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 토요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보신각 앞서 마네킹이 된 이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안전한 일터’ 위한 퍼포먼스 열어
“학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 밀려드는 업무 폭탄! 위험한 약품 취급!”
7일 보신각 앞.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30여 명이 스스로 마네킹이 됐다. “다치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일하기 위해 ‘마네킹 챌린지’를 연 것.
‘마네킹 칠린지’는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사람이 마네킹처럼 부동자세(스톱 모션)를 유지하는 퍼포먼스를 뜻한다.
이날은, 지난해 12월10일, 故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지 1년을 앞두고 추모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마네킹 챌린지 참가자들은 “‘김용균 법’이 만들어지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교육하는 학교 현장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교 급식실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 됐지만 높은 배치기준(급식노동자 1인당 평균 150명에 달하는 급식인원 수)으로 인해 엄청난 노동강도에 노출”돼 있고, “아이들의 안전한 실험을 준비한 과학실에선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위험한 일터에 놓여 있는 급식실 노동자, 유해물질에 노출된 과학실 노동자, 갑질과 차별에 노출된 교무실 노동자 등의 모습을 마네킹 챌린지로 담았다.
“학교에서 비정규직을 배운 청년! 사회에 나와 비정규직이 된 청년! 비정규직이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청년, 김용균을 추모합니다.” 故 김용균 노동자를 향한 추모 인사를 한 참가자들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일하다 다치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마네킹 챌린지 스톱모션을 시작했다.
▲ 식판을 들어올리고, 1인당 150인분의 밥을 짓고.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급식실 노동자
▲ 위험물질 약품 처리하는 과학실 노동자
▲ 관리자의 직장 갑질, 업무 폭탄에 힘들어하는 교무실 노동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잠시 서 있다가 팻말을 내려놓고 스톱모션을 진행한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옆엔 “나는 매일 150인분의 밥을 짓습니다”, “나는 매일 위험약품을 만집니다”, “나는 매일 업무폭탄에 시달립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 청년 노동자들이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학교부터 안전한 노동환경 만들자”, “비정규직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는 학교를 만들자”고 외치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과 故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종각역 사거리에서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고 “죽지 않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을 요구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년 전 그날처럼 노동자 김용균이 점검하던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석탄가루 뒤덮인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더 이상 죽음의 외주화를 방치하지 말라’, ‘산재사망 살인기업을 처벌하라’는 노동자, 시민의 준엄한 요구는 문재인 정부에 의해 철저히 기만당하고 있다”고 규탄하곤 “김용균과 우리 모두가 꾸었던 꿈, 비정규직 철폐, 직접고용 쟁취,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하루에 6명, 매년 2400명이 일하다 죽어나가는 죽음의 행진을 끝내기 위해 노동자 시민이 함께 촛불의 바다를 만들자”고 외쳤다.
선현희 기자  shh4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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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 지도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

19.12.08 09:47l최종 업데이트 19.12.08 09:47l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8·15 자주통일대회의 의의에 대해 강조했다.
▲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2019년12월7일 향년 81세로 운명했다.
ⓒ 진보연대 이원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7일 별세했다.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2019년 12월 7일 오후 10시 57분, 전선과 교사운동에 일생을 바친 오종렬 의장님께서 건강악화로 인해 열사의 곁으로 떠나셨다"라고 밝혔다. 

고인의 장례는 8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 빈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진행된다.  이후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오후 4시부터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옮겨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로 예정돼 있다.

고인은 지난 1938년 11월 28일 전남 광산군(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광주사범대 과학교육과,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교원에 임용돼 교단에 섰다. 진도고성중학교, 전남고등학교, 광주동명여자중학교, 전남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 전남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조의 전신) 출범에 참여해 대의원 대회 의장을 지냈고, 1989년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구속돼 1989년 7월 옥중에서 파면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고인은 이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 제1대 광주시의회 의원(무소속)으로 당선됐고, 같은해 11월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공동 의장으로 선출됐다.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고인은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2년 8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1999년에는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내세운 '군자산 정치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2001년 통일연대 상임대표와 전국민중연대의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면서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범대위 대표를 맡았고 2003년에는 한·칠레FTA저지 범대위 공동위원장, 2005년 APEC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2006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한미FTA 저지 활동으로 인해 2007년 7월 세 번째 구속을 당했다. 그해 9월 출소 후 그는 통일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을 통합한 전선운동조직인 한국진보연대를 출범시키고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그의 활동은 계속됐다. 2008년 5월 '미국산소고기 수입반대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촛불집회의 배후로 지목당해 그해 8월 구속됐다. 그의 일생에 네 번째 '옥살이'였다. 2009년 2월 출소한 구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을 맡으며 민중운동 일선에서 물러서 2015년 전남 담양군에 5.18민족통일학교를 설립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고인은 생전 5.18민족통일학교 설립을 앞둔 시점에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공유하고자 한다"라며 "일본 식민사관에 따른 치욕스럽고 자기 부정적인 역사관을 걷어내고 배타적이지 않은 호혜평등 민족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5·18 학교 세우려고 자식 주머니까지 털어")

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단독]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9.12.08 09:03 수정 : 2019.12.08 09:08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채선자씨(가명·64)는 매일 오전 5시에 눈을 뜬다. 집안 살림을 대강 정리하고 집을 나서는 시각은 오전 6시 10분.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정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오전 7시 1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꼬박 12시간을 근무한다. 그가 월~금요일 꼬박 일해 매달 받는 급여는 200만원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4개월 됐다. 이전에는 한 곳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조선족인 채씨는 2007년 말 한국으로 건너와 직업소개소를 통해 한 가정집을 소개받았다. 2007년 12월 말부터 그곳에서 일한 채씨가 처음 받은 급여는 120만원, 가끔 ‘뜻밖의 보너스’도 있었다. “바깥 사장님이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셨는데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오실 때마다 ‘고생이 많다’며 50만원씩 주고는 했어요.” 일한 지 6년째 되던 해 받은 월급이 160만원이었다. 그런데 고용주의 결혼한 딸의 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가사도우미가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딸이 후임을 구하지 못하자 고용주는 채씨에게 “딸의 집에서 일해달라”고 했다. 채씨는 2014년 5월부터 고용주 딸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입주 도우미로 꼬박 4년 일해 
채씨는 입주 도우미로 이곳에서 4년을 꼬박 일했다. 월급은 220만원. 외출은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7시까지 주어졌다. 급여가 160만원에서 60만원 더 올랐지만 관리해야 할 일 역시 늘었다. “아파트가 80평대라 혼자 청소하려면 고생했지요.” 
채씨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무리됐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부 내외와 오전 7시 10분이면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타야 하는 첫째 아이 식사를 먼저 챙겨 보냈다. 이어 둘째를 씻기고 먹여 오전 9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오후 6~7시쯤 퇴근하는 엄마의 저녁까지 챙기고 나면 채씨가 식사를 했다. 설거지 및 청소를 마치면 채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잤다. “애들이 나랑 자려고 하니까 우리 셋이 모여 잤지요. ‘자기 전에 책 읽어줄 테니 책을 방에 가져다 놔라’ 하면 네 권씩 들고 오는데 읽어주다 보면 하나씩 꾸벅꾸벅 졸아요. 그러면 나도 같이 잠들었지요”라고 말했다.
채씨는 그러나 지난해 3월 이곳을 나왔다. 퇴직 의사를 먼저 밝힌 것은 채씨였다. 아파트 이웃이 고용주에게 “채씨가 아이에게 너무 강하게 말한다, 주차장에서 전화하느라 아이 손을 놓았다” 등의 말을 전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채씨는 해명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얼마 뒤 채씨의 통장에는 채씨가 일한 ‘근무일수×7만7000원(일당)’의 급여가 들어왔다.
채씨는 결국 지난해 6월 고용주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는 당연히 채씨의 패소였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이 보호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1심 재판부는 기각사유 한 줄 없이 패소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는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및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고, 원고는 ‘가구 내 고용’에 해당하므로 퇴직급여법이 적용됨을 전제로 한 소송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9월 패소판결을 내렸다. 
또 채씨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명시했다.
“퇴직급여법상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퇴직급여제도의 설명의무를 어느 범위의 사업 또는 사업장까지 인정할지는 그 당시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을 고려하여 입법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므로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즉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및 퇴직급여법이 처음 제정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상 헌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용주 상대 퇴직금 청구소송 패소 
가사노동자는 일을 하고, 이에 따른 급여를 받더라도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이 예외로 정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대명제는 1953년 이 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부터 확고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았다. 가사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니면 가사일 역시 노동이 아니다. 가정주부를 흔히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편견 가득한 문장 역시 법이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맞는 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가사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이 정한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퇴직금·최저임금·산재보험 적용에서도 모두 제외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행여 일을 하다 다쳐도 고용주는 이를 부담할 법적 책임이 없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가사노동’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고용주를 고발할 수도 없다. 채씨와 같이 퇴직금 소송을 내본들 패소다. 법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채씨에게 퇴직금을 줄 의무도, 법적 책임도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이다. 18대 국회에서 처음 제정법안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18·19대 국회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됐지만 역시나 임기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 입법자들은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고, 이들을 여타 노동자들과 같이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위한 법안 통과에는 소극적이다.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이유는 복잡하다. 가사노동자의 업무 형태, 고용방식 등이 각기 달라 이를 하나로 포괄하는 법 제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소위 제1차 회의록 등을 살펴봐도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직업소개소나 O2O(Online to Offline)를 통해 가정에 파견되는 가사노동자 외에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알선업체 및 공공기관을 통해 파견된 것이 아닌, 개인이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어 근로하는 노동자)’까지 보호해주는 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종국에는 비공식적으로 근무하는 가사노동자들도 사업체 안으로 들여와 보호하고, 이용자는 불만사항 등을 사업체에 알려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이 공표돼도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들을 포섭하고 보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마냥 ‘가사노동자 보호’만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가사노동자의 권리보호 이면에는 기혼 직장여성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문제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용노동자 5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44만9000원이다. 또 여성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 이상은 일자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다. 임금 역시 남성임금의 69%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12월 5일 기준 강남지역 가사도우미 월 급여(출퇴근)는 200만~300만원 후반대까지 다양하다. 13년차 가사노동자 권모씨(65)는 “한국인 베이비시터는 주 5일 10시간 기준으로 220만원 이상은 받으려 한다”면서 “요즘 한국인은 입주 도우미로 잘 안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선족들이 입주 도우미를 한다. 주 6일 근무 토~일 반일 휴무를 주면 적어도 250만~3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시세만으로도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이 고스란히 가사노동자 급여로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노동자’로 보호 못 받는 가사노동자 
무역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송모씨(38·여)는 월급의 3분의 2를 아이 돌보미 선생님 급여로 쓴다. 송씨의 월평균 급여는 300만원대 초반이다. 돌보미의 월 급여는 210만원이다. 여기에 명절마다 20만원씩 상여금을 주고, 생일 때도 10만원을 챙겨준다. 송씨는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릴 여유가 없다 보니 사 먹는 비율이 높은데 식비까지 합하면 내 월급을 전부 시터비용과 식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의 월급의 상당액을 가사노동자 급여로 지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송씨가 지급하는 가사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019년 최저임금 8350원보다 낮다. 송씨는 “만약 시터 이모님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춰서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의 사례처럼 여성의 노동에 기대 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 및 법 개선은 기존 직장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26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중 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 중 육아(64만9000명·38.2%)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결혼(52만2000명·30.7%), 임신·출산(38만4000명·22.6%), 가족돌봄(7만5000명·4.4%), 자녀교육(6만9000명·4.1%) 순으로 나타났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응답한 경력단절 여성의 비중은 2017년 58만6000명(32%), 2018년 61만9000명(33.5%)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호와 직장여성 노동권 
부모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와 가사를 대신 맡아줄 가사노동자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다. 간병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법을 통한 보호는 필요하지만 이들의 처우 개선이 또 다른 여성 경력단절자를 만들 수 있는 한계선 안에서 두 ‘여성’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사노동자도 법이 정한 노동자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노력과 동시에 기존 직장여성들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노력도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채선자씨는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2019헌바454). 헌법재판소는 이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제3조 단서 중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가사노동자들이 여전히 1953년에 머물러 ‘식모’로 살아야 할지, 법이 보장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렸다.
[단독]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노동권·사회보장권·건강권·인격권이 뭐예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노동권과 사회보장권, 건강권, 인격권을 모두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근무시간 탓에 장시간 근무를 하고, 4대 보험 가입 역시 되지 않았다. 가사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이상 증상을 경험했고, 간병인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았다. 인격권 침해사례도 많았다.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노동권 8년째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한동숙씨(61)는 지금까지 근로계약서를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다. 산후도우미로 처음 일을 시작해 아이가 5살 되던 해에 첫 집에서 일을 그만뒀다. 앞으로 등·하원 도우미만 있으면 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아서다. 한씨는 월 180만원의 급여로 생계를 꾸려갔기 때문에 등·하원 도우미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한씨는 오전 7시 30분부터 아이 부모 중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근무했다. 하루 12시간 근무한 날도, 부부가 모두 야근을 해 15시간 이상 근무한 날도 있었다. 별도의 추가수당은 없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집 역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친한 언니가 넘겨준 가정집 일을 하면서 친한 언니가 받던 급여 180만원을 동일하게 받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가사노동자 가운데 육아도우미는 전체 응답자(139명)의 절반 이상인 54.7%(76명)가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도 29.5%(41명)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노인 간병인들은 전체 응답자(23명)의 65.2%(15명)가 40시간 이상, 26.1%(6명)가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1회 방문당 2~3시간 근무를 미리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 가사도우미는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이 67.3%(138명), 15시간 이하 24.4%(50명)로 전체 응답자(205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회보장권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4대 보험 가입에서 배제돼 있다. 이들은 의무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은 사업주 등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가 보험 가입을 해주려 해도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귀자씨(58)는 “애 아빠가 사업하시는 분은 회사 명의로 4대 보험 가입을 해주는 집도 있다”면서 “그런데 세금 떼어 가는 것도 싫고, 애 봐주러 가면서 무슨 보험이냐 싶어 보험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권 많은 가사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도 고용주로부터 치료비 등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전체 가사노동자 응답자의 55~77%가 근골격계 이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지만 치료비는 사실상 각자의 몫이다. 권모씨(63)는 “애를 업다 보면 손목 인대가 자주 나간다. 그러면 파스라도 붙이고 일을 해야 하는데 파스값을 달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척이 간병인 일을 하는데 어깨와 허리, 무릎까지 다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으니 토요일마다 한의원에 가서 자주 침을 맞는다더라”고 했다. 

●인격권 신체적 고통보다 가사노동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인격침해다. 박귀자씨는 “아이 엄마가 음식을 해놓으면 내가 퇴근 전까지 먹이는 일만 하기로 처음 약속을 했는데 점점 ‘그 정도도 못 해주시냐’는 식으로 변해갔다”며 “아이 돌보는 일만 하기로 계약해도 결국 살림살이까지 해주길 요구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동숙씨는 “독감이 유행할 때 아픈 애 보면서 끼니를 거르다 보니 속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났는데 애 엄마가 말을 하다 말고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6%(가사)~60.2%(육아)가 ‘업무 이상의 지나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14.8%(육아)~31.8%(가사)가 과도하게 감시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인의 경우 특히 인간적인 무시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31.2%를 차지했다.


"살았다면 25살 청년 김용균, 일하다 죽지 않길"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2019.12.07 22:10:33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하략. 기사 아래 김미숙 이사장 편지 전문 게재)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아들의 1주기를 맞는 심정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거리에 앉은 것은 일하다 사람이 죽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7일 종각역 사거리에서 고김용균1주기추모위원회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하루 전인 6일은 김용균 씨의 생일이었다. 사흘 뒤인 10일은 김용균 씨의 기일이다. 

▲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는 용균이 엄마 김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용균아 미안하다. 너에게 한 약속 꼭 지킬게" 
이날 김용균 씨에게 편지를 쓴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발전소 노동자 장근만 씨도 동료였던 김용균 씨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용균아. 어제가 너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네. 작년 12월 6일 생각나지? 그날 우리는 너의 생일을 기념하며 호프집에서 웃고 떠들었지. 그날 같이 술을 마시고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 컨베이어벨트가 너를 삼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작년처럼 또 호프잔을 들었겠지. 그런데 너는 저 하늘나라에서, 아니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생일 축하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고, 나는 현장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있구나. 1년 전 그날이 정말 그립다.

2월 9일. 62일만에 용균이 너를 묻넌 날. 우리는 네가 들었던 피켓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용균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이어지는 편지에는 장 씨의 지난 1년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고김용균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을 보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일, 김용균특조위가 "김용균은 시키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죽었고, 죽음의 근원은 위험의 외주화"라며 22개 권고안을 내놓은 일, 권고안 발표 이후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를 보며 기대가 무너진 일, 김용균 씨가 죽은 후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온몸이 떨리고 괴로웠던 일 등이었다. 김용균 씨의 죽음을 애달파한 사람들의 1년 그대로였다.

장 씨는 아직 지키지 못한 용균이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네가 하늘나라로 떠나지 못하고 차가운 광화문광장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런데 너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너의 죽음을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구나. 그래. 질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용균이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줘. 우리를 응원해줘,

용균아, 너에게 한 약속이 또 있었지. 용균이 너의 어미니가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 약속 꼭 지킬게. 늦었지만 스물다섯번째 생일 축하한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이날 추모대회에는 2000여 명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든 이유를 밝히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애령 예수회 수녀는 "고 김용균 님의 수의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수의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박상은 사회적참사 연구자는 "위험은 줄일 수 있고 사람은 살릴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를 바꾸고자 함께 촛불을 듭니다"라고 적었다. 

추모대회 말미에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건설과 조선소 하청 노동자 등으로 이루어진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사회 40대 기업의 산재사망 사고 95%가 비정규이지만, 그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재벌은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며 "이 무도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윤만을 위한 자본가의 끝없는 탐욕 때문이고, 사람을 죽여도 벌금 500만 원이면 땡처리되는 세상 때문이고, 파견, 용역, 도급,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이 면죄부를 받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은 "탐욕의 자본이 만든 사회를 끝장내기 위해, 내 부모, 내 자식, 내 친구가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 김용균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며 "기업살인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 참혹한 죽음을 멈추고, 노조법 2조 개정과 직접고용 쟁취로 생명이 우선되고 차별 없는 평등한 길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모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분향소로 행진해 묵상했다. 이어 "더 이상 죽지 않게. 기업살인법 제정하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향했다. 대열의 맨 앞에는 고 문중원 마사회 기수 유족, 고 김동준 특성화고 실습생 유족, 고 이한빛 PD 유족 등 일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김미숙 이사장 곁에 서있었다. 

▲ 일하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비정규직100인대표단. ⓒ프레시안(최형락)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마치고 행진 중인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행진 대열 앞에서 선전 방송을 하고 있는 김수억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프레시안(최형락)

▲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추모대회 참가자. ⓒ프레시안(최형락)

아래는 김미숙 이사장이 아들 용균이에게 쓴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 없이 사는 세상 꿈에도 생각 못해봤고,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지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이구나.

엄마이기에 강할 수 있고, 또 그러기에 한없이 무너짐을 느끼며. 내 가슴속에선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만든 이 나라가 한 없이 원망스럽고 너를 지켜내지 못한 내 스스로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게 그 자체가 비참하구나.

아무리 좋은 먹거리와 환경을 접하더라도 내 분신을 잃어버렸기에 허망한 삶이 되어버렸고.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도 없고. 즐거움과 행복은 이미 남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며 살고 있단다.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되면 별을 보며 너를 찾았고, 매일 꿈속에서 만나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단다. 서너 번의 꿈속 너의 모습은 늘 유치원 이전의 모습이었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그런 꿈을 꾸었단다.

지난번에 아빠 꿈에 너의 모습은 온화한 얼굴로 "다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땐 평소의 너의 성품을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아들 걱정할까봐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어.

너는 이곳에서 부족한 부모 만나서 힘들게 살았지만 너가 있는 그곳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엄마는 바란단다. 

너가 그렇게 떠나간 뒤 엄마는 그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단다. TV 속에 보여지는 세상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현장은 구조적으로 안전이 방치되어 너처럼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그동안 수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랍고 분노스러웠던지. 지금도 매일 산재 사고를 접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단다.

너를 닮은 또 다른 용균이들은 사회에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으로 내몰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서 일할 게 뻔하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서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말도 못하는 억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너의 삶과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단다. 

내 소중한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를 잃고 너무 큰 충격이라 살아내는 것조차 겁이 났었어.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고 있단다. 

너와 함께 일했던 발전소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건설업, 조선소, 철도, 마사회, 우정사업소. 우리 나라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도 안전한 곳이 없는, 그래서 더 처절한 삶을 다들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꺼져가는 생명의 시급함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엄마는 얼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연대로 우리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를 기원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그리고 이분들을 마음을 담아 동지라고 부르고 있단다. 동지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마음이 담긴 좋은 말인지 이제는 느끼며, 이 말의 귀함에 누가 될까 조심스레 부르려 하고 있단다. 

아들아. 지난해에 너의 죽음의 부당함을 바꾸고자 많은 동지들과 사회 여러 단체들과, 유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뭉쳐서 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정부와 맞서 싸웠었어. 물론 너도 알겠지만. 그래서 원만한 합의안도 이끌어냈고, 많이 부족해서 너에게 부끄러운 법이긴 하지만 산안법도 통과시켰고, 특조위 진상조사를 통해 사측이 너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을 완전히 벗기게 되었단다. 

그렇지만 업무수칙을 다 지키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다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어서 권한이 없다 해서 책임 공백이 생겼고. 그 속에서 일하는 아들은 목숨 지킬 권한조차 없었던 이 비정규직들의 억울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지 못해 또 울고 말았어. 너는 그곳에서 다 보고 있겠지.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합의 이행, 약속 지키려고 해야 하고, 특조위 권고안도 현장에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 

엄마는 이제 우리와 같이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갈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밝은 빛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곳에서 너도 엄마 잘 하라고 응원하고 지켜봐줘.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아들 용균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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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의 외침 “감옥에서 7년째,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2만의 외침 “감옥에서 7년째,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12/07 [19: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7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감옥에서 7년째!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이하 석방대회)’가 열렸다. 석방대회는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 주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 김영란 기자

▲ 석방대회는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 주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 김영란 기자

▲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석방대회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석방대회는 오후 2시부터 서울역, 독립문, 을지로, 종로 총 4개 방향에서 출발한 대열은 300인 바투카다(브라질 타악기) 대열을 선두로 서울 시내를 행진해 3시에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였다. [사진제공-이석기의원 구명위원회]     © 김영란 기자

▲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     © 김영란 기자

▲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     © 김영란 기자

▲ 석방대회에는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피아노 50대, 통기타 100대, 하모니카 100대, 오카리나 100대, 우쿨렐레 100대로 구성된 450인 합주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사진제공-이석기 의원 구명위원회]     © 김영란 기자

7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감옥에서 7년째석방이 정의다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이하 석방대회)’가 열렸다.

석방대회는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주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석방이 정의다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이에 앞서 오후 2시부터 서울역독립문을지로종로 총 4개 방향에서 출발한 대열은 300인 바투카다(브라질 타악기대열을 선두로 서울 시내를 행진해 3시에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였다.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석방대회에는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피아노 50통기타 100하모니카 100오카리나 100우쿨렐레 100대로 구성된 450인 합주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석방대회에 즈음해 이석기 의원은 옥중 편지를 보냈다.

이석기 의원은 편지에서 이제 다가올 2020년대는 우리에게 자주를 실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를테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방위비 분담금대북제재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평화협력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와 잇닿아 있습니다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입니다자주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계속해 이 의원은 자주는 우리 스스로 자기 발로 선다는 의미입니다누구에게 의존하지도누구를 배척하지도 않고오직 스스로의 두 발로 지구를 딛고 서서 모두와 평화롭게 협력하자는 발상입니다친미냐반미냐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질문을 거부하고우리 스스로 서서 우리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하자는 것이 자주입니다라고 편지에서 밝혔다.

이 의원은 편지 마무리에서 미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 이 광장에 모여 선 것처럼 자주 평등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단결한다면 민중의 새날은 어느새 닥쳐올 것입니다과거와 미래의 싸움에서는 미래가 이깁니다낡은 것은 결코 새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여기에 계신 동지들이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실이 됩니다여러분이 미래입니다당신이 봄입니다다가오는 새봄에 우리 뜨거운 가슴으로 만납시다라고 희망찬 메시지를 보냈다.

▲ 450인 합주단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맞춰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석방대회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를 부르는 노동자들     © 김영란 기자

▲ 450인 합주단, 피아노 연주자들     © 김영란 기자

▲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     © 김영란 기자

이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이 의원 석방을 촉구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그는 독방에 갇혔고 그것은 통합진보당 해산으로까지 이어졌다그런 국정농단의 잔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지난 정권의 잘못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그것이 촛불정신 회복의 첫걸음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유엔 인권선언에는 신념의 자유정치 활동의 자유가 있다이것이 인권의 제1원칙이다생각이 다르다고 이석기 의원을 가두어 둔다면 촛불정신과 민주주의는 제 길을 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공동대표는 결의문을 통해 수천수만의 이석기가 힘차게 뻗어가는 이 행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민중의 친근한 벗 이석기 의원과 함께 새로운 백 년을자주의 정치인 이석기 의원과 함께 새로운 천년을 만들어나가자라고 주장하였다.

석방대회의 대미는 450인 합주에 맞춰 2만 참가자가 함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합창이 장식하였다.

이날 대회에 앞서 10시에는 이석기 의원이 복역하고 있는 대전교도소 앞에서 '감옥에서 7년째다이석기 의원 석방하라대전교도소 결의대회'가 2천여 명 규모로 개최되었다그리고 이날 석방대회에 즈음해 각계의 이석기 의원 석방 탄원서가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최근 제출된 1차 탄원서에는 김희중 대주교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등 주요 종단 지도자와 정강자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김민문정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백미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신철영 경실련 공동대표김호철 민변 회장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자가 이름을 올렸다.

한편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는 다음 주에 사회 원로들의 2차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는데 이어, 14()에도 청와대 앞에서 석방 촉구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 김영란 기자

▲     © 김영란 기자

아래는 석방대회에서 낭송된 이석기 의원 옥중 편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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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그리운 동지들.

동지들과 떨어져 감옥 안에서 맞는 7번째의 겨울입니다달력을 보니 이제 2010년대의 마지막 겨울입니다지나온 2010년대를 저는 시련 속에서 동지를 찾은 시간으로 기억합니다불의한 권력에 맞서며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차가운 바람은 우리를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찬바람 속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농민이 있습니다촛불 혁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민중이 거리에서 찬바람과 맞서야 하는 현실입니다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로 나아가자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지들이 저의 석방을 외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그리고 미안합니다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간들이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고 우리 자신을 발전시키는 소중한 시간들임을 알고 있습니다저 역시 현실을 직시하면서 감옥의 찬 기운을 견디고 있습니다이 시간들이 쌓여 결국 지금 광장의 칼바람을 따뜻한 봄바람으로 바꾸어낼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만우리를 둘러싼 세계 역시 크게 변화하였습니다변화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저는 우리 민족이 지난 100년간 감내해야 했던 예속과 분단이 이제 종착점에 이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 다가올 2020년대는 우리에게 자주를 실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를테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방위비 분담금대북제재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평화협력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와 잇닿아 있습니다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입니다자주입니다.

자주는 우리 스스로 자기 발로 선다는 의미입니다누구에게 의존하지도누구를 배척하지도 않고오직 스스로의 두 발로 지구를 딛고 서서 모두와 평화롭게 협력하자는 발상입니다친미냐반미냐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질문을 거부하고우리 스스로 서서 우리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하자는 것이 자주입니다우리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일어설 때 미국도 우리를 존중하고중국도 우리를 가볍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최근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자주의 원칙위에서만 제대로 된 해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의 지배세력들은 지금도 지난 70년처럼 미국을 섬기면서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살고자 합니다하지만 앞으로도 지난날처럼 미국을 섬기기만 하면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까요당장 미국의 트럼프 정부조차 이런 발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트럼프는 이제 동맹이라는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미국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우리가 한미동맹의 낡은 틀을 고집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국의 그 어느 역대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별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동지 여러분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이제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물 위로 올라와 그 실체를 그대로 드러냈을 뿐입니다필요한 것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자주의 길로 전진하는 것입니다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기 전에 우리가 민중의 정치적 열망을 하나로 단결시켜 나간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도 분명합니다이른바 조국 사태를 생각해봅니다구조적인 불평등그러한 불평등의 세습그리고 이와 같은 계급의 문제에서 여당과 야당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우리 사회의 진면목가진 자들의 민낯을 우리는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합니다왜 그렇게 되었습니까가진 자들과 민중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고이를 거슬러 올라갈 사다리가 끊어졌기 때문이 아닙니까돈이 돈을 벌고기득권에 속하지 않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는 아예 새로운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면 해답도 심각해야 합니다문제가 구조적이라면 대안도 구조적이어야 합니다그 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해 왔고현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각종 수당 도입이나 즉자적인 교육 및 부동산 정책과 같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대책으로는 이런 구조적 불평등에 아무런 균열을 내지 못합니다지금은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입니다대지주의 땅을 무상 유상으로 거둬들여 소작인들에게 나눠줬던 해방 이후 농지개혁은 농촌의 계급관계를 뒤흔들었습니다이러한 농지개혁처럼자산재분배 정책과 같은 대담하고 근본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구조적 불평등세습되고 있는 계급관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지 않고서는 우리는 한 치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롯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몫입니다여당이건 야당이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우리사회의 견고한 기득권에 뿌리내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어떤 정치세력도 자신의 존재적 기반을 배신하지 못합니다우리 사회의 굳건한 불평등 구조를 깨자면이 불평등 구조에서 피해받는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을 건설해야 합니다우리가 낡은 양당체제를 혁파하자고 하는 건 애매한 중간파 정당과 이런저런 지역정당들이 함께하는 다당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민중의 정당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은 정당민중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참다운 진보정당이 나오는 것이야말로 낡은 양당체제의 혁파일 것이며자주 평등 평화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운 동지들.
미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 이 광장에 모여 선 것처럼 자주 평등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단결한다면 민중의 새날은 어느새 닥쳐올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싸움에서는 미래가 이깁니다낡은 것은 결코 새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여기에 계신 동지들이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실이 됩니다여러분이 미래입니다당신이 봄입니다다가오는 새봄에 우리 뜨거운 가슴으로 만납시다.

2019. 12. 1. 대전 옥에서
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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