을 하고 있다.
▲  24일 부산소방재난본부 금정구조대 대원들이 부산 연제구 온천천 인근 한 아파트 입구에 침수된 차량에서 인명 검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에 시간당 8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데다 만조 시간까지 겹쳐 도심이 물바다로 변한 가운데 갑자기 불어난 물로 침수된 지하차도에 갇혔던 3명이 숨졌다.

산사태, 옹벽 붕괴, 주택과 지하차도 등이 침수돼 79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됐고, 많은 차량이 물에 잠기는 한편 50여 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기차·전철 일부 구간이 운행 중단되고 지하철역이 침수돼 전동차가 한때 무정차 통과했다.

시간당 80㎜ 이상 역대급 장대비... 지하차도 순식간에 침수 3명 숨져
 
 사진은 지난 23일 사망자가 3명 나온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소방대원이 수색작업을 벌이는 모습.
▲  사진은 지난 23일 사망자가 3명 나온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소방대원이 수색작업을 벌이는 모습.
ⓒ 연합뉴스
 
24일 부산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3일 밤부터 해운대 211㎜를 비롯해 기장 204㎜, 동래 191㎜, 중구 176㎜, 사하 172㎜ 북항 164㎜, 영도 142㎜, 금정구 136㎜ 등 부산 전역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사하구의 경우는 시간당 86㎜의 장대비가 단시간에 쏟아졌고, 해운대 84.5㎜, 중구 81.6㎜, 남구 78.5㎜, 북항 69㎜ 등 기록적인 시간당 강우량을 보였다.

기상청 방재기상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내린 집중호우는 시간당 강수량이 1920년 이래 10번째로 많았다.

폭우에 갑작스럽게 침수된 지하차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3명이 안타깝게 숨졌다.

이날 오후 10시 18분께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차량 7대가 불어난 물에 순식간에 잠겼다.

인근 도로 등에서 한꺼번에 쏟아진 물은 진입로 높이가 3.5m인 이 지하차도를 한때 가득 채웠다.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 갇혔던 60대가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 갇혔던 60대가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 연합뉴스
 
당시 차량 6대에 있던 9명은 차를 빠져 나왔으나 갑자기 불어난 물에 길이 175m의 지하차도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19 구조대원이 도착해 이들을 차례로 구조했으나 익수 상태에서 발견된 60대 추정 남성과 30대 추정 여성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이어 5시간 뒤인 24일 오전 3시 20분께는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119 구조대원이 배수작업을 벌이다가 숨진 50대 남성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 지하차도에는 분당 20∼30t의 물을 빼내는 배수펌프가 있었지만 물을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산소방본부는 오전 7시 현재까지 이 지하차도에서 배수작업을 하고 있다.

산사태로 20t 토사 아파트 인근 덮치고 옹벽도 무너져
 
 사진은 24일 오전 부산 금정구 한 아파트 인근에서 축대 붕괴로 20t 규모의 토사가 유출된 모습.
▲  사진은 24일 오전 부산 금정구 한 아파트 인근에서 축대 붕괴로 20t 규모의 토사가 유출된 모습.
ⓒ 연합뉴스
 
비슷한 시각 해운대구 우동 노보텔 지하주차장에서도 급류에 휩쓸린 3명이 구조됐다.

24일 오전 0시께는 금정구 부곡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축대가 무너져 약 20t의 토사가 아파트 방면으로 흘러내렸다.

앞서 23일 오후 9시 45분께는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한 이면도로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명이 구조됐다.

해운대구 반여동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구청에서 피해 상황을 확인 중이다.

오후 9시 26분께는 수영구 광안동에서 옹벽이 무너져 주택 3채를 덮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오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이 도로로 쏟아진 빗물이 유입해 침수됐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은 부산역을 무정차 통과 중이다.
▲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오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이 도로로 쏟아진 빗물이 유입해 침수됐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은 부산역을 무정차 통과 중이다.
ⓒ 연합뉴스

다행히 주택에 있던 2명은 구조됐고 인근 주민은 긴급 대피했다.

오후 11시 30분 연제구 연산동 한 요양원 지하도 침수돼 3명이 구조되기도 했다.

오후 9시 20분께는 남구 용당동 미륭레미콘 앞 도로가 맞은 편 야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막혀 통제됐다.

비슷한 시각 중구 배수지 체육공원 높이 2m, 길이 40여m 담벼락이 넘어져 주차된 차량 4대가 파손됐다.

폭우에 만조시간까지 겹쳐 도심하천 잇달아 범람... 피해 키워
 
 집중호우가 내린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홈플러스 앞 사거리 도로가 침수돼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  집중호우가 내린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홈플러스 앞 사거리 도로가 침수돼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시간당 최대 80㎜를 넘는 폭우에 만조시간(오후 10시 32분)까지 겹쳐 침수 피해가 컸다.

오후 9시 28분께 동구 범일동 자성대아파트가 침수되면서 주민 3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지난 10일 범람해 큰 피해가 났던 도심하천 동천은 이날 다시 범람해 차량과 주변 일대가 침수됐다.

불어난 물에 수정천도 범람해 주변 상가나 주택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부산시는 동천과 수정천 인근 주민에게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를 보냈다.

부산시가 집계한 피해 통계를 보면 폭우에 발생한 이재민은 동구가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수영구 8명, 남구 6명, 기장군·중구 각각 1명씩 총 59명에 이르렀다.
     
도시철도 무정차 통과·동해남부선 열차 중단... 침수 차량만 141대
 
  (부산=연합뉴스) 23일 오후 부산 문현동 한 도로가 침수해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   (부산=연합뉴스) 23일 오후 부산 문현동 한 도로가 침수해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지하상가와 역사는 인근 도로에서 쏟아진 물에 침수돼 전동차가 무정차 통과했다.

동해남부선 선로도 침수돼 부전∼남창 구간 무궁화호 열차, 신해운대∼일광 구간에서 전철이 각각 운행 중지됐다.

수영구 광안리 해변 도로는 바닷물과 불어난 빗물이 뒤섞여 침수되면서 해수욕장과 구분하기조차 힘들었다.

연산동 홈플러스 인근 교차로, 센텀시티 등 도심 도로 대부분에서 허벅지나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차량이 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침수된 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 안까지 물이 들어차 승객이 좌석 위에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부산 한 버스에 도로 침수로 물이 차올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집중호우가 내린 23일 부산 한 버스에 도로 침수로 물이 차올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연합뉴스
 
해운대 중동 지하차도 역시 침수돼 차량 1대가 고립됐다가 운전자가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이날 부산 곳곳에서 침수된 차량은 141대에 달했다.

이외에 초량 1, 2 지하차도, 부산진시장 지하차도, 남구 우암로, 사상구청 교차로, 광무교∼서면교차로 등이 침수되는 등 부산 전역 총 45개소에서 도로가 부분, 전면 통제됐다.

24일 오전 5시 기준 부산소방재난본부에 총 209건의 비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23일 오후 8시를 기해 부산에 내려진 호우경보는 24일 오전 0시 30분 해제됐다.

기상청은 24일 새벽까지 시간당 50∼90㎜ 내외, 25일까지 200㎜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집중호우로 침수된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모습. 부산역은 현재 무정차 통과 중이다.
▲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집중호우로 침수된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모습. 부산역은 현재 무정차 통과 중이다.
ⓒ 연합뉴스
 
울산에도 60대 운전자 실종... 비 피해 신고 44건 접수

울산지역에도 최대 215.5㎜의 폭우가 내려 1명이 실종되고 토사 유출과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23일 오후 10시 42분께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위양천 인근 도로를 지나던 차량 2대가 불어난 하천 급류에 휩쓸렸다.

차량 2대는 형과 동생이 각 운전하고 있었는데, 동생은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60대인 형 A씨는 휩쓸린 차량과 함께 실종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 지점과 A씨의 집 주변 등을 수색하고 있다.

또 동구 현대미포조선 인근 방어진순환도로에는 토사가 유출돼 현재까지 양방향 도로가 통제되는 등 울산소방본부에 침수, 배수 지원, 차량 고립 등의 비 피해 신고가 44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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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중심에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권은비 총괄감독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0-07-24 10:04:32
수정 2020-07-24 10: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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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남성은 공적인 자리에서 그 피해가 이야기되잖아요. 경력이 되기도 하고, 역사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여성은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나요?” (국가보안법 피해자)
"국가보안법 철폐 없는 통일논의 기만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임수경 면회자들.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가 진행될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벽에 붙게 될 사진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없는 통일논의 기만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임수경 면회자들.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가 진행될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벽에 붙게 될 사진이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용수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여성은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다. 다른 민주화 운동이 그랬듯, 구속과 수배 등 고초를 겪은 남성 서사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여성들만이 아니다. 피해자의 어머니, 아내, 누이, 딸로 호명된 이들은 ‘빨갱이’ 꼬리표가 붙은 삶을 견뎌내며, 당사자들을 대신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고애순, 권명희, 김은혜, 김정숙, 배지윤, 안소희, 양은영, 유가려, 유숙렬, 유해정, 정순녀. 피해 당사자거나 피해자 가족으로 위치한 11명의 여성이 용기를 내어 말하기에 나섰다. 1970년대 대학을 다녔던 70대부터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여성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30여 년을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며 일상을 살아낸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목소리는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통해 전달된다. 구술 기록을 오디오와 텍스트로 전환한 방식이다.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했다.
지난 23일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권은비 총괄 감독을 만나 전시회 준비과정을 들었다.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역사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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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권 감독은 독일 베를린 유학 시절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체감했다고 했다. “베를린에 북한대사관이 있어서 북한 사람들이 살았어요. 독일 친구가 북한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제가 순간 망설였어요. 북한 사람을 만나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백림사건으로 유명한 도시잖아요”
1967년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한자음 동백림) 유학생과 교민 등 194명이 북한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 활동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간첩으로 지목된 작곡가 윤이상 등이 고문을 받거나 한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당시 정부가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고 판단했다.
권 감독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영화 ‘유령을 기다리며’를 촬영했다. 베를린에서 북한 사람은 ‘유령’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실체는 알 수 없고 소문만 무성한, 왠지 모를 무서운 느낌까지. 국가보안법 때문에 북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담겼다. 이 영화는 2018년 제10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권 감독이 전시회 추진위에 합류하게 된 계기기도 하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전시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권은비 총괄감독. 당시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들여다보는 걸 중심으로 전시회가 기획됐다. 피해자가 많은데 개인의 아픔으로만 정체돼 있다. 국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억압했는데, 그 피해는 개개인의 몫이었다.전시에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보다는, 당사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민주화운동 안에 여성들 목소리 담는 게 전시회의 과제였다. 감금됐던 사상의 자유, 억압된 것들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 수 있을지 물었다. 국보법 폐지 운동을 주되게 한 이들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했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전시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권은비 총괄감독. 당시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들여다보는 걸 중심으로 전시회가 기획됐다. 피해자가 많은데 개인의 아픔으로만 정체돼 있다. 국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억압했는데, 그 피해는 개개인의 몫이었다.전시에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보다는, 당사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민주화운동 안에 여성들 목소리 담는 게 전시회의 과제였다. 감금됐던 사상의 자유, 억압된 것들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 수 있을지 물었다. 국보법 폐지 운동을 주되게 한 이들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했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여성들이 국보법 폐지 운동 이끌었다”
국가보안법 전시회에서 여성 서사가 중심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들을 살펴보는데, 1970~90년대 다른 민주화 운동과 달리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사진 속에 여성들이 자주 등장했어요. 민주화 운동이 남성 중심이었던 탓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 대부분은 남성이었죠. 이들이 감옥에 가면 실제 생계를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하는 건 여성이었어요”
피해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였다. “수배 생활을 하거나 구속돼 고문받은 사람만 피해자인 건 아니에요. 가족들 모두가 피해자였어요. ‘빨갱이 딱지’는 직접 피해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까지 파탄 냈어요. 여성들은 남은 가족과 본인의 삶을 일궈가며 국가보안법과도 싸웠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투철한 열사로서 투쟁만 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투쟁으로 만들었어요”
여성 서사의 힘은 국가보안법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온다. “구술에 참여한 분들 모두 평범한 여성이었어요. 교사, 작가 등 각자 꿈을 갖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국가보안법의 굴레에 씌어 아픔을 겪게 된 거죠. 국가보안법 문제는 최전선에서 사회운동을 한,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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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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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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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2년이 지난 지금, 관련 사건도 불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시회가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2년 가까이 전시를 준비한 권 감독은 피해자들의 삶을 마주한 뒤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많이 울면서 작업했어요. 지금이라도 이야기해야 해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언제 이야기해도 생뚱맞지 않아요”
짙은 패배감을 지우는 작업도 필요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열린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4대 입법의 맨 앞에 내걸었다. 당시 300여 명이 단식하는 등 폐지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결국 여당의 분열과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때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이 있는 것 같았어요. ‘72년간 싸웠는데 아직도 폐지 안 됐다’라는 식으로요”
“그보단 ‘이렇게 오랫동안 싸우고 있다. 대단하지 않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은 1992년부터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는 목요집회를 개최하고 계세요. 세상은 관심이 없더라도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시위. 전시회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 원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시위. 전시회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 원본이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태원
여성들은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에 맞서 싸웠지만, 스스로 경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결합한 단체가 없어요. 민가협이나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유가협) 등이 전부죠. 이유를 생각해보니, 살기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는 점도 있었어요. 법을 통한 국가폭력을 개인들이 감당하고 있었던 거죠”
여성들의 말하기는 힘든 과정이었다. “스스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시간이었을 거에요. 구술 과정에서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 처음 한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가족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면서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말의 세계의 감금된 것들’이다. 정희진 여성학자가 저서에서 인용한 페미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의 세계에서 내쫓기는 것도 비참하지만 그것에 감금당하는 건 더욱 비참한 일이다’라는 말에서 출발한 제목이다. 여기서 ‘말’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상징한다. 넓게는 ‘빨갱이, 간첩’과 같이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말들이다. 목표 문구는 ‘나의 말이 세계를 터트릴 것이다’. 이때 ‘말’은 용기 있는 나로부터 출발한 말이다.
“목표 문구를 고심해서 정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용기 내서 해 준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었어요. 여성으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본인의 이야기를 힘들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조금은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요”
화려한 예술 작품 대신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전시회는 크게 1부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과 2부 ‘국가보안법 연대기’로 구성됐다. 화려한 예술가의 작품보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공포의 5층 취조실에서 메인 주제인 1부가 시작된다. 국가보안법 사범들이 과거 고문받던 각 방에서 피해자들의 구술 기록을 읽거나 배우 목소리·영화감독 임순례·래퍼 슬릭 등이 기록을 낭독한 음성을 듣는 방식이다.
“전시의 전형적인 방식은 예술가를 섭외해서 그의 작품을 설치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전시에서 과감하게 다른 방식을 선택했죠. 구술에 참여한 여성들, 국가보안법 사건을 변론한 변호사들, 자신의 사건을 내놓은 당사자들, 폐지 운동을 한 활동가들 등. 현장에서 국가보안법을 경험한 사람들로만 참여자를 구성했어요. 작품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기보다 그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 직접 들여다보는 전시에요”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민중의소리
관객들이 오랫동안 그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권 감독은 의도했다. “보통 전시장에 가면 작품을 30초는 볼까요? 민주인권기념관이 경찰 인권기념관으로 사용될 때, 사람들은 문밖에서 취조실을 쓱 둘러보고 갔어요. 하지만 관객들이 그곳에 앉아서 10분 20분 피해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됐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싸워가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에요”
피해자들의 서사를 들으며 취조실에 앉아있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참여형 예술이 될 수 있다. “전시된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를 보는 사람들을 관찰자로서 보는 것도 중요해요. 가만히 앉아서 구술을 듣는 다른 관객들을 보며, 좁은 방에서 누군가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음을 연상할 수 있어요. 그 공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부는 4층에서 펼쳐진다. 72년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9개 사건을 세세하게 볼 수 있도록 준비된다. “민변에서 기증한 국가보안법 사건 변론 자료를 검토하면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어요. 그동안 우리는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 정도로 소비했는데, 사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슬프고 아팠어요”
공개될 사건 중 하나는 한국대학 총학생회연합(한총련) 사건이다. 한총련은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계승해 1993년 만들어진 단체로,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상 이적 단체로 확정됐다. 한총련에 가입된 전국 대학교 단과대 학생회장은 수배가 떨어져 많은 이들이 구속됐다.
“당시 이틀에 한 번꼴로 20대 파릇파릇한 대학생들이 잡혀갔어요. 수배 대상이 된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죠. 함께 전시를 준비한 조용신 진보 공동대표는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수배 대상이 됐는데, 암 선고받은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걱정하다 돌아가셨어요. 사건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어떤 사건이 더 중요하고 특별할 것 없이 다 마음 아파요”
지난 16일 기자회견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
지난 16일 기자회견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1층으로 내려오면 ‘검은 방’이 나온다. 국가보안법 조항이 소리로 반복해서 재생된다. 관객들은 이를 들으며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를 필사할 수 있다. 이 시는 나 시인이 동독의 방첩기관 슈타지에서 사상검열을 받은 독일 시인의 글을 보고 쓴 시로, ‘자유를 빼앗기지 않겠다’라는 선언적 성격이 있다. 관객들의 쓰기는 일종의 저항 퍼포먼스인 셈이다.
옛 대공분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동그란 정원엔 12개의 문이 세워진다. 5층 취조실의 초록색 철문을 상징하는 이 문들엔 ‘법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습니까?’ 등의 질문이 쓰여있다. 피해자들을 감금시켰던 문을 열 수 있는 물음이다. 숫자 12는 시계처럼 반복되는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상징한다.
권 감독은 국가보안법의 ‘국’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회를 강력추천한다고 말했다. “전시회 타겟은 2030 세대예요. 전시회는 국가보안법은 무엇이고, 어떤 역사가 있었으며, 피해자들은 이런 삶을 살았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정치적 관심이 없다고 해도 ‘탈조선’처럼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본인이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세계가 있잖아요. 이 세계를 감금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고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구술에 참여한 분들을 피해자로만 보고 안타까워하는 시선보다는 연대하고 응원하고 함께 힘내자고 전시를 본 관객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전시회는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코로나19로 관객 방문이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전시물을 설치하고 온라인 형태로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된다. 대공분실 특성상 장애인의 접근이 불편해 사전에 신청하면 별도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전시에 앞서 8월 3일까지 텀블벅이 진행 중이다. 펀딩에 참여하면 전시회 후원인으로 전시장 1층 한편에 기재될 예정이며, 11명의 여성 서사가 담긴 책 ‘여성 사사로 본 국가보안법’을 만나볼 수 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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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시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연대의 제안

의혹만으로 박시장의 10년 시정(市政)을 부정할 수 없다.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07/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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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논객인 김민웅 교수는 지난 10년 박 전 시장의 시정(市政)의 자취는 천만 시민들의 자산인 만큼 계승되어야 하고, 미래를 위한 정치적 힘이 되어야 하며, 명예를 부여할 것이 있다면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박시장 사자명예훼손 관련한 청원 © 프레스아리랑

대표적인 사회활동가 겸 논객인 김민웅 교수가 22일 사회관계망 글을 통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연대를 호소했다. 

김교수는 이렇다 할 증거하나 없는 의문 투성이의 사건임에도, 고소인의 진술이 그대로 진실이 되고 있다며, 박원순 시장의 평생을 매장시키는 논란의 책임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고 있는 변호인쪽에 있다고 주장했다. 

설혹 박 시장의 성추행이 확정된다해도 그에 합당한 사회적 질타를 받고 피해자로 입증된 이에 대한 위로와 보상, 적극적 해결책이 모색되면 그뿐, 그것이 죽음의 무게를 넘어설 수는 없는 만큼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한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애도의 시간이 끝나기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 없을까, 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던 가족들의 청을 일거에 묵살하는 (변호인의) 태도에서 ‘성추행 이상의 폭력’을 목격했다.”고 글을 이었다. 

또한 “피해를 주장하는 이와의 연대는 죽음에 대한 애도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박원순 시장을 잃어버린 이들의 통절함이 피해를 주장하는 이를 모욕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설명했다. 

2회의 기자회견으로도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확신할 수 있는 물증 하나 없다보니 도리어 법정대리인측에 대한 의혹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인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질문을 2차가해, 피해자에 대한 공격, 법정대리인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2차가해라는 말이 고소인을 보호하기보다,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폭력적 언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은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실여부를 밝히는데는 관심이 없고, 성추행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이것이 가능했던 구조적 조건, 즉 방조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1차가해가 확정된 바 없기에 2차가해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증거가 없다면 당연히 법정대리인에 대한 공세적 질문이 이어질 것이고 법정 대리인은 이 질문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해야 의뢰인을 지켜낼 수 있는데도,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를 주장하고 있는 고소인조차 의혹의 대상이 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평생 이 나라의 정의와 미래를 위해 진력을 다해온 한 인간의 삶이 귀하게 여겨진다면 명료한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의지와 깊은 성찰의 힘을 가지고 이 길을 함께 가자는 김민웅 교수의 제안에 <프레스아리랑>은 연대를 표명하며 청와대의 국민 청원을 함께 공유한다.


본사기자 


아래는 김민웅 교수가 페이스북에 발표한 글 전문이다. 

<고(故) 박원순 시장의 명예를 위해>

1. 죽음에 대한 예의

그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또는 누가 벼랑 끝으로 그를 몰아댔을까?

아직 이에 대해 우리는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그 죽음의 경로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는 별도로
그의 죽음이 “누군가를 향한 가해”라거나
“진상규명을 틀어막기 위한 것”이라거나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당연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죄를 자인한 결과라거나
노회찬 의원의 자살이 또한 죄를 자인한 결과라고 여기고
그 죽음을 모욕하지는 않았다.
모두 아파했고
지금까지 아파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지금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

나는 설혹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그 진상이 확정된다고 하여도
그것이 결코 죽음의 무게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주장 외에 없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입증된다면 
그건 그것대로의 무게에 합당한 사회적 질타를 받으면 된다.
피해자로 입증된 이에 대한 위로와 보상, 그리고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이 모색되면 된다.

인간의 생명을 압도하는 성추행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성추행을 정당화하자는 논리가 아님은 다 알아 들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발인, 그날 비가 내렸고
1차 기자회견이 있었다.
오늘 2차 기자회견이 열린 날
또 비가 내렸다.

나는 그 빗소리에서 하염없는 통곡을 듣는다.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조차 
애도가 가해라며 모욕한 이들의 모습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고발자들의 얼굴을 본다.

그 고발자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은 제외시키고 싶다.
그녀 역시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녀와 법정 대리인(+관련 여성단체)의 목적이 
서로 동일한지 점점 확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녀가 법정 대리인(+관련 여성단체)에게 
진정 보호받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게 되고 있다. 

보호라는 이름의 은폐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작 당사자의 생생한 육성은 실종된 고발이기 때문이다. 

애도의 시간이 끝나기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 없을까, 
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던 가족들의 청을 
일거에 묵살하는 태도에서 
“성추행 이상의 폭력”을 목격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와의 연대는
죽음에 대한 애도와 모순되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을 잃어버린 이들의 통절함이
피해를 주장하는 이를 모욕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더군다나 그가 평생을 통해 한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쳐왔다면
누구나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아직 진상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박원순의 삶과 죽음을 존중하는 가운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가지고자 하는 슬픔의 시간을 박탈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그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규탄한 것을 보면서
순수한 애도의 마음까지도 이토록 매도당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뼈저리게 아파하게 된다. 

서울 거리를 다니면서
도처에서 박원순의 흔적과 만나게 된다.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그는 백년이 앞선 상상력을 추구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 앞에서
박원순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수치일까? 
해명과 이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지레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구구한 변명보다는 죽음으로 명예를 지키고 싶었던 걸까?
너무나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높여 놓아버리는 바람에 
혹 남들에게는 작다고 할 수 있는 사안이 자신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에게 그 죽음에 대한 성찰의 요청을 온몸으로 하고 떠난 것일까?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 죽음을 예의를 가지고 대하고 싶다.

죽음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리는 사회는
삶에 대한 예의 또한 지켜낼 수 없다.

2. 주장과 증거

두 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와 만나지 못했다.

성추행의 특성상 물증 확보나 증거제시는 
대체로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장한 바대로 무려 4년 동안 지속된 성추행이라면
그 물증 확보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피해방지를 위해 여러 차례 많은 이들에게 호소했다면
그 호소의 입증 근거를 대기 위해 확보한 물증이
없을 까닭이 없고
그렇게 공개한 물증을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추가증거를 포함, 증거를 내놓지 않은 이유는
수사기관에 넘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혹 수사기관이 발뺌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이겁니다, 라고 제시했다면
기자회견으로 도리어 법정 대리인 측에 대한 의혹이 
이렇게 늘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기자도 이러한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장면이었다. 

기자회견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열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질문은
2차 가해이며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자
법정 대리인에 대한 공격과 동일시 되었다.
2차 가해라는 말이 진정 피해주장 당사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폭력적 언어가 되고 있기조차하다. 

물론 음모론적 시각에서 비난과 조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건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며
그 대상이 누구이든 금지되어야 할 바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박원순은 가짜입니다.
진짜 숨겨진 모습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가 입증되는 충격적 확인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 그 시신이 재가 되어 땅에 묻히기도 전에 
기자회견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초점은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건 이미 기성사실로 전제해놓고
이것이 가능한 구조적 조건으로 이동했다.
주범과 방조범이라는 틀이 만들어졌고
이제 주범은 확정되었으니 방조범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실체상으로도 가능한 논법이 아니다.
1차가해가 확정된 바 없는데 2차가해를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니
피해주장에 대한 신뢰를 사회적으로 획득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주장에 대한 질문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 
기자회견의 목적인가 싶을 정도였다.

법정 대리인에 대한 공격은 곧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라는 논법은
법정 공방의 현장이었다면
가해자로 지목된 쪽의 방어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논리가 된다.

이런 논법은 존재할 수없다. 

박원순 시장의 무고를 믿고 싶은 이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그 무고함을 반전시킬 증거가 절실하다.
그러면 더는 무고함을 주장할 수 없게 되고
바보같이 왜 그랬어, 하면서 통절한 마음과 함께
피해자로 확정된 이에게 무한한 사과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증거가 없다면
당연히 법정대리인에 대한 공세적 질문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법정 대리인은 이 질문에 대해 성실하게, 근거있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통해 자신이 변호하는 의뢰인인 피해주장 여성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태도는
피해주장 여성 조차도 의혹의 대상이 되게 하는 매우 위험한 방식이 된다.
이건 법정 대리인의 능력, 역할, 의무 그 모든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기자회견 이후 벌어지는 모든 논란은 그에 기인하고 있다.
논란의 책임은 질문하는 쪽에 있지 않고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는 쪽에 있다.

3. 고(故) 박원순 시장의 명예를 위해

잘못이 있다면 잘못대로 
그에 합당한 질타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당연하다.
피해자의 주장이 확정되면 박원순 시장과 함께 이런 저런 얽힘이 있는 이로서
머리 숙여 깊고 깊게 사죄할 것이다. 

그러나 정도를 넘는 과잉 응징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이토록 수많은 질문이 생겨나는 사건인데
피해를 주장하는 쪽의 진술이 입증없이 모두 그대로 진실이 되어
박원순 시장의 평생의 명예가 추락하고 매장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지난 10년 박원순 시장의 시정(市政)의 자취는
그만의 것이 아니다.
천만 시민들의 자산이다.

그래서 그가 뽑혔고 시장으로서 헌신을 다할 수 있었다.
그 자산은 분명하게 계승되어야 하고
미래를 위한 정치적 힘이 되어야 하며, 
명예를 부여할 것이 있다면 부여해야 한다.

오욕이 있는 인생사에서도 명예로운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박원순 같은 이의 삶은 어떠할까.

고(故) 박원순 시장의 명예를 지켜내고 싶다. 
함께 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평생,
이 나라의 정의와 미래를 위해 진력을 다해온 
한 인간의 삶이 귀하게 여겨진다면
부디 
명료한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의지와 깊은 성찰의 힘을 가지고
이 길을 같이 갔으면 한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있다. 

2020년 7월 22일 오후, 김민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