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6일 금요일

북한의 신년경축대공연과 자제

 최철훈 | 기사입력 2024/01/26 [14:52]

지난해 12월 31일 밤을 지나 새해 1월 1일,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북한의 신년경축대공연이 있었다. 최근년도 북한의 공연들이 다 자신들의 기존 공연을 뛰어넘는 것들이었지만 이번 공연은 특히 그렇다. 

 

지난 2021년 있었던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 경축공연 「당을 노래하노라」 이후 또 한 번 새로운 획을 그은 공연이 아닌가 싶다. 당시 공연 소감을 다룬 기사는 (「세계를 압도한 공연, ‘당을 노래하노라’」 http://jajusibo.com/54575)를 참고하면 된다. 그 글의 필자는 당시 공연의 제목을 ‘세계를 압도한 공연’이라고 했는데 이번 공연은 규모와 화려함 등에서 그 공연을 압도한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을 비교할 수 있는 공연은 1년 전 ‘2023년 신년경축대공연’이다. 공연 장소, 무대, 출연진들이 비슷하다. 그런데 그 공연과도 확연히 다르다. 1년 전 공연은 대부분 서정적인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활기차고 힘찬 공연이었다. 2023년을 대단히 만족스럽게 평가하고 새해에 더 큰 희망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 공연 전체에서 느껴진다. 

 

또 무대 예술을 놓고 본다면 조명이 확연히 다르다. 정말 이번 신년경축대공연의 조명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화려함과 강렬함을 내뿜는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자제의 관람이다. 자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사이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했는데 이런 자리 배치는 자제가 후계자임을 전체 국민들 앞에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라 생각된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곡 중간에 자제의 얼굴이 비친다. 한마디로 이번 공연은 지난해 정찰위성을 쏘아 올린 북한의 자신감과 자제와 함께 번영해 나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공연을 ‘화려함, 힘, 행복, 단결’이라는 4가지 주제로 분석해보려고 한다.

 

첫째로 화려함이다.

 

 

무대가 화려하다. 작년에 이어 등장한 얼음무대와 그 뒤로 가수들의 무대와 관현악단 천막, 그 양쪽으로 합창단이 자리 잡고 합창단 뒤로는 왼편에 2023, 오른편에 2024라는 숫자가 빛을 뿜으며 장식돼있다. 그 뒤 경기장의 한 면을 영상막으로 설치하고 영상이 펼쳐진다. 그 양쪽으로 눈꽃 모양의 조명을 큼직하게 이어서 설치했다. 그 양옆으로 영상 LED 화면이 설치돼서 현장 생중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조명. 이번 공연의 일등 공신은 무엇보다 조명이다. 북의 무대조명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은데 이번 공연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대 위와 영상막 옆 그리고 합창단 양옆 바닥에까지 조명을 설치했다. 심지어 무대 맞은편에서도 무대를 비춘다. 그런데 조명빛이 대단히 강하다. 빛이 아주 멀리 뻗어나간다. 영상을 보면 누구나 놀라겠지만 15만 관중이 들어가는 5월1일경기장인데 마치 조그마한 소극장에 그 극장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조명을 보는 것만 같다. 색깔도 또렷하고 다채롭다. 게다가 고정된 조명이 아니고 움직인다. 강렬한 빛들이 동시에 다양한 각도로 움직이며 빛을 뿜는다. 조명의 압권은 ‘빛나는 조국’을 연주할 때다. 이 노래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북한의 국기가 등장하는데 심지어 조명까지 국기의 색깔을 형상해서 빛을 내뿜는다.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다. 

 

출연진들의 의상도 세련되고 화려하다. 가수들, 무용수들, 아이들 각자에 맞게 다양한 의상들을 볼 수 있다. 무용수들의 소품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둥근 꽃 모양의 소품, 횃불을 형상한 소품, 다양한 색깔의 띠 등등.

 

 

소고대의 연주 부분에선 조명이 꺼지자 소고대의 옷에서 여러 가지 빛이 뿜어져 나온다. 관객들이 환호한다. 관객들의 복장도 다양하고 화려하다. 관객들은 저마다 형광봉이나 불꽃을 들고 있다.

 

음악 편곡이 화려하다. 당장 첫 곡인 「애국가」의 편곡부터 예사롭지 않다. 우선 무반주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관현악이 합쳐지고, 대합창이 합쳐지고, 소고대의 북 연주가 합쳐지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우리는 당기를 사랑하네」에선 음악이 상승되는 부분에서 다른 연주가 멈추고 드럼이 강하게 연주되는 속에 여성 가수의 힘찬 노래가 펼쳐지며 음악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주다가 관현악과 대합창이 함께 터지면서 폭발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이때 조명도 함께 폭발한다. 관객들의 함성도 폭발한다. 맨 뒷부분의 「우리의 국기」에서도 이런 편곡을 선보인다.

 

둘째로 힘이 넘친다. 

 

우선 규모에서부터 힘이 넘친다. 전 세계에서 이런 규모의 공연을 펼칠 수 있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10만이 넘는 관중이 함께 함성을 지르고 합창을 하는 것 자체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조명도 화려함과 더불어 강한 힘을 느끼게 한다. 공연을 시청한 한 사람은 조명이 땅에서 위로 강렬하게 쏘아지는 모습이 마치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편곡과 노래에서도 힘이 느껴진다. 1시간 반 공연영상인데 내내 힘찬 편곡으로 진행되어 지루함이 전혀 없다. 공연 중간에 「추억」이라는 노래와 「종소리」라는 무용곡에서만 서정적인 편곡이고 총 17곡 중 15곡은 힘찬 편곡이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와 같은 느린 노래도 강하고 경쾌한 박자로 편곡해서 느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 「노동당의 정책은 좋다」를 들어보면 중간에 공훈국가합창단의 남성 합창이 펼쳐지는데 대단히 박력 있다. 이 합창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이 합창단을 “방사포의 일제사격과 같은 강력한 노래 포성”으로 노래한다고 소개한다. 

 

「빛나는 조국」이 연주될 때 뒤 영상막에는 북한의 정찰위성인 만리경-1호의 발사 장면이 펼쳐지는데 관객들의 함성이 높다. 그러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비치는데 매우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러면서 대합창으로 “조선아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가 불려진다. 작년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비롯한 북한의 성과에 대한 자신감과 힘을 공연과 영상편집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셋째로 행복이다.

 

가수들의 표정, 관객들의 표정에 웃음이 가득하다. 「웃음 많은 우리집」이라는 노래는 어린아이들이 나와서 부르는데 “하하하 호호호”라는 가사가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가사에 ‘풍년분배를 받아서 우리 집에 웃음이 많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찰위성이나 북러정상회담 등 군사 정치적 측면의 성과만이 아니라 실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성과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출연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구김살이 없고 밝다. 영상 앞부분에 대기실에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비추는데 앙증맞고 귀엽다. 

 

간부들의 표정도 밝다. 공연 시작 전에 간부들이 경기장 밖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기다리며 환담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가볍게 술도 한잔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사회주의 너를 사랑해」라는 노래는 유독 관객들의 따라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사랑해 사랑해 사회주의 내 조국을”이라는 가사다. 우리로서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우리에게 “사랑해 사랑해 자본주의 내 조국을”이라는 노래가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그 노래를 온 국민이 따라 부르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보통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른다는 건 그 노래 가사에 공감하고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일체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북한 국민들이 자신들의 제도에 행복해한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앙코르곡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온 관객이 일어나서 어깨 물결을 만들며 함께 노래 부른다. 대단히 행복한 표정들이다.

 

「흥하는 내나라」에서는 북춤과 민족무용이 나오는데 객석에서 일어나 춤추는 관객이 영상에 잡힌다. 가슴속 행복과 흥으로 인해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영상 중간중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자제를 비추는데 서로 환담도 나누고 미소도 짓는다. 많은 국민들과 함께 새해를 맞는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행복한 듯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단결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제와 팔짱을 끼고 공연장에 입장을 하자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는다. 손을 흔들며 여러 차례 답례하다가 자리에 앉았는데도 박수와 함성이 멈추지 않는다. 급기야 자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공연이 다 끝났을 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관람석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 객석에 있는 국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국민과 지도자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연이 가지는 남다른 면이 또 하나 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 가사 부분이다. 원래 가사는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인데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현 지도자의 이름으로 바뀌어 불렸다. 이 노래는 당 제4차대회(1961년)에 바쳐진 노래로 북한 국민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 변화는 그만큼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의 방증이 아닌가 싶다.

 

공연의 전체 흐름이 단결의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애국가로 시작해서 당에 대한 노래들(「당을 노래하노라」, 「우리 당 영원히 따르리」, 「내 한생 따르리,」 「우리는 당기를 사랑하네」)이 펼쳐진다. 그리고 나라와 제도에 대한 노래들(「해빛 밝은 내나라」, 「우린 사랑한다」, 「사회주의 너를 사랑해」)에 이어 가정과 자신에 대한 노래들(「웃음 많은 우리집」, 「추억」)이 펼쳐진다. 자신에 대한 노래라고 해서 마냥 자기 추억만을 찾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어머니 우리당 위해 한 생을 값있게 살리”라며 다짐한다. 그러다가 다시 노래 연곡(「노동당의 정책은 좋다」, 「흥하는 내나라」)으로 흥을 돋우다가 마침내 공연의 절정(「빛나는 조국」, 「번영의 이길 따라」, 「조선의 모습」)으로 치닫는다. 특히 「조선의 모습」에서 “천만 사람 대답해도 한 목소리고, 천만대오 걸어가도 한 걸음일세. 일심단결은 우리의 모습, 일심단결은 조선의 모습”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것이 이번 공연을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적 내용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큰 특징은 서두에서 언급한 자제의 관람이다. 기존 북한의 공연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관람하는 공연이라고 하더라도 이번처럼 편집화면에 많이 등장하진 않는다. 이번엔 자제가 14번이나 등장한다. 그리고 자제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비추는 장면들이 주목된다.

 

「우리는 당기를 사랑하네」에선 자제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 앞부분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모습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개를 돌려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고 화려하고 힘찬 편곡과 조명이 펼쳐진다. 대합창이 펼쳐지고 관객들도 함께 부른다. 노래 가사는 이렇다. 

 

“대를 이어 우리 세상 끝까지. 이 깃발 따라 한길 가리라.”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 자제의 모습이 한 번 더 비친다. 

 

그리고 「번영의 이길 따라」, 「우리의 국기」에서도 자제가 노래를 따라부른다. 「우리의 국기」에서 자제가 함께 부르는 장면은 “나부껴다오 이 세상 다할 때까지”라는 가사다. 

 

북한 연출단의 의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당과 국민들이 일심단결하여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자제와 함께 “번영의 이길 따라”, “이 세상 다할 때까지”, “한길 가리라”는 의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화성포-18형, 극초음속 미사일, 정찰위성 등을 발사하며 스스로 군사강국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대선후보들이 대북 정책을 놓고 싸우는 걸 보면 북한의 정치적 위상도 상당해 보인다. 경제도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해 말 전원회의 발표를 보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최근 3년 동안 연 12% 성장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수치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이 주장해온 대로 군사강국, 정치강국에 이어 곧 경제강국에 올라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공연을 통해 알 수 있듯 북한의 문화공연 실력도 주목된다. 내처 문화강국의 목표까지 이루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지난 공연 수준을 갱신하는 북한의 다음 공연이 벌써 궁금하다.

 


'윤·한 동일체'의 '내적 투쟁'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보고서


[박세열 칼럼] 윤석열과 한동훈, 날 것에 가까운 욕망의 정치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1.27. 05:06:00


'약속대련'이니 하는 말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득실 계산이 한창이다. 쓸데 없는 일이다. 사안은 명백하다. 검찰 공화국에서 범죄 의혹을 두고 벌이는 국력 낭비다. 해결책도 간단하다.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수사하면 된다. 그러나 이미 도래한 검찰공화국의 검찰은, 정작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검사동일체의 원칙. 이 무시무시한 말은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되기 전까지 검찰청법 제 7조의 제목이었다. 검찰청법 제7조 제1항은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고 돼 있고, 3항은 "검찰총장과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세월이 흐르며 문구는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검사동일체'의 핵심 의미는 그대로다.

제3항은 독재시절 참 유용했다. 양심있는 검사가 거부한 시국 사건은 충성스런 검사가 맡아 처리할 수 있었다. 검사는 동일체이므로, 완전무결한 하나의 상상된 '법인격체'이기 때문에 나사 몇개, 부품 몇 개 빠진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기소 검사와 공소 유지 검사가 달라도, 모든 검사는 '동일체'이기 때문에 논리적 완결성은 훼손될 수 없다. 그런 조직에서 윤석열과 한동훈은 20여년 간 '동일체'로 살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관계(윤석열 대통령)라고 한다. 거의 '식구'다.

'정신분석학'적 검찰 공화국의 세계관에서 윤석열과 한동훈, 여권 투톱은 한몸이다. 당대표를 두 번 갈아치운 끝에 드디어 '자아 일체'를 이뤘다. 그러니까 지금 벌어지는 소동은 일종의 '내적 투쟁'이다. 과거 '정의의 검사'로 불렸던, 지금 한몸에 살고 있는 두 자아가 자신들의 과거와 벌이는 내적 투쟁. 

이 내적 투쟁의 촉발제는 김건희 영부인의 디올백 스캔들이다. 김건희 영부인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논쟁이 한창이지만, 그걸 규명해 줄 '슈퍼 에고', 즉 이 정부의 또다른 자아인 '검찰'은 내면 깊숙히 숨어들어가 아예 '무의식'이 됐다. (Unconsciousness 무의식이 아니라, No consciousness 의식 없음이 됐다. 혹은 Disconsciousness, 의식 잃음인가?)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불이 난 서천특화시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내적 투쟁은 본능과 본능의 충돌이다. 정신분석학에서도 비슷하다. 자아 속에서 권력과 욕망을 둘러싼 본능이 충돌하고 이를 '이성'과 '양심'이 제어하는 게 보통의 매커니즘이다. 그런데 요란한 내적 투쟁에는 '이성'과 '양심' 같은 슈퍼에고의 존재가 고장나 있다. 

자, 양심을 팽개친 이 '동일체'의 한쪽에선 영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이, 한쪽에서는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한다. 영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욕망은 또렸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총선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도 또렸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그 또한 분명치 않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 영부인의 '디올백 스캔들'을 보호하고 가면 총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고, '디올백 스캔들'을 털고 가면 대통령이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총선 패배는 '식물 정권'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의 근원이고, 생 그 자체를 위해 극복해야 할 치명적(fatal) 이벤트다.

두 개의 상반된 욕망이 충돌했다. 이 '내적 전쟁'이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에겐 사적으로 중요할 수 있지만,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지위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내적 싸움'을 실시간 중계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동료 시민들'은 내적 싸움이 공적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사적 비리 의혹'에 대한 두개의 자아가 충돌하는 모습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쓰러워해도 모자랄 판에 일각에서 '약속 대련'이니, '극적 화해'니 하는 말로 포장지를 둘러대는 건 여간 민망스러운 일이 아니다. 




검찰총장 시절엔 많은 의사결정이 암막 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동일체를 거부한 검사들은 옷을 벗고 나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대통령직은 다르다. 모든 결정 과정은 투명해진다. 그런 가운데 완전한 일체가 되지 못한 또다른 자아(한동훈)을 꾸짖고 어르고 달래는 원 자아의 모습이 언론지상에 날것으로 등장한다.

"대통령을 뒷배 삼아 한 위원장이 당의 주인인 것처럼 줄 세우기 한다는 소문이 맞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동훈은 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후배였다. 내가 오죽하면 신뢰와 지지를 철회한다는 말까지 했겠느냐",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뒷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나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채널A [단독]윤 대통령 "한동훈, 사당화 하지 말라는 것" 봉합 여지는 남겨, 역시 채널A [단독]"뒤통수 맞았다더라"…윤 대통령, 심경 토로) 

궁중 암투에서 나올법한 말들이다. 일개 검찰 조직의 수장에서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로 자리를 옮겼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국가 동일체'의 머리 부분에 자리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사태의 본질은 총선에서 지면 '식물 정권'이 된다는 근원적 두려움 위에서 벌어지는 욕망끼리의 내적 투쟁이다. 이들에겐 총선에서 이겨서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이 불분명하다. 얼른 기억나는 건 운동권 청산론인데, 이건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이념 투사의 기출변형 수준에서 멈춰버린다. 그리고 여권의 '권력 자원'을 총선 승리를 위해 투여하겠다는 한동훈식 마키아벨리즘이 난무한다. 

지금 세상은, 지금 국정은 대통령이 '내적 투쟁'을 통해 자아를 완성해 나가는 실험장이 될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세계 정세는 불안하다. 미국에서는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한미동맹 '원툴'의 외교 정책은 위태하지 않는가? 북한은 '전쟁'을 입에 담으며 연일 도발을 해대고 있다. 경제 상황도 심상치 않다. 물가는 치솟고 있으며, 부실 대출은 폭발 직전이다.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 코로나 이래 최악이다. 세금 깎고 재정 아끼자는 이 정부의 '솔루션'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주가 부양과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주가는 되레 곤두박질치고,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고 있다. 미국에서 북한과 '전쟁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데 어느 투자자가 한국을 눈여겨 보겠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이 판국에 왜 한국 정부는 300만 원짜리 영부인 디올백 스캔들을 두고 '내적 투쟁'을 '동료 시민들'에게 강제 시청하게 만들고 있나. 

이 국정 걸림돌을 치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적 투쟁의 요인을 제거하면 된다. '조국 수사' 때처럼 전광석화로 진상규명을 하면 된다. 그런데 검찰이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 '동료시민들'은 지금 그걸 궁금해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함께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사과 읍소? 우리는 김건희의 '위법'을 보았다

 


[안호덕의 암중모색] '화재' 현장을 '화제' 현장 만든 봉합쇼... 사과로 법의 심판 퉁치지마라

24.01.26 17:49최종 업데이트 24.01.26 17:49

▲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함께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점포 227개를 태운 화재(火災) 현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갈등 봉합을 보여주는 화제(話題)의 현장이 됐다. 망연자실하며 대통령을 기다리던 피해 상인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불구경 왔냐고 성토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파열음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혹자들은 약속된 대련이라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전초전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사흘간의 초유의 갈등이 정권과 여당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한동훈 위원장이 갈등의 시작이고 원인이기도 했던 국민의힘 김경율 비대위원의 출마를 발표했던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이 정청래 민주당 의원과 맞붙을 것이라며 두 팔을 추켜세웠다.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던 자신의 말과 배치되는 행동이고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인사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절차적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내 민주화와 공정한 경쟁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독단적 결정과 행동.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 사실을 빌미로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보내 전국위원회 추인을 거친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하루 이틀의 폐해가 아니다. 이준석 전 대표를 향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는 문자가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 역시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던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고,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에도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한 위원장의 시스템을 무시한 공천과 대통령의 법을 위반한 당무 개입은 닮았다. 정당 민주주의도, 법이 정한 대통령의 당무 개입 금지도 무용지물이 됐다. 윤·한 갈등에서 보여준 권력의 민낯이다.

의혹이 아니라 온 국민이 본 위법 행위다
 

▲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왼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남소연

 
본질적 문제는 더 그렇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한 당내 사과 요구를 통제하지 못한 책임 추궁이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다른 목소리를 낸 데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이 대부분 언론의 분석이다. 한 위원장 취임 이후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해졌고 국민의힘 내에서도 전향적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디올백 같은 경우 함정이긴 했지만, 부적절했다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는 하태경 의원. '김 여사가 경위를 설명하고, 만약 선물이 보존돼 있다면 준 사람에게 돌려주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쉽게 해결될 방법'이라는 이수정 국민의힘 총선 예비후보 등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로 비유하며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김경율 비대위원의 주장이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사과 요구를 곧이곧대로 보기 힘들다. 다른 형태의 감싸기이고 위기 모면용일 뿐이다. 대통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진실 규명과 법에 의한 심판 요구는 디올백 수수로까지 확대되었다.

출마 예정자, 특히 수도권 예비 후보자들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커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게 '사과라도' 해달라는 읍소형 요구였다. 보수 언론들도 사과와 제2부속실 설치 정도의 대책이라도 내놓으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마저도 불쾌해했고 여당 내 사과 요구 확산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갈등으로 분출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일부의 사과 요구는 해결책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많은 언론에서 디올백을 받은 행위를 '의혹'이라고 하지만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하는 장면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의혹이 아니라 온 국민이 본 위법 행위다.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다면 수사해야 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왜 대통령 부인 금품 수수를 법의 심판도 없이 사과로 마무리하려 하나? 그런 사과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어이없지만 국민의힘 일부의 사과 요구는 법적 심판 대상을 도덕적 흠결 정도로 희석시키려는 얄팍한 정치 술수와 총선을 앞둔 보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해되지 않는 주장도 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피해자를 나무라는 격이라며 김건희 여사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이철규 국민의힘 공동인재영입위원장. 그러나 300만 원 디올백은 김영란법을 위반하며 김건희 여사에게 건네졌고 반환되지도 않았다. 윤리에 어긋나는 취재라 하더라도 수수한 사실을 면죄받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철규 위원장 주장대로 대통령 부인이 개입된 교통사고라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가려내는 수사는 더 급함을 요하는 일이다. 장관의 핸드폰을 찾자고 수사관들을 총출동시킨 정권에서 대통령 부인이 개입된 교통사고(?)는 왜 모두가 뒷짐을 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디올백이 국고로 귀속되어서 반환이 어렵다는 주장 또한 뇌물을 수수해 국고로 귀속시키는 나라라는 궤변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공정과 상식 아니다
 

▲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끄러움을 모른다.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국회의원 선서를 했던 의원들, 앞으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 국가이익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안전이 우선이다.

사과를 요구했던 국민의힘 인사들, 계획된 공작이며 사과는 필요 없다는 대통령 호위무사들,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사과해라' '불가하다' 양측의 줄 달리기는 약속된 대련이든 권력의 암투이든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흘간의 윤·한 갈등, 벌어진 틈새로 드러난 여당과 정권의 모습은 추하고도 나쁘다.

25일 한 위원장은 '제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라며 사과 요구에 선을 그었다. 얄팍한 언변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던 한 위원장이었다. 김경율 비대위원 역시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더 이상 밝혀질 것 없다'며 구애의 발언을 쏟아냈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승자로 보일만 하다. 진정한 승자는 윤 대통령 뒤에 숨은 김건희 여사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럴만하다.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 뒤에서 섭정하는 풍자가 국민들의 우픈 미소를 짓게 하고 여당 의원들이나 장차관들이 대통령보다 김건희 여사의 심기를 먼저 살핀다는 소문도 파다할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는 의혹이 아니라 확인된 위법 행위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갈등은 화재 현장을 화제 현장으로 만들며 봉합되었을지 모르지만 드러난 추한 모양을 국민들은 다 봐 버렸다.

여당 내 사과 요구는 당분간 보기 힘들 수 있겠지만 수사와 법의 심판을 요구하는 여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과를 읍소하듯 청할 일이 아니다. 사과로 법의 심판을 퉁치는 것은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공정과 상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확대가 ‘격차해소에 위배된다’는 한동훈의 궤변

 


3년 전 정반대 주장 펼치며 중대재해법 반대한 권성동 “왜 큰 기업만 골라서 하나?”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반대하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2024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 주장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민중의소리

“충분한 자력과 인력을 갖춰 이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조치를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대규모 사업장이나 대기업들이 있다. 반면, 그럴 자력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50인 미만 사업장이 있다. 이 양자 간 격차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생각이다.” - 2024년 1월 25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말이다.

‘대기업’과 ‘50인 미만 기업’은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인데, 한 비대위원장의 주장은 2021년 1월 해당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하며 내세운 논리와 정반대다. 법이 통과될 때는 ‘곧바로 적용되는 대기업 노동자’와 ‘3년 뒤 적용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사이에 격차가 발생한다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 시기를 달리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막상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시기가 되자, 이번에는 사업장 규모를 고려해 유예기간을 더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를 위한 주장을 펼치다가 정반대의 논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해당 법안은) 우선적으로 50인 이상 기업에만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안전사고라는 것이 종업원이 많고 큰 기업만 골라서 발생합니까? 피해자 입장에서는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사망하는 피해자나 50인 이상의 기업에서 사망하는 피해자나 죽음이라는 결과는 동일합니다.”
 -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2022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 2223명
법 시행 후 사업주 실형은 고작 1건
모든 영세사업자 범죄자될 것이라는 궤변


통계로 보는 2022년 산업재해 ⓒ안전보건공단 디지털전략실

중대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사고를 의미한다. 또는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

여권은 마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으로, 각 사업장의 규모와 특성에 따른 안전·보건 조치를 위해 노력한 사업주까지 처벌한다는 내용은 없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연장을 주장하며 한 말을 보더라도,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지나치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송 의원은 2022년 1월 27일 법시행 이후 사업주를 처벌한 사례는 “12건”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12건에서조차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고작 1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밝힌 2022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223명(사고 사망자 874명, 질병 사망자 1349명)이다. 22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업주는 고작 1명인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면 마치 식당, 찜질방, 카페, 빵집 등 모든 영세사업자가 당장 범죄자가 될 것처럼 말하는 여당의 주장은 거짓선동에 가깝다.

원안을 대표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이 법은 처벌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며 “살인죄가 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죄인이 되는 게 아니듯, 이 법이 있다고 바로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고 비판했다.

정부 지원 가능토록 법적 근거 마련했건만
아무런 대책 마련 안 하던 윤석열 정부
강은미 의원 “정부가 제대로 역할 안 한 것”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01.25.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대기업과 50인 미만 사업장 사이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그 격차를 해소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소규모 사업장까지 적용하는 것은 정치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은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에 가깝다.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백혜련 법제사법위원장 대리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안’ 제안 설명을 들어보면, 당시 여야가 얼마나 격차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논의 과정에서 원안에 없던 정부의 지원 규정을 신설했다. 중소기업 등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고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에 안전보건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예산이라든지 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근거(조항)를 만들었고, 준비기간을 충분히 두기 위해 유예기간을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3년, 그 이상 기업은 공포 후 1년으로 했다” -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 백혜련 법제사법위원장 대리

법에 정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시행 시기도 규모별로 차등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국회가 할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정부가 할 일을 안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강은미 의원은 “법 제정 당시 준비 격차를 해소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적용을 연기했다”며 “유예된 시간 동안 사고 예방 지원을 안 한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여태껏 무책임으로 일관하다가 이제와 준비 안 됐다고 미뤄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여당에 묻고 싶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다쳐도 되고, 죽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2021년 1월에 권성동 의원이 본회의에서 한 발언을 돌려 드리고 싶다”고 비판했다.

법 반대하는 보수논객조차
“국민의힘은 참 이상하다”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국회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으로 통과됐다. 해당 법안이 원안보다 한참 후퇴됐다는 비판 때문에 일부 민주당·정의당 의원 등이 기권했지만,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도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이에 해당 법을 당초부터 반대해 온 보수논객조차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기가 온 뒤에야 갑자기 반대하는 국민의힘의 모습’에 “참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정규재 전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26일 페이스북에 “중대 재해법은 지금의 국회가 바로 3년 전 여야가 충분한 토론을 거쳐 통과시킨 법이다. 반대는 여야 합쳐 44명에 불과했다. 의원 각자의 자유로운 투표의 결과였다”며 “국민의힘은 그때는 무엇 하다가 지금 와서 민주당을 모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난하나”라고 지적했다.

“ 이승훈 기자 ”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