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대표적인 대외인터넷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가 재미동포사회에서 미국의 오만성을 준렬히 규탄배격하는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민족끼리》는 2일자로 "최근 재미동포조직들과 재미동포전국련합회홈페지와 《프레스아리랑》, 《뉴스로》를 비롯한 재미동포 언론들속에서 남조선강점 미군의 《방위비분담금》증액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종료문제를 놓고 남조선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는 미국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가고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매체는 "동포조직들과 언론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운운하던 미국이 남조선의 《무임승차론》을 론하면서 《방위비분담금》증액을 위해 고위관료들을 서울로 내몰며 벌떼행각을 벌린것은 채권자가 빚쟁이 재촉하는 꼴을 방불케 한다고 하였다."고 소개했다.
매체는 이어 "더우기 이전보다 5배나 더 많은 《방위비분담금》을 내라고 생떼를 쓰던 미국측 협상대표가 제편에서 먼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고 《국회》의원들을 제집에 불러 《방위비분담금》증액을 독촉하는 서울주재 미국대사의 행위는 깡패의 세계에서나 볼수 있는 현상, 파렴치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였다."고 전했다.
매체는 "그러면서 《동맹》의 가치를 고용병수준으로 격하시키면서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을 강요하는 미국은 더이상 《영원한 동맹》도 《우방》도 아니다, 《한미동맹》은 주종관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미국중심의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동맹이며 미국의 행동은 오만성의 극치라고 규탄하였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우리 민족끼리》가 전한 재미동포사회내의 분위기와 관련한 기사의 전문이다.
주체108(2019)년 12월 2일 《우리 민족끼리》
재미동포사회에서 미국의 오만성을 준렬히 규탄배격하는 기운 고조
최근 재미동포조직들과 재미동포전국련합회홈페지와 《프레스아리랑》, 《뉴스로》를 비롯한 재미동포언론들속에서 남조선강점 미군의 《방위비분담금》증액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종료문제를 놓고 남조선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는 미국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가고있다.
동포조직들과 언론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운운하던 미국이 남조선의 《무임승차론》을 론하면서 《방위비분담금》증액을 위해 고위관료들을 서울로 내몰며 벌떼행각을 벌린것은 채권자가 빚쟁이 재촉하는 꼴을 방불케 한다고 하였다.
더우기 이전보다 5배나 더 많은 《방위비분담금》을 내라고 생떼를 쓰던 미국측 협상대표가 제편에서 먼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고 《국회》의원들을 제집에 불러 《방위비분담금》증액을 독촉하는 서울주재 미국대사의 행위는 깡패의 세계에서나 볼수 있는 현상, 파렴치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동맹》의 가치를 고용병수준으로 격하시키면서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을 강요하는 미국은 더이상 《영원한 동맹》도 《우방》도 아니다, 《한미동맹》은 주종관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미국중심의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동맹이며 미국의 행동은 오만성의 극치라고 규탄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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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일 일요일
절대권력의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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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행복보고서 1위 핀란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지국가SOCIETY] 핀란드에서 배우는 사회 실험과 혁신
코펜하겐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몇 군데 사회 실험과 혁신의 현장을 둘러보고 핀란드의 헬싱키로 떠났다. 이번 방문 국가들 중에서 가장 긴 4일 동안 체류할 예정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WHR; World Happiness Report)에서 덴마크가 선두를 차지했는데, 지난해와 올해는 핀란드가 1위를 차지해 덴마크 국민의 자존심이 좀 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핀란드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민의 행복감이 커졌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핀란드에서 이틀간 정부기관을 공식 방문하고, 기관들이 쉬는 주말에는 좀 더 편하게 핀란드 사람의 일상적인 문화와 생각을 접할 수 있는 도시재생지역, 도서관, 미술관 등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혁신 정책의 생산을 미션으로 삼은 핀란드 고용경제부, 다양한 주체와 협업을 바탕으로 취업률 95%를 자랑하는 라우라 응용과학대학, '실험하는 핀란드' 정책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핀란드 총리실이 공식 방문기관이다.
시민이 제안하면, 정부는 지원한다
핀란드는 유권자의 1.2%에 해당하는 5만 명이 발의하면 국회에서 이를 자동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시민발안제도를 2012년 개정 헌법에서 명문화했다.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핀란드 역시 직접민주주의 원리인 시민발안제도를 헌법에 명문화해 시민의 뜻과 의지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핀란드의 사회 실험과 혁신 정책의 전체적인 윤곽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총리실에서 진행한 '실험하는 핀란드(Experimental Finland)' 발표와 간담회 자리였다. 핀란드 총리실의 수석전문가 이라 알란코(Ira Alanko)는 실험하는 핀란드 정책에 왜 나섰는지, 또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핀란드는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와 역동적 시장경제, 혁신적 교육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 중의 하나다. 하지만 더욱 복잡해지는 외부 환경과 빠른 변화, 더욱 확실한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보다 혁신적인 실험 문화와 정책이 필요했다."

▲ 실험하는 핀란드 홈페이지. ⓒhttps://kokeilevasuomi.fi/en/frontpage
'실험하는 핀란드'를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 내건 것은 2015년 구성된 우파 연합정부인 유하 시삘라(Juha Sipila) 내각이었다. 이 우파 정부에서 처음으로 팀을 구성하고 관련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올해엔 사회민주당이 제1당이 돼서 좌파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그런데 좌파 연합인 안띠 리네(Antti Rinne) 내각에서도 이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집권 정당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 정책이 지속되는 것은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의 큰 장점이다. 좌우를 오가며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비추어보면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핀란드 정부는 시민과 사회단체 등의 제안을 받아 250여 건의 크고 작은 사회 실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실험하는 핀란드'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17~18년에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이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6년 스위스에서는 관련 안건이 국민발의를 통해 국민투표에 붙여져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기본소득이 국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실질적으로 실험한 것은 핀란드가 처음이다.
사회보험국(Kela)에서 진행한 핀란드 형의 기본소득 실험은 임의로 선정한 25~58세 시민 2000명에게 매월 560유로(약 72만 원)를 지급해 기본소득이 지니는 효과성을 검증하는 정책 실험이었다. 지급된 기본소득은 사용에 아무런 제한이나 보고 필요가 없으며, 취업을 하더라도 수급이 중단되거나 차감되지 않았다. 기본소득과 취업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번 실험에서 정부의 기대대로라면 기본소득 수급자는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취업률이 높아야 했다. 하지만 2017년만을 대상으로 한 예비 결과 보고서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2년의 실험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결과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최종보고서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기본소득제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외부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브리핑을 한 담당자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는 실험을 통해 하나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이 정책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책실험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우파 연합정부에서 시행한 기본소득 실험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해 정책 실험을 활성화하고 정책의 근거를 보다 확실하게 하려는 노력은 정당을 막론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듯 보인다. 핀란드 정부의 '실험하는 핀란드' 정책 때문인지 방문하는 곳들의 실험과 혁신 정책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주민과 함께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칼라사타마
이어 방문한 고용경제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거리, 자율주행버스, 실시간 개방형 교통신호 등의 실험적 프로젝트가 시민과의 교감 속에 진행되는 모습을 확인했다. 고용경제부는 주요 도시를 연결해서 더 큰 혁신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주목하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부가 주민과 교감하며 데이터를 만들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려는 자세가 눈에 띤다.
이를테면 자율주행 실험이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도시와 사람의 이동과 안전, 개인정보 등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세계의 자동차 대기업들이 데이터와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이를 실험하고 있다면, 핀란드 정부는 스마트시티로 만들고 있는 칼라사타마에서 주민과 함께 데이터를 만들고, 발생하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칼라사타마의 시민 참여를 위한 다양한 제도 중의 하나는 '혁신가 클럽(Innovators’ club)'이다. 주민, 공무원, 학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혁신가 클럽은 도입하려는 기술을 논의하고, 실험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거친 후 사업을 진행한다. 과학기술 발달이 재앙이 될지 축복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의 민주적 통제 능력이 재앙과 축복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유럽 현장 탐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중의 하나는 로레아 대학과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였다. 로레아 응용과학대학은 재학생 7800명 규모로 우리나라로 치면 전문대학 같은 곳이지만, 졸업생의 95%가 1년 안에 취업한다. 가장 취업률이 높고 인기가 좋은 대학이다. 핀란드의 대학교 학비가 무상인 것도 부럽지만, 대학이 지역사회의 참여 속에 혁신적 리빙 랩의 역할을 한다는 점은 더욱 부러웠다. 지역사회와 담을 쌓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대학들과 대조가 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재학 기간 공공기관, 기업, 단체들과 평균 40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면서 자신의 적성을 확인하고 능력을 계발하며, 참여 기관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생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그러니 취업률이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대학의 실험성과 역동성은 대학 총장이 직접 나와 이십 명의 방문단에게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도 엿보였다.
대학에서 리빙 랩을 진행하는 한 교실을 소개했다. 다소 인상이 험한 사람들이 교실에 있었는데, 다름 아닌 약물중독과 범죄로 10~20년의 수감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대학은 이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약물중독의 원인 연구, 법과 제도의 개선, 중독 위험 청소년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감 경력자들은 이 리빙 랩 과정을 통해 전문성을 획득하고 재취업까지 했으니, 사회적으로 보면 일거양득, 아니 일거사득 정도의 효과는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것을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유의 대전환이 없이는 생각하기 쉽지 않은 실험이다.

▲ 약물 중독자들이 리빙 랩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윤호창 제공
헬싱키 시민의 거실이 된 오디 도서관
헬싱키 시민의 거실로 불리는 오디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 도서관은 2018년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을 위해 싸운 시민에게 헌정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오디라는 단어에는 '헌정'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근래에 국내의 도서관도 많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오디 도서관은 국제도서관연맹에서 주는 ‘2019년 올해의 공공도서관’ 선정될 만큼 혁신적인 디자인과 개념을 담고 있었다.
'헬싱키 시민의 거실'을 핵심 키워드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오디 도서관은 기존의 책 읽는 도서관 개념을 파괴하고 있다. 1층은 시민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만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시민이 삼삼오오 회의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봉틀을 두고 옷 만드는 것을 배우고, 3D를 출력하고 음식을 배우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도서관에 컴퓨터 게임방을 들였다. 넓은 면적에 비해 장서는 10만 권 밖에 되지 않지만, 장서가 있는 3층은 가족들이 함께 놀고 쉬고, 도시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도록 창가에 휴게 의자를 비치해 두었다. 도서관 내부에 사우나 설치 여부 두고 논란을 벌였을 만큼 헬싱키 시민의 편안한 거실 개념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방문객이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지만 책 읽는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도서관은 조용하게 책만 읽어야 한다는 이미지와 상식이 무너진다.

▲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오디도서관. ⓒ윤호창 제공
우리 사회의 소통과 혁신,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 사회도 소통과 혁신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지만, 생각만큼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지는 못하다. 행복국가 핀란드를 둘러보니 약간이마나 변화가 더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가든, 지역사회든 축적된 신뢰자본이 부족하고, 힘을 가진 곳들은 권한과 책임을 나눌 자세가 되어 있지 않고, 민이나 관이나 소통과 협력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이외에도 원인은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신뢰지수가 높은 핀란드도 오디 도서관을 만드는 데 20년의 시간을 두고 시민의 뜻을 물어가며 건축했다고 한다. 장기적인 비전과 시선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북유럽 국가들은 시민들과 함께 리빙 랩, 폴리시 랩 등과 같은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려고 하는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신과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사회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한 압축 성장을 겪은 우리 사회가 넘어서야 할 과제는 많다. 공자의 지적처럼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역동성을 가진 곳이기에 우리나라도 신뢰의 구축과 함께 새로운 사회 실험과 혁신을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세상을 일굴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형은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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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4월 8일 새벽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 당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하재완(무직), 이수병(일어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송상진(양봉업), 우홍선(무직), 여정남(전 경북대 총학생회장)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
| ⓒ 권우성 | |
사형집행 중단의 날적이(일기의 순우리말)를 8000일로 채워가는 날입니다. 18년 전 이맘때쯤의 일로 기억합니다. 대학원생이던 저는 적지 않은 상금을 수중에 넣으려고 사형을 주제로 삼은 논문을 써서 투고했습니다. 당시에는 솔직히 저도 여느 평범한 시민의식이 그러하듯 형벌은 모름지기 저지른 죄에 응당한 되갚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충실했던 터라 형벌의 목적은 국가가 범죄의 피해자를 대신하는 공적 복수의 실현이라는 사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형을 지지하는 쪽에서 즐겨 제시하는 논거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입니다. 간명하게 말하자면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정서가 사형이 형벌로 존속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므로 사형을 감히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글을 써가는 과정에서 하나씩 깨우치게 된 사실은 법감정이라는 것의 실체는 불분명하고 여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각색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맹목에 가깝게 형성된 허구라는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을 뿐더러 불분명한 감정에 기대어 사형을 요구하는 것은 사형을 유지해야 하는 마땅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국민 67.9%가 알고 있다고 하는 사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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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봉길 의사 순국하시기 전, 목재 십자가 사형대에 묶여있는 모습 | |
| ⓒ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 |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 및 대체 형벌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조사의 일환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국민 1000명 가운데 67.9%가 사형이라는 형벌을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감히 말한다면 우리 국민은 사형이 생명을 단절하는 형벌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 실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사형이 얼마나 선고됐으며, 몇 명이 사형당했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물론 잠정적이지만 최소 923명에서 최대 1310명에 이르기까지 집계 방식이나 통계를 생산한 주체에 따라 제각기 다른 수치를 나타내는 결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 확정자를 집행한 내용은 다른 어떤 통계보다도 엄격하고 정확한 것이라야 합니다. 인간 존엄의 바탕이 곧 그 존재적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에 있기에 국가가 생명을 단절하는 형벌을 선택해 부과한 것이라면 그 결과에는 단 한 명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와 독재가 전횡하던 정권에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이에 관하여 그 어떤 경로로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결과가 빚어지게 되었을까요?
대다수 국민은 사형으로 흉악한 범죄자를 성실하게 단죄해 왔다는 국가가 제시하는 그릇된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인류 사회에서 사형은 패륜적인 흉악범죄자를 건강한 시민들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반대자와 그 세력을 효과적으로 말살하는 방책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조선의 국왕 가운데 순조는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917명의 백성을 국법을 바로 세운다는 미명 아래 사형의 형식을 빌려 참살하였고, 고종은 '병인박해' 기간 천주교를 믿는 백성들을 무려 8000여 명이나 사형에 처했습니다. 좀더 가까운 일제 강점 초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활동을 했던 이 땅의 수많은 우국지사들 또한 '적도처단례'라는 무시무시한 봉건적 법률의 표적이 되어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제주와 여수 그리고 순천에서의 사형집행, 급조한 악법에 따라 이루어진 한국전쟁 시기의 숱한 사형 집행 또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이념적 반대세력에게 억울한 누명을 덧씌워 죽이는 사법살인 내지는 사법학살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근현대사 약 200여 년의 기간만을 따져 보더라도 예상과 달리 강력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사형보다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자에 대한 사형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사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67.9%의 국민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악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아를 구분하여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던 한국전쟁 기간, 당시 정권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라는 대통령긴급조치를 급조하여 적을 돕는 이적행위를 한 부역자를 가려내 사형으로 말살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한 UN 소속 영국군 주둔지 인근에서는 부역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단심 재판에 의해 평상시라면 5년의 유기징역도 부과되지 않았을 범죄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가 빚어낸 일이었고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반인권적인 법령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법령은 1960년까지 존재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지만, 1975년 5월 유신체제 아래에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안)'이라는 명칭으로 부활하였습니다. 그 후 권위주의 정권이 극에 달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올 때까지 이 법령은 야수의 이빨을 숨긴 채 생명력을 이어왔고, 1989년 6월 '전시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으로 다시 이름을 바꾼 뒤 1990년대 문민정부에서부터 지금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전시대기법령'으로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휴면상태로 있겠지만, 만에 하나 전쟁을 비롯한 국가위기 상황에는 다시금 긴 잠에서 깨어나 단심 재판에 의한 사형 선고와 집행을 남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어왔던 형법을 비롯한 형벌 규범에는 흉악범죄에 대해서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존재할 뿐이라는 신뢰는 전혀 온당치 않는 일입니다. 사형집행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는 온건한 태도 역시 사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빚어진 오해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사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사형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25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형법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학자로도 유명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 <범죄와 형벌>이라는 저서에서 사형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이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사형제도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형 유지와 폐지의 입장은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지지자는 응보필벌의 복수가 곧 정의의 실현이며 부수적으로 범죄 예방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반대자는 오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사형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회복 불가능성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국가가 제대로 형성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사적 복수가 널리 허용되었고 따라서 나와 나의 가족, 나아가 내가 소속된 집단에 가해지는 부당한 공격과 침해에는 복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습니다.
국가체계가 갖추어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인이 일어나더라도 국가는 그것을 개인 간의 분쟁으로 간주하여 가급적이면 국가형벌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지만 굴복하지 않는 적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국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즉, 식량을 비롯한 한정된 자원을 적에게까지 분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적의 목숨을 단번에 끊는 것이었고, 이러한 조치는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이 일상화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자신의 신민으로 복속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가가 가지게 되면서, 달리 표현하자면 국가의 통제력 안에 이들을 관리하고 교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되자 감옥이라는 감금시설을 고안하게 됩니다. 범죄자 역시 국가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위를 일삼는 적으로 간주되었기에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계몽시대를 지나면서 나타나게 되는 사형의 완화와 폐지의 추세는 국가가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그 통제력 또는 통치 시스템 안에서 규제하고 단속할 수 있다는 검증된 믿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형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는 국가 논리의 핵심에는 외관상으로 국민적 여론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 본질은 그만큼 해당 국가의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사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대체로 국민을 그의 통제력 안에 둘 수 없음을 자인하거나, 국가의 정치체계가 불안정하거나 민주적이지 아니한 경우들이 대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벌의 외관, 그러나 형벌이 아닌
사형 지지자의 핵심 논거인 복수의 속성은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의 본능적인 보복 욕구의 충족 이외에 정의를 비롯한 어떤 다른 가치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정확히 셀 수조차 없는 사형집행 가운데 이른바 반인륜적인 생명 침해 범죄자들에 대한 집행이 있었고, 지금도 60명의 사형확정자가 생존해 있지만, 국가는 이들을 교수대에 세우거나 세울 것을 경고하는 위협 이외에 이들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유족들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형 집행을 통해 유사한 범죄의 발생을 미연에 예방한다는 목적이라는 것도 과거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때마다 일상적으로 관용어처럼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러나 존엄한 인간은, 그가 사형확정자라고 하더라도, 단언하건대 목적 그 자체이지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우하는 그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심각한 인간 존엄 말살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의 가르침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형벌의 목적은 단순한 보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에 있습니다.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올바른 전제는 진정 어린 반성과 용서와 화해에 있지만,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형은 문명사회의 형벌이 감당해야 할 절반의 기능조차 제대로 다 하지 못하는 형벌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형의 치명적 결함: 되돌릴 수 없는 오판의 결과
사형의 가장 큰 폐해를 꼽는다면 그것이 의도되었든 실수에 의하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판단의 오류인 오판을 회피할 수 없으며, 이를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매년 사형을 일정하게 집행해 오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나타나는 오판 문제가 확실한 정보와 통계적 근거를 토대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식적으로 일반 형사사건의 오판은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판사로 재직했던 이찬형이라는 분은 독립투사에게 어쩔 수 없이 사형선고를 한 후 법복을 벗고 출가하여 평생을 불가에 귀의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법관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오판을 진솔하게 고백한 사례가 없습니다.
2003년 10월 이루어진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113명의 판사들 가운데 69.9%가 오판에 의한 사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합니다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과오가 있었음을 인정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우리 법관들의 자질이 다른 나라의 법관보다 뛰어나고 전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오판에 의한 사형은 결코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지난해 사형확정자 61명의 판결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형집행이 아니라 병사 또는 자살하여 사라진 사형 확정자들이 있었고, 이 가운데 시종일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수사 과정에서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제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죄가 의심되는 사정은 남겨진 판결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흉악범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사형 폐지를 운운할 수 있느냐고 강변합니다. 그렇다면 그 질문에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흉악범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그 무고함의 신원(伸冤)은 누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출발점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후보 시절 사형제도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은 폐지에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올해 2월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9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에 사형폐지를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며, 지난 10월 10일 20대 국회에서도 여덟 번째로 사형폐지법(안)이 제출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공약과 헌법재판의 진행, 입법기관의 법안 제출이라는 일련의 과정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사형폐지로 나아가는 길이 평탄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공약 이행과 헌법재판의 결과, 그리고 법안 실정화의 문제는 결국 국민의 정서라는 장벽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에 귀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형이라는 형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사형은 국가형벌권의 목록에서 반드시 최상위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는 형벌이라는 관념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형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말하기 이전에 사형이라는 형벌의 의의와 역할과 기능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마주하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우리가 논쟁하고자 하는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서 그 당부를 말하는 것은 올바른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사형의 존속을 지지하거나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는 사형이 어떠한 형벌이었으며 어떠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자문하는 것으로부터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사형이 얼마나 선고됐으며, 몇 명이 사형당했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물론 잠정적이지만 최소 923명에서 최대 1310명에 이르기까지 집계 방식이나 통계를 생산한 주체에 따라 제각기 다른 수치를 나타내는 결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 확정자를 집행한 내용은 다른 어떤 통계보다도 엄격하고 정확한 것이라야 합니다. 인간 존엄의 바탕이 곧 그 존재적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에 있기에 국가가 생명을 단절하는 형벌을 선택해 부과한 것이라면 그 결과에는 단 한 명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와 독재가 전횡하던 정권에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이에 관하여 그 어떤 경로로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결과가 빚어지게 되었을까요?
대다수 국민은 사형으로 흉악한 범죄자를 성실하게 단죄해 왔다는 국가가 제시하는 그릇된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인류 사회에서 사형은 패륜적인 흉악범죄자를 건강한 시민들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반대자와 그 세력을 효과적으로 말살하는 방책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조선의 국왕 가운데 순조는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917명의 백성을 국법을 바로 세운다는 미명 아래 사형의 형식을 빌려 참살하였고, 고종은 '병인박해' 기간 천주교를 믿는 백성들을 무려 8000여 명이나 사형에 처했습니다. 좀더 가까운 일제 강점 초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활동을 했던 이 땅의 수많은 우국지사들 또한 '적도처단례'라는 무시무시한 봉건적 법률의 표적이 되어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제주와 여수 그리고 순천에서의 사형집행, 급조한 악법에 따라 이루어진 한국전쟁 시기의 숱한 사형 집행 또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이념적 반대세력에게 억울한 누명을 덧씌워 죽이는 사법살인 내지는 사법학살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근현대사 약 200여 년의 기간만을 따져 보더라도 예상과 달리 강력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사형보다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자에 대한 사형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사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67.9%의 국민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악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아를 구분하여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던 한국전쟁 기간, 당시 정권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라는 대통령긴급조치를 급조하여 적을 돕는 이적행위를 한 부역자를 가려내 사형으로 말살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한 UN 소속 영국군 주둔지 인근에서는 부역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단심 재판에 의해 평상시라면 5년의 유기징역도 부과되지 않았을 범죄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가 빚어낸 일이었고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반인권적인 법령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법령은 1960년까지 존재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지만, 1975년 5월 유신체제 아래에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안)'이라는 명칭으로 부활하였습니다. 그 후 권위주의 정권이 극에 달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올 때까지 이 법령은 야수의 이빨을 숨긴 채 생명력을 이어왔고, 1989년 6월 '전시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으로 다시 이름을 바꾼 뒤 1990년대 문민정부에서부터 지금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전시대기법령'으로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휴면상태로 있겠지만, 만에 하나 전쟁을 비롯한 국가위기 상황에는 다시금 긴 잠에서 깨어나 단심 재판에 의한 사형 선고와 집행을 남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어왔던 형법을 비롯한 형벌 규범에는 흉악범죄에 대해서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존재할 뿐이라는 신뢰는 전혀 온당치 않는 일입니다. 사형집행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는 온건한 태도 역시 사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빚어진 오해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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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행관(헌병 간부)들이 총살 집행 후에도 숨이 붙어 있는 일부 사형수를 찾아 권총으로 근접 확인 사살하고 있다. | |
| ⓒ NARA/이도영 | |
사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사형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25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형법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학자로도 유명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 <범죄와 형벌>이라는 저서에서 사형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이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사형제도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형 유지와 폐지의 입장은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지지자는 응보필벌의 복수가 곧 정의의 실현이며 부수적으로 범죄 예방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반대자는 오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사형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회복 불가능성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국가가 제대로 형성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사적 복수가 널리 허용되었고 따라서 나와 나의 가족, 나아가 내가 소속된 집단에 가해지는 부당한 공격과 침해에는 복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습니다.
국가체계가 갖추어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인이 일어나더라도 국가는 그것을 개인 간의 분쟁으로 간주하여 가급적이면 국가형벌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지만 굴복하지 않는 적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국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즉, 식량을 비롯한 한정된 자원을 적에게까지 분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적의 목숨을 단번에 끊는 것이었고, 이러한 조치는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이 일상화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자신의 신민으로 복속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가가 가지게 되면서, 달리 표현하자면 국가의 통제력 안에 이들을 관리하고 교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되자 감옥이라는 감금시설을 고안하게 됩니다. 범죄자 역시 국가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위를 일삼는 적으로 간주되었기에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계몽시대를 지나면서 나타나게 되는 사형의 완화와 폐지의 추세는 국가가 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그 통제력 또는 통치 시스템 안에서 규제하고 단속할 수 있다는 검증된 믿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형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는 국가 논리의 핵심에는 외관상으로 국민적 여론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 본질은 그만큼 해당 국가의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사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대체로 국민을 그의 통제력 안에 둘 수 없음을 자인하거나, 국가의 정치체계가 불안정하거나 민주적이지 아니한 경우들이 대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벌의 외관, 그러나 형벌이 아닌
사형 지지자의 핵심 논거인 복수의 속성은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의 본능적인 보복 욕구의 충족 이외에 정의를 비롯한 어떤 다른 가치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정확히 셀 수조차 없는 사형집행 가운데 이른바 반인륜적인 생명 침해 범죄자들에 대한 집행이 있었고, 지금도 60명의 사형확정자가 생존해 있지만, 국가는 이들을 교수대에 세우거나 세울 것을 경고하는 위협 이외에 이들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유족들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형 집행을 통해 유사한 범죄의 발생을 미연에 예방한다는 목적이라는 것도 과거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때마다 일상적으로 관용어처럼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러나 존엄한 인간은, 그가 사형확정자라고 하더라도, 단언하건대 목적 그 자체이지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우하는 그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심각한 인간 존엄 말살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의 가르침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형벌의 목적은 단순한 보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에 있습니다.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올바른 전제는 진정 어린 반성과 용서와 화해에 있지만,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형은 문명사회의 형벌이 감당해야 할 절반의 기능조차 제대로 다 하지 못하는 형벌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형의 치명적 결함: 되돌릴 수 없는 오판의 결과
사형의 가장 큰 폐해를 꼽는다면 그것이 의도되었든 실수에 의하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판단의 오류인 오판을 회피할 수 없으며, 이를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매년 사형을 일정하게 집행해 오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나타나는 오판 문제가 확실한 정보와 통계적 근거를 토대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식적으로 일반 형사사건의 오판은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판사로 재직했던 이찬형이라는 분은 독립투사에게 어쩔 수 없이 사형선고를 한 후 법복을 벗고 출가하여 평생을 불가에 귀의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법관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오판을 진솔하게 고백한 사례가 없습니다.
2003년 10월 이루어진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113명의 판사들 가운데 69.9%가 오판에 의한 사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합니다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과오가 있었음을 인정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우리 법관들의 자질이 다른 나라의 법관보다 뛰어나고 전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오판에 의한 사형은 결코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지난해 사형확정자 61명의 판결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형집행이 아니라 병사 또는 자살하여 사라진 사형 확정자들이 있었고, 이 가운데 시종일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수사 과정에서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제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죄가 의심되는 사정은 남겨진 판결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흉악범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사형 폐지를 운운할 수 있느냐고 강변합니다. 그렇다면 그 질문에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흉악범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그 무고함의 신원(伸冤)은 누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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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7년 11월30일 세계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한 Cities for Life 조명 퍼포먼스 | |
| ⓒ 천주교인권위원회 | |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후보 시절 사형제도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은 폐지에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올해 2월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9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에 사형폐지를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며, 지난 10월 10일 20대 국회에서도 여덟 번째로 사형폐지법(안)이 제출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공약과 헌법재판의 진행, 입법기관의 법안 제출이라는 일련의 과정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사형폐지로 나아가는 길이 평탄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공약 이행과 헌법재판의 결과, 그리고 법안 실정화의 문제는 결국 국민의 정서라는 장벽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에 귀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형이라는 형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사형은 국가형벌권의 목록에서 반드시 최상위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는 형벌이라는 관념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형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말하기 이전에 사형이라는 형벌의 의의와 역할과 기능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마주하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우리가 논쟁하고자 하는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서 그 당부를 말하는 것은 올바른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사형의 존속을 지지하거나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는 사형이 어떠한 형벌이었으며 어떠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자문하는 것으로부터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이덕인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경찰경호학과 교수입니다.
- 이 글은 38회 인권주일 자료집 <교회와인권>에도 실렸습니다.
- 이 글은 38회 인권주일 자료집 <교회와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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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촛불 3년, 적폐 발호·정권 역주행·외세 내정간섭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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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30 2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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