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일 화요일

[우리역사] 20.단재 신채호, 단군조선의 대외 관계사


[우리역사] 20.단재 신채호, 단군조선의 대외 관계사 - 6(三神五帝本紀) 신채호 선생의 상‧고대사에 대한 인식 이용섭 역사연구가 기사입력: 2014/09/03 [01:3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우리역사 이야기 – 20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천재사학자(天才史學者)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신채호(申采浩) 선생(先生)의 상‧고대사에 대한 인식.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대외(對外) 관계사(關係史) - 6(三神五帝本紀) 삼신(三神) ‧ 오제(五帝) 사상(思想) ‧ 신앙(信仰)의 상징(象徵) 장승(將丞)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겨레 특히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흔히 옛날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무섭게 생긴 나무 조각상(彫刻像)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대를 사는 일반인(一般人)들 거의 모두는 장승(將丞)에 대해서 그게 무얼 말하는지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역사(歷史)와 문화(文化)를 연구(硏究)하는 학자(學者)들마저도 장승(將丞)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거나 왜곡(歪曲)해서 알고 있다. 전문가(專門家)들이라고 저마다 나서서 장승(將丞)에 대해 해석(解析)도하고 설명(說明)한다. 또 이들은 장승(將丞)에 대한 전문가적(專門家的) 입장(立場)에서 서적(書籍)도 출간(出刊)하지만 그 대부분의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엮은 책들을 보면 그저 현상적(現象的)이거나 장승(將丞)의 의미(意味)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변만 뱅뱅 맴돈다. 더 나아가서는 장승(將丞)에 대해서 왜곡(歪曲)되거나 전혀 딴 판의 해석(解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승(將丞)에 대해서 위에 열거한 정도만 되어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현 남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으로는 배달겨레 혹은 한민족(韓民族)이라고 자랑스럽게 혹은 당당하게 말을 한다. 아니 단 한 사람도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남쪽에 거주하는 겨레들 중에 상당수가 입으로는 한민족(韓民族)이요, 배달겨레요 하지만 실제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서는 그들이 과연 한민족(韓民族)인지 배달겨레인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즉 현재 서양(西洋)의 기독교(基督敎)를 믿는 이들 중 광신(狂信)에 가까운 믿음을 가진 이들은 그들은 외양(外樣)은 분명 한민족(韓民族)이요 배달겨레이건만 그들의 말과 행동(行動)에 대해서는 그들이 과연 한민족(韓民族) ‧ 배달겨레인지 아니면 그들의 조상들이 ≪이스라엘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인지 도대체 분간(分揀)을 할 수가 없다. 이를 어찌 이해를 하고 해석을 해야 할지 난감함을 느끼는 겨레의 양심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앞선 장들에서 간략히 장승(將丞)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지나갔다. 본 장승(將丞)의 문제 역시 상(上) ‧ 고대(古代)시기 배달겨레와 이민족간의 역사(歷史) ‧ 문화(文化) ‧ 문명(文明) ‧‧‧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인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 장승(將丞)은 우리 조상들의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의해서 탄생을 한 오제사상(五帝思想)을 형상(刑賞)으로 구체화(具體化) 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장승(將丞)이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 우리겨레의 깊고 깊은 사상(思想) ‧ 신앙(信仰)이 과학적(科學的)이고 논리적(論理的)으로 적용(適用)이 된 상징(象徵)임을 모르고 임의적(任意的)으로 아니 일제(日帝) 혹은 19세기 말 서구세력(西歐勢力)들이 자신들의 일방적인 신념(信念) 혹은 신앙관(信仰觀)에 의해 우리의 전통적(傳統的) 신앙(信仰) 혹은 사상(思想)에 대해 미신(迷信)이라고 무지(無知)하게 폄하를 한 왜곡(歪曲)된 개념(槪念)들을 교묘(巧妙)하게 적용(適用)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의 무리들은 우리네 장승(將丞)에 대해 우리의 오래된 신앙(信仰)의 형태(形態)라고 하면서 또 다른 오류(誤謬)를 범하고 있다. 즉 장승(將丞)의 유래(由來)와 그 장승(將丞)이 가지는 신앙(信仰)의 형태(形態)가 과연 어디로부터 나왔는지 모르면서 그저 장승이 북아시아 일대에서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발견(發見)이 되는데 대해서 논(論)하면서 장승이 우리겨레에게서 전파(傳播)되어 간 것이 아니라 북아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전(傳)해져 왔다고 해석(解析)을 한다. 참으로 놀라운 해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이리도 일제(日帝)가 왜곡(歪曲) ‧ 조작(造作)한 식민사학(植民史學)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앵무새처럼 되뇌이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앞선 장(章)들에서도 언급(言及)을 했듯이 장승(將丞)은 곧 우리 조상들이 창조(創造)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을 구체화(具體化)시킨 오제사상(五帝思想)을 형상화(形象化) ‧ 상징화(象徵化)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장승(將丞)에 대해서 얼마나 왜곡되고 무지스럽게 배우고 알아왔는지 하나하나 보도록 하자. 또한 전 장들에서 간략히 언급한 장승에 대해서도 상기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보도록 하자. 전 장들에서 언급한 장승에 대한 내용을 이번 장에서 그대로 옮겨준다. 장승(將丞)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계속 복기를 하면서 각인이 되어야 한다. 1)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의해 탄생된 오제설(五帝說)에 의한 장승(將丞) “이에 하늘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제(五帝)의 사명을 주관하는 바 이를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한다. 지하에 두루 있으면서 오령(五靈)의 이룸을 주관하는 바 이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한다. ” 하늘 아래 있으면서 오제(五帝)의 사명(司命)을 주관하는 것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다. 반면 지하(地下)에 있으면서 오령(五靈)의 이름을 주관하는 것은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하면 그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나무로 된 장승만을 상상할 것이다. 일반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장승이 마을을 수호한다고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신오제론(三神五帝論)에서 보듯이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로 좁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장승은 마을을 수호하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장승은 좀 더 광범위하고 깊고 넓은 의미의 수호신(守護神)으로서의 상징(象徵)을 지니고 있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장승은 마을의 안녕도 지키지만 넓게는 온 누리 하늘아래 땅위의 오제(五帝)의 사명(司命) 주관한다. 여기서 주관을 한다는 것은 오제의 명(命)을 관장하는 인간세계 행정직급에서 보면 명(命)을 담당(擔當)하는 직급(職級)을 말한다. 따라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은 단순히 나무로 만들어서 마을을 수호(守護)하기만 하는 상징물(象徵物)은 아니다.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땅속에 있으면서 오령(五靈)의 이름을 주관한다. 하늘 아래 땅위에 오제(五帝)가 있다면 땅 속에는 그 오제(五帝)의 령(靈)이 존재를 하며 그 오제(五帝)의 령(靈)을 오령(五靈)이라 하며 오령(五靈)의 이름을 주관하는 것이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장승 역시 단순한 마을을 수호하기 위한 수호신(守護神)만은 아니다. 마을의 땅속 다섯 방위에 존재하는 오제(五帝)의 령(靈) 즉 오령(五靈)의 이름을 주관하면서 동시에 온 누리 다섯 방위의 땅속에 존재하는 오령(五靈)의 이름을 주관하는 것이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이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나무로 장승으로 만들어 세움으로서 그 상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온 누리 땅위 다섯 방위에 존재하는 오제(五帝)의 사명(司命)을 주관하며, 땅속 다섯 방위에 존재하는 오제(五帝)의 령(靈) 즉 오령(五靈)의 이름을 주관한다. 따라서 온누리 하늘 아래 땅위, 그리고 땅속에 존재하는 오제(五帝)와 오령(五靈)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완벽하게 주관을 함으로서 온 누리를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게 만들며 사람들의 삶을 조화와 균형 있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 어귀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장승을 세워두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함을 기원했던 것이다. 본 장승(將承)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거의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소위 전문가(專門家)라고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그들 역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 정도로 밖에는 모르며, 더 나아가서는 마치나 우리 겨레가 얼토당토않게 나무로 만든 조각상을 믿는 듯 토테미즘적 신앙인양 몰아가고 있다. 즉 미신(迷信)으로 폄하를 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장승문제에서 본질은 우리의 삼신교(三神敎) ‧ 삼신론(三神論)의 자연과학적 측면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미신(迷信)으로만 흘려보내기에는 담고 있는 의미가 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인류는 하늘 아래 땅위의 누리에서 살고 있으며, 또 비록 눈앞에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해도 존재하는 땅속의 세계에 대해서도 조화를 이루어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 땅위 누리의 삶 역시 사방팔방, 위 ‧ 아래가 조화롭고 균형이 맞아야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땅위 누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자연현상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지 못하면 그 균형이 무너지며, 균형이 무너지면 온 누리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없다. 바로 우리의 삼신사상(三神思想)에서의 오제론(五帝論), 그리고 그 오제(五帝)의을 사명(司命)을 주관하는 천하대장군신앙(天下大將軍信仰) 혹은 천하대장군사상(天下大將軍思想)인 것이다. 결코 미신(迷信)으로 치부할 【믿음】이 아니다. 땅속에 존재하는 온갖 물질들의 조화와 또 땅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균형과 균제를 잃으면 땅위에 세상 역시 균형과 균제를 잃으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들의 삶 편안할 수 없다. 땅속 세상 역시 자연적인 변화와 인위적으로 벌이는 변화속에서 그 조화와 균형을 잃으면 자연재해 혹은 자연의 대재앙이 벌어진다. 2011년 벌어진 일본 후꾸시마 대지진과 대지진의 영향으로 폭발한 후꾸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태가 바로 땅위의 세계와 땅속 세계의 조화와 균형을 무시한 인간의 탐욕과 지배욕이 빚어낸 참사인 것이다. 우리겨레는 바로 이런 점들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비록 사람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땅속 세계에 대해서도 대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말라고 지하여장군신앙(地下女將軍信仰)을 창조(創造) 한 것이다. 「믿음=신앙(信仰)」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이 무너지는 균형과 조화를 막아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 믿음에 따라서 대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람이 탐욕에 의해 대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역리(逆理)를 행한다면 대자연의 자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반드시 대재앙(大災仰)을 몰고온다. 이는 무너진 균형을 맞추기 위한 대자연의 법칙이요 순리이다. 그래서 우리네 전통사상은 지구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生命體)로 보았다. 물론 현대에는 이러한 우리네 숭고한 믿음과 사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하겠다. 이 믿음은 곧 대자연의 법칙에 역리하지 말고 순리를 택하라는 것이다. 고려중기(高麗中期) 이후 화하족(和夏族)의 유학(儒學)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얼과 넋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앞선 장들에서 연재를 했듯이 바로 「선배(仙人) ‧ 화랑정신(花郞精神)」은 우리의 「(선교)仙敎 ‧ (삼신교)三神敎」이며, 「선배(仙人) ‧ 화랑정신(花郞精神)」의 衰退 ‧ 沒落은 곧 우리의 「(선교)仙敎 ‧ (삼신교)三神敎」의 衰退 ‧ 沒落을 말한다. 「(선교)仙敎 ‧ (삼신교)三神敎」의 衰退 ‧ 沒落은 우리 겨레의 얼과 넋이 사라짐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부터 우리의 숭고한 사상과 종교적 믿음은 점점 더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으며, 우리 겨레의 전통적인 믿음과 사상은 저급하고 하급한 것으로 취급을 받기 시작하였다. 현재에도 우리네 종교적 믿음이나 사상을 말할라 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신이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요 하면서 무시하기 일쑤다. 이는 자신들 조상들에 대한 불경이요 조상 욕을 먹이는 불효막심한 행위인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우리 조상들의 믿음과 사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을 한다면 그래도 일면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겨레 대부분은 우리 조상들 믿음과 사상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면서 미신이요, 저급(低級)한 사상(思想)이요, 하급(下級)한 전통(傳統)이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 「믿음(信仰) ‧ 사상(思想)」 절대 저급하지 않으며 하급(下級)한 것이 아니다. 또한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서도 결코 미신(迷信)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믿음은 대자연(大自然)의 순환원리(循環原理)를 정확하게 깨닫고 그 이치(理致)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아니 수 만년 삶속에서 체득한 믿음과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장승문제에 있어서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장승(將承)은 마을 어귀에다가 딱 두 개만 세워야 한다. 즉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하나와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나, 한 쌍만을 세워야 한다. 현대인들은 그저 장승 하니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신, 혹 이정표(里程標)라는 잘 못된 지식으로 여러 개 혹은 여러 쌍을 설치하면 좋은 것으로 알고 무분별하게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장승을 여러 개 혹은 여러 쌍 세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믿음의 조화(調和)와 순리(順理)를 깨뜨리는 행위로서 죄를 짓는 행위인 것이다. 장승의 이러한 이치도 모르면서 여러 개 혹은 여러 쌍을 세우려면 차라리 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또 혹자들은 장승은 이정표(里程標)라고도 하는데 절대 이정표가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장승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理致)를 조화롭게 균형을 잡아주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상징하여 나무로 만든 믿음의 대상인 것이다. 장승(將承)은 우리네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三神敎)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우리 조상들의 장승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 역시 미신(迷信)이 아니다. 2) ≪오제(五帝)≫의 주(注)에서의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장승(將丞) ❝ ≪오제(五帝)≫의 주(注)에서 말한다. 오방(五方)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라 하고 땅에서는 대장군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용왕현구(龍王玄龜)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朱雀赤杓)는 목숨을 주관하며, 청룡령산(靑龍靈山)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白虎兵神)은 형벌을 주관하며, 황웅여신(黃熊女神)은 병을 주관한다. ❞ 오방(五方)에 각기 사명(司命)이 있다 함은 바로 북(北) ‧ 남(南) ‧ 동(東) ‧ 서(西) ‧ 중(中)의 다섯 방향을 말한다. 또 다섯 방향마다에는 각기 주어진 사명(司命)이 존재를 한다. 이 사명(司命)을 각각 맡아보는 자를 하늘에서는 ≪제(帝)≫라고 하며, 땅에서 맡아보는 자를 ≪대장군(大將軍)≫이라고 한다. 지하(地下)의 다섯 방향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요약하면 하늘의 다섯 방위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는 ≪제(帝)≫라하고, 땅위(地上)의 다섯 방위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며, 땅속(地下)의 다섯 방위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하늘에서 사명(司命) 감독(監督)하고 살피는 ≪제(帝)≫는 북방(北方)에는 흑제(黑帝)요 남방(南方)은 적제(赤帝), 동방(東方)은 청제(靑帝), 중방(中方)은 황제(黃帝)이다. 땅위에서 오방(五方)의 사명(司命) 감독(監督)하고 살피는 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다. 그런데 그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은 땅위에서 각 방위(方位)를 수호(守護)하는 자들인 북방(北方)의 용왕현구(龍王玄龜), 남방(南方)의 주작적표(朱雀赤杓), 동방(東方)의 청룡령산(靑龍靈山), 서방(西方)의 백호병신(白虎兵神)이요, 중방(中方)의 황웅여신(黃熊女神)을 감독하고 보살핀다. 땅속(地下)에서 오방(五方)의 사명(司命) 감독(監督)하고 살피는 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지하에서 각 방위를 담당하는 수호하는 자들인 북방(北方)의 용왕현구(龍王玄龜), 남방(南方)의 주작적표(朱雀赤杓), 동방(東方)의 청룡령산(靑龍靈山), 서방(西方)의 백호병신(白虎兵神)이요, 중방(中方)의 황웅여신(黃熊女神)을 감독하고 보살핀다. 각 방위(方位)를 수호(守護)하는 북방(北方)의 용왕현구(龍王玄龜)는 ≪선악(善惡)≫을 주관한다. 남방(南方)의 주작적표(朱雀赤杓)는 ≪목숨≫을 주관하며, 동방(東方)의 청룡령산(靑龍靈山)은 ≪곡식(穀食)≫을 주관한다. 서방(西方)의 백호병신(白虎兵神)은 ≪형벌(刑罰)≫을 주관하며, 중방(中方)의 황웅여신(黃熊女神)은 ≪병(病)≫을 주관한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땅위에서 오방을 감독하고 살핀다는 것은 북방(北方)에서 이루어지는 ≪선악(善惡)≫을 주관하는 것을 감독하고 살핀다는 것을 말한다. 남방(南方)에서 이루어지는 ≪목숨≫, 동방(東方)의 ≪곡식(穀食)≫, 서방(西方)의 ≪형벌(刑罰)≫, 중방(中方)의 ≪병(病)≫에 대해서 주관하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살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역시 땅위에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 오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감독하고 살피듯이 땅속 오방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인 북방(北方)의 ≪선악(善惡)≫, 남방(南方)의 ≪목숨≫, 동방(東方)의 ≪곡식(穀食)≫, 서방(西方)의 ≪형벌(刑罰)≫, 중방(中方)의 ≪병(病)≫에 대해서 주관하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살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장에서 살펴본 고구려벽화의 네 방위에 네 마리의 각기 다른 동물을 그려넣은 것은 바로 땅속 오방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인 북방(北方)의 ≪선악(善惡)≫, 남방(南方)의 ≪목숨≫, 동방(東方)의 ≪곡식(穀食)≫, 서방(西方)의 ≪형벌(刑罰)≫, 중방(中方)의 ≪병(病)≫에 대해서 주관하는 북방(北方)의 용왕현구(龍王玄龜), 남방(南方)의 주작적표(朱雀赤杓), 동방(東方)의 청룡령산(靑龍靈山), 서방(西方)의 백호병신(白虎兵神)에 대한 믿음을 그림으로 형상화(形象化) 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땅위의 오방(五方)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감독(監督)하고 살피는 것이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요, 땅속 오방(五方)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감독(監督)하고 살피는 것이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우리 조상들은 마을 어귀나 신성(神聖)하다고 여기는 곳에 나무, 혹은 돌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한 쌍을 만들어 세우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 혹은 집단(나라.國)에 대한 안녕(安寧)과 평안(平安)은 기원(祈願)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은 서양식(西洋式)으로 안목(眼目)으로는 그저 나무로 만든 조각상(彫刻像)에다가 마음속으로만 빌고 기원(祈願)하는 미신(迷信)이요 허무맹랑(虛無孟浪)한 비과학적(非科學的)인 종교적(宗敎的) 믿음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서양인(西洋人)들이 과연 우리겨레의 깊고 깊은 대단히 과학적(科學的)이며 논리적(論理的)이고 이성적(理性的)인 믿음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들은 단지 그들이 믿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미신(迷信)이니 비과학적(非科學的)이니 비이성적(非理性的)이니 하면서 우상숭배(偶像崇拜)라고 저들 나름대로 폄훼(貶毁)를 했지만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 조상(祖上)들 어리석지 않았으며 온 누리 존재(存在)하는 모든 종족(宗族)들 가운데 가장 현명(賢命)하고 지식수준(知識水準)이 높았으며, 대단히 과학적(科學的)이고 논리적(論理的)이며 이성적(理性的)이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존재하는 천지만물(天地萬物) 가운데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귀중(貴重)한 ≪으뜸≫인 존재로서 사람을 대하고 그들을 하늘로서 떠받들었다. 이다지도 중요(重要)하고 귀한 존재인 사람을 위하여, 하늘 ‧ 땅 ‧ 사람을 하나인 존재로 보는 믿음을 가진 조상들이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와서 돌아가는 날까지 평안(平安)하고 안락(安樂)하게 살다가기를 간절(懇切)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삼신교(三神敎) ‧ 삼신사상(三神思想)을 창조(創造)하였다,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하늘 ‧ 땅위 ‧ 땅속의 다섯 방위(方位)에 대해서 그 사명(司命)을 주관하게 함으로서 태어나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물론이려니와 돌아간 뒤에도 평안(平安)한 삶을 살기를 기원(祈願)하는 간절(懇切)한 믿음에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창조(創造)하였으며 이 믿음을 구체화(具體化) 시킨 오제사상(五帝思想)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또 이를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태(形態)로서 만들어낸 대상이 바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장승(將丞) 이었다. 우리조상들은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창조(創造)하고 그 믿음이나 기원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며, 한 울타리 안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요 한 가정이라는 받아들였다. 우리겨레는 바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따른 믿음으로 형성(形性)된 ≪한 울타리 안의 모두가 하나≫라는 뛰어난 사상(思想)을 창조(創造)해내었다. 한 울타리 안의 모두가 하나라는 사상(思想)과 철학(哲學)이 집약(集約)된 한 단어가 바로 ≪우리 = 울 + 이(사람)≫이다. ≪우리≫라는 한 단어는 온 누리 모든 단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상성(思想性)과 철학성(哲學性)을 담은 단어이다. 바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우리 겨레는 그가 속한 사회(社會)나 집단(集團)의 평안(平安)함과 안락(安樂)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獻身)을 했다. 이를 위해 사상적(思想的)으로 공고화(鞏固化)되고 현상적(現象的)으로 조직(組織)된 것이 바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선배(先人), 고구려(高句麗)의 조의선인(皂衣先人), 신라(新羅)의 화랑(花郞), 고려(高麗)의 선배(先人) ‧ 화랑정신(花郞精神)이었다. 바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실천(實踐)함으로서 자신이 속한 집단(集團)과 사회(社會) 나라에 대해 실제적(實際的) 행동(行動)으로서 자신의 책임(責任)을 다 하고자 했던 것이 우리 조상들의 종교적(宗敎的) 믿음이요 사상적(思想的) 실천(實踐)이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마을 어귀나 신성(神聖)하다고 여기는 곳에 나무, 혹은 돌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한 쌍을 만들어 세우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 혹은 집단(나라.國)에 대한 안녕(安寧)과 평안(平安)은 기원(祈願)하던 믿음의 행위 역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실천(實踐)하고자 했던 종교적 믿음의 행위였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行爲)나 행동(行動) 믿음이 과연 미신(迷信)이고 우상숭배(偶像崇拜)이겠는가. 필자도 역시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서양(西洋)의 종교(宗敎)인 천주교(天主敎) 40여 년간 믿어왔다. 한때는 구약(舊約) ‧ 신약성경(新約聖經)을 심도(深度)있게 연구(硏究)도 하였으며, 또 종교사(宗敎史)와 종교철학(宗敎哲學)에 대해서도 심취(深趣)해 있었다. 물론 천주교를 믿을 당시 신앙심(信仰心) 역시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할 정도로 열심히 믿기도 하였다. 하지만 천주교를 믿으면서 솔직히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또 파고들면 들수록 구약 ‧ 신약성경에 대한 의구심(疑瞿心)과 모순(矛盾)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 종교사(宗敎史)를 연구해봄에 그들의 종교적(宗敎的) 목적(目的)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또 현대종교(現代宗敎)론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보니 여타 서양의 철학(哲學) 사상(思想)이나 다를 바 없는 중언부언(重言復言) 말의 유희(遊戱) 혹은 현학(衒學)의 허세(虛勢)만 보일 뿐 진정한 답을 얻지 못했다. 또 그 치밀성이나 논리성(論理性) 과학성(科學性)에서도 역시 신뢰(信賴)를 전혀 할 수가 없었으며, 그 믿음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주체성(主體性)과 자주성(自主性)을 말살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마디로 너희가 믿는 대상(對象)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니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고, 보지도 말며 그저 믿으라는 것이었다. 만약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고 물으려고 한다면 전지전능한 야훼에 대해 대죄(大罪)를 짓는 것이며 그에 따라 천벌을 받는다고 하는 솔직히 황당하기까지 한 교리(敎理)를 내려 먹인 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연 이런 종교(宗敎)가 과학적(科學的)이고 이성적(理性的)이며 논리적(論理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이렇게 비과학적(非科學的)이고 비이성적(非理性的)이며 비논리적(非論理的)인 믿음을 가진 자들이 과연 우리네 장승문화(將丞文化)나 종교(宗敎) 사상(思想)에 대해 미신(迷信)이니 우상숭배(偶像崇拜)니 원시적(原始的)이고 저급(低級)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批判)을 하고 그들의 모순(矛盾)과 야욕(野慾)에 대해서 밝혀내야 한다고 본다. 또 우리 조상들이 창작(創作)하고 만들어낸 종교(宗敎) 사상(思想)들에 대해서도 절대 비과학적(非科學的)이고 비논리적(非論理的)이며 비이성적(非理性的)인 대상을 믿는 미신(迷信)이며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니라는 것을 적극적(積極的)으로 논증(論證)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어낸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와 그를 구체화(具體化)시킨 오제설(五帝說)은 그저 막연한 대상에 대한 기복(祈福)과 구복(求福)의 믿음이 아닌 구체적(具體的)이고 실천적(實踐的)인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形成)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나무나(대부분 나무임, 일부지역 특히 제주도에서는 돌로 만들기도 함) 돌로 형상화(形象化) 하여 만들어낸 것이 장승(將丞)이며 이 장승을 마을 어귀나 신성한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한 쌍을 세워 자신들의 믿음을 더욱더 다져갔으며 또 그 믿음을 실천(實踐)하리라고 다짐을 하였던 것이 바로 장승문화(將丞文化) 혹은 장승신앙(將丞信仰)이었던 것이다. 장승문화(將丞文化) 혹은 장승신앙(將丞信仰)의 뿌리와 줄기는 곧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이다. 즉 장승신앙(將丞信仰)은 곧 삼신교(三神敎) ‧ 신교(神敎) ‧ 선교(仙敎)의 믿음이다. 2. 이민족에게 비친 장승(將丞)과 장승신앙(將丞信仰) 그럼 우리네 장승(將丞)과 장승신앙(將丞信仰)이 이민족(異民族) 특히 서양인(西洋人)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보기로 하자. 우리의 장승(將丞)과 장승신앙(將丞信仰)이 이민족(異民族) 특히 서양인(西洋人)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는 대략 짐작을 할 것으로 본다. 이미 위에서도 간략히 설명을 했고 또 일반적으로 그동안 학교라는 공간이나 혹 다른 통로를 통(通)해서도 한두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으로 본다. 들어보나 마나 부정적(否定的)으로 묘사가 되었을 것은 자명(自明)하다. 하지만 그들이 구체적(具體的)으로 어떻게 묘사(描寫)를 했는지 몇 건의 예(豫)를 들면서 이에 대한 비판(批判)도 함께 해보고자 한다. 1) 우리겨레의 종교에 대한 서양 최초의 기록을 남긴 네덜란드인 하멜 외국인으로서 장승에 대하여 가장 먼저 기록을 남긴 사람은 네덜란드인 ≪하멜≫이다. 하멜은 1653년 표류하다가 제주도 남쪽 해안에 상륙을 한 사람이다. 그는 제주도에 상륙하여 13년 동안 조선에서 살다가 1666년 일본으로 도망을 친 자이다. 이 자는 조선(朝鮮)에서 살았던 13년 동안의 체험(體驗)을 ≪제주도 난파기≫와 ≪조선왕국기≫를 통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이 13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生活)을 하면서 조선인(朝鮮人)과 직접(直接) 접촉(接觸)을 하고 자신이 체험을 한 경험(經驗)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인(朝鮮人)들의 삶과 종교의식(宗敎儀式), 주거형태(住居形態) 그리고 여성들의 지위(地位) 등에 대해서 기록(記錄)을 하였다. 다음은 그가 기록한 조선인의 종교의식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도록 하자. ❝ 꼬레지앵들에게 종교(宗敎)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작은 인종(人種)들은 우상(偶像) 앞에서 우스꽝스런 표정(表情)을 짓기도 하지만 진정(眞情)으로 숭상(崇尙)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른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 자신이 우상(偶像) 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 역시 기대를 버리지 않는 기록이다. 위에서 이미 필자가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說明)을 하였지만 그들의 종교(宗敎)라는 것은 오히려 우상(偶像)정도가 아니라 허상(虛像)을 종교(宗敎)라고 포장(包裝)을 하면서 무조건(無條件) 믿으라고 강요(强要)를 하면서 다른 민족(民族)들의 종교적(宗敎的) 믿음에 대해서는 일방적(一方的)이고도 자의적(恣意的)으로 폄훼(貶毁)를 하고 있다. 하멜이 조선에서 13년 동안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우리말과 글에 문외한(門外漢)인 그가 과연 조선에 대해서 뭘 알았겠는가. 더구나 말과 글을 모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한 깊은 내면을 알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 단적인 문장이 바로 “꼬레지앵들에게 종교(宗敎)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이다. 본 문장(文章)은 조선(朝鮮)에 대한 그의 무지(無知)와 오만(傲慢)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우리겨레는 지금까지 살펴본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서도 기록이 있듯이 종교(宗敎) 속에서 태어나고 종교 속에서 살다가 종교를 따라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런 우리겨레를 향해 종교(宗敎)가 거의 없다고 해야 한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우리가 여기서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하고 또 경계(警戒)를 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겨레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저런 허무맹랑(虛無孟浪)한 기록들을 객관적(客觀的) 사실(事實)을 알려준다느니, 서양인(西洋人)들은 사실에 근거(根據)해서 실증적(實證的)인 기록을 하니 우리겨레들에 대한 그들의 기록을 믿을 만 하다고 결정적(決定的)으로 그 허무맹랑(虛無孟浪)한 기록들을 사실화 시킨다는데 있다. 또 그 허무맹랑한 기록을 사실(事實)이라고 하면서 후세(後世)들에게 강압적(强壓的)(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사실 선택을 해서 배우는 곳이 아니기에 강압적이라고 한다)으로 내려 먹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배운 후세(後世)들은 과연 자신들 조상(祖上)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늘 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면 그 부정적 효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겨레가 살았던 조선시기에도 종교는 여전히 우리겨레 마음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믿음은 각 가정에서 조차도 매일 매시 실행을 하고 살았으며,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國家的)으로도 실천(實踐)을 해왔던 것이다. 하멜이 우리 겨레의 깊은 종교적 믿음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더 이상 논할 필요조차 없다. “이 작은 인종(人種)들은 우상(偶像) 앞에서 우스꽝스런 표정(表情)을 짓기도”한다고 하여 역시 그가 조선에 대해 조선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하멜이 그가 쓴 기록물에서 ≪우상(偶像)≫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첫째- 우스꽝스럽다고 한 표현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해학적이고도 우스꽝스럽게 탈춤을 추는 탈놀이를 보고 그렇게 기록을 했을 수도 있다. 어차피 탈놀이를 함에도 어떤 대상(對象)을 세워놓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解析)을 할 수가 있다. 그 대상에 대해 해학적(諧謔的)으로 우스꽝스럽게 탈놀이를 할 때 청중(聽衆)들은 폭소(爆笑)를 터뜨리며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한다. 결국 청중들은 우스꽝스러운 표정(表情)을 지으면서 그 탈놀이 구경에 열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골(무당巫堂이라고 하나 무당巫堂이라고 하면 안 된다)≫이 행하는 ≪굿≫을 보고 그런 기록을 남길 수도 있다. 어차피 ≪당골≫이 ≪굿≫을 할 때는 제상(祭床) 차림을 하고, 그 기원(祈願)을 이루어주는 대상물(對象物)을 앞에 놓고 하는 것은 기본(基本)이다. 또한 우리네 굿은 서양의 기도형식(祈禱形式)과는 다르게 매우 자유스럽다. 풍물(농악農樂이라 하나 농악이 아니다)을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음식을 왁자지껄 떠들면서 나누어 먹기도 한다. 우리네 종교의식을 행하는 ≪굿≫에 참여(參與)를 해보면 매우 자유분방함을 알 수 있다. 웃고 떠들고 오며 가며, 매우 자유스럽고 흥겹기 그지없다. 또한 ≪당골≫이 ≪굿≫을 할 때는 ≪굿≫을 주제(主祭)하는 ≪당골≫뿐 아니라 새끼 ≪당골≫들의 표정(表情)도 매우 다양(多樣)하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때로는 근엄(謹嚴)하고 때로는 자애(自愛)롭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난 표정 등 그 표정들의 다양(多樣)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노래하고 시를 읊기도 하고 타이르고 꾸짖는 등 말로 표현하는 것만도 정말 다양하기 그지없다. 이와 같이 ≪당골≫이 주제(主祭)하는 ≪굿≫에 참여(參與)하는 사람들 역시 ≪당골≫들이 행하는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그리고 행동 하나 하나에 함께 울고 웃고 떠들고 엄숙한 표정을 함께 하기도 한다. ≪당골≫이 주제하는 ≪굿≫은 ≪당골≫들과 참여자들 모두 하나가 되어 하늘로 승천(昇天)을 하는 것이다. 과연 하멜은 과연 이 ≪굿≫을 보고 기록을 남겼는가. 아마도 그는 ≪당골≫이 주제하는 ≪굿≫이 종교적(宗敎的) 의례(儀禮)라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셋째- 하멜은 마을 앞 당산(堂山)나무 아래나 마을 어귀 혹은 고개등지에 있는 서낭에서 삼신께 기원(祈願)하는 광경(光景)을 보고 그런 기록(記錄)을 남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우리 겨레는 매우 엄숙(嚴肅)하며 절대 웃는다거나 떠들썩하다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表情)을 지을 수는 없다. 우리겨레가 개인적(個人的)이건 집단적(集團的)이건 당산나무나 서낭에서 종교적(宗敎的) 의식(儀式)을 거행(擧行)하면서 기원(祈願)을 할 때에는 매우 엄숙(嚴肅)하였다. 집 뒤 안에서 기원(祈願)을 할 때에도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정성(情性)들여 떠놓고 두 손을 고이 모으고 빌어마지 않았던 것이다. 하멜은 이 행위(行爲)도 종교적(宗敎的) 행사(行事)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넷째- 혹 장승(將丞) 앞에서 기도(祈禱)을 하는 걸 보고 그랬는가. 이 경우에도 우리 겨레는 결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삼신(三神)과 오제(五帝)를 모욕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기원(祈願)하면서 올리는 기도(祈禱)는 결국 자신이 기도에서 올리는 결과(結果)의 실현(實現)을 위해서 자신이 그를 실천(實踐)하겠다는 엄숙(嚴肅)한 맹세(盟勢)를 하는 것이다. 그 맹세를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건 “이 작은 인종(人種)들은 우상(偶像) 앞에서 우스꽝스런 표정(表情)을 짓기도”한다고 한 문장은 1~4번째 어디에 해당이 되건 우리겨레의 종교적(宗敎的) 믿음과 사상(思想)에 대해 무지(無知)한 푸른 눈을 가진 서양(西洋)의 이방인(異邦人)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한 기록일 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한 이방인의 우리겨레의 종교(宗敎)에 대한 평(評)이려니 하고 참고는 할 수는 있으나 이를 신뢰(信賴)할 필요(必要)는 전혀 없다. “진정(眞情)으로 숭상(崇尙)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른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 자신이 우상(偶像) 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모양이다”라는 문장은 전혀 평할 가치조차도 없다. 우리겨레는 온 누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매우 존중(尊重)을 했으며 자신들이 그 무엇보다도 우월(優越)하다고 하면서 타(他)를 멸시(蔑視)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오만(傲慢)함은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正面으로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키만 크다고 키 작은 조선인을 얕잡아 보는 오만함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는 우리겨레의 깊숙한 내면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오만한 기록을 남겼다. 2) 남연군묘를 도굴범 독일인 오페르트의 ≪조선기행≫에 기록된 장승(將丞) 서양인(西洋人)들이 장승(將丞)에 대해 직접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자료는 남연군묘를 도굴하러 왔던 후일 독일로 되돌아간 독일인 오페르트가 쓴 ≪조선기행≫이다. 오페르트는 1892년 라이프찌히에서 펴낸 그의 저서 ≪조선기행≫ 아래와 같이 「우상」에 대해서 기록을 하였다. ❝ 사람이 수백 명이나 살고 있는 꽤 큰 마을에서 나는 벌써 여러 번이나 키가 서로 틀리지만 나무로 만든 막대기가 여러 개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이것은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 중략 ~ 자세히 보니 이것은 바로 동리의 우상신으로 사원 또는 기도소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보호할 특별한 조치 없이 땅 속에 그냥 박아 놓았다. ~ 중략 ~ 키가 대강 두 자에서 네 자 가량의 통나무로 만든 이 물건의 장식은 다음과 같다. 나무껍질을 벗기고 그 위에다 가장 원시적인 기술로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을 새긴 것이다. ❞ 주강현의 「우리 겨레의 수수께끼」에서 인용 위 남연군 도굴범 독일인 ≪오페르트≫가 ≪조선기행(朝鮮紀行)≫에서 기록한 내용은 장승(將丞)에 대해서 기록을 한 것이 확실하다. 오페르트 역시 자신들의 잣대로 자신들의 생각대로 ≪우상신(偶像神)≫이니, ≪보호할 특별한 조치 없이≫니, ≪원시적(原始的)인 기술(技術)≫이니,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이니 하고 기록(記錄)을 하였다. 역시 서양인(西洋人)들 자신들의 생각대로 우리겨레에 대한 종교적(宗敎的) 믿음과 사상성(思想性)에 대한 무지(無知)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오만(傲慢)한 기록을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신들이 더 큰 우상(偶像)을 섬기고 있다고 본다. 즉 우리겨레는 실천(實踐) 가능(可能)한 믿음을 가졌기에 그리고 그 믿음을 꼭 실천(實踐)하려는 의지(意志)를 가지고 믿었기에 자신들이 기원(祈願)하는 대상(對象)들을 어마어마하게 크게 그리고 사람들이 접근(接近)을 할 수 없는 곳에 굳이 모셔놓을 필요(必要)가 없는 것이다. 실천(實踐)을 하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누구나 가릴 것도 없고, 배제(排除)할 것도 없이 사람이라면 언제 어느 때건 그 곳에 가서 자신들이 실천하고자 하는 것을 기원을 하는 것이다. 또 굳이 따로 시간을 내고 장소(場所)를 내어서 기원을 할 필요 없이 그 곳을 지나는 길에 편안하게 자연스레 자신들의 기원을 담아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겨레의 종교적(宗敎的) 믿음이요 사상(思想)인 것이다. 반면 요즈음 한국사회에 극성(極盛)을 부리는 성당(聖堂)이나 예배당(禮拜堂)을 보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며 사람들을 압도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성당이나 예배당이 더 많기는 하지만 사실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存在)하는 성당이나 교회당(敎會堂)이라면 그리 어마어마하게 클 필요도 없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위압적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성당이나 교회당들은 그들과 연관(聯關)이 없는 사람들은 원천적(源泉的)으로 접근(接近)을 허용(許容)하고 있지 않다. 이게 무얼 말하는가. 이거야말로 뭔가 그 목적(目的)이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또 진정한 믿음이라면 굳이 위압적(威壓的)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게 바로 우상(偶像)을 숭배(崇拜)하는 것이요 사람들을 진정한 마음으로 끌어안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네 고유(固有)의 전통종교(傳統宗敎) ‧ 정통종교(正統宗敎)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겨레에게 전해진지 1500여 년이 되고 또 우리겨레의 삼신교(三神敎)에 흡수(吸收)된 불교(佛敎)의 불당(佛堂)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開放)이 되어있다. 역시 우리겨레의 전통과 정통종교나 사상은 사람이 온 누리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으뜸이라는 것이 철칙(鐵則)으로 되어있다는 믿음이 진정한 종교적(宗敎的) 이론(理論)에 비추어본다고 해도 가장 우월(優越)하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종교(宗敎)는 존재(存在)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包容)하여야 하며 그들 모두에게 열려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사상이나 믿음은 결국 특정(特定)한 사람들만을 위한 종교요 믿음으로서 결국 사람을 극단적(極端的)으로 차별(差別)을 하는 믿음으로서 오히려 그 믿음이 하급(下級)이요 저급(低級)한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엄밀(嚴密)히 말하면 우상숭배(偶像崇拜)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가장 우려(憂慮)를 하면서 경계(警戒)를 하는 것은 바로 종교(宗敎) 본래(本來)의 존재(存在) 목적(目的)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또 그 모두를 상실(喪失)해버리고 자신들이 믿는 신(神)만이, 그 신(神)만을 믿어야 복(福)을 받고 천국(天國)에 갈 수 있다는 극단적(極端的) 종교관(宗敎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들 조상들이 창작(創作)하고 창조(創造)해낸 지구상 가장 우수한 종교적(宗敎的) 믿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우상숭배(偶像崇拜)라고 배척(排斥)하면서 스스로 조상들 욕을 먹이는 행위(行爲)를 서슴없이 행(行)하고 있는 이 땅의 종교인(宗敎人)입네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존재를 하는 것이 우려(憂慮)를 넘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위 하멜이나 오페르트가 끄적여 놓은 기록들이 진실이고 옳은 것 인양 그들의 것에 대해서는 숭상(崇尙)을 하고 자신들 조상들의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無條件) 원시적(原始的)이요 낙후(落後)한 것이요 우상숭배(偶像崇拜)라고 몰아붙이는 현상들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본다. 사실 종교적 탄생에 대해서만 보아도 우리의 종교가 서양의 종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그 전통(傳統)과 정통성(正統性)에서 뛰어나며 역사적 유래(由來)로만 보아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되었다. 하지만 오페르트 역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장승(將丞)에 대해서 사정없이 폄훼를 하고 있다. 장승(將丞)에 대해 극단적(極端的)인 편견(偏見)과 오만(傲慢)을 드러낸 것이 바로 ≪우상신(偶像神)≫이니, ≪보호할 특별한 조치 없이≫니, ≪원시적(原始的)인 기술(技術)≫이니,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이니 하고 기록(記錄)을 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장승(將丞)의 얼굴이 좀 해학적이고 현대인이 보기에(물론 이 역시도 서양인들에 세뇌된 우리들의 편견임) 조금은 험상궂게 만들어진 것은 바로 우리겨레의 위대했던 신시(神市) 제16대 한검(桓雄)인 ≪치우 한검≫을 형상화(形象化) 한 것이다. 신시(神市) 제16대 한검(桓雄)인 ≪치우 한검≫은 81번 싸워 모두 승리(勝利)를 한 우리겨레의 위대한 전쟁(戰爭)의 신(神)이다. 이 전쟁(戰爭)의 신(神)이 후일 악귀(惡鬼)를 물리쳐주고 세상에 모든 액(厄)을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신(神)으로 변(變)하여 우리 겨레의 종교적(宗敎的) 믿음의 대상(對象)이 된 것이다. 신시(神市) 제16대 한검(桓雄)인 ≪치우 한검≫은 우리겨레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서양세력들에게도 전쟁(戰爭)의 신(神)으로 묘사(描寫)가 되어있다. 다만 그들은 그 전쟁의 신이 우리의 신시(神市) 제16대 한검(桓雄)인 ≪치우 한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서양(西洋)의 독일인인 오페르트가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이라고 폄훼(貶毁)를 한 것이다. 전쟁(戰爭)의 신(神)인 우리의 신시(神市) 제16대 한검(桓雄)인 ≪치우 한검≫은 도깨비로도 형상화(形象化) 되게 된다. 또 우리네 기와 혹은 궁궐(宮闕) 혹은 절간 등에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에 형상(形象)이 되어있다. 장승(將丞)의 얼굴 역시 신시(神市) 제16대 한검(桓雄)인 ≪치우 한검≫을 형상화(形象化) 한 것이다. 후일 ≪치우 한검≫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을 할 것이다. 3) 장승(將丞)에 대한 서양(西洋)의 선교사(宣敎師) 게일의 기록(記錄) 우리겨레의 종교적(宗敎的) 상징물(象徵物) 혹은 믿음에 대한 서양인(西洋人)들의 기록들은 1653년 난파되어 제주도에 상륙하여 조선에서 13년 동안 살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의 기록과 남연군묘를 도굴하려고 왔던 도굴범 독일인 오페르트가 라이쁘찌히에서 1892년에 쓴 「조선기행」이 있다. 또 오페르트의 뒤를 이어 조선에 들어온 카나다인 이자 미국인인 선교사 게일이 있다. 한국기독교사(韓國基督敎史)에 많은 영향(影響)을 미친 게일이기에 그에 대해 좀 자세히 보도록 하자. 게일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이런 자들에 의해 우리 겨레가 세뇌가 되어 우리 나라에 엄청나게 큰 업적(業績)을 남긴 듯이 개신교계(改新敎界)에서는 평가(平價)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 의해 우리겨레가 세뇌(洗腦)가 되었으니 자신들 조상에 대해서, 또 그 조상들이 창작(創作)한 종교(宗敎)나 사상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평가(平價)를 할지 굳이 설명(說明)을 하지 않아도 명백(明白)하다. ❝한국 이름은 기일(奇一). 1888년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하고 YMCA로부터 선교사로 임명받아 한국에 온 이후, 1890년 토론토대학교 선교부가 해체될 때까지 평신도 선교사로 일했다. 한국에 와서 여러 곳을 순회하며 말과 풍물을 익힌 다음, 1890년부터 성서공회 전임 번역위원이 되어 성서를 번역하고 한국성교서회(韓國聖敎書會) 창립위원이 되는 등 문서선교의 기틀을 잡았다. 1891년부터는 북장로교 선교부 소속으로 1898년까지 주로 원산에서 성서를 번역했고, 한국 최초의 〈한영대자전 韓英大字典〉을 편찬했으며, 후에 한국교회를 이끌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였다. 1897년에는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898년 함경도가 캐나다 장로교의 선교 지역으로 결정됨에 따라 서울로 와서 새롭게 선교를 시작했다. 1900년부터 연동교회(蓮洞敎會)에서 선교사로 임명되어 목회를 시작했으며, 연동여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이상재·이승만 등 지식인과 밀접한 교우관계를 맺어 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데 주력했으며, 1904년에는 교육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 1909년에는 〈야소교회보 耶蘇敎會報〉 주필이 되어 교회신문의 산파역을 맡았으며, 1911년 예수교서회 부회장, 1917년 한국음악연구회 조직, 1918년 성서잡지 발간 및 한국고전의 영어 번역, 1925년 성서전서 번역, 연동교회·평양신학교·피어선성서학원에서의 교육,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부 간사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밖에도 한국의 역사·문화·언어 등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과도기의 한국 Korea in Transition〉·〈Korean Sketches〉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집필했다.❞ 상기 인용문은 게일에 대해 소개를 한 인터넷 문장을 옮겨온 것이다. 위 내용을 봐서도 알겠지만 게일이라는 선교사(宣敎師)가 우리 겨레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影響)을 미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겨레는 19세기 후반기(後半期) 이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저런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歷史), 문화(文化), 종교(宗敎), 사상(思想), 철학(哲學) 등이 사라졌으며 더욱 참담한 것은 바로 우리겨레의 ≪얼과 넋≫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것이다. 참으로 배달겨레의 후일(後日)에 대해 심각(深刻)한 우려(憂慮)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현상이다. 그 폐단(弊端)이 고스란히 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제 게일이 우리의 전통사상(傳統思想)이자 믿음인 장승(將丞)에 대해 어떻게 기록(記錄)을 했는지를 보도록 하자. 위 인용문과 함께 聯關지어 정독(精讀)해보기 바란다. ❝ 당시 조선의 큰 길이나 작은 길에서 마주치는 장승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이빨과 이글거리는 눈을 보면 무의식중에 이스라엘인들이 숭배하는 다곤, 몰록, 그모스, 발과 같은 신이나 우상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우상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박물관이나 성경책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았지만 우상을 실제 자기 눈으로 불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 참으로 뭐라고 해야 할지 필자로서 난감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카나다인 이자 미국인인 게일이 묘사(妙思)를 한 이스라엘인들이 숭배를 했다는 우상신(偶像神)들에 대해 간략히 보도록 하자. 그래야 게일이 우리의 장승(將丞)에 대해 어떤 편견(偏見)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악마화(惡魔化) ‧ 미개화(未開化) 시켰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나열식으로 올려주도록 한다. ㉠ 다곤 ❝다곤 [Dagon]셈족 신화 | 브리태니커 Dagan이라고도 씀. 서부 셈족의 신. 풍작의 신으로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숭배했다. Dagan은 히브리어와 우가리트어에서 '곡식'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으며, 다곤 신은 쟁기를 발명한 전설상의 신이었다. 일찍이 BC 2500년경부터 이미 다곤 신을 숭배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고, 라스샴라(고대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문헌에 따르면 다곤은 바알 신의 아버지였다. 라스샴라에 다곤 신을 모시는 중요한 신전이 있었고, 특히 다곤이 필리스틴 사람들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셀의 벳다곤(여호 19:27), 가자(판관기 16:23), 아스돗(Ⅰ 사무 5:2~7)을 비롯한 여러 곳에 다곤의 신당이 있었다. 라스샴라에서는 분명 최고신인 '엘'(El)에 뒤이어 2번째로 중요한 신이었지만, 풍요의 신으로서 농사를 풍작으로 이끌어 주는 기능은 BC 1500년경에 바알 신에게 넘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 ㉡ 몰록 ❝몰록 [Moloch]아시아 신화 | 브리태니커 Molech이라고도 씀. 고대 중동 전역에서 유아희생제물을 받은 신. 이 이름은 히브리어 '멜렉'(melech : 왕)의 자음과 '보셰트'(boshet : 수치)의 모음을 합한 데서 유래했으며, '보셰트'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에서 바알('주인'이라는 뜻)이라는 유명한 신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으로 종종 사용된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준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이집트와 가나안에서 했던 일을 분명히 금지했다. "네 자식을 몰록에게 넘겨주어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레위 18 : 21). 히브리인들이 실제로 자녀를 불에 태워 몰록에게 바쳤는지, 아니면 그들이 이 관습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놓고서 율법으로 금지했는지는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다. 후대의 왕 아하즈(Ⅱ열왕 16 : 3)와 므나쎄(Ⅱ열왕 21 : 6)는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예루살렘 성 바깥에 있는 도벳 골짜기에서 몰록을 숭배했고 이곳은 므나쎄의 아들 아몬 왕 때 번성했으나, 개혁자 요시아가 즉위해 파괴했다. "왕은 벤힌놈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아무도 자녀를 몰렉에게 불살라 바치지 못하도록 했다"(Ⅱ열왕 23 : 10). ❞ ㉢ 그모스 ❝ 케모시 [Chemosh]셈족 신화 | 브리태니커 〈구약성서〉에서는 그모스라고도 함. 고대 서부 셈족의 신. 모압족이 그들의 최고신으로 섬겼다. 케모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동편에 그의 신당을 세웠지만(Ⅰ열왕 11 : 7) 그 신당은 후에 요시아 왕이 폐기했다(Ⅱ열왕 23 : 13). 여신 아스타르테(아스다롯)는 아마 케모시의 제의 동료였던 것 같다. BC 9세기 모압의 왕인 메샤가 쓴 유명한 〈모압의 돌〉에는 케모시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모압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신으로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 ❞ ㉣ 발 이스라엘의 우상신 “발”에 대해서는 찾지 못했다. 필자가 이스라엘 우상신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올려주지 못함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발”은 이스라엘 혹은 중근동 지방에서 우상으로 섬기는 신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우리의 장승(將丞)에 대해 카나다인 이자 미국인인 게일이라는 선교사(宣敎師)는 바로 이스라엘 혹은 중근동(中近東) 지방(地方)에서 우상(偶像)으로 섬긴다고 한 신(神)들과 동렬(同列)에 세웠다. 물론 게일이 주장(主張)하고 있는 이스라엘 혹은 중근동(中近東) 지방(地方)에서 우상(偶像)으로 섬기던 신(神)들 역시 구약성서(舊約聖書)에 의존(依存)을 한 것이다. 물론 필자는 중근동 지방에서 고대에 섬겨지던 신들에 대해서 모른다. 따라서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게일이라는 선교사는 그가 우상숭배의 대상인 신이라고 했고 또 우리의 장승(將丞)에 대해 우상(偶像)이라고 폄훼(貶毁)를 했기에 이에 대해 간략히 논해보기로 한다. “당시 조선의 큰 길이나 작은 길에서 마주치는 장승들”이라고 하여 당시 게일이 머물렀던 조선에는 거의 모든 마을 마다 장승(將丞)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재에도 곳곳에 장승(將丞)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나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현실인가. 이 역시 게일이라는 선교사로 모자를 쓰고 들어온 서양세력들의 제국주의적 사상에 물들이면서 벌어진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이빨과 이글거리는 눈을 보면 무의식중에”라고 함으로서 게일이 장승(將丞)을 보면서 꽤나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서양의 잡귀를 가지고 온 게일을 무섭게 노려본 것인지 모른다. 물론 게일이야 단지 장승(將丞)의 형상만을 보고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다. 장승(將丞)의 얼굴이 험상궂게 형상화 된 것은 이미 위에서 설명을 하였다. 당연히 장승(將丞)이나 우리네 역사와 문화 사상과 종교에 대해 문외한인 게일이 보기에는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스라엘인들이 숭배하는 다곤, 몰록, 그모스, 발과 같은 신이나 우상들을 생각하게 될 것”라고 하여 게일은 장승(將丞)을 보면서 받았던 그의 공포심(恐怖心)을 고대(古代) 중근동(中近東) 지역인(地域人)들이 믿었던 신(神)들을 우상(偶像)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우리의 장승(將丞) 역시 우상(偶像)의 대상(對象)으로 몰아 부치면서 폄훼(貶毁)를 하고 있다. 역시 이방인(異邦人)이라 우리의 전통(傳統) 종교(宗敎)와 사상(思想)에 대해 무지(無知)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문장이다. “미국인들은 우상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박물관이나 성경책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았지만 우상을 실제 자기 눈으로 불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장승(將丞), 더 나아가 우리의 전통(傳統) 종교(宗敎)와 사상(思想)을 마지막으로 완전하게 폄훼(貶毁)를 하면서 조선인들이 믿어왔던 종교적 믿음과 사상을 박물관(博物館)에 전시된 박제품이나 자신들이 맹신(盲信)하는 성경책을 들먹이면서 그 역사성(歷史性)과 합리성(合理性) 과학성(科學性) 그리고 논리성(論理性)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선인들의 무지하고 미개하다는 것을 “우상을 실제 자기 눈으로 불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조선인들을 미개인으로 몰아 부치고 있다. 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무지(無知)하고 오만(傲慢)한 자인가. 이런 자들이 선교사(宣敎師)라는 모자를 쓰고 남의 나라 땅에 들어와서 그 땅에서 대대손손(代代孫孫) 정겹게 평화롭게 살아왔던 사람들을 사상적(思想的)으로 세뇌(洗腦)를 시키고 자신들의 사상(思想)과 종교(宗敎)만이 우월하고 과학적인 것인양 우겨대면서 자신이 발을 들이민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과 넋을 깡그리 말살(抹殺)하고 말았다. 더욱더 개탄(慨歎)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자들을 우리겨레의 상당수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높게 평가(平價)를 하고 있으며 대단한 업적(業績)을 세운 영웅(英雄)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우리겨레의 전통적(傳統的) 사상(思想)과 철학(哲學) 종교(宗敎) 등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굳이 논(論)할 필요가 없다. 오늘 이 땅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겨레의 역사(歷史)와 문화(文化) 종교(宗敎) 사상(思想)들을 대하는 태도(態度)를 보면 명확(明確)하게 알 수가 있다. 우리의 전통적(傳統的)인 사상(思想)이자 종교적(宗敎的) 믿음인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 그 사상(思想)을 구체화(具體化)시킨 오제설(五帝說)은 절대 미신(迷信)이 아니며 미개(未開)한 믿음 역시 아니다. 또 오제설(五帝說)을 형상화(形象化) 시킨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에 대한 믿음 역시 막연한 믿음의 대상이 아닌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실천적(實踐的) 대상(對象)으로서 존재(存在)를 하는 것이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실물(實物)로 형상화(形象化)시킨 장승(將丞)에 대한 우리겨레들의 믿음 역시 미개(未開)하다거나 우상(偶像)을 숭배(崇拜)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계속해서 강조하건데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이 기원(祈願)하는 것들을 그 대상(對象)에 대하여 기도(祈禱)하면서 스스로 이를 실천(實踐)하고자 다짐을 하는 믿음이었다. 우상(偶像)이요 미신(迷信)이요 하는 것들은 그저 우리겨레의 깊고 깊은 종교적(宗敎的) 믿음과 사상(思想)에 대해 무지(無知)한 자들이 자신들이 세워놓은 기준(基準)에 따라 멋대로 평가(平價)를 하고 기록한 것일 뿐이다. 서양인(西洋人)들은 결코 우리 겨레의 높고 깊고 넓디넓은 사상(思想)과 종교적(宗敎的) 믿음을 이해 할 수도 없다. 우리는 하루라도 이른 시간 내에 우리조상들이 창조(創造)하고 수수천년 가꾸어온 사상(思想)과 종교적(宗敎的) 믿음을 회복(回復)하여 우리겨레의 얼과 넋을 되살려야만 우리의 미래가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겨레의 얼과 넋을 되살릴 때만이 우리가 그토록 염원(念願)하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서양식(西洋式) 우월주의(優越主義)와 우리겨레의 패배주의(敗北主義)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단기 4347(서기 2014)년 8월 29일 이 용 섭 ----------------------------------------------------------------------------- ❀❀❀ 참고문헌 ❀❀❀ 한국근대사상가선집➁ 신채호(申采浩)(신채호 원저. 안병직 편. 한길사. 1979년 12월 25일) 단재신채호전집 별집. 丹齋申采浩全集 別集(신채호 원저.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단재신채호전집발행위원회. 1977년 12월 28일) 주역 조선상고사(下) (신채호 원저. 이만열 주역.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형설출판사. 1983년 12월 30일)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00주년기념논집(論集), 단재 신채호와 민족사관(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형설출판사. 1980년 12월 8일) 조선상고사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2006년 11월 10일) 조선상고문화사〈독사신론(讀史新論),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사론(史論)〉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2007몀 3월 5일) 한단고기(계연수 찬. 임승국 주역. 정신세계사. 2010년 3월 25일) 삼국유사(일연 저. 이민수 주역. 을유문화사. 1975년 2월 20일) 삼국유사(일연 저. 박성봉 / 고경식 주역. 서문문화사. 1985년 10월 15일) 삼국유사(일연 저. 리상호 옮김. 북한사회과학원 민족고전 연구소. 까치글방. 1999년 5월 10일) 불함문화론(최남선 저. 정재승 / 이주현 역주. 우리역사연구재단. 2008년 12월 12일) 삼국사기(김부식 지음, 신호열 옮김. 동서문화사, 2판1쇄. 2007년 7월 20일) 삼국사기(원문)(김부식 지음. 강무학. 청화 1989년 2월 15일) 신단민사( 김교헌 지음. 고동영 주역. 한뿌리. 2006년 3월 15일) 교양한국사(성균관대학교 국사교재편찬위원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84년 2월 28일) 한국사신론 신수판(이기백. 일조각. 1967년 3월 20일 초판. 1997년1월10일5판본) 한국사특강(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한영우, 노태돈외 16명.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년 1월 19일) ㅎ+한글 古語辭典 실담語 註釋(강상원 박사. 한국세종한림원. 2002년 6월 14일) 종로 교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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