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윗선은 수시로 백남기를 체크했다


‘병사’ 사망 진단을 받은 백남기 농민의 의무기록과 간호기록을 살펴봤다. 일지 곳곳에 통상적 오더 체계를 넘어 외부 지시를 받아 진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생전 고인과 가족의 뜻과 달리 원치 않는 연명치료가 계속됐다.

전혜원·주진우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제474호

‘병사’로 표기된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에 대해 서울대병원이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위)를 구성해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위는 해당 사망진단서의 표기가 ‘대한의사협회 작성 지침과 다르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수정 권고나 수정 강제로 나아가지 않고 활동을 종료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특위 위원장을 맡은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나라면 ‘외인사’라 썼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백남기 농민 담당 의사로 사망진단서 작성을 지시한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나는 생각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의 지시를 받고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권 아무개 레지던트에 대해서는 ‘잠적설’이 보도되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백 교수는 “환자분께서 (급성신부전에 대한)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보고 병사로 표기했다”라며 유족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했다. 극우 단체인 자유청년연합 장기정 대표는 백남기 농민의 자녀 세 명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인의 딸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유족과의 협의 등 조건을 단 부검 영장의 해석에 대해서도 법원과 검찰 의견이 갈렸다. 강형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제한을 벗어나는 건 기각이라는 취지로 이해한다”라고 밝혔고, 검찰은 “발부됐다면 (조건과 무관하게) 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련의 과정은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시민이 사망했다는 사건의 본질과 한참 동떨어져 진행되고 있다. <시사IN>은 백남기씨의 의무기록과 간호기록을 입수해, 지난 317일을 돌아봤다.



ⓒ시사IN 신선영
10월1일 열린 고 백남기 추모 집회 행진은 백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자리 근처에서 경찰에 막혔다. 참가자들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작성 일자:2015-11-14 19:29 입실함(이동 방법:눕는 차). neck brace(목 보호대) 착용 중임. Level 1 방송 냄.


2015년 11월14일 오후 6시56분.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이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송파소방서 119 응급차가 세종로 안전센터로 출동하다 행인들 안내로 백남기씨를 싣고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구급활동 일지상의 병원 도착 시간은 저녁 7시40분이다). 응급실은 환자의 상태가 위중함을 의미하는 ESI(Emergency Severity Index:응급중증도지수) ‘레벨 1’ 방송을 냈다.

내원 당시 백남기 농민은 글래스고 혼수 척도 E1V1M1(눈뜨지 않고 말하지 못하며 운동반응이 없음)로 혼수상태였다. 두 눈의 동공이 확대, 고정되어 있었다. 응급실 초기 간호 정보의 내원 동기 및 현 상태에는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여 내원함’이라고 기록됐다(이후 응급중환자실 입원 기록에는 ‘청계천 빛초롱에서 물대포 맞은 것 같다고 전해 들었으나 확실히 목격한 사람이 없어 사실 확인은 불가능함’이라고 기록되었다). 백남기 농민은 오후 7시59분 응급 CT 검사실로 이송됐다.



ⓒ시사IN 이명익
지난 9월27일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사진 가운데)가 백씨의 부검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2:12 응급실 통해 입원함(이동 방법:눕는 차). 입원 교육 시행함. 중환자실 보호자 교육함. 환자권리장전 및 고충 처리에 대해 설명함.


CT 검사 결과 다발성 골절(두개골, 안와, 광대활)과 함께 외상성 경막하출혈, 지주막하출혈이 관찰되었다. 백남기 농민의 CT 영상과 의무기록을 검토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김경일 신경외과 전문의(전 서울시립동부병원장)는 “비유하자면 치약 옆구리가 터지듯이 안에 있어야 하는 뇌 일부가 삐져나오는 상황이었다. 뇌 손상이 너무 심해 수술한다고 해도 소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9시30분께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가망이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옮기라’는 설명을 강 아무개 응급실 레지던트에게서 들었다. 이 레지던트가 작성한 초진 기록은 치료 목표를 ‘supportive care’(보존적 치료)로 잡았고 퇴원 시기는 1주일 이내라고 했다.

당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가 작성한 응급실 기록 역시 “환자의 neurological status (신경학적 상태), brain(뇌) CT 소견상 호전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경외과적 수술 시행한다 하더라도 예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썼다. 여기에는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이 아무개 레지던트, 최 아무개 임상강사(펠로), 조 아무개 교수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 아무개 레지던트가 사인을 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백남기 농민은 EICU(응급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입원 당시 과거 병력 난은 ‘무’로 체크되었다.



23:35 수술장 보냄(이동 방법:눕는 차). op(수술) 후 SICU(외과계 중환자실) 1로 전동 감.

“오후 10시30분에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과장이 급하게 등산복 차림으로 와서 수술을 이야기했고 가족들이 동의했다.” 백도라지씨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응급의학과에서 작성한 입원 경과에는 이렇게 적혔다. “처음 내원 시 없던 pain response(통증 반응) 생겼으며, 백선하 과장님 검진 후 EM op.(응급수술) 결정하였습니다.” 신경외과가 작성한 입원 경과 기록을 보면 수술의 목적은 ‘life-saving’(생명 유지)다.

이 수술이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백선하 교수가 사망진단서에 ‘병사’ 표기를 지시하면서 새삼 논란이 되었다. 2016년 3월 백남기 농민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5월9일 정부가 제출한 답변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前 서울지방경찰청장(구은수)은 백남기의 부상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당시 이 사건 대회 관련 지역 책임을 맡고 있던 혜화경찰서 경찰서장의 근무를 종료시키고 곧바로 원고 백남기가 후송된 서울대병원으로 보내어 원고 백남기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끔 조치하였습니다.”

ⓒ연합뉴스
10월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경일 신경외과 전문의(사진 맨 오른쪽)가 ‘부검이 불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뒤에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혜화경찰서장은 당시 주말 야간이어서 응급실에 인턴밖에 없던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장에게 긴급히 협조 요청하여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최고 전문의인 백선하가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와서 백남기의 진료 및 수술 집도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경찰이 병원에 협조 요청을 해 이뤄진 수술이라고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정용근 당시 혜화경찰서장은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경무과 소속으로 청와대 기획비서 자리에 파견 중인 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백씨의 사망 진단서.
경찰 답변서는 응급실에 인턴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지만 적어도 의무기록상으로는 사고 당일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이 아무개 레지던트, 최 아무개 임상강사(펠로), 조 아무개 교수가 있었다. 이들은 이미 백남기 농민 상태에 대해 수술을 해도 호전이 어렵다며 보존적 치료를 결정한 상황이었다. 그 뒤인 오후 10시30분 신경외과 과장인 백선하 교수가 환자를 재평가해 수술을 결정했다.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가망이 없어도 수술하는 경우는 있지만, 경막하출혈 제거술은 신경외과 전문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수술이다. 먼저 다른 선생님이 오고 판단한 건데 나중에 최고 시니어급이 내려와서 자기 담당으로 경막하출혈 수술을 하는 건, 누가 봐도 위에서 부탁이 없으면 흔치 않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오병희 당시 서울대병원장은 사고 당일 경찰에게 어떤 협조 요청을 받았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경찰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가까운 병원이고 환자 상태가 위중하니 경찰이 ‘빨리 봐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나한테 했는지 병원 당국에 했는지 당직에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다. 세부 전문이 뇌종양인 백선하 교수가 수술을 맡은 이유에 대해서 오 전 병원장은 “내과의사가 전공이 심장이라고 심장만 보는 게 아니다. 백 교수가 아마 과장이어서 그런 걸 총괄하는 뜻에서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백선하 교수가 오기 전 수술 여부를 판단한 교수로 기록에 등장한 조 아무개 교수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나는 그날 백남기 농민을 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수차례 연락했지만 조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15-11-15 03:25 수술장에서 옴

백남기씨는 4시간 가까이 감압을 위한 두개골 절제술과 경막하출혈 제거술을 받은 뒤 다음 날 새벽 3시25분 수술장에서 나와 SICU(외과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수술 뒤에도 백남기 농민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5년 12월1일 백선하 교수가 레지던트 3명과 환자를 보았을 때 M1(운동반응이 없음)에서 M4(통증에 대해 피하고자 하는 반응)로 운동반응에 변화가 있었던 정도다(간호기록상으로는 11월22일부터다). 백남기 농민의 운동반응은 사망까지 M4를 유지했다. 백도라지씨는 “아빠 팔을 높이 들어 올리게 하면 어깨를 움찔하는 정도였다. 사건 이후 아빠가 움직여서 뭔가를 하는 걸 보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추적 뇌 단층촬영에서 다량의 뇌출혈에 연이은 뇌부종, 뇌경색으로 인한 저음영이 뇌 전반에 걸쳐 확인되었다. 뇌사는 아닌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백선하 교수(왼쪽)와 이윤성 서울대병원 특위 위원장(오른쪽) 의견은 엇갈린다.
2016-9-6과 9-7 저녁 면회 시간에 걸쳐 장시간 보호자와 상의함


와병 생활이 길어지며 폐렴 등 합병증이 발생했다. 2016년 7월15일 진균 폐렴 및 진균 패혈증, 이로 인한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급성신부전이 발생했다. 이틀 뒤인 7월17일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평소 고인 뜻에 따라 혈액투석과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다. 백도라지씨는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는 혹시 의식불명이나 소생 가능성이 없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고 엄마나 자식들에게 말했다”라고 말했다. 백남기씨는 세례명이 임마누엘(우리 함께 있다는 뜻이다)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다시 진균 패혈증과 폐렴, 범혈구감소증이 발생한 2016년 9월6일 이후 가족은 혈액검사, 승압제(혈압을 높이는 약), 항생제, 수혈 등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 같은 가족의 의사에도 병원은 가족을 거듭 설득해 치료를 계속했다. “전공의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지정의 교수님과의 상의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호스피스센터 또는 법률팀, 의료윤리위원회 등에서의 조율이 필요할 수 있음에 대해 설명함(9월6일 입원경과 기록)” “지정의 교수님과 한 번 더 상의하여 항생제 투약 유지하며, 최소한의 혈액검사를 시행할 것과 혈액검사 수치에 따라 필요한 수혈은 진행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함(9월22일 입원 경과 기록)” 같은 메모가 적혔다.

이윤성 특위 위원장은 “연명의료 결정에 관해 제정된 법에 비추어볼 때 적법한 연명의료 계획서였고, 따라서 그것이 사망에 무슨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윤리적으로나 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2016-09-22 진료부원장(내과 신찬수 교수님) 실에 T.2200에 환자 GFR(사구체 여과율, 신장 기능 척도) 감소 및 소변량 감소에 대해 보고드림. 진료부원장님께 말씀드리겠다고 전해 들음.

9월19일 백남기 농민의 소변량과 GFR이 감소하며 급성신부전이 발생했다. 백남기씨를 담당한 권 아무개 레지던트가 이 같은 상황을 내분비내과 소속인 신찬수 진료부원장에게 보고했다는 메모가 의무기록 곳곳에 남아 있다. 승압제 투여 여부에 대해서도 진료부원장에게 보고하고 논의했다.

“2016-09-24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과 환자 상태에 대해 논의함. 현재 승압제 사용 반드시 필요하다 의견 나눔. 일전에 환자 병전 의사와 보호자 전체 의사로 승압제 사용을 비롯하여 투석, 심폐소생술 하지 않기로 사전연명치료계획서 작성한 바 있음. 환자 상태 악화로 승압제 사용에 대해 보호자(딸, 아내)와 유선으로 한 번 더 상의함. 가족들 간에 충분한 상의 끝에 승압제 사용 원치 않음을 명확히 함. 하지만 본인은 전공의로, 지정의 교수 및 다른 교수님들과 이에 대해 상의해야 함에 대해 설명함.”

상의 대상에는 ‘법률팀’도 등장한다. 병원은 가족을 설득해 승압제 투여를 시작했다. “2016-09-24 법률팀과 상의하였고, 보호자 의견뿐만 아니라 의학적 결정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상의됨. 이에 대해서는 향후 필요 시 의료윤리위원회 등 공식적인 합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논의됨. 이에 보호자와 한 번 더 상의하여 승압제 투약 시작하였고, 대신 적절한 제한은 두고, 승압제 증량하기로 상의함.” “2016-09-25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승압제 사용.”

의무기록을 검토한 인의협 소속 이보라 내과 전문의는 “통상적 오더 체계가 아닌 외부 지시를 받아서 진료했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보통의 경우 환자가 의식이 없고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연명치료 거부 사인을 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는데, 백남기 농민의 경우는 고인 생전 뜻과 가족이 의견을 밝혔는데도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계속했다”라고 말했다. 의무기록을 검토한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부원장과 상의했다는) 기록을 차트에 남긴다는 것은 치료에 외압이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16-9-25 13:58 asystole(무수축:어떤 일정한 시간, 심장이 수축하지 않는 상태)로 사망 선언함.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하여 사망진단서 작성함.

결국 승압제 투여에도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 그 직후 문제의 사망진단서가 작성됐다. (가)직접 사인에 심폐 정지, (나) (가)의 원인에 급성신부전, (다) (나)의 원인에 급성 경막하출혈을 적고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표기한 그 진단서다. 사망 원인을 기재할 때 심장마비, 심장 정지, 호흡부전, 심부전, 심폐 정지와 같은 사망의 기전이나 사망에 수반된 징후는 일반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며 사망의 종류도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하므로 ‘외인사’라는 대한의사협회의 지침과 달라 비판을 받았다. ‘두개골이 골절되면서 뇌출혈이 매우 심하게 일어났다’고 적힌 수술 기록과도 맞지 않다.

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권 아무개 레지던트가 백남기 농민 가족에게 “나는 권한이 없다”라고 말한 게 보도되면서 외압 논란이 일었다. 이 레지던트는 의무기록에 “신찬수 부원장, 백선하 교수와 상의하여” 작성했다는 메모도 남겼다. 백남기 농민의 사위는 기자회견에서 “사망진단서 쓸 때 옆에 있었다. 레지던트가 (백선하 교수인지 신찬수 부원장인지 알 수 없지만) 지시를 내린 사람에게 ‘병사요?’라고 세 번 정도 물었다”라고 말했다.

백선하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레지던트는 내가 쓴 내용을 받아 적었을 뿐이고 모든 진단서는 내가 썼다. 환자분의 치료 및 진단서 작성 관련하여 어떠한 형태의 외압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윤성 특위 위원장은 “서울대학교병원은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는 환자나 주요 인사가 입원하면 부원장이 환자 상태에 대해서 수시로 보고를 받는다. 백남기씨도 역시 수시 보고를 받는 대상이었다”라면서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 외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윤성 위원장은 이후 언론에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고, 없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해야 맞다”라고 정정했다.

백선하 교수가 “환자분께서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사망하였다고 보고 병사로 표기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보라 내과 전문의는 “처음에 외상으로 병원에 와서 마지막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약물 투여로 급성신부전이 와 예상된 경과에 따라 사망했다. 조금 더 살았을 수는 있지만 무한정 연장할 수는 없는데도 보호자가 치료를 반대해 사망했으므로 병사라 주장하는 건 의학적으로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김경일 신경외과 전문의는 “결국 모든 과정이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쓰기 위해서였나라는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외압이나 청탁이 있었으니 그렇게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백선하 교수가) 이렇게 일이 커질 줄 알았다면 더 신중했을 텐데 한 번 거짓말을 하고 나니 양심을 판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의 엉뚱한 후폭풍은 부검 영장 유효 기한인 10월25일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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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통’ 전문 ‘새누리당’ 어떤 이득을 얻었나

‘대선을 앞두고 총을 쏴달라고 북한에 요구했던 한나라당’
임병도 | 2016-10-17 08:47:47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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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의 결재를 받고 외교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고 사실상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재인 전 의원을 비난했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지난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의견을 물은 뒤 기권했고, 그 과정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가 개입됐다는 부분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알아본 바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안보장관조정회의에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논의했고 관련 참석자들이 각각의 논거를 들면서 찬성과 기권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다수가 당시 총리 회담 등 다양한 채널의 (남북) 대화가 진행되고 있어 기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어서 노 대통령이 기권으로 결정했다가 ‘사실’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정조사 등을 주장하는 새누리당을 향해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하냐”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진짜 북한과 내통했는지, 무슨 이득을 취하려고 했는지 그 사례를 모아봤습니다.

‘방북 후 3일 만에 신당 창당을 했던 박근혜’
박근혜방북신당창당-min
2002년 2월 28일 1년 전에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탈당합니다. 박근혜가 탈당한 이유는 이회창 총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근혜는 이회창 대세론에 밀려 한나라당 내에서는 도저히 대선 경선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02년 5월 11일 박근혜 의원은 김정일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방북을 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박 의원은 김정일과 속기사만 배석하고 단독 회담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돌아온 박근혜 의원은 3일 뒤인 5월 14일 ‘한국미래연합’ 창당 대회를 합니다. 탈당 후 신당 창당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던 박근혜였지만, 방북 이후 쏟아진 관심과 주목 속에서 화려하게 이회창과 승부를 겨루는 대선주자로 급부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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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오는 말은 박근혜가 2002년 방북 후에 나왔던 발언들이다.

박근혜의 방북에 대해 보수우익은 ‘(박근혜가)김정일을 만난 뒤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비판을 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보수우익은 ‘김정일 위원장을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할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박근혜는 ‘지금 북한의 지도자인 이상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에는 동북아 물류기지 건설프로젝트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시했던 박근혜는 2012년 대선후보로 선거에 나섰을 때는 철저히 남북정상회담의 NLL 문제를 왜곡시켜 안보 논리로 밀고 나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전에 보여줬던 북한과의 신뢰구축보다는 견고한 안보를 내세우며 ‘안보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까지 심어줬습니다. 결국, 그녀가 걸어온 길을 본다면 선거 때마다 북한을 철저히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에 두 차례나 사전 통보를 했던 박정희’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평화통일’과 ‘안보’였습니다. 유신헌법은 북한을 굴복시켜 흡수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신 군사독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웠습니다.
박정희는 공산화를 막고 안보를 튼튼하기 위해 유신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북한과 내통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신헌법북한통보-min
▲ 1972년 10월31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비밀문건. 박정희 정권이 유신정권 출범을 북한에 미리 알려준 사실을 미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내용 ⓒ 한겨레신문

1972년 10월 31일 미국대사관은 국무부에 비밀문건을 보냅니다. 이 비밀문건에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비롯한 남측 인사들이 박성철 북한 부수상 등 북한 인사를 만나거나 메시지를 통해 ‘유신헌법’을 사전에 알려줬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박정희가 북한에 사전에 알려준 사실에 대해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에서 국무부 문서를 제시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 자료들은 박 정권이 겉으로는 공산화 방지, 즉 국가안보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북한과 내통하면서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구축해 나간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김일성이나 박정희나 서로를 비난하고 전쟁 공포를 조성했지만, 속으로는 긴밀한 내통을 하면서 남북한 서로 정권유지를 위한 독재체제를 구축했던 셈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총을 쏴달라고 북한에 요구했던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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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꾸민 북퐁 공작을 보도한 1998년 10월 3일 MBC뉴스 ⓒMBC뉴스 캡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비선조직이 북한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동생 회성씨를 중심으로 한 비선조직이라고 봤지만, 실제는 안기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건이었습니다.
안기부는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먼저 국내 재벌로부터 선거자금을 받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오익제 편지 사건’ 등을 통해 김대중 후보에게 ‘색깔론’ 공작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판문점에 총격 사건이 벌어지면 전쟁공포 등을 이용해 선거에서 승리하는 공작을 꾸몄습니다.
선거 때마다 불어오는 ‘북풍’은 보수층의 집결과 전쟁 공포에 따른 중도층의 보수정당 지지로 이어졌습니다. 새누리당이 아직도 선거 때마다 ‘색깔론’,’안보론’을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탁월한 북풍 효과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기권 결정 후 북한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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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내통’ 주장에 대한 문재인 전 의원의 반박 페이스북 ⓒ페이스북 캡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내통’이라며 비판하자, 문재인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단한 모욕이다. 당대표란 분이 금도도 없이”라고 반발했습니다.
문 전 의원은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닌가. 앞으로 비난하면서 등 뒤로 뒷거래, 북풍, 총풍,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관계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과거 북풍 사건을 벌인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 “이제 좀 다른 정치 합시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페이스북에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의록을 직접 구입해 읽어봤다며 “그런데 책에도 나와 있지만 북한의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한 것은 이미 우리가 기권으로 결정을 내린 이후의 일입니다. 북한이 기권하라고 해서 기권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라며 새누리당을 향해 “제대로 정독을 좀 하세요”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내통하며 이득을 취한 사람들은 박정희, 박근혜, 새누리당이었지, 결코 야당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이정현 대표의 ‘내통’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최순실 의혹을 모면하기 위한 ‘색깔론’ 공세라고 볼 수 있으며,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65 

지하철 1호선 고장, 기관사는 군인이었다


[팩트체크] 기사 쏟아지지만 이유는 없어… 성과연봉제 파업으로 대체인력 투입, 철도노조 “정부가 국민안전 볼모”

이하늬 기자 hanee@mediatoday.co.kr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17일 오전 고장이 난 지하철 1호선의 기관사와 차장이 모두 대체인력인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노조는 국민의 안전이 걸린 사안에 정부가 묵묵부답을 하고 있다며 대체인력 투입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열차 지연은 오전8시4분께 종로3가역에서 인천행 코레일 1601호 열차의 출입문 표시등 고장으로 발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해당 열차는 1시간30분이 지난 9시37분께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사고 발생 직후 기동 검수원이 출동했다고 밝혔다. 

‘지하철 1호선’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출근길 시민들의 불편을 강조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날 오전 90분 동안 출고된 기사만 170개가 넘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고장난 열차 탑승객들은 강제로 비상문을 열고 열차에서 내렸다. 

▲ 서울 군자차량기지에 지하철들이 서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하지만 해당 열차의 기관사와 차장이 모두 대체인력이라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철도노조와 서울시에 따르면 기관사 대체자는 군인이었으며 차장은 정보기술단 소속의 직원이었다. 철도노조 파업이 길어지며 대체인력이 출근길 전철을 운행한 것이다. 

철도노조는 꾸준히 대체인력 투입 중단을 요구해왔다. 철도노조는 “대체인력은 철도의 안전 운행이 필요한 숙련과 경험이 부족해 안전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며 “또한 대체인력 교육이 매우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고 비판했다. 

대체인력과 관련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2일에는 차장이 대체인력인 소요산행 1호선 열차에서 출입문 취급 미숙으로 승객 2명이 팔목과 어깨가 출입문에 끼어 경상을 입었고 16일에는 용산발 여수행 KTX열차의 대체승무원이 발차 도중 출입문을 개방해 열차가 비상 정차했다. 

심지어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에는 시민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내리던 84세 승객이 열차 문에 끼었지만 전동차 기관사는 이를 모른 채 출발했고 1미터 이상을 끌려간 끝에 승객은 숨졌다. 당시 출입문 개폐 조작을 담당하는 대체인력은 교통대학 학생이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가 하루빨리 업무에 복귀하면 되지 않냐는 지적에 백성곤 파업 상황실장은 “철도노조는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에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오히려 정부가 국민안전을 볼모잡고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한 한 승객은 “기관사 자리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의아했다"며 "이제는 버스를 타야겠다”라고 말했다.

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개벽예감223]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 
기사입력: 2016/10/17 [10: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한국의 인터넷언론매체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 사진은 2016년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광복절 제71주년 경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기는 장면이다. 그 날의 축사에서도 그는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꺼내놓았다. 그의 대북발언은 특히 2016년 6월 이후 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을 사용하는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대북발언의 강도를 비교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이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격적이며 극렬한 대북발언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분석하면, 한 가지 변화양상이 돋보인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취임 직후부터 험하게 들려오기는 했지만, 특히 2016년 6월 이후 대북발언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발언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까지 사용하여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내었다. 2016년 6월 1일부터 이 글을 탈고한 10월  1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6월 6일 -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집할수록 고립과 자멸에 빠질 것이라는 발언
6월 13일 - 비핵화 없는 북의 대화제의는 기만일 뿐이라는 발언 
7월 11일 북의 도발위협을 방치하는 것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
8월 15일 - 북의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겠다는 발언 
8월 23일 - 북측 체제가 균열조짐을 보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발언
8월 24일 - 북의 무력도발이 임박하였다는 발언
9월 6일 - 북의 무력도발은 북의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발언
9월 12일 - 북이 핵개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발언
10월 1일 - 공포정치와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는 북의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1일 - 폭정에 신음하는 북에서 대량탈북이 있을 것을 예상해 대량탈북을 수용 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발언
10월 13일 - 북의 가혹한 공포정치가 북측 주민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6일 - 북에서 사회지도층 탈북이 증가하는 것은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지난 6월 이후 더욱 공격적이고 극렬하게 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서로 무관하게 그 두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인과관계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2016년 5월 4일부터 1박2일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갔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1,750명 요원들이 근무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을 이끌면서, 16개에 이르는 각종 국가정보기관들의 수장으로서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며,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극비정보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매일 직보하는 고위직이다.

그런 고위직에 있는 ‘거물’이 왜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서울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협의한 것일까? 이 흥미진진한 물음에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부와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부에 각각 실린 보도기사들이다. 그 두 보도기사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한민구 국방장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 청와대 고위당국자, 국가정보원 고위당국자를 줄줄이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만나지 않은 것일까?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핵심 소식통”은 클래퍼 국장이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느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잡아뗐다. 만일 클래퍼 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고 명백히 답변 하면 되는데, “확인해줄 수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꺼내놓은 것은, 그 두 사람의 비밀회동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1년 2월 3일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정보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는 클래퍼 국장은 매일 대통령집무실에 들어가 극비정보를 대통령에게 직보한다. 그런데 그런 '거물'이 2016년 5월 4일 갑자기 서울에 나타났다. 여러 정황들을 분석해보면, 미국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서울에 밀사로 급파된 클래퍼 국장은 언론 취재망을 따돌리고 은밀히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과 비밀회동을 가졌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당시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클래퍼 국장의 이전 서울방문사례를 들춰보면, 그는 2011년 5월 30일 서울방문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고, 2014년 5월 13일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다.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회동사례를 보면, 그가 2016년 5월 4일 서울방문 중에도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클래퍼 국장이 2011년 5월과 2014년 5월에 각각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당시 체류일정도 2박3일로 잡혔었는데, 2016년 5월 그가 서울을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며 체류일정도 1박2일로 짧아졌다. 이것은 2016년 5월 세 번째 서울방문이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서울방문과 달리, 뭔가 급하고, 더 중대한 임무를 갖고 방문한 것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2016년 5월 4일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보낸 사람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다. 국가정보국장이 대통령의 지시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비공개로 방문해서 그 나라 수뇌를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급파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중대한 문제를 협의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백악관이 다른 나라에 대통령 특사(presidential envoy)를 파견하게 되면, 일정한 외교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준비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불거져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외교절차를 생략하고 밀사(secret emissary)에게 특명을 주어 급히 파견하는 관례가 있다. 그런 특별관례를 생각하면, 2016년 5월 4일 서울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난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급파된 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고위당국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는 “클래퍼 국장과의 대화 내용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인용문은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조미평화협정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만일 그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청와대는 자기에게 몰아친 일파만파를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사를 보냈는지, 그리고 왜 과거사례들과 달리 청와대 비밀회동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분명해진다.

“한미동맹은 영원무궁하다”고 외치는 미국의 선전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믿어온 열렬한 동맹예찬론자이며, 주한미국군과 핵우산이 한국과 자신을 지켜준다는 미국의 선전을 신봉하는 정통파 친미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꺼내놓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조미평화협정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지름길이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의 폭발뇌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어찌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니 그로서는 종내 생각하기 싫은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은, 비밀회동 직후인 2016년 6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원인을 밝혀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대북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클래퍼 국장과 만난 비밀회동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심리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지난 40여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의를 수없이 보냈으나, 미국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실전급 대북공격연습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그처럼 오만방자한 미국이 이제는 자기 입으로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거론할 만큼 태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국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만큼이라도 바뀐 것일까?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꿔놓을 극적인 전환계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적국이 힘을 집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확 떠밀어버릴 때, 바로 그럴 때 파멸공포에 전율하는 ‘거대한 공룡’은 황망히 꼬리를 내리며 적국에게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날강도 미제와는 반드시 피의 결산을 보아야 한다”며 적개심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춘 여세를 몰아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 백악관을 파멸공포로 전율하게 만들었을 때, 바로 그럴 때 미국은 이제껏 40여 년 동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평화협정문제를 황망히 꺼내들며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 ▲ <사진 3> 이 사진은 1953년 7월 27일 김일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6.25전쟁은 3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교전쌍방이 정전협정문에 각각 조인한 시간은 불과 3시간이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전쟁이 재발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무력대치상태가 63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을 바꾸어 평화를 실현하자고 수없이 제의해왔으나, 미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온갖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는 핵위협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비록 세상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대통령 밀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조미평화협정이라는 사상 최대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 앞에 나타나기 11일 전인 2016년 4월 23일 조선에서 일어난 사변이다. 그 날 조선은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초강력한 핵타격수단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수중발사하는 시험에 성공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극성’ 수중발사시험을 지도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제는 남조선괴뢰들과 미제의 뒤통수에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멸적의 비수를 꽂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동해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 포물선 비행운을 하늘가에 수놓으며 날아간 ‘북극성’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자기 뒤통수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미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입 밖에 전혀 꺼내지 않던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청와대로 가기 전 국방부에 들러 한민구 국방장관과 담화하면서 “북한이 지난달 23일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 KN-11)의 위협능력과 개발실태도 공동평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미국의 관심이 조선의 ‘북극성’ 수중시험발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청와대 비밀회동을 거론하면서 그냥 스쳐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평화협정을 먼저 간청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그 문제를 제의해오면 그에 응하겠다는 단서가 미국의 손에 들려있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기사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당국자는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의 필요성을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데다 북한도 당대회 이후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래퍼 국장이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그런 국면에 대비하는 차원 같다”고 말했는데,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청와대 비밀회동이 있은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6일부터 나흘 동안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공식 제의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제의에 응답할 긴급준비가 요구되었기에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4> 미국 대통령 밀사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비밀회동을 가진 날로부터 이틀 뒤인 2016년 5월 6일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개최되었다. 위의 사진은 당대회 둘째날 김정은 당위원장이 사업총화보고를 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김정은 당위원장이 사업총화보고에서 평화협정을 제의할 것으로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대통령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급히 보냈지만, 미국의 그런 섣부른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미국의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의 섣부른 예측과 달리,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과거에는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수없이 제의했으나 요즈음에는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는 까닭은,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대미핵협상을 영구히 중지하고 대미핵압박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지난날 조미핵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미국이 억지와 전횡을 부려 협상이 중단되면 조선은 핵시험이나 탄도미사일발사연습을 단행하는 핵압박으로 미국을 몰아세워 핵협상을 재개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지난날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이었다.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을 다시 재개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적 핵공격력을 가졌으므로,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에서 전략핵압박으로 전환되었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강력한 핵압박으로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이 벼랑에서 떨어져 파멸하든지 하는 최후의 양자택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다.

2016년에 조선의 대미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현상들은 조선이 전략핵압박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을 최후의 양자택일로 끌어가고 있으며, 조선의 연속적인 전략핵압박을 받는 미국은 양자택일의 아슬아슬한 벼랑끝으로 떠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정치사를 새로 쓰게 만들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숨 막히는 마지막 대결이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서 왕왕 벌어지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올해 2016년에 들어와서 조선은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미는 전략핵압박강도를 높이기 위해 핵무기병기화 완성단계를 하나씩 세상에 공개해오고 있으며,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은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전략핵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이 깨져버린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그런 군사적 움직임은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5년 11월 4일 남해 해상작전구역에서 전쟁연습을 마치고 부산해군작전기지를 떠나는 미해군 제7함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비행갑판에 미해군 병사들이 도열한 장면이다. 부산항 앞바다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떠있는 오륙도의 아름다운 풍치가 그들 어깨 넘어 멀리 보인다. 미해군 제7함대 항모타격단은 이 글을 집필하던 2016년 10월 중순에도 남해에 출동하여 전쟁연습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추었고, 그 힘으로 미국에게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며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고 있는 중이다. 요즈음 미국이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은 조선의 강력한 전략핵압박에 떠밀린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날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핵협상궤도에서 이탈한 미국을 다시 끌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무려 10년 이상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조선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고 있는 오늘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마지막 대결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이다. 그 마지막 대결은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미국이 파멸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예견하건대,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지 않으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게 될 것이고,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에게 덤벼들면 조선은 최후결전으로 미국을 파멸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청와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핵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한 ‘겁쟁이’ 미국의 초라한 경력에 따르면,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면, 조선은 그 간청을 받아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미평화협정은 급속히 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장기적인 평화회담을 진행할 처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평화회담이 지난날 진행되었던 조미핵협상처럼 장기화되면, 안보위험에 빠진 한국이 자기의 생존방도로 핵무기개발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에게 모두 매우 불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은 평화회담을 신속하게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미평화협정이 주한미국군 철수와 핵우산 철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고 핵우산을 철거하지 않으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길은 없다. 조선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미국이 아무 때나 휴지조각처럼 내던질 수 있는 평화협정문이나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핵우산을 철거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할 결정적인 정세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날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최후의 날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다시 말해서,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의 대격변 속에서 벌어질 두 갈래의 사변들인 것이다. 

위와 같은 전망과 예측에 따르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기 전에 백악관 내부에서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기하는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추론된다. 이런 추론은 미국이 한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동맹예찬론자들과 친미주의자들의 믿음이 몽매하고 허망한 환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급격한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태도를 갑작스럽게 180도 바꿔버린 충격적인 경험은 세계정치사에서 흔하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매체들이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분석기사를 내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문화일보> 2016년 9월 21일부에 실린, “미, 한국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 중과 수교하면서 대만 ‘헌신짝’처럼 버려”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 시선이 멎는다. 그 기사에서 한국의 어느 국제정치학자는 “우리 국민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은 아무런 문제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우리는 미국이 지켜주기에 별 걱정할 것 없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은 결코 한국에서 떠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1960년 6월 대만 타이뻬이를 공식 방문한 드와잇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장제스 당시 대만 총통과 그의 부인 쑹메이링과 함께 환영식장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유일하게 대만을 공식방문한 대통령이다.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미국은 한때 대만에 미국군을 주둔시켰고, 대만방위사령부를 설치하였고,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켰고, 그로써 대만을 자기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만들었지만, 미국과 대만의 그런 관계는 중미관계정상화라는 거대한 정세변화에 떠밀려 오래 가지 못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또한 그 기사에서는 지난날 미국과 대만의 관계변화를 거론하면서 “미국은 1972년(1979년을 착오함-옮긴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우방국인 대만을 버렸고, 대만은 유엔회원국 지위에서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는 경험을 상기시키고,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 것처럼 한국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그 보도기사를 쓴 기자는 미국-대만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였으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지배권 안에 붙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중국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지 못했고, 되레 미국의 계략에 끌려 다니며 수교회담을 오랫동안 지루하게 진행하였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날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 조선, 미국, 한국 3자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할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1954년 12월 2일 미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1955년 3월 3일 그 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로써 대만은 미국에게 안보를 내맡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미국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대만관계가 언제까지나 원상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계기는 중미관계정상화였다. 1971년 7월 9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대통령 밀사로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였는데, 그로부터 6일 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s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방중초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써 중국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중미수교회담이 시작된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핵무기와 위성운반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기의 첫 핵시험을 진행하였고, 1966년 10월 27일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으며, 1967년 6월 17일에는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다. 중국은 핵무장에 성공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핵시험을 45차례나 진행하면서 자기의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 발전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국은 1970년 4월 24일 자기의 첫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중국이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면서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은 깨져나갔는데, 그런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과 적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971년에 미국이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둘째, 196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소련을 사회제국주의라고 헐뜯으며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고, 미제국주의보다 사회제국주의가 더 위험한 존재라고 하면서 새로운 대소전략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중국이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소련의 적국인 미국과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 1971년에 중국이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중국이 핵보유국, 인공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올라서자 유엔에서 중국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를테면,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중국 대표를 유엔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대표들이 유엔에서 불법적으로 차지하였던 자리에서 그들을 축출”한다고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안 2758호를 채택하였다. 그로써 유엔은 대만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중국을 영입한 것은 물론이고, 대만의 유엔회원국 자격도 박탈하고 유엔 밖으로 완전히 축출해버렸다. 이것은 중화민국이라고 참칭해온 대만이 하루아침에 국가지위를 잃어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말해준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7> 위쪽 사진은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에서 대만을 축출하고 중국을 받아들이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되자 저우수카이 당시 대만 외무장관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장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하고 중국을 유엔에 가입시킨다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통과된 순간, 현장에 있던 중국 정부대표들인 교관화와 황화가 기쁨에 넘쳐 활짝 웃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대만과 단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대만방위사령부(Taiwan Defense Command)를 대만에 여전히 존치시키면서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켜놓았으며, 대만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하였고, 미국산 무기수출과 군사교류를 통해 대만군을 강화시켰고, 대만과 무역 및 투자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대만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안보위험이 닥쳐왔다. 그것은 1979년 1월 1일 중국과 수교한 미국이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종결(terminate)하겠다고 대만에게 통고한 것이다. 그에 따라 1979년 4월 28일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전원 철수하였다.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 두 번째로 빠졌는데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철수하기 18일 전에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채택하였다. 대만관계법에서 미국은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 미국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이 종결된 이후 미국군이 대만에 주둔할 수 없고, 미국군이 대만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수도 없지만, 미국군은 여전히 대만군과 고위급 군사회담을 계속 진행하였고, 대만군 고위지휘관들을 미국에 불러와 군사교육을 계속하였으며, 미국산 무기들을 해외수출경로를 통해 대만군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 중미수교 이후 대만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중국의 대미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대만을 자기 지배권 안에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 중국과 대만을 각각 상대하는 노회한 책략을 펼쳤던 반면, 중국은 미국의 책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대만을 귀속시키는 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중미수교로 대만을 미국의 지배권에서 분리시켜 자기에게 귀속시키려던 중국은 아메리카제국의 음험한 본성을 간과하였기에 전략핵압박으로 그 제국을 강박하지 못한 것이다.
▲ <사진 8> 2016년 8월 24일 조선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받으며 전략잠수함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소식을 대서특필한 보도기사에 "주체조선의 핵공격능력의 일대 과시"라는 표제를 달았다. 위의 사진은 그 날 동해 바다속에서 발사되어 해수면 위로 출수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이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장면이다. 초강력 전자기파(EMP)탄두를 장착한 '북극성' 한 방이면, 미국 본토 전역은 불과 5초 만에 죽음의 전신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다. 미국군이 운용하는 군사위성감시체계와 미사일방어체계가 제아무리 발전된 탐지능력, 요격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북극성'을 탐지할 수도, 요격할 수도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극성'을 가리켜 미국의 뒤통수를 아무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지금 조선이 바로 그런 '멸적의 비수'를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참으로 가긍한 신세가 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되는 것은, 오늘 조선의 대미전략이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1970년대 초 중국은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에 올라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렸으면서도 전략핵압박을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지 못한 채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그 수교회담이 장기화되었고, 그런 틈에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오늘 조선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동방의 핵강국’, 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오른 조선은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리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버리고 있으며,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미국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파멸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양자택일을 강박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제의 뒤통수를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참으로 가긍한 신세가 된 것이다.

만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에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남과 북은 평화통일을 급속히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경우 급속히 실현될 통일씨나리오에 대해서는 2016년 10월 10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격동시대에 생각하는 평화협정, 핵무장, 평화통일’에서 논한 바 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지금 조선은 중국도 손대지 못한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을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구는 중국에 비해 5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영토는 중국에 비해 8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조선이 왜 스스로를 ‘천하제일강국’이라 하는지 이해할 만하다.  

성주 찾은 이재명 "문재인 내통? 박정희가 원조 종북"


16.10.16 22:49l최종 업데이트 16.10.16 22:4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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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이 16일 오후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사드 배치 철회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조정훈

이재명 성남시장이 정부가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골프장 부지를 결정한 것에 대해 "특정 소수가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해치면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시장은 16일 오후 비가 내리는 중에도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는 성주군민들의 96일차 촛불집회와 김천의 57일차 촛불집회에 각각 참석해 주민들을 응원하고 정부의 일방적 소통을 비난하며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사드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대한민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핵 미사일 방어용이 아니라 미국의 엠디(MD) 미사일 방어전략의 일부라는 것이 이미 언론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보를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군비 경쟁이 격화되면서 전쟁 위협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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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이 16일 오후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성주 촛불집회에 참석해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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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이 16일 오후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성주 사드배치철회 96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 조정훈

이재명 시장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을 거론하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강하게 비난했다.


이 시장은 "북한도 엄청난 무기를 갖고 2천만이 사는 정치공동체다. 화난다고 우리 멋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당시 남북 정상이 만나고 화해 모드를 이어가던 때인데 유엔 결의안 갖고 북한 압박하고 뒤통수 때려서야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가의 정책을 물어보는 것이 능력이지 나 몰라라 지 맘대로 결정하는 게 잘하는 것인가"라며 "그런 것을 내통이라 하고 이적 행위라 하는 거 다 이유가 있다. 이런 문제 이야기 하면서 종북 빨갱이로 몰아서 기죽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진짜 종북이 뭔가"라며 "북한에 선거 불리하니까 총 좀 쏴줘라 하는 게 종북이다"라고 총풍과 북풍 등 새누리당의 과거 행태를 하나하나 들며 비난했다. 그는 "선량한 국민을 종북으로 모는 그들이 종북이고 반역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오히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 만들면서 북한에 먼저 알려주고 발표했다"며 "유신헌법이 국가안보에 중요했느냐?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북한에 알려준 것이 원조 종북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시장은 "김제동이 '나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경북 안동"이라며 "종북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불합리하게 뒤집어씌우는 것이기 때문에 눈 딱 부릅뜨면 사라지는 허깨비"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성주에서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김천으로 달려가 김천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참석해 김천 주민들을 응원했다. 이에 앞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원불교 성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이 시장은 성주를 찾은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 전체에 관한 문제이고 평화와 통일에 관한 문제"라며 "성주와 김천 주민들이 외롭게 싸우는데 많은 국민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어 "사드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며 "대한민국 안보에 도움이 안 되면서 오히려 안보를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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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96차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에서 한 참선자가 두 손을 모아 사드 반대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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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96차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사드 밴대'가 쓰인 머리띠를 메고 박수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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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외국 군대의 군사시설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국회 동의뿐만 아니라 국민의 합의는커녕 밀실에서 대통령이 혼자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시장은 성주와 김천을 방문한 후 보수 언론의 공격이 예상된다는 질문에는 '감수할 것"이라며 "정의와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허깨비 같은 공격은 이겨내고 정면 돌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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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사드 배치 철회 촉구 촛불집회에 나온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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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사드 배치 철회 9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천대책위 위원들이 성주군민들을 향해인사를 하고 있다.
ⓒ 조정훈

한편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 공동준비위원장 등 5명은 이날 성주 촛불집회를 찾아 함께 연대하기로 했다.

김종경 공동위원장은 "성주투쟁위와 원불교, 김천시민대책위가 사드 배치 결사 반대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연대의 힘으로 뭉치자"며 "미국과 새누리당 정권이 오만하게 추진하는 사드를 온몸으로 저지하고 평화를 지켜내자"고 호소했다.

박희주 공동위원장도 "국민이 없는데 국가가 어디 있고 성주와 김천이 없는데 이완영과 이철우 국회의원이 있겠는가"라며 "주민 대변하라고 보냈더니 주민들을 종북 좌파라고 매도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