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5일 목요일

조개의 여왕 전복, 자연산-양식 구별법


황선도 2015.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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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인 미역·다시마 가격폭락이 대규모 양식 계기, 양식은 녹조 색 띠어
해녀 채취 소라는 남획으로 관리 대상 1호, 서해안 피뿔고둥과는 족보 달라

 ab4.jpg» 바닷속 전복.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추억어린 전복 조가비
 
어릴 때 우리 집 비눗갑은 전복껍질이었다. 그 땐 그게 전복이라는 생물의 패각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다만 비누를 들추면 나타나는 영롱한 색깔의 무늬가 그저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난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전복 껍데기에 나 있는 몇 개의 구멍으로 물이 빠져나가 비누가 불어 물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비눗갑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전복 조가비에 담긴 비누로 유난히 거품을 많이 내서 얼굴과 목덜미 여기저기를 비벼 세안을 하셨다.
 
하얀 거품을 물로 씻어내면 백옥같은 흰 살이 드러났는데, 어린 소년인 내 눈에 참 미인이셨다. 이것이 전복에 대한 추억의 시작이다.
 
ab1.jpg» 전복 조가비 비눗갑
 
우리 어머니 손가락에는 커다란 진주가 박힌 반지가 늘 끼워져 있었다. 아무리 굳은 손일을 하실 때도 빼놓지 않으셨다.
 
아마 살갑지 않았던 서방님의 마음이라 생각했을까? 이렇게 조개가 인간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바로 진주이다. 그 중에서도 전복에서 나는 진주는 색깔이나 희소성 때문에 ‘진주의 여왕’으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의 명산품이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질 좋은 아발론 펄(abalone pearl)이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고, <삼국유사>와 <탐라록>에도 우리나라의 전통보석이 전복 진주임이 기록돼 있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보석으로 사랑받은 것이 분명하다.
 
요즘은 체내에 진주용 핵을 넣어 인공적으로 진주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그 옛날 자연에서 얻을 때는 참 값진 보석이었을 것이다.
 
ab2.jpg» 조가비 진주 
 
어릴 적 살던 집 이웃에는 자개 농방이 있었다. 키가 훤칠한 아저씨는 나무판자를 자르고 못질하여 장롱을 짜고, 호마이카(아마 상표 이름인 듯함)라 부르는 인공수지를 끓여 농짝에 부어 굳으면 물을 뿌려가며 뻬빠(샌드페이퍼 sand paper, 즉 사포의 일본식 발음일 듯함)로 문질렀다.
 
온종일 양손으로 문지르고 또 문지르다 보면 거무튀튀한 호마이카 사이로 영롱한 자개가 드러났다. 이것 또한 전복 조가비였다.
 
전복 조가비는 빛깔이 좋아 나전칠기와 같은 여러 공예품의 재료로 쓰여 왔던 것이다. 이 농방에서 만들어진 공작 암수가 수 놓인 자개농이 우리 집 안방에 가보처럼 모셔져 있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까지는….
 
조개의 황제, 전복
 
전복은 분류학적으로 연체동물문 복족강 원시복족목 전복과 전복속에 속한다. 연체동물이란 연(軟)한 살로 구성된 몸(體)을 가졌다는 뜻이다.
 
복족이란 배복(腹) 자에 다리 족(足)자로 배 즉 공간이 있는 패각을 가지며 발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껍데기 안에 공간이 있는데 그 안에 연한 살이 있고 발을 가지고 있어 이동을 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전복은 껍데기가 한쪽밖에 없어 먹으면 사랑에 실패한다.’라는 금기 때문에 먹지 않았으나, 전복이 조가비가 한 짝으로 되어 있는 이매패류가 아닌 복족류임을 알지 못한데서 온 오해는 아닐까.
 
전복은 서양에서는 아발론(abalone)이라 부르는데, 껍데기가 귀를 닮았다 하여 이어쉘(ear shell) 또는 씨이어(sea ear)라고도 하여 모양새를 보고 이름을 붙였다. 사실 생김새로 말하면 민망하지만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하는 것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잖은 동양권에서는 일본어로는 아와비(鮑, アワビ), 중국 한자로는 복(鰒), 우리나라에서는 전복(全鰒)이라고 하여 더 말할 것 없이 ‘온전히’ 전복임을 말할 만큼 완벽한 해산물이라고 평가하였다. 전복 조가비가 고대 패총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우리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해산물임에는 틀림없다.
 
ab5.jpg» 완벽한 해산물, 전복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전복을 복어(鰒魚)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살코기는 맛이 달아서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말려서 포를 만들어 먹는 것이다. 그 내장은 익혀 먹어도 좋고 젓갈을 담가 먹어도 좋으며 종기 치료에 효과가 있다. 봄과 여름에는 독이 있는데, 이 독에 접촉하면 살이 부르터 종기가 되고 환부가 터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탐라지(耽羅志)>에는 제주도에서 전복이 말(馬), 감귤과 함께 임금께 진상하는 공물 중의 하나로 기록돼 있고, <제주풍토기>에는 ‘해녀들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전복을 따지만 탐관오리의 등쌀에 거의 뜯기고 스스로는 굶주림에 허덕인다.’라고 적어 관리들의 전복 갈취 행위가 심각했음을 보여주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전복, 해삼, 상어 지느러미, 물고기 부레가 최고의 강정식품으로 인정되어 왔다. 전복을 말리면 아르기닌의 양이 증가하고, 이 아르기닌은 혈액 흐름을 원활히 하고 근육을 강화시키며 남자 정액 고형분의 70%를 점유할 정도라고 하니 자녀 계획을 앞둔 부부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복을 말리면 오징어처럼 표면에 흰 가루가 생기는데, 이것이 타우린이다. 타우린은 담석을 녹이거나 간장의 해독기능을 강화하고 콜레스테롤 저하와 심장 기능 향상, 시력 회복, 신경 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전복에는 메티오닌과 시스틴 등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병을 앓은 뒤의 원기 회복과 피로 회복에 좋을 뿐만 아니라 지방대사 촉진, 해독과 배설 촉진, 항우울 작용, 간 기능 향상, 관절염 완화, 만성피로 완화와 심지어 머리카락에 영양공급을 한다 하니 만병통치약쯤 되는 듯하다. 화학분석을 하지 못했을 그 옛날에 얼마나 많은 경험이 이와 같은 근거 있는 효과를 만들어 냈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전복은 수분함량이 많고 단백질과 지방의 함량이 적어 영양이 체내에 잘 흡수되어 회복기 환자나 노약자의 건강식에 많이 쓰인다. 보통 영양식으로는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특유의 오돌오돌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회로도 즐긴다.
 
전복을 요리하는 전문가들은 날로 먹을 때 입과 배설물은 꼭 제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잘못하면 탈이 날 수 있다고.
 
ab6.jpg» 전복 회 

생활 속으로 다가온 전복
 
전복 패각은 난형 또는 타원형이며, 나선모양으로 감겨 있는 나층은 층수가 적으며 높이도 낮고 뒤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대부분의 패각은 입구에 해당하는 주둥이에서 한바퀴 돌아왔을 때의 가장 큰 한 층인 체층으로 되어 있다.
 
이 체층 위에 관 돌기들이 줄지어 위로 솟아 있는데, 이 관 돌기들은 뒤쪽 몇 개를 제외하고는 막혀 있으며 열려있는 구멍은 호흡공 또는 출수공이라고 하여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음식 중의 하나가 해물뚝배기일 것이다. 여러 해물을 넣고 팔팔 끓여 내놓은 뚝배기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면, “앗! 뜨거워” 하지만 그 다음 “시원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뚝배기 안으로 숟가락을 저어보면 달그락거리면서 건져진 것은 다름 아닌 전복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다. 이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이것이 전복이여? 오분자기여?”
 
원래는 바다에 지천이었던 오분자기를 넣었으리라. 육지에서 해녀라 부르는 ‘ㅈㆍㅁ녀’들이 ‘물질’만 하면 쉽게 건져 올렸으니까 말이다.
 
실제 오분자기는 국물 맛이 전복보다 좋아 뚝배기에는 오분자기를 쓰고, 전복은 회로 먹는다. 그러나 인기가 있으면 남용하게 되고 급기야 오분자기 자원이 감소하여 이제 자연에서 채취하기 쉽지 않게 되었다.
 
지금 해물뚝배기에서 건져내는 것은 전복이다. 양식하면서 상품가치가 떨어져 골라낸 전복새끼. 이렇게 시대상황에 따라 우리가 먹는 입맛도 변해야 한다.
 
ab7.jpg» 해물뚝배기 속 전복 
 
우리나라에서 전복을 양식하게 된 역사를 돌아보자. 전복 양식업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제주지사가 위치해 있는 1972년 당시 국립수산진흥원(지금은 국립수산과학원) 북제주배양장에서 전복종묘 인공생산 기술개발을 시작하여 1974년부터 양식어업인에게 생산한 종묘를 분양하여 양식하게끔 한 것이 전복양식의 효시이다.
 
1980년대까지 공동어장이나 마을어장에 치패를 뿌려서 그들 전복새끼가 잡아낼 만큼 자라면 해녀가 물속에 들어가 직접 잡아내는 나잠어업이 고작이었다.
 
이러다가 전복 양식업이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육상 수조식 양식방법이 개발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만해도 전복 생산량이 200∼300톤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이 전라남도 완도를 중심으로 해상가두리양식이 보편화하면서 양식량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2000년대 말에는 7500여 톤으로 늘어났다. 전남 서남부 지역에서는 일찍이 미역과 다시마 양식들이 발달했는데, 당시 수출 부진으로 가격이 하락하여 전복의 먹이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전복 10마리 1킬로그램 기준 4만∼6만원으로 가격이 비쌌지만 생산비가 저렴하여 고소득 품목으로 인기가 높아 양식을 희망하는 어가가 크게 는 것이 생산량 증가 이유이다. 이렇게 시작된 전복 대량 생산은 당시 획기적으로 어업인 소득창출에 기여하는 역사가 되었다.
 
2010년 현재 전 세계 전복 양식 생산량은 6만5000톤 수준인데, 그중 중국이 56000톤 정도를 생산하여 86%를 차지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사람의 입맛도 고급화되고 급기야 양식산과 자연산을 구별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제 양식산 전복의 패각 색깔은 녹색을 띠어 자연산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팁은 누구나 아는 사실. 과거에 임금님 수라상에나 올랐던 귀한 전복이 이제는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식재료로 뛰쳐나온 것은 모두 양식 덕분이다.
 
ab8.jpg» 종묘 생산된 전복
 
양식산 전복의 대량생산과 별개로 자연산 전복 자원의 보존을 위한 수산정책이 있다. 어미 전복이 산란에 참여하여 재생산할 수 있도록 전국적으로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제주특별자치도는 10월 1일∼12월 31일) 금어기를 설정하여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또 채취하는 전복의 크기를 제한하여 어린 전복이 어미로 성장하도록 돕고자 전국적으로 각장 7센티미터 이하(제주특별자치도는 각장 10센티미터 이하)를 잡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즐겨 먹는 전복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으로 법은 만들어지는 것보다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강조는 사족이길 바란다.
   
전복은 해변에 물이 빠지면 만나는 간조선에서 수심 5∼50m 되는 외양의 섬이나 암초에 서식하며 바닷물이 깨끗해 해조류가 많이 번식하는 곳에 주로 산다. 주요 먹이가 다시마, 대황, 미역, 감태, 파래 등의 해조류이기 때문이다.
 
암수가 따로 있는 자웅이체이며, 알을 낳는 난생으로서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산란한다. 생식소가 황백색인 것이 수컷이고 녹색인 것이 암컷이다.
 
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껍데기는 1년 동안에 2∼3센티미터 정도 자란다. 물고기는 이석으로 나이를 알 수 있다면 전복과 같은 패류는 패각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윤문으로 나이를 알 수 있다.
 
ab9.jpg» 5년생 전복. 사진=김지학 바람아래 대표
 
전복은 산란기인 가을철을 제외하고 연중 맛이 있으며, 남방계 전복류는 겨울철에 산란한 다음 봄철 이후 여름까지 육질이 비만해지기 때문에 여름철이 제철이다.
 
전복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고, 수온이 내려가는 가을 이후에는 전복의 성장이 둔화하기 때문에 가을철 이전에 출하를 하게 되는 시장경제의 반영이기도 하다.
 
더불어 전복 양식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복의 과잉생산, 일본시장에만 의존하는 수출시장의 한계, 소비형태 변화에 따른 유통상의 혼란 등의 현안을 해결해야 할 일이다.
 
전복과 그 형제들
 
전복류는 전 세계적으로 100여종이 서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기가 작은 오분자기(Sulculus diversicolor aquatilis)와 마대오분자기(Sulculus diversicolor diversicolor)를 비롯해 북방전복(참전복,Nordotis discus hannai), 둥근전복(까막전복, Nordotis discus discus), 말전복(Nordotis gigantea), 왕전복(Nordotis madaka) 등이 주로 발견된다고 보고되어있다.
 
왕전복은 오랫동안 말전복과 구분없이 취급되다가 1979년에 신종으로 분리되었고, 1990년대에는 북방전복이 둥근전복의 지리적 변이종으로 판명되었으며 2001년에 북방전복으로 명명되었다. 또한 시볼트전복은 말전복과 같은 종이라고 보고하여 이 이름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근거는 2000년에 제정된 국제명명규약 제 23조 선취권의 원리에 따라 먼저 얻어진 이름을 따르기 때문이다.
 
전복류는 형질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분류가 어렵고, 이름조차도 전복, 참전복, 까막전복, 시볼트전복 등 다양하게 혼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혼동이 2014년에 이준상 박사와 원승환 박사 등에 의해서 정리되었다.
 
이렇게 과학의 결과는 잠정적인 결론이지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살아있다.
   
오분자기, 마대오분자기와 둥근전복, 말전복은 남방종으로 겨울철 25미터 저층 수온이 12도 등온선인 대한해협과 거문도 북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경계수역의 남쪽에서 나고, 그 밖의 북쪽 찬 해역에서는 둥근전복의 아종인 북방전복이 생산된다.
ab10.jpg» 둥근전복(왼쪽)과 북방전복. 
 
ab11.jpg» 말전복(왼쪽)과 왕전복. 이들 4종은 모두 둥근전복속이다. 사진=이준상 박사 
 
보통 전복이라 부르는 둥근전복(Nordotis discus discus)은 조가비의 겉면은 검은 빛깔이 강한 갈녹색이며 안쪽은 강한 진주광택이 있어 까막전복이라고도 부른다. 수온이 12 도씨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제주도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종이다.
 
제주도 해녀들이 특히 좋아하는 전복이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둥근전복 양식 또한 선호한다. 외양의 섬 부근이나 육지에서 튀어나온 암초 주변에 물이 깨끗하고 미역, 다시마, 감태 등의 갈조류가 많은 수심 20미터 바위 지역에 주로 산다.
 
7∼11월에 산란하며, 수정한 다음 3∼7일간 부유생활을 하고 바로 저서생활로 들어간다. 다 자라면 패각의 길이인 각장 20센티미터, 패각 폭인 각폭은 17센티미터이고 패각 높이인 각고가 7센티미터로 높은 편이다.
 
호흡공 3∼5개로 중간 정도로 돌출되어 있다. 패각이 난원형이고 측면경사가 가파르며 나선모양으로 나 있는 가로줄인 나륵은 굵고 패각 주둥이 입구면인 내순의 폭은 좁다. 등면에 나 있는 돌기인 결절은 약하고 꼭지인 각장은 낮아 등면 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ab12.jpg» 자연산 둥근전북. 사진=고혜웅 수산자원조사원
 
일반인들이 참전복이라고도 부르는 북방전복(Nordotis discus hannai)은 둥근전복의 북방형으로 수온이 낮은 북쪽 해역에 서식한다. 즉, 동해에 주로 분포한다.
 
패각이 난원형이고 측면경사가 가파르며 굵은 나륵이 있고 내순 폭이 좁다. 등면 결절은 강하고 각정이 높아 등면 높이를 벗어난다.
 
최대 각장 11센티미터, 각폭 8센티미터이고 각고는 25센티미터로 중간 정도이며, 호흡공 3∼5개로 심하게 돌출되어 있다. 자웅 이체로 9∼11월에 체외수정하며 수명이 12년 정도이다.
 
전남 서남부 지역에서 인공종묘생산 대상종으로 2년 정도 양식한 전장 4센티미터보다 큰 크기 개체를 자원조성을 위해 3∼6월 춘계와 10∼11월 추계에 바다에 방류한다.
 
ab13.jpg» 전복종묘를 검수하여 해녀들이 직접 물에 들어가 방류한다. 
 
시간이 지나서 바다에서 잡은 전복을 살펴보면 패각에 녹색을 띠는 부분과 갈색을 띠는 부분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실내양식장에서 자라는 어린 시기에는 파래와 같은 녹조류를 먹여 패각에 녹색 클로로필 성분이 배어나게 되어, 이를 보고 양식산을 구별할 수 있다.
 
ab14.jpg» 양식되어 패각이 녹색을 띤 전복 종묘
 
말전복(Nordotis gigantea)은 9월에서 다음해 1월 사이의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산란하며, 최대 각장 20센티미터, 각폭 17센티미터, 각고 7센티미터까지 자라는 전복중 가장 대형종이다.
 
패각 형태는 타원형이며 측면경사는 완만하며 나륵이 없다. 각고는 높고 호흡공은 3∼4개로 수심 15∼30미터에 서식하는 남방종이다. 그다지 맛이 있지 않아 아직까지 양식 산업화되어 있지 않다.
   
그밖에 왕전복(Nordotis madaka)은 패각이 난원형이고 측면경사가 가파르다. 굵은 나륵이 있고 내순 폭이 넓다. 호흡공이 4∼5개이며 패각에 뚫려있는 호흡공인 공열은 매우 높다. 최대 각장 18센티미터, 각폭 1 센티미터, 각고 5센티미터까지 자라 제주도 조간대 수심 50미터 바위 지역에 주로 서식한다.
   
오분자기속에 오분자기(Sulculus diversicolor aquatilis)와 마대오분자기(Sulculus diversicolor diversicolor)의 두 종이 있다. 패각은 주로 붉은색을 띠는 갈색으로 초록빛 띠가 있다.
 
패각에 출수공이 7개로 전복보다 많아 이것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같은 크기라도 전복보다 육질 부분이 더 두껍다.
 
수공이 관 모양으로 돌출하지 않다. 최대 각장 8센티미터까지 자라는데, 다 자란 크기가 손가락 길이를 넘지 않지만 전복은 손바닥만 한 것까지 있어 전복 새끼라고 하는 사람이 생겼다.
 
4미터 이내 얕은 수심에서 사는 남방종이다. 7∼10월에 산란하는데, 한번 산란할 때 190만개의 알을 낳는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큰 자갈 아래에 붙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밤에 바위 표면으로 기어다니며 해조류를 먹는 초식동물이다.
 
ab15.jpg» 마대오분자기(왼쪽)과 오분자기(오른쪽). 사진=원승환 박사      

바다 소리 들리는 소라
ab16.jpg» 오를 땐 기고 내려올 땐 구르는 소라.

전복과 함께 제주에서 많이 생산되고 많이 이용되는 소라는 전복과 모양은 많이 달라도  같은 연체동물문 복족강 원시복족목에 속하니 분류학상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과 수준에서 달라져서 소라과로 분류되어 나뉜다. 

ab17.jpg» 감태의 구조(위)와 야간에 감태를 먹기 위해 활동하는 소라. 사진=한은규 연구원
수건을 둘둘 감아 틀어올린 듯한 터번을 닮았다 해서 영어로는 터번쉘(Turban shell)이라 부르는 소라(Turbo (Batilus) cornutus)는 나층이 7층로 각고 10센티미터까지 자란다. 또한 소라에는 패각에 가시형 돌기가 있어 큰 특징이다.
 
그런데 가시돌기가 있는 개체와 없는 개체가 있지만, 가시 유무의 변이 요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잠수를 잘하는 동료의 말에 의하면 소라가 바위 위로 오를 때는 기어올라가고 내려올 땐 떼구르르 굴러 내려오는 행동을 관찰하였다고 하는데, 혹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늙은 소라의 경우 돌출된 돌기가 마모되지 않았는가 추측할 뿐이다.
 
주로 제주와 남동해 조간대에서 수심 20미터 바위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조류는 뿌리, 줄기, 잎으로 구분되는 육상식물과 다른 구조를 가진다. 뿌리처럼 보이는 부착기, 줄기처럼 보이는 경부 또는 자루 그리고 잎처럼 넓은 엽상부로 나뉘는데, 이 모두를 엽상체라 하며 어디서나 광합성이 이루어진다.
 
소라라는 놈이 맛을 알아서 감태의 부착기와 경부는 단단해서 먹기 힘들고 그래도 연한 엽상부를 좋아하는데, 자루를 타고 올라가기가 만만하지가 않다. 생각해낸 것이 먼저 자루를 갈아 쓰러뜨린다.
 
그 다음에 엽상부를 택해 먹어치운다. 참 머리 좋은 놈이다. 그런데 감태가 순순히 당할 것인가. 감태의 경부가 잘려나가면 이곳에서 무슨 물질을 내보낸다.
 
이를 신호로 주변에 있는 동족인 감태들이 엽상체 표면에 쓴맛을 많이 내서 소라의 공격을 막는다고 한다. 근거 있는 이야기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충분이 일리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자연에는 먹고 먹히는 관계와 반대로 피하고 물리치는 대처방안이 함께 공존한다.
 
ab18.jpg» 감태의 구조(위)와 야간에 감태를 먹기 위해 활동하는 소라. 사진=한은규 연구원 
 
소라 하면 하얀 백사장에 뒹구는 소라 껍데기를 주워 귓가에 대면 파도소리가 들린다는 영화 같은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장면 또한 자원이 풍부하게 많을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흔할 땐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지만, 이젠 눈 부릅뜨고 찾아봐도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자원이 감소하니 소라자원을 회복시킬 방안이 마련되고 수산자원관리 정책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획량을 할당제로 관리하는 총허용어획량(Total Allowable Catch, TAC) 제도가 있는데, 소라가 그 최초의 대상종이다.
   
 
해녀가 물질하다가 호흡하러 올라와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이를 ‘숨비 소리’라 한다. 바다에서 소라는 거의 대부분을 해녀들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나잠어업으로 잡아온다.
 
한 해녀의 말을 빌리면 소라는 미역이나 감태, 모자반 등의 갈조류가 무성한 해역에 바위틈 구멍에서 잘 잡힌다고 한다. 특히 조간대 아래에서 5미터 수심까지는 성게류와 함께 작은 크기의 소라가 살고 10미터보다 더 깊어질수록 큰 소라가 산다고 하는데, 나는 눈 부릅뜨고 봐도 보이지 않더라.
 
ab19.jpg» 해녀들이 물질해서 잡아들인 소라. 사진=고혜웅 수산자원조사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제주지사 수산자원조사원들은 전복 어획량을 모니터링하고 어획 금어기과 금지 체장 등을 해녀들에게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조사원들이 전복 자원을 유지시키고 회복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전복 어획량 변동을 보면, TAC제도가 적용되기 시작한 2001년에는 2000톤 정도 할당하여 어획을 하게 하였던 것이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약간 감소하여 1500톤 내외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해조류가 녹아내리고 무절석회조류가 바위를 덮어버리는 갯녹음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서식환경이 변화면서 어획량과 달리 자원량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자원회복에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ab20.jpg» 제주 소라 총허용어획량 연 변동. 자료=김민주 수산자원조사원

금지 체장은 전국적으로 각고 5 센티미터(제주도, 울릉도, 독도는 금지 체장이 각고 7센티미터)이며, 금어기는 여수시 삼사면, 제주도는 6월 1일∼8월 31일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는 6월 1일∼9월 30일이다. 실제도 어업인들 역시 자원회복을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이러한 금지사항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인 규율을 마련하기도 한다.
 
ab21.jpg» 어획된 소라의 금지체장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고혜웅 수산자원조사원 

소라와 전복의 씹는 느낌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 소라의 식감이 더 쫄깃하다.
 
특히, 삶으면 오히려 더 쫄깃해져서 날 것보다 삶아 먹는 것을 현지인들은 선호한다. 소라 껍데기 안쪽에 들어 있는 속살을 뽑아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현지인들은 소라 뚜껑 안쪽으로 젓가락을 쑤셔넣고 돌려가면서 쉽게 빼내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삶은 소라 껍데기 안에 고여 있는 국물은 절대 버리지 말고 마셔야 한다는 것을 팁으로 알려준다.
 
ab22.jpg» 삶은 소라와 흑돼지 구이의 만남
 
소라라 부르는 소라 아닌 조개
 
서해에는 소라하고 비슷한 조개가 하나 있는데, 피뿔고둥(Rapana venosa venosa)이 그것이다.
 
나층은 5층이고 최대 각고 15센티미터이며, 서해 조간대에서 수심 10∼20미터 바위지역에 서식하며 5∼6월에 산란한다.
 
사는 해역만 다르지 언뜻 보면 제주 소라와 비슷하여 착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 이 지역 사람들은 피뿔고둥을 소라라고 부른다.
 
그런데 분류체계를 보면 피뿔고둥은 연체동물문 복족강 신복족목 뿔소라과에 속하는데, 피뿔고둥이 오히려 형태가 아주 다른 전복보다 모양새가 비슷한 소라와 분류체계상 유연관계가 더 멀다. 해산물에도 생김새는 다르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유만으로 더 가까운 지연관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ab23.jpg» 서해에 주로 서식하는 피뿔고둥 

남해에서도 잡히는 갈색띠매물고둥(Neptunea (Barbitonia) cumingi)은 피뿔고둥과 아주 비슷하지만 나층이 7층으로 더 길고 체층 입구의 수관구가 길어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태를 보이며, 껍질은 황백색 바탕에 굵고 가는 갈색 띠가 나타나 있어 점선 무늬의 피뿔고둥과 확연히 구별된다.
 
각고가 46센티미터로 큰 편이며 전국 어디에나 분포한다. 남해바다 여수 돌산 군내항에서 FnC 수산물 유통사업을 하는 오일 대표는 갈색띠매물고둥 침샘을 제거하지 않고 먹을 경우 체질에 따라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를 전해준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다.
 
ab24.jpg» 남해바다 여수 돌산 앞바다에서 어획된 갈색띠매물고둥. 사진=오일 FnC 대표
 
글·사진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북,“결심 확고히 섰고 한반도 극적변화 있을 것”


“미국 심사숙고 뒤 긍정적 반응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1/16 [07: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미국에 대한 중대 제안 통고가 관철 되면 한반도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혀 주목 된다.

미국의소리방송은 16일 단독 보도를 통해 조선의 한 관리의 말을 전하면서 “(조선의 중대 제안을미국이 심사숙고한 뒤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의 괸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일시 중지하겠다는 북의 제안은 핵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측은 북의 제안에 대해 네 차례에 걸쳐 `암묵적 위협이라며 일축하며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핵시험을 강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측은 지난 15일 이번 제안이 4차 핵실험을 위한 명분쌓기라는 추측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한다는 우선순위를 실천하기 위한 목적이지 핵시험을 위한 사전 수순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 측 인사는 조선당국은 한반도 긴장을 바라지 않는다며 미국이 심사숙고한 뒤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10일 북의 제안은 40년 간 연례적으로 실시돼 온 방어 목적의 한.미 군사훈련과 유엔이 금지한 핵실험을 연계하는 암묵적인 위협이라고 밝혔다.

이 관리는 유엔주재 조선대표부의 안명훈 차석대사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제안이 실행된다면 올해 한반도에서 많은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가능한 일이 뭔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다만 결심은 확고히 섰고만약 조선의 요구가 관철되면 한반도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리는 지난 13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대북 제재 강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데 대해, “미국이 일부러 조선의 추가 핵시험을 유도해 정세를 악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조선 관리는 유엔주재 조선 표부 장일훈 차석대사가 18일부터 이틀 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 간 `반관반민’ 접촉을 위해 14일 출국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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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잠수함전 전문가 안수명 박사 인터뷰

재미 과학자이자 대 잠수함전 전문가 안수명 박사 인터뷰

강태호 2015. 01. 15
조회수 35 추천수 0
 안수명박사와 부인.jpg
샌디에고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있는 안수명 박사

“내가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으면 내가 내 자신을 싫어할 것이다.”
 재미 과학자  안수명 박사(72)는 지난 2011년 이렇게 다짐했다. 그는 대잠수함 전에 관한한 미국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손에 꼽는 전문가다.  왜 그런 다짐을 했는지를 설명할 때 안 박사는 늘 당시 있었던 이런 에피소드를 얘기한다.
 “나는 같이 일하던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엔지니어들과 토론을 했다. 2011년 초이다.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의 천안함 보고서가 진실을 말하는가? 모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합조단 보고서는 비과학적이고 비양심적

  이때부터 그는 천안함과 관련한 모든 것 (관련 인물, 발표자료, 발언, 언론 기사, 논문 등) 에 매달렸다. 만나고 조사하고  읽고 묻고 따져본 뒤 그는 이런 판단을 내렸다.  합조단의 보고서는 ‘ 비과학적이고 비양심적’이다. 그리고 그런 의문과 판단을 <북한 잠수함이 남한 천안함을 침몰시켰는가?>라는 글에 담았다(소책자 및 전자책 형태로 2012년 2월 출간. 전자책은 당시 www.ahnpub.com을 통해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함).
 안 박사가 이번에 그의 표현을 빗대 말하면 ‘한국 정부와 합조단 등이 싫어할 큰 일’을 저질렀다. 지난 3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과 소송 끝에 미 정보공개법에 따라 확보한  2천여쪽의 천안함 관련 자료와 본인이 쓴 100쪽에 이르는 <천안함의 거짓과 진실>이라는 글을 공개한다. 1월 16일(미국 시각 15일) 안 박사가 설립한 안텍 회사의 누리집(www.ahntech.com)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단 돈을 내야 한다. 한달에 1만5천원 정도인데 안 박사 말로는 미 해군에 준 자료제공 비용만 100만원이 넘었으며 3년여 기간 소송 등 변호사 비용을 따지면 1백만달러(10억) 이상의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유료화는 최소한의 예의인셈인데 안 박사는 정색하며 “이걸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민중의 소리> 등이 지난해 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안 박사가 입수한 미군쪽 자료에 근거해서였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1차 자료들인 셈이다. 
 
 또 본래 <천안함의 거짓과 진실>에는  안 박사 스스로 살아온 삶을 실었으나 별도의 글로 나눠 구분했다. 그 가운데는 서울공대를 다니던 60년대 초반 학보지 불암산의 편집인으로 5.16과 박정희 소장을 폄하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간 얘기들, 부모님이 여호와의 증인이었고 그 때문에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가게 된 사연, 그리고 미 유학시절의 뜨거운 연애 등 범상치 않은 그의 70여년 인생 역정을 볼 수 있다.
  안 박사가 합조단 보고서를 비과학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매우 많다. 그 가운데 핵심은 합조단 보고서가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근거와 논증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학사), 애틀란타의 조지아텍에서 석사,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전기컴퓨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에는 군수항공기업 록히드-조지아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1977년엔 잠수함과 전투 시스템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군수 산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에 입사해 최초로 잠수함에서 발사한 ‘토머호크’ 크루즈미사일의 유도항법장치 분야를 맡았다. 순항미사일 유도법과 항법의 이론 정립과 그 이론을 실전에 응용한 공헌을 인정받아  미 전기전자학회(IEEE)와 미항공우주학회(AIAA)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인으로 두 학회 모두 정회원이 된 건 그가 처음이다.

 수중에서의 잠수함 어뢰의 탐지 추적 유도 항해

무엇보다도 안 박사가 1984년 창업한 안텍이라는 국방관련 중소기업은 미 국방부와의 계약을 통해 1급 비밀로 분류된 대잠수함전에 관한 1천여건의 기술적 논문 등의 보고서와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그 자신이 수십년 동안 연구해 오고 맡았던 미 해군의 프로젝트는 수중에서 직면하게 되는 잠수함(어뢰)의 탐지 추적 유도 항해에 따른 문제들이었다. 수중에서의 잠수함 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듯이 어뢰 역시 수중에서 천안함이 내는 음향을 탐지 처리해 추적해 침몰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서해와 같은 얕은 바다, 해류가 빠르고 온갖 음향의 메아리 반향등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가 자신의 프로펠러가 내는 소리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모선을 공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합조단의 ’전문가’들은 보고서에서 이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다는 것이다.안 박사는 특히 미 전문가들을 이끌고 조사에 참여한 “미 해군의 토머스 에클스 제독이 잠수함이나, 어뢰의 탐지, 추적, 유도법, 항법의 경험이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안 박사는 윤덕용 단장도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윤덕용 단장은 2010년 5월 2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사과정이 성공적 일 수 있었던 건 과학적인 접근방식보다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로 끈질기게 증거(1번 어뢰의 추진부 등 부품)를 찾은 결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결정적 증거물(Smoking gun)인 1번어뢰 설계도를 본적도 없고 모른다고 했다.”
 그럼 왜 비양심적인가?이처럼 어떤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며  증오심을 일으키는 확정적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 하버드대 재료공학 박사로 합조단의 공동단장인 윤덕용 전 카이스트 원장은 과학자적 양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또 이렇게 말한다  “흡착물질에 대한 합조단 조사결과에 이견을 제시한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박사 등을 빨갱이로 몰고, 합조단의 백색 흡착물질 분석의 오류를 지적한 역시 재미과학자  김광섭 박사(화공학)의 이견조차 묵살했다.” 비양심적인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광섭 박사는 미 퍼듀대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받은 뒤 다국적 석유기업 엑손 등에서 금속표면 산화물질, 알루미늄 분말입자의 화학적 물리적 성질을 연구하는 등 어뢰의 알루미늄 폭약 관련해서는 보기 드문 전문가다.
 그러자 미국의 한 엔지니어가 물었다. “합조단이 과학적인 증거없이 같은 동족(북한)에게 증오를 일으키고 있다고 네가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안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내가 하려는 게 그거야.”
에클스 제독의 보고서.jpg
  에클스 제독이 작성한 보고서



미 정보공개법과 2000쪽의 천안함 정보

 그는 미 정보공개법의 유용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30여년을 이끌어 온 안텍은 자주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미국 정부에 정보를 요구해 왔다. 특히 경쟁 회사가 미 정부와 맺은 계약의 재정 상태를 알려고 할 때 그렇게 했다. “정보공개법에는 내가 왜 그러한 정보를 요구하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정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려면, 왜  그런가를 나에게 설명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법이 훌륭하다고 해도 현실은 달랐다. 안 박사가 2011년 6월 미 해군당국에 공개를 요청한 문건은  에클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 조사팀의 활동을 거의 망라한다. 이에 대해 미 해군의 담당 부서는 1년이 지난 2012년 5월 초에 처음으로 에클스 제독이 작성한 보고서(Loss of ROKS CHEONAN 27.May.2010)를, 그리고 6월11일에는  합조단 내의 미국주도 다국적정보지원팀이 작성한 보고서(ROKS CHEONAN SINKING OVERVIEW BRIEF 30. Jul. 2010) 등 30여 쪽의 자료만을 줬다. 그리고는 나 몰라였다.  하지만 안 박사가 보기에 이 30여쪽의 자료는 생각할수도 없었던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합조단의 결정적 증거물(Smoking Gun Evidence) 을  에클스 제독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는 천안함이 2010년 3월24일 에 침몰된 것으로 쓰고 있다. (천안함은 2010년 3월26일에 침몰됐다). 또 합조단에 참여한 인원은 73명인데도 72명이라고 한다.  합조단 보고서는  천안함의 침몰 지점을 밝히고 있으나. 에클스 제독은 그 침몰장소를 밝히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클스 제독은 기뢰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고 따라서 북한이 천안함의 침몰에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에클스 제독 보고서의 이런 잘못된 점들과 차이점은 안 박사가 그 뒤 소송까지 제기하며 모든 자료를 요구한 이유가 됐다. 그렇다면 “에클스 제독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고 단정한 합조단의 보고서에 서명한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고 안 박사는 실제로 에클스를 만나려 했으나 거부됐다.
 다국적 정보지원팀의 보고서도 중요하다. 이 보고서는  “북 잠수정이 그날밤 무엇을 봤나”라는 소제목 아래 천안함의 항해 불빛이 있었으며, 호위함 크기의 배(구축함 불빛)는 약 4km까지 볼 수 있고, 가시거리는 2.5NM(해리)로 이는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가시권(Visually)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사고 당시)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이 되기 직전에 북한의 연어급잠수정(YONO)이 천안함에서 나온 불빛을 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당시 백령도 서방에서 초소근무(해병대 상병)를 했던 박일석씨는 한 인터뷰에서 “사고가 나기 전까지 초소에선 해무가 끼어서 천안함의 정확한 위치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시정이 안좋았다. 당시 시정은 10m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천안함을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로 결론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다국적연합정보분석팀이다. 합조단 보고서엔  “북한군이 로미오급 잠수함( 급) 20여척, 상어급 잠수함(300t급), 40여척과 연어급(130t급)을 포함한 소형 잠수정 10척 등 총 70여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며 “천안함이 받은 피해와 동일한 규모의 충격을 줄 수 있는 총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직주어뢰, 음향 및 항적유도어뢰 등 다양한 성능의 어뢰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다국적 연합정보분석팀의 정보에 따른 결과라고 전했다.  이 팀의 분석은 실제 상황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정보에 의한 것이다. 어찌 보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은 이들 정보에 의한 것이었다.

다국적.jpg
 미국주도 다국적정보지원팀이 작성한 보고서

 그러기에 안 박사는 에클스가 주고 받은 이 메일등 모든 다른 관련 자료를 보고자 했다.“이 과정에서 겪었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는 길고 길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두번의 공식 이의제기가 있었고  소송을 통해 판사가 미 해군 당국을 질책하자 미 해군은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보내왔다. 미 해군 내부에서도  서로 다르게 얘기를 했다. 한쪽은 에클스 제독의 이메일에 내가 요구하는 정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내가 요구하는 정보가 존재하는지 존재 안하는지조차 이야기 할 수가 없다고 했다.”안 박사는 미 법원에 자료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내 나이 70이요. 미해군이 내가 죽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아니 당연하게도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법원은 미 해군에게 2014년 8월 15일까지 안 박사의 요청에  답할것을 명령했다. 만일 이 명령을 어기면 안 박사의 요구 전부를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미 해군은 약 3000 쪽의 정보를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안 박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둘러댔다. “내가 돈(1백30만원)을 안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법적으로 내가 미리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바로 돈을 보냈다. 이번엔 또  안받았다고  하더니 두달후에야 미안하다며 받은 사실을 통지해왔다. 그리고는 궁지에 몰리자  2013년 11월 30일에 보내겠다고 했다.  8개월이 지난 2014년 7월에도 소식이 없었다. 다시 재촉하자 공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법원이 요구한 시한에서 한달여 지난 2014년 9월 중순에 안 박사는 드디어 미 해군으로부터 에클스 제독의 이 메일등 2천쪽에 이르는 천안함 관련 자료를 담은 CD와 문건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2013년 9월초 그는 인천공항에서 기피인물로 분류돼 입국이 거부됐다. 게다가 샌디애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미 정보관련 기관원들에게 몇시간 동안 구금당한채 휴대전화, 서류,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당했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와 협조요청에 따른 것으로 본다”는 게 안 박사의 얘기다. 이명박 정부 때만해도 그는 자유롭게 한국을 오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방문에서 입국이 거부된 것이다.  그 뒤 안텍은 미국 정부와의 계약도 못하게 됐다. 안 박사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단 대표에서 사퇴하고 안텍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했다.  안 박사와 부인은  미국 비밀 취급 권한도 박탈당했으나 올 들어 이는 회복됐다. 아마 그가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걸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많은 우리 민족을 위하여 70살 넘은 내가 당연히 치루어야 하는 댓가라고 생각한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가상드라마] ‘청와대 신년기자회견 폭파사건’


세상살이에 찌들고 힘 빠진 국민 여러분께 작은 즐거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정운현 | 2015-01-15 21:03:36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알림] 이 내용은 가상 상황을 전제로 엮은 허구입니다. 그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은 이래저래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질문 하나를 못한, 기자혼이 빠진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만 가중시켰습니다. 이에 가상 상황을 통해 ‘국민기자’가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을 향해 송곳 질문을 던져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상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살이에 찌들고 그래서 힘 빠진 국민 여러분께 작은 즐거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그런 취지로 쓴 것임을 밝혀둡니다… 필자 주
1. 오전 9시 정각, 청와대 기자회견장을 들어서면서 김 차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년가도 한 두 번 볼까 말까 한 청와대 수석들이 여럿이 나와서 기자들을 맞고 있었다. 입구에 서 있던 K수석도 아는 체를 하며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세종일보 김 차장이시죠?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중동일보 정치부 박 차장은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새벽 2시까지 같이 술을 마셨는데도 쌩쌩해보였다.
“잘 들어갔어?”
“예, 김 선배는요?”
“응...”
선 자리에서 기자회견장을 한 바퀴 휘익 들러본 후 김 차장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치부 카톡방에 부장이 보낸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김 차장, 오늘 잘 해야 돼? 전국 생중계야. 회장님도 아마 보실 거야. 알았지?”
‘잘 하긴 뭘 잘해!’
꼭 이럴 때만 생색내려는 정치부장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다.
‘어제 술이 너무 과했나?’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동일통신 유 차장이 어디서 ‘쩐’이 생겼는지 3차까지 술을 샀다. 북창동 3차는 술값이 수월찮게 많이 나왔을 것 같았다. 오늘 질문하기로 돼 있는 기자들 절반에다 홍보수석실 비서관도 둘이나 참석했으니 근 열 명이나 됐다.
변기에 앉았으나 막상 나오는 건 없었다. 아침에 마누라가 죽을 끓여줬으니 그게 바로 나올 리도 없고.
변기에 앉은 채로 오른 쪽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치부 카톡방 밑에 아들 정민이가 보낸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아빠, 친구들이 그러는데 기자들을 ‘기래기’라고 부른대. 그거 조은 말 아니지? 울아빠는 나뿐 사람 아니지? 아빠 사랑해 안뇽~~'
술이 확 깨는 듯 했다.
어제 출입기자들 술자리 모임에서도 나왔던 얘기였다.
도발자는 10년차 광장일보 성 기자였다.
“선배, 내일 기자회견 때 좀 제대로 합시다. 기레기 소리 쪽팔리지도 않아요?”
김 차장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은 편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던 출입기자단 간사 유 차장이 대신 나섰다.
“야, 내일 잔칫날 무슨 사고 칠 일 있냐?”
“그게 왜 사곱니까? 유 선배는 그게 사고라고 생각해요?
성 기자가 열을 올리며 대들고 나섰다.
유 차장 옆에 앉았던 제일방송 이 차장이 거들고 나섰다.
“야, 그게 그런다고 고쳐지냐? 그리고 그 소리 너만 듣냐?”
“기레기 소리 듣기 싫으면 세월호 얘기도 물어봐야할 것 아닙니까?”
“세월호 뭐 더 물어볼 건데?”
“질문꺼리가 어디 한둘입니까?”
“그러지 말고 궁금한 걸 콕 찍어서 말해봐!”
“박근혜 7시간 행적요!”
“난 그런 거 별로 안 궁금해!”
“아니, 선배는 기자로서 어찌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그건 관점의 차이야!”
간사 유 차장이 두 사람의 대화를 막고 마섰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만합시다!”
성 기자는 담뱃불을 붙여 휑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순간 정적이 감돌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유 차장이 일어나서 술잔을 돌리면서 분위기는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 오전 10시 정각,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사회자가 “다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말이 떨어지자 김 차장도 자리에 앉았다.
이어 곧바로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시작됐다.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중반에 다다를 쯤부터 김 차장은 자장가로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지고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7, 8명의 질문이 끝날 부터는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문화경제신문 정 기자의 질문 차례가 됐다.
정 기자가 일어서자 대통령 얼굴이 가려졌다.
김 차장은 그 몇 십초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상체만 세우고 있을 뿐, 거의 비몽사몽간이었다.
이를 알아 챈 옆에 앉은 광화신문 최 차장이 툭! 쳤다.
그리고는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차장! 다음다음이야!”
“으, 으응...”
“다음다음 차례라고!”
겨우 정신이 좀 들었으나 여전히 졸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김 차장은 열두 번째 질문자였다.
질문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과 탕평인사를 건의하는 내용이었다.
어제 출입기자 모임에서 합의한 내용이었다.
간사 말로는 사전에 질문 요지를 홍보수석실에 건넨다고 했다.
12호 활자로 프린터 한 질문지는 김 차장 양복 왼쪽 호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열한 번째 질문이 끝났고 대통령이 답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은 답변 도중 간간이 웃으면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왼손잡이인 김 차장은 자연스럽게 양복 오른쪽 호주머니로 손이 갔다.
네 번 접은 A4 용지가 손에 잡혔다.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받았다.
“자, 다음 질문할 기자 질문해 부십시오!”
옆에 앉은 광화일보 최 차장이 이번엔 제법 세게 어깨로 툭! 쳤다.
엉겁결에, 그리고 반은 반사적으로 김 차장이 손을 들었다.
“광화일보 김문식 차장 질문해주십시오!”
김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행자가 마이크를 가져다주었다.
마이크를 손에 들고서 대통령을 힐끗 쳐다보았다.
3. 취임 첫해 여름,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 때 한번 본 것 말고는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김 차장을 아는 체 하는 눈치였다.
오른손에 마이크를 든 김 차장은 왼손으로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질문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주섬주섬 질문지를 폈다.
전날 사무실에서 메모했던 것이었다.
메모를 보는 순간 문득 어젯밤 제일방송 이 차장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건 관점의 차이야!’
김 차장은 메모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오늘 신년기자회견을 열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 차장은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을 힐끗 쳐다보았다.
대통령과 눈이 마주쳤는데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 해 보였다.
“전 국민이 지금 이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님께서는 알고 계신지요?”
그리고는 김 차장은 다시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아까보다는 얼굴이 좀 굳은 듯 했다.
그 때 왼쪽 옆에 앉은 광화신문 최 차장이 그를 툭 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김 차장, 뭐야? 지금 뭔 소리야?”
최 차장 얘기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이런 자리를 빌려 대통령님께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김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짜증난다는 투로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서론 말고 본론을 질문해주세요!”“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얘긴데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기자회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쪽 옆에 낮아있던 서울타임스 강 차장이 김 차장을 툭툭 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 차장, 그거 아니잖아!”
마침내 주변이 웅성웅성 거리는 눈치였다.
전면 좌측에 앉은 홍보수석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안절부절 하는 눈치였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예, 질문하세요, 세월호 참사는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유가족 보상과 제반 후속조치를 강구중에 있습니다. 답변이 됐습니까?”
“제 질문은 그게 아니구요... 당일 대통령님의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불문명한데요, 그에 대해 이 자리에서 명쾌히...”
김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야이 개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성질 급하기로 익히 소문난 A 수석이었다.
당장이라도 튀어와 김 차장 멱살이라도 잡을 듯 했지만 대통령 앞이라 감히 그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A 수석에 이어 비슷한 톤의 목소리가 다시 찢어졌다.
“중계 마이크 꺼! 얼른 꺼!”
A 수석실 B 비서관의 목소리였다.
채 마이크가 꺼지기도 전에 이번엔 장관들 자리에서 말이 터져 나왔다.
“각하! 그만 중단하시지요! 이런 식의 기자회견은 할 필요 없습니다!”
C 장관은 ‘친박’의 중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른 장관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 중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 친구 술 덜 깼나? 왜 저래?”
그 때 대통령 비서실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상황을 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경거망동을 삼가주세요.”
말을 마친 비서실장은 좌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메시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한번 천천히 끄덕였다.
대통령 더러 계속해서 진행하시라는 신호였다.
비서실장과 눈이 마주친 대통령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대통령은 단상 위에 놓인 마이크 둘을 양손으로 잡았다가 놨다.
“그거... 사전에 준비된 질문은 아니지요?”
대통령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자리에서는 사전에 약속된 질문만 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 때 즉석질문도 받는다는 얘기 들으신 적 있으시죠?”
“예, 들은 적은...”
이 때 홍보수석이 사회자 마이크를 뺏어 들고 발언에 나섰다.
“김 차장, 오늘은 대통령님께서 일년에 한번 하시는 신년기자회견입니다.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께서 일년에 딱 한번 하시는 기자회견 자리니 하는 얘깁니다. 일년에 너댓 번이라도 하면 말도 안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국민들을 대신해 물어보는 것이 기자의 도리 아닙니까? 이게 대통령님께 무슨 큰 실례라도 된다는 얘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홍보수석이 말을 더듬거리자 대통령이 나섰다.
“홍보수석은 가만히 계시구요, 다른 분들도 이제 나서지 마세요. 제가 답변 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소란스런 장내가 일거에 정리됐다.
4. 대화는 김 차장과 대통령의 일문일답으로 전환됐다.
“대통령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 감사드립니다.”
“... ”
“이제 대통령님 이외에 다른 분들은 좀 잠자코 계세요”
마치 호가호위라도 하듯 김 차장은 분위기를 확인사살하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님께서는 7시간, 정확히는 8시간가량의 행적이 불명확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기 앉아 계시는 비서실장님조차도 그 내용을 잘 모르신다고 국회에서 답변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시간동안 대체 어디서 뭘 하신 겁니까?”
말을 마친 김 차장은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연달아 쳐다보았다.
잠시 답변을 주저하던 대통령이 망을 시작했다.
“세월호 사고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저는 자식은 없습니다만,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그런 식의 유체이탈화법으로 말씀하지 마시구요, 7시간 동안 어디서 누구와 뭘 하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그 시각에도 국정을 보고 있었으며 수시로 사고 상황을 보고 받았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나라걱정만 하다가 잠이 듭니다.”
김 차장이 짜증난다는 투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문답에 끼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꾸 저더러 같은 질문을 드리게 만들지 마시구요, 대체 그 시각에 어디에 누구랑 계셨습니까? 그 시각에 청와대 안에 계셨던 것은 분명합니까?”
“그 시각이면 근무시간인데 제가 청와대에 있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왜 자꾸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 예! 대통령님께서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항간에는 그 시각에 정윤회 씨랑 모처에 함께 있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데 그런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닙니까? 윤회 씨 행적은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잖아요!”
대통령의 말꼬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그건 검찰 얘기구요!”
“검찰을 안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믿으시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검찰 안 믿습니다.”
“... ”
“좌우간 그건 분명히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거 참...”
대통령은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기가 차다는 식이었다.
“알겠습니다. 만약 나중에라도 대통령님께서 오늘 허위 답변을 하신 게 밝혀질 경우 책임지실 수 있으신지요?”
“그럴 일 없습니다.”
“그리 말씀하시 마시고 이 자리에서 명확히 답변해 주십시오. 만약 허위답변을 하신 사실이 밝혀질 경우 직을 걸고 책임지시겠습니까?”
“마치 저를 심문이라도 하듯이 말씀하시는데요...”
“예, 심문 맞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이 하면 심문이나 취조고 기자나 국회의원이 하면 질문이고 질읩니다. 아직도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해 명쾌히 답변하지 않으셨는데, 자리를 걸고 책임지시겠습니까?”
답변을 머뭇머뭇하던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비서실장을 힐끗 한번 처다 보았다.
순간 대통령과 눈이 마주친 비서실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지겠다고 말하라는 메시지였다.
“알았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제 답변은 다 된 거죠?”
그리고는 대통령은 단상 위에 놓인 메모지를 챙겼다.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올 태세였다.
그러자 김 차장이 얼른 말을 꺼냈다.
“오늘 대통령님께서 국민들이 궁금해 하시는 의혹을 이처럼 속 시원히 답변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이왕 시간을 내주셨으니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김 차장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 때 홍보수석이 다시 마이크를 들고 나섰다.
“김 차장님, 대통령님께서 다음 일정이 있으셔서 기자회견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또 이런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왕 칼을 뽑았으니 여기서 그칠 김 차장이 아니었다.
“수석님, 그런 애기를 여기서 또 하십니까? 저희 출입기자단이 대통령님을 한번 뵙고 국정에 대해 말씀을 들을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드려도 집권 3년차가 되도록 몇 번 그런 자리 마련했습니까? 여기 출입기자들과 국민 여러분, 그리고 대통령님 앞에 무릎 꿇고 사죄부터 드리세요. 청와대 참모진이나 저기 계신 장관들이 다 이런 식이니까 오늘날 상황이 이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홍보수석은 물론 그 누구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5.
결국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오른쪽 입 꼬리가 가끔씩 올라가는 게 어디 나랑 한번 붙어보겠느냐는 자세였다.
“청와대 참모진이나 장관님들은 저를 잘 보좌해주고 계십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하시면서 그런 것도 모르세요?”
“청와대 사람이나 장관을 만나라도 봐야 그런 것을 알지요. 혹시 이분들에게 기자들 만나지 말라고 무슨 엄명이라도 내렸습니까?”
“엄명이라니요, 저는 장관들한테는 인사권을 비롯해 부처 업무와 관련해 전부 자율권을 드렸습니다. 그건 분명히 제 책임 아닙니다?”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못한 건 없다고 누차 강조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아까 말씀드리다 만 세월호 건을 한둘만 더 짧게 여쭙겠습니다. 당일 청와대에 계신 것은 분명히 맞다고 대답하셨지요?”
“예, 맞습니다. 당일 그 시각에 청와대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이면 근무시간인데 비서실장께서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고 하신 것은 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비서실장님한테 물어보세요.”
“실장님한테는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구요. 당일 여러 차례 사고 상황을 보고는 받으셨던데요, 전부 서면보고, 유선보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대면보고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셨는지요?”
“아니 요즘 스마트폰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카톡도 있는데 굳이 얼굴을 봐야만 합니까? 장관님들 안 그래요?”
말을 마칠 무렵 대통령은 장관들 쪽으로 고개를 한번 휙 돌렸다.
“편리한 통신수단이 많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면 관계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요?”
“방식이야 어떻든 저는 저 나름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아직도 저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저나 국민들입니다. 항간에는 대통령님께서 그 시각에 무슨 미용수술 같은 것을 받고 계셔서 얼굴을 들고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느냐며 온갖 억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 시각에 청와대에서 그런 수술을 받고 계셨나요?”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닙니까? 그리고 또 대통령은 그런 수술하면 안됩니까? 이래 뵈도 저도 아직은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예요. 남자로서 그런 것도 이해해주지 못합니까? 김 기자 아내는 화장 같은 거 안 합니까?”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열을 내며 말했다.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듯 했다.
김 차장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먼저 사실 확인부터 하나 하고 넘어가야...”
김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말을 가로채고 나왔다.
“또 무슨 확인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까?”
대통령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거렸다. 가끔씩 볼 근육도 움찔움찔 거렸다. 얼굴에 짜증이 난 투가 역력했다.
그래도 김 차장은 지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다시 여쭙습니다만, 당일 청와대에서 혹시 무슨 수술 같은 걸 받으신 건 사실입니까? 아니면 그런 사실 없습니까?”
“그런 것까지 다 말해야 되나요? 대통령이기 이전에 나도 사생활이 있는 한 개인입니다. 그건 답변 안하겠습니다. 누가 무슨 오해를 해도 할 수 없어요!”
“정 그러시다면 지금 그 말씀으로 답변을 가름하겠습니다.”
더 이상 물어봐야 소용없겠다 싶어 이 얘기는 이 정도에서 접기로 했다.
“대통령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신다면 이런 자리를 빌려 고언(苦言)을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만.”
“고언요? 무슨 충고 같은 거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자리니 내 특별히 오늘은 조언(助言) 받아들이겠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난 그날은 참고로 평일이었습니다. 공휴일이나 휴일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의혹이 제기된 ‘7시간’그 시각은 정확히 일과 근무시간입니다. 따라서 대통령님은 그 시각에 대통령직, 즉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고 계셨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아요. 그런데 그게 내가 어쨌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 시각에 국정이 아닌 다른 사적인 일, 혹시 무슨 수술 같은 것을 받으셨다면 그건 직무태만이나 아니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근무시간에는 근무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제 말씀에 동의가 되십니까?”
“설사 그랬다고 쳐도 대통령이 그 정도의 자유도 없나요? 난 동의 못해요.”
“1979년 10.26사태로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대통령님께서 최규하 국무총리의 전화를 받고 “전방은요?” 하고 물으셨다는 데 사실입니까?”
“예, 그런 적이 있습니다.”
“부친이 졸지에 비명에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었던 그런 상황에서도 안보를 염려하신 분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 요즘 전방은 조용하지 않나요?”
“남북 상황은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한 시간 뒤에 북한 장사포가 쏜 포탄이 청와대 앞마당에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7분도 아닌, 무려 7시간동안 행적이 묘연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급한 일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요, 뭐....”
대통령은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세월호 사고 당일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였습니까?”
“김 기자 질문은 바늘로 꼭꼭 찌르듯 하네요.”
“예, 이왕이면 질문은 바늘처럼 날카로워야 맛이지요. 그래야 방송을 보시는 국민들이 속이 시원하지 않겠습니까?”
“질문 받는 제 입장은 하나도 배려 안 해주십니까?”
“대통령님은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십니다. 그런데 제가 뭘 배려해드립니까?”
“혼자 벌써 한 시간 넘게 김 기자한테 닦이고 있잖아요?”
“아니, 대통령님은 본인이 지금 ‘근혜 아줌마’라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무슨 동네 구멍가게 주인인 줄 아십니까?”
김 차장도 열이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내내 참고 있던 비서실장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벌떡 일어났다.
“김 차장, 부탁합니다. 이제 대통령님 좀 그만 놔드리세요. 모두 저희 불찰입니다.”
“좋습니다. 실장님께서 그리 간청하시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질문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비서실장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6.
그제야 김 차장은 정면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통령님, 오늘 제게 이런 질문 기회를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질문 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대통령은 생기가 돋는 듯 했다.
“이제라도 물러나실 생각 없으신지요?”
“....?”
“사퇴하실 생각이 없으시냐구요?”
“왜요?”
“제가 보기엔 도저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잘 하고 있는데 왜 그러세요?”
“지금 잘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지지율이 아무리 빠져도 35% 이상은 나오잖아요?”
“그 지지율이 대통령님 본인 지지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게 제 지지율이 아니고 누구 지지율입니까? 문재인이나 안철수 지지율입니까?”
“부친의 지지율이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아버지 지지율이 바로 제 지지율 아닙니까? 제가 아버지 딸이니까요!”
“그러면 최소한 부친만큼은 하셔야지요?”
“제가 아버지만큼 못하는 게 뭐가 있나요? 아버지 시절에 아버지를 모셨던 분들이나 그 자제들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닮고자 함입니다. 제 오른쪽에 계시는 비서실장님이 바로 그 대표적인 분이구요.”
“결국 끝까지 자진사퇴는 안하시겠다는 거군요?”
“물론이지요? 국민이 절 뽑아주셨고 임기가 있는데 제가 왜 중도에 물러납니까? 탄핵이라도 당한다면 몰라요.”
“탄핵 애기 잘 꺼내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대통령님께서는 이미 두 차례나 탄핵을 받으셨어야 마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생각안하십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요?”
“예, 두 번요”
“그게 뭔데요?”
“우선 첫 번째는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바로 작년 세월호 참사 당일의 7시간의 국정공백 사태입니다.”
“국정원 사건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전 아무것도 관여한 바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국민 사과도 하고 국정원 개혁도 지시했습니다. 제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왜 탄핵을 당해야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자리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선거 승리 덕담 한 마디를 한 것 때문에 탄핵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나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간에서 조직적, 지속적으로 선거에 불법 개입한 것은 평소 대통령님께서 즐겨 말씀하시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국민 사과로 넘어가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무튼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입니다. 이제는 각자 제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나라 경제가 몹시 어렵습니다. 이럴수록 공직자들은 사심 없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건도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고 수습이야 다 끝났지요. 그래서 지금 유가족 배.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까지 와서 대통령님을 한번 뵙기를 청하였는데 왜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셨습니까?”
“안 만나주다니요? 제가 진도까지 내려가서 유가족들 만나지 않았습니까?”
“청와대 앞에서 몇날 며칠을 노숙할 때는 왜 안 만나주셨습니까?”
“그 때야 제가 바쁜 일이 있었겠지요. 대통령이 누가 만나달라면 다 만나야 합니까? 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한 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퇴근 후에는 관저로 결재문서를 갖고 가서 일일이 보느라 더러 날을 새우기도 합니다. 이런 걸 국민들이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청와대 들어온 이후로 눈이 많이 침침해졌을 정돕니다.”
대통령은 장황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말 나온 김에 자기변호를 좀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만, 결국 임기 중에 자진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요, 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제게 주어진 임기를 다 마칠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오늘 장시간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김 차장이 들고 있던 질문지를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으려하자 대통령이 다시 마이크를 쥐더니 물었다.
“김 기자, 저보고 물러나라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TV나 신문 안보십니까?”
“전 TV나 신문에서 그런 얘기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런 얘기 전해주는 사람도 없구요. 혹시 김 기자가 지어낸 얘기 아닙니까?”
“그리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김 차장, 제발 부탁합니다. 이젠 가셔야 합니다.”
비서실장이 거의 애원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김 차장이 최후의 한 마디를 던졌다.
“대통령님, 부디 선친의 전철을 밟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예? 전철요?”
“예! 전절요!”
이 때 비서실장과 수석 몇 사람이 대통령이 서 있는 선 단상으로 향했다.
“각하! 어서 가시지요. 대사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팔을 잡고 반 끌어내리다시피 했다.
대통령은 끌리듯 단상에서 내려와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나머지 참모진과 각료들도 하나둘씩 회견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몇은 회견장을 나가면서 김 차장을 째려보기도 했다.
순식간에 단상 좌우는 썰물처럼 빠져 휑한 분위기가 돼버렸다.
주위의 기자들도 어느 새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7. 김 차장은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김 차장은 바지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치부장한테서 1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었다.
카톡, 문자, 페북 메시지까지 모든 통신수단은 총동원 된 듯 했다.
웬일인지 회장이 보낸 문자도 하나 있었다.
우선 제일 마지막으로 정치부장이 보낸 메시지를 열었다.
“너 이 새끼, 회사 말아먹을 일 있냐? 오늘 회사 들어 오지마! 내일 출근하는 대로 사표 내!”
그제야 김 차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때 막 아내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정민이 아빠! 사랑해요, 당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워요! 여보, 힘내세요!!”
김 차장은 잠시 헷갈렸다.
어느 것이 정확한 현실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기자회견장을 나와 청와대를 빠져 나왔다.
장시간 실내에 있다가 나와서인지 햇살이 눈이 부셔 앞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청와대 건너편 경복궁 담장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 왔다.
그들은 여러 글자로 된 손 팻말을 들고 있었다.
왼쪽부터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국 · 민 · 기 · 자 · 김 · 문 · 식 · 기 · 자 · 님 · ! · 사 · 랑 · 해 · 요 
‘국민기자’? ‘김문식 기자’?
김 차장은 아직 그 이름이 자신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춘추관을 막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김 기자님! 오늘 신년기자회견 질의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저희는 김 기자님을 오늘부터 ‘국민기자’로 부르고 팬 까페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제야 김 차장은 국민기자 김문식이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때 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왼손으로 꽃다발 여럿을 겨우 든 채 전화를 꺼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받기로 했다.
“김문식 차장이요?”
“예, 그렇습니다만.”
“나... 국정원장이오!”
“무슨 일로 제게...”
“저녁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소?”
“글쎄요, 일단 회사에 들어가 봐야 알겠습니다만...”
“회사엔 다 얘기해놨소. 6시까지 차를 보낼 테니 그리 아시오!”
“예...”
전화통화가 끝나자마자 팬들이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팬 카페에 올릴 기념사진 같이 찍어요!”
김 차장은 할 수 없이 ‘팬’들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벌써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일자 정치 해설면 두 면을 자신이 채워야 할 것 같았다.
김 차장은 서둘러 삼청동 입구 삼거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삼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귀사 할 작정이었다.
정면에 내걸린 햇살이 그날따라 따스하게 그의 이마를 내리쬐었다. (끝)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75 

"'폭행 어린이집' 폐쇄?…그래도 안 달라진다!"

"'폭행 어린이집' 폐쇄?…그래도 안 달라진다!"

[해설] 일상적 폭행 방치하는 시스템…무엇이 문제인가?

여정민 기자 2015.01.15 18:22:01


폭행 사건을 일으킨 인천 어린이집을 인천 연수구가 폐쇄할 방침이라고 15일 밝혔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아동 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국회는 아동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을 영구적으로 퇴출하는 내용을 '영유아보육법'에 담겠다며 법률 개정안을 내놓았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합동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든다고 발표했다. 윤종기 인천지방경찰청은 "이번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린이집 폭행이 또 발생할 수 있으니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어린이집 교사의 영유아 폭행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인천에서만, 최근 두 달 사이, 벌써 세 번째다.  

수사기관, 감독기관, 심지어 입법기관까지 총출동해 마치 처음 겪는 일인양 '호들갑'이지만, 한 달 전에도 인천의 다른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를 불과 몇 분 사이에 총 7차례 내동댕이쳤다. 그 교사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은 기각됐고, 해당 어린이집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은 도대체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아동 폭행에 관대한 우리법의 체계, 감독기관과 어린이집의 강력한 유착 관계, 유명무실한 지도점검, 심지어는 문제가 되면 어린이집을 권리금 받고 팔아버린 뒤 다른 곳에서 개원이 가능한 시스템까지, 총체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보육교사가 음식을 남겼다는 이유로 네 살배기 여아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인천시 연수구 해당 어린이집 정문에 사과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보육교사가 음식을 남겼다는 이유로 네 살배기 여아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인천시 연수구 해당 어린이집 정문에 사과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얼굴 말고 머리 때려. 머리카락 있어서 표시 안 나" 

17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이은경 원장이 최근 낸 책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진실>은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관련 기사 보기 : 아이 내동댕이친 어린이집…엄마의 눈물, 언제까지? 

이혼 가정이나 밤에 장사를 하는 가정의 아이들을 24시간 보육하던 어느 어린이집 원장은 교사들이 퇴근하고 나면 3층 원장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한다. 이 원장은 자기 자식부터 저녁을 먹이고, 원장 아이들과 다툼이 일어나면 돌보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막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원장 남편이 돌보는 아이의 뺨을 후려치기도 하는데 그때 원장의 말이 가관이다.  

"머리 때려. 머리카락이 있어서 표시 안 나. 얼굴 때리면 멍들고 자국 남아. 그러면 교사도 눈치채고 애 엄마가 알아챈단 말이야." 

이은경 원장은 "믿기 힘들겠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는 아이를 골방에 가둬놓는 어린이집은 많다고 했다.  

"다용도실 크기만 한 창고일 수도 있고 교사들 자료를 넣어두는 자료실일 수도 있다. 너무 우는 아이를 그곳에 데려다 놓는 곳이다. 일단 교사는 수업을 해야 하니 원장이 우는 아이를 돌본다. 험한 얼굴로 계속 울면 이 방에 혼자 두고 나가겠다고 겁박을 한다. 불을 끄는 시늉도 한다. (…) 잔인한 원장은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데도 버릇을 고친다며 아이 혼자 놔둔 채 방 불을 끄고 문을 잠가버린다. (…)  

아이는 어둡고 무서운 방에서 혼자 울면서 다시는 안 울겠다며 문 열어달라고 애원을 한다. 원장은 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아침마다 올 때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다. 울면 엄마가 간 뒤에 이 방에 혼자 두겠다고 하면 아이는 다시 울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당한 아이들은 체념해버리고 만다. 자신은 울음으로 말을 하지만 엄마는 진실은 모른 채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니, 혼자 있는 컴컴한 방에 가기 싫은 아이는 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면 원장은 아이가 적응을 했다고 말하며 엄마를 안심시킨다."

이은경 원장은 "아이 한 명으로 인해 들어오는 수입이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70만 원에 달하는데 적응을 못한다고 부모에게 보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CCTV 설치 의무화" 검토? 같은 얘기만 수년째 

이런 폭행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영유아 폭행 사건을 처벌하는 우리 법의 기준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네 살 배기 유아의 양 손목을 끈으로 묶어 학대한 혐의를 받은 인천 서구의 모 어린이집 보육교사, 12월 인천 남동구에서 두 살 배기 남자 아이를 머리 높이 들어올렸다가 내팽겨친 보육교사, 모두 구속되지 않았다.  

폭행의 '상습성'을 수사기관이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 교사에 대해서도 경찰은 16일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기각 가능성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피해 아동과 같은 반에 아이들의 부모들은 입을 모아 해당 교사의 폭행이 일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보육시설 내에 폐쇄회로(CCTV) 설치는 현재 의무 사항이 아니다. 전국 어린이집 내 CCTV 설치율은 20% 수준으로 집계된다. 나머지 80%의 어린이집은 폭행 사실을 피해자가 증명할 방법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설치된 곳도 저장기간이 짧다. 여아 폭행이 밝혀진 해당 어린이집도 지난해 12월 19일 이전 CCTV 영상은 남아 있지 않다. 경찰이 저장된 영상만을 분석했지만, 해당 교사가 그 기간 중에 하필 개인 사정으로 장기 휴가를 가는 등의 이유로 해당 교사가 나오는 자료 영상 자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경 원장은 "영유아,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가 들어가면 어떤 부서든 바로 접수해 관할 부처에 넘겨주는 시스템조차 안 되어 있다"고 말한다. 구청이나 시청에 영유아 학대 관련 문의를 하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먼저 상담하라"고 하고, 여성가족부에 문의를 하면 "보육시설 업무는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고 떠넘긴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소수의 사건이 아닌 경우, 결국 피해 아동과 가족만 또 한 번의 상처를 입는 셈이다. 

"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영유아들이다. 어떤 폭력을 당했는지 아이의 진술에만 의존하다 보니 재판을 해도 시간만 끌다가 무혐으로 결과가 나오거나 경미한 처벌만 받는다. 폭력에 시달린 영유아만 '낮잠 자자'라는 소리만 들어도 운다. '너 혼자 방에 있어' 하면 자지러지게 놀라 운다. 심지어는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아이에게 이러한 증상이 생기는데 원장은 무혐의다. 어린이집에서 폭력 행위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오면 부모는 어디다 호소할 곳이 없다." 

이은경 원장은 "어린이집 내 영유아 폭력 및 학대를 잡아낼 방법은 CCTV밖에 없다"며 "각 보육실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뒤늦게 CCTV 설치 의무화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CCTV 설치 의무화 요구는 폭행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검토만 수년째인 셈이다.  

폭행 저질러도 해당 교사는 기소유예…문제 어린이집 원장은 동네 옮겨 다시 원장님!

폭행을 직접 저지른 가해 교사조차 "기소된다 해도 집행유예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팀장, 지난해 12월 23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 직접 폭행을 한 당사자가 아닌 어린이집 원장은 그 처벌 수위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인천 연수구는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 대상이 되자, 해당 어린이집을 폐쇄하고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설폐쇄 가능성은 낮다는 법조계의 전망이 벌써 나온다. 

영유아보호법은 영유아 폭행 사건과 관련해 '삼진아웃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보호법 시행규칙은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가 적발될 경우, 처음에는 운영정지 6개월, 두 번째는 운영정지 1년의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세 번째 같은 어린이집이 적발되어야만 시설 폐쇄가 가능한 것이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 보육교사 여아 폭행 사건과 관련해 15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 인근에서 송도국제도시 입주민연합회 소속 학부모가 사건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인천 송도 어린이집 보육교사 여아 폭행 사건과 관련해 15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 인근에서 송도국제도시 입주민연합회 소속 학부모가 사건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폭행 사실이나 급식 비리 등의 '사고'가 터져 세상에 알려지면 해당 지역에서 더이상 어린이집 운영이 쉽지 않지만, 그 경우에도 권리금을 받고 제3자에게 어린이집을 팔아 넘기고 다른 지역에서 새롭게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이은경 원장은 말한다.  

"3~6개월간 (운영) 정지를 먹는 어린이집도 있다. 그렇지만 구청 서류상으로만 정지 상태고 실제로는 어린이집을 계속 운영한다. 그 기간 동안 교사는 절반만 고용하고, 부모한테는 수익자 부담금만 받아서 운영한다. 담당 공무원이 정지된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한 명도 없는지 확인하는 일은 없다. 또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정기적으로 나와 그 어린이집이 별도로 운영을 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는 50평 아파트를 구해서 그쪽으로 아이들을 다 옮겨놓고 계속 보육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 걸린 원장은 한 명도 없다."

'유명무실'한 지도점검·평가인증제도…국회는 어린이집 처벌 돈으로 때울 법까지 만들어줘

이은경 원장의 이런 증언은 어린이집 주무기관의 지도점검 및 평가인증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드러낸다. 폭행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이 보건복지부로부터 100점 만점의 95점을 받은(2014년 6월) '검증된' 어린이집이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평가인증 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이런 지적 역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셈이다.  

이은경 원장은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자체) 어린이집 담당 공무원이 지도점검을 하는 방식은 똑같다"고 말한다. 그나마 현장에 나오면 원장 사무실에 앉아 "샌드위치 먹고 '고양이 똥 커피'를 마시며 하하 호호 웃으면서" 질문 몇 가지 던지고는 통장, 금전출납부, 지출결의서, 수입결의서 몇 장 들추고 교실 너머 창문으로 들여다본뒤, 돌아가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이다.  

"한겨울에 아이를 옷을 벗겨 어린이집 베란다에 내보낸 장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궈도", "사고사라는 아이의 시신에 매 맞은 흔적이 있어 부모가 애끓는 호소문을 써 인터넷에 올려도",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는 까닭이다.  

"근본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사건이 터지면 축소, 은폐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근본 해결이 안 된다. (…) 보건복지부가 직접 특별지도점검을 나서도 보건복지부 지도점검은 시작만 요란하다. 해당 지역에 특별단속 나간다고 미리 알린다. 그러면 시청(도청)은 해당 어린이집연합회로 전화를 해서는 보건복지부 특별단속이 있을 예정이니 특별단속에 무난히 넘어갈, 지도점검을 받아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한 어린이집 명단을 달라고 한다." 

평가인증도 마찬가지다. "수당 3만 원을 받는 평가인증 요원이 아침 9시에 와서 오후 5시까지 있으면서 평가를 하는 '하루 눈가림 평가인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평가인증만 통과하기 위해 지인 어린이집에서 책도 빌려다 놓고 교구장도 빌려다 놓을" 뿐 아니라, 교사들이 평가인증 준비를 위해 "80가지가 넘는 서류를 작성,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보육이 아니고 방치 상태에 놓이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심지어는 비리로 적발돼 운영정지나 시설폐쇄 처벌을 받은 어린이집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 법이 지난 2013년 국회를 통과했다. "어린이집 운영정지 처분에 갈음해 3000만 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한 영유아보호법의 제45조 2항이다.  

"이 법 덕분에 비양심적인 죄 많은 원장들이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 또 공무원 입장에서는 어떤 어린이집은 정지, 폐쇄 잣대를 들이대고 어떤 어린이집은 과징금으로 대체해주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통제하기 편할까? 어린이집 비리만큼은 절대 돈으로 무마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도, 국회의원들이 이런 법을 만들어 비양심 어린이집 원장들의 조력자가 되고 있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강력한 대응과 엄정한 법적용, 재발방치 대책 마련을 목소리 높여 말하고 있는 이들의 '일상'이 이런데, 사고가 터진 뒤 반짝 수사하는 척 한다고 근본 환경은 달라질 리가 없다. 보다 차분한 고민과 제도개선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